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한시 산책] 동문의 노래

동문의 노래[東門行] 작자미상

동문을 나서며 出東門(출동문)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나 不顧歸(불고귀)

다시 와서 문에 들어와 보니 來入門(래입문)

슬픔이 북받쳐 오르는구나 悵欲悲(창욕비)

항아리엔 쌀이 다 떨어졌고 盎中無斗米儲(앙중무두미저)

시렁엔 걸려 있는 옷도 없구나 還視架上無懸衣(환시가상무현의)

칼을 뽑아들고 동문으로 가려는데 拔劍東門去(발검동문거)

아이 엄마 옷을 잡고 흐느껴 우네 舍中兒母牽衣啼(시중아모견의제)

다른 사람들은 부귀를 원하지만 他家但願富貴(타가단원부귀)

저는 당신과 죽을 먹더라도 함께 살래요 賤妾與君共餔糜(천첩여군공포미)

위로는 저 푸른 하늘의 뜻이고 上用倉浪天故(상용창랑천고)

아래로는 이 어린 것 생각하셔야죠 下當用此黃口兒(하당용차황구아)

지금 이렇게 가시면 안돼요 今非(금비)

쯧쯧 咄(돌)

가야 해 行(행)

갈 때가 이미 늦었어 吾去爲遲(오거위지)

백년해로는 다 글렀어 白髮時下難久居(백발시하난구거)

여기 절대적인 가난에 시달리는 한 가장이 있다. 그는 참다못해 칼을 빼들고 범행 장소로 나서다가, 윤리와 도덕이 떠올랐는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굶주리고 헐벗은 처자식의 모습을 보는 순간, 다시 눈이 까뒤집혀서 칼을 빼들기로 결단을 내린다. 강도질을 하려고 칼을 빼들고 나가는 남편과 이를 말리는 아내, 아내를 뿌리치고 기어이 나가는 남편 사이의 극적 갈등이 아주 생생한 대화체로 전개된다. 그야말로 한편의 단막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한(漢)나라 시대의 시가인 이 작품의 묘미를 더해주는 것은 내용에 상응하는 격한 호흡과 리듬이다. 보다시피 이 작품은 각 구절의 글자 수가 변화무쌍하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글자 수가 같게 구성된 한시의 보편 리듬이나 호흡과는 느낌이 하늘과 땅 차이다. 때로는 '今非/ 咄/ 行/ 吾去爲遲'처럼 급박한 상황에 걸맞게 스타카토로 짧게 툭툭 끊기기도 한다. 촉급한 리듬과 호흡을 통해 작품내적 상황을 더욱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 그래서 가슴이 더욱더 아프다.

"한 대학생 누나/ 너무 배고파/ 메추리알, 우유, 김치, 핫바/ 6,650원어치 훔쳤다고 한다./ 설 때도 고향집에/ 아무도 없는 누나/ 누나의 가난을/ 누가 훔쳐 갔음 좋겠다./ 누나의 슬픔을/ 누가 훔쳐 갔음 좋겠다." 이화주의 '누가 훔쳐갔음 좋겠다'라는 동시다. 이 세상 사람들의 극한 가난, 극한 슬픔을 누군가가 몽땅 훔쳐가면 참 좋겠다. 만약 그런 도둑이 있다면, '참 착한 도둑 상'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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