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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뒷담] 학부형 조국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전 청와대 민정수석, 현 서울대 법대 교수. 매일신문DB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전 청와대 민정수석, 현 서울대 법대 교수. 매일신문DB

▶학부형에 대한 기억이 몇 개 있다.

한 학부형은 자식 대학원 자소서를 업무 시간 내내 첨삭했다. 일하다 쉬는 시간에 하면 되니까 자유이긴 한데, 그걸 후배들한테 봐 달라고 들고 다녔다. 누구 자소서냐고 물으니까 아는 사람 자소서라고 거짓말을 했다. 얼마나 한가하길래 아는 사람 자소서를 일하는 와중에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칠까. 안 봐 줬다. 업무 시간에 업무와 상관 없는 걸 후배들한테 시키면 되겠느냐고 얘기하려다 말았다. 다른 후배는 어쩔 수 없이 봐 줬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도 그런 학부형이 있었다. 전교회장 선거를 하는 데 회장에 입후보한 친구 엄마가 학교에 왔다. 걔 친구들마다 만나 멈춰 세우더니 귀에다 손을 갖다 대고 귓속말로 뽑아달라고 했다. 나도 들었다. 안 뽑아줬다. 떨어졌다.

투표야 학생들만이 하기에 그랬지만, 그 외의 학교의 일에는 학부형들이 마음껏 나설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의 선명한 기억 중 하나는 이렇다. 선생님이 교직원 행사를 하고 남은 고기를 먹는 친구를 보고 "있는 집 애는 다르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지" 그랬다. 선생님은 그 친구가 있는 집 자식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그걸 알고 있더라도 걔보다 못사는 나 같은 애들은 서글퍼지고 걔보다 잘 사는 애가 혹시나 있다면 코웃음을 칠 텐데 굳이 말해야 했을까. 또한 무엇이 그 말을 그리도 밝은 표정으로 경쾌하게 표현토록 만들었을까. 아까 교직원 행사에 그 친구 엄마가 학부모회 임원 자격으로 와서 뭘 건네고 가긴 했다.

그리고 최근에 목격한 학부형이 바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전 청와대 민정수석, 현 서울대 법대 교수)이다.

딸이 외국어고 시절 '학부형 인턴쉽 프로그램'에 참여해 논문을 써서 제1저자로 등재된 게 요즘 화제다.

쓸만한 능력이 있으면 고등학생도 논문을 쓰고 제1저자도 될 수 있다. 또한 현재로서는 조국 후보자가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검증과는 꽤 멀어 보이는 사안이다.

▶문제는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이라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학부형이 다른 학부형 자식의 평가자(논문 지도교수)로 나섰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 인턴십이건 뭐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가능한 다채롭고 풍성할수록 학생에게 좋다.

다만 학부형을 끌어들여버리면 이렇게 문제를 만든다.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한 장면. tv 화면 캡처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한 장면. tv 화면 캡처

▶학부형은 사실 위험한 존재다. 내 자식의 친구를 선의로 도와줄 수도 있지만, 자식의 경쟁상대로 보고 방해할 수도 있다.

큰 인기를 얻은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그랬다. 학부형들은 자식의 서울의대 진학을 위해 스터디그룹을 만들고 족집게 선생을 초빙하는 등 협력도 하지만, 내 자식의 친구에게 누명을 씌워 감방에 집어 넣어 버리기도 한다. 감방에 가둬 수능시험을 보지 못하고 서울의대 입시전형에도 지원할 수 없도록. 그래야 내 자식의 합격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그런 학부형이라는 존재에게 학교가 학생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을 맡기다니. 그런 프로그램에 자기 자식을 맡기다니.

물론 현실은 드라마와 다를 것이다. 학교가 프로그램 관리는 하기 때문에 학부형이 다른 학부형의 자식을 의도적으로 나쁘게 평가할 수 없을 것이고, 학부형끼리도 서로 모르는 사이는 아닐테니 몹쓸짓은 못할 것이다.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한 장면. JTBC 홈페이지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한 장면. JTBC 홈페이지

▶결국 학부형끼리 서로의 자식에게 잘해줄 수밖에 없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은 학부형끼리 서로의 자식에게 자기소개서에 들어갈 이력 한줄씩 만들어주는 '공생' 내지는 '공모'가 돼 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 역시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학부형이 끼면 그럴 가능성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왜 굳이 인턴십 프로그램에 학부형을 집어넣었느냐는 말이다. 학생에게 의학 논문 인턴십 프로그램 같은 게 필요하다면 학부형 의대 교수가 아니라 그냥 의대 교수를 섭외하면 됐을 일이다.

이건 가령 입시나 취업과 꽤 거리가 먼 초등학교에서 학부형에게 직업 소개 수업 같은 것을 맡기곤 하는 이벤트와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고등학교는 입시나 취업과 꽤 거리가 가까워 관련 서류가 작성 및 곧 제출되는 시기다.

여기서 학교와 학부형의 공생 내지는 공모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다면, 너무 나간 공상인걸까? 생각을 하면 할수록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은 이상하다.

조국 페이스북에 20일 게재된 딸 '학부형 인턴쉽 프로그램' 및 논문 관련 해명. 페이스북 화면 캡처
조국 페이스북에 20일 게재된 딸 '학부형 인턴쉽 프로그램' 및 논문 관련 해명. 페이스북 화면 캡처

▶조국 후보자는 "이러한 일련의 인턴쉽 프로그램 참여 및 완성과정에 후보자나 후보자의 배우자가 관여한 바는 전혀 없습니다"라고 해명했다.

아니다. 관여했어야 한다.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이란게 뭔가 좀 이상하다고. 딸을 그 불공정한 프로그램에서 구출해 왔어야 한다. 물론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간 학생인 딸이 자칫 피해를 볼 수도 있었을테니까. 자식 둔 부모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해한다.

만약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이 좀 이상하긴한데, 얻을 이익이 꽤 선명하게 보여 딸을 그대로 둔 것이라면, 그건 의식 있는 학부형이라면 용납해선 안 됐을 부분이다. 마찬가지로 저 프로그램이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딸을 구출해 왔어야 한다.

이 부분이 사람들의 여론이 쏟아지는 지점일 것이다. 적폐청산과 사법개혁을 외치는 조국 후보자의 이미지가,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 같은 '부모 덕 보는' X '학부형들의 공생 내지는 공모가 의심되는' 시스템을 이용한 부분과 충돌해서가 아닐까.

이번 정부가 여러가지 성공을 거두고 종료됐으면 좋겠다. 조국 후보자도 만일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이전 법무부 장관들이 하지 못했던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면 한다. 딸이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이라는 구태에 참여하는 걸 그냥 지켜만 본 학부형으로서의 사적 반성을, 향후 구태를 파괴하는 공적 업무에 잘 반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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