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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윤 수필가

[에세이 산책] 소나기

연일 폭염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온몸이 땀에 젖습니다. 가로수도 지쳤는지 잎사귀가 죄다 늘어집니다. 살수차가 도로에 연신 물을 뿌려 대지만 달아오른 지열을 식히기엔 역부족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얼굴이 빨갛습니다. 찬물 샤워를 하고, 얼음과자를 먹고, 냉방기 바람을 쐰 후에야 살 것 같다 합니다. 이럴 때 소나기라도 한차례 쏟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소나기를 기다리는 것 비단 저 혼자만의 바람은 아닐 테지요. 소나기는 언제나 반가운 존재였습니다. 바싹 마른 황톳길 위로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면 풀숲에서 메뚜기도, 개구리도 놀라 팔딱팔딱 뛰어나왔습니다. 개미의 행렬은 아수라장이 되지만 금방 대열을 가다듬습니다. 잠자리들은 젖은 날개가 무거워 옥수수 대궁이든 빨랫줄이든 몸을 내립니다. 강가에서 풀을 뜯던 소들은 그 먼 길을 더듬어 혼자 집을 찾아오곤 했지요. "비 온데이, 빨래 걷어래이." 이웃집 상 할머니의 목소리가 소나기만큼 다급합니다. 어린 나는 잽싸게 빨래를 걷고, 농기구도 처마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는 마루에 앉아 소나기가 내리는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합니다. 학교가 파할 무렵 언니와 오빠를 마중하기 위해 주섬주섬 우산을 챙깁니다. 잠을 자는 동생을 두고 갈 수 없어 깨웁니다. 나는 커다란 우산을 활짝 펼칩니다. 꿈을 찾아 떠나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우리는 비장한 모습으로 삽짝을 나섭니다. 후드득후드득~.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겁나게 좋습니다.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데려가 줄 것만 같습니다. 점점 거세지는 비바람에 우산이 사방으로 흔들립니다. 우리는 더 세게 우산대를 움켜잡고 고인 물을 첨벙첨벙 튀기며 걷습니다. 세찬 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때로는 저 멀리 날아가 버리지요. 옷이 젖을까 조심하다가 옷이 다 젖은 걸 안 후에는 슬그머니 우산을 접습니다. 그리고는 마구 빗속을 뛰어다닙니다.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자유! 비를 흠뻑 맞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그때 나는 비로소 내가 누릴 수 최대한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죠. 흠뻑 젖을 수 있는 권리를 알게 된 건 내 나이 불과 일곱 살이었습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젖을 수 있는 자유가 그립습니다. 천진하게 자유를 누리던 소나기는 언제쯤 내릴까요? 폭염 이어지는 삶의 길에서 소나기 다시 한 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마흔을 넘긴 동생을 불러다 마음껏 빗속을 뛰어다니고 싶습니다.살면서 소나기를 만난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니까요.

2018-07-30 10:30:12

김일광 동화작가

[에세이 산책] 라디오

시간에 맞추어 라디오를 켠다. FM 라디오 오프닝 멘트가 하루 종일 쫓기던 마음을 차분히 붙잡아 앉힌다. 소곤소곤 속삭여 오는 DJ에게 시간을 넘기고 시트에 등을 기댄다. '보석을 세공하는 장인들에게는 보석을 다루는 순서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 개의 보석이 동시에 들어가는 경우 상처를 입기 쉬운 진주를 가장 마지막에 얹는다고 하지요. 쪼개 상처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진주는 상처에 가장 취약한 보석이어서 마지막이 다룬다고 합니다. 마음의 영역에서는 정반대로 …. 무더위 속에서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라디오를 즐겨 듣는 편이다. 지금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그래서 라디오를 따로 마련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라디오를 처음 대한 것은 어릴 때 외가에 갔을 때였다. 시골마을에 집집마다 스피커를 설치해 놓고, 방송을 중계해 주었다. 참 신기하였다. 그때부터 라디오를 통해 시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발음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 팝송을 흥얼거리곤 했다. 나만의 라디오를 가지게 된 것은 진학으로 혼자 살게 되면서부터였다. 라디오를 껴안고 지내면서 겉멋에 취하여 머리를 기르다가 단속에 걸려 파출소에서 밤을 보내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라디오를 늘 곁에 두었다. 소리를 들으면서 상상하는 재미도 좋았지만 라디오는 일을 방해하지 않았으며, 라디오를 듣기 위해 따로 시간을 마련할 필요도 없었다. 승용차를 가질 때도 음악을 듣기 위한 장치를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 라디오만 나오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특히 오후 6시부터 시작되는 음악 방송을 즐겨 듣는다. 그 시간만큼은 놓치지 않으려고 부쩍 신경을 쓴다. 그래서 고가의 라디오를 따로 마련하기도 했으며, 휴대전화와 연결하여 들을 수 있는 스피커를 구입하기도 했다. 홈시어터로 들어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듣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모든 방법이 성에 차지 않았다.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청취 방법은 따로 있었다. 승용차에서 들어야 제 맛이다. 차분차분 마음을 다독여주는 멘트와 선곡된 음악을 들으면 몽환의 세상으로 자동차 여행을 하는 것만 같다. 먼 길을 떠났다가 집 가까이 왔을 때 느끼는 안도감을 갖게 해준다. 때로는 일상을 잠시 내려두고 여행에 나서는 설렘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집을 비켜서 운전을 계속할 때도 많다. 오늘도 FM 라디오에서 음악과 멘트가 흐른다. 자동차 한 대가 라디오에 빠졌다.

2018-07-24 05:00:00

박시윤 수필가

[에세이 산책] 다시, 떠남

방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힌다. 노트를 넘기는 바람, 일상을 기록한 습작 노트 위로 육지의 시간은 고단했다. 설익은 문장들이 씨앗처럼 화르르 일어나 바람을 따라갈 채비를 한다. 비밀을 들킨 듯 쿵쾅이는 심장, 분명 나는 요동하고 있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바람, 내 안에 웅크린 백색의 자아가 범람한다. 혼돈에 빠진 영혼을 핑계로 나 다시 이대로 떠나도 괜찮을까. 몸 붙이고도 마음을 정착하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 간신히 마음을 다독이고, 간신히 목숨을 지켜왔으나 바람이 내 안에 들면 천명처럼 육신이 아팠다. 육신이 아파지면 영혼에 구멍이 뚫리고 더욱 또렷하게 바람이 들고 났다. 그럴 때면 슬픈 천명을 안고 미지의 세상을 동경하곤 했다. 몇 해 전, 바람을 따라 동쪽 바다를 건넌 적이 있다. 나를 쥐어흔들던 바람은 맑았으며 싱싱하였으며 한결같았다. 바람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내 영혼이 자유할 것이고 그리하여 내 꿈이 몇 곱절의 자신감으로 부풀어 오를 것만 같았다. 육지 밖으로 벗어나는 일은 대단히 조심스러운 일이었으나 확고한 의지가 나를 이끌었다. 그리하여 나는 연고도 없는 섬에 다다랐다. 분명 사람이 살고 있으나 사람의 소리가 아닌 바람의 소리가 났고, 메아리를 가진 소쩍새 울음소리와 울울창창한 나무들의 소리가 났다. 퍼드덕대며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에서도 바람이 일었다. 바람, 참 맑은 것이었다. 섬에 사는 동안 한 번도 내 바람에 의심을 품은 적이 없었다. 내 기억이 싱싱하게 머무는 곳, 사계절을 돌고 돌아 두 해를 살고도 여전히 속살이 그리운 곳, 나는 겉도는 육지의 시간을 안고 다시 섬으로 간다. 육지의 밖, 혹은 바다, 그리하여 섬, 울릉도는 내게 그런 곳이다. 작동하지 못하는 내 영혼을 불러다 정착을 이루게 하는 곳. 바람은 대체로 맑았으며 혼돈하는 내 영혼을 또렷하게 깨우는 곳. '어제는 개망초꽃을 피웠어. 오늘은 해국과 달맞이꽃을 피웠어. 그리고 내일은 네가 지나는 길목길목에 접시꽃을 피울 거야.' 바람이 속삭인다. 근 몇 달, 육지의 시간을 살면서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나는 다시 혼돈의 시간을 걷고 있다. '나 다시 떠나는 거야. 그 섬 한 번 더 훔쳐보는 일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거야.' 나는 본능을 일으켜 바람이 일어서는 섬 울릉도로 간다. 울릉도 깊은 골짜기엔 새벽이면 싱싱하게 환생하는 바람의 골이 있다. 먼 곳, 아득한 곳, 그래서 더 궁금한 땅.전설 같은 섬에서 나 무한히 싱싱해져서 바람과 함께 다시 돌아올게요.수필가

