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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응백 문학평론가

[광장] 가난한 신랑 신부에게 드리는 글

충남 부여 지방에 전해지는 토속 민요 중에 '총각타령'이란 노래가 있다. '상주모심기' 노래나 '영남들노래'처럼 들에서 일하면서부르는 일종의 노동요다. 그 노랫말은 이렇다. "머리머리 밭머리 동부 따는 저 큰애기/머리끝에 드린 댕기 공단인가 대단인가/공단이건 나 좀 주게/뭘 하라고 달라는가/망건탕건 꿰어 쓰고 자네 집에 장가갈세/장갈랑은 오소마는 눈이 올 제 오지 말게/우산 갓모 걸 데 없네/갓모랑은 깔고 자고 우산일랑 덮고 자세/잠잘 적에 꾸는 꿈은 무릉도화 부럽잖고/같이 잡고 거닐 적엔 비바람도 거침없이/풍파 속에 사는 세상 임 놔 두고 어이 살까/장가 들러 어서 오소." 이 노래의 이해를 위해서는 약간의 해설이 필요하겠다. 밭에서 댕기를 드린 한 처녀가 동부콩을 따고 있다. 이웃 총각이 이 처녀에게 수작을 건다. 댕기를 만든 천이 대단인지 공단인지 모르지만 자신을 달라고 조른다. 처녀가 왜 달라느냐고 묻는다. 총각은 공단이면 망건 탕건을 만들어 쓰고 처녀 집으로 장가가려 한다고 말한다. 은근한 청혼인 셈이다. 처녀가 받아서 말한다. 장가 오는 것은 좋지만 집이 가난해서 우산도 갓모(비올 때 갓 위에 덮어 쓰는 우장)도 걸 데조차 없으니 눈이 올 때 오지 말라고 한다. 총각은 능청스럽게 말한다. 갓모는 깔고 자고 우산은 덮고 자자고. 그러면서 그들의 소박한 장래를 노래한다. 둘이 잘 때 꾸는 꿈은 무릉도화가 부럽지 않고, 같이 손잡고 거닐면 비바람도 문제될 것 없다고. 풍파 속의 세상, 당신과 같이 헤쳐 나가고 싶다고. 이런 총각의 적극적인 구애에 처녀는 장가들어 '어서' 오라고 맞장구를 친다. 얼마 전 지인 아들의 결혼식에 갔었다. 서울 유명 호텔에서 '벌어진' 호화 결혼식. 유명 가수의 축가와 수많은 하객과 식장을 뒤덮은 어마어마한 꽃과 근사한 서양식 식사. 양가 합쳐서 수억원은 족히 들었을 것이다. 이 정도 결혼식이라면 이미 그들에게는 서울 아파트의 값비싼 세간살이에, 비까번쩍(?)한 자동차 정도는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하객으로 갔으면 당연히 축하해야겠지만, 혼주에게 축하한다고 말도 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부러움과 질시가 함께 속삭이고 있었다. 물론 그들 신혼부부의 행복을 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수많은 가난한 신혼부부 혹은 예비 신랑 신부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결혼 후의 행복은 재물보다는 저 동부콩 처녀 총각처럼 같은 꿈을 꾸고, 비바람에도 거침없이 손을 잡고 나가, 갖은 풍파를 함께 헤쳐 나가는 데 있다고. 경험적으로 보면 돈은 결혼의 행복 조건은 아니라고. 결국은 둘의 사랑이라고. 많은 예비 신랑 신부가 항의할지도 모르겠다. 저 동부콩 처녀 총각은 가난하다 하더라도 그래도 둘이 같이 살 집 한 채, 방 한 칸은 있지 않느냐고. 맞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기에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 우리도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지금 이런 집에 살기까지 허리띠를 졸라맸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서 미안하다. 사실은 우리도 왜 이렇게 집값이 비싼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살다보면 부부는 사랑이 있으면 살아진다고, 삶에 대한 긍정과 투지는 오직 가족에 대한 사랑이 밑천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 미안하다.가난한 신랑 신부들이여, 부디 행복하여라.

2018-06-23 05:00:00

권은태 사)대구콘텐츠플랫폼 이사

[광장]누가 방탄소년단처럼 할까?

'방탄소년단이라니!' 이름 한번 별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좀 유치해 보이기도 하고 뭔가 오그라드는 것 같아 피식 웃고는 채널을 돌렸다. 그 후론 꾸준히 TV에 나와도, 가요 차트에 그들의 이름이 보여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름만 가지고 따지자면 '소녀시대'인들 별다를 바 없건만 그들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에 진입했다는 뉴스를 봤을 때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온라인에서 애써 활동하면 어느 정도 성과야 내겠지만 그렇다고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못 해낸 일을 겨우 '방탄소년단'(BTS)이 해낼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지난 세월 케이팝을 이끌어온 주역들은 단연 걸그룹이었다. 그러니 언젠가 우리 음악이 빌보드 차트의 맨 윗줄에 오른다면 그 주인공 또한 당연히 걸그룹일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이 방탄소년단은 그 흔한 해외파 한 명 없는 작은 기획사의 보이그룹이었다. 그런저런 어쭙잖은 이유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들을 매년 데뷔했다 사라지는 40여 개의 아이돌 그룹 중 하나쯤으로 여겼다. 제대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으면서 판단은 참 섣불리 한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 대수롭잖게 여겼던 이 보이그룹이 대박을 쳤다.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반짝한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밟아 올라 결국 지금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가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s)를 보고서야 그걸 알게 되었다. 그들의 공연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노래와 퍼포먼스의 차원이 달랐다. '디엔에이'(DNA)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의 표정에서 불현듯 오래전 아카데미 시상식이 떠올랐다. '빌리진'을 부르며 '문 워크'를 추는 마이클 잭슨을 향해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장면이 수십 년 만에 오버랩된 것이다. 그렇게 춤추며 노래하는 남자를 그때 이후로 처음 보았다. 그리고 종종 그들을 상징하는, 그러나 좀 부정적으로 들렸던 '칼군무'의 의미도 알게 되었다. 그건 일곱 명의 멤버가 한 명처럼 동작을 맞춰 춤을 춘다는 뜻이 아니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들의 몸 하나하나가 칼처럼 음악을 파고들었다. 한 치의 오차라도 있으면 목숨이 날아가는 칼처럼, 그렇게 그들은 춤을 추었다. 그들의 퍼포먼스에는 철저하게 드라마가 있었다. 그런데 간결했다. 그들의 몸짓에는 눈물도 있었다. 그럼에도 때론 압도적이었다. '널 위해 예쁜 거짓을 빚어내/ 날 지워 너의 인형이 되려해/ 사랑이 사랑만으로 완벽하길….' 지난달 방탄소년단은 새 노래 '페이크 러브'로 빌보드 컴백 무대를 가졌다. 발표된 지 사흘밖에 안 된, 이 예사롭지 않은 가사의 노래를 미국 현지에서 관중들이 소위 '떼창'을 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 노래가 실린 정규 3집 앨범이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은 기쁜 소식을 팬들에게 가장 먼저 전했다. 그들은 오직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서로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아티스트가 되길 원한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높이 오를 때마다, 그래서 잔치가 열릴 때마다 그들은 늘 먼저 내려오고 일찍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팬들을 찾아간다. 이제 지방선거가 끝났다. 문제는 승자들이다. 잔치 소리를 뒤로하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오직 시민만 바라보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누가 방탄소년단처럼 할까?

2018-06-14 17:26:54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장]올림픽의 추억 되살리기

1988년 5월 서울 프레올림픽쇼가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최됐다. 오륜마크가 빛을 발하는 무대에서 가왕 조용필은 '친구여'와 '서울 서울 서울'을 열창했다. 지난 5월 12일 조용필 50주년 기념 투어 '땡스 투 유'(Thanks To You)의 첫 공연이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30년 전 분위기를 현장에서 느껴보고 싶어서 공연장을 찾았다.다양한 색깔의 불꽃이 밤하늘을 화려하게 물들였다. 우비를 입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공연을 관람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발치에서 우산을 들고 서서 공연을 끝까지 관람했다. 젊은 날 노래방에서 자주 불렀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흘러나왔다.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라는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서울 프레올림픽쇼에 함께 출연했던 다른 가수의 공연도 보고 싶어졌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샹송 가수 실비 바르탕(Sylvie Vartan)이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펼친다는 소식을 접했다. 30년 전 잠실에서 열창했던 '마리차 강변의 추억'이 떠올랐다. 지난 주말 저녁 도쿄 분카무라 오차드홀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오차드홀은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지휘하는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가 열리는 곳이다.올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폐막작인 '플래시댄스'의 주제가인 'What a Feeling'을 불렀다. 아이린 카라의 원곡 못지않게 좋았다. 기대했던 대로 실비 바르탕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마리차 강변의 추억'을 불렀다. 자신의 삶을 회상하는 진솔한 독백에 이어서 노래가 흘러나오니 감회가 깊었다. 실비 바르탕은 최근 타계한 전 남편 조니 할리데이를 추모했다. '프랑스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렸던 뮤지션이다. 실비 바르탕이 조니 할리데이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이 소개되면서 공연은 끝났다. 관객들은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냈다.서울 프레올림픽쇼에서 사회를 맡았던 자니 윤은 치매로 투병 중이다. 함께 사회를 봤던 영화배우 로레타 스윗은 최근 '데이타임 에미상' 시상식에 등장했다. 시나 이스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브룩 실즈 등 쇼에 함께 출연했던 가수와 사회자의 친필 사인이 담긴 음반과 사진을 구했다. 서울 프레올림픽쇼를 추억하는 소중한 기념품이 될 것 같다.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천500m 결승에서 한국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임효준 선수는 대구 출신이다. 그는 걸그룹 블랙핑크의 제니 팬이다. SBS에서 방송된 '영웅의 신청곡'에서 블랙핑크의 '마지막처럼'을 신청했다가 아버지의 18번곡인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로 바꾸는 효심을 보였다. 다음 달 일본 3개 도시에서 개최되는 '블랙핑크 아레나 투어 2018' 티켓은 판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다.최근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중 2명(뷔와 슈가)은 대구 출신이다. 방탄소년단은 국내외 유명 가수들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잠실종합운동장의 '뮤직스타존'에 소개된 가수이기도 하다. 2주 후 롯데면세점 주최로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이 선미, 김범수, B1A4, BTOB와 함께 출연한다. 30년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서울 프레올림픽쇼에 버금가는 감동을 선사할지 궁금하다. 티켓을 구하기 어려워서 아쉽다.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대구에서도 그런 공연이 자주 열리길 소망한다.

