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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부문 당선작]⑤노병의 증언/ 김길영

51년 2월 2일. 우리 16연대는 충북 월악산에서 다시 부대일제정비를 마치고 미 제2사단과 교대하기 위해 횡선전선으로 이동했다. 횡성 북방 2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성지봉과 오음산 삼마치재를 주저항선으로 삼았다. 그곳에서 적과 며칠간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치열한 공방전으로 쌍방 간 많은 병력 손실 입었다. ▶중대장 전사51년 2월 8일. 중대장 연락병 임무를 맡았던 고향 전우 박준영 군이 업무연락 차 8킬로미터 떨어진 후방 CP로 오는 도중에 중대장 강신재 대위와 부관, 통신병이 방카에 함께 있다가 적의 포격으로 모두 전사했다는 비보를 전해 왔다. 중대장 강신재 대위는 육사 8기생이다. 국가관이 투철한 모범 장교로 부대 내에서 회자되었다. 중대장 강신재 대위의 전사는 너무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다. 16연대 후방 CP는 횡성군 공근면 초월리 분지에 있었고, 9중대 CP는 민간인 임병천씨 집에 본부를 두었다. 나는 고향 전우 김구환과 함께 있었다.51년 2월 11일. 중대장 연락병인 박준영이 도착했다. 중대장의 사후처리와 중대 지원업무, 행정업무에 의견을 나누었다. 이날 밤, 박준영이 내의를 빨아서 방에 줄을 치고 널어놓았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록 세탁물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 곤한 잠에 취해버렸다. 문밖에는 3-40센티미터의 눈이 내리고 날씨는 영하 5도 이하로 내려갔다.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나서 깨어보니 삽질하는 소리였다. 집 앞 3미터 거리에서 방공호를 파는 소리였다. 불도 켜지 못하고 모두 깨워서 대책을 의논했다. 이때 예광탄이 발사되고 곧 교전이 벌어졌다. 16연대 3대대 후방본부와 각 중대 행정반 그리고 각종 전쟁지원물품보급소에 100여명의 병력이 있었으나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적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이날 밤, 전후방을 포한한 8사단 지역인 횡성. 원주. 전역을 중공군에 포위당하여 꼼짝달싹 못했다. 그들의 인해전술에 갇혀버린 것이다. ▶포로가 되다다음 날부터 3일간 적의 대대적인 수색작전이 전개됐다. 야간에만 잡혀온 아군의 포로 수가 수백 명에 달했다. 주간에는 유엔군의 폭격으로 중공군의 활동이 뜸했다. 포로 신세가 된 우리들을 나무가 많은 숲속으로 숨게 했다. 적의 포로호송부대는 포로로 잡힌 아군병사들을 야음을 틈타 북으로 끌고 갔다. 우리는 모든 물품을 다 버리고 서류와 생필품 몇 가지만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같은 방에 있던 우리 세 사람은 적의 포위망을 탈출하기 위해 초원리 뒷산 고지에 오르기 시작했다. 눈이 쌓여 하반신이 거의 묻히고, 한 발 내디디면 두 발 미끄러졌다. 예광탄이 발사되면 눈 위로 포복하면서 몇 시간 만에 겨우 고지에 올랐다. 낙엽을 모아 구덩이를 메우고 그 위에 눈으로 위장한 뒤에 세 사람이 숨어 있었다. 초원리 분지에는 16연대의 각 대대 후방CP와 미군 포병대가 밀집 주둔해 있었다. 대포, 자동차, 유류탱크, 각종 탄약, 보급품 등을 적군이 사용 못하도록 포병부대가 밤샘 포사격을 가했다. 초원리 분지가 불바다가 되었다. 정상에서 원주방향으로 가려했으나 달이 너무 밝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밤에 행동한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때문에 다음 날 아침 동트는 대로 탈출하자는 의논일치를 봤다. 세 사람은 골짜기 오목하게 팬 곳에 낙엽을 채워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날이 새기만 기다렸다.51년 2월 12일. 날이 밝자 산 정상에서 노원리 분지를 향해 내려다보았다. 중공군이 개미 떼처럼 무리지어 다가오가고 있었다. 비로소 완전 포위되었음을 직감했다. 탈출 목적지는 원주였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도보로는 불가능했다. 낮에는 적의 습격이 두려워 어둠을 틈타 행동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조금은 안전한 숲에서 숨어 있기로 했다. 오후 2시경 중공군이 우리가 숨어 있는 산골짜기를 토끼몰이 하듯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발각된 우리는 두 손을 높이 들어 항복신호를 보냈다.▶ 포로, 북으로 이송중공군 뒤에 따르는 수십 명의 포로가 우리 부대원들이었다. 며칠 동안 함께 싸웠던 낯익은 얼굴도 보였다. 워낙 빠르게 인원이 보충되다보니 낯을 익힐 짬이 별로 없었다. 그 포로들 중에는 미군 병사도 몇 명 끼어 있었는데 저녁까지 붙잡혀 온 숫자가 수백 명에 달했다. 내 몸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포로 신세다. 그들의 신호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어스름한 밤을 이용해 북으로 데리고 간다는 전갈이 왔다. 포로들을 소대단위로 편성하고 중간 중간에 중공군 감시병을 세워 개인행동이 어려웠다.51년 2월 13일. 우리 포로들은 북으로 가고 있었다. 낮에는 아군의 비행공습 때문에 행동반경이 좁아졌다. 낮에는 소나무가 우거진 숲속에서 취침을 시키고, 밤이 되어서야 국도를 따라 북상했다. 도로 양쪽에 늘어선 대열의 길이가 8킬로미터를 넘었다. 하룻밤 내내 걸어서 20킬로미터를 걸었다. 홍천을 지나고 춘천 소양강을 건너 북한강 상류로 진입할 무렵에는 아군의 포성도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탐문해 보았다. 일부는 강원도 북부 평강 수용소에 수감하고, 일부는 비행장 건설현장에 보낸다는 것이었다. 성분이 좋은 사람은 재 교육시켜 인민군으로 편입시키고, 신체가 좋은 사람은 시베리아 벌목공으로 보낸다고도 했다. 이때부터 감시병이 배로 증가되어 감시가 한층 강화되었다. 포로 중에 감시병 눈을 피해 탈출하다가 총살당하는 경우도 여러 차례 목격되었다.▶소나무 껍질을 벗겨먹다7일 동안 아무것도 입에 넣지 못했다. 어느 산골마을을 지날 때, 들판에 쌓여 있는 콩 단을 털어서 날콩을 씹어 먹기도 하고, 먹을 만한 풀잎이며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도 했다. 그런 것을 먹었는데도 아무도 탈이 나지 않았다. 짐승들이 겨울 산에서 먹이를 구해 먹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산에 눈이 많아 피신할 수 없을 때는 민가로 내려와 빈집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빈집의 구석구석을 뒤져 먹을거리를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먹거리가 없었다. 무나 감자 구덩이를 찾느라고 포로끼리 야단법석을 떨기도 하고, 뭐 먹을 만한 것이 생기면 독수리 먹이 채가듯 낚아가 버렸다. 부엌을 먼저 차지하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2018-12-10 12:05:32

이주향의 삼국유사, 이 땅의 기억/ 이주향 지음/ 살림 펴냄·

신화에 관심이 많은 철학자 이주향이 '그리스 신화, 내 마음의 12별'을 펴낸 지 2년만에 우리나라 신화의 효시격인 '삼국유사'에 대한 에세이를 출간했다.삼국유사 원전을 그대로 풀어내거나 요약한 책들은 많지만, 지은이는 독특한 시선으로 삼국유사를 풀어냈다. 지은이에게 비친 삼국유사는 이 땅의 기억이다. 신화에 인간의 원형이 숨어 있다며, 삼국유사를 소화하는 것이 이 땅을 이해하는 일이며, 곧 나를, 나아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라 본다. 그는 에밀레종에는 고통을 대면할 줄 아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만파식적에는 살아있는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근원을 들려준다.사진은 정선자의 작품이다. 경주 감은사, 불국사, 남산, 황천, 황룡사 터, 흥륜사, 문무대왕릉, 군위 인각사, 양양 낙산사, 진천사, 합천 해인사, 익산 미륵사, 양산 통도사, 창원 백월산, 대구 파군재를 답사하면서 찍었다. 228쪽. 1만5천원

2018-12-06 11:43:46

원종건의 엄지장갑 이야기/원종건 지음/북레시피 펴냄

무지개는 몇가지 색으로 이뤄져있을까? 우리는 통상 7개 색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일부 문화권에서는 30가지 색깔로 무지개를 표현하고 이해한다. 이처럼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평소 쓰는 언어의 문법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바로 '사피어-워프 가설'이다.손가락 부위가 나뉘어져 있지 않은 장갑을 부르는 '벙어리 장갑'이라는 말에는 장애인 비하의 의미가 포함돼있다. 이런 단어가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엄지 장갑'으로 부르자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최근에는 고쳐 부르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원종건의 엄지장갑 이야기'는 지은이 원종건의 '엄지장갑 프로젝트'를 비롯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혹독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긍정적 에너지를 가질 수 있었던 뒷 이야기를 전한다.◆현명한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감사와 겸손지은이는 2005년 시각장애인 어머니와 단둘이 살며 어머니의 눈이 되주는 '효자 종건'이로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아픔의 연속이었다. 엄마는 고등학생 때 청력을 잃었다. 아빠와 결혼할 때만 해도 눈은 이상이 없었다. 외환위기는 가족을 뿔뿔이 흩어놨다. 아빠는 술로 하루하루를 버티다 돌아가셨다. 두살 아래 여동생은 스웨덴으로 입양됐다. 단둘이 남은 모자는 노숙생활을 했고, 스트레스와 영양실조로 어머니는 시력마저 잃어버렸다.주위의 도움으로 공장에 취직해 모자는 미혼여성들이 모여 사는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주변의 눈치를 보며 지내야 했지만, 어머니는 청소를 도맡아 하고 모두 잠든 사이에 아들을 씻기면서 한숨 한번 쉬지 않았다.지은이는 '엄마는 현명하다'는 글로 책의 첫장을 시작하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감사'와 '겸손'을 알려준 어머니를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했다."엄마가 속옷공장 기숙사에서 눈치보며 새벽 2시에 나에게 비눗물을 묻혔을 때에도 감사는 존재했다. "우리가 목욕탕을 다 빌렸다, 그치?" 그랬던 것처럼."MBC '느낌표!'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시력을 되찾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뱉은 첫마디는 "우리도 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자"였다. 아들은 장기기증 서약으로 어머니의 가르침을 실천했고, 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엄지장갑 캠페인과 현재 진행 중인 더 좋은 일엄지장갑 프로젝트의 출발은 대학시절부터다. 헬렌 켈러 옆에서 48년간 눈과 귀가 되어준 설리번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거리를 잇는 커뮤니케이터가 되자는 뜻에서 '설리번'이라는 팀을 만들고, 벙어리장갑을 엄지장갑으로 바꿔 부르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다.엄지장갑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300만원 모금을 목표로 시작한 스토리 펀딩은 목표금액의 800%이상을 달생해 2천500만원이 넘게 모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몰랐던 장애인에 대한 무의식적 차별에 대한 반성이자,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뜻이었다.""손가락이 우리가 사는 사회라고 한번 생각해보자. 작고 뚱뚱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홀쭉이같이 마른 사람들도 있지. 똑같은 손가락이 없듯이 우리는 하나의 사회(손바닥)에 사는 개인(손가락)이라는 거야. 그런데 이 장갑을 봐. 엄지손가락만 따로 떨어져 있잖아. 나머지 손가락들은 모두 함께 있는데.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다수가 아닌 따로 떨어져 있는 소수, 그러니까 엄지를 위한 장갑을 만드는 거야. 그래서 이름은 '엄지장갑!' 어때?" 그렇게 엄지장갑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지난해 사회 초년생이 된 지은이는 한 기업에서 사회공헌 업무를 맡고 있다. 소방공무원 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더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일일이 현장을 찾아가고 소방관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과 시스템을 발굴한다. 지역마다 소방관이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청각언어 장애인들에게 수화통역사를 모바일로 연결시켜주는 '이어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이어 프로젝트는 귀의 영어 발음인 '이어'(ear),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뜻을 동시에 담은 프로젝트명이다.서민석 이베이코리아 부사장은 "이 책에는 스무해 조금더 살아온 젊은이의 '세상을 위해 더 좋은 일을 하기 위한' 고민과 걱정 그리고 웃음이 있다. 그 젊은이 이름이 종건이다. 종건(鐘建)은 '세상의 시작을 알리느 큰 종을 세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부디 이 책이 그 종소리의 시작이길 빈다"며 책을 추천했다. 244쪽. 1만5천원