2018-07-16 10:29:46

김일광·동화작가

[에세이 산책] 바다계단

다행히 태풍이 대한해협으로 빠져나갔다. 잠깐 비가 그친 사이에 혹시나 해서 텃밭에 나가 보았더니 역시나 토마토 가지가 여럿 꺾어져 있었다. 미리미리 대비해야 하는데 게으름 탓에 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다. 그나마 성한 토마토 줄기를 찾아 지주를 세우고, 줄기가 약한 오이도 단속을 하였다. 비는 다시 쏟아졌다. 대문 밖 길바닥이 온통 물길로 변했다. 지붕을 치는 빗소리와 흐르는 물소리가 낭만적이라며 빗발이 치는데도 아내는 문을 열어두려고 했다. 비가 들이친다고 나는 문을 닫고 아내는 또 열고. 비 오는 날마다 실랑이를 벌인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비가 그쳤다. 창을 여니 해무가 창 밑까지 밀려와 있었다. 비 때문에 갇혀 있던 갑갑함을 떨쳐내려고 산책을 나섰다. 까꾸리개로 내려가는 오솔길을 따라 해무 속으로 들어갔다. 태풍 뒤끝인지 제법 파도가 높았다. 해안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보이지 않던 표지판 하나가 해무를 잔뜩 얹은 채 눈에 들어왔다. '바다계단 200m' 화살표와 함께 그렇게 적혀 있었다. '바다계단?' 아내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길에서 바다계단을 본 적이 없었다. 200m쯤 되는 곳에 이르러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았다. 영해기준점이 보였다. 그리고 눈앞에 파란 물등대가 버티고 있었다. 문득 잊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교석초 전설이었다. '옛날 범꼬리인 구만리에는 마고할멈이 살고 있었다. 이 할멈은 종종 영덕 축산 나들이를 하였다. 축산까지는 길이 멀고 험했다. 그래서 바다에다 돌다리를 놓고 싶었다. 그런데 영일만을 건너는 바다는 파도가 셀 뿐 아니라 물도 깊었다. 마고할멈은 물살이 잔잔한 날을 잡아 구만리 앞에서 징검다리를 놓기 시작하였다. 치마폭에 큰 바위를 싸서 옮기는 사이에 그만 날이 새고 말았다.' 마고할멈이 운반하다가 그친 바윗돌이 구만에서 축산을 향하여 일직선으로 바다 밑에 고스란히 남아 있단다. 마치 정으로 다듬어 놓은 것 같은 바위 구조물이 있다고 하였다.영일만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먼 옛날 마고할멈도 영일만대교 건설을 꿈꾸었던 것일까. 오늘날처럼 그 옛날에도 바닷길 건설을 시도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어제와 오늘이, 또 내일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정지된 시간 속에 아내와 나는 파도가 연주하는 자갈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마고할멈이 갖다 놓은 바위에 앉아 있었다. 해무와 어둠과 우리가 다른 모습이 아닌 한무리가 되어 갔다.

2018-07-09 10:24:44

박시윤 수필가

[에세이 산책] 장마

잠결에 물소리를 들었습니다. 비 냄새가 났던 것도 같습니다. 이불을 끌어당기며 비가 오나 보다 했습니다. 아침이 오고 산을 엉금엉금 기어 내려오는 구름과, 젖은 도시를 바라보며 열 살의 장마를 기억합니다. 열 살의 내가 폴짝폴짝 뛰면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 개울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차례로 징검다리를 건너는 동안, 나는 징검다리가 싱거워 물속으로 첨벙첨벙 걸어갔습니다. 송사리를 잡겠다고 안간힘을 쓰면 친구들은 개울 건너에서 나를 기다려주었습니다. 가끔 수양버들 아래서 무언가가 떠내려오곤 했는데, 한 치 앞에 다다라서야 그것이 슬금슬금 물살을 탄다는 걸 알았습니다. "배… 뱀이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뱀은 어느새 제 갈 길 가고, 남은 건 흠뻑 젖은 나 혼자였습니다. 저벅저벅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머니께 야단맞을 일이 한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징검다리를 밟지 않았지요. 어느 아침이었던가요.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어머니는 조신하지 못한 내게 고무신을 신기셨습니다. 빨갛고 노란 꽃이 정신없이 그려진 고무신을요. 아무리 어렸어도 내가 좋아할 리 없잖습니까. 심통이 난 나는 질벅한 마당을 쫓아다니며 발자국을 마구 찍어댔습니다. 아버지가 아시면 경을 칠 일이란 걸 잘 알면서도. 개울은 물이 불어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기 위해 모인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몇 해 전 이 개울에서 아이 하나가 물살에 휩쓸려 죽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모두를 '죽음'이라는 공포로 몰아갔습니다. 중학생 오빠들이 물살을 이겨보려 했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곧이어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아이들은 경운기에 실려 학교로 향했습니다. 곱절의 거리를 우회해서 다다른 학교. 거센 빗줄기 속에서도 누군가의 은혜가 차고 넘쳤습니다. 오늘 마흔둘의 장마를 겪습니다. 빨래가 꿉꿉하게 말라가는 건 좀 싫지만 무엇인가가 쑤욱 쑥- 자라는 냄새가 나서 참 좋습니다. 이젠 흠뻑 젖어도 좋을 그런 나이인 것 같습니다. 열 살의 폐가에는 장마가 난 후 풀들이 쑤욱 쑥- 자라 숲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떤 외로움과 곤궁이 밀려오곤 하는데 그 풀숲의 풀들은 그곳으로 나를 불러들여 은둔하게 합니다. 비가 흘러들어간 내면의 구석에선 열 살의 내가 아직도 쑤욱 쑥- 자라고 있죠. 슬레이트 지붕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 소리, 그 물소리에 빠진 내 안의 숨소리는 또 얼마나 깊어질까요. 그리하여 내가 웃자라기 시작하는 장마, 나는 아직도 새 날을 꿈꾸는 그 소리가 참 듣기 좋군요. 박시윤 수필가