2018-06-09 05:00:00

성석제 소설가

[광장] 어른은 어디로 가셨는가

지난 세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무협'이라는 대중예술(소설·영화·드라마 등)에서 만들어진 전문용어가 일상에서 쓰이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중 대표적인 경우가 '내공'(內功)이다. 무협물에 나오는 무공(武功)은 무예나 무술과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칼이 아닌 검기로 상대를 제압하고 한번 도약하면 수십m를 날아가며 꽃잎을 날려서 수십 보 밖의 사람을 살상할 수도 있는 초능력이다.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고 손가락으로 찌르는 공격이 아닌 권풍(拳風), 장풍, 지풍의 바탕이 되는 것은 그것을 발출하는 고수가 가지고 있는 내공, 내력이다. 내공은 반복적인 육체적 단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외문무공, 곧 외공(外功)과 달리 비급이나 구결(口訣) 등의 비밀스러운 문장 또는 호흡법과 몸속에서 온몸의 혈도로 기를 운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축적된다. 시일이 경과할수록 높아진다고 하여 십년, 일갑자(60년) 등의 단위로 수위가 일컬어지며 양도, 양수가 가능하다. 무협에서 말하는 내공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기능성 자기공명장치(f-MRI) 같은 최신의 관측장비를 동원하지 않고도, 에너지 질량 불변의 법칙을 논할 것도 없이 그런 건 있을 수 없다. 수련기간이 길수록 내공의 수위가 높아진다는 설정은 동양적인 경로사상의 발로일 수는 있으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간의 신체적 능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인간의 내면, 뇌세포 어디에서도 초인적인 물리력으로 전화될 수 있는 에너지를 찾을 수는 없다. 간단히 말하면 내공은 인간의 상상의 산물이다. 하지만 내공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무협지의 재미는 반감되거나 거의 사라졌을 것이다. 도통(깨달음), 열반, 사리처럼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힘과 능력을 압축적,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과학과는 상관없이 인간을 공감케 하고 고무한다. 그 또한 인생사와 인간세의 흥미로운 단면이다. '그 사람 내공이 대단하다' 하는 식의 표현은 어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을 긍정하는 데서 나온다. 오늘날 내공이 외부로 발현하는 방식은 신언서판, 그중에서도 특히 언어이다. 정치, 재판, 회담, 담화, 조약, 예능, 인터넷, 뉴스, 댓글, 사회네트워크서비스(트위터 등의 SNS), 술자리와 카페의 대화 등등 수많은 언어가 범람하는 지금, 드높은 자신만의 내공을 지닌 이들을 보기는 지난하고 가짜 고수, 사마외도(邪魔外道)와 마두를 보는 것은 너무도 쉽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오면서 복잡다단한 정세 변화에 적응하고 극기를 거듭하여 마침내 금강불괴(金剛不壞) 같은 존재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어른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온 지는 오래되었다. 반면 가짜 어른으로 행세하면서 수십 년을 숨겨온 추괴한 본질을 하루아침에 드러내는 일은 거의 매일처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이제 어른은 정말 몇 분 남지 않은 듯한데 며칠 전 또 한 어른이 가셨다. 꽃봉오리와 같은 깨달음의 시 몇 편을 남기고. '어제그제 영축산 다비장에서 오랜 도반 하나를 한 줌 재로 흩뿌리고/ 누군가 훌쩍거리는 그 울음도 다비로 날려보냈다/ …/ 언젠가 나 가고 나면 무엇이 나올 건가/ 곰곰이 돌아보니 내가 뿌린 재 한 줌뿐이네'(설악 무산 조오현 스님, '재 한 줌'에서)

2018-06-02 05:00:00

하응백 문학평론가

[광장] 어느 봄날 초등학교를 지나며

이 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교다. 1922년 5월 5일 '금일의 세자뎐하'라는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당시의 왕세자(영친왕)는 오전에 이방자여사와 함께 교동초등학교를 시찰하였다. 고작 10분 방문에 그쳤지만, 당시 교동초등학교의 위상을 말해주는 기사이기도 하다. 왕세자 부처는 이 학교를 방문한 뒤 창덕궁에서 점심을 드시고 오후에는 비원에서 사이토 총독 등이 참석한 원유회(園遊會)를 가졌다. 얼마 전 길을 걷다가 이 학교 담벼락에 붙은 '학교의 소사(小史)'가 우연히 눈에 들어와서 찬찬히 읽어보았다. 교명이 여러 번 바뀐 것이 눈에 들어왔다. 관립교동소학교(1894), 관립한성사범학교부속소학교(1895), 관립교동보통학교(1906), 교동공립보통학교(1910), 경성교동공립심상소학교(1938), 경성교동공립국민학교(1941), 서울교동공립국민학교(1947), 서울교동국민학교(1950), 서울교동초등학교(1996). 구한말 한성에서 일제하에는 경성으로, 해방 후에는 서울로 변한 것이다. 뒤에 붙는 명칭도 소학교에서 보통학교, 국민학교, 초등학교 순으로 변했다. 이 이름의 변화만으로도 국가의 주인이 누구였던가 하는 점과 초등교육정책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이 학교는 1921년 새로 지은 2층 기와 건물이 1927년 불에 타 소실되자 1928년부터 1939년까지 세 동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짓는다. 6.25전쟁 때는 휴교를 했고, 1951년과 1952년에는 전쟁으로 인해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했다. 1963년에는 59학급을 편성했고, 재학생이 5,250명이었다. 1977년 79회 졸업생 사진을 보면 어느 한 반이 91명이었다. 이때를 정점으로 해서 학생 수는 급감하기 시작한다. 1984년에는 36학급에 재학생 1,790명이었고, 2017년 제 119회 졸업식에는 전체 21명이 졸업 사진을 찍었다. 학교 정문에는 '서울형 작은 학교 모델학교 운영'이라는 플랜카드가 붙어 있기도 했다. 이제 전교생이라 봐야 100여 명 남짓. 한때는 이 학교도 5천여 명의 학생들이 갖가지 즐거운 소음을 내며 콩나물시루의 콩나물처럼 북적거렸을 것인데, 학교를 한참 기웃거려 보아도 어떤 움직임이나 왁자지껄한 소리도 없었다. 서울 도심 학교가 절간 같이 고요하기만 한 것이다. 서울 도심학교의 공동화 현상에는 대한민국 공통의 취학아동 감소 현상과 서울의 특수성인 강남과 신도시 개발 및 도심재개발이라는 여러 요소들이 맞물려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납득이 되지만, 콩나물시루 학교에 익숙한 세대인지라 정서적으로는 잠시 비감해졌다. 이제 서울의 한복판뿐만 아니라 농어촌과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의 초등학교가 텅텅 빈 산중 절간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좀 어지럽다. 하응백 문학평론가

