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책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책]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이정환 지음/고요아침 펴냄

이정환 시조시인이 시조선집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를 출간했다. 1978년 등단 이후 40여 년 동안 쓴 1000여 편의 작품 중에 100편을 선정해 묶었다.이 시집은 모두 5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 남루의 시, 제2부 내 노래보다 먼저, 제3부 새와 수면, 제4부 꽃의 이해, 제5부 물망 등인데 시대별 구성이다.선집 제목은 한 줄 시인 '서시'에서 따왔다. 시대의 소리와 철학적 사유 세계를 함축한 제목이다.김상옥, 이호우 시인과 같은 선배세대 시인들은 역사성과 시대성을 적지 않게 노래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시조는 대체로 자연 서정이 주조를 이룬다.이정환 시인은 "시조는 전통적 기율에 충실하면서 시대적 요청에 적극적으로 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부단한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 쓸 때마다 '천편일률'이 아니라 '천편천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이번 시조선집은 이 시인이 40여 년 동안 '또 다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온 결정판이다. 시인은 "보여줄 것은 다 내보여준 집약의 결과물이다."고 말한다.'제1부 남루의 시'는 초기 작품들로 자연 서정과 존재론적 성찰, 사랑의 영원성에 관한 탐구가 주조를 이룬다. 천년은 시간적 길이일 뿐만 아니라 깊이라는 인식 아래 고도 경주를 배경으로 '자목련 산비탈', '숯' 과 같은 작품을 썼다.'제2부 내 노래보다 먼저'에서는 '헌사', '에워쌌으니' 등을 통해 보다 심화된 사랑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노래한다. 또한 계절의 순환 속에서 존재의 근원에 대한 사색을 육화하고, 자연의 말과 소리와 빛깔에 귀 기울이고 따사로운 눈길을 주고받는 내적 교감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제3부 새와 수면'에서는 '원에 관하여'와 '상평통보'를 통해 우리 고유의 정서와 생활 습속인 원융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아울러 다채로운 자연 서정의 변주를 통해 심미성의 심화를 꾀한다. 역시 사랑에 관한 시편들이 이어져서 '봄의 자책'과 '너의 초상' 등을 통해 사랑의 지고지순함과 격한 슬픔을 체현하고 있다.'제4부 꽃의 이해'에서는 삶과 죽음, 사랑의 아픔, 씻을 수 없는 상흔으로 남은 일에 대한 소회를 노래한다. 시인이 여러 지역을 오고가며 마주친 정경을 통해 얻은 자연의 비의와 철학적 사유에 초점을 맞춘 시편들을 담고 있다. '어떤 저녁, 꽃의 이해, 삼강나루, 청산도' 등이 그런 작품이다.'제5부 물망'은 최근 작품으로 사람과 자연에 대한 경이를 담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안식을 노래한 '저녁 숲'과 관계의 소중함을 환기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누군가 불렀다, 흘림흘림 민흘림, 퍼펙트' 등이다. 무엇보다 시의 본질, 삶의 근원에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쓴 시로 '생의 반역, 밤을 보려고, 시스루, 또 다시 블랙홀' 등이 독자의 감성을 울린다.이정환 시인은 "시인으로 산 지 40여 년, 내가 줄기차게 꿈꾸고 추구한 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며 "나는 사랑의 시인으로 불리기를 바란다. 더불어 내가 쓴 시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영원불멸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이정환 시인은 "우리 시조도 이제 철학적 사유 쪽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 시대적 요청에 답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147쪽, 1만2천원.▷ 이정환 시인1978년 시조문학 추천,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한국시조작품상, 대구문학상, 대구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금복문화상과 황조근정훈장을 받았으며,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동시조 '친구야, 눈빛만 봐도' '혀 밑에 도끼' '공을 차다가' 등이 수록되어 있다.

2019-06-14 06:30:00

디지털 미니멀리즘/칼 뉴포트 지음/세종서적 펴냄

우리에게 스마트폰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SNS를 확인하고, 포털사이트에 접속하며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 할애한다. '스마트폰 좀 줄여야 하는데'라고 생각은 하지만 하루라도 스마트폰 없이 지내라고 하면 '놓치는 연락이 있지는 않을까', '중요한 뉴스가 있진 않을까'하고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스마트폰의 유혹은 그만큼 강력하다.디지털의 노예처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인 칼 뉴포트는 그의 저서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통해 우리를 좀먹고 있는 디지털 과잉 환경에서 우리가 기술과 맺은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디지털시대, 나만의 속도 살아가기디지털 과잉 환경은 우리로 하여금 만성피로에 시달리게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알림음과 무한으로 연결되어 있는 온라인 세상과 정보들에 휩싸여 정작 몰입해야 하는 것에 시간을 투자할 수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디지털 기기를 쓰는 데 소모하는 시간을 양질의 여가로 대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적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은 물론, 삶의 균형까지 잡을 수 있지 않을까?문제는 알림 기능을 끄거나, 가끔 디지털 안식일을 갖는 수준으로는 디지털의 유혹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버리거나 모든 디지털 기기를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나에게 맞는 기술을 활용하되, 어떤 기술을 어떻게, 왜, 어떤 조건에서 활용할지 설정하고 그것을 일상화해야 하는 것이다.이를 위해선 깊은 가치에 뿌리를 둔 성숙한 기술 활용 철하기 필요하다. 이 철학은 어떤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공하고, 다른 모든 것을 확고하게 무시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기술 과부하에 걸린 현재 상황에서 잘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철학이 바로 '디지털 미니멀리즘'인 것이다.◆30일의 디지털 정돈 프로젝트스마트폰을 흘긋거리지 않고 긴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차분하고 행복한 사람들, 사진을 찍는 데 집착하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뉴스나 SNS를 확인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디지털 미니멀리스트다. 이들은 어떤 활동이 의미 있고 만족을 주는지 알기 때문에 디지털 도구와 멀어지면 '무언가를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는다.지은이는 농부부터 실리콘 밸리의 프로그래머까지 수많은 디지털 미니멀리스트들이 어떻게 소셜 미디어와 맺은 관계를 재고하고, 오프라인 세계의 즐거움을 재발견하며, 고독에 잠기는 시간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재회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술에 압도당하지 않고 생활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도록 도와준 30일간의 '디지털 정돈' 과정과 함께 이를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들을 구체적인 실천지침들을 제시해준다.책은 1부에서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개념을 설명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디지털 미니멀리스트의 사례를 제시한다. 이를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 이용에 따른 득실과 디지털 기술을 삶에 최적화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준다. 여기에 지은이가 1천600명을 대상으로 직접 실시한 실험을 근거로 만든 '디지털 정돈' 과정을 소개하며, 독자 스스로 디지털 정돈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확실한 전략과 빠지기 쉬운 함정을 정리해 개개인에게 맞는 디지털 미니멀리즘 실천 방법을 제시해준다.2부에서는 지속가능한 디지털 미니멀리즘 생활방식을 구축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한다. 실천을 위한 확실한 전술을 열다섯 가지의 실천지침으로 정리해 각 장에 수록해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일상화하는 전략을 알려준다. 296쪽, 1만6천원.▷지은이는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부교수이며, 분산 알고리즘 이론을 연구한다. 다트머스대를 최우수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MIT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학습전문가로 다수의 TV와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다. 베스트셀러 '딥 워크'를 비롯한 6권의 책을 저술했고, 그의 TED 강연 '소셜 미디어를 끊어야 하는 이유'는 5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2019-06-13 11:10:20

[반갑다 새책]소나무 향기 아래 어린 잣나무는 자라고/박용구 지음/만인사 펴냄 아껴둔 말/박용구 지음/한비CO 펴냄

경북대 임학과 명예교수이자 시인인 지은이가 수필집과 시집을 함께 냈다. 수필집 '소나무…'는 나무와 숲과 같이 살아온 지 60년 가까이 되는 지은이가 나무들이 때로는 서로 경쟁하기도 하지만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자연섭리를 갖고 있는 오묘한 생명집단임을 자각, 그 곳에서 삶의 많은 위안을 받게 되는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이 뿐 아니라 지은이는 한국과 중국의 명승지를 찾아다니면서 해박한 임학 지식과 풍부한 한시의 내공을 글 곳곳에 함께 실어 독서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아껴둔 말'은 지은이가 정년하고 8년이 지나 희수가 된 때 그 지난 세월이 아까워 그저 적어왔던 것을 정리해 엮은 시집이다. 지은이는 여기서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과 같이 항상 그렇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에게 시어는 숲의 언어와 같아, 힘들고 바쁜 세상에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고 안아주는 실체들이다.'지난 한 해/높이 자란 느티도/떡깔 물푸레 같은 사람도 만났다/열매 색 예쁜 작살나무도/세 밑 사랑 비목나무 열매도/모두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시 '새해'중에서)터무니없이 화려한 시절일수록 마음은 텅 비어 더 외로움을 타고 지나온 삶 속 아쉬움만 덧없이 쌓이는 노년에, 사춘기의 희열이 가슴을 적시고 또 다른 새 마음이 문을 여는 데 삶의 실존적 시간은 매정하기만 하다.지은이는 이를 시어로 승화하면서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자 시를 쓴다고 했다. 여기에 지은이는 또한 나무라는 전문지식을 시적 소재로 삼아 시를 창조해내고 있다. '소나무…' 231쪽, 1만5천원. '아껴둔 말' 142쪽, 1만원

2019-06-11 13:54:48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 어느 낙엽의 시'③] 박영귀 작

