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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누구를 위한 리허설 무대?

최근 한 무용가 공연의 공연비평문을 쓰기 위해 일찍 공연장을 찾았다. 이번 공연이 1회 공연이라 한 회 공연을 보고 글을 쓸 때 아쉬운 점이 있어서, 리허설 할 때 미리 한 번 더 보려고 일찍 간 것이다.깜깜한 객석을 더듬어 한 쪽에 앉으니, 피날레 장면을 체크 중 이었다. 주제 속에 꽃이 나오니 무대 상부에서 거대한 화관(가랜드)이 내려오고 있고, 무용수들이 꽃비를 받듯이 조용히 팔 벌려 화관을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웠다.최종 리허설이 시작되고 흐름을 파악하고 싶은데, 공연 도중 안무자의 무대, 조명, 위치 등을 수정하는 마이크 소리로 어수선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무대장치는 자리를 정하지 못해 오르락내리락 헤매고, 조명은 주인공과 바뀌어야 할 당위성을 찾지 못해 산만하게 이리저리 비추고 있었다. 소도구들은 조명 아래 훤히 드러나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조력자들은 아직 정리 중이었다. 최종 리허설인데 이렇게 산만할까 맘이 불평으로 불편했다. 필자도 마음을 바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을 찾아보기로 했다.본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들의 숨소리와 시선, 호기심 등이 올라가는 무대 막과 더불어 공연에 합세하게 된다. 관객은 공연의 또 다른 출연자이다. 관객이 있기 때문에 무대는 빛이 나고, 응원의 에너지로 공연자들은 힘을 받고 혼신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리허설과 전혀 다른 공연이 펼쳐졌다. 소재는 같을지라도 분위기와 흐름이 다른 새로운 공연을 보는 것 같아 감동이 됐다. 조명은 고즈넉하게, 때로 천상에서 내려오는 듯한 강렬한 빛으로 무대를 새로운 세상으로 만들었다. 장치는 제 자리를 찾아 조용히 역할을 감당하고, 눈치 못 채게 아름답게 장치들이 변화되어 나갔다. 무대 소품들이 조명의 힘으로 무대 밖으로 감쪽같이 사라지고, 보여줘야 할 것은 훤히 드러냈다.리허설은 본 무대를 위해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무대이다. 사전의 뜻에 의하면 '실제 공연 전의 연습'에 불과하고, 막이 올라가기 전, 무대에서 해보는 마지막 연습인 것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지인들이 공연시간을 맞출 수 없다는 개인사정으로 리허설을 보러오기도 하고, 공연을 본 것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리허설을 보고 싶다면, 본 공연을 본다는 전제 하에 봐야 한다. 전혀 다른 감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안무자나 공연관계자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극장 문 닫고 리허설을 하세요." 특히 공연문화를 아는 예술가들이 리허설 때 잠시 들렀다 가는 태도는 관계자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인사만 하고 가야한다. 리허설은 본 공연 관객을 위하여 준비하는 연습 무대이기 때문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2-13 10:28:28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상상의 자유, 감상

우리는 '감상'이라는 행위를 떠올릴 때 무엇인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기고 평가하는 행위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이 감상이라는 행위를 위해 풍경이 아름다운 자연을 찾기도 하고, 미술관에 가서 예술작품을 보기도 한다. 수많은 미술관 중, 어느 미술관을 방문하여 감상을 할 것인가? 그것은 취향의 문제이다. 그런데 현대미술의 영역에서는 이 감상이란 행위는 아름다운 어떤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을 넘어서게 되었다.사진기가 발명되고 산업혁명 등의 급격한 사회 변화를 맞이하면서 예술가들은 자유로운 개성과 주관을 표현하기 시작하였고 다양한 미술양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현대미술의 세계에서 우리가 감상이라 생각하는 것들은 더 이상 아름다운 것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아름다움 보다는 어떠한 개념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고, 감상은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마르쉘 뒤샹의 '샘'이 가장 중요한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남성 소변기에 R.MUTT 라는 이름으로 서명을 한 뒤 미술전에 출품하였다. 당시 평론가들과 큐레이터들은 '이게 무슨 예술이야'라는 평을 하여 작품을 전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뒤샹은 본인 작품임을 밝히지 않은 채 이것도 예술이라는 싸움을 하였고, 이후 '샘'은 엄청난 파급력을 갖게 되었다. 레디메이드 개념을 최초로 예술에 도입한 사례인 것이다.미술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필자의 감상은 아름다운 작품을 보는 것을 넘어 작품에 담겨 있는 개념을 이해하는 쪽으로 바뀌어 갔다. 미술이란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때론 영감을 주는 장르가 분명했다. 그러다 현대미술을 소재로 쓴 연극 대본을 만나게 되었고 연말에 드디어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이 공연은 현대미술의 개념과 미술 시장 등 미술의 전반적인 내용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한국이 낳은 유명한 현대미술 작가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유작을 적확하게 해석하는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해석을 하는 세 자녀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버지의 작품을 해석해 나간다. 주어진 기회는 단 두 번이다.이 작품은 장황하게 미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현대 미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가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만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왜냐면 보는 이의 관점에 따른 다양한 해석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 그 중에서도 현대미술을 만나고 친숙해지기를 바란다. 거기에는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한 발상들이 많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유롭게 느끼고 상상하는 체험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 연극이 그러한 경험으로 이끄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2-12 10:31:03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눈물

나는 TV를 보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못 본다는 말이 맞겠다. 15년이라는 세월의 단절은 요즘 젊은 연예인이 누가 누군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연예계 깜깜이가 되고 말았다. 간혹 식당에 켜놓은 화면에서 어딘가 본 듯한 얼굴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 부자연스런 얼굴에서 세월 따라 마음대로 늙을 수도 없는 여자 연예인들의 직업적 고충을 읽을 수가 있다. 성형수술로 인해 주름과 함께 표정도 없어져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그게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예전에는 '환갑노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60대는 노인 취급을 받았다. 막상 그 나이가 되었지만 청춘으로 착각을 하다가 거울을 보고서야 깨어나기도 한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테스토스테론이 감소되어 여성화 된다는데 대표적인 현상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눈물을 잘 흘린다는 점이다. TV를 접하지 않으니 내겐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전 드디어 누선(淚腺)을 자극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게 노화 탓인지 인간 본연의 보편적인 감정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다.지난 주 토요일은 전주를 다녀왔다. 고교 동기 자녀의 혼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전북 전주 출신이면서 대구에서 대학을 나와 교편생활을 하던 사람과 결혼을 했다. 처가가 전주에 있는 전형적인 영호남 커플이었다. 큰 아이도 외가가 전주에 있어서인지 대구에서 고교까지 다녔지만 전북대학교로 진학을 했고 학교를 같이 다니던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오명의 88고속도로는 광주대구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시원하게 확장개통 되어있었다.식이 진행되고 아이들 성장 과정의 영상이 화면에 비춰지자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 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친구의 부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큰 아이가 고교 1학년,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암으로 세상을 떴다. 터울이 많이 진 동생이 형의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고, 뒤로는 아이들과 같이 찍은 생전의 엄마 모습이 화면으로 떴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한다. 사연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겨우 초등학교 1학년짜리 늦둥이 아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고인은 숨을 거두기 몇 달 전부터 아이가 상처받을 것을 걱정해 곁에 못 오게 했다고 한다. 정을 떼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렸을까. 실제로 장례식장에서 만난 작은 아들은 슬퍼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엄마의 배려가 담긴 천진난만한 그 모습이 오히려 우리를 더 슬프게 했었다. 예식장에서는 엄마를 기억하는 모든 이가 울었지만 축가를 부르는 작은 아들만은 씩씩하게 노래를 불렀다. 객관화된 슬픔이 더 서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결손에도 잘 자란 아이들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배로 행복하기를 빈다.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2-11 11:31:51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첫눈을 기다리며