2018-12-06 11:43:27

다문화가족 생활수기 공모 수상자들이 내빈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매일신문 주최 2018 전국다문화가족 생활수기 공모 시상식

매일신문이 주최하고 여성가족부, 대구시, 경상북도, 대성에너지가 후원한 '2018 전국다문화가족 생활수기 공모' 시상식이 5일 하영숙 대구시 여성가족정책관, 강석기 대성에너지 대표이사, 박명희 동화작가(심사위원), 권지영 대구 남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심사위원), 이상택 매일신문 사장을 비롯해 수상자 및 수상자 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매일신문 8층 회의실에서 열렸다.대상 수상자 정이영(강원도 삼척) 씨를 비롯한 우수상, 가작, 특선, 입선 등 총 47명의 수상 작품은 2019 다문화가족 생활체험수기 '무지개를 타고 온 사람'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2018-12-05 16:55:41

대구가톨릭문학 28집/대구가톨릭문인회 펴냄

가톨릭문학은 가톨릭 신앙인만이 쓸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사제와 가톨릭 신앙 문인들의 시와 수필을 모은 '대구가톨릭문학' 28집이 나왔다.이순옥 회장은 발간사에서 28집의 펴냄을 '불속에서 단련된 황금'에 비유했다. 회원들의 적극적인 기도와 협조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또한 올 여름 폭염 가운데서도 원고를 마감일까지 보내준 회원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표시했다.정태우 지도신부는 격려사에서 언제나 자기 보따리가 남의 것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사제의 일상에서 가톨릭 문인회 형제자매를 생각할 때마다 푸념과 엄살보다는 자기반성의 계기가 됐다고 하고 있다.특히 이번 호에서는 22년 동안 대구가톨릭 문인회를 이끌어 주었던 이정우 신부의 갑작스런 선종을 애도하며 '이정우 신부 추모 특집편'을 실고 있다. 389쪽 1만2천원

2018-12-05 11:28:56

수업, 너 나하고 결혼해/김영호 지음/북랩 펴냄

후배 교사에게 선배 교사가 들려주는 4가지 행복 수업 이야기이다. 지은이는 30년 이상 교직생활을 했다. 셀 수 없이 수업을 했지만 지은이에게 수업은 여전히 어렵다. 그 가운데 그가 터득한 행복한 수업 비결이 역사용 역량, 수업철학 역량, 수업행복 역량 수업문 역량이다.그리고 4개의 역량은 결국 하나의 맥락으로 통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즉 수업에 대한 소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수업이 행복할 것이고 수업문은 저절로 열릴 것이며 열린 수업문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자 소망인 행복문이다는 것이다. 가히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결론인 셈이다.지은이는 김천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오랜 교직생활과 교육행정직을 거쳤다. 현재 대구남부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학교의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은 수업이라는 생각으로 수업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336쪽, 1만5천원

2018-12-05 11:27:45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작]④노병의 증언/ 김길영

50년 11월 22일. 우리 부대는 회천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때 부대의 목표는 중국과의 경계선인 초산까지 먼저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회천에서 초산까지는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러나 회천까지 가는 도중에 중공군의 공격이 있었다. 후방 여러 산골짜기에서 나팔소리, 북소리가 어우러져 어두운 장막을 깼다. 요란한 소리를 잠재우며 따발총소리가 따따따따, 따따따따 가까이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부대는 진격하지 못하고 묘향산 남단으로 이동하여 중공군과 마주하게 되었다.▶ 소대장 전사소대장이 박격포를 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소대장 대신 선임상사가 전투를 지휘했지만 밤새도록 불안한 총알이 빗발쳤다. 먼동이 트자 아군과 적군이 구별되었다. 밤새 몇 명의 전사자가 생겼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날이 밝아오자 작전명령이 또 날아들었다."총알이 있는 대로 집중 사격하고 후퇴하라"는 명령이었다. 명령에 따라 총알을 다 쏟아 부었다. 총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새벽하늘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중공군이 발뒤꿈치까지 다가오면서 따발총을 연신쏘아 댔다. 부상자가 생겨도 돌볼 겨를 없이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의기양양하게 전진하며 콧노래 부르던 때가 엊그젠데, 날개 꺾인 새들처럼 기세가 꺾여 목숨하나 챙기는 데도 힘이 들었다. 나와 동행하던 전우가 몇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전사한 전우들은 북한 땅 어느 곳인가 뼈를 묻고 영혼들은 지금도 그 하늘 어디에서 울고 있을 것이다. ▶중공군 참가중공군은 피리를 불며 좇아오고 발걸음은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평소에 걷던 걸음보다 느리고 목이 말랐다. 부대는 오열을 갖추지 못한 채 통일성마저 잃어버려 오합지졸이었다. 어딘가 숨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도망치듯 쫓기다 보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나는 총을 메고 수류탄을 가슴에 달았지만 싸우는 병사이기를 포기한 듯했다. 전열을 재정비하고 질서를 찾을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후퇴를 거듭하면서도 인민군 패잔병과 십여 차례 교전했다. 적의 패잔병들은 아군의 퇴로에 매복했다가 기습공격을 가해왔다.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그들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쫓고 쫓기면서 한 전투는 끝났다. 우리는 잔여 인원을 규합하여 부대를 재편성했다. 뒤에서는 중공군이 따라오고 인민군은 퇴로마다 매복하고 있었다. 그들의 작전에 완전히 포위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전상자를 교대로 업고 살얼음판 청천강을 건너 우리가 야영했던 구장球場까지 후퇴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재정비하고 있을 때 초산전투에서 패배한 6사단 잔여 병들이 10여 명씩 무리지어 포위망을 뚫고 도착하고 있었다. ▶인해전술50년 11월말, 대공세작전이 시작되었다. 중공군은 인해전술을 폈다. 인해전술과 야간 기습 공격에 유엔군과 아군은 무방비 상태였다. 밤중에 중공군들이 불어대는 피리소리는 소름이 돋았다. 꼭 저승사자들이 문 밖에서 수군대는 소리 같았다. 총소리도 나지 않았고 대포소리도 없이 그냥 온몸이 굳어져 갔다. 눈만 끄먹거리던 전우들은 이젠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다. 서로 마주보며 한숨을 내뱉는데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공격할 때는 졸음도 오지 않았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날따라 팔다리에 힘이 쭉 빠지고 졸리고 배가 고팠다. 그 음습한 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다음 날도 잠시 총성이 멎고 달이 밝았다. 초저녁에 잠잠 하던 전선 밤공기가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5리 길 되는 적진에서 나팔과 피리를 불고 북을 울리며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내가 전투에 참가한 이래로 처음 느껴보는 음산함이었다. 이내 장막을 깨고 따발총 소리가 밤공기를 흔들어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분위기에 억압되었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귀청이 찢어질 듯이 따가웠다. ▶새로운 전쟁50년 12월 4일. 맥아더 사령관이 "새로운 전쟁이 시작 되었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발표문에 따라 유엔군이 점령했던 평양에서 모두 철수하고 북진 중인 전군에 "12월 말까지 철수 하여 삼팔선에 재집결하라."는 작전 명령이 하달되었다.50년 12월 5일. 우리 8사단은 평북구장에서 춘천까지 장장 4백여 리를 철수했다. 철수 작전이 도보행군으로 남하기 시작한 것이다. 1개 중대 단위로 북한의 청년단원 2-30명이 동원되어 소 두세 마리에 보급품을 싣고 내려오는 행렬은 평안남도 회천을 거처 황해도 곡산. 강원도 이천. 철원. 갈말을 지났다. 도보로 22일 간이나 철수행군은 계속되었다.50년 12월 27일. 춘천이 가까운 삼팔선상에 도착했다. 하루 평균 30킬로미터를 도보로 행군했다. 철수 도중에 인민군 패잔병과 10여 차례 교전도 했다. 철수하는 부대 뒤에는 중공군이 따라오고 인민군 패잔병이 앞을 막았다.50년 12월 31일. 한국전선은 남북한이 다시 삼팔선상에서 대치했다. 이날 자정을 기해 1차적으로 중공군 11만 명, 인민군 6만 여명, 도합 17만 명의 병력으로 6.25 초기와 거의 같은 경로로 삼팔선 돌파작전을 개시해 왔다.51년 1월 4일. 서울을 다시 그들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른바 '1.4후퇴'라는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국군이 비참하게 서울을 내주는 치욕의 날이 되었다.▶1.4후퇴우리부대는 이 때 춘천 변두리에서 3일간 장비검열을 마쳤다. 손실된 병력도 충원되었다. 그리고 양구방면으로 약 20킬로미터 지점인 춘성군 북안면 오항리, 일대의 삼팔선에 도착했다. 사명산 주령인 부영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거기서 주저항선을 형성하고 적과의 접전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북한 인민군이 나타나 교전이 소강상태였으나 51년 1월1일을 기해 중공군이 삼팔선을 공격해 옴으로써 3일간이나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청천강까지 북진했던 전우들의 희생이 컸다. 이때 중대 서무를 보던 김현주 일등상사가 진급하여 중대 선임하사로 발령이 나고 내가 중대 CP로 내려와 OP와의 연락업무를 맡게 되었다. 8사단은 1.4후퇴명령으로 며칠간 강행군을 계속했다. 홍청. 횡성. 원주. 문막. 충주를 거쳐 1월 9일 제천 한강상류 북노리 월악산 부근에 집결했다. 지리산에서 소백산맥을 따라 북상하는 인민군과 빨치산의 이동경로를 차단할 목적으로 매복 수색작전에 돌입했다. 이곳에서 20일간 머무르면서 전력강화를 위한 훈련을 받고 장기교육을 받으면서 부대 재정비와 심신의 충전기회를 가졌다.

2018-12-03 12:45:00

귀가 밝은 지팡이/이재순 지음'이한성 그림/고요아침 펴냄

'오늘 일 비밀이다/손가락 꼭꼭 걸고/맹세까지 해놓고선/밤사이 마음 변해/해 뜨자 여느 때처럼/동네방네 나팔 부네''짝꿍'이란 제목의 동시조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이처럼 생활 주변에서 보이는 소소한 풍경, 작은 사건들, 감추고 싶은 속네 등을 섬세한 시어로 60편을 소개하고 있다. 군데군데 이한성 씨의 정감어린 수채화도 눈을 사로잡는다.'사랑채 마루 끝에 가만히 졸다가는/할아버지 기침소리에 후다닥 깨어나서/앞장서 걸어 나가네, 귀가 밝은 지팡이' -단짝-이 작품은 할아버지가 외출할 때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할아버지와 '단짝' 관계로 그려낸 작품이다. 할아버지와 지팡이는 단짝이자 한몸 같은 관계다. 그런데 시인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할아버지가 집 나설 차비를 하자 지팡이가 스스로 앞장서 걸어나간다고 노래한다. 할아버지 기척을 금방 알아차리는, 그래서 귀가 밝은 지팡이인 것이다.이지엽 경기대 국문과 교수는 "참으로 정겹고 생명성 넘치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이번 동시조집 전편에는 시인의 서정적 자아와 그를 둘러싼 세계가 하나임을 보여주는 정서가 배어 있다.오래된 비유를 현대에 맞게 새롭게 쓴 작품들도 많다. '엄마도 집 한 챈데/아빠도 집 한 채고/아들도 집 한 챈데/딸들도 집 한 채네/저마다 딴 집에 살면서/가족이라니 이상해' -달팽이-달팽이 껍데기를 집에 비유하는 것은 오래된 이야기다. 시인은 이 오래된 비유를 오늘날 핵가족의 문제로 연장하며,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드러낸다.이지엽 경기대 국문과 교수는 이재순 시인의 이번 동시조집이 다른 시인의 작품들과 다른 점을 3가지로 꼽고 있다. 첫째 서정적 자아와 세계와의 조화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 둘째 서정적 자아의 눈에 비춰진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고 바라보려는 노력, 셋째 우리말의 아름다운 질감을 잘 살리고 이를 교육적 입장에서 학습하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이 때문에 초등학교 학생들이 책장에 꽂아 두고 때때로 암기하도록 하면 언어순화와 정서적 안정에 무척 도움이 될 것 같다. 109쪽, 1만2천원

