[광장]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했다. 크로노스는 일정하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이다. 가령 1년, 하루, 한 시간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시간, 즉 '객관적'인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간다. 막을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다. 크로노스 앞에서 인간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역동 우탁 선생은 고려 말에 지은 '탄로가'에서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드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고 탄식했는데, 역동 선생이 한탄한 시간이 바로 크로노스이다. 가수 서유석이 '가는 세월'에서 잡을 수 없다고 한 '세월'도 크로노스이다.

반면에 카이로스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이다. 시간이 길다거나 짧다는 것은 물리적, 객관적 길이에 따른 판단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루를 한 시간처럼, 또는 한 시간을 1년처럼 느낄 수도 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은 시간이 빠르게,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라는 말은 더디게 감을 나타내는 말인데 이때의 시간이 카이로스이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인 카이로스에는 사람의 마음과 의지가 개입될 수 있다. 마음과 의지가 담긴 특별한 시간이며 우리가 능동적으로 무엇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때'나 '기회'이다.

크로노스는 흘러가고 만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잠든 순간에도 크로노스는 흐른다. 그러나 카이로스는 마음속에 기억과 경험으로 차곡차곡 쌓인다. 들뢰즈(Deleuze)는 '들뢰즈, 유동의 철학'(2008)에서 현재는 "과거가 되어버리는 점(點)과 같은 것"이 아니라 "현재란 언제나 현재와 과거의 복합체이고 결정체(結晶體)"라고 했다. 그가 여기서 '현재' 또는 '과거'라고 한 말은 카이로스적 현재 또는 과거를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흘러가버리는 크로노스는 무의미한가? 그렇지는 않다. 그 누구도 하루 24시간을 카이로스만으로 채울 수는 없다. 적당한 휴식과 수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 멍 때림조차도 삶을 더 활력 있게 해주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지혜롭게 조합시킬 필요가 있다.

작가 김선영은 '시간을 파는 상점'(2012)에서 "삶은 시간의 내용"이라 했다. 다시 말해 삶은 자신이 사는 동안에, 카이로스적으로 살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추억들이다. 마지막 순간, 보람과 추억으로 가득 찬 생을 회고하고 싶다면 적어도 깨어서 활동하는 동안은 카이로스로 채우려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때와 기회를 기다린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카이로스를 위해서는 시간을 '자기 주도적'으로 쓸 필요가 있다. 시간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어 매사에 적극적,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자신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에는 독서, 취미, 운동, 사교, 종교, 봉사 등 그 무엇이든지 간에 진실로 하고 싶은 활동을 찾아 자발적, 능동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직업상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차피 해야 하고, 보내야 할 시간이라면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즐기면서 참여하자. 시간의 주인으로서, 때로는 왔다가 사라지고, 때로는 마음과 몸에 기억과 경험으로 쌓이는 시간을 정중하게 맞이한다면, 삶의 질과 행복지수는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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