네거리 신호를 기다릴 때 첫눈을 맞으면 좋겠습니다. 마땅하게 기다릴 것이 없어 첫눈을 기다립니다. 그렇다고 첫눈 같은 세상을 기다리는 건 만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약속이 있어서만도 아닙니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듯 오지 않는 첫눈을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것들은 대체로 더디게 옵니다. 말라붙은 상상력을 애 태우며 와야 진정한 기다림입니다.흰색이 좋습니다. 눈이 멀 것 같은 흰색의 아득함이 좋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공중에 귀를 대고 들어볼 만한 '소리 없음'을 들어봅니다. 비가 아니라 빗소리를 좋아하는 것처럼 눈이 아니라 눈이 오는 풍경이 좋습니다. 눈이 오는 풍경 속에는 들어볼만한 조용함이 있습니다. 조용함 속에 들끓는 함박웃음이 들립니다. 누군가 사랑스러운 웃음을 허공에 흩어놓습니다. 고달픈 불빛이 반짝거립니다.'닥터지바고'와 '러브스토리'의 테마 음악을 듣고 '첫눈이 온다구요'를 따라 부릅니다. 첫눈에는 보편성과 관념을 뛰어넘는 마법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마법의 힘으로 정치를 하면 성군이 되고 글을 쓰면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고 말합니다. 이 마법의 근육으로 죽은 사람을 살리고 떠나간 사람을 되돌아오게도 합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기어이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기다림이 지쳐 노여움이 될 때까지.'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기는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문정희 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사방이 온통 흰 것으로 뒤덮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묶였으면, '눈부신 고립'을 외치는 시의 행간에 동참할 수 있는 첫눈이 오면 좋겠습니다. 눈이 내리는 지상낙원을 눈으로 그려봅니다. 구름이 차가운 공기를 만나 눈으로 내리는 게 아니라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눈을' 자꾸자꾸 뿌려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생을 헐어 뿌려 주는 걸까? 궁금합니다. 눈이 된 생은 그래도 잘 살았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낯선 곳을 떠돌아 몸을 누이며 눈은 금방 녹아내립니다. 일체의 잡음이나 군더더기 없이, 흰 눈이 텅 빈 허공을 가득 메워주면 좋겠습니다. 손등에 입술에 달라붙은 눈에게 하하, 호호, 온기를 전해 주고 싶습니다. 눈이 내려도 뛰어 내려도 허공은 제자리에 있습니다. 눈이 오지 않을 때에도, 눈이 왔다가 갈 때에도 허공은 제자리를 지킵니다. 머지않아 눈이 올 허공의 눈부심이 좋습니다.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2-10 11:11:06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선생에게

대학 졸업 후, 아르떼 예술 강사(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선발과정에서 운 좋게 최후 2인으로 남게 되었다. 평소 연극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부푼 마음으로 대구 소재의 어느 고등학교에 수업을 나가게 되었다. 나는 '어떤 선생님일까?' 수업 준비를 하며 과거 학창시설 좋아했던 선생님들을 모두 섞어놓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나만의 롤모델 선생님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학생들에게 화내지 않기, 모든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기, 명령하지 않고 설득하기….몇 가지 다짐을 하며 사전 답사를 위해 학교로 찾아갔을 때,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담당선생님을 보자마자 어쩌면 상처받은 청소년들을 연극으로 위로하고 싶었던 나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담당선생님은 굉장히 협조적이었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중앙계단만 이용하세요." "바로 옆 반에 이어서 강의가 있더라도 쉬는 시간에는 교무실로 내려오세요."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첫 수업을 앞두고 있는 외부강사에게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는 충고였다.어느 날, 나는 수업 시간에 늦어서 무심코 교문에서 가까운 계단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담당선생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그 계단은 외부에 노출된 계단이었는데 그곳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계단에 줄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오르기 시작한 계단을 다시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최대한 태연한척하며 계단을 오르는데 한 학생이 나를 가로막았다. "선생이에요?" "아마 그럴걸?" "아, 선생이구나." 그제서야 길을 비켜주었다. 이 외에도 날 당황하게 만드는 경험은 계속되었다. 쉬는 시간에 내가 앞에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애정행각을 벌이는 학생들, 수업 중에 울리는 경찰차의 사이렌소리…. 학교선생님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상인 듯 개의치 않았다. 속상한 마음에 담당선생님께 울분을 토했다. "어떻게 선생이 학생을 포기할 수 있느냐고." 선생님도 처음엔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을 개도하려면 선생님들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회의감이 몰려왔다. 소득수준으로 계층을 구분하는 국가,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가정, 맞벌이를 해야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 교권은 누가 무너트린 것인가?먼저 선(先), 날 생(生). 선생님의 한자 풀이는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먼저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뜻일 것이다. 부모를 포함, 누구나 누구에게는 선생이다.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던 학생을 욕할 수 없다. 나는 그 학생보다 선생이므로 그 학생이 내뱉은 담배연기에 책임이 있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2-09 11:18:21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개는 훌륭한가? 

