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미야자키공항 면세점에서

주머니에 남은 동전 970엔으로 쇼핑

1천엔짜리 생라멘 사기에는 부족해

"깎아 줄 수 있느냐" 하자 점원 거절해

옆 매장 아주머니 30엔 더해줘 감동

공항은 만남의 설렘과 이별의 아쉬움을 오롯이 담은 공간이다.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지구에 존재하는 많은 공항을 드나들었다. 인천공항처럼 크고 화려한 공항도 시골 버스터미널보다 작은 공항도 경험했다. 공항에는 특별한 향이 있다. 면세점의 화장품들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사람들이 뿜어내는 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작년 여름 나는 미야자키를 방문했다. 규슈 남동부에 위치한 미야자키는 야자수가 남국의 풍경을 연출하는 아름다운 지역이다. 1970년대 엔고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하와이 등으로 눈을 돌리기 전까지 일본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주목을 받았던 관광지이다. 1인당 소득을 보면 약 256만엔으로 전국 평균 308만엔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고, 도쿄의 440만엔과 비교하면 한참 떨어지는 저소득 지자체다. 일본 행정구역 47개 중 37위라니 상당히 가난한 지자체로 보이는데, 통계국의 '소비자물가 지역차지수'를 보면 미야자키가 전국에서 가장 낮다. 이 말은 물가가 낮아 소득격차만큼 생활수준이 낮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미야자키공항은 시내 중심지에서 약 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이용하기가 편리하기로 손꼽힌다. 지금은 연간 이용객이 국내선 280만 명, 국제선 8만 명 정도의 크지 않은 공항인데 우리나라 인천공항에서 직항이 있다. 유명 여행지가 아니라 일본 소도시에서 자연을 느끼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사람들이 찾기 시작하면서 적지 않은 관광객이 모이는 매력적인 도시다.

미야자키를 소개하고자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 아니다. 해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주머니에 남아 찰랑거리는 동전은 항상 문제다. 아무 생각 없이 들고 온 동전은 '다음에 써야지' 하지만 집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없어지기 일쑤다. 동전을 없애야 한다는 마음에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들어보기도 하지만, 이래저래 적당한 물건을 찾지 못하면 결국 유니세프가 마련한 모금함 앞에서 상당한 박애정신의 사람인 양 동전을 탈탈 털고 온다. 이런 사람이 나만이겠는가.

미야자키공항에서의 이야기를 하겠다. 역시 주머니에 100엔짜리 동전 9개 10엔짜리 동전 7개가 꽤 무거웠다. 참 애매한 돈이다. '미야자키 생라멘'을 사면 딱 좋겠는데, 이게 1천엔이니 30엔이 부족했다. 부족한 30엔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만지작만지작하면서 30엔을 깎아줄 수 있느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자, 젊은 남자가 생긋생긋 웃으면서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딱 부러지게 거절하고 미안하다는 말만 남겼다. 이때 옆 매장의 아주머니가 '잠깐만'이라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자신의 지갑을 들고 와서 30엔을 더하고 라멘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이것이 국제공항 면세점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하는가. 융통성이라곤 바늘구멍 하나 찾기 힘든 일본이 아닌가. 감동이었다.

미야자키는 특별하다.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등 메이지 유신의 굵직한 주인공들을 배출한 사쓰마번(薩摩藩)이 이 언저리에 있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규슈에 대한 재평가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전 사업장의 근로자 법정 정년을 60세로 의무 규정했다. 이에 한국고용복지학회는 우리보다 먼저 60세 정년제 시대를 맞이한 일본을 찾아 기업의 전직 지원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래서 찾아간 첫 번째 회사가 미야자키공항이었다. 나가하마 야스히로 회장을 만나 고령자 노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내용에 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여하튼 이야기를 나눈 다음, 나는 지난여름의 이야기를 했다. 나가하마 회장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60세가 정년이고 본인이 원한다면 65세까지 연장되는데, 이분들에게 바라는 것은 바로 이런 '야사시이' 마음이다"라고 했다. '야사시이'는 우리말로 번역하기 참으로 어려운 단어다. 단순히 친절하다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뜻을 담고 있다. 연륜이 가진 따뜻함이야말로, 나가하마 회장이 말하는 '야사시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야자키 공항의 특별한 향이 바로 그것이라고, 그래서 아름답게 기억된다고 감히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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