2018-07-02 10:57:32

김일광 동화작가

[에세이 산책] 비취색 바다와 메밀밭

'비취색 바다와 메밀꽃', 언제부터인가 펼침막이 호미곶을 지나는 도로변에 나붙었다.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미곶이 무슨 봉평도 아니고 메밀꽃이라니? 싱거운 사람이 선거철에 장난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한두 곳도 아니고 지나다니는 길목마다 펼침막이 나타나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차를 세우고 길 위로 나서보았더니 와우! 별세상이었다. 호미곶에는 보리밭과 유채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새천년 광장 주변 들녘이 온통 하얀 메밀꽃이었다. 도래솔을 품으며 펼쳐진 메밀꽃도 장관이지만 곰솔 숲 너머에서 출렁거리는 바다와 어우러진 메밀밭은 가슴까지 철렁이게 하였다. 지금까지 보아온 호미곶 풍광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일부러 달이 뜬 날 밤에 나가서 과연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은지를 확인해 보기도 하였다. 달빛이 내려앉은 메밀밭은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까. 매혹적이었다. 몇 차례 드나들며 이색적인 정경을 보고는 그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다. 휴대전화기로 사진을 주고받는 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동서남북으로 방향을 잡아 가며 여러 장을 찍었다. 그 자리에서 이곳저곳 친한 사람들에게 보냈다. '호미곶 비취색 바다와 메밀꽃을 보러오세요' 라는 문자와 함께. 사진을 받은 사람들마다 '가까운 곳에 이런 모습이 있느냐'며 메밀꽃 구경을 오겠다고 하였다. 그 이튿날부터 친지들이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시절이 하지 무렵인지라 퇴근하고 와도 해는 중천이었다. 해넘이와 함께 메밀밭에서 오랜만에 사진을 찍었다. 물론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바로 나가서 안내를 맡았으며,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을 짚어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면 아예 몇 팀이 오겠다는 연락을 주기도 하였다. 지난 주말에는 한꺼번에 여러 가족이 오는 바람에 서로 낯선 이들끼리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메밀꽃을 핑계로 한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찾아왔다. 일부러 오지 않으면 또 몇 년이 흐를 것 같아서 애써 달려왔다고 하였다. 누가 어떻게 조성한 메밀밭인지는 모르겠지만 활짝 핀 그 꽃 덕분에 톡톡히 손님을 치고 있다. 우리는 반갑게 만나서 꽃을 보며, 오랜만에 꽃처럼 활짝 웃으며, 꽃 가운데서 사진을 찍었다. 가슴 가득히 숨을 들이마시며 활짝 웃어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하였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짬 내기조차 어렵다고도 하였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함께하는 게 행복인데 우리는 너무 바빠서 그런 꽃을 피울 시간조차 잊고 사는 것만 같다.동화작가

2018-06-25 13:46:07

박시윤 수필가

[박시윤의 에세이 산책] 오늘

한 사람이 떠났다. 그녀와의 시간은 추억이 되지 못했다. 아픔… 아픔이 되었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숨 가쁘게 이어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호흡이 가빴다. 서른여덟, 그녀의 나이는 병을 앓기에 너무 젊었다. 온몸이 붓고, 혈색이 헐거워지고, 숨이 가빠지고…. "호스피스 병동에 자리가 나면 그리로 갈 거예요." 그녀 스스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부엌 구석에서 소리 없이 울음을 삼키던 그녀의 어머니. 어머니를 위해 나는 날이 맑을 때면 바람을 쐬러 가자며 그녀를 휠체어에 앉혔다.친구! 그녀와 나는 친구가 아닌 듯 그렇게 친구였다. 여자라는 것과 아줌마란 것, 무엇보다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 친구의 이유였다. 같은 수술을 했고 힘겨운 시기를 같이 넘겼다. 무엇보다 다시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다시 살아가는 기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병은 재발했고 손쓸 수 없을 만큼 전이되었다.초여름의 바람은 참 고왔다. 푸른 풀냄새가 섞여 있고, 해가 저물면 붉은 노을 냄새가 섞여 있었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의 땀 냄새도 스며 있었고, 어느 집 옥상에서 까닥까닥 말라가는 빨래 냄새도 스며 있었다. "바람이 참 좋지요?" 우리 둘은 동시에 같은 말을 곧잘 했다. "세 살, 다섯 살 애들이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참 예쁘겠어요." 그녀의 이마를 쓸어주며 나는 살포시 웃었다. "아무도 생각하지 말아요. 나만 생각해요. 사랑은 내가 다 나은 후에… 그때 건강하게 아낌없이 주면 돼요." 그녀의 핏기 없는 눈이 젖었다. "살고 싶어요. 억울해요. 왜 하필 내게…."부고가 날아왔다. 그녀가 떠나고 나는 한동안 무기력했다. 피곤하다는 것, 춥다는 것이 전제되고 나 역시 전철을 밟았다. 진통제 몇 알로 통증을 대신한다는 건 바보 같은 일일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거뜬히 이겨낼 것이기에 내 부고를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경험자다. 한 번 더 경험하는 것일 뿐 달라지는 건 없다. 아니 달라진 게 있다면 그간 아픔을 대하는 내 정신력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의지가 단단해졌다는 것이다.'불꽃처럼 살아야 해 오늘도 어제처럼. 저 들판의 풀잎처럼 우린 쓰러지지 말아야 해.' 노랫말처럼 나, 하루하루 불꽃처럼 살리라. 오늘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할지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의 '오늘'을 살리라. 누군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오늘을 내가 당당히 살고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매일 나를 세뇌시키는 까닭이다.수필가 박시윤 수필가

2018-06-18 11:32:57

김일광 작가

[에세이 산책] 친구의 말맛

그저께까지 들녘에는 보리가 서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모들이 논을 채우고 있다. 오뉴월 들녘은 마술을 보는 것 같다. 카드를 펼쳐 보이던 마술사가 손바닥을 펴들면 한순간에 카드는 사라지고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장면이랄까. 보리밭이 순식간에 무논이 되었다가 어느 순간 초록 벼들이 줄을 맞추고 섰다. 부지런한 농부가 만들어내는 마술이다. 호미곶에는 이장을 하는 친구가 있다. 마술사 같은 농부다. 마을 일을 다 하면서 논농사, 밭농사는 물론 염소 농장까지 거뜬하게 처리해 내고 있다. 봄부터 초여름까지는 무척 바쁜 시기이다. 논두렁에 세워둔 지팡이까지 용을 쓴다는 농번기인 셈이다. 농사일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나는 이때만큼은 그 친구의 농장으로 가지 않는다. 처음에는 일손을 도우려고 마음먹기도 했지만 오히려 일거리를 만들 것만 같았다. 그래서 들에 보리가 사라지고, 논마다 물이 들어오고 이앙기가 부지런히 모내기를 끝낼 때까지 진득이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다른 데 정신을 팔다 보니 벌써 빈 논이 보이지 않았다. 내일쯤 전화를 해보아야지 하고 있는데 친구가 먼저 전화를 했다. 저녁 무렵, 삼정 관풍대가 보이는 바닷가에서 만났다. 바람을 볼 수 있다는 섬, 그 관풍대를 보며 마주 앉았다. 친구가 대뜸 물었다. "밭에 뭘 좀 심었나?" 내 텃밭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우리 부부가 먹을 만큼 딱 그만큼 심었어." "거름은 넣었어?" "조금 넣었어." "거름 없으면 가져다줄게." "아니 있어." "거름은 적당히 넣어야 해. 크게 키우려는 욕심에 지나치게 많이 넣으면 채소가 제 맛을 잃게 돼. 적당한 것이 제일 좋아."우리가 만나자마자 나눈 이야기이다. 그런데 지금껏 친구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곰곰이 되짚어보면 늘 그 친구가 내게 뭘 주겠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그 친구에 무엇을 나누겠다는 말은 별로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야채며, 고추며, 처음 이사 왔을 때는 햅쌀까지 싣고 왔다. 농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늘 넉넉한 친구다. 오늘은 거름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나치면 그 작물 고유의 맛을 잃는다고 경고하였다. 그 말을 놓칠세라 내가 한마디 붙였다. "거름이 지나치면 야채 맛을 잃는다고? 사람도 지나치게 부요하면 사람 맛을 잃는 게 아닐까?" 그 친구가 말을 받았다. "내 말이 그 말 아이가." 강사리 농부인 친구의 말맛이 달다. 말의 빛깔을 순식간에 바꾸어 버리는 마술사다. 슬쩍슬쩍 다가오는 밤바다가 맞장구를 쳤다. 김일광 동화작가

