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누죽걸산'

11일 오후 광주 광산구 한 전통시장에서 공무원과 주민으로 구성된 방역단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 소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후 광주 광산구 한 전통시장에서 공무원과 주민으로 구성된 방역단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 소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헌득 편집국 부국장 홍헌득 편집국 부국장

'누죽걸산'이라는 사자성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무슨 한자(漢字)로 이루어진 관용구인지, 어떤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조금 당혹스러웠다. 사자성어를 평소 많이 사용한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웬만한 것들을 알아듣기는 하는 수준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뜻을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르신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을 처음 들려주신 분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전직 교수였다. 영남대학교와 포항공대(현 포스텍)에서 교편을 잡으시다 정년퇴직하신 K라는 분이다.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대구시내 이곳저곳에서 열정적으로 강의도 하고 계신다.

살아오신 얘기를 하던 중 "사자성어 하나 가르쳐 드릴까요" 하시더니, 당신의 좌우명이기도 하며 어디에서든 꼭 얘기하는 네 글자라며 누죽걸산을 알려주셨다.

"사자성어가 모두 한자여야 한다는 법이 있나요. 옛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하면된다'라는 사자성어도 있잖아요? 이건 한글 사자성어예요. 누죽걸산, 바로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라는 뜻이라오, 하하하."

20년 전 강단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덮친 뇌졸중이라는 병마와 싸우면서 터득하게 된 자신만의 진리라며, 지금은 누죽걸산 전도사가 되었다고 했다. 뇌졸중에 걸려 자리에만 누워 있다가 어떤 계기로 휠체어 대신 지팡이를 잡게 된 것이 누죽걸산의 첫 경험이었다고 한다. 여전히 몸 한쪽이 불편하고 지팡이에 의지해 걷지만, 반신불수가 되어 체념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게 되었으니 누죽걸산이 신앙처럼 되었다는 것도 당연하게 들렸다.

누죽걸산은 평범하지만 중년 이후의 어른들이 꼭 새겨야 할 진리이다. 나이가 들면서 몸 움직이기가 점점 힘겨워지게 마련이다. 오래도록 사용해온 관절은 점점 닳고, 뼈를 지탱해주던 근육도 갈수록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K교수의 신념이다. 중년 이후 걷기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 사람의 삶을 되살렸고, 이 땅 모든 중·노년층의 좌우명이 되어야 할 그 누죽걸산도 당분간은 접어두어야 할 판이다. 중국에서 날아온 불청객,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 가뜩이나 움츠러드는데, 연초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떨고 있다. 입춘이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춘래불사춘이 따로 없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다. 특히 나이 든 어르신들은 아예 바깥출입을 하지 말라는 경고다.

며칠 전 어르신들의 단골 맛집인 시내 한 식당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그 북적이던 핫 플레이스에 손님이라곤 우리 일행뿐이었다. 누죽걸산이 아니라 '나죽집산'(나가면 죽고 집에 있으면 산다)인가. 요즘은 어떻든 안전이 가장 급선무이니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분간은 누죽걸산 대신 복지부동하고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감염병이 돌 때 어르신들의 행동거지가 더 조심스러워진다. 공공장소에서 젊은 사람들 대하기가 요즘처럼 조심스러울 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어른으로서 스스로 더욱 조심하고 또 조심했으면 한다. 어른들이 존경 대신 눈총을 받기 십상인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바깥나들이를 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어른들 스스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루 빨리 병마가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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