2018-05-26 08:33:48

[광장] 다시 레드벨벳이다

다시 레드벨벳이다. 화면 가득 웃고 있는, 저곳은 한눈에 봐도 청와대다. 아니나 다를까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초청 오찬이라고 한다. 순간 한 달 전 일이 뇌리를 스쳤다. 그때, 레드벨벳과 조이가 실시간 검색어 수위에 오른 걸 보며 처음엔 흔한 연애 스캔들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열어 보니 논조가 전혀 딴판이었다. 뜻밖에도 데뷔 5년 차의 걸 그룹이 나랏일로 논란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발단은 조이의 남북평화 협력기원 평양 공연 불참이었다. 소식을 읽은 일단의 사람들이 쉽게, 그리고 서슴없이 조이를 비난했다. 그런 국가지대사(國家之大事)를 어떻게 다른 일정을 핑계로 나 몰라라 하느냐는 게 이유였다. 그건 마치 병역이나 납세처럼 마땅히 져야 할 국민의 도리를 저버린 것에 버금갈 만큼 자못 강도가 셌다. 물론 반박도 있었다. 조이인들 왜 안 가고 싶었겠느냐며, 그건 순전히 돈만 밝히는 소속사의 잘못이라고 조이와 레드벨벳을 감싸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조이와 레드벨벳, 그리고 SM엔터테인먼트까지, 이들을 향한 갑론을박이 일주일 넘게 계속되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평양 공연 또한 나랏일이기 이전에 가수에게는 또 하나의 공연일 뿐이며 시간이 남아나도 가기 싫으면 그뿐이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게 애국은 물론 국민의 도리, 가수의 책임을 거론할 사안이 아니라는 말도 없었다. 어쨌든 레드벨벳은 자신들에게 쏟아진 곱지 않은 시선을 등에 진 채, 그리고 어찌 보면 아직 그들에겐 무거울 수 있는 평양이라는 곳에 들어가 3박 4일의 공연 일정을 소화해냈다. 그럼에도 TV를 통해 본 그들의 무대는 흔들림이 없었고 태도는 프로다웠다. 그리고 그렇게 마무리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귀국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영광이었다'라고 한 말 한마디가 다시 문제가 되었다. '북의 독재자를 만나고 와서 그게 할 소리냐'며 레드벨벳은 또 한 번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평양 공연 이전이나 이후나 뉴스는 레드벨벳의 '무대'가 아니라 그들을 본 북쪽 사람들의 반응을, 레드벨벳의 '음악'이 아니라 그들의 말과 몸짓들을 훨씬 더 샅샅이 전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한 달여 만에 뉴스 화면에 잡힌 레드벨벳을 보는 순간, 반갑기보다는 '또 왜 불려왔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마 저기 모인 가수들 중 제일 바쁠 텐데 그냥 좀 내버려두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그들의 미소가 여전히 흔들림 없다는 것이었다. 화면에 비친 그들의 포즈는 어색하지 않았고 조금 긴장한 듯 보여도 진정으로 그 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말썽은 또 일어났다. 청와대 오찬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레드벨벳이 '김정은 위원장이 따뜻한 모습이었다' 라고 말한 걸 두고 다시 비판이 일었다. 그렇게 그들은 평양 공연 이전에서 이후까지 한 번도 음악으로, 또는 그들만의 메시지로 주목받지 못했다. 언제나 다른 일로 쉽게 거론되고 쉽게 비난받았다. 나라 밖에서 갑자기 우리 휴대폰이 더 잘 팔리고 화장품까지 인기몰이를 하게 되면 그게 다 한류 덕분이라고들 한다. 그럼 그걸 만들어낸 주역들에게 한 번쯤은 제대로 고마워해야 한다. 고대 제천 행사로부터 전승된 민족의 풍류문화 덕이라고만 할 게 아니다. 아이린, 웬디, 슬기, 조이, 예리에게 먼저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평양 공연도 갔다 와줘서 더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이참에 그들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봐야겠다. 다시 레드벨벳이다. 권은태 (사)대구 콘텐츠플랫폼 이사

2018-05-19 00:05:00

[광장] 세렌디피티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은 미국 뉴욕의 랜드마크로 1931년 문을 연 후 메릴린 먼로 등 수많은 명사가 묵었던 호텔이다. 2001년 12월 그곳에서 열린 미국정신분석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소규모 세미나에서 한국 정신의학계 원로인 A선생님과 우연히 자리를 함께했다. 평소 존경하던 분이라 인사를 드렸더니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사주셨다. 그 후 A선생님과 다시 만날 기회는 없었다. 귀국 후 2001년에 제작된 영화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감상했다.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이 자주 등장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호감을 느꼈다. 인연이 있는지 시험해보려고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로 가서 서로 다른 엘리베이터에 탔다. 운 좋게 같은 층 버튼을 눌렀지만 아슬아슬하게 엇갈려서 헤어지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2012년 2월 'A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과 다른 소식을 꿈에서 접하고 놀라 잠에서 깼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어머니가 말기암 진단을 받았다. 고심 끝에 수지상세포를 활용하는 면역세포치료를 시도하기로 했다. 국제학술지에 소개된 일본 도쿄의 세렌클리닉을 선택했다. 한국인 환자로는 첫 방문이었다. 원장으로부터 '세렌디피티'의 앞부분을 따서 병원 이름이 지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가야 마사키(長屋昌樹) 원장은 나와 동갑이었고 하버드 의대에서 연구한 경력도 있었다. 늦은 밤에 영어로 이메일을 보내면 그는 지체 없이 새벽에 답장을 보내줬다. 2012년 10월 제12회 국제수지상세포 학술대회(DC2012)가 대구 엑스코에서 개최됐다. 저녁 시간에 다음 날 열리는 포스터 발표를 준비하고 있던 다카하시 히데노리(高橋秀徳) 박사와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세렌클리닉 후쿠오카 병원 원장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뜻밖에 대구에서 같은 병원 의사와 어머니의 치료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수지상세포 발견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랠프 스타인먼(Ralph Steinman) 박사는 수상자 발표 직전 별세했고 대구를 방문하지 못했다. 고인의 동료였던 쟈크 반슈로우(Jacques Banchereau) 박사를 만났다. 스타인먼 박사의 유족에게 감사의 뜻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어느새 5년이 흘렀다. 어머니를 담당했던 치료진은 모두 세렌클리닉을 떠났다. 나가야 박사에게 근황을 물어봤다. 종합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하면서 메이지대학에서 특임교수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 교수가 참여한 학술 심포지엄에서 함께 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최근 야마나카 교수는 암으로 세상을 뜬 친구와의 우정을 회고하는 책을 펴냈다. 기회가 되면 나도 나가야 박사와의 인연을 정리해서 소개하고 싶다. 지난 주말 미국정신의학회(APA)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다.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오랜만에 찾았다. 리노베이션을 위해 문을 닫았지만 건물 외관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주연을 맡았던 케이트 베킨세일과 존 쿠삭의 사인이 담긴 세렌디피티 영화 포스터도 구했다. 예상치 못했던 우연한 만남이지만 삶의 전환점이 되는 의미 있는 만남을 세렌디피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진실한 염원을 간직하고 있다면 세렌디피티는 또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2018-05-12 00:05:10

[광장] 약탈자를 징벌하는 법

BC 382년 그리스에서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이라고 정의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리스 시대에는 '사회'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불렀다. 후일 로마 시대에 철학자 세네카가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동물이 '사회적 동물'(animal socialis)로 바뀌었다고 한다. 뭐라고 부르든 간에 인간이 뭔가를 위해 모이고 집단 내에서 서로 돕고 경쟁하는 관계를 형성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삶을 지속해나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혈거지나 동굴 같은 폐쇄적인 장소에서 집단으로 살았던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집단의 구성원이 식량 조달, 생활, 교육 등으로 역할 분담을 할 수 있었고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사회적 협력을 강화하여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인간의 정교한 언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편으로 집단 내부에서 권력을 쥐고 빼앗기 위한 암투가 벌어지고 집단의 존속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약자에 대한 공격도 가해졌다. 여기에도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 집단 내에 그럴 듯한 소문을 유포하고 남에 대한 험담을 잘 퍼뜨리는 사람이 권력을 쥐는 경우가 많았다. 집단 내의 의사소통은 대부분 남 이야기로 이루어졌고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떠는 가운데 언어는 더욱 발달했으며 발달된 언어는 조금 더 효율적이고 큰 집단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오늘날의 우리가 소문과 평판에 예민하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집단 내에서 살아남은 조상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동굴 사회 속에서의 소문과 험담, 귓속말은 오늘날 이메일과 메신저, SNS(사회적 네트워크 서비스), 블로그, 뉴스('속보', '단독' 따위의 허울을 쓰고 있는), 인터넷 포털의 게시물, 댓글, '좋아요' 표시로 변형되었다. 기업들은 입소문 마케팅(Viral Marketing)으로 상품 구매와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을 도입한 지 오래되었다. 여기에는 유전학, 신경학, 심리학에서 도출된 첨단의 기술과 기법이 총동원되고 있다. 특히 정치적, 경제적 이익이 걸린 문제에 있어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은밀하게 개인과 집단에 의한 여론 조작이 성행하고 있고 심지어 국가의 비밀기관을 통한 공작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조직과 과학, 기술을 가진 보이지 않는 상대에 맞서 개개의 인간이 줏대와 맨정신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범람하는 뉴스, 중독성 강한 SNS, 조작된 댓글, 조작된 랭킹, 조작된 실검 순위, 조작된 공감 숫자에 영향을 받지 않고 개인의 이지, 판단력으로 버티는 것은 '맨주먹 붉은 피'로 총칼에 맞서는 것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인류는 존속하는 한 '사회적, 정치적 동물'이라는 정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언어와 네트워크가 사적, 불법적 이익을 추구하는 무리들에 의해 악용되고 그들이 우리의 주의력을 약탈해가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다. 법과 제도를 고치고 보완하는 것 외에도 개개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 각자가 가진 무기는? 신경 안 쓰기, 무시, 무관심, 그리고 경멸이다. 성석제 소설가