2018-06-11 11:52:56

박시윤

[에세이 산책] 아, 유학산 

산하가 푸르다. 꽃 진 자리가 푸르고, 들녘을 지나는 바람도,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도 푸르다. 동서남북 근원을 알 수 없는 바람이 가뿐히 능선을 내려와 골짜기 스치고, 청년의 이마를 스치고, 어느 즈음에 걸려 있는 태극기를 스친다. 창공에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일 때, 비로소 이 땅의 6월은 시작된다. 6월은 그런 달이다. 푸르러서 눈이 부시고, 푸르러서 슬픈 계절이다. 6월의 산하를 대하노라면 사방 천지에 이름들이 나부끼고, 이름들 사이로 무명의 까마득한 얼굴들이 스치운다. 그것은 꼭 가사 없는 노래 같기도 하고, 그것은 꼭 슬픔을 억누르는 통곡 같기도 해서 귀를 열면 온 산하가 슬픔으로 출렁이는 것만 같다. 아무도 만날 수 없는 곳, 그러나 무수히 많은 무명들의 영혼이 살아있어서 이 땅에 자유가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곳, 피아(彼我)의 구분이 명확했던 과거와 피아의 경계가 서서히 허물어지는 현재가 공존하는 곳.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유학산 일대는 대구를 방어하는 낙동강 전선의 마지막 보루였다. 목숨을 담보한 탈환전이 밤낮으로 펼쳐졌던 328고지는 12일간 정상의 주인이 15번이나 바뀌었고, 837고지는 최대의 격전지였던 만큼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 혈전장 속에 무려 2만7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나 수습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68년이 흐른 오늘, 유학산은 풀과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울창한 숲을 이루었으니, 이 숲을 누가 감히 무시로 생겨났다 하겠는가. 산화한 몸뚱어리들이 먹이고 키워낸 호국의 숲이리라. 674'793'837'939고지, 숲데미산과 328고지는 온전히 살아남아 말이 없고, 이따금씩 창공을 자유로이 비상하던 새가 낙동강을 건너와 상투바위와 쉰질바위에서 노닌다. 이쪽과 저쪽을 경계하지 않는 새들. 이 산하의 슬픔을 모를 것이다. 6월이면 나는 유학산 능선에 올라 무명에게 말을 건넨다. '똑똑똑, 잘 계셨나요? 늦게 와서 죄송해요. 적막한 이 숲에서 외롭지 않으셨나요? 쏴아아아- 바람이 당신을 깨우네요. 가만히 눈을 감으니 속삭이는 말이 들려요. 무심히 무심히 흐르는 세월, 당신 긴 잠 안녕히 주무셨어요? 당신만큼 푸르른 6월입니다. 여기는 당신의 나라예요. 이토록 푸른 당신의 나라에서 우리는 지금, 마음껏 자유를 누립니다. 잊지 않을게요. 푸른 이름의 당신을.' 유해를 발굴하던 나무 아래서 무명의 유품들이, 그리고 발가락뼈 하나가 소리 없이 걸어 나와 화답하였다.수필가 박시윤 수필가

2018-06-04 10:04:42

김일광

[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나무를 보며

어제는 차가운 바람이 그렇게 불더니 오늘은 잠잠해지면서 햇살이 따갑다. 곧 유월이 오고 여름이건만 며칠 사이에 겨울과 여름을 한꺼번에 겪은 느낌이다. 텃밭에 풋것을 키워 보겠다고 서둘러 심은 모종들이 난데없는 냉해로 많이 쓰러졌다. 그런 쌀쌀함 속에서도 나무들은 초록 기운을 끌어모으더니 기어이 잎을 키우고 꽃을 피웠다. 대견스럽다.찬찬히 집 주위를 둘러보았다. 울타리처럼 심었던 쥐똥나무, 곰솔, 만리향, 자귀나무, 줄장미. 그들은 온몸으로 바람을 막으며 텃밭에다 갓 심은 여린 작물, 그 생명들을 지켜 주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 나무들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텃밭에 있는 고추, 상추, 토마토, 오이 등등, 우리 입에 들어가는 작물만을 애지중지했다. 그런데 이번에 바람 치는 날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울타리에 심어놓은 나무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들 덕분에 사계절 채소를 맛볼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우리 곁에는 저마다 이름 하나씩 달고 제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도 이 땅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면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그런데 지금껏 나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으레 그 자리나 지키는 존재쯤으로 인식했다. 함부로 대해도 상관없는 무심한 물체로 대했는지도 모른다.마오리족은 아이가 태어나면 탯줄을 깨끗한 곳에 묻고 그 위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고 한다. 그 나무를 아이 생명의 표징으로 삼고 그 자리를 신성하게 다루었다. 나무가 무성하게 잘 자라면 아이도 무럭무럭 성장하고, 나무가 고사하면 아이에게도 불행이 닥친다고 믿었다. 나무와 인간 사이에 일종의 연대감을 형성하였다.이런 전설이나 풍습은 우리에게도 상당히 많다. 단군이 신단수 아래에다 신시를 열었다는 신화가 있다. 또 마을마다 노거수인 당수나무가 있었다. 나무를 중심으로 주민들은 마음을 모을 수 있었으며, 인간의 그 마음이 하늘과 맞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자신들의 삶을 나무라는 존재를 통하여 하늘에 기대왔다. 이러한 생각이 오늘날에 이르러 자꾸만 사라지고 있다. 나무를 우리 인간과 함께 살아가야 할 존귀한 생명체 혹은 메신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나무를 함부로 베어내고, 불태우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고 있다. 그렇게 변화된 인간의 마음들이 나무뿐만 아니라 인간 생명까지도 가볍게 여기게 된 것은 아닐까.평화보다는 전쟁을, 화해보다 갈등이 빚어내는 뉴스가 넘쳐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생명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나무들이 새삼스럽게 커 보인다.동화작가김일광 동화작가

