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우물 안 개구리거나 냄비 속 개구리거나

정창룡 논설실장 정창룡 논설실장

한국 속담에 '우물 안 개구리'가 있다. 넓은 세상을 알지 못하고 저만 잘난 줄 아는 사람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우물 안에서 태어난 개구리에게 우물 안은 세상의 전부다. 널리 보고 깊이 들으려 하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서양 말에는 '냄비 속 개구리'가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이 든 냄비 안에 든 개구리'(a frog in a pot of slowly boiling water)다. '냄비 속 개구리'는 최악이다.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에 머물다 저 죽는 줄도 모르고 죽는다.

우리나라 경제를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한 첫 보고서는 5년 전에 처음 나왔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의 '한국 스타일을 넘어: 새로운 성장공식 만들기'라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한국 경제를 '서서히 가열되는 냄비 속 개구리'에 비교했다. MGI가 던진 메시지는 이랬다. 국가의 경쟁력과 잠재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생산성, 인구 증가율, 저축률 등 세 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 모두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생산성을 높이고, 인구를 늘리고,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데 한국은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다. 중대한 위기가 다가오는데도 한국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그로부터 5년 후 MGI의 조너선 웨츨 소장의 경고는 계속된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 상태다. 5년 전보다 온도는 더 올라갔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저출산과 고령화가 맞물려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2분기 합계출산율은 0.97까지 떨어졌다.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고령사회에 들어섰다. 가계 부채 문제로 인해 저축은커녕 부채 문제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남은 것은 생산성 증가뿐이다. 그런데 이마저 거꾸로 간다. 우리나라 전체 산업의 1인당 노동 생산성지수는 2008년 이후 10년간 고작 1.3% 올랐다. 하지만 같은 기간 임금은 명목기준 37.0%(연평균 3.6%) 올랐다. 생산성은 제자리걸음인데 임금만 오르는 나라가 경쟁력을 가질까.

MGI뿐만 아니다. 나라 안팎에서 우리 경제가 뜨거운 냄비 속에 들어 있다는 경고가 쏟아진다. OECD의 한국 경기선행지수는 지난 3월(99.9)부터 4개월 연속 100 미만이다. 지난해 3월 이후 15개월 연속 하락 중이다. OECD 지수는 IMF 위기나 금융 위기를 족집게처럼 짚어냈기에 지수의 연속 하락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한국개발연구원이 경제전문가 489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88.1%가 '한국 경제가 냄비 속 개구리'란 지적에 공감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정부의 소상공인 달래기용 지원책을 두고 '끓는 냄비 속에서 익어가는 개구리에게 먹이를 던져 주는 격'이라 꼬집었다.

국민은 자신이 뜨거워지는 냄비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냄비는 소득주도성장, 저생산성, 낡은 이데올로기의 틀에 갇혀 달아오르고 있다. 국민은 하루빨리 뜨거워지는 냄비 속에서 뛰쳐나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더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한다. 대통령은 올바른 정책기조라며 손을 번쩍 들어줬다.

'우물 안 개구리'들이 국민을 '냄비 속 개구리'로 몰아가고 있다. 모두가 뜨거워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이들은 기다리라 한다. 이러다 국민들만 여럿 죽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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