2018-05-05 00:05:03

[광장] 봄날은 가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가 무엇일까? 계간(季刊) '시인세계'에서 10여 년 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였다.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의 이 노래는 1953년 대구의 유니버설레코드사에서 발매한 음반에 실려 있었다. '연분홍 치마'로 시작되는 이 노래를 부르거나 들으면 젊은 여자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살살 휘날리는 것 같다. 이 여자는 왜 옷고름을 씹어 가며 성황당 길에 올랐으며,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었을까? 왜 '앙가슴을 두드리며', '얄궂은 그 노래를 불렀을까? 모두 다 얄궂은 봄날과 '실없는 그 기약'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는 이미자, 배호, 나훈아, 한영애 등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그만큼 다른 가수들도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이 가사를 잘 들어보면 하나의 스토리가 그려진다. 그 스토리란 게 사실은 뻔한 신파다.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있었고, 그들은 마을 뒷산 성황당을 남의 눈을 피해 오르내렸고, 장래를 함께 약속했고, 남자는 떠나갔다. 그리고 그 남자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오지 않고 다시 새봄이 돌아오자 여자는 봄바람 속에서 앙가슴을 앓는다는 이야기다. 이 노래가 전쟁 중에 나왔으니 그 남자는 전쟁터에 갔을 수도 있다. 뻔한 스토리이긴 한데 한잔 마시고 취기가 올라 이 노래를 불러보면 그 뻔한 서러움이 가슴을 친다. 조선시대의 대중가요 격인 시조창에서도 이 노래의 선조 격이 되는 봄 노래가 제법 있다.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구십삼춘(九十三春)에 짜내느니 나의 시름/ 누구서 녹음방초(綠陰芳草)를 승화시(勝花時)라 하든고." 작자 미상의 이 시조는 지은이가 여자인 것으로 보인다. 봄날 막 돋아난 버드나무 사이로 꾀꼬리가 부지런히 오간다. 시인은 이런 광경을 마치 꾀꼬리가 실 사이를 오가며 옷감을 짜고 있는 것으로 상상한다. 봄 세 달 동안 꾀꼬리는 버드나무 아래를 오가며 푸르름을 옷감처럼 짜나가는데, 그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몹시 힘들었다. 온통 시름이었던 것이다. 왜 시름인가? 위 '봄날은 간다'처럼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게 봄날을 지켜왔는데 누군가는 봄이 지나고 나니 푸른 풀과 잎들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인고(忍苦)의 봄날을 보낸 결과가 녹음방초인데, 아름답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녹음방초란 바로 봄날 온통 힘들게 보낸 자신의 시름의 결과물인 것을. 녹음방초란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픔이란 것을 표현하고 있는 매우 세련된 시조다. 이 두 편의 노래는 남성의 부재(不在)로 인한 여인의 한이 기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봄 노래가 이토록 한스럽기만 한가? "청강(淸江)에 비 듣는 소리 그 무엇이 우습관데/ 만산홍록(滿山紅綠)이 휘두르며 웃는고야/ 두어라 춘풍(春風)이 몇 날이리 웃을 대로 웃어라." 훗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시조다. 맑은 강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그 무엇이 우습길래, 온 산을 뒤덮은 꽃과 풀이 온몸을 흔들며 웃는가. 내버려 두어라. 봄바람이 며칠이나 가겠느냐, 만산홍록이 웃고 싶은 대로 웃도록 그냥 두어라. 이 시조는 봄날 바람이 불고 비가 오니, 마치 강에 비 떨어지는 소리에 온 산에 꽃과 풀이 웃는 듯하다는 것을 의인화해서 노래한다. 왕자답게 호방하게 큰소리를 친다. 올해 봄꽃은 때 이른 더위에 한꺼번에 피더니 비바람과 갑작스러운 추위에 일제히 졌다. 그렇게 짧은 봄날은 갔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도 섭리인 것을. 봄날은 가라. 하응백 문학 평론가

2018-04-28 00:05:00

[광장] 우리는 '이야기'를 버렸다

우리는 우리말 '이야기'를 버렸다. '글짓기'도 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스토리텔링'을 앉혔다. 덕분에 글짓기 대회는 스토리텔링 대회로, '이야기 공모전'은 '스토리텔링 공모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누군가가 스토리의 힘과 산업적 가치를 열거하며 '스토리텔링'과 '이야기'는 다른 거라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영어, 또 하나는 우리말일 뿐, 둘은 같다. 시작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이었다. 디지털 시대가 낳은 이 신조어는 1990년대 중반, 미국의 한 지역 방송에서 처음으로 전파를 타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말 그대로 '디지털'과 '스토리텔링'이 합쳐진, 즉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스토리'를 '텔링'하는 일종의 '행위'를 뜻하는 말이었다. 디지털 세상이 막 열리던 그때였다. 창작자들은 콘텐츠를 만들기에 앞서 그 콘텐츠에 담긴 이야기가 디지털 문화와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지, 그리고 확장성은 있는지를 먼저 고민했다. 그런 다음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콘텐츠를 만들고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 확산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생산에서 소비까지, 콘텐츠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난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전개를 지칭하는 신조어였다. 순기능도 비교적 분명했다. 작은 규모의 작은 콘텐츠가 큰 시장을 넘볼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 보인 것이다. 콘텐츠 시장의 크기와 다양성이 늘어난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일단의 자칭 전문가들이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제 것인 양 가져가 개념을 부풀리고 해석을 독점했다. 마치 온 나라를 먹여 살릴 새로운 기술이라도 찾아낸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시나리오 작법' 같은 책을 외국에서 가져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책으로 둔갑시켰고 잘된 콘텐츠마다 따라다니며 '스토리텔링의 승리'라는 해석을 붙여댔다. 이들의 활약(?)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놓고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했다고 말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화콘텐츠 산업과 시장의 모든 것을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 하나로 장악해 버린 자칭 전문가들의 희한한 논리에 주눅 들어 호부호형(呼父呼兄)을 못한 홍길동처럼 애니메이션을 애니메이션이라 쉽게 부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성공한 감독은 '그냥' 영화감독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거장'으로 높여(?) 불리기도 했다. 아무튼 느닷없이 그렇게 고양된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별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그런 전성기를 누리던 자칭 전문가들은 틈틈이 자신들에겐 어렵고 불편했던 '디지털'이라는 세 글자를 '디지털 스토리텔링'에서 슬그머니 지워버렸다. 그렇게 지난 세월 '디지털'은 가고 '스토리텔링'만 남았다. 그 나름 분명한 정체성을 지닌 채 바다를 건너왔던 신조어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결국 '스토리텔링'이라는 보통명사로 회귀했다. 하지만 그 사이 우리는 동화도 기행문도 수필도 모두 사라지고 스토리텔링만 남은 해괴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숱한 스토리텔링 대회와 공모전이 열리고 학교에선 스토리텔링을 과제로 내지만 정작 아무도 그게 뭔지를 모른다. 대체 '스토리텔링'이 뭔지, 어떻게 하면 단순한 '이야기하기'가 아니라 뭔가 차원 높을 것 같은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는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답을 찾아 헤맨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 우리가 진짜 우리의 이야기로 뭔가를 하고 싶다면, 우리도 픽사(Pixar)의 애니메이션 '코코'(COCO) 같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면 유령 같은 '스토리텔링'부터 버려야 한다. '스토리텔링'에 밀려난 '이야기'라는 우리말부터 되찾아야 한다. 권은태 (사)대구 콘텐츠플랫폼 이사

