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수제 양복점에서

 

수제 양복점에서

-김선중

 

일생을 행사로 끌고 왔거나

끌고 갔거나 하는 일들로 의복들은 다 헤졌다.

갈수록 허물어지던 누추를

한 벌 정장으로 지탱해왔던 것이다.

 

수제 양복점에서 양복을 맞췄다.

그 어떤 의식도 없는

무료한 양복 한벌을 맞췄다.

자꾸 색상에서 버려진 듯

또는 신세진 듯

주변의 색과 나는 점점 구별된다.

이것은 철저한 소임인 듯

은폐술이거나 소외의 풍이다.

단추들은 인심이 후하게 바뀌었다.

주머니는 그 어떤 일탈의 비상금도

필요 없음으로 형식적이어도 무방하다.

등판은 여분의 치수를

조금 앞쪽으로 구부려야 할 것이다.

그에 맞춰 어깨는 더 이상의 상승의 힘을

주문하지 않기로 한다.

왼쪽 젖 가슴 위의 견장들,

이젠 흙냄새 좀 맡으라고

바지통을 널찍하게 잡았다.

 

잘 삭힌 몸, 녹이 많이 슨 몸

가봉(假縫)이 끝나고

잘 맞춤된 옷은 관(棺)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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