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멍때리기 대회

임창아 시인·아동문학가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왜 영혼 없는 말을 하느냐'는 말을 듣고 졸지에 영혼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혼 없는 눈으로 영혼 없는 밥을 먹고, 영혼 없는 커피를 마시고, 영혼 없는 책을 덮을 때까지도 집 나간 영혼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영혼이라고 집 나가고 싶은 적 없었을까요? 영혼이라고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고 싶었을까요? 영혼도 누군가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겠지요. 붉은 가을의 스위치를 끄고 골방에 처박히고 싶은 날도 있었겠지요. 부끄러움에, 안타까움에 말 보다 먼저 눈물 보일 때도 있었겠지요. 얼마 전, 영혼도 없이 영혼을 위한 제사를 지냈습니다. 영혼 없는 절을 하고, 영혼 없는 제삿밥을 먹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가끔씩만' 영혼을 소유한다고 쉼보르스카는 말합니다. 끊임없이, 영원히 그것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따금씩 '공포나 환희의 순간'에 영혼은 우리 몸속에 둥지를 틀고 오랫동안 깃든다고 합니다. 청소기를 돌리거나 가구 배치를 다시 할 때, 운동화 끈을 조이고 둘레길을 걸을 때도 영혼은 우리에게 손 내밀지 않습니다. 늦은 밤까지 숙제를 하거나 김치를 담을 때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화에 겨우 '한 번쯤 참견할까 말까' 그나마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워낙 과묵하고 점잖으니까요. 그러나 삭신이 쑤시고 아프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교대 근무를 자청하기도 한답니다.

'기쁨과 슬픔'이 온전히 하나가 될 때, 말없이 우리 곁에 머무는 영혼, 아무도 쳐다보지 않아도 묵묵히 제 임무를 수행하는, 영혼이 우리에게 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영혼에게 꼭 필요한 소중한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영혼은 어린이와 노인에게 가장 오래 깃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이 청춘을 바쳐야 하는 시기에는 영혼을 반쯤 빼놓고 사는 게 정상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영혼을 챙기는 것이 영혼을 귀찮게 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영혼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기 위함일지도 모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니, 삶은 얼마나 고달파야 하는지요. 영혼 없이 사는 것이 어쩌면 더 행복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서는 '멍때리기 대회'를 올해로 4회째 개최했다고 합니다. 대회의 목적은 새로운 경험과 더불어, 지친 현대인들이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고 아무것도 하지말자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뒤처지거나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멍때리기 대회는 이러한 통념을 꼬집고자하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또한 가치 있는 행위라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영혼이 자발적으로 육체에서 나갈리 있겠습니까마는 잠시나마 쉬는 시간을 주자는 의도겠지요. 하여 '영혼'이라는 말이 발화되기 전, 우리도 가끔씩 영혼의 외출을 적극적으로 도우는 건 어떨까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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