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열망']①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1. 어린 시절

교실 복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위로 번쩍 들고 있는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급우들은 모두 중학교에 간다고 마음이 들떠 너도나도 얼굴을 마주보며 재잘거렸고 나와 가장 친한 성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너 또 월사금 못 냈어?"

 

"그래서 벌서는 거야?"

 

내 곁을 스쳐 지나며 한마디씩 던지는 말들이 내 심장을 찔렀다. 돈이 없어 월사금을 못낸 건데 그게 무슨 죄가 된다고 벌을 서야하는가. 내 마음 안에서 알 수 없는 불만이 한없이 쏟아져 나왔다. 아직 어린 초등학교 6학년이었지만 묘한 자존심에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하굣길에 나는 졸졸 흘러내리는 개울물에 연신 두 손을 적셔 눈물을 닦아냈다. 마음한구석이 아릿하고 아파왔다. 우리 집은 왜 가난할까. 뭣 땜에 돈이 없는 걸까.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봐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긴 친구인 성자네도 잘 사는 건 아니다. 어느 때는 초근목피로 끼니를 때우는 때가 허다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헌데도 성자 아버지 어머니는 죽을 힘을 다해 자식들을 공부시키려 노력하는 거 같다.

 

"사람은 배워야해. 그렇지 않음 짐승과 다를 바 없지. 한 끼 굶어도 머릿속에 먹물을 넣어야지 어디 배만 부르면 되는감."

 

늘 성자아버지는 이렇듯 말하곤 했다.

 

"암요. 배워야 사람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법이지요. 성자 너도 아버지 말

 

1

씀 명심하고 새겨듣도록 해. 배움이 적으면 나중에 똥지게 꾼한테 시집가게 될 테니 그리 알고."

 

성자어머니도 한몫 거들며 힘을 보탰다. 나는 아침 등굣길에 성자와 나란히 길을 걸으며 마음속으로 성자가 무척 부러울 뿐이었다. 사실 성자는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어리숙한 편이었다. 하지만 부모를 잘 만나 얼마 후면 중학교에 입학한다. 이 생각에 머물자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길가의 돌멩이를 확 걷어찼다. 돌멩이는 저만큼 멀리 굴러갔지만 내 발가락은 몹시 아팠다.

 

"나도 중학교 보내줘!"

 

집으로 들어서자 나는 대뜸 어머니 앞으로 달려가 목소리를 냈다. 어머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도 중학교에 가고 싶단 말이야!"

 

연이어지는 내 목소리에 어머니가 그때야 반응을 보였다.

 

"이 가시나가 미쳤나?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겨? 먹고 살기도 바듯한데, 그딴 소리 하려거든 일이나 해!"

 

내 등짝을 탁 소리가 나도록 때리며 어머니는 두 눈을 부라렸다.

 

"일만하면 장땡인감. 성자아버지는 사람은 모름지기 배워야 한다는데."

 

"그럼 성자네로 가 살던지. 우린 가난해서 월사금 낼 돈 없으니까."

 

계속 두런거리는 내 등 뒤에서 어머니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책보자기를 마루에 휙 집어던지고 잽싸게 어머니의 눈앞을 벗어났다. 자칫 머뭇거렸단 또 어머니의 매서운 손길이 내 등을 때릴 게 빤하기 때문이었다. 뒤꼍에 앉아 하염없이 감나무를 바라보며 눈물지었다. 감은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잎사귀만 새파랗게 매달려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반드

 

2

시 배울 것이다. 그래서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는 뒷마당에 쌓여있는 모래를 한줌 집어 닭들을 향해 홱 뿌렸다. 닭들은 허겁지겁 달려들어 연신 부리로 쪼아 먹는다. 먹을 것밖에 모르는 짐승들이다. 머릿속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고 오로지 뱃속만 채우는 실속 없는 짐승들, 마땅히 사람과는 구별됨이 옳지 않겠는가. 나는 조금 배고프고 헐벗더라도 머릿속을 채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리라, 굳은 결심이 내 가슴을 깊이 파고들었다.

 

들녘의 파릇한 풀밭에 앉아 영어 단어를 외우고 냇가에서 빨래를 하며 친구 성자가 알려준 한 글자 한 글자를 머릿속으로 더듬적거리며 읽어 내렸다. 성자는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로 우리 바로 옆집에 살았다. 성자네도 우리 집과 비슷한 처지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살았지만 아버지가 교육열이 남달랐던 탓에 늘 배움을 중요시하며 딸이지만 편견 없이 공부를 시켰다. 나는 성자가 너무도 부럽고 인간답게 사는 거 같아 가끔 비교해보며 눈물짓곤 했다.

 

"넌 좋겠다. 중학교에 다닐 수 있어."

 

"너도 배워. 내가 가르쳐 줄게."

 

이렇게 시작된 내 공부는 식을 줄 모르고 끊임없이 계속됐다. 밤마다 몰래 집을 빠져나가 성자네 집 호롱불아래서 나는 성자로부터 영어와 수학공식을 깨우치기에 이르렀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때 내 선생님이었던 성자는 공부를 더 많이 하겠노라 도회지로 나갔고 결국 선생이 됐다는 후문을 들었다. 그러므로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남녀불문하고 사람은 배워야한다는 거, 배우지 않고는 가난도 결코 벗어날 수 없고 어두운 길을 끝없이 헤매며 걸어야한다는 사실, 나는 일찍이 깨닫고 그 길을 선택했던 사람 중 한명이 됐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 매달렸다. 어느 때는 학교 교실 유리창 밖에서 또 어느 날은 개울을 건너며 중얼거렸던 글자들을 나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손가락으로 때로는 나무막대기나 돌멩이로 쓰고 지우고 또 쓰기를 반복하곤 했다.

<1월22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인 '열망' 2회가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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