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er Script [흥] 반나절이면 충분, 대구 중구 '5분 거리 산책 기행'

[흥] 반나절이면 충분, 대구 중구 '5분 거리 산책 기행'

비, 추위, 미세먼지에도 문제없어
근대골목투어 코스와 일부 겹쳐
대구사람도 잘 몰랐던 도심 속 여유공간

미세먼지라 곤란하고, 비오는 날이어서 불편하고, 겨울 추위가 코앞이라 바깥 활동에 몸서리친다면 대구 중구 '산책기행'에 나서보자. 박물관(근대역사박물관, 기술예술융합소), 미술관(대구예술발전소, 수창청춘맨숀), 문화관(대구문학관, 향촌문화관)이 걸어서 5분 안팎의 거리에 몰려들 있다.

향촌동은 읍성이 허물어지고 신작로가 생기면서 근대 대구의 중심지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근대 대구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있는 향촌문화관에서 대만인 관광객이 국내 최초로 대구에서 도입해 운행한 시내버스인 부영버스를 관람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향촌동은 읍성이 허물어지고 신작로가 생기면서 근대 대구의 중심지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근대 대구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있는 향촌문화관에서 대만인 관광객이 국내 최초로 대구에서 도입해 운행한 시내버스인 부영버스를 관람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5분 거리지만 지난 100년의 대구를 따라 움직인다. 어디를 걷든 제각기 이야기 하나씩을 가졌다. 그러고보니 대구근대골목투어 코스와 일부 겹친다. 날씨가 궂어도 큰 무리가 없다는 근대골목투어 홍보 문구가 이해되고도 남는다.

근대골목투어 2코스 종점 부근인 약령시장에서 시작해 대구 중구 실내관광 투어에 나섰다. 5분 안팎의 이동 시간도 지루하지 않다. 역사의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음미하노라면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반나절이면 충분한, 걸으며 즐기는 산책기행이다. 운동 효과는 덤이다. 출발지였던 약전골목으로 돌아왔더니 허벅지가 뻐근해온다. 만보기를 보니 1만 보를 살짝 넘었다.

 

향촌동은 문화예술인들이 피란살이의 고단한 심사를 달래며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쏟았던 곳이다.향촌문화관 2층에는 당시의 주점을 재현해놓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향촌동은 문화예술인들이 피란살이의 고단한 심사를 달래며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쏟았던 곳이다.향촌문화관 2층에는 당시의 주점을 재현해놓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향촌문화관, 대구문학관 그리고 녹향

산책기행 장소 중 유일하게 입장료가 있는 향촌문화관이다. 1천원이다. 1천원으로 향촌문화관, 대구문학관, 그리고 지하의 녹향까지 이용할 수 있다. 본전은 빼고도 남는다. 콘텐츠 구비가 그만큼 잘 됐기 때문이다.

향촌문화관에서는 해방 이후 모습들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 공통의 이야기다. 대구 향촌동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것뿐이다. 1960, 70년대 시가지의 재현이 인기 공간이다. 비단 대구만의 모습으로 치부할 수 없어 공감대 형성도 쉽다.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를 모티브로 추억의 시간여행 공간을 만들어놓은, 군위 화본역 인근 옛 산성중학교와 비슷하다.

평일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눈에 띈다. 간단한 인터뷰를 위해 3명에게 말을 걸었더니 모두 대만 관광객이다. 우연치고는 신기해 물었더니 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구를 많이 소개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만인 관광객이 향촌문화관에서 셀카로 추억을 담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대만인 관광객이 향촌문화관에서 셀카로 추억을 담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실제 대구시는 2016년 대만의 TV여행프로그램 '완락지(玩樂誌)'에, 올 초에는 '여행응원단(旅行應援團)'에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인지도를 높이는 중이었다. 향촌문화관을 대만의 방송이 어떻게 소개했을까 궁금했다. 전형적인 한국의 근현대사인데 이걸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해서였다. 결론은 '여행자들의 창조적 자립 여행에 박수를'이었다. 이 빵, 저 빵 다 챙겨먹고 따로국밥 먹는 장면까지는 나왔으나 '향촌문화관'은 결코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구문학관에는 일제 강점기에 시(詩)로써 저항하고 소설로써 민족혼을 불지펴온 문단의 선각자들과 전후문학들을 만날수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대구문학관에는 일제 강점기에 시(詩)로써 저항하고 소설로써 민족혼을 불지펴온 문단의 선각자들과 전후문학들을 만날수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3층에서 시작되는 문학관은 대구경북 출신 작가들의 기록과 기억의 집합소다. 4층엔 도서관도 있다. 책에 손때가 거의 없다. 가까이 가니 새 책 냄새가 아직 난다. 그 자리에서 보는 것만 가능하다.

