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매일시니어문학상] 시 당선작 - 민윤숙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민윤숙(82)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창이 큰 찻집에서

가스등 마주하고 차를 마신다.

 

창 밖에는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다 하지 못한 사랑

녹색 등 호롱 속에 가두어 놓고

 

여인은, 짐짓

 

아무 일도 없는 듯

단단한 미소로

창가에 비켜 앉아 있다.

 

 

시 – 민윤숙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 당선소감

 

민윤숙 씨. 민윤숙 씨.

68년 전, 우리들은 6.25전쟁으로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했었다. 학생들은 거주지에 속한 학교에 편입되었다. 나는 구덕산 밑 부산여중으로 갔다. 전국에서 모여든 학생을 다 수용하기에는 교실이 턱도 없이 부족했다. 천막으로 교실을 짓고 피난 학생들은 천막에서 수업을 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무릎 위에 책을 놓고 수업을 했다.

얼마 후 당국에서는 부산으로 피난 온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학교를 시작하라고 했다. 우리 피난 학생들은 모두 본교로 돌아갔다. 하지만 30~40평, 일본식 건물에 전교생이 다 들어가야 하니 비좁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집은 집대로 단칸방에서 온 식구가 살았으니 그 답답함은 다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진해로 소풍을 갔고, 답답했던 모든 것을 다 털어내고 마냥 즐거워서 학교로 돌아왔고, 소풍 기행문을 썼다.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에 전교생이 다 모인 자리에서 최우수작품 낭송이 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작품을 또박또박 읽어나가며 그 때, 내 마음에 자긍심을 심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때, 문학에 대한 열망의 씨앗이 심겨지지 않았나 생각되는데......

 

그 보다 앞서 6.25전쟁이 나기 전,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때는 좌익 우익이 딱 갈라진 시대가 아니었다. 프로레타리아의 이상론에 심취되어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그 이론에 매료되어 있던 사람들도 많은 때였었다. 당국과 학교에서는 반공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반공 표어를 지어 오라고 자주 숙제를 내 주었다.

 

하얀 칼라에 귀 밑, 1cm의 머리를 찰랑 거리면서, 나는 당당하게 학교 현관으로 들어섰다. 현관 중앙 맞은편에 "무궁화를 좀 먹는 붉은 벌래 없애자"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아니 저건 내가 써서 낸 내 표어잖아' 그 순간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붓글씨 앞에서 나는 감격하여 경직된 모습으로 한 참을 서 있었다. 그 감격은 아침마다, 현관을 들어설 때마다 더 해 갔었다. 아마도 정말 내게 씨앗이 심겨진 때는 그 때가 아닌가 싶다. 진해 소풍 기행문 사건은 그 씨앗이 발아된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서울로 환도한 나는 그 싹을 꽃 피우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많은 형제에 맏딸인 나는 대학 국문과에 합격은 했으나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바로 위에 오빠가 의용군에 갔다, 온 관계로 대학 입학이 늦어졌다. 그러므로 나와 같은 해에 대학을 가게 되었고, 내가 양보를 해야 했고, 밑에 동생이 다섯 명이나 있으니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할 집안 형편이었다.

일찍 결혼을 했다. 아이 셋을 낳고 기르느라 작가의 꿈은 꾸지도 못했고, 또 남편 사후, 남편 사업을 대신 하느라 문학에 대한 열망은 접어 두었었다. 회사 일이 어는 정도 안정 되자, 늦은 나이임에도 공부를 시작했다. 문화 쎈타에서 시 창작 수업을 듣고, 수필반에서 수필을 쓰고, 드디어 학교로 갔다. 중앙 대학교 문예 창작과에서 육년 동안 단편을 썼다. 교수님이 이번에는 장편을 한 번 써 보자고 했다. 장편 첫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가장 감명 깊은 장면, 이렇게 세 장을 써오라고 했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썼다. 다음 시간, 선생님은 많은 작품 중 소설이 될 만한 작품은 내 작품 하나뿐이라고 했다. 나는 그 날부터 2년에 걸쳐 장편을 썼다.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고무되어 용기를 얻고, 힘을 내어 열심히 썼다. 70이 넘은 나이에 밤을 새우면서 썼다. 쓰면서 선생님과 문우들의 합평을 토대로 개작을 해 가면서 썼다. 그리고 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하기를 아홉 번째, 제 7회 혼 불 문학상 응모 전에 응모 했다.

 

핸드폰 문자에 혼불 문학상에서 문자가 왔다. 혼불에서? 혼불에서? 이것은 분명 보통 일이 아니다. 다급한 마음에 손이 벌벌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려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다. 힘겹게 열어 본 화면에는 '혼불 문학상 수상자 발표' 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내게 이런 문자가? 내게? 눈물이 앞을 가려 화면을 볼 수가 없다. 잠시 진정하고 다시 열어보았다.

'282명 응모자 중,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예선 17편 안에 들었다' 고 한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내가 대가들의 인정을 받았다. 이만하면 족하다. 그런데 또 매경 시니어 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논픽션과 시, 두 부문에서 상을 받게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더 열심히 쓸 것이다. 2013년도 노벨 문학상, 여성 수상자, 앨리스 먼로도 나와 같은 나이인 83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말도 있다. 하면 된다!!!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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