2018-05-28 10:26:22

박시윤 수필가

[박시윤의 에세이 산책] 집

가로등이 켜지지 않은 골목 초입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떠안은 골목 속에서 하루는 말없이 저문다. 길모퉁이에 집결된 쓰레기 더미에서 숨죽이며 먹잇감을 찾는 도둑고양이처럼, 나는 소리 없는 걸음으로 집으로 간다. 막노동과 시장판에서 하루 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고, 기초수급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노령의 어르신들이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는 이 골목은 도심에서 소외된 지 오래인 듯하다. 무너지지 못해 마지막까지 뼈대를 곧추세운 집들이 하나, 둘 비워지고 있다. 수년 전부터 재개발 바람이 불었고 부동산업자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언제부턴가 미등조차 켜지지 않는 집들이 늘었다. 왁자했던 골목은 한낮에도 서늘한 바람이 불었고 유난히 어둠이 빨리 내렸다. 시대를 같이했던 큰길 건너 집들은 말끔히 사라지고, 다음은 우리 차례가 될 것이라며 골목 사람들은 말한다. 드물게 서 있는 가로등 아래 올해로 구순을 맞은 할머니가 서 계신다. 빈속에 급히 먹은 찬밥 덩이가 당최 내려가지 않는다며 나를 불러 세우신다. 나는 얼른 대로변에 있는 약국으로 달려가 소화제를 산다. 약을 받아든 할머니는 잠시만 들렀다 가라며 나를 집 안으로 이끄신다. 소화제는 구석에 밀쳐두고 삐거덕대는 서랍을 열어 오래된 공책 하나를 꺼내 펼치신다. '미국석이' 외국에 나가 있는 작은아들네에 전화를 넣어달라는 뜻이다. 할머니는 글을 모르신다. 그러나 이 땅과 저 먼 땅의 시차는 젊은 나보다 더 잘 꿰고 계시며, 그곳으로 보내는 된장'고추장의 항공료가 ㎏당 얼마나 나가는지도 훤히 꿰고 계신다. 할머니 집은 낡고 오래되어 불편하기 그지없다. 며칠째 고장이 나 작동하지 않는 보일러를 탓하며 일삼아 아랫목을 만지작거리신다. 한국전쟁 이후 몇 가구가 한데 모여 살 만큼 너른 마당을 가졌었다는 할머니의 집은 세월이 흐르면서 동과 서로, 남과 북으로 쪼개지고 쪼개져 지금은 겨우 열 평 남짓 남겨졌다. 집은 사람을 닮고, 사람은 집을 닮아서, 살 만큼 살고 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기 마련이리라. 집이 사라진 곳에 누군가가 들어와 또 자신을 닮은 집을 지을 것이고, 오래오래 주인이 되어 제 몸 누이고 서로가 서로를 닮아 갈 것이다. 한참 통화를 끝낸 후에야 할머니의 안색이 환해지신다. "할머니, 집이 많이 차요." 아무리 누추해 보여도 내 집만큼 편한 곳도 없다며 꽃무늬가 수놓인 요대기 위에 몸을 누이신다. 오늘밤은 바람이 아무리 요란하게 불어도 구순의 할머니 깊은 잠 주무실 수 있겠다. 박시윤 수필가

2018-05-22 00:05:01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참 아름답다

지난 주말, 조선의 마지막 유의(儒醫) '석곡 이규준' 선생의 묘소를 찾아갔다. 산을 오르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는 유언으로 '내 삶에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세 가지가 있었다. 가난하였고, 스승이 없었고, 조선 말에 태어난 것이었다'는 말을 남겼다. 그 말에는 참으로 놀라운 역설이 담겨 있다. 가난하였기에 가난한 백성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과 함께할 수 있었으며, 스승이 없었기에 학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공자의 가르침에 다가갈 수 있었다. 조선 말에 태어났기 때문에 사문난적으로 몰렸지만 무난히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석곡 선생은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살았다. 당시 선비라고 하면 누구나 그러했듯이 과거를 준비하던 그는 갑오경장으로 공부하는 목표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오히려 공자의 진정한 가르침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비로소 조선 500년이 사대부들만 있고 백성이 없는 나라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석곡은 자신이 닦은 공부를 백성을 위하여 내어놓았다.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백성들을 지키는 게 나라를 지키는 것임을 알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백성을 깨우치고 스스로 익힌 의술로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주자학이 사대부들만을 위하여 어렵고 까다롭게 변화된 것을 알고는 과감하게 수정을 하였다. 새로운 해석을 한 게 아니라 백성 중심, 공자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뜻이었다. 이런 그의 생각은 서구에서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 사람 중심, 그리스, 로마로 돌아가자던 르네상스 정신과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석곡은 스스로 한 일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에 관한 글을 모아두지 않고 대부분 없애버렸다'고 할 만큼 개인사에 대한 것은 모두 없앴다. 이 정신을 따라 산 제자 무위당은 평생을 스승의 '의감중마'와 '황제내경 소문대요'만을 강의하였다. 스스로는 철저히 감추었다. 무위당 역시 자신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였다. 그가 숨을 거두자 제자들은 그의 유언대로 화장하여 스승인 석곡의 무덤 아래에 산골하였다. 그는 무덤조차 남기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무엇을 남기는 데 급급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가난한 백성과 함께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아름답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들은 일갈하고 있다. 참 가치 있는 것은 담담하게 이웃들 속으로 자신을 녹여가는 것이라고. 그들은 그렇게 살다 갔다. 그래서 참 아름답다. 김일광 동화작가

2018-05-15 00:05:00

박시윤 수필가

[박시윤의 에세이 산책]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열 발자국쯤 떨어진 곳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나는 아주 천천히 걸어 나무 아래로 갑니다. 아직은 덜 자라 무성하지 않은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불 때마다 햇살이 새어 듭니다. 이 나무도 언젠가는 세상을 견디고 이기며 넓은 그늘을 키울 테지요. K병원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나는 지금 아버지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아버지의 호흡이 가빠지신 건 불과 몇 달 전부터입니다. 나이를 먹어 그렇다는 말씀에, 나이를 먹어보지 않은 자식들은 그저 그러려니 했지요. 낯빛이 검어지고 얼굴이 붓는 것도, 걸음이 사뭇 더뎌지던 것도 그저 그러려니 했지요. 자식이 넷이나 되고 손주가 아홉인데도 아버지의 노년은 '그저 그러려니'로 여겨졌습니다.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낮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리나케 나가 보니 저 멀리 신작로를 걸어가는 아버지가 아지랑이 너머 아른거렸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던 아버지, 나는 털썩 주저앉아 목청껏 울고 말았지요. 울음소리를 들으신 아버지는 가던 길 멈추고 돌아오셔서 나를 달래셨습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를 따라 동경하고 갈망했던 도시 구경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화려한 불빛, 즐비했던 상점들…. 아버지는 처음으로 내게 화려한 도시문명과의 만남을 주선한 분이셨지요. 조잘대며 아버지를 따라나서던 내 보폭이 커지고, 나는 그때의 나만 한 자식을 키우느라 아버지와 적당히 어색해졌습니다. 아버지 걸음이 이상하리만큼 늦어졌을 때, 나는 내 뒤에서 걷던 아버지보다 내 손을 잡고 걷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더 썼던 것도 사실입니다. 주치의와 면담을 끝내고 충혈된 눈으로 돌아와 능청스러운 거짓말로 아버지의 상태를 둘러대던 나를, 아버지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자꾸 반기십니다. 나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창문 너머 느티나무만 바라봅니다. 아버지를 문병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구석진 어디에서든 아버지가 생각나면 울었습니다. 목 놓아 울 수도 없는 슬픔이 심연 깊은 곳에서 맴돌아 숨이 막힙니다. 느티나무 그늘은 어제보다 더 두꺼워지고, 아버지의 그늘은 아직도 평온하여 자꾸 나른한 잠이 쏟아집니다. 때늦은 송홧가루가 날리고, 등나무 꽃향기와 아카시아 향기도 지천으로 흩어집니다. 신작로 걸어가시던 아버지 모습이 내 망막 속에서 오래오래 아른거립니다. 바람이 모질게 부는데 벌써 저만치 앞서가는 아버지의 오늘을 나는 따라갈 수가 없네요. 아, 아버지의 하루가 너무 빨라 큰일입니다. 박시윤 수필가

