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되풀이되는 화풀이, 가슴이 아닌 머리로

지난 24일 오후 대구 북구청 앞에서 대현동, 산격동 주민들이 집회를 열고 이슬람 사원 건립 허가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 24일 오후 대구 북구청 앞에서 대현동, 산격동 주민들이 집회를 열고 이슬람 사원 건립 허가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서광호 기자 서광호 기자

90년 전인 1931년 7월 7일. 그날 동아일보는 "평양 내 중국인은 거의 전부 습격을 당했다"고 기록했다. 중국인에 대한 조선인의 습격은 앞서 같은 달 3일 인천에서부터 시작돼 전국으로 퍼졌다. 바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화교배척사건'이다. 주요 대상은 화교와 중국 노동자들이었다.

평양에서 피해가 가장 컸다. 평양에서만 100명이 넘는 중국인 사망자가 나왔다고 전해진다. 평양의 중국인 소유 집은 대부분 습격을 당했다. 수천 명의 조선인 군중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집을 부수고 중국인들을 때렸다.

한 국가 안 소수 인종을 향한 혐오 범죄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희생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계였다. 특히 4명은 한국계 여성으로 밝혀졌다. 용의자는 20대 백인 남성이다.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가 이번 범죄의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두 사건은 약 한 세기의 시간 차이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조선인(한국인)이 가해자고, 나머지는 피해자다. 이렇듯 다른 것 같지만, 공통점도 있다. '인종'이 갈등의 발화점이라는 것. 여기서 인종을 국가나 민족, 종교 등으로 바꿔도 될 듯하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거나, 이질적인 문화를 지닌 집단에 대한 거부감이 폭력으로 이어진 사례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처럼 혐오 폭력의 피해자는 인종·민족이라는 정체성으로 주로 규정된다.

하지만, 또 하나의 사실은 대부분 피해자가 '약자'라는 점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지위가 낮거나 영향력이 적은 사람들이다. 싫어하고 꺼리는 감정을 드러내더라도 안전한 대상이다. 마음껏 미워해도 뒤탈이 없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속담이나 돈은 위로 가고 '빠따'는 아래로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화풀이(혐오) 폭력은 대물림된다. 그 대상은 진짜 뺨을 때린 사람이 아니다. 연약한 지표를 용암이 뚫고 나오듯, 약한 지점(집단)에서 폭력이 분출되기 마련이다. 사회경제적 스트레스의 삐뚤어진 발산인 셈이다.

다시 화교배척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이 사건이 일어난 배경으로 여러 요인이 손꼽힌다. 그중 도시 하층민 사이의 갈등이 집단 폭행에 불을 지폈다는 분석이 있다. 당시 도시가 커지면서 사람들이 몰렸고, 이로 인해 생계가 어려운 하층민이 생겨났다. 여기에 중국 노동자들이 들어오면서 경쟁이 심해졌고, 이로 인한 묵은 갈등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사건들의 무자비한 폭력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최근 대구에서도 특정 종교(문화·인종)를 거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북구 대현동의 이슬람 사원 건축을 두고 인근 주민들이 반대에 나섰다. 소음과 냄새 등으로 불편을 겪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주민의 입장에선 재산권과 주거권 피해를 충분히 염려할 수 있다.

하지만 표현이 점차 과격해진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일부 사람들은 특정 인종과 종교에 대한 미운 감정을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사회경제적 스트레스가 높아진 상황이어서, 이러한 혐오 표현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역사에서 보듯 우리는 혐오 폭력의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도 될 수 있다. '당한 만큼 되돌려주겠다'는 흥분은 가라앉히자. 국가와 인종, 종교 등을 둘러싼 여러 갈등 사례가 국내외로 쏟아지는 요즘,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감정을 누르고 이성의 힘을 빌리자. 폭력 뒤에 숨어 있는 '사회경제적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관심이 더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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