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의 자전거로 떠나는 일본 여행] (14)나가사키~운젠지옥~구마모토

벚꽃 만개한 구마모토성…수많은 인파에 끼여 봄정취 만끽

지진으로 무너진 구마모토성의 보수가 한창이다. 지진으로 무너진 구마모토성의 보수가 한창이다.
필자가 운젠지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필자가 운젠지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구마모토성에서 관광객들이 하나비(꽃놀이)를 즐기고 있다. 구마모토성에서 관광객들이 하나비(꽃놀이)를 즐기고 있다.

◆지루할 틈이 없는 이야기의 도시, 나가사키(長崎)

나가사키에 힘겹게 도착한 탓에, 다소 느지막하게 일어나 시내를 배회한다. 먼저 원폭의 흔적이 남아 있는 평화공원으로 간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시각이 선명하다. 히로시마의 규모 있는 평화공원에 비하면 자그마한 기념공원이다. 기독교가 이곳을 통해서 최초로 전파되면서 선교사가 첫발을 디딘 후 많은 종교 순교자가 나왔다. 도시 곳곳에 그들을 모신 기념관들이 있다.

가톨릭 성지순례로도 빈번히 온다. 언덕 위에 위치하여 다리에 힘 좀 써야 한다. 26인의 순교자를 모신 교회당은 언뜻 보면 바르셀로나 가우디성당의 모습이 살짝 비친다.

차이나타운으로 향한다. 큰 규모의 거리다. 일본 도시 중 중국의 뿌리가 가장 깊게 박혀 있는 곳이다. 거리는 많은 여행객들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다. 유럽인들이 정착하여 교역 터 역할을 했던 '데지마'(出島)를 둘러보고 건너편 해변공원으로 향했다. 마침 대형 크루즈가 정박해있다. 부둣가에는 낭만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다. 볕 좋은 날에 차 한 잔 들고 해변공원 잔디밭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가사키를 즐기는 한 방법이다.

개혁가이자 무역상이었던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가메야마사츄 터를 간다. 언덕을 올라 오래된 신사를 지나고 무덤가를 지나서 계속 좁은 오르막을 20분 이상 올랐을까. 나가사키 시내가 시원스레 한눈에 내다뵈는 카자가시라공원(風頭公園)에 도착했다. 4m나 되는 료마 동상 앞에서 폼 잡고 기념사진을 남긴다.

나가사키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디를 봐도 산들이 빼곡하게 둘러서 있다. 앞쪽에는 시원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 노면열차도 여기저기 다닌다. 시내 한가운데 맑은 도심 개울이 흐른다. 금붕어가 노닐고 거북이도 살고 있다. 모르긴 하되 서울의 청계천도 이곳을 벤치마킹하지 않았을까. 수십 개의 돌다리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자랑한다. 안경을 닮은 메가네바시(안경다리)는 이곳의 명물이다. 마침 다리 앞에는 나가사키 명물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상이 있다. 150엔이다. 그런데 창업 60년이란다. 노점상에도 역사가 흐르는 게 부럽다. 유명한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맛본다. 이름값을 한다. 촉촉하면서 달달하게 맛있다. 이래저래 나가사키 시가지는 자전거로 하루 종일 다녀도 될 만큼 충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운젠다케(雲仙岳) 1,360m, 운젠지옥 가는 길

나가사키를 빠져 나가는 길은 딱 두 가지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 오무라(大村)만으로 가든지, 운젠다케를 넘어가든지 해야 한다. 운젠 쪽으로 방향을 튼다. 1,360m 운젠다케(雲仙岳)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두렵기조차 하다. 산 중턱에 위치한 운젠지옥(雲仙地獄)까지는 40㎞ 정도지만 가파른 오르막만 12㎞ 정도다. 마치 헤어핀처럼 지그재그 오르막 산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외국인 라이더도 짐을 가득 싣고 힘겹게 가고 있다. 꽤나 장거리 여행 중인 듯하다. 싱긋하며 서로 격려한다. 이놈의 오르막은 끝이 안 보인다. 지칠 무렵, 쭉쭉 뻗은 삼나무 숲들이 내뿜는 피톤치드 향이 상쾌하게 심신을 위로해준다. 3시간여 힘겹게 달려 오시도리노호수(おしどりの池)에 다다른다.

