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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보수의 아이콘

요즘 일부 언론에서는 거친 말로 정부를 비난하는 젊은 정치인들에게 '보수의 아이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이 말을 보수에 대한 오해와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적절한 어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保守)에 대해 사전에는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의는 합당하지 못한 데가 있다.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데 사전에 등재된 정의처럼 변화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대응하지 못한 것들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진짜 보수는 과거의 제도와 습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시대에 뒤떨어진 '수구'(守舊)와는 다른 것이다.예전에 경주 최부잣집의 이야기를 하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보수를 현실에 맞게 재정의하자면 '급격한 변동보다는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는 원리나 태도' 정도가 될 수 있다. 경주 최부잣집이 집안을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탐욕에 대한 경계, 공동체에 대한 책임 의식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새로운 것에 대한 포용력, 그리고 품격 있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보수주의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좀 더 벌자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거나,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며 일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를 외면하는 것은 올바른 보수주의자의 태도가 아니다. 현재 상황에 대해 일부 국회의원들이 '개판'이라고 하고, '독재'라고 거칠게 이야기하는 것이 진정성을 의심받는 이유는 일단 말의 품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말은 뉴스거리는 될 수 있지만 생산적이지는 못하다. 정부에 대한 비난은 경제 관료들보다 더 나은 지식과 통찰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보다 나은 대안을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그런 과정이 없는 말은 사회에 불필요한 논란만 만드는 것이다.사람들의 감정에 영합하는 말은 통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은 말로 감정을 배설하지 않는다. 자신이 전적으로 옳고 반대편이 전적으로 그르지 않는 이상 그 말들은 불쾌감을 유발하고, 공동체의 유대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대신 말 한마디를 무겁게 생각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나라가 개판이라면 국회의원으로서 잘못된 부분을 하나씩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진짜 보수의 아이콘이 되는 길이다.

2018-11-11 15:42:30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사투리를 쓴다는 것은

예전의 영화나 드라마들을 보면 주인공이나 많이 배운 사람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표준어를 사용한다. 반대로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이 배우지 못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다. 극에서 악당이나 감초 역할을 할 수는 있어도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다.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사투리는 의사소통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주인공을 비롯한 극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은 정확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표준어를 주로 쓰는 것이다. 거기에 표준어를 바른말 고운 말과 동일시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작용하면서 사투리와 표준어 중 어떤 말을 선택해서 사용하는가가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학술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표준어는 소쉬르가 이야기한 '랑그'에 가깝다. 랑그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추상적 규칙 체계로 개인차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랑그를 공유하고 있다면 의사소통은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반면 사람들의 입에서 실제로 나온 말인 '파롤'은 개인마다 음파가 다르고, 그 말이 사용된 시공간적 맥락이 있기 때문에 개인차가 있는 말이다. '각중에, 을기미, (옷이) 쫑기요, (모를) 머드리라' 이런 말들은 의사소통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으면 그 말을 실제로 사용했던 고향의 할배, 할매, 아재, 아지매들의 모습들이 떠오르고, 말에서 정감이 느껴진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솥뚜껑을 엎어서 소깝을 때면서 굽던 것은 '부추 전'이 아니라 '정구지 적'이라고 기억하는 것도 바로 사투리는 실제 사용된 말이기 때문이다. 사투리는 이처럼 매끈한 표준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정감들과 삶의 모습들이 담겨 있기 때문에 표준어보다 열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에는 래퍼가 되기 위해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하는 주인공 학수가 등장한다. 변산반도가 있는 전북 부안이 고향이지만 사람들에게 서울 출신이라고 하고 다닌다. 그에게 사투리는 외면하고 싶은 고향의 기억과 연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입원을 계기로 고향에 돌아가 불편하고 피하고 싶었던 기억들과 마주하지만 결국은 화해를 하게 된다. 그곳에서 자기도 모르게 사투리를 쓰는 학수에게 작가가 된 여자 친구 선미는 이야기를 한다. "사투리가 아직 남아 있다는 건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여." 그것은 마음속에 고향이 있고, 그리운 공동체가 있었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2018-11-04 15:53:12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수능 반입 금지 물품