2018-11-30 06:30:00

책 표지

극재의 예술혼에 취하다/김남희 지음/계명대 출판부 펴냄

극재(克裁) 정점식 교수(1917~2009)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책이다. 그는 서양화가이자 교육자(계명대 미술대학 교수)·비평가였으며, 자기만의 호흡을 가진 에세이스트였다. 그는 한 세기를 살았고(92세), 한세상을 열었다.지은이 김남희 박사는 "정점식 선생님은 우리나라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음에도 평가받지 못했다.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며 "이 책이 다른 연구자들과 일반인들을 극재의 생애와 예술세계로 안내하는 표지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 한국 추상화 1세대 작가이자 비평가극재는 1917년 성주군 대가면에서 출생했다. 어릴 때는 한문과 서예를 배웠고, 일본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전통적 색채가 강한 교토미술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도쿄 등을 여행하며 '기하학적인 큐비즘, 초현실주의, 아나키즘적인 다다이즘'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한국 추상화 1세대 작가로 한국현대미술의 출발점으로 통하는 '모던아트협회' 회원(1958-63)으로 활동했다. 조선일보가 주최한 '현대작가초대미술전'에 초대 출품(1958-70)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90평생 추상화에 투신, 돌올한 예술세계를 일구었고, 만년에 은관문화훈장(1998), '2004 올해의 작가'에 선정, 2005년 제3회 이동훈미술상을 수상했다.미술이론에 밝았던 극재는 대구미술 비평을 주도하며 대구 추상화의 정착과 개화를 견인했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회원(1963-70)이었을 만큼 비평가로서 대구미술발전에 일조했다.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지만, 동시에 다양한 미술과 신인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함으로써 대구미술의 바탕을 탄탄하게 했다. ◇ 계명대 미술대학을 짓고 가꾼 사람극재 정점식은 엄격한 교육자였다. 계명대 미술대학의 전신인 '미술공예과'(1964~77) 출범을 이끌었고, 예술대학 미술학부(1978~80) 승격과 미술대학(1980-83)으로 자리 잡기까지 가꾼 장본인이다.극재의 제자인 지은이 김남희 박사는 "선생님은 엄격하고 다정했다. 화가는 시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아내고 예술에 반영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물을 통해 현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고 말한다.파괴를 통한 생성, 엄격한 기초실기 강조, 모험걸기 등 예술적 측면의 교육과 함께 특성화 교육, 장학제도 등 미술교육의 외부조건 조성에도 열정을 쏟았다.극재는 과묵한 사람이었고, 늘 정장 차림의 깔끔한 신사였다. 성인이 된 뒤로는 일생 몸무게를 60kg정도를 유지할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하지만 깐깐한 사람은 아니었다. 1983년 퇴임한 뒤에도 그의 집에는 제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여든이 넘어서도 제자, 후배들의 전시장을 꼬박꼬박 찾아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 호 '극재(克裁)'를 스스로 짓고, 따르다정점식 교수는 스스로 '극재(克裁)'라는 호(號)를 지었다. '극재(克裁)'는 그의 예술과 인생을 압축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생전에 이렇게 말했다."내가 철 들 무렵의 사회적 조건, 말하자면 식민지 시대의 민족의식이나 예술의 자유의식 또는 전쟁통의 경제적 정신적 압력 아래에서, 이 모든 것들이 예술작품 속에 집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곁에는 언제나 환상적인 도피처인 포기나 자살이 도사리고 있지만) 이겨내야 한다. 요즘은 예술가들의 지위가 향상되었고, 어두운 방에서 혼자 고민하던 시대는 지나갔지만, 난관은 있다. 대중에 영합하려는 정도를 넘어 대중의 저급한 취미에 야합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예술의 사명은 사람들의 높은 취미성을 계발시키고, 정서의 함양과 사회적, 인간적 의식을 앙양시키는 일이라고 믿는다."고통과 갈등 속에서 자신의 길을 간 선생은 마침내 자신을 이기고 한국적인 추상화로 우뚝 섰다. 호로 자신을 세우고, 호에 자신을 새겼던 것이다. ◇ 자기만의 목소리로 글을 쓴 에세이스트극재는 자기만의 목소리로 글을 쓴 에세이스트였다. 어려운 시절 극재를 지탱한 것은 독서였다. 그에게 독서는 교양을 쌓는 일이기도 했지만 일본 식민주의가 일으킨 전쟁과 정신적 물질적 압박을 견디게 하는 힘이기도 했다. 억눌린 상황에서 선택한 자발적인 망명처가 책이었다. 지은 책으로 '아트로포스의 가위'(1981), '현실과 허상'(1985), '선택의 지혜'(1993), '화가의 수적'(2002)이 있다.이 책은 총7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어린 시절과 하얼빈 시절(1917~1945), 2부 해방의 그늘과 전쟁의 빛(1946~1956), 3부 지역화단을 넘어 중앙화단으로(1957~1969), 4부 미술대학 개척과 교육자의 길(1964~2001), 5부 '곰탕거리' 같은 그림을 그리다 (1970~1983), 6부 '예술의 독학적 경험주의'(1984~1995), 7부 한국 추상화의 별이 되다(1996~2009). 288쪽, 2만1천원▷지은이 김남희계명대 미술대학 회화과(1987)를 졸업하고, 2009년 동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명대에서 미술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미술 특강' '중국회화 특강' '일본회화 특강' '조선시대 감로탱화'가 있다.

2018-11-29 14:05:35

왜 함부로 만지고 훔쳐볼까?/사이토 아키요시 지음·서라미 옮김/인물과사상사 펴냄

올해 초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추행 고발을 시작으로 '미투운동'이 각계로 번졌다. 매일같이 터져나오는 성추행 고발은 우리 주변에 성범죄가 일상화돼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성범죄는 2만4천110건이 발생했고, 이중 성추행이 1만7천947건으로 약 75%를 차지했다. 낮은 신고율을 고려한다면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2013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성추행 피해자 신고율은 5.3%수준이다.성추행은 이처럼 '일상의 범죄'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출퇴근길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만큼 여성들은 일상의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만연한 성추행을 막으려면 '가해자'를 알아야한다는데서 출발한 것이 '왜 함부로 만지고 훔쳐볼까?'다.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범죄임에도 우리는 '가해자의 얼굴'을 모른다. 대체 어떤 사람이 성추행을 저지르는 걸까? 흔히 변태적 취향을 가진 사람, 혹은 여성을 만날 기회가 없는 남성이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성추행을 저지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성추행범들은 이런 예상을 벗어난다. '왜 함부로 만지고 훔쳐볼까?'는 의존증치료 클리닉에서 정신보건복지사로 일하며 만난 성추행범들의 통계와 사례를 바탕으로 성추행범의 유형을 분석했다. ◆성추행범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성추행을 막으려면 누가 왜 범죄를 저지르는지 알아야한다.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성추행범의 심리와 진짜 모습을 알려준다.지은이 사이코 아키요시는 일본 도쿄에 있는 에노모토클리닉의 정신보건복지사다. 그는 매일 성추행범들을 만나며 그들이 '평범한 사람'이라는데 놀란다고 말한다. 성추행범 중에는 고학력, 회사원, 기혼자가 많았고, 이들은 직장에서 성실한 직장인이자 집에서는 가정적인 남편이었다. 실제로 그가 12년간 만난 성추행범들의 데이터를 통해 추려낸 특징을 한 사람으로 표현하면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원으로 한창 일하는 기혼 남성'이었다.성추행에 관한 오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성욕때문에 성추행을 저지른다는 것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성추행은 성욕이 아니라 지배욕때문에 발생한다는 것. 성추행범은 동의 없이 타인의 안전 영역을 침범하고 신체를 유린하면서 우월감을 느낀다. 이런 우월감은 특히 다른 곳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계속해서 억눌려 있던 사람에게 말할 수 없이 짜릿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성추행범 중에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많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할 때 안정을 얻는다. 비뚤어진 지배욕은 모든 성범죄의 기반이다.책은 성추행 대상에 대한 오해도 말한다. 짧은 치마처럼 흔히들 '섹시하게' 입은 여성들이 성추행 피해자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성추행범들은 대상을 선정할 때 '신고하지 않을 것 같은 여성'을 고른다. 외형에 집착하는 성추행범도 있지만 대부분 체포의 위험이 덜한 표적을 찾는다는게 지은이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어른을 신고하는 것이 어려운 아이들이 성추행 범죄의 대상이 된다고도 말한다.그는 성추행을 일종의 '중독'으로 바라본다. 성추행은 의존증이라는 병이며, 따라서 치료도 가능하다는 것이 지은이의 지론이다. 중독이기 때문에 스스로는 끊을 수 없다. 재판 날까지 성추행을 저지를 정도로 심각한 중독으로 본다. 이는 체포가 돼야만 그만둘 수 있어서, 체포됐을 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성추행범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반복적으로 체포되는 상습적인 성추행범들은 약물치료, 대화치료 등 집중치료를 통해 해결해야한다고 말한다. ◆성추행 부추기는 사회 바꿔야책은 성추행범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되는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말한다. 성범죄자들은 여성은 남성보다 낮은 존재고, 남성의 성욕을 풀어주는 존재라 생각한다. 이런 '인지 왜곡'은 사회에서 자기도 모르게 배워서 체화한 것이다. 그래서 성차별이 심한 나라일수록 성범죄도 많이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성추행범의 치료도 필요하지만 사회가 바뀌어야 성범죄가 사라진다는 것이다.지은이는 성범죄가 발생하도록 부추기는 '야동', '인터넷 커뮤니티', '가벼운 처벌' 등에 대한 규제·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실제로 거의 모든 성추행범이 성인 동영상을, 특히 성폭력을 소재로 한 성인 동영상을 보고 있었기 때문.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폭력적이고 차별적 묘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위험하고, 성추행범은 이런 콘텐츠를 자주 접하며 여성에 대한 오해를 쌓아간다. 여성에 대한 폭력적 표현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을 타개하려면 보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 모두에게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성추행 상습범 중에는 인터넷 사이트에 자신의 경험담을 올리고 정보를 교환하는 이들이 있다. 지은이의 경우 일본 사례를 들었지만 우리나라 일부 커뮤니티에서도 불법 촬영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가해행위를 인증하는 등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성추행과 무고를 동일선상에 놓고 보는 시선도 지적한다. 성추행 이야기를 꺼내면 "무고일 수도 있잖아"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방향부터 잘못됐다는 것.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일단 여자가 꽃뱀이 아닌지 의심한다. 성범죄에만 예민하게 무고를 들고나오는 이유는, 다른 범죄와 달리 성범죄로 인한 손해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남성이 성범죄 피해를 상상하지 못한다. 겉으로는 아무런 피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피해자가 많다. 반면 성추행 무고로 파괴된 남성의 인생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으므로 더 현실적으로, 무게감 있게 받아들인다.지은이는 성추행범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에, 여성이 반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본다. 자신에게 반격할 리 없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당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준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성추행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무고만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사람은 보고 싶지 않은 것에는 눈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외면한 곳에 성추행범이 되는 본질이 숨어 있다. 254쪽. 1만3천원.

2018-11-29 12:57:32

공지영 작가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심상대 작가의 새 작품 '힘내라 돼지'에 관한 한 온라인 매체 기사를 링크했다. 그런데 이 링크보다 주목을 끈 문장이 있었다. '내 평생 단 한 번 성추행을 이자에게 당했다'이다.