아버지도 나도 눈물을 보였다. 나는 해병대 소위 정복을 하고 육군에 있을 때 근무하던 부대의 대대장을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중대장과 함께 내가 있던 내무반을 방문했다. 감개가 무량했다. 나를 몽둥이로 때리던 아이가 병장을 달고 최고 선임자가 되어 있었다. 나한테 미안했었다고 큰소리로 나한테 "충성" 하며 거수경례를 했다.건강하니 군 생활도 순탄했다. 그러나 대위로 진급하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진로 문제였다. 솔직히 나 같이 고학력 출신도, 배경이 좋은 것도, 특출한 소질을 가지지 않은 자는 올라갈 자리가 애매했다. 운이 좋아 영관급으로 진급해 보았자, 그때 사회에 나오면 내 나이가 얼마나 되는가? 결혼도 해야 하는데 전세방이라도 얻을 돈이 생기는가? 그렇다고 지금 제대를 하면 취직자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아! 머리가 아프다.더구나 해병대 사령부가 해체되어 가야 할 길도 더 안 보이는데 이래도 저래도 답이 없다. 우물쭈물하는 공백은 술이 메꾸었다. '술! 많이도 퍼마셨다. 차라리 부처님이나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소연할 걸!' '선두에 설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 더불어 낙오할 생각도 아예 하지 않는다'. 1978년 백령도에서 해병대 대위 제대한다. 그리고 국립묘지에 있는 친구 김광오한테 제대 신고를 한다.부모님과 동생들은 서울대 앞, 신림동 달동네에 살고 있었다. 강제 철거된 판자촌 주민에게 구청에서 관악산 앞 작은 산에 한 가구당 택지 12(?) 평씩 분배해 주었다. 그것이 신림동 달동네다. 거기에 새로운 판자촌이 생겼다. 수도, 하수도, 전기도 없었다. 화장실이 몇 군데 있었는데 관리자가 없어 사용할 수가 없었다. 여름에는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고 겨울에는 똥과 오줌이 얼어붙어 산처럼 쌓여 사용할 수가 없었다. 집마다 땅을 파서 화장실과 우물을 만들기 시작했으나, 화장실과 우물 거리가 가까워 물에서 똥, 오줌 냄새가 났다. 그 우물과 화장실을 내가 만들었다.냄새가 지독해서 더 깊이 파고 파이프를 박고 펌프를 세우니 냄새가 덜 했다. 그러나 식수로는 적합하지 않았다.그때 생긴 것이 물지게꾼과 똥 퍼 가는 직업이다. 그들은 "똥 퍼, 똥 퍼" 하며 외치고 다녔고, 산 밑에 수도가 있어 산 위까지 가기가 힘이 들어 그들의 기세는 등등했다. 먹지는 못 해도 물은 있어야 했고 똥은 퍼야 했다. 또 한 가구당 한 사람씩 나 오라 해서 노역을 시키고 밀가루를 배급받았다. 얼마 후 전기가 들어왔지만, 전기료를 낼 돈이 없자, 사람들은 전선을 옷핀으로 찔러 사용하다가 감전 사고가 나기도 하고 밤에 똥을 퍼서 검지산 가는 산등성에 버리기 시작했다. 유독 진달래꽃이 많이 피던 산에 꽃은 많이 피어 있는데 똥 냄새가 지독했다.겨울이 문제였다. 똥이 얼자, 똥 퍼가는 사람이 오지 않아 집마다 도끼나 야전삽 또는 곡괭이로 깨트려 산에다 버렸다. 내가 주로 했는데, 옷이며 얼굴이 똥투성이였다. 또 하수도가 없으니 사람들이 사용한 물을 아무 데나 버린 물이 얼어 산 꼭대기에서 내려가기도 올라가기도 어려웠다. 눈이라도 오면 사고가 일어났다. 노인들이 많이 다쳤다. 사람들이 타고 남은 연탄재를 던지기 시작했다.달동네는 항상 싸우는 소리, 술 먹고 노래하는 소리, 웃는 소리, 그리고 이유 없이 고함지르고, 악을 쓰는 소리로 시끌시끌했다.그때 일급 뉴스는 남편이 목숨 걸고 월남에 가서 꼬박꼬박 보낸 돈으로 마누라는 춤바람이 나서 어느 놈팡이와 도망간 사건이다. 귀국해서 집에 오니 집까지 팔아 버린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달동네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관악산과 검지산(산 이름)은 각각 개울을 가지고 있었고 관악산에서 흐르는 개울이 더 컸다.어릴 적에는 목욕도 하고 가제와 송사리도 잡았고 두꺼비(개 이름)와 물장구치며 놀았던 곳인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모여들자 더러운 시궁창이 되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을까? 그들도 우리처럼 이런저런 사연을 가지고 있겠지.내가 집에 오자, 외조모님은 결혼을, 아버지는 신림동 향토예비군 중대장을 하면 어떠냐고 떠보신다. 월급은 얼마 되지 않지만, 과외 수입이 있고 고정 수입이라 괜찮은가 보다고 하신다.결혼문제는 부모님도 적극적으로 합세하셨다. 박씨 집안의 종손이고 나이도 32살이나 되었으니 너무 늦었다는 말씀이다.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대방동 성당 할머니들이 주축이 되어 중매를 섰다. 영등포에 있는 한의원 집 둘째 딸이었다.선을 보고 교제를 시작했는데 그만두기로 했다. 우리 집과 너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서다. 영등포 사거리 목 좋은 곳, 삼층 빌딩이 그의 집이었고, 언니와 형부는 명문대 출신이었다. 내가 졸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처가와의 불화가 보이는 것 같아 서다. 그리고 천주교를 믿어야 하고 결혼식도 천주교회에서 해야 한다는 조건도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둘째 딸은 나를 죽자 사자 쫓아다녔다. 같이 도망가자고도 했다. 나는 웃었지만, 그만한 각오가 되어 있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결혼했다. 마침, 도림동 성당 주임신부님이 해병대 출신이라 결혼식 준비는 급속도로 진행되어 성당은 나중에 다니기로 신부님과 약속하고 신림동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30년 후 나는 미국에서 영세를 받았다.)유일하게 민간인 출신으로 5·16 군사 쿠테타에 참여했던 R 씨의 회사 계열인 K 회사에 입사, 공장 새마을 지도자 선거에 출마 등록을 했다. 선거 연설문을 작성하여 녹음기를 놓고 집사람 앞에서 연설 예행연습을 했다. 얼마 후 노동자들은 나를 당선시켜 주었다.대전 서구 도마동 새마을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나는 새마을 지도자로서 온 힘을 다했다. 우선, 서울역 뒤 만리동 고개 도로 정화 작업부터 시작했다. 통금 해제 사이렌 소리에 잠에서 깨어 출근하여 통금 사이렌 직전에 집에 왔다. 사원들과 아침 일찍부터 도로변을 쓸고 닦았다. 휴지를 줍고 쓰레기를 치우고 담배 재떨이 겸 쓰레기통을 설계, 제작하여 거리 곳곳에 설치했다. 사원 복지를 위해 건의사항을 받아들여 사주와 협의, 개선하는 데 노력하며 효율적인 생산성을 위해 품질관리, 개선, 능률 향상을 위한 아이디어 수집, 우수한 사원의 포상 등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든든한 배경을 가진 사주는 막대한 외화로 독일제 다색 오프셋 인쇄기, 최신 사진식자기, 카메라, 등을 수입해서 인쇄방식의 현대화를 하다 보니 활판 계통에 몸담고 있던 수많은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을 우려해, 노조를 만들 움직임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시기였다. 그들은 나만을 의지했다.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다른 일자리로 대체 해 주기를 원했다. 정부와 사주는 이런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노사협의회라는 것을 만들어 노사협의회 회장은 사장 또는 사주, 노사협의회 부회장은 새마을 실천본부장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감투는 두 개다. 새마을 실천본부장 겸 노사협의회 부회장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감투다. 쉽게 말하자면 어용 노조 위원장이고, 더 쉽게 말하자면 허수아비라는 말이다.나는 새마을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노조의 방패막으로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새마을 지도자가 되기 위해 출마했지, 노사협의회 부회장이 되기 위해 출마하지는 안 했다. 그것은 가진 자의 횡포다. 저녁이면 가진 자들은 나를 요정으로 모셔 갔다. 그리고 그들은 치즈 몇 조각, 양주 몇 잔에 내 봉급의 몇 배의 돈을 지급했다.이것도 강제다.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본부장 차 타시오" 하면 차를 타야 한다. 새마을 운동 지도자가, 달동네에 사는 내가 요정에서 술을 먹다니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다.(6월18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 4회가 게재됩니다)

2019-06-10 17:30:00

서지 김윤식 시인 생가 표지석 제막식 참석자들이 표지석 공개 순서를 진행하고 있다. 김진만 기자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받은 고 김윤식 시인 생가 표지석 제막식

한국문인협회 경산지부가 올해 제59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건국포장)을 받고 첫 독재저항 민주시인으로 평가 받고 있는 고 서지(西芝) 김윤식(1928~1996) 시인(매일신문 4월 18일 27면 보도) 생가인 경산 용성면 덕천리에서 8일 생가 표지석을 세우고 제막식을 가졌다.한국문인협회 경산지부(지부장 구자도)는 김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23년 만에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을 받은 것을 기념하고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문협 회원의 뜻을 모아 시인 생가에 표지석을 세웠다.생가 표지석에는 김 시인의 생전 대표 행적이 담겼다.우선 대한민국 최초 독재저항 민주운동인 1960년 2·28 대구학생의거 목격 후 쓴 시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을 대구일보에 게재하고 3·15 김주열 열사 및 4·19혁명 관련 시를 대구매일신문 등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는 등 민주화에 기여한 공적을 기록했다.아울러 올해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을 받은 첫 독재저항 민주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과 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와 경산지부를 창립해 초대 지회장과 지부장을 지낸 것, 농촌계몽 향토문화공로상(상록수상) 등 수상 경력, 국립 4·19민주묘지, 2·28기념중앙공원 등 6기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는 것을 기록했다.이날 김 시인 생가 표지석 제막식에는 한국문인협회 경산지부 구자도 지부장과 고문인 도광의 시인, 구활 수필가· 제갈태일 시조시인, 박기옥 직전 지부장을 비롯한 문인들과 경산시 조현숙 복지문화국장, 김윤달 덕천이장과 김상수 동네 노인회장 등 50여 명이 참석해 축하를 했다.구자도 지부장은 "오늘 서지 김윤식 시인의 생가 표지석 제막식이 마중물이 돼 서지 선생이 남긴 많은 업적이 새롭게 재평가 되길 바란다"면서 "경산시민은 물론 문학을 사랑하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을 희망하는 많은 국민이 찾아와 보고 마음에 교훈을 담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김윤식 시인이 경주여고 교사로 재직중이던 1955~1958년 3년 동안 가르침을 받았다는 제자 정봉자(81) 씨는 인사말을 통해 "선생님은 6·25전쟁 후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공납금을 내지 못하는 제자들을 위해 공납금을 대신 내주시고 다방면에서 열정적으로 지도해 주신 은사님"이라고 회상했다.또 "너무나도 늦게 4·19혁명 유공자로 훈장을 받게 된 것이 아쉽고 유감이지만 항상 정의롭고 헌신적이며 열정과 사랑이 많으시기에 하늘나라에서도 우리들을 돌보시고 걱정 많이 하시겠다. 너무나 그립다"라고 말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시의 장남인 김약수(66) 전 대구미래대 교수(경산학연구원장)는 "선친은 생전에 1990년 발간된 경북중고등학교 42회 졸업문집에 '2·28, 고이 흘러간 세월을 돌이켜 보며'에서 '이승에 살아 시를 쓰는 시인이 되어 한국 근대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청사(靑史)에 길이 빛날 대사건에 비록 보잘것 없는 글이나마 동참했다는 자랑과 보람을 안고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라고 말씀했다"면서 "오늘 선친의 생가 표지석 제막식을 거행해 준 문협 경산지부 모든 회원들의 정성과 인정을 잊지 않겠고, 매우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2019-06-09 14:55:03

괜찮은 결혼/엘리 J. 핀켈 지음/지식여행 펴냄

우리나라의 혼인율은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OECD 아시아 회원국 중 이혼율 최고 수준에 다다랐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대부분 경제적 프레임에서 원인과 해결책을 찾고 있다.미국 노스웨스턴대 심리학 교수 엘리 J. 핀켈의 '괜찮은 결혼'은 경제적 프레임보다 사회심리학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결혼을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심리학과 사회학 연구와 문헌을 통해 지금 시대의 결혼에 대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꼬집는다.◆인문학적으로 파헤쳐보는 결혼관계 이론 분야에서 혁신적인 학자로 평가받는 엘리 J. 핀켈은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는 결혼이 양극화된 과정과 원인,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나타난 현재의 결혼을 건강한 길로 인도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한다. 결혼을 보는 그의 관점은 우리 사회가 대체적으로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방식의 결혼에 대한 개념을 넘어 변혁적이고 획기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의 의미는 남녀 간 갈등, 결혼에 대한 회의적 시각과 기피 현상 등으로 얼룩져 있다.결혼을 인문학점 관점에서 파헤친 책은 흔치 않다. 대부분 부부 교육서, 자녀 양육서, 종교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결혼에 대한 것들이다. 책은 미국의 결혼에 대해 포괄적 고찰을 담고 있지만, 한국 사회 또한 결혼, 동거, 출산, 이혼 등의 측면에서 미국 사회가 겪은 것과 같은 변화를 아주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한국 사회도 이와 비슷한 결혼을 마주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책은 지루하지 않게 결혼을 다룬다. 영화와 드라마, 소설, 고전 속의 에피소드를 동원해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선다. 실용, 사랑, 자아실현 시대의 프레임을 주도하는 여론과 실증적 예도 꼼꼼하게 챙겨나간다.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중세 시대, 계몽주의 시대, 근세 시대의 철학자, 예술가, 사상가, 그리고 가상현실 세계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에게 풍부한 지적 여정의 길로 안내한다. 자칫 통속적으로 흐를 수 있는 결혼과 부부의 이야기를 학술적 가치와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냈다. ◆양극화된 결혼과 극복 방안 책은 미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결혼과 부부 문제에서 출발한다. 지은이는 역사를 보면 결혼의 존재 이유가 실용에서 출발해 사랑을 거쳐 자아실현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즉, 결혼이라는 제도가 시대적인 맥락에 따라 진화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의미 있다는 자아실현에 기반한 지금의 결혼마저도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결혼 생활이 '모 아니면 도' 식으로 편향되었다는 것이다. 결혼의 핵심 기능이 매슬로의 욕구 단계 중 높은 곳을 지향하면서도 배우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 탓에 결혼 생활이 기대에 부응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결혼 생활에 실망하면서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결혼 생활에 대한 기대의 본질이 변하면서 기대를 충족했을 때의 혜택이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평균적인 결혼 생활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반면, 최상의 결혼 생활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고 말한다.마지막으로 양극화된 결혼과 부부의 불행을 극복해나갈 방안을 제시한다. 그 방안은 결혼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그 기대를 충족하기 위한 노력 또한 더욱 필요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지은이가 알려주는 결혼에 대한 고찰은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미혼뿐만 아니라 결혼을 했거나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에게도 도움이 된다. 결혼 생활에 대한 고민이 큰 부부라면, 갈등을 멈추고 앞으로 남은 기나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2019-06-06 13:33:12

[반갑다 새책]수학과 예술/린 갬웰 지음'김수환 옮김/쌤앤파커스 펴냄

'수학과 예술을 사랑한 인류의 지적 경험을 총망라한 경이로운 책' '지식인의 서재에 반드시 꽂혀 있어야할 금세기 최고의 교과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수학과 예술, 그 둘의 위대한 역사가 이 책에 담겨있다. 읽어라 그리고 감동하라'…어떤 책이기에 출간과 동시에 세계적 석학들의 찬사가 이렇게 쏟아지는 걸까? 일단 두꺼운 책을 펼쳐보았다.'공자는 타인을 대하는 올바른 행동윤리 철학을 전파했다. 공자의 글에는 사람이 엄격한 계급과 조화로운 질서를 이루고 개개인이 협력해 집단을 이루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공자의 철학에는 전통 점성술책 '주역'(역경)이 설명하는 마법적 체계도 담겨 있다. 역경은 괘라고 불리는 64개의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역경의 추상형태에서 나오는 권위는 2000년 동안 아시아인의 마음을 끌었다.'(본문 중에서)'중세유럽은 결국 유클리드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식을 잃어버렸지만 이슬람 학자들은 비잔틴의 그리스어 문헌을 아랍어로 번역해 보존했다. 9세기 칼리프들은 학자들이 해외(특히 그리스)의 수학과 철학 지식을 번역하고 자신의 고유 사상을 표현하도록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을 건설했다.'(본문 중에서)세상의 모든 창조와 진보는 수학에서 시작됐다. 동서고금의 철학자와 예술가에게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뮤즈, 수학은 어떻게 예술가와 철학자를 사로잡았을까? 고대부터 현대에 이어지는 수학과 과학, 예술이 문화사를 이 책 한 권으로 정리했다.그리스와 이슬람, 고대 중국의 '구고정리'를 포함해 책으로 접하기 어려운 예술작품과 현대미술 작품들 500여 점과 900여 명에 달하는 인물들이 수학과 예술을 연결하는 방대한 지적 연결고리와 문화적 환경들을 종횡으로 보여준다. 611쪽, 8만9천원

2019-06-05 11:20:03

괜찮아 괜찮지

[책 체크] 괜잖아 괜찮지/ 성희 지음/ 시와에세이 펴냄

'나는 살고 싶다/ 졸졸졸 바스락거림도 없이/ 내 어두운 궤적을 지우고/ 거친 돌과 돌 사이/ 하얀 물푸레 뿌리도 적시며/ 유장하고 격렬한 문장으로/ 이 한 몸 푸르고, 푸르게 흘러/ 저 아득한 심연의 바다에 가 닿는/ 작은 물고기의 꿈이고 싶다'- 성희 시 '개숫물의 꿈'지은이 성희는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5년 '시에티카'로 등단해 현재 시에문학회,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지회,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시집에는 '깎다' '괜찮지?' '달방 있습니다' '갱년기' 몽당 빗자루' '걸레 경전' 곤공한 세상' 등 따뜻한 위로와 모성애가 느껴지는 시 60여 편이 실려 있다.시적 관심은 하나같이 늙고 병들고 힘없고 소외된 삶이나 풍경에 꽂혀 있다. 그것도 직접 몸으로 겪은 체험이 바탕에 깔려 있다.지은이는 "작고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의 힘은 대단하다.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밟히고 저항한다. 시기적절할 때 밟아주는 힘으로 자라는 꽃잔디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119쪽 1만원.

