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자기 말에 자기가 속는다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자기 말에 자기가 속는다고 한다. '열 번 거짓말하면 사람들이 다 속고, 백번 거짓말하면 자기 스스로가 속는다'는 그리스 속담도 있다. 물론 자기 말에 자기가 속을 정도면 속이고 싶어 속인다기보다는 그릇된 신념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

영국의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은 이를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개념으로 정리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인간의 오류를 콕 짚어 낸 것이다. 이런 오류에 빠지면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는 재빨리 받아들이지만 다른 정보는 무시하거나 오히려 견강부회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짓말은 깊어지고 편향성은 심해진다.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 동시 교체를 보며 이 정부가 확증편향이란 오류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온 국민이 경제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아우성인데 정부는 '이대로'를 외쳤다. 청와대는 그러면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3대 핵심 경제정책의 성과 창출을 가속화하는 데 역할을 할 것"이란 빛바랜 기대를 빼먹지 않았다. 전임 투톱에 대해서도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문책성 인사라는 해석이 나올까 봐 지레 선을 그었다. 이에 청와대 경제 라인 역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며 맞장구를 쳤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충성 맹세도 빠지지 않았다. 물러난 경제 투톱이 성과를 냈고, 현 정부의 정책 기조도 그대로 이어 가겠다면 굳이 인사를 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확증편향이 걱정인 것은 윗사람이 권력을 무기로 자신의 그릇된 신념을 고집할 때 종종 두려운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랫사람들까지 맞장구를 치고 나서면 영락없는 '벌거벗은 임금님' 꼴이 된다.

조짐은 벌써 확연하다. 대통령은 고비마다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쏟아냈다. 경제성장률은 꺾여 OECD 국가 꼴찌 수준으로 내려앉았는데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주류 경제학자 대부분이 족보가 없다는 소득주도성장은 대통령이 나서는 순간 '세계적으로 상당히 족보 있는 얘기'가 된다.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은 튼튼하다. 제조업 가동률이 금융 위기 수준까지 떨어졌는데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라'고도 했다. 확증편향 의심 속에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곧 나타날 것이란 희망고문은 계속된다.

아랫사람들은 열심히 이에 맞장구를 친다. 소득주도성장이란 실험이 한국 경제를 빈사 상태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은 당정청을 막론하고 금기시 된다. 오히려 경제 위기를 말하는 것은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며 역성을 든다. 어려운 경제가 걱정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진 사실을 대통령이 알까 더 두려운 듯하다.

보다 못해 경제 원로학자인 진념 전 경제부총리가 "혁신 없는 소득주도성장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명예교수는 "어설픈 진보와 개념 없는 정치가 만나 소득주도성장을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현 정부서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지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우리가 따를 만한 족보란 없다"고 단언했다.

'때때로 한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에 전체 국민이 대가를 지불한다'는 독일 속담이 현실이 될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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