공지영 "심상대 작가가 허벅지 더듬어"…페이스북 통해 미투

공지영 작가가 '미투' 폭로를 했다. 올해 초 터진 미투 폭로 릴레이가 연말 들어 다시 점화하는 분위기다.공지영 작가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심상대 작가의 새 작품 '힘내라 돼지'에 관한 한 온라인 매체 기사를 링크했다. 그런데 이 링크보다 주목을 끈 문장이 있었다. '내 평생 단 한 번 성추행을 이자에게 당했다'이다.이어 공지영 작가는 '그때 술집에 여러 명이 앉아 있었는데 테이블 밑으로 손이 들어오더니 망설임 없이 내 허벅지를 더듬었다.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고함을 치고 고소하려는 나를 다른 문인들이 말렸다'고 회상했다.아울러 '그때도 그들이 내게 했던 말 "그러면 너만 시끄러워져" 우정이라 생각해 받아들였는데 결국 그들도 내 곁에 없다 ㅎ'라고 적었다.이 글에 대해 고발 형식의 미투라기 보다는 간접적으로 과거 일화를 언급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현재 여파는 미투와 다름 없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문학계 미투는 지난 겨울 최영미 시인이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암시하는 시 '괴물'을 발표하며 촉발됐다. 이어 사회 각 분야로 미투 운동이 확산됐다.한편, 올해 55세 공지영은 1988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했다. 올해 58세 심상대는 1990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심상대는 2015년 내연관계에 있는 여성을 수차례 때리고 차에 감금하려 한 혐의(특수상해 등)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2018-11-28 17:57:06

경북도서관 조감도. 경북도 제공

경북도, 경북도서관 비치할 향토자료 연말까지 수집

경상북도는 2019년 하반기에 개관하는 경북도서관의 장서확보를 위해 12월 말까지 경북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특성화자료를 수집한다고 27일 밝혔다.수집대상은 경북과 관련된 역사·문화·사회·경제·인물 자료를 우선적으로 수집하며, 형태별로는 일반도서 뿐만 아니라 멀티미디어, 시청각자료, 연속간행물, 디지털자료 등이다. 경북의 대표도서관인 만큼 경북소재 공공기관 발행자료 및 족보, 고서, 문중자료 등 소중한 역사적 기록물을 수집해 경북의 옛 모습과 현재의 생활상을 총망라한 자료의 허브공간을 구축할 예정이다.자료기증을 원하는 단체나 개인은 우편 또는 방문 접수하면 되고 기증 자료가 다량이면 직접 찾아가 수집, 선별과정을 거친 후 개관장서와 함께 자료실 내 특성화자료 코너에 비치된다.자료 수집에 도움을 준 분에게는 감사패와 기념품을 증정하는 한편 기증 증서와 도서관 행사 시 초청 등의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경북도서관은 경북의 대표 도서관으로 351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건립 중이며, 12월 말 준공한다.

2018-11-28 15:32:37

행복한 나라 좋은 정부/박세정 지음/생각나눔 펴냄

국민의 행복과 정부의 관계는 공생보다 반목과 갈등이 더 많은 것이 보통이다. 정부가 국민을 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국민의 행복은 멀어진다. '헬조선'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현재의 우리나라에서는 행복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지은이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부운영원리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역할을 정치와 행정, 두 부분으로 나누어 논의할 때 정치 측면에서는 국민이 당면한 문제보다 권력다툼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는 문제점이 발생하는 이유와 해결방안을, 행정 측면에서는 공직사회가 주권자로서 국민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한다.지은이는 덴마크에서 지내며 행복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행복한 나라들을 찾아 다니고 관계문헌을 읽으며 이들 국가의 특징이나 공통점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가 '정부 작동원리의 근본적인 변화'임을 책은 강조한다. 288쪽, 1만5천원

2018-11-27 17:09:59

표준어와 경상도'대구 말씨/이해호 엮음/북랜드 펴냄

경상도 사투리 '졔우'의 표준말은 '가까스로'이다. '끼리다'의 표준말은 '끓이다'이고 '얼기미'(구멍이 널찍한 체)의 표준말은 '도드미'이며 '시가리'의 표준말을 '서캐'이다.지은이는 미수(米壽)를 목전에 두고 있는 대구토박이로 이 책은 2003년 고희(古稀)를 기념해 낸 '버려진 낟알을 찾아서'의 후속편이다. 서문에 "선대에서 구전되어 온 민담과 설화 등에서 몸에 밴 자료를 그냥 버리기 아까워 묶은 것을 조금씩 보완해 전술했다"고 밝혔듯 이 책은 경상도'대구 사투리를 표준어와 비교해 뜻풀이와 함께 사전식으로 묶은 것이다.단어뿐 아니라 속담과 고사성어의 경상도'대구 말씨도 뜻풀이와 더불어 책의 뒤편에 정리해 놓았다. 일례를 들면 '똥 묻은 개 딩기 묻은 개 숭 본다'(겨 묻은 개 똥 묻은 개 흉본다)나 '버리 누름이에 햇늙은이 얼어 죽는다'(꽃샘잎샘에 반늙은이 얼어 죽는다) 식의 사투리 표현이 경상도 사람이라면 귀에 쏙쏙 들어온다. 190쪽, 1만5천원

2018-11-27 17:09:10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작]③노병의 증언/ 김길영

내가 속한 부대는 철원 북방지역을 향해 돌진 했다. 임진강 발원지인 고암산을 넘어 마식령산맥 남단에 있는 이천(伊川)에 도착한 후 이틀간 휴식을 취했다. 중부전선은 험준한 산악지역으로 승차이동이 불가능하여 오직 도보로 북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보급품이 최전선에까지 도착하지를 못해 며칠씩 굶다보니 병사들은 지쳐 있었다. 수송용으로 끌고 다니던 소를 잡아 끼니를 때우는 비참한 광경도 벌어졌다. 채전 밭에서 무를 뽑아먹기도 하고, 산길 행군 중에는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 전쟁이라는 게 그런 것이었다.아군이 북진을 거듭할 때 적군은 맞서 싸우기보다 장기 매복 작전에 들어갔다. 좀체 나타나 싸우고자하는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부대는 터진 봇물같이 돌진에 돌진을 거듭했다. 부대에 결손이 생기면 바로바로 병력을 보충해 주었다. 병력이 손실되고 보충되는 일이 잦다보니 누가 선임 병이고 누가 후임 병인지 헛갈리는 경우도 있었다. 잠시 조용한 틈을 타 부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처음 출발할 때 인원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고향친구 박준영이 유일하게 내 옆을 지켜주었다.▶ 국경선 초산50년 10월 16일. 국경선 초산까지 어느 부대가 먼저 들어가느냐 내기하듯이 시간을 다투었다. 실제로 압록강 강물을 어느 부대가 먼저 이승만 대통령에게 바칠 것인가 내심 경쟁 중이었다. 평양을 왼편으로 끼고 대동강을 따라 승호. 심동. 강동을 거쳐 밤늦게 성천 강변에 있는 북한 인민학교에서 야영준비를 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여서 기습공격을 받을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지형이었다. 부대는 경비병을 배로 늘리고 기습공격에 대비했다. 밤 열시쯤에는 날씨가 몹시 추웠다. 폭격으로 파괴된 가옥 폐자재와 학교주변의 울타리를 뜯어와 운동장 대여섯 군데에 모닥불을 피웠다. 모닥불이 타오르면서 갑자기 동시다발로 폭발물이 터지기 시작했다. 일시에 야영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어느 모닥불에서는 5,6명이 목숨을 잃었고 1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넓은 운동장 전체가 피로 물드는 것 같았다. 이 순간 경비병이 배치된 곳에서는 격전이 벌어졌다. 적의 1개 중대는 부대가 야영하고 있는 진지를 향해 중화기와 따발총으로 공격해오고, 거기에 박격포 포탄이 떨어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사상자가 늘어났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전열을 재정비하고 적을 쫓아 나섰다. 패주하는 적을 추격했는데 그 소탕작전이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기습공격을 당한 인민군은 성천군 일대에서 사복으로 위장하고 동굴이나 빈 가옥에 숨어 있었다. 16연대는 도주하는 인민군 일당과 숨어 있는 패잔병들을 샅샅이 뒤져 3백5십여 명을 생포하여 상급사단으로 후송 조치하는데 성공 했다. ▶함정에 빠지다한편 억류하고 있던 군관 몇 명을 심문한 결과, 지형적으로 국군이 이곳에서 야영할 것이라는 정보를 토대로 인민군 1개 중대 병력을 사복으로 갈아입혀 산속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그들은 주민으로 위장하고 우리 부대가 이곳에 당도하기 전에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주민을 가장한 몇몇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의 손에는 태극기가 들려 있었고, 우리 부대를 향해 환영한다는 모양새를 보였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지 합니다." "쌍수 들어 환영합니다." 능청스럽게 외쳐댔다. 몇몇은 대한민국만세를 삼창까지 외치곤 천연덕스럽게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인민군을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붓던 그들이 폭발물을 장치하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영천전투에서 살아남아 2천리를 북상하던 전우들이 목숨을 많이 잃었다. 우리부대는 북진을 거듭하면서 감격에 도취되어 있었다. 전술전략도 허술했다. 항상 경험을 먼저하고 후회가 뒤따랐다. 패주하는 그들이 그런 묘책까지 쓸 줄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천의 참혹한 교훈을 깊이 새기기로 했다. ▶북진! 북진!국군이 북진하면서 성천전투 다음 큰 저항을 받지 않았다. 작전명령은 선발사단인 우리부대에게 중국과 접해 있는 국경선까지 북진할 것을 거듭 명령했다. 우리 8사단은 묘향산맥의 험준한 북창을 거쳐 맹산에 도착하고 고원지대인 덕천을 순차로 점령했다. 그 일대 잔당을 소탕하라는 작전에 돌입했다. 묘향산맥의 백산. 영원 등 깊은 골짜기 일대를 수색하면서 산발적인 교전이 있었다. 교전 때마다 많은 전과를 올렸다. 험준한 고산지대에서 패주하는 적을 찾아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작전이 아닐 수 없었다. 쫓기는 자와 쫓는 자, 생목숨을 담보로 하는 싸움이다. 피아를 막론하고 먼저 발견한 쪽에서 승리하게 되어 있다. 쫓기는 자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휘계통이 무너져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기(士氣)가 떨어져 있으며, 각종 무기와 장비를 보급 받지 못한 약점이 있었다. 소탕작전은 4일 만에 종결짓고 우리부대는 평안남도 도경계를 넘어 청천강 상류 강변에 위치한 구장(球場)에 도착했다. 작전명령을 기다리며 보급품과 장비검열을 받았다. 전투 없는 휴식이 며칠간 지속되었다. 못다 잔 잠도 실컷 잤다. 생사를 넘나들기를 반복하다가 모처럼 한가한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머릿속에서는 죽은 동료가 눈에 아른거렸다. 바위틈에서 고개 내민 인민군 병사를 내가 먼저 발견하고 사살해버린 일들이 순간 스쳐갔다.▶작전하나50년 11월 13일. 우리부대는 청천강 건너 북방으로 30킬로미터 지점에서 운산. 회천을 연결하는 방어선에 배치됐다. 이 전선이 바로 중공군을 격퇴하라는 방어선이었다. 진지 참호 속에서 적을 기다리던 중 작전하나가 떨어졌다. "부대원 중에 일본 말 할 줄 아는 사람은 일본 말을 하라."는 지시였다. 아마 중공군이 일본군을 겁낸다는 데서 나온 심리작전으로 생각했다. 당시 정황은 유엔군이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운산과 회천지역에 B26, B29폭격기 등 폭격기를 총 출동시켜 밤낮으로 중공군 남하지역을 연일 폭격했다. 참호 속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광경을 지켜본 나는 곧 전쟁은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쏟아 붓는 포탄에 살아남을 자가 있을까 싶었다. 벌써 마음은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전선은 아군의 집중 포화로 중공군 야간 공습이 1주일 정도 주춤했다.