2019-06-05 11:18:51

인생의 함정을 피하는 생각 습관

[책 체크]인생의 함정을 피하는 생각 습관/웨이슈잉 지음/ 이지은 옮김/ 올댓북스 펴냄

'호감, 관심 등의 감정을 통장에 부지런히 저축하다 보면 상대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곤경에 처했을 때 상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감정을 저축하지 못하고 인출만 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상대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감정이라는 통장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하버드 새벽 4시 반' 저자인 웨이슈잉이 이번에는 실패 없는 인생을 사는 생각의 원칙을 한 권에 담았다. 이 책은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성공법칙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놓치기 쉬운 함정들을 잘 관리함으로써 보통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저자는 인생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심리적 함정들을 인생관, 일상생활, 인관관계, 사고방식 등 여섯 파트로 나누고 각 장마다 다시 10가지 실천적 사고 방법을 다룬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의 흥미로운 일화나 명언,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예시를 통해 함정들의 실체를 파헤치고 이를 극복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304쪽 1만4천원.

2019-06-05 11:18:24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②]박영귀 작

▶가난이라는 절대음감그러나 "고맙습니다"라는 말보다 울컥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 생애 최초의 자존심의 발로였고 자신에 대한 최초의 반항이었으며 현실에 대한 부정이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참을 수가 없었던 거다.그러나 끝마무리를 잘하는 자신에 신뢰감을 가질 수 있었다."선생님 감사합니다""친구들 고마워!"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소리중에 가장 예민한 소리는 아버지 발소리다. 빈곤은 먹이에 집중하다 보니 먹이를 물어다 주는 어미의 움직임이 새끼의 전부다. 엄마가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 역시 우리 남매들이 가장 잘 이해되는 음역이다.동생 중에 절대음감을 가진 동생이 있다. 내 바로 밑에 여동생, 정말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동생이다.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동생은 "아버지가 오신다" 하면 정말 아버지께서 오셨다. 그리고 아버지 손에 들고 있는 봉지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알고 있어 우리 가족 사이에는 개 코, 또는 도사, 울보라는 별명을 가진 동생이다. 배고픔에 지친 가족들은 여동생처럼 절대음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동생이 "아버지다!"하고 문을 열었을 때, 아버지 손이 빈손이면 울보는 울대를 몇 옥타브 올려 사정없이 울었다. 보고만 있던 우리들도 따라 울었다. 엄마도 울보를 부여안고 우셨다.아버지도 눈물을 보이셨다.기절초풍을 할 일이 생겼다. 죽은 사람이 시장 바닥을 걸어 다닌다는 이야기다. 방물장수 할머니 말씀이 김 씨 아저씨를 시장에서 보았다고 하신다. 부모님은 믿지 않으셨다. 잘못 보셨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 귀신 이야기는 부모님 가슴에 더 큰 상처만 만들고 흐지부지 사라졌다.경찰서에서 김 씨는 외상으로 들어온 자재와 금고를 빼돌린 후 페인트와 휘발유를 가게 안에다 뿌리고 불을 질렸다는 이야기와 지금은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고 부모님에게 죽을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달라는, 믿었던 김 씨 아저씨의 정직한 고백 앞에 부모님은 할 말을 잃었다고 하신다.▶병역기피와 동기생의 전사"믿었던 주먹이 다운되는 순간" 1960년대 길거리 좌판에서 보던 시다. 부모님 가슴을 가히 짐작한다.나는 좋은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김광오, 고교 동창이며 회사 입사 동기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직장과 학교를 다니던 나는 친구와 같이 입영 통지서를 받고 친구는 입대했지만 나는 기피를 했다. 핑계는 건강이 좋지 않고, 그보다는 집도 절도 없는 집안의 8남매 장남으로 무기력한 부모님을 모시고 어린 동생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내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생애 처음으로 병역 기피자라는 죄목의 붉은 줄이 생겼다. 친구와 나는 짝꿍처럼 잘 어울렸다. 입대 후에도 곧잘 소식을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 친구한테 온 소포에 전사통지서와 유품이 와서 친구 집으로 달려가 보니 친구 사진 앞에 향이 타고 있었다. 무장공비 토벌 작전 중 전사한 것이다. 동작동 국립묘지, 친구 앞에서 나는 대한민국 남자로서 부끄러움을 느낀 날이다. 얼마 후 병역 기피자 자수 홍보 포스터가 서울 곳곳에 붙어졌다.나는 모든 것을 치우고 자수를 한 후,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강원도 모 부대에 배치를 받았다. 건강이 좋아졌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주고 운동까지 시키니 이처럼 신나는 곳은 없었다. 운동을 열심히 했다. 이제는 해골도 아니고 왕 눈깔도 아니다.▶군 생활은 인내심의 수련어느 날 전우신문에 각 군 사관후보생 모집 광고 중 해병대 사관후보생 모집 광고에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육군 졸병 일등병이 지원하기엔 산 넘어 산이었다. 육군에서 육군 장교가 아닌 타군 장교로 가기 위해서는 육군 참모 총장의 추천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소대장 추천에 중대장 추천서, 그걸 가지고 대대장 추천서를 받고, 연대장, 사단장, 또는 군사령관, 서울에 있는 육본까지 올라가 추천서를 받고 중앙 대학교에서 필기시험, 체력시험, 신체검사까지 통과해야만 해병학교에 입교할 수 있었다.육군 일등병이 어떻게 이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가 있을까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는, 강인한 정신과 육체만이라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일을 시작했다. 드디어 2박 3일 휴가증을 받아 육군본부 위병소까지 왔다. 어느 곳이나 비슷한 절차였다. 위병소 근무자나 헌병은 나를 보면 "새까만 졸개가 겁대가리 없다"며 "쪼그려 뛰기 3만 번" 또는 어느 곳은 "쪼그려 뛰기 백만 번"하며 얼차려(벌)를 주었고 장교들은 육군에도 장교가 될 기회가 많은데 왜? 해병대로 갈려하느냐고 물었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해 주었다.나에게는 체력시험이 문제였다. 죽기 살기로 뛰었다. 애초부터 선두에 설 생각은 없었다. 포기하여 낙오자가 되지는 말자는 것이 나의 각오였다. 이것이 나의 생활 철학이 되었다.드디어 해병학교에 입교했다.나의 육군 이등병, 일등병 생활은 만족했다. 풍족한 식사, 넘치는 운동량, 적당한 스트레스가 있어 건강한 몸을 만들어 주었다.▶해병대 소위가 되다.군 생활은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어떤 군인은 음식이 맛이 없다고 조미료를 몰래 사 먹고, 부모한테 총을 잊어버려 돈이 없으면 영창에 가야 한다고 거짓 편지를 보내 그 돈으로 상급자에게 뇌물, 또는 외출을 나가 돈을 흥청망청 쓰는 자들도 있었다.내가 자대 배치를 받고 내무실에 들어서니 거기에 있는 군인은 전부 동생뻘 되는 상급자들이 30여 명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다. 가끔 어린아이들은 나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어떤 어린아이는 생트집을 잡아 나를 구타했고 어떤 바로 밑 동생 같은 놈은 알 수 없는 헛소리를 하며 몽둥이로 나를 후려쳤다. 어린아이들은 수없이 나를 얼차려를 주었다.어떤 때는 눈깔 동작이 건방지고 불량하다고 집단폭행도 당했다. (지금은 비인간적인 언행, 체벌이 없다고 한다. 좋은 세상이다.) 그러나 나는 인내심 수련이라고, 체력단련 훈련이라고 생각했다. 하여간, 육군 졸병은 내무반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정중하게 거수경례를 하며 해병학교에 입학했음을 신고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시원, 섭섭했다.해병학교는 진해 바닷가에 있었다. 해병대 장교는 대부분 여기서 배출한다고 한다. 해군 사관학교도 이웃하고 있는 이곳은 조용하고 공기도 맑고 상쾌한 바닷바람은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여기서 우리는 전반에 걸친 전술학을 배울 것이며 임관하기 전까지 태권도 유단자가 되어야 하고, 공수낙하 훈련, 그리고 특수전 훈련을 수료해야 한다. 여름에는 해군 사관학교에서 전투 수영을 배웠다.왜소한 몸을 가진 나는 무거운 철모와 M1 소총이 나를 힘들게 했다. 더욱이 무거운 철모로 머리가 파묻히고 착검한 총의 높이와 키가 총을 내가 메고 있는지, 총이 나를 메고 있는지,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동기생과 한참 웃었다. 그런 모양새로 완전군장을 해서 진해에서 창원, 또는 천자봉 정상까지 뜨거운 땡볕에 뛸 때면 죽을 것 같지만 낙오만은 하지 않았다. 정신무장이다. '선두에 설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더불어 낙오할 생각도 아예 하지 않는다'동기생 몇이 픽 쓰러진다. 의무병이 들것에 실어 구급차에 싣는다. 스파르타식 교육과 훈련 방식이다. 낙오나 미달은 퇴교다. 수시로 동기생 몇 명씩 퇴교를 당했다. 어떤 동기생은 며칠 있으면 임관을 하는데 아깝게 퇴교를 당했다. 임관을 앞두고 부모님을 임관식에 초청한다는 편지를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병역 기피자로 끌려가 혹독한 벌을 받는 줄 알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임관식에서 나에게 소위 계급장을 달아 주셨다.(6월11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 3회가 게재됩니다)

2019-06-03 18:00:00

2019 수성 문학제 '북잼 토크'

이원길 수필가는 2일 수성못 수변무대에서 '2019 수성 문학제'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초대받아 시민들과 '북잼 토크'를 벌였다. 이날 행사에 장호병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심후섭 대구 아동문학회 회장 등 50여 명이 함께했다.