2018-04-21 00:05:00

[광장] 마라톤의 추억

지난 4월 1일 2018 대구국제마라톤대회 TV 중계방송을 시청했다. 봄을 맞이한 대구의 아름다운 풍경이 화면 가득히 펼쳐져서 반가웠다. 힘차게 달리는 선수들 모습 뒤로 도심 곳곳의 대형빌딩과 상업시설이 선명하게 보였다. 도시 브랜드 홍보 효과가 클 것 같다. 최근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마라톤 감독의 사인이 담긴 A4 용지를 얻었다. 대구마라톤 결승선 인근 호텔의 입점 업체 벽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시원스러운 필체의 사인과 함께 적힌 42.195라는 숫자를 바라보면서 문득 보스턴 마라톤대회의 기억이 떠올랐다. 2001년 4월 어느 봄날이었다. 미국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다. 미국 독립전쟁의 시작을 기념하는 '패트리어트 데이' 휴일이었지만 연구실로 출근했다.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이봉주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미국인 행정 직원이 전화로 알려줬다. 세계 4대 마라톤대회의 하나인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1947년 서윤복, 1950년 함기용에 이어 51년 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직접 마라톤대회를 참관하지 못했지만 보스턴에서 생활하고 있던 내게 큰 자부심을 안겨줬다. 2014년 1월 오랜만에 보스턴을 방문했다. 보스턴까지 가는 직항편이 없어서 일본 나리타공항을 경유해서 갔다. 하버드 의대 주최로 이틀 동안 진행된 학교 정신건강에 대한 학술세미나에 참석했다. 둘째 날 오후에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는 체첸계 이슬람 극단주의자였던 차르나예프 형제가 압력솥을 이용한 사제폭탄을 터뜨려 3명이 사망하고 260여 명이 끔찍한 부상을 당한 사건이다. 테러범 조하르 차르나예프가 다녔던 케임브리지 린지 앤 라틴스쿨 교장과 학교 전담 경찰, 교육청 관계자가 나와서 발표를 했다. 토론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발언하기 위해 마이크 뒤로 길게 줄을 섰다. 질의응답 시간은 당초 예정 시간을 한 시간 정도 넘겨 마무리됐다. 세미나 참석자들의 사건에 대한 관심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진지한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대구국제마라톤대회 중계를 보면서 보스턴 마라톤 테러의 전모가 궁금해졌다. 작년에 개봉한 '패트리어트 데이'라는 영화 DVD를 구해서 감상했다. 2013년 4월 15일 117회 보스턴 마라톤대회 결승선 인근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가 무척 흥미진진해서 한 번에 다 봤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나온 '보스턴 스트롱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라는 보고서를 PDF 파일로 구해서 읽었다. 테러가 발생한 지 총 102시간 53분 만에 테러 용의자가 체포되면서 위기 상황이 종결되기까지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다. 박진감 넘치는 영화 스토리가 실제 사건과 대부분 일치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폭탄 테러로 다리가 절단되는 등 중상자들이 많았는데도 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받은 부상자들은 모두 살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했다. 의학 데이터베이스인 펍메드(PubMed)에서 보스턴 마라톤 테러 관련 논문을 검색해봤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보스턴의 여러 병원에서 관련 논문이 발표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정신과의 캐서린 고 박사가 참여해서 마라톤 테러와 정신건강을 주제로 2016년 '란셋 정신의학지'에 발표한 논문이 특히 인상 깊었다. 캐서린 고 박사는 고경주(하워드 고) 전 미국 보건복지부 차관보의 딸이다. 여러 자료를 살펴보면서 '보스턴은 강하다'(Boston Strong)라는 슬로건이 실감 났다. 올해 보스턴 마라톤대회는 다음 주 월요일에 열린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보스턴 마라톤에 여러 차례 참가했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나도 보스턴 마라톤대회 현장에 달려가고 싶다. 대구국제마라톤대회를 통해 훌륭한 유망주가 발굴되어 보스턴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2018-04-14 00:05:04

[광장] 과잉의 강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봄맞이 대청소를 하고 나서 자리에 앉아 정리해둔 물품을 보고 있자니 긴 한숨이 나왔다. 필요하지도 않은데 사둔 물건, 필요하긴 하지만 이미 사다 놨다는 걸 모르고 또 산 것, 필요 없는데도 뭔가에 혹해서(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이유로) 산 물건, 필요하긴 하나 지나치게 많이 사서 집을 비좁게 만드는 물건으로 내 존재 자체가 폭식과 소화불량, 비만, 정체를 체현하고 있는 듯했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특히 면도기는 시장점유율 1위인 면도기(면도기 자체만 3개, 면도날 4개)부터 전기면도기(3종), 일회용임에도 여러 번 써도 되게 성능이 뛰어난 면도기 3종 등 당장 쓸 수 있는 것만도 10개가 넘었다. 매일 면도를 한다고 하더라도 수삼 년은 써야 그 면도기들이 소용을 다하게 될 것이었다. 전기면도기는 충전을 하고 면도날을 갈면 죽을 때까지 쓰고도 남아 유산으로 물려줘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 유산을 받고 안 받고는 받는 사람 마음이겠으나.당장 불필요한데도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과의 차별성 때문에 구입한 면도기를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특정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접속을 했던 때에 무분별한 구매 행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지난 세기 1990년대 초반 TV 홈쇼핑이 처음 시작되었을 무렵 쓸데없는 문구류를 단지 값이 싸다는 이유로 사들였다가 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소비에 관한 한 사람은 입력(광고, 입소문, 마케팅 전략)에 따라 출력(소비, 구매, 쓰레기 배출)을 반복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유능한 마케터들은 분석과 통찰, 논리적 결정이라는 인간 고유의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이 소비에 간섭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그러니까 소비사회 속의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생산자의 마케팅 기법에 노출이 되고 무의식 중에라도 욕구를 자극받으며 욕망을 실현하게 된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TV의 '맛집 프로그램'을 보다가 차 열쇠를 챙겨들고 나서는 사람처럼.어떤 SNS, 포털 사이트, 무료 인터넷 서비스는 도파민의 분비를 자극하는 장치를 시스템 속에 숨겨놓고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중독적인 소비행위를 하도록 부추기고 다른 매체에 비해 더 많은 광고수익을 올린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그것이 불법적이면 처벌을 받고 제어가 되겠지만 법망을 피해가는 것은 아주 쉽다. 피해를 입은 다수의 사람들이 보상, 배상을 받는 게 훨씬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소비가 '소비자의 현명하고 자발적인 선택'에 달려 있다는 논리를 누군가 교묘하게, 광범위하고 오래도록 전파해왔기 때문이다.하지만 사실상 소비자가 그렇게 독립적인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일방적인 정보를 주입하고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과장과 현혹을 통해 면도기를 몇 개나 더 사도록 한다. 심지어 면도기가 얼마나 많은지 잊게 만들기까지 한다.이러한 불합리와 정리되지 않은 인간관계 또한 얼마나 많은가. 하나씩 사면 터무니없이 비싸서 억울한 김에 사버린 수십 개들이 화장지, 때깔 좋고 맛있고 값은 싸지만 박스 단위로만 팔아서 조금밖에 먹지 못하고 태반을 버린 과일처럼.이런 것들을 버리는 데도 상당한 에너지를 요하는 결단과 과정이 필요하고 내가 버린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도 비용이 든다. 그런 것들로 어디선가 거대한 쓰레기의 섬이 만들어지고 있고 환경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불편하다.아무리 많아도 과잉이 되지 않는 것은 새벽녘의 가냘픈 봄비 소리, 그 봄비에 젖은 봄꽃의 소리 없는 향연.

2018-04-07 00:05:00

[광장] 독도 해역을 조사하는 배 한 척도 없다?

2017년 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청와대 만찬에 독도새우가 올랐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일본 정부는 왜 하필 '독도새우'냐고 발끈해서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인 만큼 한국이 '독도'라는 명칭이 들어간 재료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독도새우가 무엇인가? 동해안에서 잡히는 큰 새우는 크게 세 종류다. 세로줄이 들어가 있는 붉은 새우는 꽃새우(표준명은 물렁가시붉은새우), 닭벼슬처럼 생긴 모양의 대가리를 한 닭새우(표준명은 가시배새우), 닭새우와 비슷한데 보다 붉은빛이 돌면서 크기가 큰 새우가 도화새우(일명 독도새우)다. 울릉도나 독도 근해에서 잡혀 독도새우라는 편의상 이름이 붙었는데 포항 등지에서는 20~30년 전부터 미식가들이 회로 먹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닭새우, 꽃새우, 도화새우 모두 통칭해서 독도새우라 부르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트럼프가 방한하기 전 일본을 들렀는데 이때 만찬의 식재료에도 새우가 올랐다고 한다. 그 새우는 닭새우라고도 하지만 일본명으로는 이세(伊勢)새우인데, 한국의 닭새우와는 완전 다른 종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미국이라는 우방국 대통령이 국빈 방문을 했을 때 가장 맛있는 식재료를 동원한 것인데, 음식상에 무엇이 올랐든지 간에 상대방에게 미주알고주알 따질 계제는 아니다. 이런 것까지 화제가 되고 양국의 언론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독도'라는 '뜨거운 감자' 때문인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독도' 이야기만 나오면 애국자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은 2005년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한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 방위백서, 외교청서 등의 기록물에서 독도영유권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 정부도 지속적으로 이에 맞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교적 대응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다.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의 완성이 바로 그것이다. 울릉도의 부속 섬인 독도에 대해 더욱 연구하고 활용하고 자원화하여 독도의 가치를 더 높여 나가야 하는 것이다. 지난 2014년 출범한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동해연구소 소속의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도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울릉도, 독도 인근 해역의 실질적인 연구를 위해 출범했다. 하지만 아직 이 해양연구기지에는 울릉도와 독도 해역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전용선 하나 없다. 이 연구기지의 김윤배 박사가 3월 25일 페이스북에 올린 "내일 새벽같이 어선(연안자망) 임차하여 당일 일정으로 독도 연안 조사를 위해 독도 수중에 들어갈 장비 세팅 중. 독도 연안의 해수 흐름을 측정할 해류계, 독도의 수위 변화를 측정할 수위계, 해수 중의 빛의 세기와 수온을 측정할 장비들. 몇 개월 동안 독도 연안에 들어가 다양한 정보를 담을 예정. 이외에 서도 혹돔굴, 동도 해녀바위 등 다이버가 입수하여 수중생태계 관찰 예정. 올해 매달 독도에 들어가야 할 듯. 1년 독도 바다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그나저나 언제쯤 어선 임차에서 탈피하여 독도전용 조사선으로 번듯이 조사할 수 있을까"라는 글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댓글에서 김 박사는 10t급 어선을 임차했다고 밝히면서 "해수부에 독도 동도 물양장 정온구역 접안 가능한 20t급 소형 쾌속조사선을 계속 건의 중"이라고 하기도 했다. 독도는 말과 의기와 각종 서명으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보다 현실적으로 김 박사의 소망처럼 소형 쾌속조사선이 하루빨리 건조되어, 연구원들이 '번듯이' 연구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하응백 문학평론가

