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우리 사회의 '지킬과 하이드'

이춘수 편집부국장 이춘수 편집부국장

"지금까지 나는 언제나 악한(하이드) 성격을 숨기고 착한(지킬 박사) 성격만 나타내려고 노력했다네. 나의 악한 쪽은 선한 쪽보다 훨씬 몸집이 작고 약하다네."

분열증을 겪는 의학자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가운데 나오는 명대사다. 우리 지도층이 도덕과 욕망의 분열 상태에 빠졌다. 한때 존경받고 주목의 대상이었던 이들이 이중인격자 지킬 박사처럼 하이드로 마구 복제되는 듯하다. 각 분야의 힘센 자 내면에 엄연히 존재했던 악과 위선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우리 사회는 손 쓸 수 없는 의식의 통제 불능 사태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양심과 욕망의 권력, 그 둘의 항시적 분열 상태에 있을 뿐 아니라, 어느 쪽이 진정한 자아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의 골자다. 지킬 박사는 어느 날 공원 벤치에 앉아 자신이 지난 몇 개월간 행했던 선행들로 또 다른 자신인 살인자 하이드를 영구히 제압했으리라고 흐뭇해하지만, 고개를 숙이자 그의 손에 힘줄이 솟고 털이 자라면서 자신이 어느새 '괴물' 하이드로 되돌아갔다는 것을 발견한다. 더 이상 지킬로 돌아갈 수 없었던 하이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한때 존경받았던 원로 시인이, 열정과 천재성으로 무수한 상을 탄 영화감독과 연출가가, 차기 정치 주역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은 정치인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급기야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한 배우는 지킬 박사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은 평소에 겉으로는 정직하고 시대정신을 실천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작은 권력의 위치에서 그 권력을 누렸던 많은 소인배들도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하이드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모두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참회와 진정한 사과는 없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성추행을 당해도 침묵을 강요받아야만 했고, 당사자도 결국 침묵했다. 가해자 대부분은 특정 분야의 '권위자' 또는 '권력자'였다. 그것이 지위든, 능력이든 간에 자신이 소유한 권력을 부정한 방법으로 행사해, 꿈을 향해 가는 힘없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미투 운동의 본질은 직접적인 '성' 문제가 아니라 약자를 파고드는 권력의 남용, 개인에 대한 폭력적 권력 행사에 있다.

쏟아지는 '미투 폭로'에 음모론도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투 운동이 여야 대결도, 남녀 성 대결도 아니라는 점이다. 또 성폭력에 좌우(左右)가 있어서도 안 된다.

미투 고백 당사자들이 용기를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또 결단이 필요했다. 그 상처와 충격, 모멸감과 환멸의 몫은 피해 당사자의 것만이 아니라 진실을 대면한 우리 사회, 국민 전체의 것이 되었다. 그동안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이들의 추락으로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할 말이 없게 됐다. 지도층과 권력자들을 넘어 기성세대의 권위 추락과 불신으로 이어질까 두렵다.

이제 근본적 차원에서 사회적 가치관과 조직 문화, 전문가 의식을 재점검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하이드를 양산하게 된 것은 권력과 자본에 대한 맹목적 추구와 힘센 자들이 권력(권위)의 남용을 자각하지 못한 자만심에 있다.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등산인들이 1950, 6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 2,000m 고지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어느 순간부터 4,000, 5,000m 고지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더니 큰 변화가 나타났다. 2,000m에 베이스캠프를 차렸을 때는 1년에 정상 등정에 성공한 사람이 10명 미만이었는데, 4,000m 이상의 고지에 차리면서부터 매년 정상 등정에 성공한 사람이 20명을 넘었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도덕률 베이스캠프를 높여 위에 있는 자로부터의 성폭력, 성추행을 사라지게 하자. 지도층부터 도덕성 기준을 높여야 한다. 이런 도덕의 울타리가 남성 전체로까지 확산한다면 눈물을 흘리고, 고통을 받는 여성들이 줄어들 것이다. 미투 운동이 분명 사회 발전과 성숙의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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