2019-06-03 08:04:40

한식을 위한 변명/황광해 지음/하빌리스 펴냄

TV를 켜면 먹방 프로그램으로 끊임없이 나오고 SNS에는 맛집 인증샷이 넘쳐난다. 어느 때보다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음식이나 맛집에 관한 책들도 쏟아진다. 음식칼럼니스트 황광해의 '한식을 위한 변명'은 '진짜' 한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혹은 오해하고 있었던 한식을 올바고 잡고, 제대로 한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음식 인문서다.◆궁중음식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된 한식 찾기책은 그동안 잘못 알려져 왔던 우리 음식의 유래와 의미를 정확한 역사적 근거를 통해 바로잡아 준다.'보양식은 없다', '향토 음식은 없다', '궁중요리는 한식이 아니다'. 지은이가 던지는 화두는 우리의 상식을 한참 벗어난다. 그는 삼계탕이 보양식이 아니며, 우리 조상이 굶주렸기 때문에 산나물을 뜯어먹고 살던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 등 잘못 알려져 온 한식의 진짜 모습을 파헤친다. 한식에 대한 이같은 오해가 생긴 것은 진실은 뒤로 한채 음식을 많이 팔기만 한다는 생각과 일본의 잔재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지은이는 궁중음식에 대한 의문을 시작으로 사실과 다르게 포장되거나 잘못 알려진 한식을 연구해 이 책을 썼다. 그는 "작은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왜 힘이 셌던 다른 나라에는 궁중음식이 없을까?' 대한제국은 힘없던, 껍데기만 남은, 짓밟힌 나라였다. 힘센 다른 나라들의 발 아래서 신음하던 나라였다. 그런데 어느 나라에도 없던 '궁중의 음식, 나라님이 먹던 음식'이 등장한다. 왜 그럴까?"라며 진짜 한식을 찾기 위한 여정의 시작을 설명한다.보양식, 향토음식, 사찰음식은 없다. 1장 '그런 음식이 아닙니다'에서는 "우습다 못해 슬픈 것이 삼계탕이다. 삼계탕은 없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삼계탕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한식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삼계탕은 우리 시대에 시작한 음식이다"며 삼계탕이 역사가 오래된 보양식이 아님을 설명한다.또 지역 축제를 한다고 해서 가보면 모든 축제마다 '우리 고장 고유의 음식'이라며 도토리묵을 내놓고 있는 점, 정갈하고 소박한 사찰 음식을 외국인에게 인정받게 하기 위해 화려하게 바꿔야만 하는 것인지 등 반문한다.◆앞으로의 한식은 어떤 길을 가야할까2장 '궁중음식의 진실'에서는 궁중음식이라 잘못 알려진 요리에 대해 얘기한다. 대표적인 것이 신선로다. "신선로 그릇은 태국, 싱가폴 등의 동남아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태국식 국물 요리인 똠얌꿍을 담는 그릇도 신선로다. 동남아에서는 대중적으로 널리 쓰인다. 그걸 우리 정통, 전통, 궁중이라고 포장했다. 많은 돈을 받기 위해서. 한반도 조선의 왕들은 한낱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사용하는 그릇으로 음식을 먹은 셈이다."이와 함께 조선의 왕들이 정말 호화로운 밥상을 받았는지, 궁중음식이 어떻게 대중화 된 것인지, 궁중잡채가 정말 궁중음식인지 등을 고증을 통해 제대로 알려준다. 이 과정에서 궁중음식을 전승했다고 알려진 안순환과 한희순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마지막에서는 지금의 한식과 앞으로 한식에 대해 말한다. 지금의 한식이 슬프게도 일본풍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전통과 정통을 지키는게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한식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을 제시한다."한식의 정체성, 특질은 무엇일까? 한식의 정체성은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밥상의 특질과 원칙을 찾아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옛 음식을 복원하자는 것이 아니다. 옛 음식을 만들었던 정신을 찾자는 뜻이다. 복원의 대상은 고분이지 음식이 아니다."박찬일 요리연구가는 치밀한 고증을 통한 진짜 한식을 끌어냈다며 책을 추천한다. "기자 출신인 지은이는 고정 관념과 시중의 상식을 의심한다. 치밀하게 파고들어 입증해낸다. 그 결과가 이 책이다. 보양식이니 신선로니 한정식이니 심지어 '궁중음식'까지도! 더구나 당대의 한식이 일본풍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있어 온 이야기인데, 이처럼 치밀하게 독자적 시선으로 고증해낸 경우는 드물었다." 236쪽. 1만4천원.

2019-05-30 11:26:37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의 의약품 생산 모습. 매일신문DB

[서평]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 정승규 지음/ 반니 펴냄

신약 개발의 역사적 흐름을 보면 '병이 있는 곳에 약이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질병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약을 만들었다. 아주 우연히 발견한 약도 있고 정밀조사와 과학적 방법으로 만든 약도 있다. 질병이라는 도전에 인간은 약으로 응전했다. 지금은 약과 개념이 다른 항체의약품, 백신, 줄기 치료제 같은 바이오 신약과 개인 유전자 정보를 활용한 맞춤 의료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인간이 질병과 통증에 대해 예방책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지은이는 약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다루면서도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 이야기와 함께 풀어썼다. 각 장은 첫 부분에 개괄적 설명으로 시작해 중요한 약이 개발된 순서대로 전개한다. 역사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사항과 마지막으로 우리 의약산업의 최신 경향까지 알차게 다루고 있다.◆ 푸른곰팡이의 선물 페니실린영국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의 성 메리병원에서 미생물 실험을 하며 감염증 치료를 위한 항균물질을 찾는 연구를 했다. 그는 포도상구균을 납작한 접시에 배양하다 날아온 푸른곰팡이 포자가 배양접시에 번식하면서 잘 배양되던 포도상구균의 성장을 방해했다. 푸른곰팡이 주변에는 세균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알았다. 플레밍은 푸른곰팡이가 항균물질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연구를 통해 페니실린을 처음 발견했다. 플레밍은 푸른곰팡이 배양액 속에 있는 항균물질을 분리하지는 못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병리학 교수인 플로리와 유대인 생화학자 언스트 체인이 실제로 페니실린을 분리해 대량생산에 성공해 약으로 발전시켰다. 페니실린은 20세기 인류의 생명을 가장 많이 구한 기적의 약이 됐다.◆통증 완화 목적 약물이 환각제로마약, 환각작용을 유발하는 약인 마약류는 강한 중독성과 탐닉성이 특징이다. 남용되기 쉽고 정신과 육체를 황폐화시키기 때문에 건강에도 해롭고 위험성도 높다. 대표적인 환각제로는 아편, 헤로인, 코카인, LSD, 필로폰, 엑스터시, GHB 등을 들 수 있다. 환각물질은 끔직한 고통을 줄이는 방편으로 개발됐다. 진통 효과가 뛰어나 개발된 당시에는 획기적인 약으로 사용되었지만, 중독자를 양산하는 등 폐해가 커지면서 법으로 규제됐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법규와 대대적인 단속에 힘입어 오랫동안 마약 청정국 지위를 유지해왔으나 이제는 그마저 깨진 상태다. 한동안 흔히 '물뽕'으로 불리는 GHB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냄새가 없는 흰 가루약으로 알약이나 캡슐 형태로 물이나 술에 타 마실 수 있어서 '물 같은 히로뽕'이라는 뜻으로 물뽕이 됐다.◆ 면역의 비밀을 벗긴 메치니코프엘리 메치니코프는 러시아의 동물학자다. 그는 동물 몸속을 돌아다니는 세포에 흥미가 많았다. 1882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메시나에서 불가사리의 유충을 관찰했다. 불가사리 유충은 투명해서 몸 내부를 볼 수 있다. 그는 장미 가시를 가져와 불가사리 유충의 투명한 몸에 찔러 넣어 보았다. 그러자 가시 주위로 유리세포(식세포)들이 몰려와 덩어리를 만들었다. 그는 "움직이는 유리세포가 몸에 들어온 미생물을 공격해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면역이론이 나왔다. 인간을 비롯해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의 몸 속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유리세포가 있어 병균을 잡아먹는다. 이것이 면역의 개념이다. 메치니코프는 식세포작용에 대한 연구를 거듭해 1908년 '식세포에 의한 면역설'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사랑의 묘약 최음제·비아그라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예전에는 발기부전에 최음제를 사용했다. 최음제는 효능이 있는 경우도 있으나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합리적인 근거보다는 심리요인이나 생김새로 최음제를 썼다. 가장 잘 알려진 최음제는 술이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나 로마의 박카스 축제는 술로써 집단적인 흥분을 일으켜 사랑에 빠지게 했다. 아프리카 관목 껍질에서 추출한 요힘비 또한 성적 욕구를 자극하는 효과로 오래도록 사용했다. 요힘비는 말초 조직의 혈관 확장을 촉진해 발기를 유발했다. 백삼을 가공한 홍삼에 들어 있는 Rg3, 지중해 연안에 분포한 맨드레이크 등도 최음제로 애용됐다. 비아그라는 1998년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가 개발했다. 실데나필 물질로 협심증 치료 임상실험을 하다 부작용으로 발기가 일어나는 사실을 확인해 비아그라를 만들었다.◆ 살인가스가 암치료제로 되다최초로 독가스(일명 겨자가스)를 개발한 사란은 유대인 출신의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다. 1943년 이탈리아 남부 바리 항구에 정박한 연합군 선박이 독일군의 공격을 받았다. 미국 수송선 존 하비호에는 100톤 가량의 겨자가스가 실려 있었다. 선박이 공격받아 파괴되면서 가스가 항구를 덮쳐 연합군 장병과 민간인 1천명 이상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희생자를 부검한 결과 혈액을 만드는 골수가 손상을 받아 백혈구 숫자가 급격히 떨어진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때 겨자가스를 연구하던 학자 루이스 굿맨과 알프레드 길맨은 황 머스타드보다 질소 머스타드가 백혈구 같이 빨리 분열하는 세포 분열을 막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질소 머스타드를 사용해 백혈병뿐만 아니라 림프종과 말기 혈액암 환자도 치료했다. 질소 머스타드를 이용해 개발된 최초의 화학요법제가 메클로에타민(제품명 머스타겐)이다. 292쪽 1만6천원.

2019-05-29 17:26:44

[반갑다 새책]다시 보는 체 게바라, 말콤X, 그리고 사파타/지은이 성장환/교육과학사 펴냄

책의 제목에 있는 세 사람, 체 게바라와 말콤X 그리고 사파타라는 걸출한 세 혁명가를 선택해 이들의 삶을 조명한 이 책은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기보다는, 이들의 삶을 추적해 봄으로써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시사점을 찾아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세 인물이 활동했던 시기는 당시의 세상을 바꾸기 위해 혁명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들은 세상을 변화시킨 많은 인물들 가운데 특히 가난하고 핍박받던 민중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실천하는 지식인 체 게바라,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헌신한 말콤X, 부당하게 빼앗긴 농민의 토지회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사파타.지은이는 "이 책이 세 혁명가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보통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75쪽,1만원

2019-05-29 11:23:39

[반갑다 새책]정신 위에 지은 공간, 한국의 서원/지은이 김희곤/미술문화 펴냄

서원은 선현의 사상을 받들어 유생들을 가르쳤던 사립교육기관이다. 따라서 과거 급제나 관료 양성을 목표로 하던 향교나 성균관과는 다르다. 한국의 서원은 지식 전달을 넘어 삶을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서원의 보편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 서원이 9곳이나 된다. 전국에 분포된 600여개의 서원 중 제향자의 정신이 가장 잘 구현된 곳으로 지은이는 이 9곳의 서원에 대해 다루고 있다.한국 서원은 제향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공간이다. 제향자의 정신을 바탕으로 설계해 이를 구심점으로 유생들을 모았다. '위기지학'(爲己之學'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공부)을 강조한 퇴계 이황은 한국 서원을 정착시킨 주인공이다. 또한 한국 서원은 세상의 기준에 억지로 맞추지 않고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법을 건축공간으로 말해준다.지은이는 책을 통해 서원에서 조선 건축의 매력을 발견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할 길잡이가 될 것을 희망하고 있다. 336쪽, 2만원

2019-05-29 11:23:29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박영귀 당선소감]

내가 싫어하는 것 중에는 골프와 문학이 있다. 골프는 엄두가 안 나서, 문학은 "먹이"가 안돼서다. 대물림하는 지긋지긋한 가난에 골프는 꿈속에서도 없었고 문학이란, 언감생심 고생하시는 부모님 앞에서는 금기 사항이었다. 사춘기 때 몰래 시와 소설, 철학책을 사 보면서 잠시 작가의 꿈을 가졌으나 내 주위의 가난한 문학가를 보면서 서서히 꿈을 접었다. 그런데 55년이 지난 어느 날 골프채가 단단히 굳어 있는 나의 "먹이"의 개념을 깨고 나의 십 대의 꿈이었던 문학을 끄집어 내었다. 나이 71살 때 하와이에서. 겨울이면 고국에서 온 80대 어른부터 본토에서 온 사업가, 종교인까지 이구동성으로 골프를 하자고 했다. 그래서 필드에 몇 번 나가 봤으나 살아온 세월이 강하게 거부하여 포기하자 친한 지인들도 골프장에 가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었다. 그때 하와이 문예공모 광고가 잊었던 사춘기의 꿈을 일깨웠다미친 듯이 글을 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고국을 떠난 지 40년 가까이 한글을 멀리하다 보니 맞춤법과 문법이 엉망이어서 다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평생 남이 만든 울타리에서 어쩔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해 왔던 내가, 내 의지로 쓴 글을 검토하고 수정하고 생각하는 것을 투명하게 글자로 나타내자 어떤 희열을 맛보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나는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71살 늦깎이로 시작하여 72살에 고국의 문학상 당선 소식은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다. 부족한 저를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들과 몸이 편치 못하고 한글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저를 격려하여 이끌어 주신 이언주 하와이 H 문인협회 고문과 김사빈 회장, 그리고 친구 이재기 장로 부부, 아내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2019-05-27 17:00:00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①박영귀