법률이나 규정을 만들 때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안에 대해 일일이 기술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법률이나 규정을 만들 때는 예측 가능한 일들을 포함하기 위해 문구를 다듬고,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는 규정을 해석하여 적용한다. 예를 들어 다 허물어져 가는 다리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승용차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붙였는데 굴착기가 지나가다가 다리가 무너졌다고 하자. 굴착기 운전자는 팻말을 승용차가 아니면 출입 가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규정된 것 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은 '반대 해석'이라고 한다. 이런 해석이 나오는 것은 지자체에서 팻말을 붙인 취지를 분명히 하지 않고,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2년 전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하며 6개월 가까이 장외 투쟁을 벌였었다. 이때 쟁점은 한나라당에서는 개방형 이사를 추천할 수 있는 기관을 '학교운영위원회와 대학평의회 등'으로 규정하자는 것이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는 사학 재단이 어용 기관을 동원하지 못하도록 '등'을 붙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사소한 문제 같지만 '등'이 있다는 것은 앞에 제시한 것은 일종의 예시로 보는 것이고, '등'이 없으면 제시한 것만 해당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글자 하나에 해석이 크게 달라진다.올해 수능 수험생 유의사항 반입 금지 물품에 전자담배와 통신(블루투스) 기능이 있는 이어폰이 추가되었다. 원래의 규정에 휴대전화, 스마트 기기 '등'이 있기 때문에 추가된 규정은 예시를 추가한 것으로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굳이 추가함으로써 '규정에 없는 새로운 기기로 부정행위를 하는 것은 가능하다' '전자담배는 안 되지만 그냥 담배는 가능하다'는 반대 해석의 논란만 일으킨다.(학교는 금연 시설이고, 수능 중에는 학교 밖을 나가지 못하지만 정작 반입 금지 물품에 담배는 없다.) '부정행위의 소지가 있는 통신 기능이나 데이터 저장 기능이 있는 물품'이라고 간단하게 제시하고 예시를 들었으면 훨씬 더 쉽게 적용할 수 있는데 말이다.수능을 공정하게 치르기 위해서는 부정행위를 방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담배나 라이터와 같이 화재를 유발할 수 있는 물품, 흉기로 사용될 수 있는 물품, 시험에 방해가 되거나 안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화학 물질 등에 대한 금지 규정도 필요하다.

2018-10-28 14:46:35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상보 반의어

반의어는 서로 반대되거나 대립되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반의어는 어휘의 의미를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데 유용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두둑'이라는 말을 의미에 대해 '논이나 밭'에서 '흙을 쌓아 올려서' '주변보다 높은 부분'이라고 두둑이 될 수 있는 조건들을 정의하는 방법도 있지만, '고랑'의 반대말이라고 해도 간단하게 의미의 영역을 파악할 수 있다. 반의 관계는 보통 의미 요소들을 나누어 보았을 때 다른 모든 요소는 같고, 단 하나의 요소만 다른 경우에 성립한다. 처녀와 총각은 '결혼 적령기' '미혼'이라는 의미 요소는 같고 성별이라는 요소 하나만 다르기 때문에 반의 관계가 성립한다. 총각과 아저씨는 반의 관계가 될 수 있어도 처녀와 아저씨를 반의 관계로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반의어를 유형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상보 반의어, 등급 반의어, 관계 반의어로 나눈다. 등급 반의어는 '춥다-덥다'처럼 판단이 주관적이고 두 말 사이에 다양한 정도가 있을 수 있다. 관계 반의어는 앞에서 이야기한 '두둑-고랑' '오른쪽-왼쪽' '주다-받다'처럼 상대적인 관계에 의해 형성된다. 상보 반의어는 '처녀'와 '총각'처럼 공유하는 의미 영역이 없기 때문에 동시에 긍정하거나, 부정하면 모순이 일어나는 말이다. 처녀이면서 총각인 경우는 없고, 결혼 적령기에 있는 미혼 중 처녀도 아니고 총각도 아닌 경우는 없다. '죽다'와 '살다'의 경우를 보면 두 개가 동시에 성립할 수는 없지만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다.' '죽었지만 살아 있다.'와 같은 표현도 제법 쓰인다. 이 경우는 역설법이라고 하는 문학적 수사이다.어린 아이들이 반대말 놀이를 할 때 보면 "소고기의 반대말?" "돼지고기!"라고 답하는 경우가 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같은 상위 항목 안에 속하는 말로 반의 관계는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자기들이 아는 고기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밖에 없기 때문에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상보 반의어로 생각한다.(닭고기는 조리법이 달라서 다른 고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상보 반의어를 익히면서 반대, 대립을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세상에는 소고기도 있어야 하고, 돼지고기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상보'(相補)라는 말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완전하게 만들어 주는 관계를 말하는데, 아이들이 익힌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대표적인 상보 반의어는 남자와 여자이다. 둘은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세상을 완전하게 만들 '상보'의 관계이다.