2018-03-31 00:05:00

[광장] 포스터 감별법

커다란 현수막이 나붙기 시작했다. 봄과 함께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돌아온 까닭이다. 이제부터 거리는 점점 더 소란해질 테고 어딘가 좀 들떠 보이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번잡한 교차로 곳곳에선 저마다 시장, 구청장, 군수, 의원이 되겠노라며, 잘할 수 있다며 길 가는 이에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할 거고 손 내밀며 악수도 청할 것이다. 4년 전에도 그랬다. 잔칫날처럼 그걸 반기는 사람도 있었고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비켜가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악수 한 번 한다고, 눈 한 번 마주친다고 갑자기 생각이 변할 리도 없으니 쓸데없이 요란만 떤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투표하는 날, 그 북적이는 시간을 보내고도 후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런 생각은 더 커질지 모른다. 우리가 바로 유권자임에도, 그러니까 그들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지닌 존재임에도 정작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다니! 문 닫기 직전 붐비는 마트에서 엉겁결에 물건을 골라 나온 것처럼 뒤끝이 개운치 않다. 벽보도 나붙고 노래도 나오고 TV에서 토론도 했으니 나름 옥석을 가렸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면 예문을 다 못 읽고 답을 고른 것처럼 미련이 남는다.선거는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내가 고르고 만들어가는 사회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잔치다. 그러니 잔칫날 제대로 즐기려면 고를 때 잘 골라야 하는데 그게 그리 간단치 않다. 최대한 정보를 얻어야 하고 짐작도 잘해야 한다. 물론, 후보를 불러서 이야기도 해보고 여행도 같이 가보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후보 사용설명서, 즉 포스터, 현수막, 책자 등에서라도 부지런히 힌트를 찾고 답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확성기 소리에 정신 팔려 부지불식간에 산 제품을 4년 내내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하는 것 같은 곤란을 겪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달랑 포스터 하나라 할지라도 거기엔 후보의 생각이 고스란히 투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제대로 살펴야 한다. 배려 따윈 잠시 접어두고 거만한 자세와 게으른 눈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포스터 감별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좋은 포스터는 그런 자세, 그런 눈으로 봤음에도 시선, 마음, 생각을 차례대로 붙잡아낸다.포스터의 힘은 결코 번득이는 아이디어나 별난 이미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건 오직 유권자를 향한 사랑과 정성에서 생겨나고 그 정성과 사랑을 시각화해내는 전문가 또는 전문가 집단의 역량으로 이루어진다. 포스터는 읽는 게 아니라 보는 거다. 따라서 알아야 할 정보가 순차적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포스터, 이미지와 텍스트가 따로 노는 포스터, 빈 데 없이 이것저것 꽉꽉 채워 넣은 포스터,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포스터, 그리고 시민을 가르치려 드는 포스터를 보면 주저 없이 기분 나빠해야 한다. 가치를 말하지 않는 포스터, 좋은 말만 나열된, 그래서 더 공허한 포스터, 뭘 하겠다는데 그게 구청장이 할 일인지 아니면 시의원 또는 구의원이 할 일인지 구분을 못 하는 포스터, 심지어 이름과 사진을 다른 이로 바꾸어도 거의 티가 나지 않는 영혼 없는 포스터를 보면 망설임 없이 불쾌해해야 한다. 그건 우리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거다. 그걸 만드는 내내 머릿속에 시민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포스터(홍보물)는 별로일지 몰라도 사람은 괜찮다는 말은 억지스럽기만 하다. 창의성은 공감하는 데서 나오고 공감은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다. 시민을 향한 절절한 마음이 있다면 포스터가 그렇게 나올 리 없다. 그리고 그것조차 안 되는 후보가 진짜 시민이 원하는 걸 해낼 리 없고 그 정도의 안목도 없는 후보가 도시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낼 리 없다.권은태 (사)대구 콘텐츠플랫폼 이사

2018-03-24 00:05:00

[광장] 어느 멋진 날, 신주쿠

3'1절 징검다리 연휴를 이용해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대구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을 이용했다. 도쿄를 1박 2일 일정으로 짧게 다녀오는 것은 쉽지 않다. 나리타공항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과 저녁 시간대에 대구공항과 하네다공항을 왕복하는 항공편이 생긴다면 좋을 것 같다. 도쿄를 방문하면 항상 신주쿠에 숙소를 정하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키노쿠니야 서점 본점이 신주쿠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간다의 고서점가도 지하철로 한 번에 갈 수 있어서 편리하다. 일본 출판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간다 고서점가는 꼭 들러야 할 곳이다. 일본의 대형서점에서는 계산대에서 서점 특유의 포장지로 책에 커버를 씌워준다. 책을 담는 봉투나 쇼핑백에도 별도의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책이 젖지 않도록 비닐봉지로 정성스럽게 쇼핑백 윗부분을 덮어준다. 사소한 차이지만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찾고 싶은 책을 문의하면 잠시 기다리라고 하면서 책을 직접 찾아준다. 서가 위치가 적힌 종이만 건네주고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키노쿠니야 서점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해외 잡지를 판매하고 있다. 국내 대형서점과는 달리 잡지를 비닐로 밀봉하지 않아서 내용을 살펴본 뒤 구입을 결정할 수 있어서 좋다. 의자가 있긴 하지만 독서실처럼 장시간 앉아 있을 분위기는 아니다. 서가 위치나 인테리어의 변화가 별로 없어서 익숙한 분위기에서 책과 편하게 만날 수 있다. 키노쿠니야 본점 2층 문학 코너를 오랜만에 방문했다. 엽서 크기의 종이에 저자가 독특한 글씨체와 디자인으로 인사말과 멋진 사인을 남긴 홍보물이 눈에 띄었다. 서점 직원에게 문의해 이 홍보물의 명칭이 '피오피' (POP)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쉽지만 피오피를 따로 판매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여러 작가의 피오피를 살펴보면서 손 글씨에 매료되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느껴졌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인 재일교포 유미리의 신간 '봄의 소식'의 피오피는 두껍게 힘이 실린 작가의 필체가 인상적이었다. 피오피의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유미리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키노쿠니야 본점 직원이 독단과 편견으로 추천하는 '2017 나의 책 한 권'이라는 제목의 코너도 흥미로웠다. 여러 분야의 책을 서점 직원이 추천하는 내용이 손 글씨로 피오피에 담겨 있었다. 멋진 그림과 함께 실린 수준 높은 서평이 인상 깊었다. 재미있고 독창적인 피오피를 만들어 책과 함께 지인에게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노쿠니야 지하 1층 여행 서적 코너를 방문했다. 일본 여행 작가인 야스다 료코가 집필한 '대구 주말 트래블, 설레는 대구 즐기는 법 48'이 비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최근 매일신문 기사를 읽고 아마존에서 구입한 책이다. 키노쿠니야 본점 서가에서 대구 관광을 다룬 전문서적을 처음으로 접하니 무척 반가웠다. 서가에 꽂힌 책을 꺼내 눈에 잘 띄도록 다른 도시의 관광책자 위에 슬쩍 얹어놓고 나왔다. 신주쿠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대형 전광판 '유니카 비전'은 전자상가 라비(LABI)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유니카 비전에 작년 2월 서울에서 내한 공연을 펼친 록밴드 '세카이노 오와리'의 공연 모습이 나왔다. 세카이노 오와리는 최근 평창동계올림픽을 모티프로 한 노래를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3월 3일 밤 유니카 비전에서 한국 가수의 노래가 나와 깜짝 놀랐다. '정용화'라는 가수 이름과 'One Fine Day'라는 노래 제목이 화면에 나왔다. '씨엔블루'의 리더인 그가 일본에서 펼친 대형 콘서트 열기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며칠 뒤 우연히 정용화의 사인이 담긴 '어느 멋진 날'이라는 제목의 앨범을 구했다. 신주쿠의 어느 멋진 날을 추억하게 만드는 피오피로 내게 다가왔다.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2018-03-17 00:05:00

