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연탄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이 짧은 시구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 죽비와 같은 일갈이었다. 온 몸뚱이를 불태워 한겨울 아랫목에 따끈한 온기를 전하고는 하얀 재로 전락하는 연탄. 땅바닥에 나뒹구는 신세가 되고서도 빙판길 미끄럼방지용 가루로 흩어지며 마지막 봉사를 하고 사라지는 연탄재.

누구나 하찮게 여겼던 연탄재에 이렇게 뜨거운 의미를 부여하며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시인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쩌면 연탄재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사위어 가는 부모의 모습과도 같은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연탄 없는 겨울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집집마다 연탄불 관리가 중요한 일상사였다. 연탄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새벽에도 일어나 새 것으로 갈아 넣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연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의 와중이었다. 부산에 몰려든 피란민들이 석탄과 물을 섞어 만든 수타식 연탄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그 후 태백선 철도 개통으로 석탄 생산·공급이 급증했고, 가정용 아궁이 개조도 뒤따랐다. 1970년대 산림녹화 정책 시행과 함께 농촌 지역 연탄 보급과 연탄 온수보일러 개발로 연탄 사용량은 절정을 이뤘다.

연탄의 안정적인 공급과 비축은 겨울철 정부의 핵심 과제였다. 쏟아져 나오는 연탄재는 택지 조성을 위한 매립 용도로 활용했다. 그러나 연탄가스는 골칫거리였다. 겨울철 연탄가스 중독 사고로 일가족이 목숨을 잃는가 하면, 농촌에서 올라온 하숙생들도 많이 희생되었다. 한 해에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지금도 연탄이 따뜻한 온기의 원천으로 남은 곳이 있다. 저소득층과 노인 가구 등 소외계층에게 특히 그렇다. 밥상공동체·대구연탄은행이 '따스한 온기를 나눠요'란 연탄나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주변에 추위에 떨고 있는 이들이 없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게 되는 연말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연탄이 올겨울 우리에게 묻는다. 그 누구를 위해 '한 번이라도 뜨거워 본 적이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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