2018-05-08 00:05:04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길 떠나기

며칠 전, 책을 한 권 펴냈다. 늘 그래 왔지만 잘 읽었다는 인사와 함께 뒤따라오는 게 '등장인물이 실제냐'는 물음이다. 그걸 나무랄 수도 없는 것이 전체적인 이야기로 보자면 허구이지만 등장인물은 실제로 혹은 환상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시골길, 바닷가, 죽도시장에서 많은 이웃들을 만난다. 그들은 어떤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운지를 직접 들려준다. 그 이야기 중에서 나 혼자만 알고 넘길 수 없었던 것에 글이라는 옷을 입혔을 따름이다. 밭 자락에 뒹굴던 돌덩이가 국보로 된 냉수리 신라고비, 도로 공사 중에 알게 된 중성리 신라비, 이는 보물이 보물로 밝혀지기 전에도 우리 곁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과 평가가 인색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오늘을 만든 이는 가족과 이웃이고, 지역사회의 하늘과 땅, 자연, 전통이건만 우리는 이를 하찮게 여기며 살고 있다. 지역 사람보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대단하게 여긴다. 독일 여행을 하면서 유럽 동화의 뿌리 중 하나인 그림형제 동화의 진실을 보았다. 그림형제는 자신의 지역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수집하여 한 문장도 고치지 않고 책으로 펴냈다. 그 이야기 속에는 바로 그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흩어져 있던 이야기를 엮음으로써 독일인의 정체성을 밝힐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우리 고장 이야기를 찾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이야기들이 아직까지 가늘게나마 숨을 쉬고 있었다. 호미곶에서 어떤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는 20년 넘게 내 가슴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장기목장에 뛰어놀던 군마, 일본군이 강제로 300여 필을 끌고 갔다는, 호미곶 등대를 준공하는 날 무적(등대나 선박이 충돌을 피하기 위해 갖춘 소리를 내는 장비)에 놀란 말들이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고금산에 쇠말뚝을 박을 때 붉은 피가 흘러넘쳤다는 이야기는 잊을 수가 없었다. 우리 고장에 있었던 아픈 역사이며, 우리 할아버지들의 눈물이었다. 묵혀둘 수 없어서 글로 옮긴 게 '마지막 군마'였다. 내 어릴 때만 하여도 학산 어판장에는 고래가 종종 올라왔다. 그런 기억 때문일까. 지금도 바다에 서면 수평선에 고래가 올라설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런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길은 늘 행복하다. 나는 요즘도 멍 때리듯 길을 나선다. 형산강, 폐사지, 고갯길, 죽도시장, 시골 마을을 찾아간다. 그곳에는 아직도 나를 기다리는 이야기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광 동화작가

2018-05-01 00:05:00

박시윤 수필가

[박시윤의 에세이 산책] 밥은 먹고 삽시다

문득, 어머니가 해 주시던 밥이 생각난다. 그 밥이 그 밥이겠거니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바쁜 일상에서 주어지는 밥은 낯설다. 먹는 둥 마는 둥, 밥이 목구멍으로 다 넘어가기도 전에 숟가락을 놓아야 할 때가 있다. 긴장하지 않으면 제 몫조차도 챙길 수 없는 치열한 세상에서 밥은, 쉽게 뒷전으로 밀려나곤 한다. 그러면서도 생의 본질은 먹고사는 데에 있어 언제 먹었느냐는 듯 또 허기가 지곤 한다. 어렸을 적, 칼바람이 재래식 문틈을 비집고 들어올 때면 나는 으레 부엌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엄마, 배고파 죽겠어."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던 시절, 어머니는 사뭇 조금만 기다리라며 나를 다독이셨다. 내가 장난삼아 던져 넣던 잔솔잎에 화르르 불이 오를 때면 어머니는 급히 지은 밥은 맛이 적다며 불쏘시개로 가마솥 아래 화기를 삭히느라 애를 먹곤 하셨다. '그 밥이 그 밥이지, 밥이 무슨 맛이 있어?' 어린 나는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옅은 온기마저도 가마솥으로 스며들고 나면 그제야 어머니는 밥을 푸셨다. 고봉으로 눌러 담은 고봉밥에 가족들은 힘차게 숟가락을 내리꽂았다. 기쁘게 감당했던 우리들의 몫, 정직하게 하루를 지켜낸 믿음과 신뢰의 대가였고, 내일 또한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약속하는 말 없는 다짐과도 같았다. 어떠한 어려움을 만나든 좌절하지 말고 살아가라는 어머니의 당부 같은 것이 서려 있는 듯도 했다. 제 몫을 다 비우고서도 입맛을 다시는 막내의 그릇에 차용증서도 없이 한 주걱의 밥이 덤으로 채워진다. 분명, 그것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올록볼록 터질 듯 오물거리는 어린 자식의 밥 먹는 모습에서 어머니는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원금과 이자 계산도 없이 한 줌 누룽지까지 죄다 긁어 자식들의 손에 쥐여 주시고서도 당신은 허기지지 않으셨을까. 해가 이슥해진 퇴근길에 전화버튼을 누른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머니와의 인사는 밥에 머물러 있다. "엄마, 배고파 죽겠어." 새파랗게 젊디젊은 딸의 말에 "밥 거르지 말고 다니거래이-" 하신다. 벌어먹고 사느라 고생한다며 걱정부터 앞세우는 어머니의 위로는 늘 나를 달랜다. 삶은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밥을 하듯 은근히 뜸을 지우며 참고 인내하며 사는 것이라는 어머니의 철학이 욕심 많은 나를 위로한다. 오늘은 어머니의 밥을 흉내 내 본다. 나는 요즘 어머니의 밥을 닮아가려고 애쓴다. 밥에는 밥을 한 사람의 냄새가 서려 있고, 밥을 한 사람의 빛깔과 정서가 스며 있다. 정성과 염원을 담고 탱글탱글한 밥알로 부풀려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내를 감수해야만 한 그릇의 고봉밥이 될 수 있을까. 삶에서 가장 간단명료하게 자리 잡은 밥은, 무미건조하게 말라가는 세월의 낱알들이 모여 질펀하게 불고 붙어 다시 일어서는 용기의 한 그릇 밥 힘이 되는 것이리라. 늦은 귀가에 종일 바빠서 밥도 못 먹었다는 남편에게 얘기하고 싶다. "너무 애쓰지 말아요. 밥만 먹고 살면 돼요. 박시윤 수필가

2018-04-24 00:05:01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이야기가 사는 길

자주 걷는 편이다. 하루에 만 보를 걷자며 다짐하고 있다. 걷기 좋은 곳이 주변에 참 많다. 집을 나서서 포항운하를 왕복하고 나면 약 8천 보가 된다. 좀 변화를 주고 싶은 날은 바닷길을 따라 걷다가 송도 솔밭으로 들어간다. 도시 숲 조성공사를 마친 뒤에 제법 볼거리까지 곁들여져 있다. 폐철도 부지에 만든 도시 숲길은 또 다른 맛이 있다. 덕수공원 입구에서 작은 굴까지 이어지는 길은 소풍 다녔던 옛 생각을 나게 한다. 요즘은 한 번씩 효자역으로 가서 대잠네거리까지 걸어본다. 덤으로 불의 정원도 볼만하다. 마음을 먹고 하루를 내면 청림에서 출발하는 호미곶 둘레길도 일품이다. 그동안 숨겨놓았던 해안 벼랑의 보석 같은 모습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녹색 생태도시를 꿈꾸는 포항시의 '그린 웨이' 조성사업은 시민들의 삶에 닿을 만큼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걷는 길들이 봄을 맞아 싱그럽기만 하다. 현재 포항의 도심 자리는 원래 물길이 만든 땅이었다. 형산강이 바다를 만나면서 섬을 만들었고, 물길을 따라온 사람들이 땅을 일구며 살기 시작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물풀 사이를 달리고, 샛강을 건너뛰었다. 그들의 걸음이 쌓이고 쌓여서 푸른 길이 되었다. 그저 걷기만 한 게 아니라 만나는 사물과 수없는 대화를 하고 나름의 이름도 붙였을 것이며. 때로는 이야기를 만들어 함께 나누었을 것이다. 산책을 할 때면 문득문득 그곳에서 오롯이 살았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형산강 둑길을 걸으면 연일 외가를 오가던 잠수교가 그려진다. 남부경찰서, 그 곁에는 구강이라는 이름의 제법 큰 못이 있다. 샛강이 흐름을 멈추어 둠벙이 된 곳이었다. 못 가에는 키 큰 미루나무가 울타리처럼 줄을 서 있었다. 둠벙에는 쇠물닭과 개개비가 물풀 줄기를 엮어 집을 지었다. 봄철 산란기가 되면 가물치와 메기가 물풀에 몸을 비벼댔다. 아이들 사이에는 그 못에는 지킴이가 있다느니, 달 밝은 밤에 못 가로 기어 나온 것을 보았다느니 조금은 오싹하면서도 흥미를 더해주는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다. 포항운하를 걸을 때면 항상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포항운하 자리에 있었던 딴봉에는 심술꾸러기 장사가 살았다고 한다. 늘 약한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하루는 형산강에서 낚시를 하다가 늪에 살고 있던 지킴이에게 혼쭐이 난 뒤에 그 못된 버릇을 고쳤다고 하였다. 형산강, 섬 안 곳곳에는 이런 이야기가 강물처럼 흘렀다. 새를 쫓으며, 물고기를 잡으며, 소금을 고며 부르던 노래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이야기와 노래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포항운하로 막혔던 물길이 돌아왔다. '그린 웨이'사업으로 숲길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이 아쉽다. 함께 살았던 이야기와 노래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도시 숲길을 걷는다. 시민과 자연을 잇는 그린 웨이를 걷는다. 그 길 위에서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 김일광 동화작가