요즘 개 헌혈 공익광고가 전파를 타고 있다. "헌혈 한번이 반려견 4마리를 살린다"고 하며, '아임 도그너(I'M DOgNOR)'를 써 붙인 차가 헌혈 제공견을 찾아가는 광고다. 'DOgNOR'는 개(DOG)와 제공자(DONOR)를 합한 표현이다. 2~8세까지 몸무게 25kg 이상인 대형견이어야 헌혈 할 수 있고, 헌혈하면 '아임도그너'라고 적힌 노란색 스카프와 조끼, 헌혈증을 제공해 준다.개와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은 의아해 할 수도 있고,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공감할지 미지수다. 그러나 개가 아파서 수혈을 해봤던 사람들은 공혈견의 존재와 수혈용 개를 사육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반려견 천만 시대'가 되었다는데, 이번 광고로 참여자가 늘어나길 바랄 뿐이다.또 TV프로그램 중에 '개는 훌륭하다'가 관심을 끌고 있다. 매주 한 번 방영하는데, 반려견 키우는 사람들이 문제해결을 요청하면, 남녀 진행자, 애완동물 상담사가 현장으로 출동한다. 스태프들이 상황을 점검하다 새끼를 지키려는 엄마 개에게 물리는 등 쉽지 않은 진행이지만 잔잔한 감동을 준다.식용으로 키워지는 여러 마리 개를 외국으로 입양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도 하고, 같이 자라던 동료 개가 다른 곳에 입양될 때, 그들의 슬픈 이별장면 등을 세밀하게 담아내기도 한다. 어린 새끼들이 잘 적응하도록 양육법을 가르쳐 주며, 새 식구가 된 개와 키우던 개와의 영역싸움 갈등을 해결해 주는 등 다양한 문제점들의 대안을 모색해준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필자도 시골집에서 대형견 삽살개와 함께 살고 있다. 종교단체에서 키우던 개인데, 주변 아파트 공사로 스트레스를 받아 털이 빠지고 몸도 고달파 괴로워했다. 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어 안타까워하다 시골집으로 데려와서 치료하면서 돌보게 되었다.지금은 건강해지고, 자기 뜻도 많이 표현한다. 비 오는 날은 배변도 참으며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하고, 나가고 싶으면 버티고 서서 주인이 나오길 압박하기도 한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 온 후에 좋아하는 뒷산 오르기를 거부해서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습할 때 생기는 나무 냄새를 싫어한다고 한다. 감정이 서로 통해서 마음이 아련할 때가 많다.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오랜 교감으로 가족애를 갖게 된다. 알고 보면 개 뿐 아니라 대다수 반려동물은 훌륭하다. 단지 관심도가 낮아서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실천이 배려하는 삶의 출발이고, 그것이 기본임을 깨달아 가는 사회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개가 훌륭하려면 인간이 훌륭해야 한다!채명 무용평론가

2019-12-08 06:30:00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여행을 떠나요

공연 예술가들은 연말이 되면 상당히 바빠진다. 송년 음악회나 크리스마스 특별 공연 등 각종 행사와 공연에 출연할 일이 많다. 어떤 예술가들은 동시에 여러 작품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공연계에서는 연말이 공연 성수기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신없는 연말을 보내고 년 초가 되면, 그 많던 행사와 공연은 신기루였던 듯 사라지고 온 세상이 겨울잠에 빠진 듯 공연계가 조용해진다. 공연계의 비수기가 찾아오는 것이다.이 공연 비수기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우울감에 빠진다. 수많은 동료들과 함께 정신없이 공연을 하던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일이 없는 상태로 홀로 지내다보면 깊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올해 과연 일이 생기긴 할지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어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도 생긴다.조금만 생각해보면 년 초에 일이 없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직 예산이 집행되지 않았고 지원사업도 발표 전이고 여러 기관이나 단체들이 계획을 세우는 기간이라 공연이 많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안다고 해도 일 없이 홀로 집에 있으면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필자는 다행스럽게도 이 우울한 시기를 극복해 나가는 방법을 찾았다. 바로 여행이다.딱 작년 이맘때이다. 필자는 홀로 2주간 해외여행을 떠났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위험하다. 안 된다. 무슨 일이 있냐고도 물었다. 특히나 홀로 떠난다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필자는 기필코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하고 떠난 것이다.그냥. 혼자 가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가 살고 있는 익숙한 곳에서 떨어져 새로운 곳에서 나를 보고 싶었다. 일상에 갇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며 오롯이 나를 느끼는 경험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여행에는 여러 가지의 목적이 있을 것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떠나는 여행도 있고, 아름다운 풍광을 보기 위한 여행도 있다. 세계의 명소를 탐방하기 위해 떠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자신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도 있다. 이렇듯 여행은 그 목적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여행을 떠나는 이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며 가끔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것을 발견 하게 된다. 마치 인도를 찾아 떠났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처럼.새해가 밝아오면 일이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하기 보다는 시간이 생겼다는 점에 주목해보면 어떨까? 여행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것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말이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2-05 11:33:17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필자는 군 시절 위병소에서 근무를 했다. 위병소에서는 경비업무 외에도 면회객을 안내하고 신청도 접수하는 등 관련 대민업무도 보고 있었다. 전방 교육사단 중에서도 정예 연대였고 드물게도 연대 병력이 한 울타리 안에 있는 부대였기 때문에 주말이면 면회객이 100명 가까이나 되었다. 위병은 군기가 세기로 유명해 고달프기도 했지만 민간인을 만날 수 있는 주말이 있어 근무할 만 했다. 위병소는 토요일이면 축제 분위기가 된다. 면회객이 몰려오기 때문이다.바리바리 싸 온 부모님은 우리에게도 먹을 것을 나눠 주셨기 때문에 입이 즐거웠고, 여자 구경을 거의 못하는 오지에서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예쁜 아가씨들을 볼 수 있어서 눈이 호강을 하였다. 면회객은 부모님과 애인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강원도까지는 먼 길이었다. 그럼에도 자식을 향한 무한 사랑과 연인을 향한 뜨거운 연모의 정은 천리 길도 한걸음에 내달리게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그리운 이와의 상봉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뭉클했다.애인을 면회 온 아가씨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나이가 어리다는 점이다. 피면회자도 갓 입대한 신병에게 몰려있다. 그러나 일 년 정도의 세월이 흐르고 상병 계급장을 달 때면 대부분 결별을 한다. 그리고 또 새로 전입해 오는 신병에게는 여전히 여자 친구가 많이 찾아온다. 더러 고참병에게도 애인이 면회를 신청하는데,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다. 오래된 연인 특유의 권태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러면 도대체 졸병시절의 그 많던 애인들은 어디로 갔을까.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에 격리된 채 사랑을 잃고 울던, 그 쓰라린 기억을 많은 청춘들이 경험 했을 것이다. 떠나는 사람이야 잡지를 않으니 오히려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었지만 보내는 사람은 매인 몸이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더 야속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떠나간 사람도 다 사연이 있었으리라. 원래 남녀 간의 사랑이란 인화성이 강한 휘발유와 같아서 불이 붙기는 쉬워도 오래 타기는 어렵다. 실제로 사랑의 유통기한은 2년 정도라고 하지 않던가. 사랑의 콩깍지를 심리학 용어로 '핑크 렌즈'라고 한다는데, 군대가 둘을 갈라놓지 않았더라도 대부분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핑크 렌즈 효과가 다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떠나간 이의 변심만 원망할 일도 아닌 것이다.'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양희은이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란 노래의 일부분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쓸쓸한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먼 인생 여정으로 보면 젊은 날 한때의 로맨스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지만, 사랑은 또 찾아온다. 망설임 없이 사랑할 일이다.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2-04 11:12:11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사과를 먹고도 사과하지 않는 계절

