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단상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의 한 장면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의 한 장면

일본 역대 흥행 1위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이번 주 한국에 상륙했다.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과 함께 한국 극장가에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소울'은 개봉 6일째인 지난 25일까지 4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모처럼만에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고, '귀멸의 칼날' 또한 높은 예매율을 기록하며 '원산지 핸디캡' 속에서도 선전을 펼치고 있다.

'귀멸의 칼날'은 지난해 일본 박스오피스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애니메이션이다. 10월 16일 개봉돼 3일 동안 342만 명이라는 놀라운 관객수를 동원했다. 개봉 10일 만에 107억 엔의 수입을 기록해 '최단기간 흥행 수입 100억 엔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일본인들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들의 놀라운 애정은 역대 흥행기록에서 잘 드러난다. 애니메이션과 극영화를 통틀어 일본의 역대 영화 흥행 1위는 항상 애니메이션이었다. 19년 동안 흥행 1위를 지킨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이를 깬 것이 '귀멸의 칼날'이다. 지난해 말 최고 흥행 타이틀을 개봉 73일 만에 갱신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 장면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 장면

역대 흥행 10위 안에 든 영화 중에도 애니메이션은 6편이나 된다. '겨울왕국'(4위), '너의 이름은'(5위), '원령공주'(7위), '하울의 움직이는 성'(8위)이다. 그밖에는 '타이타닉'(3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6위),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10위)이 있고, 일본 극영화는 '춤추는 대수사선'(2003)이 9위에 유일하게 랭크돼 있다.

애니메이션 외의 작품들도 대부분 만화적인 상상력의 영화이고, '춤추는 대수사선' 또한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것이어서 일본 극영화의 대참사는 흥행순위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래서 '일본영화는 곧 애니메이션'이라는 등식이 고정화됐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미국 등에서 개봉된 일본영화 톱10도 대부분 애니메이션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너의 이름은'(2017),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역대 일본영화 흥행 1, 2, 3위다.

중국 또한 톱10이 모두 일본 애니메이션이고,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색적인 것은 중국은 '도라에몽' 시리즈가, 미국에서는 '포켓몬스터' 시리즈와 '드래곤볼' 등이 포진해 있어 일본과 차이를 두고 있다. 애니메이션이 어린이용 콘텐츠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한 장면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한 장면

일본 애니메이션이 처음 등장한 것은 50년 전이다. 일본 최초의 TV 애니메이션 '우주소년 아톰'(1963), '은하철도 999'(1978) 등이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당시 TV물을 보면서 자란 인물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이끈 선두주자들이었다. 오토모 카츠히로('아키라'), 오시이 마모루('공각기동대'), 안노 히데아키('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이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각광받은 것은 아니었다.

'오타쿠'는 1970년대 만들어진 용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에 심취해 사회와 담을 쌓고 살아가는 폐쇄적인 젊은이들을 일컬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들이 문제화되기도 했다. 일본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간주됐다. 그러나 그들이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을 전 세계에 알리는 주역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50년 남짓한 세월 동안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은 이제 일본이 자랑하는 유일한 콘텐츠가 됐다. 일본 극영화는 참혹한 수준에 이르렀다. 과거 오즈 야스지로가 '동경이야기'(1953)에 담았던 소시민의 담백한 삶이나, 구로자와 아키라가 '카게무샤'(1980)에 담았던 웅장한 서사에 화려한 미장센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로맨스는 야단스럽고, 액션은 기괴하며, 서사는 경박한 영화들만 만들어내는 '하류' 영화의 고장이 되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의 한 장면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의 한 장면

극영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2018)이다. 사소한 좀도둑질로 살아가는 도쿄 변두리의 이색 가족을 그린 영화로 2018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그가 수상 후 귀국했을 때 공항에는 그 어떤 환영 인파도 없었다. 일본의 어두운 이면을 세계에 알린 파렴치한 감독이 돼 있었던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을 때 전 국민이 환호하고, 공항이 환영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 것과 대조적이다. '기생충' 또한 반지하 가족을 통해 한국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직접적으로 다뤘다.

이 일화는 현재 일본의 문화콘텐츠가 고립되고, 고사(枯死)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한때 백안시했던 젊은이들이 만든 일본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만화같은 환상에 경도된 그들의 문화적 취향이 일본 역사상 최고의 흥행영화 '귀멸의 칼날'에 담겨 있는 것이다.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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