2018-04-17 00:05:00

박시윤 수필가

[박시윤의 에세이 산책] 봄이 진다

꽃이 날린다. 봄볕 깊숙이 스민 한낮을 지나, 봄밤은 또 그렇게 여러 날을 무르익었다. 조밀해진 봄날들이 모여 절정을 이루고, 절정을 견딘 나무들은 스스로를 흔들어 무거워진 몸을 턴다. 어둠 속에서도 봄은 짙었다. 꽃이어서 봄인 것보다 향기여서 봄이었다. 묽은 어둠이 깔릴 때면 종종 먼 곳을 내다보곤 했다. 멀어서 또렷하지 않은 풍경들 사이로 봄은 소리 없이 잠식했다. 서서히 풍경들이 지워지면 미세한 우울이 찾아오곤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남은 풍경 그 어디 즈음에선가 근원을 알 수 없는 향기가 날아오곤 했다. 어느 계절이었던가. 번잡한 거리를 피해 은둔의 길을 찾아 걷곤 했다. 목적할 곳도 없이 흩날리는 꽃잎을 따라 이방인처럼 무작정 걸었다. 고층 아파트 뒤편엔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곳엔 항상 그늘이 져 있었다. 나는 온종일 미열에 시달리다 집들 사이로 난 좁다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막다른 골목 끄트머리에 오래된 집이 한 채 있었다. 왕왕대던 벌 소리, 따뜻한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그 집 마당엔 이내 한가득 꽃이 피었다. 굳게 잠긴 대문과 오랜 시간 비워진 듯 높은 담장엔 희끗희끗하게 말라버린 이끼의 흔적이 짙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대문은 열릴 줄 모르고, 오래된 문패 앞에서 나는 쓰러져가는 가옥의 기억들을 더듬는다. 낡은 문패를 읽거나 담장 너머로 잘 휘어진 나무를 볼 때면 으레 집의 연(年)수나 집주인의 나이를 짐작하곤 한다. '회색빛 벽돌로 정성껏 쌓아올린 걸 보면 분명 일흔을 훌쩍 넘은 선한 노부부가 살았을 거야. 오늘처럼 볕이 좋은 날이면 2층 옥탑방 창문에선 노부부의 딸이 선한 눈빛으로 수없이 시를 읊었을 거야. 그 딸은 어느새 나만큼 나이를 먹었을 것이고 여전히 선한 눈빛으로 세상을 노래하는 시를 쓸 거야.' 봄밤의 기억이 다 가시기 전에 나무들은 스스로 봄을 벗는다. 매화가 피고 지고, 목련이 피고 지고, 명자나무 꽃이 피고 지는 곳. 좁다란 화단엔 수없이 꽃들이 피고 지는데, 어이하여 잠긴 문은 오늘도 열릴 줄 모르는 것일까. 작년에 열린 석류가 돌덩이처럼 새까맣게 말라 온 봄을 서성이고 있다. 꽃은 온 밤을 향기로 들쑤시고 나는 오래도록 봄 몸살에 잠을 뒤척인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라. 썰렁한 방에 덩그러니 누워 스스로를 감금했던 내 지난날의 시간들이 가엾어라. 만개한 꽃에 동하여 온몸 흔들어 꽃을 터는 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라. 봄은 떠난 것들이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라 했건만 떠난 인연 돌아올 줄 모르네. 인기척 없이도 어지럽게 들러붙은 담쟁이에 잎이 돋고, 어디서 흩날리는지 벚꽃 잎 날아와 문을 두드리네. 떠나는 것에는 이유가 있어도 남겨진 것에는 이유가 없는 것일까. 소원해진 인연을 아직도 기다리기라도 하듯, 버려지지 않기 위해 더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저 꽃들 가엾어라.' 뚝뚝 떨어진 명자나무 꽃 위로 비가 내린다. 시린 얼굴 위로 꽃잎 떨어진다. 꼭 잠긴 채 아직도 열릴 줄 모르는 내 어두운 심연 속으로 봄이 진다. 봄은 머물지 않아서 봄이다. 박시윤 수필가

2018-04-10 00:05:00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이야기꽃

온통 벚꽃이다. 요즘 날씨는 하루 중에 겨울, 봄, 여름이 뒤엉킨 듯 감을 잡을 수 없다. 거기에 미세먼지까지. 그런데 용케도 벚나무는 자신의 시간을 알아채고 꽃을 피웠다. 늦은 시각, 초인종이 울렸다. 이웃 마을 친한 부부가 문간에 서 있었다. 시골에서 가져온 국산 참기름을 나누려고 꽃길 산책 삼아 나왔단다. 한참을 걸어왔을 텐데 참기름만 건네주고 돌아섰다. 너무 늦었다며 쭈뼛대는 부부를 우리는 억지로 불러들였다.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지만 찻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아내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그 부인의 이야기에는 늘 향기가 난다고 했다. 나는 뜨악한 눈으로 아내와 앞에 앉은 부부를 번갈아 보았다. 아내는 다시 가만히 들어보라며 '향기'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듣고 있던 그 부인이 당치도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다가 이야기는 남편들 성격으로 옮겨갔다. 우리 둘은 용띠 동갑이었다. 급기야 우리 두 사람 때문에 모든 용띠들이 고지식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말끝에 그 부인이 처음 꺼낸다며 지나간 이야기 하나를 털어놓았다. 용띠인 그 집 남편은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큰 집을 짓고 싶어 했단다. 회사에서 퇴직금 중간정산을 계기로 아내와 아이들을 여인숙으로 옮기고 새집을 지었다. 아내를 위하여 주방도 크게 만들고 바닥은 대리석으로 깔았다. 두 아이의 방도 각각 독립 공간을 만드는 등, 그야말로 우뚝하게 솟은 이층집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아내는 큰 집을 관리하는 게 너무나 벅찼다. 이곳저곳 신경 쓰다 보면 하루가 지나갔다. 번듯한 집에서 삶의 여유를 즐기는 게 아니라 큰 집에 치이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밤에 도둑까지 들어왔다. 번듯한 겉모양이 도둑을 불러들인 것이었다. 이를 겪은 아내는 그만 그 집이 싫어졌다. 집에 있으면 불안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불안의 정도가 점점 심해져서 결국 병을 얻고 말았다. 아내를 잃을 것만 같았던 남편은 큰 집의 미련을 버리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도망치듯 마련한 작은 집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단다. 아내가 안정을 찾기도 했지만 살다 보니 작은 집이 실용적임을 제대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여유를 얻은 부부는 지금껏 어려운 이들을 돕고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다. 용띠 남편은 아내에게 단잠을 되찾아준 작은 집과 그때 그 승용차를 26년째 바꾸지 않고 있단다. 모두들 큰 집으로, 신형 고급 승용차로 몰려가는 세상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특별하게 들렸다. 듣다 보니 아내 말처럼 그들의 이야기에서는 향기가 났다. 그들 삶의 모습이 산뜻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큰 집에 대한 욕구를 내려놓는 순간 그들에게 찾아온 안락이 그들의 삶을 향기롭게 만들고 있었다. 벚꽃을 닮은 이야기꽃, 웃음꽃 속에서 훌쩍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김일광 동화작가

