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민 선임기자의 Focus On] 최복호패션의 진화적 혁신 전략

자원 부족한 중소기업, '창조적 파괴'는 '참담한 파멸'이 될 수도!

석민 선임기자 석민 선임기자

1995년쯤으로 기억한다. 3년 간 사회부 신입기자 생활을 마치고, 주간부(당시 매일신문은 전국 일간지 최초로 타블로이드판 주간지 '주간매일'을 발행했다)로 자리를 옮겨 처음 인터뷰한 분이 최복호 선생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예술가적 풍모를 느끼게 했던 첫 인상이 선명하다.

그 이후 오가는 행사장에서 가끔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였다. 이런 저런 소문은 듣고 있었다.

최복호 선생, 좀 더 엄밀히 이야기 하면 최복호패션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주)씨앤보코(개인사업자에서 2006년 주식회사 전환)란 이름을 대구테크노파크 스포츠융복합산업지원센터에서 발견하면서였다. 최복호패션과 스포츠융복합산업은 언뜻 서로 생경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생경함의 융복합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쟁력이고, 지역 섬유·패션업계의 침체 속에서 최복호패션이 여전히 살아남은 원동력이란 걸 알게 되었다.

1975년 양장점에서 출발한 최복호패션은 시대 변화에 맞춰 꾸준한 혁신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대 상황을 주시하면서도 너무 서두르지 않았고, 과격한 변화를 추진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세상의 파도에 부응했다고나 할까.

1980년대 백화점 시대가 열리면서 대구·서울 등지의 백화점으로 진출했고,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다진 내공을 바탕으로 2000년 디지털염색기술 발전을 놓치지 않았다. 화가·조각가·스님 등과 협업하며 디자인을 공동연구·개발하면서 직접 원단 프린트 디자인을 한 것이다. 하나의 디자인을 옷, 가방, 모자, 구두, 넥타이, 스카프 등 생활 속 모든 것에 적용한 셈이다. 이렇게 최복호패션은 현재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됐다.

물론 다양한 실험과 도전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시행착오가 존립을 위태롭게 할 만큼 무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속적이고 꾸준한 혁신, 이것이 최복호패션의 DNA인지도 모르겠다.

스포츠융복합산업지원센터를 노크한 것은 효과적인 전략이자 도전이었다. 패션과 스포츠융복합산업을 연계시킨다는 발상 자체가 혁신적이었다. 최복호패션의 주고객층인 중년 여성에게 걸맞는 스포츠웨어가 없다는 점에 주목한 착안이었다. 기존 고객의 니즈에 충실하면서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였다. 더군다나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리스크도 줄일 수 있었다.

이렇게 (주)씨앤보코는 2017년 요가·필라테스·조깅복 등 93점을 개발했고, 2018~2019년에는 비치웨어, 리조트웨어, 간편 여행복 58점을 잇따라 출시했다. 자연스럽게 매출은 늘었고, 10명의 추가 고용을 창출했다.

흔히 '혁신'을 이야기하면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생각한다. 기존의 것을 부수고 버리긴 쉽지만 새로운 것을 창출하기는 어렵다. 모든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 섣부른 '창조적 파괴'는 '참담한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 어쩌면 최복호패션의 변신처럼 세상의 흐름을 타는 '진화적 혁신'이 현실적인 중소기업 혁신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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