사과의 계절이 왔습니다. 사과를 먹고도 해야 할 사과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하지 않은 사과를 빨강이라고 둥글다고도 할 수 있지만, 단맛이라고 신맛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값이 싸다고 비싸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냥 사과였으면, 사과여야 합니다. 의미로 분류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먹는 것이 사과였으면, 아침이면 의무적으로 사과가 먹고 싶어집니다. 사과를 먹지 않으면 시작될 것 같지 않은 하루.'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과가 셋 있는데, 첫째는 이브의 사과요, 둘째는 뉴턴의 사과요, 셋째는 세잔의 사과다.' 프랑스 상징주의 드니의 말입니다. 이브의 사과로부터 기독교가 시작되었고, 뉴턴의 사과로부터 근대과학이 시작되었고, 세잔의 사과로부터 현대미술의 꽃이 피었습니다. 세 사과는 각각 자연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과학으로, 과학에서 인간 감성으로의 전환을 이끌어 내었습니다.평생 사과를 바라보며 질문했던 세잔은 바구니 속 사과를 백번 이상 그렸다고 합니다. 드니는 "다른 화가가 그린 그림은 먹고 싶지만, 세잔이 그린 사과에게는 말 걸고 싶어진다"고 하였지요. 말 걸고 싶어진다니! 없는 입으로 말하는 사과를 상상해 봅니다. 그러니까 세잔이 그리 오랜 시간 골몰한 것은 한 알의 사과를 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과의 모든 것을 화폭에 담기 위함이었겠지요.'어디쯤에서 잘못한 일로 발갛게 익어 가는/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사과해야 할 일들과 사과 받을 주소들이 많다 (…)잘못한 일이 많아서 풍년이 들었다는 사과가/ 북상 중이라는데/ 부담 없게 사과할 때는 한 상자를/ 해묵은 사과를 할 때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식목일 전에 보내는 것도 좋은 사과지만/ 추신으로 단맛을 적어 보내면 더 좋은 사과' 이담하 시인의 시 '사과는 용서받을 때까지' 일부입니다.주먹을 꽉 쥐고도 사과나무는 펀치를 날리지 않습니다. 사과나무에 앉은 사과가 자꾸만 붉어지기 때문입니다. 사과에게도 하지 못한 사과가 있을까요? 단맛을 '추신'으로 보낼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꽃을 버린 기억으로 스스로 붉어진다는데, 꽃에 대한 사과의 마음에서 비롯된 걸까요? 해질 무렵 사과나무에 걸터앉은 하늘도 더불어 붉게 물듭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의미의 사과와 사과나무 열매를 뜻하는 사과는 시의 마지막에서 하나가 됩니다. 사과하고 싶다면 '용서받을 때까지 늦가을 사과나무처럼 서 있어야 한다'고.사과나무에서 울던 새들이 사과를 더 붉게 하고, 붉은 사과에 떨어지던 빗방울이 사과나무를 어루만지고, 그리하여 물어볼 수 없었거나 대답하지 못했던 사과가 있다면, 물어보기 전에 대답을 마련하고, 대답하지 않아도 사과는 그냥 사과였으면 좋겠습니다.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2-03 11:24:54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현장리서치-연극 '887'

올해 6월, 국내에서 이미 꽤 이름이 알려진 연출가 로베르 르빠주의 '887' 연극을 보기 위해 LG아트센터를 방문했다. LG아트센터는 공연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장르가 공존하는 곳이다 보니 구석구석에 볼거리가 많아 셀피의 배경으로 인기몰이 중이었다. 로비는 사람이 많았음에도 넓어서 그런지 분주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조명과 무대 전체를 보는 것을 좋아해서 2층 객석을 선호하는 편인데 항상 앞사람 머리가 무대를 가리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 극장의 객석은 경사도가 높아서 시각선이 방해되진 않아 좋았다. 반면에 좌석은 폭이 좁아 어쩔 수 없이 옆 사람과 어깨싸움을 해야 하는 것은 아쉬웠다.르빠주는 엑스마키나(고대 그리스극에서 사용된 무대 장치로, '바퀴 달린 수레' 를 이르는 말. 지금의 왜건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라는 단체를 설립했는데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통한 혁신적인 공연을 만드는 것을 시도한다고 했다. 역시나 의 무대는 경이로웠다. 높이가 2미터 정도 되는 육면체의 무대 세트를 돌리기도 하고 펼치기도 하며 다양한 형태로 변형이 가능했다. 그래서 무대 전환이 암전 없이 이루어졌는데 세트는 매우 섬세한 미니어처를 보는 것 같았다. 마치 걸리버가 소인국에 온 듯 르빠주는 작은 카메라를 들고 무대 이곳저곳을 비추었다. 카메라로 촬영되는 화면은 무대 전면에 중계되었는데 흥미롭고 기발한 장면들이 꽤 연출되었다.이 연극은 르빠주가 직접 연출하고 출연하는 1인극으로 자서전적 성격을 띤다. 르빠주는 '시(詩)의 밤' 행사에서 시인 미셀 라롱드의 시를 낭송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시를 외우기 시작하지만 3페이지나 길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기억력이 뛰어났던 옛 친구의 도움도, 기억의 궁전이라는 암기법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것은 뭘까? 자신의 핸드폰 번호도 기억하지 못하는 르빠주는 어린 시절에 살았던 아파트의 번지수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360도 돌아가는 자신의 키 정도 되는 무대 세트를 돌리자 미니어처 같은 아파트가 나타난다. 자연스레 1960년대 퀘백으로 시간을 돌려놓는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평범한 이웃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택시기사가 된 아버지, 치매에 걸려 요양원으로 가야 했던 할머니…. 르빠주는 왜 과거를 불러왔을까? 퀘백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지켜보는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과거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왜 기억해야 할 것 들을 쉽게 잊는 것일까? 혹은 왜곡된 기억의 조각으로 이미 완성된 상상의 세계에 조각을 끼워 맞추는 것일까? 르빠주가 시를 낭송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마 과거 퀘백과 우리나라의 어느 시절이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인 농장주들이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예들의 반란을 막기 위해 영어를 쓰도록 강요했던 말, "speak white." 당신은 빨간 강요에 의해 기억해야 할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2-02 11:02:36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어느 가을 저녁, 멋진 피아니스트