2018-10-21 14:47:55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국어 문법의 위기

현재 중3들이 치를 2022년 대입 수능 개편안을 보면 국어는 현재 문학, 독서, 화법과 작문, 문법에서 출제되던 것을 문학, 독서는 필수로 하고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문법 부분만 출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책을 입안한 교육전문가들은 과목 선택권을 주면 학습 부담이 줄고, 깊게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점수보다 등수가 중요한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학습 부담이 줄어들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과목만 공부하는 요령만 늘어난다. 현재 수능에서 탐구 영역 중 경제, 물리Ⅱ, 화학Ⅱ는 선택하는 학생들이 1%밖에 안 된다. 이 과목들은 공부하기가 어렵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선택하기 때문에 상대평가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공과나 전자과를 간다면서 지구과학을 선택하고, 경제과를 간다면서 생활과 윤리, 사회문화를 선택한다. 이것은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학생들에게 그렇게 선택하도록 만든 것이다.현재 수능 국어에서 화법과 작문은 정답률이 80~90% 정도 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따로 공부를 하지 않는다. 원래 화법과 작문은 실습으로 평가해야 하는 과목이기 때문에 수능 형태의 객관식 문항으로 평가하기가 어렵다. 답의 근거를 객관적으로 제시하기 어려운 과목의 특성상 문제의 난도를 올리기도 어렵다. 변별력을 위해 난도를 높이려다 보면 화법과 작문 능력이 아니라 지문 독해 능력으로 변별이 된다. 반면 문법은 정답률이 50% 정도로 국어의 여러 영역 중 정답률이 가장 낮고 잘하는 학생들과 못하는 학생들의 차이가 크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알아 두어야 할 개념들이 많기 때문이다. 문법에 자신이 있는 학생들은 문법을 선택하겠지만, 잘하는 학생들이 몰리면 상대평가인 이상 점수에서 손해를 본다. 처음에는 문법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겠지만 상대적인 점수에서 손해를 보고 그것 때문에 대학 입시에 실패하는 사례들을 보게 되면 선택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수능에서 선택을 하지 않으면 학교에서도 수업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지금 이 칼럼에서 어떤 말이 적절한지에 대해 품사나 단어 분석법, 문장 성분에 대한 지식을 동원해서 이야기해도 40, 50대 독자들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한다. 국어 관련 전공을 안 했어도 고등학교 때 힘들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능 개편안이 시행되면 지금의 학생들은 더 많은 시간 국어를 공부하면서도 정작 우리말에 대한 지식은 없을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2018-10-14 14:50:02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날개 또는 수갑

