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작]④김영숙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역무실 직원은 나를 겁 반 설득 반 그리고 타이름 반 등을 몇 번이고 했다. 나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막무가내 떼를 썼다. 역무실 직원은 나를 마치 말릴 수 없는 문제아로 보는 듯했다. 비웃음 섞인 어투로 계속 비아냥거리며 콧노래마저 부르고 있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 울었다. 도무지 내 진심이 통하지 않는다. 어떤 말을 해도 믿어주지도 않는다. 그것은 내가 맨 처음 자의로 인해 부닥친 세상의 커다란 벽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지만 도저히 그곳을 빠져나올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심란하고 두려움이 쌓여갔다. 만약 이대로 돌려보내진다면 나는 아마도 당숙모의 손에 맞아죽거나 반병신이 될지도 모른다. 아님 병신한테 시집을 가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일순 정신이 아득해왔다. 하행 기차시간을 알아본다며 잠시 역무실 직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움직여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됐다. 나는 정신없이 넓은 거리를 지나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하늘이 노랗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맑고 아름다워 보이던 하늘빛이 갑자기 엉뚱한 색깔로 변해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무작정 어딘가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내가 처음 접한 세상엔 좋은 사람만 있는 것도 나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섭고 두렵기 한량없는 세상이긴 했지만 그런 대로 어우러져 돌아가는 양이 한번쯤 용기를 안고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됐다. 어디쯤일까.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온다. 중년의 남자였다. 나는 움찔 몸을 사렸다. 곧바로 남자의 목소리가 내 두 귀로 흘러들었다.

"학생이니?"

나는 대답 대신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 남자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 보였다.

"갈 곳은 있어?"

또다시 묻는 남자를 향해 나는 웬 간섭이냐는 투로

"그건 왜 물어요!"

하고 짜증 섞인 대꾸를 했다. 남자가 내 말 끝에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나는 잠시 황당해졌다. 큰소리는 쳤지만 사실 갈 곳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도움받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손 내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큰 숨을 뱉어내는 내 손목을 덥석 잡아 쥔 남자가 이내

"따라와."

하고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점점 날은 어두워지고 갈 곳은 없고 어쩔 수 없이 나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의 손에 끌려 자포하는 심정으로 발길을 뗐다. 다행히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내 어려운 처지를 자세히 들어주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해주는 듯싶었다.

"듣고 보니 참 딱하구나. 얼마나 어려웠으면 야밤에 도망을 쳤을까. 이제 아무 걱정 말아라. 내가 내일 날이 밝으면 네 취직 자리를 알아봐줄 테니."

"감사합니다, 아저씨."

나는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거푸 고개를 수그려 보이며 눈물을 글썽였다. 함께 마주 앉은 초라한 식당 한곳에서 퉁퉁 불어있는 국수를 목구멍으로 넘기며 나는 가슴속에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을 야무지게 꾸고 있었다.

중년 남자 덕분에 나는 그 며칠 후 가발공장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세상엔 공짜가 없었다. 그는 계속 월급 때만 되면 찾아와 내 월급의 절반 이상을 갈취해갔다.

"그것도 주기 싫은 거야? 은혜를 알아야지. 창녀촌에 팔아넘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알아. 똥 누러 갈 때와 누고 난 다음이 다르다더니 아까운 모양이지. 쳇!"

선뜻 주지 않고 우물쭈물하는 나를 못마땅해하며 그는 항상 상을 찌푸리고 돈을 받아 쥔 다음 등을 돌리곤 했다. 나는 아까운 생각에 한숨이 저절로 쏟아져 나왔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한 달 내내 밤잠을 설치며 일해 번 돈이다. 하지만 나는 당연하다고 여기고 매월 그에게 월급의 상당 부분을 상납하곤 했다. 처음 그토록 온화하고 따뜻해 보이던 그가 어느 순간 돌변해 이중인격을 드러내 보일 때 나는 황당한 생각에 할 말을 잃었다. 물질 앞에서는 인간성도 도덕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 나는 그때부터 마음 안에 사람에 대한 묘한 불신이 자리하게 됐던 거 같다. 누구도 선뜻 믿지 않고 먼저 다가가지 않는 내 행동을 동료들은 뒤에서 수근덕대며 흉보곤 했지만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저 묵묵히 내 갈 길을 갈 따름이었다. 때로는 삶이 뭔지 괴롭고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 가슴 안엔 아직도 식지 않은 평생 소원인 배움의 열망이 꿈틀거리고 있었기에 결코 쉽게 포기하고 좌절할 수만은 없었던 까닭이다.

4. 희망의 터널

공장의 밤은 깊어갔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직 어린 일명 공순이들은 가슴속에 각 자의 꿈을 품고 희망을 노래하며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일부 집이 가까운 여공들은 출퇴근을 했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여공들은 거의 모두 비좁은 공간의 기숙사에서 몸을 사리고 잠들기 일쑤였다. 어쨌든 여공들은 이처럼 제대로 된 처우조차 받지 못한 채 그래도 어떻게든 견뎌보려 노력하는 듯 보였다. 나도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피곤한 몸을 눕혔다. 물이 줄줄 샌 벽지가 온통 곰팡이로 뒤덮여 까맣다. 금방이라도 벽 사이사이에서 벌레가 기어 나올 듯싶은 불안함 때문에 눈은 감았지만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잠자리도 눅눅하다. 더욱이 한여름인 탓에 시큼 한 땀 냄새가 유독 풍겨왔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공순이들의 얼굴은 부석부석 고달픈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1평 남짓한 협소한 공간, 그곳에 10명도 넘는 여공들은 몸을 사리고 꿈의 세계를 떠돌며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일에 대한 희망, 오늘보다 나은 생활여건과 자신의 미래, 아마도 이런 소망들을 가졌기에 가끔은 평온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단잠의 나라에 가있는지도 모른다. 숨소리가 쌔근쌔근 들려온다. 작은 창문이라도 있다면 고운 달빛이나마 새어들어 아직 어린 여공들의 몸 위에 흩뿌리련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은 여건이었기에 높은 천정에 매달려있는 희미한 백열등에 모든 걸 내맡긴 채 그렇게 밤은 어둠을 뚫고 새벽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른 새벽, 기지개를 켰지만 영 몸이 개운하지 않다. 아직 잠이 덜 깬 어느 여공은 하품을 간간이 하며 방을 빠져나갔고 그 뒤를 이어 줄줄이 각자의 소지품에서 수건 하나씩을 꺼내든 채 내 시야에서 모습을 감춰갔다.

(2월19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인 '열망' 5회가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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