어느 늦은 가을 저녁, 유망한 젊은 연주자니 한 번 보라는 지인의 소개를 받고 피아노 리사이틀을 가게 되었다. 피아노 연주회는 오랜만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가고 오는 시간이 번거롭긴 하지만, 공연장에 들어가는 순간 즐거움은 보장된다는 나의 지론을 따르고, 피곤해서 졸리면 잠깐 눈 붙이는 것도 염두에 뒀다.큰 무대에 피아노 한 대,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늘 그득한 무대를 보다 피아노만 달랑 얹혀 있으니 썰렁했고 무대는 더 커 보였다. 음악전문 콘서트하우스에 독주의 단출한 공연을 위해서 무대 세트가 없는 걸까? 음악 전문인은 아니어서 잘 모르지만, 내림막이나 가림막 등으로 무대를 아늑하게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음악공연을 가면 친절하게 여러 시도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곡 해설을 자막으로 띄우기도 하고, 샹들리에를 천정에서 내리고, 커튼 등으로 무대를 아름다운 거실처럼 꾸미기도 한다.프로그램엔 휴식시간을 경계로 전반부 베토벤, 후반부 쇼팽의 작품을 각각 소개했다. 극장 안내자에게 러닝타임을 물으니, 100분인데 조금 단축될 수도 있다고 여지를 두었다. 독주를 하는데, 그렇게 길게 할까, 반신반의했다.커다란 무대의 휑한 분위기 속 키 큰 피아니스트가 등장했다. 성큼성큼 무대를 쉽게 가로질러 피아노 앞에 섰다. 20세 청년이 정말 수려한 외모에 수줍은 미소를 띠며 꾸벅 인사를 했다. 그는 슈트의 앞 단추를 풀고 피아노 앞에 앉더니, 오로지 연주에 몰두했다. 모두를 숨죽이게 만드는 그의 실력은 관객들마저 긴장하게 하는 파워를 가졌다. 필자도 거의 눈을 떼지 못하고, 자유로이 넘나드는 손가락에 집중했다. 50분간 2개의 연주가 끝난 후 휴식시간은 관객에게도 긴장을 푸는 시간이었다.베토벤 작품이 조금 장엄한 분위기였다면 후반부 쇼팽의 작품은 강도 높은 기교를 요구했고, 건반 위의 그의 손가락 움직임은 CG처리를 한 것처럼 빨랐다. 숨 가쁘게 따라갔다. 앙코르 곡에서 그는 더 자유롭게 실력을 발휘했다. 관객들의 요청이 쇄도하니, 그는 가진 기량을 맘껏 풀어냈다. 공연시간은 100분이 넘었고, 가슴이 후련했다.극장 2, 3층에도 많은 관객이 있었다. 멀리서 보는 이들을 위해서 이제는 실시간 공연실황을 무대 뒤편에 확대하여 비춰주는 친절함도 필요할 때이다. 피아노연주에서 어느 좌석이든 연주하는 손과 표정을 함께 보기는 어렵다. 필자는 손가락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는 행운을 가졌으나, 그래도 답답하고 아쉬웠다. 아직도 20세기 연출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클래식예술계의 고집은 관객을 위해 내려놓을 때도 되었다. 친절한 진행과 배려가 연주나 공연의 감동도 배가 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2-01 06:30:00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비주류가 또 다른 주류 만든다

유명하지 않던 인디밴드가 어느 날 방송을 타게 되면서 갑자기 유명해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오랜 세월 이 팀을 응원해왔던 팬들은 그들의 성공을 기뻐할까? 좋아하던 밴드가 대중들의 인정을 받고 인기를 누리게 되었으니 분명 반가운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이제 예전처럼 이 밴드를 좋아할 수는 없겠구나' 라는 마음도 들 것이다. 다수의 대중이 알아주지 않는 인디밴드를 오랜 세월 좋아하는 팬들은 남들과 조금 다른 욕망이 있다. 그들은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남들보다 조금 앞서서 열광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힙스터(Hipster)'라고 부른다.힙스터의 시작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간다. 1940년대, 재즈가 서브 컬쳐로서 인기를 끌던 미국, 인종차별이 조금씩 약해지며 백인들은 흑인들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흑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재즈 음악을 듣고 흑인들의 패션을 흉내 내고 그들의 슬랭(은어)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처음으로 흑인 문화를 수용한 백인 그룹들을 1세대 힙스터라 한다.시간이 흘러 1960년대 전쟁과 물질문명에 반대하는 백인 젊은이들 사이에서 히피문화가 유행 하였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개성과 패션을 추구하며 독특한 생활양식까지 만들어냈다. 비폭력과 평화를 주장하며 락 음악에 심취하던 이들 그룹을 2세대 힙스터라 할 수 있겠다.힙스터의 가장 큰 특징은 비주류성이다. 히피 문화가 너무 크게 유행한 탓에 이들 그룹은 더 이상 힙스터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고 3세대 힙스터인 여피(Yuppie)가 등장하게 된다. 여피는 도시의 젊은 전문 인력을 뜻하는 말로, 이들은 고급 양복을 입고, 유럽자동차를 타고 다녔다. 그들은 히피와는 달리 자신들이 유능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하다는 것을 자랑하였다. 이들도 빠르게 힙스터의 지위를 잃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앞서 히피의 경우와 마찬가지였다. 너무 많은 여피가 등장한 것이다.요즘 한국에서는 힙합의 인기가 뜨겁다. 힙합이 비주류였던 시절 이 음악 장르를 좋아하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힙스터로 인정받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힙합이 단순한 음악의 장르를 넘어 패션과 삶의 철학을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고 한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한국의 힙스터들이 힙합을 떠날 때가 된 것이다. 그들은 또 어떤 흐름을 만들어낼까? 주류를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즐기는 사람들. 이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에 좀 더 다양한 문화가 발생하며 이러한 문화들이 취향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1-28 11:15:22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영화 '쇼생크의 탈출'과 희망

'쇼생크의 탈출'은 1994년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을 기반으로 프랭크 다라본트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영화로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를 보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복역 중이던 주인공이 치밀하게 준비를 하고 20년간 조금씩 땅굴을 파 들어가 마침내 탈옥에 성공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두려움은 너를 죄수로 가두고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영화 포스터에 적혀있는 카피라이터만 봐도 희망에 대한 강한 메시지가 담겨있다.주인공이 탈옥을 꿈꾸는데 비해 다른 장기수들은 오랜 감방생활에 적응을 하고 길들여져서 오히려 바깥세상이 두렵기만 하다. 그래서 가석방 심사 때도 부적격 판정이 나도록 일부러 거짓 연기를 하기도 한다. 실제로 가석방 되었던 늙은 장기수는 바깥 사회에 적응을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교도소 담장이 바깥세상을 동경하는 사람에겐 넘을 수 없는 벽이지만, 순치된 장기수들에겐 오히려 보호벽 역할을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 만큼 무서운 일이다.영화에는 교도소에서의 첫날밤을 견디지 못해 울고불고 난리치다가 맞아죽는 죄수도 나온다. 사방이 절망의 벽으로 쌓인 감옥, 폐쇄의 공포가 엄습하는 첫날은 특히나 두렵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생활이 있는 곳이니 차츰차츰 순응해 가면서 체념도 배워 가야만 한다. 이미 닥친 일이라면 슬기롭게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미치고 말 것이다. 적자생존이란 말도 적응하는 자만 살아남는다는 뜻 아니던가.불편하고 지긋지긋한 가난을 습관처럼 껴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그렇게 살고 싶어 사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만, 질병 등의 이유로 그럴 수밖에 없는 분들은 그렇다하더라도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벗어날 수도 있는 이들이 빈곤층이 되어 우리 사회에 부담을 주는 것은 문제이다. 아무리 익숙하고 길들여졌다고 해도 가난은 가까이 할게 못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벗어나야만 한다. 푸시킨의 시 중에 '마음은 미래에 살고...'라는 구절이 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마음마저 가난해 지면 안 된다. 그건 희망을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 쇼생크의 탈출의 주인공처럼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겠다.영화는 반전의 묘미 아니겠는가. 후반부에 극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보는 이로 하여금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감정을 이입시킨다.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희망의 끈만 놓지 않으면 우리네 삶도 얼마든지 영화의 주인공처럼 반전을 이룰 수가 있다. 마음이 가면 몸은 따라온다고 했다. 계획을 세우고 줄기차게, 끈질기게 밀어붙이면 희망의 빛은 보이게 되어 있다. 물론 고비는 있을 것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8부 능선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거기만 넘으면 희열의 세계가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탈옥 후 환희의 빛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장면은 얼마나 멋지던가.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1-27 11:00:52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11월의 書