2018-04-03 00:05:04

박시윤 수필가

[박시윤의 에세이 산책] 매화가 필 적에

"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불시일번한철골. 쟁득매화박비향) "뼈가 부러지는 듯한 추위를 겪지 않고서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겠는가?"- 당나라 황벽선사의 시 중에서 도산서원 앞마당에 매화가 피었다. 매화의 가지는 굵게 뻗쳐 나가 매우 감각적이면서도 기개가 있다. 꽃은 부드럽게 피어 자연스럽고 담담한 멋이 서려 있다. 퇴계 선생이 매화를 유독 좋아했다는 일화 때문인지, 매화를 보노라면 으레 퇴계 선생이 떠오른다. 엄동설한 눈 속을 뚫고 피는 매화의 고요하고도 강인한 이미지가 고고히 학문에만 정진하던 선생의 모습과 닮았다. 침묵과 고요를 깨뜨리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향기의 끝은 그야말로 가없다. 퇴계 선생의 글에는 온통 매화가 가득했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조선의 대유학자 퇴계 선생의 정신을 대변하는 꽃이 바로 매화다. 선생이 학문에 열정을 품었다는 도산서원의 마당에는 수그루의 매화나무가 있다. 옛 선비들은 '매화는 함부로 손대지 말 것이며, 함부로 논하지도 말라'고 했다. 아마도 추위를 이기고 잎을 여는 용기와, 잔바람에도 쉽게 잎을 떨쳐 내지 않는 모습이 곧은 선비정신과 닮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사람들은 매화를 두고 꺾이지 않는 절개와 영원불멸하는 지조라고 칭송했다. 여러 그루의 매화 중에서도 유독 퇴계매에 마음이 쏠린다. 선생과 한 여인의 아련하고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서려 있음이 까닭이다. 눈을 덮어쓰고도 꽃을 피운 매화가 450년 전의 사랑을 전해준다. 선생은 나이 마흔의 후반에 관기였던 두향을 만나 마음을 나눴다. 선생의 고고한 기품을 보고 사모하는 마음을 품게 된 두향은 몇 개월간의 짧은 사랑을 잊지 못했다. 떠나는 선생에게 두향은 매화 한 그루를 정표로 건네주었고 퇴계는 두향을 그리워하며 평생 매화나무에 정성을 쏟았다.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화를 투시했던 퇴계 선생은 평생 매화에 특별한 애착을 가졌으며, 백 편에 가까운 시를 써 '퇴계매화시첩'을 남겼다. 선생은 일흔을 앞둔 해에 눈을 감으면서도 "매화나무에 물을 주라"고 할 만큼 매화를 아꼈다.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문상 후 스무 해가 넘도록 수절하며 끝내 강선대에 몸을 던졌다. 멀어서 더 그립고 애틋한 두 사람의 사랑은 요란하거나 화려하지도 않았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는 지조와 절개를 보여주는 대표 꽃이 되었다. 여린 매화가 눈 속에서 꿋꿋이 버텨내는 모습에 눈물겨운 경외감이 인다. 매화는 일생을 추위 속에 살아도 제 향기를 팔지 않는 지조를 지키고 있다. 퇴계 선생과 두향의 사랑 이야기는 오늘날 사랑의 존엄함을 함부로 여기며,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사람들에게 잔잔하고도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눈을 감고 몸 깊숙이 향기를 들인다. 세월의 녹록함에도 변하지 않는 묵향처럼 까무룩 번지는 향은 흐트러진 마음까지 정갈하고 경건하게 모아 놓는다. 박시윤 수필가

2018-03-27 00:05:00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조금은 외로워도

'봄날이 오면 뭐 하노 그쟈, 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 ….' 1970년대 유행했던 최백호의 '그쟈'라는 가요 한 부분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맛깔스럽게 살린 노랫말이 정겨워서 그야말로 봄날이 오면 자주 흥얼거린다. 이른 아침, 마을 이장님이 텃밭에 넣으라며 거름을 가지고 왔다. 지나다니는 길에 거름이 부족하다며 늘 타박이더니 아예 거름을 들고 왔다. 농사 시기를 잘 모르기도 했지만 게으른 천성 탓에 늘 마을 어른들이 채근해야 일을 시작한다. 거름을 옮겨놓고 돌아서니 바람이 다르다. 며칠 전만 해도 찬바람이 무섭게 불었는데 볼에 스치는 바람이 솜털처럼 간지럽다. 그 바람이 집 밖으로 나가자며 잡아끄는 통에 호미곶 바닷길로 나갔다. 집에서 바다로 난 오솔길을 따라 3분이면 바다다. 해안을 따라 천천히 봄기운을 싣고 오는 바람과 함께 걸었다. 바다도 해바라기 하는 고양이처럼 고요하다. 봄날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더니 영해 표지점이 있는 그 길에는 엊그제까지만 해도 거의 지나는 사람이 없었다. 잘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바람이 거친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둘레길을 따라온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모두 낯설지 않다. 봄의 손짓을 마다하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리라. 고석초 짬, 갯바위에 이르자 할머니 몇 분이 장화를 신고 물에 엎드려 있었다. 갯바위에서 무엇을 뜯고 있었다. "할머니, 뭐하세요?"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일하는 분들을 성가시게 했다. 허리를 펴는데 이웃 해녀 할머니였다. "바람 쐬러 나왔구먼. 김도 따고, 톳도 따고, 미역도 건지지." 할머니 걸망 배가 벌써 불룩했다. "아직 물이 찰 텐데요." "아니야. 따뜻해. 어디 손 넣어 봐." 그 말에 나는 얼른 손을 물에 담가 보았다. 소름이 돋을 만큼 차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바다는 그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푸른 해초들을 길러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바닷물 위로 모자반 공기주머니가 낚시찌처럼 올라와 있었다. 해안 끝까지 걸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왔다. 텃밭을 둘러보고 있는데 잡초가 제법 자라 있었다. 뽑아내고 싶지 않았다. 그 녀석들도 봄 햇살을 만끽하며 제 나름 삶의 환희를 즐기게 하고 싶었다. 이웃 할머니들에게 또 타박을 들을 것만 같아서 혼자 풀썩 웃었다. 그때 일을 마치고 지나가던 해녀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이것 먹어 봐요. 향긋할 게야." 햇미역 한 줌을 건네주었다. 봄 바다 향기가 가슴 가득히 안겨왔다. '봄날이 오면 뭐 하노 그쟈.' 우리 모두는 세상일에 몰두하느라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연락도 잦지 않다. '그래도 우리 맘이 하나가 되어 암만 날이 가도 변하지 않으면 조금은 외로워도 괜찮타 그쟈.' 이렇게 마음 나누는 봄을 맞이할 수 있으니까. 김일광 동화작가

2018-03-20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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