별명이 '해골'인 굶주려 뼈만 남은 아이가 병역 기피자가 되고 육군 일등병이 되었다가 해병대 대위가 되었고 새마을 운동 지도자로 노동자의 지도자로 온 힘을 다하다 미국으로 와서 정신병 진단을 받았으나 그것을 극복하여 미국 연방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하고 긴 타국 생활로 잃어버린 조국의 언어를 찾기 위해 한글을 배우며 작가의 꿈을 꾸는 흘러간 굴곡의 이야기.그때 흘리던 눈물은 지금도 흘릴 수 있는데 한번 떠난 잎은 다시 그 자리에 올 수 없는 나는 낙엽입니다.살 만하니 병들고 다시 고국에 돌아가 살 수 없는 처지의 썩은 낙엽입니다. 고국을 떠난 지 40년 가까이 국적 포기를 안 한 이중 국적자입니다. 그것은 저의 마지막 자존심입니다.중학교는 굶어, 결석을 밥 먹듯이 해서 겨우 졸업을 했고 고등학교는 고1 때부터 취직 반에 들어 고2(?) 때는 민중서관 활판부 수습생으로, 고3(?) 때는 취직 생활을 위한 연습, 졸업 후 K 서적에 입사하여 직장인이 됐습니다. 그래도 대학은 가고 싶어 S 대 입시를 봤는데 수학 문제가 6문제인가, 7문제인가 나왔는데 5-6문제는 전혀 알 수가 없었고, 나머지 한 문제도 아리송해 도중에 시험장을 빠져나왔습니다.그래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종로 학원가에서 수학을 중점적으로 공부를 하고 통금 사이렌 직전에 집에 왔습니다.그러나 다음 해 입시에 또 낙방, 안 되겠다 싶어 다음에는 다른 과를 지원하기로 하고 취직이 쉽다는 후기 대학인 S 대에 입학, 몇 개월 다니다가 저는 영양실조와 과로로 쓰러졌습니다.저의 별명은 해골, 또는 왕 눈깔이었습니다.어릴 때 너무 굶주려 바짝 말라서 눈만 크게 보이다 보니 붙여진 별명입니다. 그런데도 직장과 학교나 학원에 잠을 뺏겨 수면 부족으로 건강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입영통지서까지 나왔습니다.저의 학력은 이것까지 입니다. 그래서 배운 것이 많지 않아 이국 생활 40년, 영어도, 한글도 제대로 못 하는 반벙어리입니다.삼랑진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부모님께서는 영등포 꿀꿀이 죽을 파는 시장 부근에 자리를 잡으셨다. 나는 영등포 영중국민학교(초등학교) 입학했고 얼마 후 동쪽에 사는 학생은 (소문에) 영동초등학교로 (나중에는 남쪽에 사는 학생은 영남초등학교로) 재편성하여 나는 3학년 때에 영동초등학교로 다니게 됐다. 교실은 천막이었다.이(기생충)들이 너무 많아, 특히 여자아이들 머리에는 하얀 것들이 기어 다녔고 서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며 털실로 짠 옷이나 장갑에는 쌀알만 한 이들이 박혀 있었다.남자아이들 머리나 몸에는, 기계 총, 도장 부스럼이라는 피부병이 많았다. 학교에서는 DDT 살충제를 주어 그것을 조그만 주머니에 넣어 상의 겨드랑에 달게 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목욕이나 빨래를 할 여건이 안되어 목욕은 일 년에 한 번 설날 전에 할까 말까 였고 빨래도 자주 할 형편이 안되어 이가 들끓었다. 특히 서캐는 일일이 잡을 수 없어 촛불에 그슬리면 따따따 인민군 따발총 소리를 냈고 추운 겨울에는 얼어 죽으라고 옷가지들을 밖에 내 걸었다.우리 가족들도 미군 부대 식당 쓰레기통에서 나온 음식 찌꺼기를 끓여 파는 꿀꿀이 죽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러나 꿀꿀이 죽은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므로 부담이 가서 자주 먹지는 못 했다. 담배꽁초도 들어있고 동전, 깡통 뚜껑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코 푼 휴지도, 가래침도 있다고 했으나 그때는 그것을 따질 형편이 못 되었고 오히려 그런 것이라도 있는 게 다행으로 여겼다. 운이 좋으면 칠면조 고기도, 햄, 소시지 조각도 먹을 수 있으니, 우리는 그것을 왕건이라고 불렀다. 아버지께서는 신기하게도 어디서 가져오셨는지 미군 물자인 페인트, 잡화 등을 파셨는데 장사가 잘되는지 가게를 차리셨고 "자고 먹을 것만 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아저씨를 점원으로 두셨다. 가게 안에 군용 목침대에서는 아저씨가 주무시고 가게 뒤엔 우리 가족이 살았는데어느 봄날, 가게를 아저씨에게 맡기고 우리 가족은 창경궁 벚꽃 구경을 갔다 왔는데 집과 가게가 불에 타서 재만 남아 있었다.외상으로 가져온 물건들이 많았다고 했고, 더욱이 아저씨가 안 보여 아버지께서는 "내가 김 씨를 죽였다"고 통곡을 하셨다. "그렇게 착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만 구경하러 갔다"고 어머님께서도 우셨다. 부모님께서는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김 씨 아저씨를 위한 위령제를 지냈다.화재로 빚을 잔뜩 지고 갈 곳이 없는 우리에게 아버지는 미군 부대에서 나온 종이상자와 군용 천막 천으로 잠자리를 만드셨고 술과 담배를 못 하셨던 분이 술과 담배를 시작하셨다.실의에 빠진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매일 우셨다. 그때부터 우리 집은 가난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아저씨 혼령을 볼 낯이 없다고 이사를 했다. 전 해군 본부와 장훈 중, 고교가 있기 전 신길동 고갯마루 공동묘지를 옆으로 한 판자촌에 있는 아는 이의 헛간을 빌려 보금자리를 만들었지만, 빚쟁이들이 아우성치는 난장판의 나날이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아예 방 한구석에 살림을 차렸다. 돈을 받기 전에는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중학교 입시가 내일 모레인데 공부는 무슨 공부인가? 밖으로 겉돌았다.메뚜기, 도마뱀을 잡으러 다녔고 남의 밭 고구마, 무를 캐 먹고 관악산, (서울 대학교가 생기기 전) 검지산(산 이름)부근의 절과 기도원 근처에서 칡뿌리를 캐다가 젊은 스님, 박수무당에게 얻어 맞았다.다행히 봉천, 사자암, 신림, 난곡, 고개에는 (달동네가 생기기 전) 서낭당이 있어 북어, 하얀 쌀밥 (잿밥), 과일, 어떤 날은 고기산적, 돈도 있었다. 그것들은 나에게는 진수성찬이었다.운이 좋아 중학교에 들어갔으나 기운이 없어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결석을 하자 반장과 담임 선생님이 집에 찾아오셨다. 이틀을 먹지 못해 송장처럼 널브러진 우리 가족을 봤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교우 돕기 쌀 한 줌씩 가져오기 운동을 벌여 김익주 담임 선생님은 몇 명의 급우들과 쌀 봉지를 들고 집에 오셨다.(6월4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어느 낙엽의 시' 2회가 게재됩니다)

2019-05-27 17:00:00

오늘도 마십니다, 맥주/이재호 지음/다온북스 펴냄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맥주 때문에 결정장애를 겪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여러나라 여러종류의 맥주가 수입되고, 국산 맥주도 다양한 라인들을 출시하고 있어서다. '오늘도 마십니다, 맥주'는 수많은 맥주 사이에서 자신만의 맥주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 맥주를 깊이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맥주 교양서'다.◆어떤 기준으로 맥주를 고를까'에일 맥주', '라거맥주', '페일에일 맥주'…. 브랜드도 종류도 많다. 그렇다면 이 중 '맛있는 맥주'는 어떤 맥주일까. 지은이는 세상에 맛있는 맥주에 대한 유일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못난 맥주는 다 비슷하지만 훌륭한 맥주는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고 말했다.책은 나만의 맥주를 고르는 가이드를 제시하면서 인류 역사와 맥주가 걸어온 길과 오늘날 맥주 산업 현황같은 맥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도 전한다. 맥주 한 잔을 하며 나눌 수 있는 낭만적인 이야기와 맥주에 대한 환상을 깨트리는 이야기도 담고 있다.처음은 맥주의 재료와 제조공정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라거와 에일이 어떻게, 왜 다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조 방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손쉽게 얻은 맥주라 할지라도 그 나름의 과정이 있다. 어쩌면 쓸모없다고 생각했을 맥주의 생산방법은 맥주 스타일을 이해하는 최소한의 정보가 된다.맥주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두 번째 파트에서 이어진다. 다른 맥주 관련 책에서는 간략하게 다룬 역사를 조금 더 세밀하게 다뤄 길고 긴 맥주 역사 속에서 맥주라는 술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 맥주가 얼마나 오랜 시간 숙성되어 오늘을 만들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세 번째 파트에서는 시중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맥주를 스타일별로 다루었다.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맥주 스타일을 기본으로 하지만,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면 인접한 카테고리로 분류해 비슷한 맥주를 한눈에 살피기 쉽다. 게다가 추천 맥주를 덧붙여 관심 있는 맥주 스타일을 시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아무 맥주'가 아닌 나만의 맥주중세 시대 전염병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사순절 수도사들의 허기를 채워주던 맥주는 현재 우리의 지친 오늘을 달래주고 있다. 집 앞 편의점에만 가도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를 만날 수 있는 지금 거기서 거기, 다 똑같은 맥주라는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맥주의 시작은 모를지언정 맥주 스타일은 알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오늘을 구해낼 맥주를 찾아야 한다는 것. 라거와 에일이라는 선택지에서 홉과 아로마의 강도를 따지고 오늘 먹을 음식과 어울리는 맥주 스타일을 고르는 일은 곧 내일의 기분을 만든다.맥주를 고르기 위한 실전편은 마지막 파트에 등장한다. 집에서 맥주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팁과 테이스팅 방법에 대해 엮었다. 다양한 맥주잔, 적절한 맥주 온도, 청결 상태 등에 맥주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단계, 맥주의 풍미를 느끼는 순서와 테이스팅 실전에 대해 알려준다. 여기에 지은이의 인생 맥주 'BEST 6'와 테이스팅 노트도 소개한다.지은이는 보통의 맥주 애호가에서 시작해, 지금껏 650여 종의 맥주를 시음한 테이스팅 노트, 맥주를 즐기는 노하우와 다양한 정보로 6년간 블로그를 운영하며 '맥주 아무거나'가 아닌, 자신만의 맥주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프로 맥주 애호가로 거듭났다. 그만큼 전문가가 아닌, 보통의 맥주 애호가에게 와 닿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는 맛있는 맥주를 알려달라는 친구와 동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맥주에 얽힌 저마다의 사연을 이해하면 맥주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 믿는 한 사람으로, 오늘도 새로운 맥주를 찾고 마시고 쓰고 있다.이 책에는 무수히 많은 맥주 이야기와 스타일이 열거되어 있지만, 맥주의 모든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만 알아도 '아무 맥주'나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알아 두면 쓸모 있는 충분한 맥주 정보이자 맥주 이야기다. 맥주 애호가가 써내려간 맥주 이야기를 읽다보면 시원하고 맛있는 맥주 한 잔이 간절해질 것 같다. 280쪽, 1만4천500원.

2019-05-23 10:24:12

[반갑다 새책]천주 신앙으로 일구어 낸 나눔과 섬김의 자리/안동교구 50주년 역사편찬위원회 편/천주교 안동교구 펴냄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준비하고 읽는 교우 여러분들께도 주님 안에서 축하와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 두봉 주교-2019년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2년 전부터 가정과 본당 그리고 교구공동체의 쇄신운동을 펼쳐온 안동교구는 반세기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결과물이 '안동교구 50년 역사편찬'사업이었다.이 책은 교구의 '통사'(通史)와 제 본당과 교구 내 각종 활동단체, 수도원, 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 등의 '약사'(略史) 그리고 제 본당과 공소의 도록집으로서의 '천주신앙으로서 일구어낸 나눔과 섬김의 자리' 및 '역사화보집' 등 4가지 형태로 발간됐고 또 '부록'으로 역대 교구장의 사목교서와 교구의 주요 공적 문서들도 함께 발간됐다.1천200쪽, 비매품

2019-05-21 16:25:01

[반갑다 새책]표해록/최부 지음'허경진 옮김/서해문집 펴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 이어 세계 3대 중국 기행문에 꼽히는 '표해록'은 이미 많은 번역본이 나와 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이다.지은이 최부는 1487년 추쇄경차관(도망간 노비를 찾아 체포하는 벼슬)으로 임명돼 제주로 갔다. 여기서 그는 1488년 아버지 부고를 듣고 고향인 나주로 가던 중 바다를 표류하게 됐다. 그리고 약 보름 동안 표류한 후 천신만고 끝에 중국 절강성 연해에 도착한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이나 해적을 만났고 육지에 올라서는 왜구로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조선 관리임을 알게 된 현지인에 의해 운하와 육로를 이용, 명나라 수도인 북경까지 호송을 받아 당시 황제 효종을 알현하게 됐다. 이후 요동반도를 거쳐 약 6개월만에 압록강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온다. 단 한 명의 희생이나 낙오자 없이 말이다.이후 최부는 성종의 명에 따라 일주일간 쓴 글이 바로 '표해록'이며 이 책은 15세기 중국의 생생한 모습을 현재까지 전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276쪽, 1만4천500원