주차된 루프에 낙엽들이 소복합니다. 11월의 고백 같고 표정 같기도 합니다. 매년 보내도 처음 보내는 가을처럼, 모든 사랑이 첫사랑인 것처럼, 낙엽은 가을이고 추억이고 그리움입니다. 뒤척이고 뒤척이는 모습은 당신에게서 시작되어 당신에게로 돌아가려는 몸짓일까요? 아무 말 걸지 않으며 슬쩍슬쩍 지나는 행인들 이내 시선을 돌립니다. '이별'의 아름다움은 이 '별'에서 원래의 '별'로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해 둘게요.떠나가는 11월은 이상한 솔직함에서 나오는 전염병 같고, 우수수 내 몰린 상처를 펴서 말리는 것도 같습니다. 혈압이 올라 퓨즈가 나간 것 같고, 미친 척하고 한번 웃어보는 것도 같습니다. 죽은 풀무치 소리를 내며 프로판가스가 자꾸 새어나고. 우리 몸의 잎과 귀가 얇아지는 '11월은 불안하다'고 서정춘 시인은 말합니다. 당신에게서 와 아직 당신에게로 돌아가지 못한 말씀들이 11월의 끝을 붙잡고 있습니다.10월은 열매가 무르익고 5월은 꽃이 만개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체로 10월과 5월을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 두 달에 대한 시나 노래도 많지만, 이 두 달에는 결혼식도 많습니다. 또한 12월은 연말의 정취나 송년회 스케줄로 바쁩니다. 그러나 10월과 12월 사이에 낀 11월은 별로 조명 받지 못하며 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딸과 막내딸 사인 태어난 것처럼, 특별하게 기억되는 날이나 노래도 없습니다.기온이 뚝 떨어져 건조한 몸이 가렵습니다. 속수무책 떨어지는 잎들로 생이 가려운 11월, 가려운 생을 털어내느라 나무들도 괴롭습니다. 당신에게 가 닿으려고 몸에서 무게를 덜어내는 11월, 당신에게 주려고 뭔가를 뒤적뒤적 자꾸만 주억거리는 11월, 어쩔 줄 몰라 감정의 문을 닫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색의 단풍도 좋지만 마지막 잎만 남은 앙상한 가지도 좋습니다. 황금물결 넘실대는 들판도 좋지만 가을걷이 끝난 휑한 빈들도 좋습니다.길 가다가 소복한 낙엽이 발에 걸리면 아무생각 없이 걷어차게 됩니다. 지나는 강아지 꽁무니에 시선이 따라가기도 합니다. 낙엽이 머문 자리에서 또 걷어차고, 멀뚱멀뚱한 강아지에게 왈왈, 추파를 던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또 차 달라고 떼를 쓰며 달라붙는 낙엽들을 봅니다. 맞고도 랄랄랄 춤을 춥니다. 이처럼 11월은 아무 생각 없이 시작되고 아무 생각 없이 끝납니다. 생각 없는 치다꺼리들이 어이없이 기쁘게 느껴집니다.그러므로 11월은 일종의 사계절적 푸가(fuga)인 셈입니다. 詩詩(시시)콜콜한 시름이나 부름이 우리가 잘 모르는 기교로 교차하고 있습니다. 타국에서 느끼는 근본적인 쓸쓸함이나 시름 같은, 11월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10월과 12월을 벌려 주기 위해 11월이 존재한다는 것은 더욱 의미 있어 보입니다.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1-26 11:19:03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선택할 수 있다면

중요한 약속이 있어 바쁘게 발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멀리 어수룩한 차림을 한 할머니가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늘 같은 자리에서 집에 갈 차비가 없다며 차비를 빌리시던 어떤 할머니에게 차비로 쓰이지 않을 걸 알면서 지갑을 열었던 경우가 꽤 있었던지라, '이번에도 차비를 달라시면 어쩌나' 하고 불안함이 몰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끝내 내 앞에서 말을 걸었다. "집 좀 찾아주세요." 추위가 잔뜩 묻은 입술을 하고서 목에 걸려있는 동그란 목걸이를 내미신다. 목걸이 앞면에는 아들 내외 것으로 보이는 전화번호 두 개와 뒷면에는 주소가 새겨져 있었다. 손자뻘쯤 되는 나에게 자신의 허물을 보이시는 할머니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해보니 오해했던 내가 한없이 초라해졌다. 할머니를 꼭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 전화해드릴게요" 라고 말하며 전화기를 꺼내는데 할머니가 내 손에 있던 목걸이를 '탁' 움켜쥐시며 전화는 하지 말고 어디로 가는지 길만 알려달라고 하신다.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짐이 되고 싶지 않으셨던 할머니의 마음을 알아채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얼른 스마트폰에서 주소 검색을 했다. 거리는 약 300미터 정도, 그리 어려운길은 아니었다. "할머니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여기서 많이 안 멀어요." 몇 차례 사양하시더니 이내 나와 함께 발을 옮기셨다. 대로변에서 골목길로 들어가 한참을 말없이 걸었다.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설픈 위로도 어색함을 달래는 물음표 없는 질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골목 끝에 모퉁이를 돌자 할머니가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다고 하신다. 불안했던 나는 그래도 집 앞까지 모셔다드리겠다고 하자 버럭 화를 내셨다. '아, 길을 잃었다는 것을 자식에게 들키고 싶지 않으신 거로구나' 하고 번뜩 생각이 들어 얼른 나머지 길을 알려드렸다.자식과 부모는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부모도 자식을 선택할 수 없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덜컹 맺어진 인연으로 서로 남보다 못하게 싸우기도 하고 남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누구나 한 번쯤 '나는 왜 하필 이런 부모 밑에서 태어났을까' 하는 원망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만의 경험이 아니길…) 좀 더 돈 많은 부모, 좀 더 다정한 부모, 좀 더 지적인 부모…. 하지만 거꾸로 부모가 자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선택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생긴다.매번 다녔던 길이 낯설게 느껴지는 두려움보다 자식에게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부모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된다면 부모가 길을 잃을까봐 목걸이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새겨 부모의 목에 걸어준 자식의 마음도 이해가 되지 않을까? 부모 자식 간에 자격이 필요하다면 세상에 누가 부모와 자식을 할 수 있을까?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1-25 11:09:21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공연장 특화의 미션

