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열망']⑥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다행히 고아였던 안재민은 가족이라는 부담감은 없었던 터라 오로지 그녀에게 전부를 쏟았다. 그러나 지화영은 안재민과 동거생활을 하면서도 늘 가슴속에 다른 남자를 품고 좀 더 나은 사람 많이 배우고 물질적으로 풍족한 배우자를 원하며 끝없는 갈망의 늪을 헤맸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자 안재민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대학선배인 남자친구와 과감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말았다. 안재민은 소식을 듣자마자 기겁을 하고 달려가 울며 자신에게 돌아와 줄 것을 호소하고 매달렸지만 지화영은 냉정하게 그를 뿌리쳤다.

 

"왜 이래! 우리인연은 여기까지야. 난 가난도 싫고 비전 없는 당신도 싫어. 머릿속이 텅 빈 사람 평생 뭘 보고 따라 살아? 지긋지긋해. 먹고 자고 싸고 오직 동물적 본능만 충족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비정하고 매정한 그녀의 독언에 안재민은 당장의 감정대로라면 비수를 뽑아들어 목을 찔러버리고 싶었지만 너무도 사랑했던 그녀였기에 찢어지는 가슴을 끌어안고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서러움과 배반감에 치를 떨던 그가 겨우 선택한 마지막 방법은 목을 매달아 죽는 길 뿐이었던 거 같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을 결심한 그날 밤 그는 먼 하늘을 우러러 마치 황소 같은 울음을 토해냈다. 7년, 적잖은 세월을 오로지 한 여자를 향한 일편단심으로 더위와 추위를 잊고 살아왔던 그, 서글픔의 끝은 참으로 비참한 것이었다. 이승을 하직하지 않고는 도저히 지울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순정의 사나이 안재민, 그는 이 세상의 모든 나머지 희망과 꿈을 접은 채 그렇듯 세상을 떠나고만 것이다. 도대체 그의 마음속에 그 여자는 무슨 존재였을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보다 더 휘황찬란한 빛이라고 그는 가끔 말하곤 했다.

"그러므로 키워서 잡아먹는다?" 누군가 동료공원이 비아냥거릴 때면 그는 만면에 웃음기를 머금고 "벌써 먹힌걸, 뭐." 하며 수줍은 낯빛을 드러내 보이곤 했던 것이다.

"좋겠다, 영계하고 살아."

동료공원들의 장난기는 계속됐고 안재민은 그럴 때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히죽히죽 웃으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고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며 만족한 표정을 남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여자 지화영은 자신의 남자 안재민의 죽음에도 눈썹하나 까딱 않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또 다른 남자에게로 날아가 버렸다.

"나쁜 년, 지극정성 뒷바라지했건만 개죽 쒀서 남 준 꼴이지 뭐야.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배신을 해. 에이, 벼락 맞을 년."

"그러게.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하긴 착한 게 탈이지. 적당하게 가르쳐놨으면 그럴 리 있어. 말이 있잖아. 끼리끼리 산다고. 분수

에 넘치면 화를 부르는 거야. 무슨 득을 보겠다고 먹을 거 못 먹고 입을 거 입지 않고 그리도 열심히 뒷바라지하더니만 결국 낙동강 오리알 되고 말았네. 어디 그뿐이야? 하나밖에 없는 목숨 끊어버리면 자기만 손해지 뭐겠어. 그 여자는 이제 두 다리 쭉 뻗고 살게 됐으니 좀 좋겠어, 끙."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그 여자 지화영에 대한 욕지거리가 여러 사람의 입줄에 오르내리며 공장안은 한동안 술렁거렸다. 안재민은 오랫동안 공장에 근무하면서도 돈벌이에만 열중했지 공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까막눈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그는 글에 대한 열망이 전혀 없었다. 언제나 상대가 자신보다 많이 배우면 된다는 소박한 심성으로 그녀 지화영을 위해 불철주야 야근을 해가며 돈을 버는 일에만 열중했다. 돈은 남의 손에 있으면 소용없다. 배움도 남의 머릿속에 든 건 무용지물인 셈이다. 내 손에 내 머리에 있는 것만이 결국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보다 소중한 그 여자 지화영에게 모든 걸 다 바쳐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 모든 게 어느 날인가는 자신의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착각의 기대 속에서.

그의 시신이 수습되고 뒷동네 야산에 묻어졌다. 슬퍼해줄 가족도 친구들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가까이 지내던 동료 몇 명과 야학생들이 그의 상여를 따랐을 뿐이다. 상여라기보다 손수레에 불과한 초라한 행렬, 곡소리도 묘한 분위기의 서글픈 그의 마지막 길, 하늘은 높은 곳에서 음울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학 교사들의 열정은 대단했다. 집안이 가난해 배움의 시기를 놓치고 어렵고 힘든 공장생활을 하며 돈벌이에 나선 어린 공원들의 머리를 깨우쳐주기 위해 그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앞장섰다. 배움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먹고 자고 싸는 행위만을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무지한 공원들이 부지기수인 공장 내 분위기는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배고픈 게 우선이지 배워서 뭘 해. 공부가 밥 먹여줘? 배부르니 다 하는 짓이야. 난 돈 많이 벌어 반드시 성공하고 말거야."

"맞아. 배고픈데 공부가 머리에 들어와? 나도 열심히 일하고 돈이나 벌래."

"돈만 많음 뭘 해. 머릿속이 텅 빈 상태에서 배만 부르면 장땡인감. 난 늦었지만 배우고 싶어. 머리에 든 게 있어야 어디서든 큰소리칠 수 있을 거라 여기니까. 그리고 친구들 모두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얼마나 가슴 치며 가난을 원망했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 왜 우리 집은 가난할까, 돈이 없는 걸까, 울기도 많이 울었지. 헌데 이런 좋은 기회가 왔는데 배우지 않겠다고? 돈만 많이 벌어 부자로 살겠다고? 그런 생각 사고가 바로 배워야하는 이유야. 배우지 않으면 평생 판단능력이 부족해 짐승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래도 그 중 머리에 조금 먹물이 든 공원 한명이 앞장서 공원들을 설득하는데 힘을 보탰다. 서강우는 거기에 힘입어 더욱 목소리를 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반드시 배워야합니다. 배우지 않으면 짐승이나 다를 바 없게 됩니다. 아는 것은 힘입니다. 돈이 제아무리 많아도 머리가 비어있으면 아무 소용도 없을 겁니다. 여러분, 조금 힘들고 고달파도 시간을 쪼개 배움의 터전으로 나오십시오. 그 길만이 살길이라고 여긴다면 여러분은 후일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배를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머리를 채우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깊이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서강우는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공원들을 설득하기에 있는 힘을 다 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너무도 배가 고파 고통 받았다는 일부 공원들은 듣는 둥 마는 둥 관심도 두지 않고 등을 돌렸고 그 외의 또 다른 일부 공원들은 배움의 중요성 보다는 남들이 하니까, 라는 식으로 야학교를 들락거렸으며 또 어느 공원은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목말랐던 그동안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적극 야학을 지지하기도 했다. 나도 그 중 한사람으로 때로는 감독으로부터 야단도 맞고 주제파악을 못한다는 소리도 들으면서도 단 하루 빠지지 않고 야학교를 드나들었다. 오직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여겼기에.(3월6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열망'7회가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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