연세대 법학과 졸업.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광장] 전문가의 생업

E는 자전거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다. 처음 산악자전거를 구입하던 십수 년 전에 그런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것 자체가 내게는 큰 행운처럼 여겨졌다. E는 자전거를 고르고 타는 법에서부터 자전거 타기에 어떤 효용이 있는지, 자전거와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자전거가 등장한 이후 인류가 어떤 불가역적인 변화를 겪었는지 내게 가르쳐 주었다.자전거가 인류의 삶과 문화, 가치관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것처럼 나 역시 변화할 것이라고도 했다. 나는 전문가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 특히 자긍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십수 년이 지난 지금 E는 여전히 자전거를 사람들에게 공급하고 고쳐주고 관리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다만 과거와 달리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숫자가 많이 늘어났다. 자전거 인구도 폭증했다.그중에서도 선수들이나 탈 만한 고성능, 고가의 자전거를 타고 즐기려는 사람도 많아졌다. E는 그런 사람들의 수요에 맞추어 자전거를 대신 골라주고 적정한 이익을 얻었다. 폭리를 취할 수도 없는 것이 스마트폰을 몇 번만 톡톡 두드려도 대충 가격이 나오는 세상이고 그렇게 하기에는 E의 직업윤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하지만 요즘 E에게 좋은 자전거를 골라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웬만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자전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E에 따르면 좋은 자전거일수록 엄밀한 관리가 필요하고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고 적절한 방식에 따라 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비싼 자전거가 제 몫을 하고 수리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날이 따뜻해지고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계절이 돌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E에게 자전거를 가지고 찾아온다. 고장을 수리하고 부품을 교환하며 청소를 해달라고 한다. E를 통해 구매를 하지 않은 자전거가 훨씬 더 많다. E는 자신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의 자전거를 기꺼이 돌봐주고 있다. 특히 묵혀뒀던 자전거를 분해해서 깨끗이 청소할 것을 권한다. 청소를 제때 해야만 부품이 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E가 자전거 한 대를 낱낱이 분해하고 청소한 뒤 다시 조립하는 것까지 2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청구하는 비용은 몇 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하루종일 청소만 몇 대 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낮은 부가가치의 뒤치다꺼리며 허드렛일만 해서는 가게세와 관리비를 내고 나면 손에 쥘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가 가진 고급의 기술과 지식 또한 퇴행하고 있다. 그런다고 비용을 더 받을 수도 없다. 인터넷이며 SNS, 입소문을 통해 당장 다른 곳과 비교가 되고 바가지를 씌우느니 뭐니 하여 악소문이 난다. 무엇보다 자전거를 사랑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E로서는 자전거와 관련해서 그런 구설에 오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어쩌다 E의 가게에 들러 앉아 있다 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굴러왔는지 궁금할 정도로 지저분하고 문제투성이인 자전거를 가지고 온다. E는 누구든 반갑게 맞지만 나는 한숨부터 나온다. 그렇다고 누가 누구를 나무라겠는가. 경쟁사회의 현실, 자본의 논리가 사람 잡는 세상에서 E와 같은 일을 겪는 장인, 전문가들은 생존을 지속하기 위해 악전고투를 거듭하고 있다.어느 날 그들이 모두 견디지 못하고 후계자도 없이 사라진 자리에 사람의 모습을 한 AI가 들어선다면? 값이 싸질지 비싸질지는 몰라도 내 자전거를 맡길 마음은 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요즘 푹 빠져 있는 그릇들, 방짜유기, 칠기, 목기, 발우,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들은 또 어찌 되나…. 아니, 코가 석 자인 내가 지금 남 얘기를 하고 있을 때인가?성석제 소설가

2018-03-10 00:05:00

[광장]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 유감

베이비붐 세대 이전의 작가들의 소설에서 굶주림이란 소재는 자주 나타난다. 이 소설들에서 먹는다는 것은 생존의 문제였기에 음식의 질을 따지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달성공원 주변이 소설의 주무대였던 이동하의 '장난감도시'나 약전골목 일대가 주무대였던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에서도 주인공들은 늘 일상적으로 배고픔을 겪는다. 소설 속의 주인공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1950년대까지 먹는다는 것은 생존 차원의 문제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던 것 같다. 내가 반찬 투정을 하니까, 세 들어 사는 아저씨가 내게 해 준 말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만주에 갔을 땐데, 3일을 내리 굶었어. 나중엔 눈에 보이는 게 없는데, 얼마나 서러운지 눈에서 달구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기라. 그때 결심했어. 앞으로 어떤 음식도 달게 먹겠다고." 나의 반찬 투정을 달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 말의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그 말을 들은 이후에는 음식이 좀 맛이 없어도 그 아저씨의 말을 생각하며 '한 끼야 못 먹으랴' 하는 심정으로 배를 채웠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 3만달러에 접어들면서 온 국민이 반찬 투정을 하는 시대로 변해버렸다. 소득이 높아지니 당연히 음식의 질을 따지게 되었다.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먹자는 것이다. 그러니 외식산업이 발달하고 '먹방'이 유행하고 식도락이 보편화되었다. 음식의 맛을 평가하는 수준도 대단히 높아졌다. 짜장면 한 그릇이면 환호작약했던 시절에서 미슐랭 가이드 별이 달린 음식점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시대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제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한 끼의 식사는 '대충 끼니를 때우는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먹는 것이 인간의 행복지수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이기도 하다. 온 국민의 입맛이 날로 예리해지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구태의연하게 한결같은 고집으로 여전히 맛없음을 고수하는 집단이 있다.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점들이다. 메뉴가 다양해지고 맛있는 음식을 선보이는 휴게소도 일부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휴게소 음식들은 그냥 '휴게소 음식'이다. 물론 휴게소 음식점 업주들만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이라고 왜 맛있는 음식을 내놓고 싶지 않겠는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휴게소 음식점 매출액의 약 50%는 임차의 대가로 내는 돈이라 한다. 나머지 50%로 인건비와 식재료비를 감당하고 여기에서 마진을 남겨야 한다면 음식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휴게소 음식 맛의 형편없음은 업주의 잘못이 아니라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의 비합리성에서 오는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또한 이 문제의 이면에는 한국도로공사의 휴게소 운영업체 선정 입찰방식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발상을 달리해보자. 대구 인근 고속도로 휴게소에 대구가 자랑하는 음식이 나온다면? 이를테면 따로국밥이나 납작 만두, 매운 갈비찜 같은 음식이 대구 시내와 동일한 수준으로 차려진다면? 안동이나 상주, 밀양과 같은 도시들도 자신을 드러내는 그 지방 특색이 담긴 음식을 차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행객들은 일부러라도 그 휴게소에 쉬면서 식도락을 즐길 것이다. 우리나라만큼 고속도로 기반이 잘 갖추어져 있으면서 각 지역마다 지방의 고유성을 대표하는 특색 있고 맛있는 음식이 발달한 나라도 드물다. 생각만 좀 바꾸면 온 국민이 고속도로로 여행할 때마다 입은 즐거워질 텐데, 입이 즐거워지면 인생도 가끔은 즐겁기 마련인데…. 한 끼를 때우는 음식이 아니라 한 끼를 즐길 수 있는 휴게소 음식으로 진화하기를 기대해 본다. 하응백 문학평론가

2018-03-03 00:05:04

[광장] 시작의 도시

이맘때였다. 그때의 열일곱과 지금의 열일곱이 다르지 않다. 짧은 머리, 앳된 얼굴이 그렇고 비장한 표정으로는 다 가려지지 않는 10대의 명랑이 그렇다. 낡고 오래된 사진임에도 가득 느껴지는 파릇한 힘, 싱그러운 기운 또한 지금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그때의 열일곱들은 아직은 제법 쌀쌀한 이맘때, 사진 속 모습처럼 거리에 있었다. 분노에 찬 얼굴로, 결기 서린 표정으로 하나같이 서로의 어깨를 걸고 앞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떤 사진에는 경찰에게 끌려가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고 또 다른 사진에는 시루 속 콩나물처럼 모여 앉아 무언가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그때는 '리승만 박사! 대통령으로 모시자'라는 현수막이 버젓이 나붙던, 즉 국민이 대통령을 '모시던' 시절이었다. 독재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도, 불의가 횡행하고 민주주의가 쪼그라들어도 그저 숨죽여 살던 때였다. 권력자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옳았고 감히 대들거나 반대하는 자들은 오직 나라의 적이거나 공산당의 편일 뿐이었다. 한 해 전 7월에는 진보당 당수 조봉암이 사형을 당했고 또 그 몇 해 전에는 '학생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을 썼다는 이유로 매일신문이 폭도들로부터 습격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백주(白晝)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라는 길이 남을 언사를 던지며 폭도가 아니라 매일신문 주필 최석채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그렇게 엄혹하던 그 시절 바로 '그때', 이 앳된 열일곱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알려진 대로 1960년 2월 28일 그날, 제4대 정'부통령 선거가 있기 보름 전이었다. 자유당정권은 이날 대구 수성천변에서 있을 예정이던 야당 후보의 유세를 방해하려고 관공서와 기업은 물론, 학교에까지 손을 뻗쳐 일요일임에도 학생들을 등교하게 했다. 졸업식 예행연습, 무용발표회 참석, 청소 등 이유도 가지가지 억지스러웠고 심지어 대구고등학교처럼 '앞산에서 토끼 사냥을 하겠다'는 곳도 있었다. 무도한데다 어이없기까지 한 처사에 분노한 학생들이 '학생들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 '관치행정이 민주주의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문을 나와 당시 지역 최고의 권부였던 경북도청으로 향했다. 기록에 따르면 시위를 주도하던 학생들에겐 대략 세 가지 걱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 하나는 당연히 체포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또 하나는 친구들에 대한 걱정,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자신들로 인해 혹시라도 선생님들이 처벌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였는데 함께 내린 결론이 '무조건 우리가 다했다고 하자'였다고 한다. 소년답기도 하거니와 찡하기도 하다. 또, 이들의 정의로움과 용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도 있다. "인류 역사에 이런 강압적이고 횡포한 처사가 있었던가. (중략) 우리는 일치단결하여 피 끓는 학도로서 최후의 일각까지 최후의 일인까지 부여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싸우련다." 당시 경북고등학교 이대우 군은 이렇게 결의문을 쓰고 읽었다. 그들은 불의에 맞서 이렇듯 정의와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외침은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지난달 30일, 정부가 이러한 2·28민주운동을 기려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이를 계기로 대구의 정신이자 대구의 자랑이니 공휴일로도 지정해야 하고 헌법에도 넣어야 된다고 한다. 사실 국채보상운동이 그랬고 나라 경제의 새로운 시작도 대구에서 있었던 것처럼 대구는 늘 정의로운 도시, 새로움을 여는 '시작의 도시'였다. 그러니 여기서 한 번쯤은 되물어봐야 한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 자랑스러운가? 58년 전 거리에 섰던 그들처럼 여전히 정의로운가? 그리고 지금도 대구는 '시작의 도시'가 맞는가?권은태 (사)대구 콘텐츠플랫폼 이사