2019-05-21 16:23:17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7회)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두 분이 서로 존대어를 쓰셨고 부부싸움을 하신 날에도 잠은 꼭 한 방에서 주무셨다.어려운 살림에 어찌 고단하고 힘들지 않았을까 만은, 삯바느질로 자식들 뒷바라지하시며 묵묵하게 그리고 늘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어머님!오신지 일 년이 지나지 않아 병명도 알 수 없는 병으로 전신 마비가 되어 대소변도 받아내야 하는 차남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끝에 의사로 의대교수로 키워내신어머님!맏며느리가 하늘나라로 가자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인 어린 손자 손녀를 손색없이 키우신 어머님!경상도 사나이의 전형이시던 아버님이 84세로 당신의 곁을 떠나던 그 날까지 진정한 내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셨던 어머님!평생을 독서와 기도를 취미로 하시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삼종기도를 하셨던 어머님!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시느냐고 질문하면 씩 웃으시며 "딱 두 가지다"라고 하셨지요."하나는 너희들 잘되라고 또 하나는 내가 너희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하늘나라에들게 해달라고 기도한다"하셨지요.어머님!용서해주세요.어머님께서 놀라실까봐 셋째가 먼저 간 것을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아차! 지금쯤 영곤이를 만나서 더 놀라셨겠네요.어머님!떠나시면서 저희들에게 남긴 무형의 유산이 너무 많습니다.그리고 한 가지 더 좋은 것은 무형의 유산이라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네요..어머님!상속세 대신에 어머님 가르침대로 남을 배려하고 관용하면서 일하듯이 기도하고 기도하듯이 일하면서 살게요.참! 어머님 제가 이번에 신인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네요.내달 초순에 상 받으면 어머님께 꿈 속에서 라도 드릴게요.정말 너무 너무 보고 싶네요.어머니!부디 불효자식을 용서하시고 하나님 보필 잘 하십시오.보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제 꿈나라로 오세요.저도 어머니 보고 싶으면 꿈나라로 달려갈께요.어머님!안녕히 계세요. 제일 속 많이 섞힌 차남 올림. ▶쌍둥이 에피소드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나의 가장 어릴 적 기억은 할머니에 닿는다.할머니께서 외출을 하실 때 웬만한 곳이면 쌍둥이 손자들을 데리고 다니셨는데 전차만 타시면 아무도 물어본 사람도 없는데 애써 다가가 ''우리 손자요. 우리 쌍둥이 손자. 참 예쁘지요?''하고 자랑을 하시는 것이었다.일면식도 없으면서도 예외 없이 "고놈들 참 귀엽네"라고 대꾸를 해주었다.워낙 많이 닮아 친척들도 구분을 잘 못했다.음성은 너무 비슷해서 아버지께서도 '큰 곤이냐? 작은 곤이냐?'라고 물어보실 때가적지 않았다.쌍둥이로서 에피소드가 한 둘이 아니지만 참 난감할 때도 있었다.여름방학 때 청주 어느 이발소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는 누군가가 인사를 하는데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엉거주춤 아는 채를 하고는 이발이 끝나고 이발비를 내자 아까 그 사람이 내 것도 함께 내고 갔다고 했다.쌍둥이 동생을 잘 아는 누군가 나를 동생으로 착각을 한 것이 분명했다.집에 돌아와 쌍둥이 아우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기는 했는데 아우는 그 사람이누구인지 전혀 감이 안온다고 했다.본의 아니게 아우는 그 사람에게 큰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도대체 누구인지 알아야 고맙다는 인사라도 전할 텐데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그리움이란 끝이 없는 것인가언제까지 그리움을그리움으로 달래야 하는가 밤 사이에 별빛 타고 와서는내 창가를 가만히 두드리다말없이 돌아서는너의 뒷 모습을 물끄러미쳐다만 보다 화들짝 놀라서 달려 나갔지만어느새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가버린 너의 흔적에 눈물로 답하는이 안타까움은 또 어찌해야 하는가 쌍둥이 아우야그토록 그리움이 몸서리 친다면 우리이전 처럼 그렇게 함께 살자이승에서든 저승에서든함께 살자 그리움이 끝이 없다면차라리 함께 살자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문학상 대상 당선소감문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고 넝쿨 장미가 흐드러진 오월에 윤동주시인 탄생 백주년기념 문학공모전에서 뜻밖의 대상 수상소식에 접하고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릿속이하얗습니다.의사대상은 받은 적은 있지만 고등학교 재학 중 대상을 받은 이후 문학공모전에서대상 수상은 거의 반백년만입니다.의과대학시절 '필내음'이라는 문학 동아리에서 오세영 교수님께 잠깐 지도를 받은 후진료에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외도를 했습니다.마음 한구석에는 늘 미진한 무엇인가가 남아있었고 문학에의 갈증은 여전하여 2년 반 전에 영남문학신인상으로 늦깎이 등단을 하였습니다.짬짬이 떠오르는 시상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이 오늘의 영광스러운 순간으로 돌아온 것이라 생각합니다.새 생명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가 되고 희망을 노래하는 사공이 되어 우울에 지쳐삶을 포기하고자하는 환우들을 위해 그리고 밤을 하얗게 밝히는 불면증 환우들을위해 아무리 시시한 것에도 철학이 있다는 신념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겠습니다.비우고 버리면서 밝은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고운 마음으로 읽어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미흡하고 미흡한 졸작을 대상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 여러분들께 깊이 머리 숙여감사를 드립니다.영남문학예술인협회 가족들 그리고 문학시선 가족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오래보고 자세히 보면서 아름다운 시어에 살아있는 철학을 입히는 작업을 더 열심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항상 겸손하게 살겠습니다.성하지 않은 남편 곁에서 40년을 자나 깨나 애기 돌보듯 보살펴주는 내 사랑 한용희,그리고 부끄럽지 않게 당당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내 등불 종원, 내 희망 종윤에게 고맙다는 인사 전합니다.늘 그래왔듯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일하듯 기도하면서 나머지 주어진 시간을 빈틈없이 채우겠습니다.서쪽하늘로 지는 멋지고 값진 석양이 되겠습니다. 모든 분들께 거듭 감사드립니다.〈끝〉 (5월28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장선작인 민윤숙의 "아니야, 안 돼, 안 돼." 첫 회가 게재됩니다.)

2019-05-20 17:30:00

[반갑다 새책]감성촉촉/오영희 지음/동아문화사 펴냄

시 낭송가이자 시인으로 활동 중인 지은이의 첫 산문집이다. 42년 전 지은이에게 전해진 'J'의 사연으로 시작한 추억의 연결고리는 연애의 감정처럼 '두근거림'으로 이어져 '용기' '추억' '지금' '감동' 등 4개의 우체통을 통해 감성을 전해주고 있다.'마음의 바다가 넓어야/ 받아줄 수 있고/마음의 눈이 밝아야/길을 찾을 수 있으며/가슴에 따듯함이 있어야/사람을 느낄 수 있는/다시, 사랑으로/촉촉한 월요일 되세요'(본문 중)책은 매주 월요일을 테마로 '나'에게서 '너'에게, 현재의 나로부터 미래의 나에게 전해지는 시와 편지들을 모았다. 육필의 편지글과 함께 게재된 시들은 단연으로 구성되어 짧지만 깊은 울림이 있다. 산문과 운문의 경계를 허물고 두 손을 마주 잡은 감동으로 공감을 주고 있다.간간이 들어있는 육필편지를 통해 지은이의 생활과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고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편지를 보낸 이의 그 마음을 귀히 여겨 온전히 간직한 정성이 마음 한 켠을 촉촉하게 적신다.'흔들려/본 사람은 안다/살아 있음에 흔들릴 수 있는/아름다움/흔들어서 바로 세워지는 길/다시, 흔들리는 촉촉한 월요일 되세요'(본문 중)책 안을 보다 보면 또 하나 시를 더욱 아름답게 빛내주는 것들. 바로 흑백 사진물들이다. 찍은 이는 지은이의 지인으로 이 책을 위해 선뜻 자신의 작품을 내어주었다고 한다.활자와 사진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지은이와 지인의 우정 또한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나는 언제나 그대로/너도 언제나 그대로/내가 밝으면 너도 밝고/내가 어두우면 너도 어두운/나로 인한 밝고 어두운/다시, 나와 너가 어울리는/촉촉한 월요일 되세요'(본문 중)213쪽, 1만3천원

2019-05-18 02:30:00

'미중전쟁의 승자' 책표지

[서평]미중전쟁의 승자, 누가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최병일 지음/ 책들의정원 펴냄

인구 14억의 세계 최대 무역대국이자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미국 IT기업 못지 않은 화웨이,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등을 정면에 내세우며 기술굴기의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렇듯 턱 밑까지 따라온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무역을 넘어 기술까지 넘보는 중국을 막기 위해 미중 무역전쟁을 선포했다. 대화와 타협으로 조기에 끝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장지전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은 '세계 1위 대국'이라는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패권전쟁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지은이 최병일 교수는 미중 관계가 이제는 '경쟁력 협력'에서 '대립적 경쟁'으로 바뀌었다면서 미국과 소련 사이에 벌어졌던 냉전시대 중 미국이 삼각외교를 통해 중국과 손을 잡았던 그때가 미중전쟁의 전초였다고 밝힌다. 더불어 2001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중국의 WTO 가입을 적극 후원하면서 제 발등을 찍게 되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미국 왜 중국과 무역전쟁 시작했나"중국은 우리에게 5천40억 달러 규모의 무역수지 적자를 안겨주고 있다. 누구는 3천750억 달러라고도 한다. 무역수지를 바라보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어떻게 보더라도 세계 역사에서 이런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는 유례가 없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지식재산권 도둑질은 계속되고 있고 그 피해액은 수천억 달러가 될 것이다."-2018년 8월 백악관 발표미국은 1979년에서 2016년까지 제조업체의 일자리가 1천900만 개에서 1천200만 개로 줄었다. 제조업 일자리는 2000년 경 1천800만 개 정도에 머물고 있었는데 2001년부터 급감하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56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미국 제조업 고용 역사상 가장 큰 감소다. 이는 중국산 수입품이 급증하면서 2001년 미국 제조업 고용이 급감했다. 정치권 활동가들은 중국과의 무역을 이면의 원인으로 지목했다.◆미중 통상갈등 주요 쟁점은 뭔가우선 미국의 대중국 무역불균형이다. 미국의 무역 적자는 1990년 100억 달러에서 2015년 3천670억 달러로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수치는 '개방된 미국 시장, 폐쇄된 중국 시장'이라는 증거로 제시돼 중국 시장의 개방을 압박해왔다.둘째는 중국의 해외투자 중 미국 투자 비중이다. 중국은 미국에서 주로 M&A에 집중하고 있으며 주요 타깃은 기술 분야다. 미국은 국가안보의 위협 가능성에 우려를 하고 있다.셋째는 미국은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보고 있다. 위안화 환율을 중국 정부가 결정하고 중국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위해 위안화 환율을 시장 가치보다 낮게 저평가한다는 것이다.넷째는 미국은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이 기술 이전을 강요받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기업의 기술 이전은 중국 정부의 강요가 20%, 중국 기업의 요구에 의한 경우가 80%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사이버 보안도 심각한 갈등 요소다. 중국 정부가 민간 전산망에 침투해 입찰 정보, 영업 기밀 등을 해킹한 후 중국 기업에 전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미중 무역전쟁 격화, 기술전쟁 계속트럼프는 작년 12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진핑을 만나 중국의 굴복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무역수지 등 쟁점에는 합의에 근접했지만 미국이 지속해서 제기해온 중국의 구조 변화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을 보지 못했다. 미국은 빅딜을 추구하고 중국은 스몰딜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정부의 보조금이 기술굴기 수단이므로 스몰딜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화웨이가 G5 통신망 장비에서 선두그룹에 있다는 사실도 미국을 고심하게 만든다.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는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당의 지시를 따르며 산업기밀을 훔치고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며 적성국과 수상한 거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지은이는 "미중 무역전쟁은 중국의 기술굴기가 미국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함을 보여주지만 역설적으로 중국 정부에게 기술굴기의 치명적 중요성을 일깨워주고도 있다"며 "중국의 기술굴기의 의지가 강해질수록 이를 차단하려는 미국의 노력 또한 강해질 것"이리고 전망했다. 280쪽 1만6천원.