2018-11-26 11:52:45

이창영 신부, 종교적 통찰을 통해 성취해낸 '참 행복의 길'

최근 우리사회에 만연한 집단이기주의는 일방의 주장만 있을 뿐 대화와 타협의 길은 아예 없는 듯 보인다. 이러한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자기 성찰'이 아닐 수 없다.이 책의 '행운과 행복'편에 나오는 글이다. '네잎 클로버는 혼자 자라지 않습니다. 수많은 행복의 세잎 클로버와 함께 자랍니다. 수많은 작은 행복들 속에 머물다 보면 어쩌면 행운도 함께 따라오지 않을까요' 꼭 한 번 곱씹어볼 만한 글귀이다.누군가가 그랬다. 행복은 욕망이 줄어들수록 커진다고. 욕망이 한없이 커지기만 한다면 참된 행복이 자리할 곳을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부제 '종교적 통찰을 통해 성취해낸 참 행복의 길'에서 보듯 이 책은 한 사제의 치열한 종교적 통찰로 이뤄낸 '참 행복'에 관한 이야기이다. 매일신문사와 가톨릭신문사 CEO를 역임한 이창영 신부는 28년간 사제로 살아오며 "사람을 만나는 소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사제인 것 같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그 고백처럼 그는 노숙자, 재소자, 임종을 기다리는 사람, 정치인, 경제인, 문화예술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족과 희망, 죽음 이후의 세계, 다 함께 잘 사는 방법,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에 관해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참 행복'이 무엇인지 사제로서 고민하고 묵상한 통찰을 이 책에 담았다.어떤 이는 왜 참 행복에 가까워지고 어떤 이는 왜 참 행복에서 멀어질까?'물에서 찾는 지혜'편에서 지은이는 '한결같으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느리지도 않으면서 생명을 살리는 숨 쉬는 물, 그 물처럼 사는 것이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이 가야할 길이 아니겠습니까?'라고 종교인으로서 갈 길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껍질 깨기'편에서는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듯, 우리도 반드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깨고 나와와 부활할 수 있습니다'고 웅변하고 있다.참 행복의 길, 물의 지혜 배우기, 껍질 깨고 나오기 등등 이 모든 삶의 지침은 어떻게 마련될수 있을까?이창영 신부는 먼저 자신의 이중성을 성찰해보라고 제안한다. 그는 이 이중성을 깨닫지 못할 경우 '내 탓'을 하기보다 '네 탓'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충고한다.'여럿이 있을 때는 자신을 거룩하게, 자신을 겸손하게, 자신을 유능하게 보이려고 애쓰지만, 남들이 없는 은밀한 곳에서는 검은 욕망과 욕심을 드러내는 이중적인 인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윽박지르는 것도 큰 병이지만, 그저 사람들에게 겉으로 인정받으려고 매사에 긴장하는 것도 고치기 어려운 중병입니다. 위선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책 47~48쪽)이창영 신부는 바로 이런 이중성의 껍질을 깨고 나와야 새 사람이 되고 새 세상에 나아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껍질은 다양한 모습을 표출된다. 욕망와 쾌락, 돈과 재물, 교만과 위선, 시기와 질투, 미움과 증오 등이 다름 아닌 이중성의 껍질이다.이 시점에서 이창영 신부는 아무리 단단한 껍질이라도 깨뜨리려고 마음만 먹으면 껍질은 반드시 깨어진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 껍질을 깨어 버리겠다는 우리의 용기와 노력에 달려있는 것이다. "너 참 많이 변했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을 때 당신은 분명 용기 있는 사람임을 이 책이 증명하고 있다.지은이 이창영 신부는 1991년 사제 수품했고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학교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천주교 대구대교구 만촌1동 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196쪽, 1만5천원

2018-11-24 05:30:00

이승우

소설가 이승우 씨 동리문학상…시인 문태준 씨는 목월문학상

(사)동리목월기념사업회는 올해 동리문학상에 소설가 이승우 씨의 소설 '모르는 사람들'(문학동네, 2017)을, 목월문학상은 시인 문태준 씨의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문학동네, 2018)를 각각 선정했다고 22일 밝혔다.동리문학상 심사위원단(위원장 전상국)은 이승우 작가의 수상작 '모르는 사람들'은 한층 우연해진 방식으로 생의 원리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작가의 더욱 원숙해진 솜씨를 확인할 수 있다고 평했다.또 목월문학상 심사위원단(위원장 정호승)은 문태준 시인에 대해 등단 이후 25년의 시력을 쌓아왔으며, 이번 시집에서 존재자들의 깊고 애잔한 삶 속에서 그들이 서로 말 건네고 바라보는 존재 방식을 섬세하게 노래했다고 평했다.시상식은 내달 7일 오후 5시 경주 더 케이 호텔에서 열린다.

2018-11-23 13:55:34

제 4의 식탁/지은이 임재양/특별한 서재 펴냄

'약식동원(藥食同源)', 우리가 먹는 음식이 곧 약이라는 말이 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음식으로 못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음식이 건강에 직결된다는 의미다.'제 4의 식탁'은 37년간 외과의사 생활을 한 지은이가 이같은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쓴 책이다.유방암 전문의 임재양은 젊은층에까지 늘어나는 유방암에 대해 고민하다 식습관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건강한 식탁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하고 음식재료를 구하다 직접 농사를 짓고 농부를 찾아나서기까지 한다. 채식, 다이어트, 환경호르몬 배출 등 7년간 직접 경험한 식문화를 담고 있다.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밑줄 칠 곳이 너무 많은 책이다. 지은이의 병원 근처에 살고 싶다. 그러면서 그냥 그가 하는대로 다 따라하고 싶다. 식습관이며 그것을 위해 짓는 농사, 그리고 음식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그냥 따라만 하면 무조건 건강해질 것 같다. 꼭 운동을 심하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니 이보다 더 편할 수 없다"며 이 책을 추천했다.◆건강한 식탁위해 의사가 나서야할 때자신을 '요리하는 외괴의사'라 소개하는 임재양은 건강한 식탁을 위해 의사가 나서야할 때라고 강조한다. TV에는 먹방, 쿡방 등 요리프로그램이 넘쳐나지만 모두 흥미와 맛 위주일뿐 건강면에서는 지극히 불량하기 때문이다.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차려진 밥상이 '제 1의 식탁'이었다면, 유기농을 비롯해 더 좋은 먹거리로 마련된 것이 '제 2의 식탁', 요리사가 환경을 걱정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생각하며 차려낸 식탁이 '제 3의 식탁'이다. 지은이는 식탁에 의사의 역할까지 더해 '제 4의 식탁'이라 칭했다.그는 의사가 단순히 영양학적 관점에서 음식을 추천하는 것을 넘어서 환경호르몬 배출에 좋은 음식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건강한 음식 재료를 구할 정보력이 없는 일반 소비자들은 유기농 매장에서 비싼 돈을 주고 재료를 사서 요리해먹으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제 의사는 환자에게 분석적이고 영양학적인 음식을 권유할 것이 아니라, 약 처방과 더불어 환경호르몬 배출에 좋은 음식에 대해 얘기해줘야한다. 병 종류에 따라 어떤 환경에 자란 음식을, 어떻게 먹고,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가를 의사가 가르쳐야한다. 더 나아가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점-환경오염, 천문학적인 처리비용, 결국은 인간의 질병 증가-에 대해 우리 모두 경각심을 갖도록 앞장서서 알려야한다" ◆채식과 단순한 조리법을 추천이 책을 통해 지은이가 추천하는 식습관은 '채식'이다. 그는 7년 전 현미채식을 시작했고, 아직까지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쩔수 없이 고기나 생선도 먹는다.지은이는 이 책에서 "처음 5년간 엄격하게 음식을 조절하면서 몸도 만들고 입맛에 대한 개념을 잡아 두었더니 이제 불건강한 음식은 입에 당기지 않는다. 5년만 고생하자. 평생이 즐겁다"고 말한다.그가 유방암이나 각종 질병의 원인 중 하나로 보는 환경호르몬 문제도 채식에서 해답을 찾는다. 지은이가 '꿀팁'으로 제안하는 환경호르몬 배출 방법 중 하나는 저녁과 아침 사이에 긴 공복시간을 가진 뒤 채소에 오일을 뿌려먹는 식단이다. 공복이 길수록 담낭에 환경호르몬이 붙어 있는 담즙이 많이 모이게 되고, 오일을 뿌린 채소를 먹으면 기름을 소화시키기 위해 담즙이 분비되면서 이때 환경호르몬이 채소에 많은 식이섬유에 붙어 대변으로 나온다는 것.실제로 지은이는 현미 채식을 통해 많이 먹고도 4년만에 25㎏이나 감량했다니 다이어트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도 솔깃한 식단이다.채식이 어렵다면 그는 '단순한 조리법'으로 만든 식단을 권한다. 아침에는 밥과 반찬을 배불리 먹되 조리과정을 간단히 해서 열량을 적게하고, 저녁에는 고기가 먹고 싶다면 기름이 없는 스테이크를 채소와 함께, 밥을 먹는다면 반찬은 튀기지 말고 간단한 조리법으로 하라고 조언한다.건강한 먹거리를 찾아나서면서 만난 정직한 농부의 어려움과 친환경으로 키워 작고 못생긴 농산물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한다고 말한다."소비자들이 먼저 크고 깨끗해야만 한다는 인식을 포기하면 되지않을까? 벌레먹고 우박맞아 흠이 생기고, 비료를 주지 않아 작고 비틀어진 농산물이 건강에도 좋으니 구입하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첫춧발이 되지 않을까" ▷지은이 임재양은 유방암 검진 전문병원인 '임재양 외과'의 원장으로 경북대 의과대학 의학교육과 외래교수다. 유방암학회 부회장과 유방클리닉협회 회장을 역임했다.대구 삼덕동의 골목 안에 한옥 병원을 짓고, 사람들과 어울려 소소한 행복을 즐기며 산다. 병원에 '한입별당'이라는 주방을 만들고 직접 재료를 구해 건강한 식탁을 차려서 사람들고 나눠먹는 일상을 살고 있다. 저서로는 '의사의 말 한마디'가 있다. 162쪽, 1만3천800원.

2018-11-22 13:31:51

[책체크] 종이한장/지은이 박윤효/북랜드 펴냄

2017년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특선을 수상한 수필가 박윤효가 8년간 쓴 작품을 모아낸 첫 수필집이다. 생계때문에 서문시장에서 찹쌀떡 장사를 했던 어린시절부터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뒤늦게 한문공부와 서예를 시작하며 느낀 배움의 즐거움, 돌아가신 아버지나 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삶 속에서 느끼는 잔잔한 기쁨과 작은 깨달음들을 이야기마다 진솔하고 담백한 목소리로 적어냈다.남들이 공부할 시기에 생활전선에서 고뇌의 밤을 보냈다는 지은이는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뒤늦게 한자공부를 시작했고, 홀로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문학당을 열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 글쓰기와 서예에 빠졌고, 지은이의 향학열은 문인화로 까지 이어지게 됐다. 이번 수필집에는 여백마다 자신이 직접 쓴 서예 작품과 문인화 작품도 함께 담았다. 256쪽, 1만5천원.

2018-11-22 13:28:26

조희길 나이스엔지니어링 대표

조희길 나이스엔지니어링 대표 세계문학상 시부문 대상

'그저 매일이 똑같으면 사는 재미가 있나/ 슬쩍 호미걸이라도 거는 척해줘야지 /걸리는 척이라도 해줘야지 /밋밋하게 매일이 흘러가면 사는 재미가 있나 /짜글짜글 냄비라도 끓어야지.'조희길 나이스엔지니어링㈜ 대표가 (사)세계문인협회가 주최한 '제13회 세계문학상' 시 부문에서 그의 두 번째 시집에 실리 '더러는 물젖어'로 대상을 받았다. 시상식은 18일 서울시 성동구청 대강당에서 열렸다.경주가 고향인 경영학 박사로 30년 넘게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조 대표는 동시에 문단에 등단, 활발한 문학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시인이기도 하다.1987년 '제8회 호국문예' 당선을 통해 문단에 이름을 올린 조 대표는 이후 '문학세계 신인상'과 '한국을 빛낸 문인들 100인'에 4년 연속 선정됐다. 2013년에도 (사)세계문인협회가 주최한 '제8회 세계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조 대표는 등단 전인 1980년 2인시집 '무명기'를 처음 발간했으며 '나무는 뿌리만큼 자란다'(2007년)와 이번에 '시조새 다시 날다'로 두 번째 개인 시집을 발표했다.이번 시집은 기업인으로 30년간 살아온 시인의 세월이 묻어난 작품으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시대별로 모두 3부(1부 청년의 노래, 2부 청년의 혼, 3부 아직도 청년)로 나눠 64편의 시를 소개했댜.조희길 대표는 "유난히 무더웠던 올여름, 무더위보다 더욱 치열했던 삶의 현장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가슴속 한 켠의 불덩이를 시로 표출해냈다"며 "이 시집이 자유인을 갈망하는 이 시대의 수많은 직장인에게 잠시나마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2018-11-20 14:05:12

일러스트 전숙경 (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부문 당선작]노병의 증언②/김길영