2018-02-24 00:05:00

[광장] 올림픽 추억 만들기

올해는 88 서울올림픽 30주년이 되는 해다. 1988년 5월 KBS에서 서울 프레올림픽쇼를 방영했다. 자니 윤과 영화배우 로레타 스윗의 사회로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펼쳐진 화려한 쇼였다. 조용필, 김완선, 시나 이스턴, 실비 바르탕,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등 인기 가수들의 공연은 다시 봐도 흥미진진하다. 당시 뉴스에서 손석희 앵커는 미국에서 30여 명의 제작진이 내한해서 국내 초유의 호화 무대를 펼친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에서 살았지만 올림픽 관련 문화행사를 현장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작년 8월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정경화 바이올린 리사이틀을 관람했다. 공연 다음 날 아침 나는 깊은 산속에서 몇 달간 수양을 해야 도달할 수 있을 법한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 상태를 체험했다. 오랜만에 구삼열 대표에게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올해 1월 30, 31일 일정을 비워놓으라는 답신을 받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평창겨울음악제가 처음으로 서울에서도 열린다는 신문 기사를 접하면서 그 의미를 뒤늦게 깨달았다. 지난달 3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2018 평창겨울음악제의 막이 올랐다. 3시간 동안 진행된 개막 공연은 다양한 장르의 공연으로 열기가 넘쳤다. 윤이상의 '첼로와 하프를 위한 이중주' 연주를 들으면서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 기념작으로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이 세계 초연되어 찬사를 받았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평창겨울음악제에서도 '세계 초연'이라는 문구가 프로그램에 몇 차례 등장했다. 판소리 명창 안숙선은 정명화 예술감독과 함께 '평창 흥보가'를 세계 초연했다. '평창올림픽 대박 나소'라는 외침이 인상 깊었다. 발레리나 겸 안무가 김유미는 '아이리스'와 '쉴 사이 없는 사랑'이라는 제목의 창작 안무를 세계 초연으로 선보였다. 정명화의 첼로 연주, 클라라 주미 강의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김유미가 발레 공연을 펼치는 모습은 피겨 여왕 김연아를 연상시켰다. 개막 공연의 마지막 곡은 파블로 카잘스의 '새의 노래'였다. 정명화 예술감독은 강릉 공연에서 무대에 나와 곡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오래전 내가 번역 출간한 노먼 커즌즈의 '불치병은 없다'가 생각났다.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카잘스의 집을 커즌즈가 방문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아흔이 다 된 카잘스는 여러 노환으로 고생 중이었다. 하지만 피아노와 첼로 연주를 하면서 30대 청년처럼 기력이 되살아나는 기적이 매일 일어났다. 책 속의 주인공을 평창겨울음악제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사인을 받으려고 정트리오의 엘피(LP)앨범을 들고 갔다. 개막 공연 후 리셉션이 열리는 곳으로 오면 된다고 구삼열 대표가 알려줬다. 리셉션은 평창겨울음악제에 참여한 아티스트와 음악제 관계자들만 참석한 의미심장한 자리였다. 지난 7년간 평창음악제를 이끌어온 정명화'정경화 예술감독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공연이 아주 좋았기에 강릉아트센터에서의 공연도 관람하고 싶어졌다. 이미 매진된 공연이었지만 티켓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12월 개통된 KTX를 이용해서 강릉역으로 이동했다. 25년 전 나는 강릉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다. 그때는 늦은 밤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에 탄 후 잠을 자면 아침에 강릉에 도착했다. 격세지감을 실감했다. 잠시 들렀지만 예전의 강릉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오륜마크 조형물이 돋보이는 역 앞에서 유니폼을 입은 젊은 외국인들이 해외 관광객을 안내하는 모습도 보였다. '2018년 2월 그 순간 당신은 누구와 어디에 계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서울시청 앞에서 접했다. 평창겨울음악제 덕분에 2018년 2월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강릉에 다녀왔다. 다양한 평창문화올림픽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또 방문하고 싶다. 성승모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2018-02-10 00:05:00

1960년 상주 출생. 연세대 법학과 졸업.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요산문학상 수상

[광장] 메이드 인 경상도

김수박 작가의 '메이드 인 경상도'라는 만화가 있었다. 경상도 토박이로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으며 경상도에 살고 있는 작가가 '지역감정'에 대해 자신의 경험과 감각기관에 여과된 것들을 가감 없이,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작품이었다. 정치적 성향과는 상관없이 같은 경상도 출신인데도 잘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어 꽤나 유익하고 즐거웠다. 그러고 보니 내가 경상도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뭔지 알고 싶어졌다.관광명소에 가면 으레 음식점이 즐비한 거리가 있다. 가장 흔한 유형의 이름이 특정한 지역의 이름을 끌어다 쓰는 것이다. 음식점 이름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지명은 북경(베이징)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만리장성. 여기에는 논리적 일관성이 있으니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익숙해 하는 장소(지역)를 식당의 이름으로 쓸 경우 그 장소와 연관된 사람들이 그 식당에 들어올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논리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식당의 이름은 '서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단일지역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게 서울이고 관광객들 가운데도 서울에서 간 사람이 가장 많을 것이니 서울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이 유명 관광지의 식당 이름을 '서울'로 지을 가능성이 있다.외국에 있는 한식당 이름에도 서울이 압도적으로 많다. 남대문이나 아리랑, 신라도 있지만 서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88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되었을 때 "쎄울!"이라고 누군가 외친 외마디 고고성의 영향 때문일까. 어떻든 지명에는 사람을 잡아끌고 주의를 환기하게 하는 힘이 있다. 실상 대단히 크다. 지역, 장소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될 만한 일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 또한 그러니까.지명, 또는 지역은 크나큰 자산이자 자원이다. 그것을 무기로 해당 지역의 명성과 신뢰를 높이고 정서적인 친근감을 형성하며 관광지로 발전시키는 일은 지역 주민이나 지자체장이 꿈꿔 마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타산지석이 될 만한 사례는 있다.일본의 북해도나 규슈 지방에서는 농축산물, 임산물, 해산물에 거의 반드시 지역 산이라는 표기를 하고 있다. 환경오염이 심한 대도시는 대소비지이기도 해서 청정 자연산, 지역 명물이나 특산물이라는 '지역 앞세우기'는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지역 특산물이 어떻게 해서 명물이 되었나 하는 식의 사연을 가지고(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김을 양식하기 시작해서 '바다 이끼(海苔)'의 이름이 김이 되어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는 식으로) 더 짭조름한 마케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국가 단위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것도 있다. 국산, 혹은 한국산으로 표기되는 공산품이 꽤 있다. 상주 곶감, 영광 굴비 하는 식으로 지역 단위의 대표성을 가진 농축해산물을 내세우는 경우는 보편화되었다. 하지만 중간 단위라 할 수 있는 경상도, 호남, 호서, 영동 같은 상품은? 제주 감귤 정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경상도에서 '메이드 인 경상도'로 세계에 내세울 만한 게 뭘까.여행자유화가 이루어진 지난 세기 1990년대 초반, 처음으로 일본에 여행을 갔다가 규슈의 관문에서 게시판을 하나 본 적이 있었다. 규슈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분야와 품목을 열거하고 있었는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부품과 중간재까지 포함해서 수백 가지나 되었다. 생각해 보면 경상도나 대구에서 세계 제일로 내세울 만한 게 꽤 되지 않을까? 굳이 서열로 매길 필요가 없는 세계 유일의 문화, 정신적인 자랑거리는 왜 없을 것인가. 그것이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곳을 마음의 태 자리로 삼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자부심을 줄 것은 자명하다. 그것만으로도 게시 비용은 건지고 남을 것이다.

2018-02-03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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