2019-05-15 17:36:48

물망/강호원 지음/들녘 펴냄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조선 전기 무신 이징옥은 세종 때 북방 6진 개척에 공을 세운 용장으로 김종서의 뒤를 이어 함길도 도절제사를 지냈다. 조선조 세종과 문종, 단종 3대에 걸쳐 북방을 지키던 이징옥은 역사서에 역적으로 기록돼있다. 수양대군이 권력을 잡기 위해 김종서 등을 죽인 계유정난 이후 군사를 일으켜 수양대군에 맞서려 했던 이징옥은 역적으로 남았다. 그의 거병은 '이징옥의 난'으로 기록됐다.조선왕조실록 등 정사에 따르면 단종 때인 1453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사실상 왕권을 잡고 이징옥을 불러올리자, 서울로 오던 그가 정변을 눈치채고 돌아가 자신의 자리에 임명된 박호문을 죽였다. 그리고 자신을 대금황제(大金皇帝)라 칭하며 도읍을 오국성(五國城)에 정하려 하니 야인(野人)들이 복종했다고 한다.계유정난 당시 혼란한 틈을 타 북방의 여진족 세력을 등에 업고 대금황제를 칭하며 군사를 일으켜 역모를 도모했다는 것인데, 소설 '물망'은 '이징옥의 난'이 사실은 '충신의 거병'이었음을 주장하는 역사소설이다.◆역적으로 남은 이징옥을 재조명하다단종의 복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성삼문, 박팽년 등 선비들은 시간이 흐른 뒤 '사육신'(死六臣)으로 존경받지만, 이징옥의 단종에 대한 충심은 반란이라는 틀에 갇힌 채 재평가 받지 못했다.소설은 이징옥의 거병이 역심으로 군대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종신들을 피살하고 단종을 사실상 구금 상태에 두며 왕위 찬탈에 대한 야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에 반기를 들고 종사를 정상화하기 위해 의거한 것이라는 시점에서 시작된다.지은이는 증거 중 하나로 '세종실록'을 든다. 세종실록에는 이징옥을 애민 정치를 펼쳤던 참 수령이자, 왕의 두터운 신임을 입었던 충신이라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수양대군이 세조로 역사의 승자가 됐고, 패자인 이징옥은 역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이 소설은 조선왕조실록을 기반으로 한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 사필귀정(事必歸正),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기치를 들고 수양대군과 그 도당의 패도에 맞서 일어서는 이징옥과 그를 따르는 북방의 무장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충신들을 재평가하고, 패자로 남아 사라진 역사를 드러내고자 하는 문학적 시도가 담겨있다.◆이징옥과 북방 역사를 회복해야언론사에서 편집국장과 논설실장을 역임한 지은이 강호원은 이징옥과 함께 여진족에 대한 평가도 왜곡돼있다고 봤다.수양대군은 이징옥의 거병 이후 보복 차원에서 친(親) 이징옥 성향의 '올량합 여진족'을 가차 없이 숙청한다. 이로 인해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 당시부터 줄곧 우호적 관계를 맺어왔던 여진족과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된다. 또 '오랑캐'라는 비하 표현도 당시 올량합의 독읍을 변형한데서 유래돼 아직까지 쓰이고 있다.지은이는 여진족과 관련된 역사를 부정하고 적대시하는 태도에서 발해 역사를 삭제했던 '삼국사기'의 편협한 사고와 같은 역사 인식이 되살아났다고 탄식한다. 세조대에 이르러 이징옥에 대한 역사를 지우는 과정에서 여진족과 관련된 우리 북방 역사도 상당 부분 누락됐다는 것이다.소설은 이징옥을 재조명하고, 여진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고쳐나가는 등 북방 역사를 회복하는 길만이 식민사관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지은이 강호원은 우신고를 나와 경희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원에서 동양 역사를 공부했지만 공부를 마치지 못했다. 세계일보에 입사해 북경특파원, 경제부장, 논설위원, 편집국장, 논설실장으로 일하면서 역사 공부를 이어갔고, 옛 조선(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는 북방 역사를 함께 일군 여진인을 오랑캐라 부르며 적대시하는 편협한 역사 인식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물망'은 그런 안타까움을 품고 쓴 소설이다. 저서로 '중국에서 대박난 한국 상인들', '베이징 특파원 중국경제를 말하다'(공저)가 있다.

2019-05-15 14:22:27

일러스터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6회)

놀란 직원들의 도움으로 이웃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틀간 입원하면서 뇌 MRI는 물론 각종 검사를 다했었다. 진단 결과는 과로로 인한 뇌허혈성 장애였다. 퇴원 직전에는 위내시경 검사와 조직검사도 하고 왔다. 4월 말일 유난히도 비바람이 거세던 날 그야말로 잔인한 소식이 나에게 전해졌다. 위암이라 당장 수술을 해야 하니 지금 바로 입원하라는 것이었다. 진료실 창밖을 내다보니 바람은 더 거세졌고 빗줄기도 더 강해져 있었다. 믿기지 않는 소식이라 재차 전화로 대학병원에 확인하였으나 당장 입원하라는 말 뿐이었다. 전이여부는 수술을 해봐야 알겠다는 전언도 함께. 한참을 생각하다 내일 입원하겠다는 연락을 하고는 직원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아내한테 전화를 하였다.출타 중이던 아내는 황망한 표정을 하고 내 진료실에 들어섰다. 이틀 뒤 내 14번째 수술은 위암 수술이 되었고 위의 사분의 삼을 절제했다고 들었다. 다행히 특별한 전이는 없었고 2주 만에 퇴원을 했다. 단 한 달만 이라도 쉬지를 못한 것이 지금도 후회되지만 퇴원 후 이틀 만에 다시 진료를 개시했다.죽으로 끼니를 때우고 종일 상담실을 지키는 동안 체중은 자꾸만 자꾸만 줄어들었다. 하체의 힘은 빠지고 기운도 없었지만 나의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버티다보니 차차 호전되고 환자도 무리 없이 보게 되었다.◆열다섯번째 수술이제는 병마와 영원한 이별을 했을 것이라고 안심하고 진료실을 지키던 2010년 어느 날 밤 갑자기 배가 풍선처럼 불어나면서 복통은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고 이러다가 배가 풍선 터지듯이 터져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다시 대학병원 응급실을 거쳐 입원을 하였다.이틀을 꼬박 통증과 싸우면서 수술하지 않고 완화시켜보려 노력했지만 결국 내 생애 열다섯 번째로 또 수술실을 구경하게 되었다. 소장협착증으로 인해 이번에는 소장을 잘라냈다. 퇴원 후 역시 불편해하는 환우들을 외면할 수 없어 이틀 만에 다시 진료실에 나갈수 밖에 없었다. 울산 동구의 유일한 정신과의원이라 내가 자리를 비우면 환우들은 시내까지 가야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체중 감소는 오히려 위암 수술 때 보다 더 심하게 왔다.키 158센티미터에 체중이 16키로가 빠졌으니 기운이 더 없어지고 하체의 힘은 더 빠져 한동안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었다.그러나 의사라는 직업은 함부로 제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다.누가 대신 해 줄 수 없는 일이기에.◆늦깎이 시인 등단17년간 연속해서 울산에서 서울로 수시로 오르내리며 정열을 쏟았던 의사회 임원 일을 그만두고 진료에 전념하게 되면서 건강도 어느 정도 찾아가고 진료실도 안정되어 가고 있어 마음의 여유도 생겨 그동안 접어 두었던 글쓰기에 취미를 갖게 되었다.틈틈이 의사회 회지에 시를 발표하기는 했지만 내 시를 밖에 드러내기는 너무 미흡하다고 생각할 즈음 아내의 권유로 영남문학예술인협회 신인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했다.2015년 겨울호에 시 ''가는 봄 오는 봄'' 외 2편이 당선되어 신인상을 수상함으로서 본의 아니게 시인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문학공부를 하게 되었고 수시로 시상이 떠올라 잠을 설치기가 다반사였다.올해 오월에는 '문학시선작가회'와 서울신문이 공동주최한 윤동주시인 탄생 백주년 특별문학상 공모전에서 '' 내 몸에 담은 동주형의 꿈''(김정곤의 자화상)이 대상수상작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2년 후 봄이 오면 내 뒤를 이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는 아들에게 내 진료실을물려주고 은퇴를 할 생각이다. 은퇴 후 일 년간은 의대 졸업식 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면서 신과 약속한 의료봉사를 하면서 좀 더 문학공부에 심혈을 기울이고 싶은 소망을 가져본다.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좋은 글 은은한 향기가 나는 글을 쓰고 싶다.한 명에게만 읽히는 백편의 시 보다도 만 명에게 읽히는 시 한편이라도 남기고 싶다.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아버지와 어머니의 재회아버지가 총각시절 첫 애인이었던 어머니와의 결혼은 할머니의 강력한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에 반발한 아버지는 세 번씩이나 가출을 하여 북간도로 도망을 다녔다. 결국 아버지는 내 생모와 결혼을 하였고 어머니는 충격을 완화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가 양재학원을 다니다 결혼하였는데 딸이 태어나고 그 이듬해 갑작스러운 사별을 하고 청상과부로 살다가 내 엄마가 돌아가시고 몇 년 후 아버지와 재혼을 하셨다. 콩쥐팥쥐 이야기만 듣고 자란 사춘기 소년은 계모라는 선입견으로 얼마간은 경계를 했었는데 친척 어른들께서 아버지의 첫 연인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머니라고 불렀다. 끼니도 걱정해야 할 궁핍한 가정에 그것도 5남매나 되는 자식들을 돌보겠다고 딸 한명을 데리고 자진해서 우리 집으로 오신 것에 대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새어머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청춘을 다 바쳐 삯바느질로 6남매의 뒷바라지를 하셨고 아버지께는 절대순종을 하셨다.호강 한번 못하시고 97세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과 존경심은 영원할 것이다.◆어머니 전 상서하늘나라에서 천사가 한 명 부족하셨나보다. 97세가 되신 어머님을 부르셨다. 내가 열네 살 때 엄마가 돌아가신지 일 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 아버님께서 나를 데리고 어디를 가자고 하셨다. 어떤 예쁜 여인과의 첫 만남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분이 우리 집으로 오셨고 내 어머니가 되셨다. 어린 나이에도 아무것도 볼 것 없는 집안에 그것도 자식이 5남매나 되는 지지리도 궁상맞은 집에 청상으로 왜 오셨을까 궁금했었다. 어머님이 고생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하늘나라 천사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바로 저 분이 천사이시구나 생각했었다.한참이 지난 후 큰어머님을 통해 아버지와는 첫 연인이셨고 어찌어찌한 사정으로 두 분은 헤어지게 되었고 아버지는 두 번이나 만주까지 가출을 하셨지만 결국 할아버지의 뜻대로 장가를 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하셨다.어머니는 아버지가 결혼하시자 일본으로 가셨고 양재학원에서 공부하시던 중 결혼하셨고 딸 한 명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상이 되셨다고 한다.사춘기 예민한 시기의 올망졸망 6남매를 잘 건사하셨고 작은누나와 우리 5남매와의 갈등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해 주셨다. 어떤 계모 이야기나 콩쥐팥쥐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동화나 소설에 불과했을 뿐이다.(5월21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 7회가 게재됩니다)

2019-05-13 17:30:00

긱 워커로 사는 법/토머스 오퐁 지음/미래의창 펴냄

필요에 따라 단기 계약을 맺고 일회성의 일을 하는 긱 경제시대(Gig Economy)가 열렸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지고 전통적 노동문화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일자리 시장에서는 새로운 선택지가 급부상하고 있다. 독립형 단기 계약 근로자를 통칭하는 '긱 워커'(Gig worker)다.'긱 워커로 사는 법'은 새로운 시대의 노동형태로 떠오르지만 다소 불안감을 가질 수 있는 긱 워커들에게 효율적으로 개인의 재무를 관리하는 법에서부터 클라이언트 관리법, 무리한 요청을 현명하게 거절하는 법, 업무 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긱 경제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긱 경제와 긱 워커중소기업을 위한 정보 사이트 올톱스타트업의 창시자이자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행동에 관한 최고의 글을 모아 무료로 제공하는 주간 뉴스레터 포스탠리 위클리 발간자인 '토머스 오퐁'은 빠르게 변화하는 긱 경제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스스로 선택한 일을 성공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필수 지침을 이 책에 담았다.1920년대 초 미국의 재즈 공연장에서는 밴드 연주자가 오지 못할 경우 즉석에서 연주자를 섭외해 공연을 벌였는데 이런 상황을 긱(Gig), 연주자들을 긱 워커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유례한 긱 워커는 프리랜서나 자기고용 근로자, 독립 계약자를 모두 포괄하는 말로, 긱 경제를 활용해 수입을 내는 사람을 지칭한다.'긱 경제'는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초에 탄생했다. 당시 실직자들이 일자리를 가리지 않고 자신을 받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되는대로 일했던 현상을 빗대어 쓰면서 널리 쓰이게 됐다. 긱워커는 우연히 일을 하게 된 연주자에서 정규직 취업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단기직으로 일하게 된 근로자를 의미했었지만, 현재는 추가 수입이 필요해 시간제 긱 워커로 일하는 사람, 능력이 뛰어나 자발적으로 정규직을 포기한 근로자들을 뜻하게 됐다.전 세계 많은 사람과 수천 개의 기업이 긱 경제라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 방식으로 혜택을 보고 있다. 긱 경제에서 기업은 필요할 때마다 스마트폰 같은 중개 플랫폼을 통해 일을 맡기고, 노동자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단기 계약을 맺고 기업이 원하는 일을 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업무 일정을 직접 관리할 수 있으며, 전통적인 형태의 장기 고용 계약에 얽매이지 않고도 수입을 얻는다. 긱 경제의 근로자들은 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유연한 근무 시간과 여유로운 일정을 즐기며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의미 있는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다. 필요에 따라 계약을 맺고 일회성의 일을 진행하는 긱 경제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이 시대에 속한 많은 이들의 필요와 바람 때문이다.긱 경제는 개인과 기업 모두 각광받고 있는데, 대표적인 긱 워커인 우버 운전기사의 경우 런던에만 4만명이 넘는다. 맥킨지 연구소에 따르면 영국 전체 근로자 3천200만명 중 15.6%인 500만명가량이 긱 경제 형태로 일하고 있다.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긱 워커그렇다면 긱 워커의 생활이 맞는 사람은 누구일까. 또 긱 워커로 일하려면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책은 이 같은 궁금증에 대한 실용적 조언을담고 있다. 또 긱 워커의 길을 먼저 걸어가 성공의 궤도에 오른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분야마다 마주할 수 있는 현실적인 상황과 팁도 전한다. 조언을 따라 자신의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확인하고, 경력을 새롭게 쌓아 올리고, 자기만의 브랜드를 구축하여 좋은 업무 파트너를 만나는 모든 과정을 거치면 꿈꿔오던 생활을 어느새 안정적으로 누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가 인터뷰한 디자이너이자 작가 폴 자비스는 글쓰기, 디자인, 코딩 등의 업무를 20년가량 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업무를 매일 다른 일정으로 수행하며 어떻게 해야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카피라이터 조 멀리치는 여러 유명 기업 및 광고 회사와 함께 일했다. 6년 정도의 직장 생활을 거친 후 유연 근무가 가능한 긱 워커 생활을 선택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에멀린 피젠은 다른 프리랜서들과의 관계를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긱 워커다. 그는 그래픽 노블을 직접 집필하며 책, 광고, 만화, 동영상 등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고 있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마케팅 컨설턴트 시드 바라스는 여러 회사에서 개발자 혹은 컨설턴트로 근무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기업의 사업 확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클라이언트에 따라 매일 달라지는 업무들을 자유롭게 수행한다.세상에는 이보다 더 다양한 삶의 유형이 존재한다. 각기 다른 목표와 꿈을 품은 많은 사람이 하나의 방식이 아닌 자기에게 맞는 형태로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지은이는 세계화의 흐름에서 '유연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 망설이던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도전해볼 수도, 일정한 시간 동안 한 장소에 얽매여 있을 수 없던 사람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일을 시작해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 원하는 바에 알맞게 나의 일을 선택할 때라고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권한다. 271쪽, 1만5천원.