대구에서 공연을 보러 다녀보면, 공연장 마다 각기 다른 특색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예술 장르마다 선호되는 극장이 있고, 예술가들마다 애호하는 공연장이 다르다. 극장의 시설, 규모, 교통, 관계자들의 전문성, 분위기 등 여러 요인이 그 선택의 변수가 될 것이다. 요즘 교통편의 편리함도 기획자들의 선택기준에 매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대구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공연장이 있을까?대구를 대표하는 큰 공연장을 살펴보자.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콘서트하우스, 대구오페라하우스, 대구학생문화센터 등은 천 석이 넘는다. 경북대, 계명대, 영남대 등 대학 공연장은 2천석에 가까운 대형이다. 그 보다 큰 규모의 엑스코오디토리움과 같은 초대형극장은 인기 있는 대중가수 공연이나 유명인사 강연회 장소로 이용되기도 한다.그리고 각 구 단위마다 대형 회관을 가지고 있다. 아양아트센터, 웃는얼굴아트센터, 대덕문화센터, 어울아트센터, 봉산문화회관, 수성아트피아 등은 중대형의 훌륭한 공연장이다. 이 밖에도 중극장 정도의 공연장도 적지 않고, 종교단체의 극장들, 대형극장의 부대시설인 소극장과 요즘 유행하는 하우스콘서트를 지향하는 아담한 소극장들이 대거 생겨나면서 공연장은 어림잡아 봐도 백 개는 족히 넘어 보인다.이렇게 공연장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 수요가 그 만큼 증가하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 억지로 술 권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나면서, 송년회도 공연을 즐기고, 공연 관람 후일담을 나누거나 간단히 차를 한 잔하기도 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는 문화 풍속의 변화도 일조를 하는 듯하다.각양각색의 공연장들은 그 특색에 따라 공연되어지는 장르가 있다. 대구콘서트하우스는 음악전용극장으로 애초 음향시설에 특히 신경을 썼고, 대구오페라하우스도 오페라와 음악 공연 위주로 이용되는 극장이다. 또 대명동 소극장거리와 동성로에 위치한 소극장들은 연극전용극장이고, 뮤지컬은 대부분 대형작품이라 대극장 사용이 보편적이다.그러면 공연예술 중 무용공연은 주로 어디서 이뤄질까? 전용극장은 없고, 무용가 각자 선호도에 따라, 또 작품의 크기에 따라 여러 극장을 이용하고 있다. 젊은 안무가들이나 전통무용과 같이 작은 무대가 필요할 때도 작은 극장의 선호도가 없다. 얼핏 보면 선택 폭이 넓어 보여도, 무용 장르를 특별히 배려하는 극장이 없다는 뜻도 된다.극장이 어느 한 예술장르에만 집중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한 장르를 특별히 배려하는 특화가 이뤄지길 소망해 본다. 일반 공연장이었던 대구시민회관이 음악전문 공연장 대구콘서트하우스로 특화한 방식을 모든 공연장에 적용하도록 미션을 가지자는 것이다. 꿈꾸기 시작하면 미래에는 반드시 이뤄진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1-24 06:30:00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동화'를 좋아한다. 다른 문학 장르를 읽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지칠 때면 이런 장르의 책을 찾게 된다. 마음에 구멍이 나서 힘이 빠져버린 것 같을 때 동화를 읽게 되면 구멍 난 곳은 책 속의 단어와 문장으로 조금씩 메워진다.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도 얻게 된다.왜 동화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이런 장르가 가진 어법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동화에서는 그 어법이 매우 조심스럽다. 하고자 하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돌려 말하거나 비유를 들어 설명할 때가 많다. 두 번 째로, 순수한 감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다. 마음이 편치 않을 때에도 이러한 책을 읽는 것은 마음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새 좋지 않은 기분은 잊어버리게 되고 어느새 책이 주는 감동에 촉촉하게 젖어든다.필자가 근래 열심히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필자 역시 좋아하는 '어린 왕자'라는 책이다. 내년에 뮤지컬 작품으로 제작할 계획이 있어 오랜만에 다시 책을 꺼내 읽게 되었다. 이 작품은 읽을 때 마다 새로움을 주기 때문에 몇 번이고 다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이야기들을 한다. 이번에 다시 꺼내 읽어보며 그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었다. 전에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느껴졌다.예전에는 책을 읽으며 현실에서 벗어나려 했다면 지금은 책을 읽으면서 잊고 지냈던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현실에선 쉽사리 발견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을. 들키고 싶지 않아 상자 속에 꽁꽁 감춰 두었던 내면의 감정들이 물 밀 듯 밀려와서 마음이 울렁거린다."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나'라는 인물이 '어린 왕자'에게 한 말이다. 어린 왕자에게 장미꽃이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인 이유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왕자가 장미꽃을 위해 정성을 쏟고 시간을 사용했기 때문에 장미가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필자는 정성과 시간을 들여 길들인 것에는 마음이 함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마음은 감정이나 생각, 기억 따위가 깃들이거나 생겨나는 곳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곳'이란 단어가 쓰인다는 것은, 마음은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모두들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마음이라는 것이 필시 어딘가에는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감춰두었던 그 마음이 생각이 난 것이다.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현실 속에선 눈에 보이는 당장 중요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 현실로부터 멀어져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나의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내가 진짜 중요하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1-21 11:22:06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봉란이

마늘, 고추 농사가 대부분이었던 고향마을은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농한기가 참으로 길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마늘만 심어 놓으면 다음 해 봄까지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어른들은 땔감이나 준비해놓고 나머지 시간은 '먹기 내기' 등 여가를 즐겼다. 그 여가 선용에 술이 빠질 리가 없었다. 집집마다 노란 주전자 하나씩은 다 있었고, 신작로 막걸리 됫술집으로의 심부름은 우리 아이들 몫이었다. 그 시절, 술을 받아 오면서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보지 않은 이 별로 없었으리라.봉란이네는 막걸리 됫술도 함께 파는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농사일이 바쁜 일철에는 봉란이 부모님은 예닐곱 살밖에 안 된 봉란이에게 점방을 맡기고 들에 가곤 했는데, 이 아이는 나이도 어린 것이 아주 맹랑하고 똘똘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름보다는 똘똘이로 불렀다. 그 만큼 가게 물건도 잘 팔고 계산도 정확했다. 그렇지만 완벽하기만 했던 똘똘이에게도 한 가지 흠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음주였다. 혼자 가게를 보면서 호기심에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시다가 나중에는 몽롱하게 취하는 맛까지 알아버린 것이다.해가 빠질 무렵, 부모님이 들에서 돌아오면 봉란이는 신작로를 걸어 마실을 나오는데 이때부터 자기와의 눈물겨운 싸움을 시작한다. 넘어지면 일어서고, 또 넘어지면 툭툭 털며 일어나는 등 홍수환의 4전5기나 벽에 걸어두던 7전8기(七顚八起)는 저리 가라다. 어떨 땐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 하면서 무슨 일로 동생까지 업고 나와 마구 뛰다가 엎어지기도 했다. 처음에 마을 사람들은 봉란이가 술을 마셨다는 것을 몰랐다. 영양실조인 줄 알고 원기소나 좀 사주라고 했으니 말이다. 술이란 과하다 보면 실수가 따르기 마련인데 이는 애, 어른을 따로 구분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술의 폐해를 온몸으로 보여주던 꼬마 술꾼 봉란이는 좀처럼 술을 끊지 못하다가 아이를 걱정하던 부모님의 용단으로 막걸리를 들여놓지 않으면서 정상으로 돌아오게 된다.그 후로는 봉란이를 보지 못했다. 우리집이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인, 군대 첫 휴가 때 우연히 조우를 하게 된다. 귀대를 앞두고 고향마을을 들렀다가 봉란이를 만난 것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녀는 활짝 피어 있었다. 그녀가 정말 예쁜 것이었는지, 여자에 대한 눈높이가 형편없을 수밖에 없는 군인의 특수 신분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굉장히 예뻤다. 귀대 시간만 촉박하지 않았어도 그 전설적인 술꾼과 대작하는 영광을 누릴 기회가 있었을 텐데.내 여동생과는 동갑내기이기도 한 봉란이는 이젠 나이가 쉰도 훨씬 넘은 중년 부인이 되었겠다. 하지만 나의 기억에는 아직도 얼굴 빠알간 단발머리 소녀로 남아 있다. 유년시절의 재미있는 추억 한자락을 안겨준 봉란이는 지금쯤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지금도 술을 마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술로 인한 좋지 않은 버릇은 없었으면 좋겠다. 주력(酒歷)으로만 본다면야 이미 주선(酒仙)의 경지에 올랐겠지만.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1-20 11:18:36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사랑이라는 밥의 은유