윤흥길 작가의 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연작에는 '날개 또는 수갑'이라는 작품이 있다. EBS 수능 연계 교재에도 실려 있는 이 작품은 회사의 제복 착용 방침을 두고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1970년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사원들은 제복이 개성을 위축시키고 자유를 퇴보시킬 것이라며 회사의 방침에 반발하며 다방에서 대책 회의를 한다. 회사 잡역부로 있으면서 산업 재해로 팔이 잘린 소녀를 위해 회사와 싸우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권씨가 보기에 그들의 논의는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회사의 방침은 변함이 없고, 가장 강하게 반발했던 수습사원 우기환은 퇴사를 하고, 소극적으로 동조했던 이들은 제복을 수용한다. 반대편에 앞장섰던 민도식은 창업 기념일에 전 사원이 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게 된다.이 소설의 제목인 '날개 또는 수갑'에 대해 대부분의 교과서나 강의에서는 제복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옷이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날개가 될 수도 있지만, 수갑처럼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큰 문제가 없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진짜 '날개 또는 수갑'은 사람들의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소설에서는 두 종류의 말이 나온다. 소녀의 팔을 위해 싸우는 권씨의 말은 절실함이 있는 것이지만, 제복을 반대하기 위해 싸우는 이들의 말은 보이지 않는 정의를 이야기하는, 약간은 허세가 있는 말이다. 절실함이 있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억울한 이가 없도록 만드는 날개가 되지만, 허세가 있는 말은 자기가 한 말 때문에 스스로 부자유스러울 수밖에 없는 수갑이나 족쇄와 같은 것이 된다. 소설 속에서 민도식이 제복을 입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제복 때문에 퇴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은 모두 그가 했던 말 때문이다.우리 사회에서 억울한 이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말은 소신껏 이야기를 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훈계하는 말,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하는 대안 없는 반대의 말은 자신을 부자유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그런 말들은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수갑 혹은 족쇄로 작용해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다수의 사람들을 상대로 말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말이 입으로, 글로 세상에 나오는 순간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한 말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대구 능인고 교사

2018-10-07 14:47:48

민송기 대구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한국의 창세 신화

예전에 '신화의 세계' 편에서 몽당빗자루에 얽힌 가정의 신화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인간과 세계의 존재를 설명하는 창세 신화가 있다는 간단한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도 창세 신화가 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데, 그 이유가 우리나라의 창세 신화는 주로 서사 무가(巫歌)의 형태로 전해져 오기 때문일 것이다. 서사 무가는 무당들이 자기가 모시는 신들의 내력을 노래의 형태로 부른 것이다. 이야기를 전승할 수 있는 종교 집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역사나 국어 교과에서도 가르치지 않으니 낯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창세 신화로 가장 유명한 것은 함경도 함흥의 김쌍돌이라는 무녀가 구연한 것을 민속학자 손진태가 채록한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하늘과 땅이 분리되지 않았을 때 미륵이 태어난다. 하늘과 땅 사이에 틈이 생기자 미륵은 하늘을 솥뚜껑처럼 들고 땅의 네 귀퉁이에 구리 기둥을 세워 하늘과 땅을 만든다.그때는 해도 둘, 달도 둘이었는데, 달 하나로는 북두칠성, 남두칠성을 만들고, 해 하나로는 별들을 만들었다. 미륵이 불이 필요해 쥐에게 불을 만드는 방법을 물었는데, 쥐는 세상의 뒤주를 차지하는 것을 보장받고 불을 만드는 방법을 일러준다.미륵이 금쟁반과 은쟁반을 들고 하늘에 기원을 하니 하늘에서 각각 다섯 마리 벌레가 쟁반에 떨어진다. 금쟁반의 벌레는 남자가 되고, 은쟁반의 벌레는 여자가 되어 인간 세상을 이루게 된다. 미륵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있을 때, 석가가 나타나 자신의 세월이 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기를 제안한다. 두 번의 내기에서 모두 진 석가는 마지막으로 자는 동안에 무릎에 모란꽃을 피우는 내기를 하게 된다. 미륵이 자면서 무릎에 꽃을 피우자 석가는 먼저 깨어 그 꽃을 꺾어 자기 무릎에 꽂는 꼼수를 써서 이긴다.미륵은 석가에게 세월을 넘겨주면서 석가의 세월이 되면 집집마다 솟대가 서고 기생, 과부, 백정, 역적 등이 생겨나고 삼천 명의 중이 생겨날 것이라고 예언을 한다. 미륵의 예언은 실현되고 미륵은 세상에서 사라진다.이 이야기는 다른 무가에서 '소별왕 대별왕'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흥미로운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 태초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미륵도 기원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과 건국 신화처럼 신성한 이야기가 아니라 석가가 부정한 방법으로 세상을 지배한다는 점도 특이하다. 우리의 창세 신화는 신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전한 세계가 아니라 선과 악이 공존하는 불완전한 세계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2018-09-30 14:47:17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수능으로 보는 한국 대표 소설가