2019-05-09 11:33:55

[반갑다 새책]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들/전영백 지음/한길사 펴냄

책의 부제 '전시가 이즘(ism)을 만든다'처럼 20세기 현대미술의 결정적 순간을 품은 전시들의 역사와 맥락을 짚어낸 지은이(홍익대 교수)의 역작이다. 현대미술의 중요한 분기마다 결정적 역할을 한 전시들을 소개하면서 단순히 이런 일이 있었다고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 그 사건의 주인공들이 빠져든 고뇌, 맞닥뜨린 사건, 성공과 실패, 전후 맥락과 미술사적 영향력을 고루 다루고 있다.기존의 미술책이 사조나 인물 등을 중심으로 다루는 데 그쳤다면 이 책은 전시사(展示史), 즉 전시를 중심으로 그 배후에서 미술사를 움직인 작가, 비평가, 아트딜러 등의 이야기를 풀어낸다.'야수주의의 경우 1905년 제3회 '살롱 도톤'에서 그들의 작품을 처음 본 평론가들이 '야수들'이라고 평가한데서 야수주의라는 사조 자체의 이름을 얻었다. 마티스, 블라맹크, 드랭 등의 회화는 정말 야수처럼 강렬하고 공격적인 색채와 파격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특히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이 큰 화제가 되었다.''다리파는 키르히너, 놀데 등이 활동했다. 이들은 '아웃사이더' 성격이 강해 스스로 전시장소를 모색했다. 대규모 전시가 아니다보니 아담한 공간에 단순한 액자에 넣은 그림을 가깝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르주아 관람객을 대상으로 점차 알려지게 됐다.'또 '개념미술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미술경향으로 이전까지 미술의 핵심이었던 시각성에 반대하며 시각적 환영을 거부한다. 이는 미니멀리즘의 대상조차 버리고 아이디어와 의미를 강조하며 미술의 본질에 대해 탐색한다.'책은 이처럼 하나의 사조가 탄생하기까지의 미술사적 스토리들을 상세하게 기술함으로써 읽는 재미와 함께 현대미술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야수주의부터 개념미술까지 현대미술의 여러 전시와 사조, 작가를 소개한 지은이는 책의 끝부분에서 "오늘날 미술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이즘'은 없다"라고 의미심장한 명제로 자신의 주장을 선언하고 있다. 560쪽, 3만2천원

2019-05-08 15:12:40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5회)

이차 면접에서 예상했던 문제가 터졌다.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데 이론수업은 그렇다 치고 어떻게 그 어려운 해부실습 수술실실습 등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겠는가를 두고 면접관 교수님들의 의견이 분분했다.충남대학교에 의과대학이 신설 된 지 5년 밖에 안 되었으니 이런 경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아직 없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서도 불합격되면 어쩌나 노심 처사 끝에최종 합격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수석 합격생이 나와 비슷한 수준의 지체장애인이라나도 덩달아 합격이 된 것이었다.이것이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는 사실을 살아가면서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의과대학 졸업 입학했다는 기쁨과 뿌듯한 마음으로 즐겁게 예과 2년을 마치고 본과로 진학하자마자 해부학 실습이라는 고약한 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격한 포르말린 냄새야 병원 생활을 오래 한 나였기에 별문제가 없었지만 어려운 의학용어 그리고 나이 어린 의대 선배들의 군기 잡기가 결코 녹록지 않았다.툭하면 이런저런 핑계로 매타작이 다반사라 아예 내복을 두툼히 입고 학교에 다녔다. 그렇지만 의사가 되어야 신부도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티고 버텼다.임상에 들어와서는 정신과라는 학문에 매료되면서 그리고 연애를 하면서 반드시신부가 되지 않아도 정신과 의사가 된다면 내 꿈의 절반은 이루어질 것이라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신부에의 꿈을 접고 의과대학을 졸업했다.어렵고 고단하다는 인턴 생활도 여러 동기생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치고 정신과를 지원하려 했으나 모교에는 자리가 없었다.그러나 이 또한 운명이었을까? 인연이었을까?지금은 고인이 되신 정신과 주임교수님의 소개로 서울 강북삼성병원에 가서 이시형 박사님의 제자가 되었다.▶정신과 전공의 시절서울에서의 정신과 전공의 시절은 나의 황금기였다.이런저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난 후라 그런지 건강에도 어느 정도는 자신이 있었고정신과 공부와 진료 역시 내 적성에 맞아 즐겁게 수련을 받았다.그런데 문제는 잠이었다.몇 날 며칠을 연속해서 당직하고 하룻밤에도 몇 번씩 응급실을 오르내리며 환자를보니 다시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았다.도저히 참기가 어려워 하루는 회진이 끝나자마자 이시형 박사님께'' 저 잠 좀 재워주세요.'' 라고 하소연을 드렸다.그런데 대답이 걸작이셨다.''닥터 김은 밥을 앉아서 먹나 서서 먹나? 예일대학에서는 전공의들은 식당에 아예 들어가지도 못해. 전공의들은 식사도 서서 그것도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면서 일해.'''그렇구나! 전공의는 상머슴이니 당연한 고생이구나. 그래도 인턴 시절보다는 낫구나!'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하며 정신과 전공의를 무사히 수료하고 전문의 시험도 합격했다. ▶전문의 시험 끝나는 날 일차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며칠 후 실기시험을 끝내고 나오자, 나는 마치 바람이 가득 든 풍선을 그냥 놓아버린 것처럼 허탈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감각마저도 잃어버린 채 순간 멍하니 서 있다가 청주에 계신 아버지께 우선 인사부터 드려야겠다고생각하고 청주행 고속버스를 탔다.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생전에 안 하던 멀미를 하는 것이었다.이상하다 생각하던 차에 아랫배가 아파왔다.간신히 집에 도착하여 아버지께 큰절을 드리고 앉자마자 맹장염에 걸린 것 같다고말씀드렸더니 맹장이 터지면 죽을 수도 있으니 당장 병원에 가자고 하신다.하루만 지켜보자고 말씀드리고 방에 들어가 누우니 교과서대로 순차적으로 맹장염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대학 선배가 근무 중인 종합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다. 맹장이 터지기 직전이었다고 선배가 말했다.이것이 열세 번째 수술이니 이제 제발 수술은 그만 받으라고.천운이었다.만일에 하루만 일찍 맹장염이 발병했더라면 그렇지 않아도 늦은 내 인생 열차를 또일 년 더 늦출 수밖에 없었을 터. ▶대학교수의 꿈을 접다 정신과 전문의가 되고 대학 전임강사로 발령받고 고향 부산으로금의환향한 나는 대학교수로서의 꿈을 키운다는 희망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나를 살려주시고 오늘이 있게 해주신 조성옥 박사님과 김의진 박사님의 격려도 엄청 힘이 되었고 함께 근무하시는 선배 교수님들의 배려와 의국 전공의들의 도움으로아주 행복한 대학병원 스태프 생활을 하게 되었다.조교수로 진급한 지 얼마 안 되어 전혀 예상 못 한 일이 터졌다.공무원이던 형을 불러내 함께 시작한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로 끝나고 부도 수표 위반으로 아버지나 형이 실형을 살아야 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아버지도 형도 감옥에 보낼 수는 없어서 빚을 내가 떠안았다.그런데 많지 않은 월급으로 빚을 갚다 보니 부부간의 불화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결국 영남지방에서 가장 월급을 많이 주는 병원의 신경정신과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이렇게 대학교수의 꿈은 조교수로 끝났다.대신에 내 가정의 평화를 지키면서 아버지의 빚도 다 갚았다.▶의사의 꽃종합병원 신경정신과 과장 5년을 끝으로 봉직의 생활을 마감하고 1992년 2월에의사의 꽃이라는 개업을 하게 되었다.대출을 받아 개원하면서 우려했던 것은 기우였고 개원 첫 날부터 밀려드는 환자들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2000년 5월부터 의약분업이 시작된다는 의료계의 위기가 찾아왔다.정신과는 의약분업과는 직접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배의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의사회 일에 뛰어들게 되었다.울산광역시의사회 부회장이자 대한의사협회 중앙위원으로 울산과 서울을 밥 먹듯 오가면서 무려 44일간이나 병원 문을 닫고 의사 권리 쟁취와 의약분업 반대 운동을 하게 되었다.그 사이 내 병원은 반 토막이 나고 내 건강 또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다시 찾아온 병마 의사회 일과 개원의로서의 적지 않은 환자를 보느라고 불철주야 바쁜 생활을 보내던 중 2003년 사월 하순에 진료를 하다 갑자기 어지럼증이 오면서 잠시 의식을 잃어버리고 바지에 오줌을 싸는 일까지 생겼다.(5월 14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 6회가 게재됩니다)

2019-05-06 18:00:00

최장순 수필가 초청 수필 콘서트

대구 수성구립용학도서관(관장 김상진)은 3일 최장순 수필가를 초청, '생각을 바꾸면 글이 보인다'는 주제로 수필 콘서트를 가졌다. 신현식 도서관 상주작가와 신노우 대구수필가협회 회장, 수필사랑문학회(회장 박경대) 회원 등 100여 명이 함께했다.

2019-05-03 10:24:33

[반갑다 새책]지방자치 철학자들 그리고 한국의 지방자치/김석태 지음/한국학술정보 펴냄

지방자치는 국가발전을 위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독자적인 가치를 가진 제도라는 관점에서 지금까지 아리스토탈레스 이후 여러 지방자치 철학자의 주장을 일괄적으로 요약하면서 지방자치의 규범적 이론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동안 지방자치 사상을 정리한 서적을 찾기 힘든 시기에 이 책의 등장은 의미가 크다.지은이 김석태 경북대 명예교수가 쓴 이 책은 '지방자치 사상' 분야를 거의 새로 개척하고 있다. 지은이는 지난 2천400여년 인류의 예지를 대표했던 철학자들을 선택, 섭렵하면서 지방자치라는 공통분모로 엮어낸다. 아리스토탈레스의 '정치학'을 지방자치의 역사적 근원으로 관찰하며, 루소의 이상적 정치체계가 현대 지방자치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 민주주의 발전원인을 지방자치라 판단한, 미국인보다 더 미국사회를 예리하게 관찰한 토크빌도 새롭게 조명한다.지은이는 또 일부 익숙한 지방자치의 개념과 모형을 확장해 소개하기도 한다. 예컨대 홈룰 모형과 자치권 관련, 한국의 문헌에도 딜런 룰 등이 소개되어 있지만 지은이는 이를 넘어 쿨리 독트린, 홈룰의 임페리오 모형, 포담의 입법모형까지 유연하게 폭을 넓히고 있다.물론 제한된 숫자의 철학자들을 뽑아 각각의 대표 저서에 대해 지방자치를 키워드 삼아 서술하다보니 한정된 논의에 그칠 수밖에 없는 한계도 없지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지방자치철학이 빈곤한 우리 학계에 첫 이정표를 세우는 저서로서, 뿌듯한 지적 경험과 아울러 읽는 재미도 함께 갖춤으로써 학자, 학생, 지방정치인, 일반 시민 모두에게 권할 만하다고 여겨진다. 435쪽, 4만5천원

2019-04-30 17: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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