명분을 가로질러 밥이 왔다. 천국에서 추방된 밥이, 추풍낙엽에도 나를 생각하며 왔다. 국도를 지나는 적막한 빈들, 서로를 간섭하며, 가끔씩 눈을 깜박거리며 왔다. 이렇게 왔는데 나는 밥이 보고 싶지 않았다. 밥상을 차리고 싶지도, 숟가락을 들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입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목구멍이 허락하지 않았다. 스물두 살 여학생이 털어놓은 말 감기처럼 목구멍에 걸려있었다.밥의 얼굴은 다양하다. '밥블레스 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화끈한 화법의 김수미와 충청도식 유머가 빛나는 '밥은 먹고 다니냐' 등의 TV프로그램들을 보면 빵이나 고기에 밀려나도 밥에 대한 사랑은 한결같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촌장님에게 물었다. 마을 사람들을 잘 다스리는 영도력의 비밀이 무엇이냐고? "잘 멕여야지." 결코 쉽지 않는 말인데 아주 쉬운 말로 들렸다.밥! 누군가에게는 슬픔이고 누군가에게는 배고픔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고개를 수그려야 입으로 들어가는, 밥 먹듯 부르는 말, 한 번쯤 건너뛰어도 되는데 밥풀처럼 악착같이 달라붙는 밥, 새벽에 일어나 밥솥을 열어 본다. 새하얀 밥알들이 식구처럼 꼭 껴안고 있다. 끓고 있는 밥솥만큼 뜨거운 언제 적 촛불인지 알 수 없으나 어머니는 여전히 시에서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 암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손톱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정재학 시인의 시 일부를 가지고 오는 동안, '담벼락의 비가 마르기 시작'하는데 어머니는 천국에서도 촛불로 밥을 지으실까?생활과 한 몸인 밥처럼 툭 하면 '너 밥 없을 줄 알아!' 이런 협박이 통하지 않는 시대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협박으로 사용하는 걸 보면 엄마들에게 '밥'은 큰 무기이자 사랑임에 틀림없다. '밥은 먹고 지내냐', '밥맛 떨어진다', '밥값은 해야지', '그게 밥 먹여 주냐?' 얼마나 정이 떨어지면 '밥맛 떨어진다'고 했을까? 밥 먹고 사는 것이 삶이라면 죽음은 영영 밥숟가락 놓는 것이고, 취직은 밥 먹을 자리 찾는 것이고, 실직은 밥줄 끊어지는 것이다. 일 잘하는 사람은 밥값 톡톡히 하는 사람이며, 일 못하는 사람은 밥값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다.밥 먹다가 싸우고, 밥 먹다가 정들고, 밥 먹다가 울고, 그래 놓고 또 밥 먹자, 밥은 먹었냐, 밥 챙겨 먹어라, 밥의 무한함은 결국 사랑의 무한이자 은유다.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1-19 11:44:43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안녕하세요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밤,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비가 내리면 으레 그렇듯이 버스 안은 우산에서 떨어진 빗물 때문에 바닥이 미끄러워진다. 꽤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많이 없어 다행히 빈자리는 많았다. 나의 운동신경을 너무 믿다가 빗물을 엉덩이로 방아 찧었던 기억이 있어 조심스럽게 손잡이에 의지해 빈자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근데 왜 항상 버스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 마냥 빨리 출발할까? 비틀거리며 용케 자리에 앉아 내 종아리 근육을 긴장하게 만든 버스기사님 뒤통수를 향해 레이저를 쐈다. '그래, 배차시간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으시겠지' 라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때 한 어르신이 버스에 올랐다. 그 어르신은 조금 낡아 보이지만 주름이 잘 잡혀있는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쓰고 계셨다. 버스 요금을 내시더니 중절모를 살짝 들어 올리시며 버스기사님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셨다. 순간 버스 안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어르신께 집중되었고 다음은 당황하시는 버스기사님으로 옮겨갔다. 버스를 타며 기사님께 인사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쩔 줄 몰라 하시는 기사님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그 인사덕분인지 당황하느라 배차시간을 잊으신 건지 그 어르신이 느린 걸음으로 자리에 앉을 때까지 버스의 가속페달을 밟지 않으셨다.우리는 인사에 야박하다. 고개를 숙여 '안녕하세요' 라고 상대방의 안녕을 문안하는 것이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먼저 해야 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후배가 선배에게, 어린 사람이 연장자에게. 하지만 문법상 문장 종류를 따지자면 '~하세요' 라고 끝나는 문장은 명령형이다. 어쩌면 인사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먼저 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재미있는 억측을 해본다. '안녕하세요' 라는 말은 '걱정과 아무 탈 없이 몸과 마음이 편안하시라' 는 뜻이다. 우리가 무심코 건네던 인사말이 이렇게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니 이보다 좋은 명령이 있을까?대학생 시절 며칠 밤을 새우고 피곤의 극치에서 신발을 끌며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은 과에 여자 친구가 우연히 나를 발견하고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오빠' 라고 꽤 길고 큰소리로 불렀는데, 글자로 표현하자면 '빠' 자가 50자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순간 우리가 이렇게 친한 사이였나?' 의심이 들다가 그 친구의 밝은 표정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그 인사 한 번에 사라졌다.반갑게 건네는 인사 한마디는 힘을 가지고 있다. 웃음을 전염시키고 버스 출발을 늦추고 깊은 유대관계가 아니었단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다. (유경아, 잘 지내고 있니?) 대우받기 위해 인사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눈을 마주하고 건네는 인사 한마디가 당신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1-18 11: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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