◆대공표지판을 메다50년 9월 7일. 새벽 5시, 보현산 쪽으로 북진한다는 작전명령이 떨어졌다. 내가 맡은 임무는 대공표지판을 메고 맨 앞에 전진하는 것이었다. 대공표지판이란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 크기의 두 장의 천이다. 한 장은 흰색이고 또 한 장은 붉은 색 천을 똘똘 말아서 매고 다녔다. 통신병과 함께 중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임무로 아군 비행기가 공습할 때 재빨리 우리의 위치를 알리는 신호작업이었다. 내가 맡은 일을 게을리 하면 자칫 아군에게 인명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아군의 최전방 공습을 꾀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나의 임무가 부대 맨 앞에 서는 위치라서 적에게 집중포화를 맞을 수도 있지만, 총검을 들고 싸우는 전투병 못지않게 내가 맡은 임무 또한 작전수행에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처음으로 격전을 치른 곳은 보현산 줄기의 작은 봉우리였다.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차서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고, 가파른 비탈에서 격전이 벌어지다보니 쌍방 간 부상병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인민군 병사 몇 명은 나무 둥치를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퇴각하는 인민군 잔병들도 부상병들을 돌보지 못하고 달아나기 바빴다. 저들의 목숨이 백척간두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전우애를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 석양녘에 고지를 탈환하고 산 정상에서 점호를 해본 결과 중대병력이 소대 병력으로 줄어 있었다. 나는 고향 친구이자 경주중학생이던 박준영을 만났다. 둘이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어느 형제가 이렇게 반갑겠나 싶었다. 같이 징집되어 같은 부대, 같은 소대에 편성된 전우들 중에 박준영을 포함한 몇 명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중대병력이 소대병력으로중대장과 소대장이 전사하고 이등상사가 중대장 임무를 대행했다. 첫날 전투에서 많은 병력이 희생되었다. 조그만 봉우리 하나를 탈환하는데 엄청난 병력의 손실을 입은 것이다. 이렇게 병력 손실을 입으면서 백두산, 압록강까지 전진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낮에 점령한 고지를 사수해야 했기 때문에 최정상을 기준으로 사방 4-50미터의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2인 1조로 야간보초를 섰다. 암호도 하달 받았다. 생면부지 병사와 한 조가 되어 금방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부대에 소속되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전우애 때문일 것이다. 참호 속에서 전우의 나이와 고향, 가족사까지 일일이 묻고 물어 모든 것을 알고 나선 마음이 놓였다.◆보현산 전투영천 보현산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며칠 동안 보현산을 샅샅이 뒤져 인민군 잔당을 소탕한 후에야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진지를 구축하고 정밀수색 중에 능선 아래 골짜기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총상을 입은 인민군 소좌 한 명과 사병 두 명이 발견 되었다. 소좌는 포로로 후송처리하고, 사병 두 명을 심문했더니 포천, 원주가 고향인 중학교 상급생이었다. 그들은 인민군 점령지역에서 단기 훈련을 받고 전투에 참가한 학생들이었다. 두 사병은 포로로 처리하지 않고 부대에서 우리 병력처럼 데리고 다니다가 북진할 때 원주에서 귀가시켰다.50년 9월 11일. 우리 8사단과 3사단의 연합작전으로 인민군 15사단 보병연대를 청송일대에서 섬멸했다. 아군은 단번에 15킬로미터를 북진했다. 이때가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기 며칠 전의 전황이었다.50년 9월 17일. 영천전투에서 기선을 잡은 8사단은 의성을 거쳐 안동 강변에서 야영을 했다. 그날은 추석 전날이었다. 달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고향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입대 며칠 전 결혼한 아내의 얼굴도 떠올랐다. 몽달귀신을 면해주려고 부모님이 부랴부랴 맺어준 인연이었다.야영을 마친 16연대는 영주. 풍기. 죽령까지 북진하여 인민군 주력부대의 퇴로를 차단하는 작전을 폈다. 8사단 3개 연대는 도송산 죽령-소백산을 연결하는 방어선을 구축했다. 우리 16연대는 단양. 21연대는 예천지역에 각각 배치되었다.50년 9월 19일. 밤에는 인민군 1개 사단 규모와 맞닥뜨렸다. 작전이 시작되자 치열한 공방전이 이틀이나 계속 되었다. 완강하게 버티던 적과 싸웠으나 우리의 인명 피해는 미미했다. 이때 생포된 인민군병사들만도 몇 백 명쯤 되었다.◆생포된 인민군안동에서 제천으로 그리고 원주로 가평으로 숨 가쁘게 북진하는 동안 큰 전투는 없었다. 적의 꽁무니를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쫓고 쫓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서울성동중학교에 도착한 8사단 전 병력은 4일간 재정비검열을 받았다. 내가 군에 입대 후 처음으로 소고기 맛을 보았고 술을 마셔봤다.50년 9월 28일. 부대검열이 끝나고 작전수송차량에 승차 했다. 중부전선 동두천을 경유 철원에 입성하면서 시가전이 벌어졌다. 철원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약간 경사진 길이었다. 길 양편으로 띄엄띄엄 경주 봉황대 같은 봉우리마다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환영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환영인파가 도열하듯 계속 늘어났다. 우리 부대는 의기양양하게 환영인파에 손 흔들어 답하면서 걸어 들어갔다.◆철원평야 대 혈전철원시가지 곳곳에는 방공호가 있었다. 상황이 급한 인민군 부대는 민간복장으로 갈아입고 위장하면서 우리를 환영하는 척했던 것이다. 철원시가지를 경유하면서 진격명령이 내려져 마침내 대 혈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마땅히 은폐할 곳이 없었다. 대평원에서 논두렁이나 밭고랑에 몸을 숨겼지만,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져 피아간 엄청난 병력 손실을 입었다. 3대대장이 철원시내 작전 도중 도로에 매설된 지뢰 폭발로 전사하자 부대 병사들은 적개심에 불타 무차별 공격을 감행했다. 적군도 만만치 않게 대응하고 있었다. 이 전투에서 나와 함께 논두렁을 타고 공격하던 허경행 전우가 관통상을 입고 후송되었다.우리 부대는 전방 고지에 집중포화를 퍼붓고 많은 포로를 잡았다. 생포한 포로 중에는 적군의 사단군악대원 25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병사들은 모두 북한지역 중학생이었다.

2018-11-19 13:03:10

밥상과 책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지은이 윤일현/학이사 펴냄

한국의 교육은 오로지 대학이라는 골을 향해 달려간다. 이 과정에서 불행한 부작용들이 속출하고 있다. 성적 위주로 돌아가는 학교와 사교육 열풍, 가출과 왕따, 학교 폭력, 성적을 비관한 10대들의 자살까지.'밥상과 책상 사이'는 공부만 강조하는 교육이 아닌 '인성교육', '감성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는 행복 교과서'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부모에게는 자녀 교육을 가정의 행복과 연결해 우리나라 교육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자녀에게는 지은이가 교육 현장에서의 얻은 경험을 통한 공부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준다.◆행복한 밥상이 즐거운 책상을 만든다지은이 윤일현은 교육평론가이자 입시전문가로 이 책에서 본인이 체험한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각종 문헌, 설화, 속담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이 시대 부모와 자녀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풍부한 학생 및 학부모 상담 경험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 교육에서 나타나는 문제가 오로지 공부만을 강조하는 풍조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라는 교육철학을 책에 담았다.지은이는 밥상을 단순히 밥을 올리는 가구가 아니라 말한다. 과거 밥상이 곧 책상이었던시절, 가족들과 즐거운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냈던 밥상에서 공부를 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밥상이 행복해야 책상이 즐겁다'는 그의 철학은 아이들의 교육 성과에 가족의 화목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뜻한다.지은이는 "밥상이 행복해야 책상이 즐겁다. 밥상머리에서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할 즐거운 행사나 자녀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힘, 특히 힘들고 부정적인 상황에서 자기 파괴적인 행동에 빠지지 않는 자제력과 인내심은 밥상머리에서 시작된다. 밥상에 앉으면 모든 피로가 풀리고 마음의 위안과 평화, 세상을 버티어 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며 "밥상에 앉아있는 시간을 늘리고 밥을 천천히 먹으며, 보다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자. 밥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나고, 그 시간이 즐거울 때, 온 가족은 더욱 행복해지고, 자녀들은 기쁜 마음으로 책상에 가서 보다 오래 앉아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공부보다 중요한 것들지은이는 학생들에게 계절의 흐름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문제집이 아닌 좋아하는 책을 읽고, 제 시간에 자고 아침을 챙겨먹고, 밥먹고 설거지를 하라는 등 공부만 하느라 놓치기 쉬운 것들이 오히려 교육 성과를 올리는 비법이라 조언한다.부모에게는 아이와 함께 손잡고 거닐고, 열린 마음으로 아이와 대화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인내심을 가지고 신뢰를 보내주라고 말한다."변화는 무조건 좋고 바람직하며, 안전과 안정은 모두 나쁘고 고루한 것만은 아니다.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있고, 세월과 더불어 더 좋고 나은 것으로 바꾸는 게 바람직한 것도 있다.문제는 열린 마음이다. 대화가 의미를 가지려면 부모자식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부모가 먼저 가슴을 열고 자녀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엄마아빠만 힘든 것이 아니다. 아이들도 밖에 나가면 긴장해야 하고 때론 두렵고 외롭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또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인공지능, 자동화 등으로 가득찰 미래에 대비해서는 '기본'을 강조한다. 급변하는 세상에 대응하기 위한 해법은 기본기라는 것.지은이는 기본기에서 창의력이 나온다며 피카소의 사례를 들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예술가로 손꼽히는 피카소는 어린 시절 미술의 기본기를 철저하게 익혔다. 미술선생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비둘기 발만 반복해서 그리게 했다. 15세가 되어서야 사람의 얼굴과 몸체를 그리게 했다. 한 가지를 오래 관찰하며 제대로 묘사할 수 있게 되면 다른 것은 보다 쉽게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의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피카소는 기본기를 잘 익혔기 때문에 3차원의 형상을 2차원적 평면으로 표현하는 입체파라는 독특한 장르를 창조해 낼 수 있었다." ▷지은이 윤일현은 '올바른 학습법'과 '책읽기를 통한 미래의 길 찾기'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2006년부터 학부모를 위한 인문학 강의인 '윤일현의 금요강좌'를 매달 두 번씩 열어 현재 250회를 넘겼고, 거쳐 간 수강생은 수 천 명에 이른다.오랫동안 교육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통해 사교육에 크게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인성·품성·학력 면에서 아이가 탁월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해 수많은 학생, 학부모, 교육 종사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포항제철고 교사를 거쳐 현재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대구경북작가회의 자문위원, 대구시인협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자녀 교육 관련 저서로는 '부모의 생각이 바뀌면 자녀의 미래가 달라진다', 부모를 위한 인문학 '시지프스를 위한 변명', 교육평론집 '불혹의 아이들'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낙동강' 과 '꽃처럼 나비처럼' 등이 있다.

2018-11-15 11:54:02

향촌동은 읍성이 허물어지고 신작로가 생기면서 근대 대구의 중심지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근대 대구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있는 향촌문화관에서 대만인 관광객이 국내 최초로 대구에서 도입해 운행한 시내버스인 부영버스를 관람하고 있다.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흥] 반나절이면 충분, 대구 중구 '5분 거리 산책 기행'

