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봉오동 전투' 등장 '홍범도' 누구? "맡은 배우는 '명량'이 힌트"

독립운동가 홍범도. 영화 '봉오동 전투'에 짤막하게 등장한다. 사진 속 의상의 극중 재현이 제법 잘 됐다는 평가다. 매일신문DB 독립운동가 홍범도. 영화 '봉오동 전투'에 짤막하게 등장한다. 사진 속 의상의 극중 재현이 제법 잘 됐다는 평가다. 매일신문DB

독립운동가 홍범도(1868~1943)가 요즘 화제다.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봉오동 전투'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 영화에 짤막하게 등장하는 홍범도가 관심을 얻고 있다.

영화 홍보에서, 또한 실제 영화 속에서도 주인공은 홍범도가 아닌 무명의 독립군, 민초들이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 절정으로 치솟은 직후의 흐름에서 봉오동 전투의 틀을 짠 홍범도의 등장이 관객들에게 큰 감흥을 준다는 평가다. 즉, 이 영화의 말미만큼은 홍범도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스포일러라서 밝힐 수 없지만, 맡은 배우는 이 영화 제작자로 나선 김한민 감독의 전작 '명량'과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홍범도는 평양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머슴이었던 아버지는 홍범도가 9세 때 사망했다. 이후 자신도 홀로 머슴살이를 했다.

그러다 10대 때 금강산 신계사로 출가를 하기도 했고 사냥꾼 생활도 하다가 1895년 을미의병을 계기도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잠시 동안 다시 포수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1907년 고종의 퇴위 및 군대 해산을 계기로 동료 포수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의병 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1911년 다른 국내 무장 독립 투쟁 단체들이 그랬듯이 홍범도도 연해주로 떠나 독립군으로 나섰다. 이때 홍범도의 나이 43세였다. 지난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대중에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한 '의병→독립군'의 전형이다.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전투를 벌이며 이름을 알린 홍범도는 1920년 여러 무장 독립 투쟁 단체가 연합한 대한북로군독부 예하 북로 제1군 사령부장으로 선출됐다.

이어 같은 해 6월 7일 중국 지린성 왕친현 소재 봉오동에서 '봉오동 전투'를 치렀다. 대한독립군(홍범도), 국민회군(안무), 군무도독부(최진동)가 연합한 대한북로독군부와 대한신민단 독립군 연합 부대(한경세) 등 모두 4개 독립군 부대가 일본에 큰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상대는 야스카와 지로 소좌가 이끈 일본군 제19사단 월강추격대대였다.

봉오동 전투는 만주에서 독립군과 일본군이 벌인 최초의 대규모 전투이다. 이는 1920년대에 독립군의 대 일본 전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다. 4개월 뒤 벌어진 '청산리 전투'와 함께 묶어 거론할 수 있다. 청산리 전투가 김좌진(1889~1930)의 공적으로 잘 알려져 있긴 한데, 이 전투에 홍범도 부대 역시 참여해 활약한 사실이 눈길을 끈다. 즉,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홍범도의 지분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봉오동 전투(우측 상단) 및 청산리 전투(좌측 하단) 관련 지도. 두산백과 봉오동 전투(우측 상단) 및 청산리 전투(좌측 하단) 관련 지도. 두산백과

이후 소련의 지원을 받고 소련군에 속하기도 했던 홍범도의 독립군은 일본군의 연해주 철수를 조건으로 강제로 해산되는 아픔도 겪었다. 결국 소련 내 고려인의 삶을 살던 홍범도는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76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광복 불과 2년 전이었다.

홍범도에게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영화 봉오동 전투의 개봉에 앞서 올해 오랜만에 홍범도 관련 뉴스가 나온 바 있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카자흐스탄 방문 후 유해 송환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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