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전쟁의 광기 솜씨 좋게 풍자…영화 '조조 래빗'

비극 속 피어나는 순수성, 상징적으로 그려내

영화 '조조래빗' 스틸컷. 영화 '조조래빗' 스틸컷.

전쟁의 광기는 항상 인간이 중요하다고 여기던 것들을 먹이로 한다.

사랑과 행복, 자유 등을 먹고 분노와 고통, 증오를 토해낸다. 전쟁은 인간성이 말살될 쯤에야 끝이 나곤 했다.

특히 2차 대전 중 나치가 그랬다. '하일 히틀러'와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는 다시 떠올리기 싫은 인류의 공통된 기억이다.

영화 '조조 래빗'(감독 타이카 와이티티)은 오히려 이를 전면에 드러낸다. '헬로우'처럼 '하일 히틀러'로 인사하고, 주인공 꼬마는 히틀러를 상상의 친구로 삼으며 그를 추종한다. 그러나 표정만 그럴 뿐 영화의 속내는 전쟁의 광기를 솜씨 좋게 비틀어 풍자하고, 비극을 유쾌한 성장판으로 풀어냈다.

2차 대전 말 독일. 10살 소년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와 단 둘이 살고 있다. 나치의 상징에 푹 빠진 조조는 그토록 고대하던 독일 소년단에 입단하지만 '겁쟁이 토끼 조조'(조조 래빗)로 놀림을 받는다.

영화 '조조래빗' 스틸컷. 영화 '조조래빗' 스틸컷.

그의 유일한 친구는 상상 속의 히틀러. 그는 토끼도 죽이지 못하는 조조를 위로하며 독일의 병사가 되고픈 그의 꿈을 응원한다. 어느 날 자신의 집에 몰래 숨어 있는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를 만나면서 그의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조조 래빗'은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영화다.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가 파시즘에 맞선 풍자의 코미디이고, '인생은 아름다워'가 비극의 우물 속에서 건져 올린 긍정 우화라면, '조조 래빗'은 혐오의 시대에 엄마와 그린 앨범 속 동화 같은 영화다.

'토르:라그나로크'(2017)를 연출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어릴 적 읽은 크리스틴 뢰넨스의 소설 '갇힌 하늘'을 각색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유대인 혼혈인 그는 극중 히틀러를 직접 연기했다.

'조조 래빗'은 발랄하며 생기 넘치는 영화다. 각각의 에피소드도 경쾌하지만 화면의 색감도 밝다.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던 게슈타포마저 유쾌하게 그려낸다. 엄마의 구두와 모자, 정겨운 골목, 집안의 아기자기한 소품도 전쟁의 소용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전쟁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10살 소년 조조의 눈으로 본 세상이기 때문이다.

영화 도입부 독일 청소년들이 히틀러에 열광하는 장면에 비틀즈의 'I Want to Hold Your Hand'가 흐른다.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내지르는 손들을 배경으로, 그들의 손을 잡아주지 못한 시대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영화 '조조래빗' 스틸컷. 영화 '조조래빗' 스틸컷.

광기가 세뇌한 동심은 전쟁의 부속품으로 내몰린다. 그러나 엄마 로지는 그런 조조를 이해하면서 정성스럽게 다독인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사랑이야', '항상 로맨스가 필요하지', '전쟁이 끝나면 춤을 출거야'. 조조와 자전거를 타고 가던 엄마는 독일군 부상병들에게도 '이제 엄마가 있는 집으로 가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 모든 추악함을 알지만, 그것을 모두 소화해 밝게 만들어버리는 장미같은 존재다.

엄마와 함께 조조의 성장판을 연 것은 유대인 소녀 엘사다. 유대인은 뿔이 달린 괴물이라고 교육받은 조조의 앞에 엘사는 마음을 뒤흔드는 생명체인 것이다. 가짜 편지와 그림들로 소통하면서 처음으로 로맨스가 찾아온다.

'조조 래빗'은 비극 속에서 피어나는 순수성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영화다. 어떤 고통 속에서도 버릴 수 없는 것이 휴머니티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 '조조래빗' 스틸컷. 영화 '조조래빗' 스틸컷.

'조조 래빗'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기생충'과 함께 작품상, 미술상, 편집상 후보에 올랐고, 여우조연상과 각색상, 의상상에도 이름을 올렸다. 스칼렛 요한슨은 '결혼이야기'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같은 해 두 영화로 연기상 후보에 올라 이목을 끈다.

특히 이 영화에서 스칼렛 요한슨의 매력이 한껏 돋보인다. '쓰리 빌보드'(2017)의 샘 록웰도 소년단을 이끄는 장교로 나와 광기나는 연기를 보여준다. 괴팍하고 수다스러운 캐릭터지만, 조조를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는 어른으로 나온다.

1천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조조 역에 캐스팅된 아역 배우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어린 조조의 섬세한 감정을 잘 표현했고, 조조의 친구 요키역의 아치 예이츠는 귀여운 외모로 등장할 때 마다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조조 래빗'은 온기 가득한 영화다. '그럼에도 지속되는' 우리 삶을 춤추게 만드는 영화다. 108분. 12세 이상 관람가. 2월 5일 개봉 예정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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