미세먼지라 곤란하고, 비오는 날이어서 불편하고, 겨울 추위가 코앞이라 바깥 활동에 몸서리친다면 대구 중구 '산책기행'에 나서보자. 박물관(근대역사박물관, 기술예술융합소), 미술관(대구예술발전소, 수창청춘맨숀), 문화관(대구문학관, 향촌문화관)이 걸어서 5분 안팎의 거리에 몰려들 있다. 5분 거리지만 지난 100년의 대구를 따라 움직인다. 어디를 걷든 제각기 이야기 하나씩을 가졌다. 그러고보니 대구근대골목투어 코스와 일부 겹친다. 날씨가 궂어도 큰 무리가 없다는 근대골목투어 홍보 문구가 이해되고도 남는다.근대골목투어 2코스 종점 부근인 약령시장에서 시작해 대구 중구 실내관광 투어에 나섰다. 5분 안팎의 이동 시간도 지루하지 않다. 역사의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음미하노라면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한다. 그럼에도 반나절이면 충분한, 걸으며 즐기는 산책기행이다. 운동 효과는 덤이다. 출발지였던 약전골목으로 돌아왔더니 허벅지가 뻐근해온다. 만보기를 보니 1만 보를 살짝 넘었다. ◆향촌문화관, 대구문학관 그리고 녹향산책기행 장소 중 유일하게 입장료가 있는 향촌문화관이다. 1천원이다. 1천원으로 향촌문화관, 대구문학관, 그리고 지하의 녹향까지 이용할 수 있다. 본전은 빼고도 남는다. 콘텐츠 구비가 그만큼 잘 됐기 때문이다.향촌문화관에서는 해방 이후 모습들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 공통의 이야기다. 대구 향촌동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것뿐이다. 1960, 70년대 시가지의 재현이 인기 공간이다. 비단 대구만의 모습으로 치부할 수 없어 공감대 형성도 쉽다.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를 모티브로 추억의 시간여행 공간을 만들어놓은, 군위 화본역 인근 옛 산성중학교와 비슷하다.평일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눈에 띈다. 간단한 인터뷰를 위해 3명에게 말을 걸었더니 모두 대만 관광객이다. 우연치고는 신기해 물었더니 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구를 많이 소개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 대구시는 2016년 대만의 TV여행프로그램 '완락지(玩樂誌)'에, 올 초에는 '여행응원단(旅行應援團)'에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인지도를 높이는 중이었다. 향촌문화관을 대만의 방송이 어떻게 소개했을까 궁금했다. 전형적인 한국의 근현대사인데 이걸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해서였다. 결론은 '여행자들의 창조적 자립 여행에 박수를'이었다. 이 빵, 저 빵 다 챙겨먹고 따로국밥 먹는 장면까지는 나왔으나 '향촌문화관'은 결코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층에서 시작되는 문학관은 대구경북 출신 작가들의 기록과 기억의 집합소다. 4층엔 도서관도 있다. 책에 손때가 거의 없다. 가까이 가니 새 책 냄새가 아직 난다. 그 자리에서 보는 것만 가능하다.지하 음악감상실 녹향으로 간다. 기도를 올리듯 나이 지긋한 여성 두 명이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있다. 클래식 음악이 한창 흐르는 중이다. 필시 음악을 감상하는 중일 것일 테지만 음악감상실 테이블이 교회의 그것과 흡사해 마치 기도하는 느낌이다. ◆근대역사박물관, 기술예술융합소어르신들의 해방구 옛 무궁화백화점을 지나 경상감영공원을 거치면 근대역사박물관이 나온다. 중부경찰서 옆 유럽풍 건물이라고 하면 '거기 안다'며 웬만큼 고개를 끄덕이는 그곳이다.실제로 근대역사박물관은 세대별로 다르게 기억되는 공간이다. 20대 안팎에겐 근대역사박물관, 40대 안팎에겐 아세아극장 근처에 있던 산업은행, 그러나 70대 이상에겐 우체국 앞에 있던 조선은행(실제 이름은 조선식산은행)이다. 이렇게 치자면 향촌문화관도 옛 상업은행, 우리은행 건물이었다. 1930년대 실제 이곳은 지금으로 치면 범어네거리에 버금가는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북도청(경상감영공원)이 있었고 무영당백화점(부산비닐상사)이 있었고 조선식산은행(근대역사박물관)이 있었다. 대구부영버스가 가로지르던 코스였다. 돈과 권력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근대역사박물관은 대구의 근대역사를 중심으로 설명, 전시해뒀다. 대구토박이들이 들어도 신기할 얘기들이다.북쪽으로 100미터 남짓 가면 북성로다. 북성로 공구골목의 시작점은 대구역에서 매우 가까운데 때문에 1960, 70년대 북성로 공구골목에 어린 견습공원들이 넘쳐났던 이유와 연결짓는 증언들도 넘친다. 1960년대 초입부터 시작된 산업화 시기 시골에서 올라온 10대들은 지금의 10대와 다소 달랐다.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아니었다. 도시로 나가 돈을 벌어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야 했고, 부모님을 도와 집안의 기둥이 돼야 했고, 입을 덜어야 했다. 청운의 꿈도 싣고 스스로 오른 대구행 기차였다.대구역에 내린 중학생 또래의 아이들은 대구역 앞의 비렁뱅이들을 봤고, 넝마주이를 스쳤고, 대구역사를 벗어나 이런저런 유혹의 손길을 헤치고 쇳가루 냄새가 질펀한 북성로 철공소 단지로 향했다. 운이 좋은 아이들은 미리 자리잡고 있던 친구의 소개로, 연줄이 없는 아이들은 견습공을 자처했다. 급여없이 밥만 먹는 조건으로 기술을 배웠다. 그 당시 견습공 급여는 명절 보너스가 전부였다. 더 엄밀히 말해 '사장님 마음'이었다.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는 이야기가 70대들의 자수성가 성공스토리에 더러 나왔다.그런 이야기들이 골목골목 숨어든 곳이 북성로 공구골목이다. 마침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해 2013년 문을 열었던 공구박물관이 최근 확장 이전해 기술예술융합소 '모루'라는 이름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릴 때 받침대로 쓰는 '모루'에서 나온 이름이다.지상 2층(연면적 264㎡) 규모로 전시관, 장인작업장, 창작 공간 등을 갖추고 있다. 전시관에는 기존 공구박물관 전시품과 시민 기증품 등 100여종 등 3천여점이 진열돼 있다. 톱, 칼, 끌, 망치, 스패너, 드라이버에서부터 수동 연마기, 드릴링 머신, 수직 발동기 등 희귀 공구까지 전시돼 있다. 창작공간에서는 장인, 예술가 등과 폐공구를 활용해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대구예술발전소, 수창청춘맨숀북성로공구골목 서쪽으로 벗어나면 근래 대구도심에서 가장 높다는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굳이 이 아파트 단지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걸 지으면서 대구시민들이 얻게 된 것이 바로 '대구예술발전소'라서다.도심 속 미술관 역할을 하는 대구예술발전소는 예술가들의 창작스튜디오 겸 전시장이다. KT&G 연초제조창 별관 창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공간이지만 담배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전시실, 예술정보실, 문화공간 등으로 조성돼 있는데 예술도서관 '만권당'이라는 곳에 꼭 들르자. 이곳에 비치된 예술 관련 고가 서적은 여타 도서관에서 쉽게 볼 수 없어 이목을 끈다. 이용객도 많지 않아 유유자적, 통유리 창밖으로 수창공원을 바라보며 책을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4층에 있는, 그 유명한 '억수로 큰 달' 그림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통해 존재감을 알린 바 있다. 사람들이 손에 올려놓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고, 밀어보기도 하는 갖가지 자세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달이다.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어느 순간 보니 달 사진의 성지처럼 돼 버렸다. 바로 옆에는 '수창청춘맨숀'이 있다. 겉에서 보면 낡디낡은 3층 높이 아파트다. 1976년 준공돼 1996년 폐쇄됐던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파트형 미술관이 됐다. 청년 예술가들을 위해 KT&G 연초제조창 사택으로 쓰였던 아파트가 변신한 것이다. 안과 밖이 판이해 오해했던 게 미안해질 정도다.이달 3일 개관식을 했다. '수창, 청춘을 리노베이션하다'를 주제로 40여명의 지역 청년작가들이 참여해 작품을 전시해뒀다. 사택 아파트를 개조한 공간이라 작품을 찾는 것이 숨은그림찾기 같기도, 미로찾기 같기도 했다.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추억샷을 남기려는 연인들이 이리저리 명당을 찾는다.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터가 가까이에 있다. 단, 삼성 관련된 상징물이나 기록물은 거의 없다. 아쉽다면 오페라하우스 옆 대구삼성창조캠퍼스로 가길 권한다. 삼성 창업주 故 이병철 회장의 동상과 삼성상회를 재현해놓은 3층 건물이 있다. 원래는 제일모직이 있던 곳으로 사원 숙소도 있던 곳이었다.ㅊㅡㅇ에

2018-11-14 20:00:00

이야기로 풀어보는 대구지명 유래 1, 2/전영권 지음/도서출판 신일 펴냄

"산업화와 문명화가 될수록 소중한 전통문화도 상당 부분 멸실되었거나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깝다. 한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인 것은 마을의 이름, 즉 지명일 수 있다. 지명은 장소에 대한 정체성이이자 문화의 산실이기도 하다."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인 지은이는 서문에서 이렇게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밝혔다. 또 모든 지명이 아니라 인지도가 높고 흥미롭고 실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지명을 골라 묻고 답하는 이야기 식으로 책을 서술했다. 1권은 중·남·서구편이며 2권은 북·동구편이다.대구 중구 첫 번째 지명 계산동의 유래는 어떻게 될까?대구읍성 시절 남쪽 성곽 옆(남성로)에 위치하는 동으로 '계산'은 계수나무가 있는 산을 뜻하며 원래 대구부 서상면 지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당시 동산동 일부와 함께 일본식 지명인 명치정(明治町) 1정목(丁目)으로 개칭되었다가 광복 후 계산동 1가로 바뀌었다.대구 최초의 십자로는 어디일까?경상감영공원 입구에서 서쪽으로 약 20m정도 가면 대구 중부경찰서가 나온다. 바로 이 경찰서 앞 네거리가 대구 최초의 십자로이다.파계사는 풍수의 비보(도와서 모자라는 것을 채우는 것)사찰로도 유명한데?파계(把溪)라는 의미는 사찰 주변 아홉 골짜기로 흘러내리는 물을 한 곳으로 모아 기를 누른 다는 뜻이다.이외에 매여동의 유래는 임진왜란 때 밀양 박씨 문중에서 이곳으로 피란와 살면서 마을 주변 산세가 오목하고 매화나무 꽃이 희다고 하여 매화동으로 불렸다가 나중에 매여동으로 변했다.지은이는 또 해당 지역과 관련된 사진도 함께 첨부함으로써 지명 이야기 가운데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는 재미도 적지 않다. 1권 175쪽 2권 180쪽, 각 권 1만원.

2018-11-14 14:44:09

경주시, 왕의길-신라왕릉 펴내

경주시가 신라 왕릉 이야기를 담은 '2018 왕의길-신라 왕릉'을 발간했다.'경주 신라 왕들의 길을 걷다'라는 부제로 현재 위치가 알려진 무덤들부터 시작해 전성기를 맞이한 6세기 신라시대의 왕릉, 그리고 9세기 중엽 이후 신라 왕권의 몰락과 쇠퇴기까지 왕릉의 다양한 사진과 문헌들을 활용해 신라 왕릉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있다. '신라 왕릉, 재밌게 둘러보기', '신라 상고기 왕릉', '신라 중고기 왕릉과 서악동 고분군', '신라 하대의 왕릉' 등 4개의 챕터로 구분돼 신라의 왕과 왕릉의 형식, 알려진 위치 등과 함께 문헌을 토대로 시대별 왕릉과 추정 위치 등을 소개한다.주낙영 경주시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신라 왕릉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신라 왕릉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에 신라 역사를 여행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신라 왕릉 연구는 신라시대 문화상과 그들의 사후세계 관념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2018-11-13 11:28:40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소감]노병의 증언/김길영

나에게도 상복이 돌아왔다.논픽션부문과 시 부문까지 겹상을 받고 보니 여기저기 자랑하고픈 생각이 앞선다. 나이 들어서 상을 받는 다는 게 쑥스럽기도 하지만 한편 기쁘기도 하다. 글쓰기 도반뿐만 아니라 그동안 소원했던 친척에게까지도 알리고 말았다. 칭찬이라는 게 어른 아이 막론하고 좋은 것이다.나는 늦깎이 문학도다. 지난 9년 동안 여러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글 동냥하듯 시와 수필을 배웠다. 그것도 부족하여 지금 나는 문예창작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 상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글쓰기 결과물을 얻은 것 같아 기쁘고 감개가 무량하다.매일신문시니어문학상이 벌써 4회째를 맞는다. 대한민국 시니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시니어문학상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층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태어났거나 6.25전후 세대들이다. 우리들은 광복을 맞고 6.25전쟁을 겪었으며 4.19와 5.16, 12.12 같은 불행한 사건들이 우리 곁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IMF라는 국가부도 사태를 겪으면서도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끌어올린 세대들이다. 이제 매일신문사에서 큰 판을 벌여 놓았다. 굽은 허리를 쭉 펴고 희미해진 정신을 가다듬어 실컷 즐겨볼 일만 남았다.나는 오늘 이 상에 만족하지 않겠다. 늦깎이로 시작한 글쓰기인 만큼 다음에도 다른 장르에 또 도전하여 문학성 있는 작품으로 알찬 열매를 거두고 싶다.이 기쁨을 시와 수필을 지도해주신 여러 선생님과 수필사랑문학회, 텃밭시인학교, 푸른시창작원, 경희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님과 학우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나누고자 한다.대한민국시니어들에게 문학상을 제정해 주신 매일신문사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018-11-12 11:52:34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작]노병의 증언/김길영

