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삼국지] 윤석열과 사마의

윤석열(1960~), 사마의(179~251). 연합뉴스, 코에이 삼국지11 윤석열(1960~), 사마의(179~251). 연합뉴스, 코에이 삼국지11

삼국지연의에서 위나라의 조조가 발탁한 사마의는 조조가 죽은 데 이어 그 아들 조비도 죽은 직후, 촉나라의 마속이 구사한 유언비어 책략 때문에 한직으로 쫓겨난다.(정사에는 없는 얘기이긴 하다.)

그런데 이후 촉나라의 북벌에 위나라가 크게 패하자 조비의 후계자 조예가 불러 촉나라와 대치한 전선으로 간다. 우선 한 일은 마속을 패배시킨 것이다. 때문에 마속은 그 유명한 '읍참'을 당한다.(읍참마속) 그런 다음 결국 제갈량도 물리친다.

촉나라의 수차례 북벌을 막아낸 사마의는, 그러나 조예가 세상을 떠나자 또 다시 실각한다. 조예의 어린 후계자 조방의 가까운 친척이자 후견인을 자처한 조상과의 권력 다툼에서 져서다.

이에 사마의는 쿠데타(고평릉 사변)를 일으켜 정권을 잡는다. 사후 그의 권력은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에게 이어졌고, 결국 사마소의 아들이자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이 조씨의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주목할 부분이 있다. 사마의는 평생에 걸쳐 권력 투쟁을 한 인물이고, 그러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충성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다. 조조는 등용은 했으나 인물됨을 미리 알아보곤 늘 경계했고, 조비도 아버지가 해 준 "신하가 될 사람이 아니니 필시 집안일에 관여할 것"이라는 조언을 잊지 않아 퍽 가까이 하지도 너무 멀리 하지도 않았으며, 조예는 끊임없이 침공해오는 촉나라 탓에 능력이 필요해 기용한 셈인데다, 조상은 아예 정적으로 삼았다.

삼국지연의 후반이 촉나라 대표 신하 제갈량 대 위나라 대표 신하 사마의의 대결 구도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사마의는 위나라의 조씨들을 위해 싸운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그게 촉나라와 오나라에 역으로 도움이 된 것도 아니다. 종국에는 위, 촉, 오 다 멸망했다. 사마씨의 진만 남았다.

요즘 윤석열 검찰총장을 두고 사마의와 닮았다는 해석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마의가 사마 가문의 원대한 가업인 진나라 건국의 기반을 닦았듯이, 윤석열도 지금 검찰 조직을 보다 굳건히 하는데 매진할 뿐이라는 얘기다.

윤석열은 뼛속까지 검사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유명한 말은 그래서 "누구에게도 충성도 하지 않겠다"는 말로는 치환할 수 없게 된다. 사람 말고 다른 게 있다. 사마의는 그저 자기 가문에 충성했을 뿐이고, 윤석열도 수십년 일하며 소속감 내지는 애착을 갖게 된 검찰 조직에 충성하고 있을 뿐인 게 아닐까. 사마의는 가문이 잘 되길 바랐고, 윤석열도 검찰이 잘 되길 바라며.

그래서였을까. 사마의는 한직에 쫓겨나 있을 때에도 위나라를 떠나지 않고 남아 훗날을 기약했다. 윤석열도 박근혜 정권 때 지청장에서 검사로, 군대로 치면 '강등'으로도 비유할 수 있을 '좌천'을 겪었지만, 그렇다고 검찰을 떠나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지는 않았다.

삼국지연의를 읽으면 제갈량이 촉나라의 충신이라고 해서 라이벌인 사마의도 그와 비슷한 사명을 지녔을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비슷하게도, 사람들은 윤석열에 대해 '자신이 몸 담은 조직에 칼을 대는' 검찰개혁에 한몫할 사람이라고 착각했을 수 있다. 검찰개혁을 내세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관련 검찰 수사를 두고, 진보에서는 "배신자"라고 욕하고 반대로 보수에서는 "일 잘한다"고 박수까지도 치지만, 잘못 짚은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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