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농민 없는 농촌, 농부 잃은 농지

두 얼굴의 농촌이다. 대구 동구 용수천 주변 풍경이 그렇다. 강과 길을 사이에 두고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한쪽은 농촌 마을이다. 늙은 노부부가 황소를 키우고 마당에 농작물을 말린다. 굽은 허리의 노파는 지팡이에 의지해 마실을 나온다. 구릿빛 얼굴의 농부는 땅을 일군다. 어스름이 깔리면 담 낮은 농가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다른 쪽에는 전원주택이 들어섰다. 붉은 벽돌에 넓은 거실 창을 가졌다. 주차장에는 외제 승용차가 있고, 마당에는 잔디가 깔렸다. 나무 정자(亭子)를 두기도 했다. 담은 높았고 인적이 드물다. 간혹 선글라스를 쓰고 멋을 낸 사람들이 눈에 띈다.

지난해 상수원보호구역에서 풀린 용수천 주변(본지 10월 26일 자 1'3면 보도)은 '농촌판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부를 만하다. 구도심의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과 닮았다. 토박이 주민은 한탄했다. "농지고 뭐고 이 주변 땅 3분의 2는 다른 지역 사람 소유입니다. 농사를 안 짓고 노는 땅이 많아지고, 차량 통행이 늘어 다니기에 불편합니다. 토박이 주민들은 땅을 부쳐 먹고사는 만큼 땅값 상승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세금이 늘까 봐 걱정입니다."

나이 든 농민은 농촌을 떠났다. 출가한 자녀에게 물려준 땅은 외지인에게 팔렸다. 농지를 사들인 외지인은 몇 년 뒤 건물을 지으며 농지전용 허가를 받았다. 그렇게 대지가 된 땅값은 몇 배가 올랐다. 법이 허용하는 창고를 짓고 나서 시간을 두고 대지로 바꾸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빈집과 폐가도 늘었다. 용수동 한 외지인 소유의 집 우편함에는 2년 전에 배송된 우편물이 있었다. 독촉고지서에는 곰팡이가 폈다. 미곡동의 외지인 소유 주택은 절반쯤 허물어진 상태였다. 지붕이 없고 서까래가 앙상하게 드러났다. 흙벽은 곳곳이 패었다.

농촌에 농민이 사라지고, 농지는 농부를 잃고 있다. 그 자리를 외지인의 별장과 전원주택이 차지했다. 이들을 가리켜 "한동네인데 전화번호도 모른다. 기존 주민과 친해지려 하지 않는다"고 토박이가 말했다. 그러면서 "원주민은 낡은 집을 새롭게 지을 여유도 없다"고 했다. 소외감과 박탈감이 묻어났다.

최근 몇 해 사이 용수천 주변 도로가 넓어졌다. 요즘은 상수도관 매설 공사가 한창이다. 이러한 공공투자로 땅값은 더 오르고, 외지인 유입은 더 늘어날 것이다. 발 빠른 투자자가 보호구역 해제의 덕을 봤듯이 말이다. 농촌은 '투자'와 '힐링'을 위한 매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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