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시와 함께] 상표, 상표

상표, 상표

 

엄재국(1960~ )

 

 

검은 양말의 상표 같은 달이 뜬다

루이뷔똥, 구찌, 입생, 프라다……

진짜보다 가짜가 밝은

세상에 붙이는 밤의 상표

 

오랜 세월 달빛으로 살았다

어둠이 달을 상표 붙이지 않았다면

나는 밤을 몰랐겠다

아니

밤을 알고도 어둠을 샀는지 모르겠다

달빛이 던져주는 야릇한 어둠의 세상

그 완제품의 밤

 

그동안 소비한 달빛이 참 많습니다

벌레의 몸으로

장수하늘소의 이름으로 살았던 밤이 깊고

달빛의 양말을 신고 마을을 누볐습니다

달이, 구멍난 양말의 발가락처럼 떠오릅니다

 

 

최근에 제가 사는 도시 외곽에 '세계 명품'을 파는 부스가 마련된다는 광고지가 막 나붙기 시작했습니다. '루이뷔똥. 구찌, 입생, 프라다……' 어렵지 않게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상표들입니다. 가보나마나 그 '세계 명품들'은 진짜가 아니라 짜가. 도대체 가짜인 줄을 빤히 알면서도 그것을 구매하려는 욕구는 무엇일까요?

이 시는, '진짜보다 가짜가 더 밝은/ 세상에 붙이는 밤의 상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검은 양말의 상표 같은 달'이라니, 허허 자본주의가 어느새 저 하늘까지 올라간 모양입니다. 내처 문명비판으로 달릴 줄 알았더니, 그러나 이 시는, 아닙니다, '달빛으로 살았'던 날들을 이야기하네요. '그동안 소비한 달빛이 참 많'았던 걸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양말이 구멍나 발가락이 달처럼 떠오를 정도로 누비고 다녔다면 알 만합니다. 우리네 장삼이사들이 다 그러하지만 시인도 젊어서는 적잖이 '야릇한 어둠의 세상/ 그 완제품의 밤'들을 쫓아다녔던 모양입니다. 가짜 명품을 입고 가짜 명품을 신고……. 그래요. 젊어서는 누구나 다 그렇지요. 대책이 없고, 그냥 재밌고 달콤한 게 좋고 그렇지요. 그것이 젊음의 특징이지요. 후회보다는 문득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건 또 왜일까요?

 

 

시인 유홍준: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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