지하 음악감상실 녹향으로 간다. 기도를 올리듯 나이 지긋한 여성 두 명이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있다. 클래식 음악이 한창 흐르는 중이다. 필시 음악을 감상하는 중일 것일 테지만 음악감상실 테이블이 교회의 그것과 흡사해 마치 기도하는 느낌이다.

 

1932년 조선식산은행 건물인 대구근대역사관에는 조선식산은행실이 마련돼 근대 화폐와 주산 등을 만날수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1932년 조선식산은행 건물인 대구근대역사관에는 조선식산은행실이 마련돼 근대 화폐와 주산 등을 만날수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근대역사박물관, 기술예술융합소

어르신들의 해방구 옛 무궁화백화점을 지나 경상감영공원을 거치면 근대역사박물관이 나온다. 중부경찰서 옆 유럽풍 건물이라고 하면 '거기 안다'며 웬만큼 고개를 끄덕이는 그곳이다.

실제로 근대역사박물관은 세대별로 다르게 기억되는 공간이다. 20대 안팎에겐 근대역사박물관, 40대 안팎에겐 아세아극장 근처에 있던 산업은행, 그러나 70대 이상에겐 우체국 앞에 있던 조선은행(실제 이름은 조선식산은행)이다. 이렇게 치자면 향촌문화관도 옛 상업은행, 우리은행 건물이었다.

대구근대역사관에는 부영버스를 타고 시간여행을 떠날수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대구근대역사관에는 부영버스를 타고 시간여행을 떠날수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1930년대 실제 이곳은 지금으로 치면 범어네거리에 버금가는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북도청(경상감영공원)이 있었고 무영당백화점(부산비닐상사)이 있었고 조선식산은행(근대역사박물관)이 있었다. 대구부영버스가 가로지르던 코스였다. 돈과 권력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근대역사박물관은 대구의 근대역사를 중심으로 설명, 전시해뒀다. 대구토박이들이 들어도 신기할 얘기들이다.

북쪽으로 100미터 남짓 가면 북성로다. 북성로 공구골목의 시작점은 대구역에서 매우 가까운데 때문에 1960, 70년대 북성로 공구골목에 어린 견습공원들이 넘쳐났던 이유와 연결짓는 증언들도 넘친다.

대구근대역사관내 인력거 대구근대역사관내 인력거

 

1960년대 초입부터 시작된 산업화 시기 시골에서 올라온 10대들은 지금의 10대와 다소 달랐다.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아니었다. 도시로 나가 돈을 벌어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야 했고, 부모님을 도와 집안의 기둥이 돼야 했고, 입을 덜어야 했다. 청운의 꿈도 싣고 스스로 오른 대구행 기차였다.

대구역에 내린 중학생 또래의 아이들은 대구역 앞의 비렁뱅이들을 봤고, 넝마주이를 스쳤고, 대구역사를 벗어나 이런저런 유혹의 손길을 헤치고 쇳가루 냄새가 질펀한 북성로 철공소 단지로 향했다.

대구근대역사관 2층 기획전시실에는 근대 대구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날수 있는 근대사진전시회가 열리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대구근대역사관 2층 기획전시실에는 근대 대구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날수 있는 근대사진전시회가 열리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운이 좋은 아이들은 미리 자리잡고 있던 친구의 소개로, 연줄이 없는 아이들은 견습공을 자처했다. 급여없이 밥만 먹는 조건으로 기술을 배웠다. 그 당시 견습공 급여는 명절 보너스가 전부였다. 더 엄밀히 말해 '사장님 마음'이었다.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는 이야기가 70대들의 자수성가 성공스토리에 더러 나왔다.

