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울음소리에 가슴 깊이 파고드는데, 들리지 않은 그 목소리에 스쳐가는 바람소리뿐….' 1980년대 감미로운 목소리와 애수 어린 감성으로 스타덤에 오른 가수 백영규의 노래 '슬픈 계절에 만나요'는 이렇게 귀뚜라미 울음소리로 시작한다. 수컷이 암컷에게 보내는 사랑의 노래가 인간의 정서에 부합해서인지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고적한 가을밤의 외로움을 달래는 자연의 멜로디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을을 상징하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문학이나 음악의 소재로 널리 등장하며 계절의 순환과 인생의 무상감을 대변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왕실은 물론 귀족사회에서도 귀뚜라미를 애완용으로 기르며 귀뚜라미 싸움을 즐기기도 했다. 삼국지를 그린 대하드라마에서 적벽대전 패배 직후 등장하는 조조의 아들 조비가 귀뚜라미 싸움을 보며 히히덕거리는 장면이 그 좋은 사례이다.
관우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 손권을 공격한 이릉전투 참패 후 스러져가는 아버지 유비의 백제성 호출을 받은 유선이 제갈공명 앞에서 애완 곤충인 귀뚜라미를 가져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눈물을 찔끔거리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인들의 귀뚜라미 애호 행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산둥성 닝양현에 있는 한 마을은 최상급 귀뚜라미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가을이 되면 전국의 귀뚜라미 판매상이 몰려들면서 100곳이 넘는 귀뚜라미 판매점이 개설된다고 한다. 귀뚜라미 싸움에 거액이 오가는 도박판이 횡행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 궁녀나 귀족들이 귀뚜라미를 잡아넣은 금롱(禁籠)을 머리맡에 두고 밤마다 울음소리를 들으며 고독을 달랬다고 한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나오는 내용이다.
농촌진흥청과 경북대병원 공동 연구진이 '귀뚜라미 키우기'가 특히 노인들의 외로움을 치유하며 정서적인 안정감을 가져온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귀뚜라미의 이 같은 심리 치유 기능이 노인학 분야 국제 학술지에도 게재되었다고 한다. 공간적 제약과 경제적 부담이 적은 것도 큰 장점이다. 반려동물에 집착하고 반려곤충까지 절실한 것은 현대인들의 삶이 그만큼 삭막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댓글 많은 뉴스
국민의힘, 대구 중구남구에 김기웅 전 통일부 차관 공천
공천장 줬다 뺏고 낙하산 꽂고…정통 보수 후보도 못지키는 국힘 '날림 공천'
고민정 "노무현 지키겠다"…'불량품' 두둔 이재명과 대립각
'환자 대신 제자 편' 의대교수들 "25일부터 사직서 제출" 집단행동 현실화
대통령실, 의대 증원 2000명 양보하나?…"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