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환자 40%는 앓고 있는 줄도 몰라

동맥경화·심부전증·협심증·심근경색…

초기 관리에 소홀한 청년층 합병증 많아

최고 120·최저 80㎜Hg 넘을 땐 '前 단계'

짜게 먹는 습관 줄이고 금연·금주 실천

하루 2번 아침·저녁 前에 혈압 점검해야

돈은 많지만, 성질은 고약한 재벌 회장님. 그러다 보니 주변에 좋은 사람도 별로 없다. 자연히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사고가 터진다. 그러다 화가 치민 회장님이 한참 역정을 내다 뒷목을 잡고 쓰러져 버린다. 병원의 진단은 고혈압. 낯설지 않은 얘기다. 뻔한 줄거리, 숱하게 나온 레퍼토리다. 우리나라 일일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고혈압에 대한 말들이 많은 것은 그만큼 흔히 볼 수 있는 질환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국민 5명 가운데 1명이 고혈압을 앓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고혈압을 심각한 질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아직도 적지 않다는 점. 17일은 세계고혈압연맹(WHLWorld Hypertension League)이 정한 세계 고혈압의 날이다. 고혈압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고혈압으로 인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정한 것이다.

◆최고최저혈압 모두 따져 진단

우리 몸은 심장에서 온몸에 혈액을 보낸다. 심장은 펌프질하면서 혈관을 통해 각 신체 장기, 조직으로 혈액을 운반한다. 이때 혈관에 가해지는 압력을 혈압이라고 한다. 혈압은 최고혈압과 최저혈압을 함께 말한다. 최고혈압은 심장이 피를 내보낼 때 측정되는 혈압. 최저혈압은 심장이 이완돼 혈액을 받아들일 때의 측정치를 의미한다.

필요 이상으로 혈압이 올라간 경우를 고혈압이라고 한다. 최고혈압과 최저혈압 모두 고혈압을 판정할 때 중요한 요소다. 일반적으로 최고혈압(수축기 혈압) 140㎜Hg, 최저혈압(이완기 혈압) 90㎜Hg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더 높을 때 고혈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안정된 상태에서 측정한 최고최저혈압이 120/80㎜Hg 미만이라면 정상 혈압이다.

하지만 이같이 정의한 고혈압은 미국의 국립보건원(NIH)과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에 따른 것이다. 최근에는 최고혈압 120㎜Hg, 최저혈압 80㎜Hg를 넘는 경우 '고혈압 전 단계'라고 부르며 고혈압에 준하는 관리를 권하고 있기 때문에 혈압이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고혈압은 '침묵의 살인자'

고혈압은 그 자체로는 특별한 증상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적절히 치료하지 않는 사이에 다양하고 치명적인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다. 동맥경화의 진행, 심부전증,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 부정맥, 대동맥박리, 대동맥류 등이 고혈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한 후유증을 일으키는 질환들이다. 고혈압이 '침묵의 살인자'라고까지 불리는 이유다.

국가에서 고혈압 관리에 적극적인 것도 고혈압이 미치는 파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합병증이 발생하면 치료 비용이 엄청나고 개인의 사회적 활동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고혈압을 관리하고 치료하는 게 이러한 합병증의 발생을 가장 효과적으로 예방하는 방법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고혈압 환자 10명 가운데 4명 이상은 자신이 고혈압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점.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이뿐 아니라 고혈압 환자 가운데 약 35%는 치료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고혈압 진단을 받아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초기에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건강에 대해 자신감이 높은 젊은 층이 그런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혈압 치료와 약물 복용·혈압 측정법

고혈압은 증상이 있어 치료하는 게 아니라 올라간 혈압을 조절하고,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합병증을 예방하는 데 목적이 있다. 고혈압 치료 방법은 크게 비약물 요법과 약물 요법으로 나눈다. 비약물 요법으로는 금연, 금주, 체중 조절, 운동, 염분 섭취 제한 등을 꼽을 수 있다. 혈압이 정상보다는 높지만 고혈압으로는 보기 힘든 '고혈압 전 단계'라면 비약물 요법만으로도 충분하다.

고혈압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주치의와 상담 후 적절한 약을 처방받아 복용할 필요가 있다. 효과적인 약을 복용해 혈압 수치를 충분히 낮추면서 비약물 요법을 병용하면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비약물 요법을 실천하려면 강한 의지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합병증으로 인한 위험성을 생각하면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고혈압 약은 한 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고들 한다. 고혈압 자체가 나이가 들면서 더욱 증가하기 때문에 상당 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싫다고 혈압 조절을 외면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을 감수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생활습관을 개선해 약 없이도 혈압을 조절하는 이들도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혈압을 자주 점검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하루 중 혈압은 변할 수 있다. 운동을 하거나, 감정적으로 긴장하고 흥분한 상태에선 혈압이 상승할 수 있다. 수면을 취하거나 안정된 상태라면 혈압이 낮아진다. 혈압을 제대로 재려면 혈압 측정 전 흡연, 음주, 카페인 섭취를 자제하고 최소 5분 동안 안정을 취한 상태에서 2번 정도 혈압을 잰 뒤 그 평균값을 구하는 게 정확하다.

얇은 상의를 입었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두꺼운 상의를 걸쳤다면 벗고 측정해야 한다. 팔을 걷어 측정하는 것은 실제보다 낮게 측정될 수 있다. 고혈압 환자가 가정에서 혈압을 잰다면 하루에 2번 정도, 아침 약물 복용 전과 잠자리에 들기 전에 측정하는 게 좋다.

◆고혈압엔 칼륨 많은 음식 섭취해야

혈액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혈압이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법 중 하나다. 혈압이나 콜레스테롤, 혈당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 혈액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고혈압이 발병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과도한 나트륨 섭취. 우리 국민 가운데 다수는 여전히 음식을 짜게 먹는다고 한다. 고혈압에 걸릴 위험에 그만큼 더 많이 노출된 셈이다. 나트륨과 노폐물이 잘 배출될 수 있게 칼륨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먹을 필요가 있다.

고혈압에 좋은 음식은 채소와 과일. 잎채소와 브로콜리, 토마토, 비트, 콩, 아보카도, 감자, 표고버섯, 석류, 양파, 멜론, 꽃송이버섯, 바나나 등이 그것이다. 두유나 등푸른 생선, 견과류 등도 고혈압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적색 육류와 당류, 설탕 첨가 음료 등은 피해야 할 음식이다.

도움말 이중희 영남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윤혁준 계명대동산병원 심장내과 교수

채정민 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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