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빵 팔던 소년이 청와대로…이명박, 그는 누구인가?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자신의 '성공신화'에 새 장을 올렸다. 가난한 목부(牧夫)의 아들이 대기업 회장에 올라 '샐러리맨의 신화'를, 정치입문 후 서울시장 시절엔 '청계천 신화'를, 이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대권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이 당선자의 대선 과정은 자신의 인생역정 중 최대 난관이었다. 당 경선에서는 도곡동 땅 문제로, 본선에서는 BBK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고, 선거 사흘을 앞두고 터진 BBK 동영상 파문은 '이명박 특검법'의 국회 통과라는 수모를 겪게 했다. 하지만 '가난과 어머니가 스승'이었던 이 당선자에게 좌절은 없었다. '여의도식 정치' 폐해에 온몸으로 맞선 그는 이제 대한민국 'CEO 대통령'으로서의 도전과 열정의 기대에 부풀어 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유년시절

1941년 12월 19일 경북 포항에서 가난한 목부의 아들로 태어난 이 당선자는 뼈저린 가난으로 가족 모두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머니를 도와 김밥과 풀빵, 뻥튀기, 과일 등을 팔며 고학을 했다. 그 시절의 가난과 고단한 고학생활은 그의 몸에 영향을 미쳐 형제들 중 유독 키가 작고 '팔이 긴 아이'가 됐다. 어렵게 동지상고 야간부를 나온 그는 이 시기를 "굴 껍데기처럼 우리 가족에게 들러 붙은 가난은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도 떨어질 줄 몰랐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번 후보자 연설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여학교 앞에서 좌판상을 할 때 옆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는 저에게 '얘야 뭐가 부끄러워 머리를 숙이느냐.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라'는 교훈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1959년 12월 그는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동생과 함께 서울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당선자의 아버지·어머니는 이태원 판자촌에 단칸방을 얻어놓고 시장에서 노점을 했다. 작은방에는 부모님과 동생이 누워 다리조차 펼 수 없었기에 달동네 합숙소에서 일당 노동자로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매일 새벽 일자리를 찾아 달동네 산 꼭대기를 허겁지겁 달려야 했던 시절, 그의 발길은 자신도 모르게 동숭동이나 안암동, 신촌 같은 대학로로 향했다.

생존만이 유일한 과제였던 그때 "대학시험이라도 한번 쳐보자, 시험에 합격만 하면 학교에 다니지 않더라도 중퇴가 된다."는 엉뚱한 생각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청계천 헌 책방에서 책을 얻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불 끄라는 노동자들의 원성을 들어가며 공부한 끝에 61년 고려대 상과대학에 합격했다.

어머니가 행상을 하던 이태원 재래시장에서 환경미화원 생활을 하며 대학을 다녔던 그는 상과대 학생회장 시절 '한·일 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6·3시위를 주도했다가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 유예 5년을 선고받고 6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운동권 학생이라는 이유로 취직을 할 수 없게 되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고, 결국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국영기업체나 해외유학으로 그를 회유하려 했던 정부를 향해 "한 젊은이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데, 국가가 그 길을 막는다면 국가는 젊은이에게 영원한 빚을 지는 것입니다."라고 한 이야기와 현대건설 면접에서 "건설이 뭐라고 생각하나?"라고 묻는 정주영 회장의 말에 "건설은 창조입니다."라 했던 그의 말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현대 신화 주역

현대건설에 입사한 그는 입사 5년 만에 이사, 12년 만인 77년에는 만35세의 나이에 현대건설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며 '샐러리맨의 신화'가 됐다. 당시 제1위인 삼성그룹에서는 현대의 파격적인 인사에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그는 이후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 중국의 장쩌민 주석,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 등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CEO로서 국제적인 감각을 폭 넓게 익혔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말레이시아 페낭대교(연륙교)를 건설하고, 이라크 화력발전소를 짓는 투혼을 보였다.

목숨을 걸고 현장 폭도로부터 끝까지 금고를 지켰던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사건과 80년대 군사정권에 맞서 현대자동차를 지켰던 일 등은 그를 주인공으로 했던 TV 드라마 '영웅시대'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정계 입문

1992년 이명박은 27년간의 현대 생활을 마치고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96년 15대 총선에서는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서 4선인 이종찬, 청문회스타인 노무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으며, 2002년 7월부터 4년간 민선 3기 서울시장으로서 기업에서 배운 경영 마인드를 공공 행정에 도입한 새로운 경영행정을 대도시 서울에 확립하는 데 노력했다.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했던 '청계천 복원사업',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차질없이 성공시켜 강한 추진력을 인정받았다.

대규모 개발계획이 세워져 있던 뚝섬 125만 4천㎡(38만 평)를 시민의 숲으로 만든 것도 그의 치적. 예산을 매년 8천억씩 절감해 서울시 재정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지하철 건설부채를 반으로 줄이기도 했다.

이 같은 업적으로 서울의 변화와 이명박의 리더십은 타임스, 비즈니스위크, 파이낸셜타임스 등 국제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차와 시멘트로 가득했던 서울 도심에 생명의 물길을 연 청계천복원사업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올해의 히트상품, 베니스비엔날레 최고시행자상 수상 등 국내외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는 것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명물로 발돋움했다.

서울시장 퇴임 후 2년 반 동안 여권의 온갖 음해공작과 당내 경선과정에서의 혹독한 검증을 거친 이 당선자는 이제 다시 국민 앞에 대통령으로 서게 됐다.

이상곤기자 leesk@msnet.co.kr

◇주요경력

▷경북 영일(포항) 출신 ▷포항중·동지상고·고려대·미국조지워싱턴대학 객원연구원 ▷현대건설·인천제철 등 현대 계열 10개사 대표이사 회장 ▷6·3동지회 회장 ▷14·15대 국회의원 ▷민선 3기 서울시장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사 fDi 선정 2005 올해의 인물 ▷저서:신화는 없다.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 온몸으로 부딪쳐라. 이명박의 흔들리지 않는 약속. 어머니

◇학력 사항

1954 경북 포항 영흥초등학교 졸업

1957 경북 포항중학교 졸업

1960 동지상업고등학교(야간) 졸업

1965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98 한국체육대학교 명예이학박사

1999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객원연구원

2004 서강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2004 카자흐스탄 국립유라시아대학교 명예박사

2005 몽골국립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2005 국립목포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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