이 글은 예비역 하사 이규락의 6.25전쟁 참전기(參戰記)이다. 필자에게 수차례 들려준 이야기를 종합하여 「노병의 증언」이란 제목을 붙이고 글을 완성해서 그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연락이 끊겼다. 6.25전쟁 발발 65년 만에 '판문점선언'으로 종전이 눈앞에 온듯하다. 전쟁의 참상이 어떠했는지 이 시점에 알리고 싶다.◆군 입대내가 군에 입대한 것은 경주공업중학교 3학년 때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중앙학련회 간부들이 내려와 학련회 중심으로 학도병 입영을 독려했다. 나는 학급장이었고 그 땐 학생들도 좌우로 갈라져 갈등을 빚을 때였다. 내가 학도병을 지원하지 않고 징집명령에 따라 입영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앞서 학도병으로 입영한 경주지역 학생들이 안강전투에 참전하여 참패를 당했다. 군인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시상황이 워낙 다급한 나머지 사격연습 몇 번 시켜서 안강전투에 투입시켰던 것이다. 전투에 참여한 학도병들이 안강전투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50년 8월 28일. 나는 할머니를 비롯한 부모형제, 그리고 신혼의 아내와 헤어져 집결지인 경주향교로 갔다. 경주향교강당에는 경주중학생과 경주공업중학생, 경주문화중학생 등, 수십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얼핏 보면 학도병들의 출정식 같았다. 이때 징집에 응해서 작별인사를 나눈다는 것은 사지로 가는 마지막 인사나 다름없었다. 그러기에 보내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 모두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먼 산을 바라만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주먹밥 한 덩이씩 받아먹고 트럭에 분승하여 대구로 갔다. 초행길인 대구는 어디가 어딘지 잘 몰라서 마치 전쟁터로 가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결지가 대구남산초등학교였다. 대부분 학생들이었는데, 모인 숫자가 수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점호를 마친 후에 분산 배치되었다. 경주에서 징집되어 온 우리들은 동인로터리 부근에 있는 제사공장(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가다구라'제사공장)에 수용되었다. 그곳이 임시 훈련소였다. 군대 조직을 편성하고 내무반도 배치 받았다. 교복에서 군복으로 갈아입고 보니 군인이 다된 기분이었다. 내무반에서 내무규율이나 근무요령 등 기초교육만 받고 밤 10시경 소등과 동시에 취침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앞으로 닥쳐올 일들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웠기 때문이다. 전투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느 전선에 배치될 것인지 두려움뿐이었다. 안강전투에서 맥없이 죽어간 학도병들처럼 나도 어느 산천에 묻힐지 모르는 불안감이 잠을 설치게 했다. 앞서 학도병으로 입대한 선배들의 많은 희생을 본 터라 내가 적군과 대치상황에서 총을 겨눠 적을 사살하고 내 목숨을 지켜낼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생각보다 밤은 길었다.◆영천전투50년 8월 29일. 아침 5시에 나는 기상나팔소리를 들었다. 한 번도 긴장상태에서 살아보지 않은 나는 흥분이 되어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 신체검사를 받고 하루를 보냈다. 그 다음 날은 왼 종일 제식훈련만 받았다. 9월 1일이 되어서야 봉덕동에 있던 국방군 6연대 사격장에서 M1소총과 실탄을 지급 받고 3일 동안 사격훈련을 받았다.50년 9월 4일. 한 밤중에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우리 부대는 대구역에서 기차를 탔다. 밤중에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기차선로를 확인해보았다. 복선이 아닌 걸로 봐서 경주방향으로 간다고 지레짐작했다. 하양역에서 내려 어느 과수원창고에서 하룻밤을 세우고 아침밥을 먹었다.50년 9월 5일. 하양에서 금호 소재지를 지나 일본군이 경비행기 저장방카로 사용하던 격납고에 분산 배치되었다. 하루 종일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틀간 꼼짝하지 않고 대기하면서 출전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 너머 영천 쪽에서는 포탄 터지는 소리와 총성이 요란했다. 비가 오는 밤하늘엔 전폭기가 떠서 요동을 치고 있었다.50년 9월 6일 새벽. 8사단 16연대는 영천시가지 탈환작전에 돌입했다. 시가지는 모두 피난을 떠난 뒤여서 인기척 없이 주인 잃은 개들만 총소리에 놀라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우리는 첫 전투로 소규모의 적을 만나 접전 끝에 격퇴시키는 데 성공했다. 시내 곳곳에 인민군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부상자들은 여기저기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쳤다. 저항하던 인민군 잔병들은 보현산 방향으로 물러갔다. 영천 시내를 탈환한 여세를 몰아 고경초등학교 뒷산에 집결해서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2018-11-12 11:52:09

조던 피터슨의 강연 모습. 메이븐 제공

12가지 인생의 법칙/지은이 조던 피터슨/메이븐 펴냄

취업문은 너무 좁고, 일자리를 겨우 구했는데 비정규직이라 매일 불안하다. 월급을 모아도 부모 세대처럼 내집 장만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연애는 꿈도 꿀 수 없고 결혼은 포기해야할 것 같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 부르며 살고 있는 팍팍한 현실이다.미국이나 유럽 청년 세대의 고민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실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조던 피터슨은 어줍잖은 위로 대신 인생은 고통이라 냉소를 날린다. '어깨를 쫙 펴고,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고 조언한다. 그의 조언에 젊은이들은 피터슨을 '인터넷 아버지'라 부르며 열광하고 있다.◆젊은 층에게 가장 핫한 심리학피터슨이 처음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이름을 알린 건 유튜브를 통해서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150만 명을 넘었고, 누적 조회 수는 7천500만 회에 달한다.그는 하버드대 교수 시절부터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하버드에서 최고의 교수에게 수여하는 '레빈슨 교수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토론토대에서는 학생들에게 인생을 바꾼 교수로 뽑히기도 했다. 피터슨에게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사회의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현실적이고 유용한 지혜를 가르치는 데 실패했다. 피터슨은 그 차이를 메우고 있다"고 분석한다.2018년 1월 출간된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영미권 최고의 질의응답 사이트인 '쿼라'(Quora)에 올라온 질문에 답을 다는 피터슨의 취미에서 시작됐다. '인생에서 누구나 알아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40개의 법칙을 답으로 올린 것. 이 목록은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그 중 12개를 추려 3년 동안 이 책을 집필했다.그가 말하는 인생의 절대적 진리 중 하나는 '인생은 고통'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언젠가 병들어 죽음을 맞게 되고 이를 피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이를 외면했을 때 인생의 비극 앞에서 무너지기 쉽다. 따라서 행복보다는 인생의 의미를 찾고 고통에 무너지지 않는 법을 심리학, 생물학, 신화, 종교, 철학 등을 넘나들며 설명한다.◆행복을 찾기 보다는 의미를 찾아라피터슨이 제시한 12가지 법칙은 보수적이고 엄한 말투의 조언들로 가득차 있다.첫번째 법칙은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다. 그는 바닷가재를 통해 인간을 설명한다. 서열싸움에서 패배한 바닷가재는 움츠러 들고 좋은 것들을 전부 빼앗긴다. 인간도 서열구조에서 낮으면 더 나은 삶을 살 기회가 줄어든다. 우울하고, 의욕이 떨어진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피터슨이 제시한 방법이 자세를 바로 잡고 의욕을 찾는 일이다. 신체와 정신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자세를 똑바로 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가짐이 바뀌고 사람들의 시선이 바뀐다는 것. 바로 승리한 바닷가재의 모습을 떠올리라는 것이다.마지막 법칙에서 그는 인생을 고통이라 여기게 된 사연과 함께 고통에서 얻은 교훈을 소개한다.그의 딸 미카일라는 7세 무렵 발이 아파 신발을 신지 못했다. 소아 류머티즘 관절염이었다. 무려 37개 관절에 문제가 있었다. 통증을 견디다 못해 실신하며, 발목 절단 위기까지 겪었다. 10년 넘게 투병하는 과정에서 그는 고통에 무너지지 않는 방법에 대해 깨닫는다.책 에서 그는 "다음 주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면 우선 내일만 생각하고, 내일도 너무 걱정된다면 1시간만 생각한다. 1시간도 생각할 수 없는 처지라면 10분, 5분, 아니 1분만 생각한다. 사람은 상상 이상으로 강인하다. 지금 눈앞에 놓인 문제를 마주할 용기만 낸다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또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면 쓰다듬어 주는 것 같은 작은 기쁨을 발견하라는 조언도 한다. 그는 "아무리 안 좋은 날이라도 주의를 기울이면 그런 작은 기쁨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도 삶은 살만한 것이다. 어떤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인내하려면 선한 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의 선한 면을 보지 못하면 삶의 방향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다"고 했다.지은이 피터슨은 춥고 황량한 캐나다 앨버타주 북부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접시닦이, 양봉업자, 건설 인부, 운전사 등 다양한 험한 일을 경험하며 자랐다. 정치학도였지만 임상심리학으로 박사를 땄고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토론토대 심리학과 교수로 있다. 552쪽, 1만6천800원.[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법칙 1.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법칙 2.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법칙 3.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법칙 4.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하고만 비교하라법칙 5.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말라법칙 6.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법칙 7.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법칙 8.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법칙 9. 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을 들려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라법칙 10.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하라법칙 11.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법칙 12. 길에서 고양이와 마주치면 쓰다듬어 주어라

2018-11-08 12:13:47

독도 7시 26분/김남일 외 18인 지음/휴먼&북스 펴냄

책 제목에 있는 시각 '7시 26분'은 우리나라에서 해돋이가 시작되는 곳인 독도의 공식적인 1월 1일 일출 시각이다. 이 책은 2005년 일본의 도발에 맞서 경상북도가 발표한 독도 지키기 종합대책(일명 안용복 프로젝트)의 산물로 설립된 '독도지킴이팀' 그리고 그들의 선후배들과 동료들이 독도를 지키기 위해 동고동락하며 보내야 했던 뜨거운 투쟁과 노력, 향후 전망을 기록하고 있다.일본이 불법적으로 독도를 자기네 영토에 편입한 때가 1905년 1월. 그로부터 100년 되는 날인 2005년 3월 16일, 일본은 시마네현의 소위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앞세워 독도 일본령을 내외에 기정사실화했고 자국 교과서에 관련내용을 점차 확대 기술해왔다.책은 경북도 김남일 재난안전실장을 비롯해 모두 19명의 필자가 참여했고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독도의 역사와 한일간 쟁점을 다루고, 2부는 독도의 생태 현황과 보존 방안을, 3부는 독도를 지켜온 이들의 삶과 향후 전망을 다루고 있다.필자들이 현장에서 촬영했거나 국내외에서 발굴한 200여장의 사진들이 기록물로 함께 편집됐다. 현장을 뛰어본 이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긴장감과 생동감이 책 전편에 흐르고 독도의 역사, 자연, 환경과 독도 투쟁에 대한 최신의 실록이자 백서라고 할 수 있다.현재 독도는 중앙과 지방이 손발이 맞지 않아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단적으로 우리나라 경우 총리실 정부합동독도영토관리대책단이 10여개 부처의 참여 아래 정책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회의가 울릉도 현지에서 열린 적은 없고 거기에 참여한 부처 담당국장들 대부분이 독도에 가본 적도 없다. 반면 일본은 내각 영토주권대책 기획조정실과 시마네현이 유기적으로 공조하면서 정부각료급 인사들이 우리 정부 인사의 독도 방문에 일일이 항의하는 등 일관된 대응방침을 유지하고 있다."독도를 포함한 동해바다를 지키는 일은 곧 우리나라를 21세기 세계사를 주도할 해양민국으로 만드는 길입니다"고 외치는 김남일 실장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할 때이다.

2018-11-06 18:50:14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수필 부문 당선소감]최상근 '낮달'

최상근 '낮달' - 당선소감 기억이라는 것. 세월이 흐를수록 희미해지는 추상. 오히려 뚜렷해지면서,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이미지. 수많은 찰나가 엉겨 붙어 이룩된 억겁이 비바람에 씻겨 바랜 것. 그것이 낮달이다.낮달을 올려다보면 처연하게 살다 간 어머니의 얼굴이 보인다. 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번지는 희미한 미소. 이미지의 반은 낡고 닳았다. 그것은 내가 어머니 속을 다 태우고 남은 흔적이다.어릴 적, 특히 어머니를 별나게 애먹인 데는 이유가 있다.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탓이다. 다른 형제에게 무엇을 빼앗긴다는 두려움이 내 마음속에 잠복했다. 속 깊은 곳에 그런 심리적 부담감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것을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일로 풀었다. 너무 울어서 동네 울보였던 기억이 새롭다.그러나 이제 울지 않는다. 나를 울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는 사이에 그 옛날 불안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머니가 없어도 제법 앞가림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왠지 서운해서 자꾸만 되돌아보는 것은 왜일까.나는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어머니를 의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어머니'라고 불러 놓고 나서야 제대로 된 고백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도 다 어머니를 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시니어 세대에게 기회를 주신 매일신문사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주저앉지 말고 끝까지 완주하라고 주신 기회라 생각됩니다. 이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소중합니다. 심사해주신 위원님에게 감사드립니다.

2018-11-05 13: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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