그런 이야기들이 골목골목 숨어든 곳이 북성로 공구골목이다. 마침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해 2013년 문을 열었던 공구박물관이 최근 확장 이전해 기술예술융합소 '모루'라는 이름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릴 때 받침대로 쓰는 '모루'에서 나온 이름이다.

지상 2층(연면적 264㎡) 규모로 전시관, 장인작업장, 창작 공간 등을 갖추고 있다. 전시관에는 기존 공구박물관 전시품과 시민 기증품 등 100여종 등 3천여점이 진열돼 있다. 톱, 칼, 끌, 망치, 스패너, 드라이버에서부터 수동 연마기, 드릴링 머신, 수직 발동기 등 희귀 공구까지 전시돼 있다. 창작공간에서는 장인, 예술가 등과 폐공구를 활용해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연초제초장 별관창고(중구 수창동)를 리모델링하여 낙후된 구도심 지역에 예술창조공간으로 재탄생한 대구예술발소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공간과 작품전시가 열리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연초제초장 별관창고(중구 수창동)를 리모델링하여 낙후된 구도심 지역에 예술창조공간으로 재탄생한 대구예술발소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공간과 작품전시가 열리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대구예술발전소, 수창청춘맨숀

북성로공구골목 서쪽으로 벗어나면 근래 대구도심에서 가장 높다는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굳이 이 아파트 단지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걸 지으면서 대구시민들이 얻게 된 것이 바로 '대구예술발전소'라서다.

도심 속 미술관 역할을 하는 대구예술발전소는 예술가들의 창작스튜디오 겸 전시장이다. KT&G 연초제조창 별관 창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공간이지만 담배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전시실, 예술정보실, 문화공간 등으로 조성돼 있는데 예술도서관 '만권당'이라는 곳에 꼭 들르자. 이곳에 비치된 예술 관련 고가 서적은 여타 도서관에서 쉽게 볼 수 없어 이목을 끈다. 이용객도 많지 않아 유유자적, 통유리 창밖으로 수창공원을 바라보며 책을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옛 연초제조창 한 켠에 들어선 수창공원.공원에는 이전 공장 건물의 콘크리트 기둥이 남아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옛 연초제조창 한 켠에 들어선 수창공원.공원에는 이전 공장 건물의 콘크리트 기둥이 남아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4층에 있는, 그 유명한 '억수로 큰 달' 그림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통해 존재감을 알린 바 있다. 사람들이 손에 올려놓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고, 밀어보기도 하는 갖가지 자세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달이다.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어느 순간 보니 달 사진의 성지처럼 돼 버렸다.

KT&G 연초제조창 사택으로 쓰였던 아파트가 젊은 작가들의 전시관으로 변신한 수창청춘맨숀.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KT&G 연초제조창 사택으로 쓰였던 아파트가 젊은 작가들의 전시관으로 변신한 수창청춘맨숀.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바로 옆에는 '수창청춘맨숀'이 있다. 겉에서 보면 낡디낡은 3층 높이 아파트다. 1976년 준공돼 1996년 폐쇄됐던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파트형 미술관이 됐다. 청년 예술가들을 위해 KT&G 연초제조창 사택으로 쓰였던 아파트가 변신한 것이다. 안과 밖이 판이해 오해했던 게 미안해질 정도다.

이달 3일 개관식을 했다. '수창, 청춘을 리노베이션하다'를 주제로 40여명의 지역 청년작가들이 참여해 작품을 전시해뒀다. 사택 아파트를 개조한 공간이라 작품을 찾는 것이 숨은그림찾기 같기도, 미로찾기 같기도 했다.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추억샷을 남기려는 연인들이 이리저리 명당을 찾는다.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터가 가까이에 있다. 단, 삼성 관련된 상징물이나 기록물은 거의 없다. 아쉽다면 오페라하우스 옆 대구삼성창조캠퍼스로 가길 권한다. 삼성 창업주 故 이병철 회장의 동상과 삼성상회를 재현해놓은 3층 건물이 있다. 원래는 제일모직이 있던 곳으로 사원 숙소도 있던 곳이었다.ㅊㅡㅇ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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