운젠지옥에 다 왔다는 의미이다. 호수는 온천수가 모여 만들어진 듯 온통 구릿빛이다. 이내 운젠지옥 온천지역에 도달했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탓에 예전의 명성은 간데 없고 다소 황량하다. 허기진 배를 달랠 겸 소바를 파는 식당에 들어섰다. 온천도 식당도 가게주인도 다소 맥 빠진 듯 건성건성이다. 지나간 영화다.

◆규슈 올레 제17코스 시마바라항(島原港)에서 구마모토(熊本)로

내뿜는 연기 속의 운젠지옥 순례를 마치고 구마모토로 향한다. 항구도시 시마바라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한다. 한 시간에 한 대꼴로 페리를 운항하고 오후 7시면 배가 끊기기 때문에 서두른다. 시마바라항까지는 25㎞, 약 20㎞가 내리막이라 마구마구 신난다. 나무숲에서 벌레가 목을 쏘아 홍역을 치른 탓에 다소 무리하여 내리막을 탄다. 시속 40㎞까지 내달린다.

자전거 사고의 대부분이 내리막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내려간다. 미나미 시마바라(南島原)로 간다. 제주도가 일본에 수출한 '올레길 제17코스'가 있는 곳이다. 가을이면 끝없는 해바라기 길로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시마바라항에서 구마모토 가는 페리는 두 종류가 있다. 약 1시간 걸리는 일반페리와 30분 소요되는 쾌속선이 있다. 일본 독주로 벌레에 쏘인 부분을 소독하고 남은 술을 서너 모금 마신 탓인지 졸음이 쏟아진다. 페리를 타고 가는 내내 곤한 잠을 청했다. 구마모토 항구에 도착하니 오후 8시가 다 되어 어둑하다. 시내까지는 약 12㎞ 정도이다. 도심지 야간 라이딩은 늘 긴장하기에 피곤이 더하다.

◆지진으로 무너져내린 구마모토성, 아직도 보수공사 중

늦은 시간 도착하여 구마모토역 인근 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구마모토 시내 라이딩을 나선다. 구마모토는 규슈의 교통 중심지에 위치한다. 아소산(阿蘇山)을 가기 위한 건널목이기도 하다. 시가지가 자그마하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구마모토성을 천천히 즐기기로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오른팔이기도 했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시대에 만들었다고 한다. 오사카성, 나고야성과 더불어 일본 3대 성으로 이름값을 한다. 구마모토역에서 멀지 않다. 안타깝게도 2년 전 지진으로 천수각 일부와 외벽들이 무너져 아직도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문화재 복원에 워낙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 건축은 고사하고 아직도 철거 중이란다. 돌멩이 하나하나에 번호를 매겨 가면서 철거 중이다. 모르긴 해도 앞으로 5년은 족히 걸릴 듯하다.

천수각 인근에는 통제가 되어 아쉬웠지만 때마침 구마모토성 일대에 벚꽃이 만개하여 인산인해다. 일본인들은 하나비(花火)라 하여 벚꽃이 만개할 때면 다들 벚꽃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며 축제에 심취한다. 우리네의 봄꽃 나들이랑 똑같다. 허드러지게 핀 벚꽃나무 아래서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평화롭다. 그들의 틈에 슬쩍 끼여 기분을 공유한다. 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식당을 만났다. 돌솥비빔밥이 거의 1만8천원 정도다. 그래도 매운 고추장에 나물을 쓱쓱 비벼 한 그릇 뚝딱하니 눈이 번쩍 뜨인다. 입맛은 속일 수가 없다.

이제는 서둘러 후쿠오카로 가야 한다. 신칸센으로는 40분 남짓이니 그다지 멀지 않다. 동선상의 이유로 한두 도시는 생략했지만 이로써 규슈 900㎞ 장도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제는 오사카가 있는 간사이 지방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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