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지휘자가 남긴 노트 한 권

러시아의 전설적인 지휘자 므라빈스키에게는 연주 때마다 들고 다니는 비밀 상자가 있었다. 그가 죽기 전까지 그 비밀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가 죽고 난 이후, 그 비밀 상자가 열렸다. 그 속에는 작은 노트가 있었다.

"가장 왼쪽에는 1바이올린, 그다음엔 첼로, 그 뒤에는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목관, 금관…. 그 뒤에는 타악기, 오른편엔…."

가장 기본적인 것보다 더 기본적인, 지휘자가 숙지할 사항들에 대한 메모였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목표를 세우고는 한다. 왜 1월은 우리에게 목표를 갖게 하는 걸까? 새로운 시간을 맞는다는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어제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이 담겨 있다. 어떤 면에서는 반성도 있을 것이고, 뜻을 이루지 못한 나를 향한 후회일 수도 있다. 필자는 이것을 각자의 이유가 그 나름의 선택을 거쳐 내린 선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 삶을 위한 선택이라면 한 가지를 첨언하고 싶다. 거창한 포부를 담아 세상에 천명하기보다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 하나씩 쌓아 올라갈 줄 아는 미덕이 필요하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쓴 나머지, 연초에 세운 계획도 힘을 잃고 금방 수명을 다할 수가 있다.

조금이라도 실패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단기간에 이루려 하지 말고 천천히 걸어갈 줄 아는 인내가 중요하다는 기본, 겉으로 보기에는 소소할지라도 묵묵히 지키다 보면 진실되리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곧 꿈을 이룬다는 신념, 어쩌면 새해는 계획보다 우리에게 용기를 가지라는 주문일지도 모른다.

"무대는 장난이 아닌 공간, 허세 떨 만한 여유가 없는 공간,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인지 증명할 기회조차 없을지 모른다."

"오직 정신과 태도만이 존재할 수 있는 장소이며, 거짓말은 무대 밖에서나 통하지, 쳇! 비웃음당하기 딱 좋은 곳이다."

"그럼 여기에 제대로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개인적인 답은, 욕심을 버리고 그저 순전한 초심으로 돌아가고 기본으로 돌아가서 가장 순수한 예술 그 자체와 만남을 갖는 것이다."

"이곳은 무대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내면에 잠들어 있는 어떠한 것과 만나는 행위가 인간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 러시아의 한 지휘자가 남긴 노트는 이 점을 알려주는 듯하다.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가려고 이미 있는 것(기본)을 되새기고 반복해서 성숙해진다는 의미를, 단순함에 성실을 더해 정교함으로 발전하는 방법을.

그가 보물처럼 여겼던 수첩은 닳고 닳은 종이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담은 글귀는 진실하기에 내일을 맞는 우리에게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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