작년 수능 때 수능으로 본 한국 대표 시인들을 살펴본 적이 있었다. 그러면 같은 방법으로 본 한국의 대표 소설가는 누구일까? 수능만 보면 가장 많이 출제된 작가는 이문구로 '관촌수필'이 3회 출제되었고, 김유정, 박경리, 염상섭, 윤흥길, 채만식, 최인훈이 각 2회 출제가 되었다. 범위를 평가원 모의고사까지 넓혀 보면 염상섭은 '삼대'가 3회, '만세전'이 2회 총 5회 출제가 되었다. 그리고 김유정, 이문구, 이청준, 채만식, 최인훈이 3회로 그 뒤를 잇는다. 염상섭, 이청준, 최인훈이 많이 출제된 이유는 여러 번 출제가 되었어도 꼼꼼히 읽어 보면 새로운 부분이 보일 만큼 상징성이 강한 소재들을 사용하고, 이야기 자체도 인간의 본성이나 사회의 문제를 깊이 파고들고 있으며, 무겁고 약간은 난해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난도 조절뿐만 아니라 작가 개인의 문제로 인한 논란이 없는 점도 출제의 상황에서는 매우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된다. 이문구, 김유정, 채만식의 작품은 내용이 가볍고 유쾌하다. 그래서 시험지가 전체적으로 무겁고 우울한 내용이 많이 있을 때 분위기 전환용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문제를 푸는 학생은 그 가볍고 유쾌함을 즐기지 못할 수도 있지만. 2011년 수능부터는 EBS 연계를 하면서 주로 14종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을 위주로 출제되고 있다. 교과서에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이 실린 작가는 이청준으로 '서편제', '당신들의 천국' 등 10개의 작품이 12번 나온다. 채만식은 6개 작품이 16번 나오는데, 실린 횟수로는 가장 많다. 작품 수로는 박완서가 8개로 두 번째로 많다. 수능에는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신경숙, 오정희, 양귀자와 같은 여성 작가들과 김소진, 김학철, 이태준, 조세희도 각각 4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교과서에 가장 많이 실린 작품은 박경리 '토지'와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상 8번)이고, 그다음으로 이광수 '무정', 염상섭 '만세전', 채만식 '태평천하', 현진건 '고향'(이상 7번)이 많이 실려 있다. 교과서에는 문학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들 중에서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합한 작품들이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그런데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 중에 교육용으로 부적합한, 비윤리적 내용들이 담긴 작품들은 걸러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작품 목록은 일반인들의 상식과 조금 더 부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학력고사 세대들에게는 필독 작가였던 김동인이나 나도향의 작품이 의외로 교과서에 많이 보이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2018-09-16 15:50:03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천고마비(天高馬肥)

요 며칠간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파란 하늘이 보였다. 하늘이 파랗고 높아 보이는 것은 공기 중에 공기 이외의 입자들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가시광선이 아주 작은 공기 입자와 부딪히면 파장이 짧은 보라색이나 파란색 쪽이 더 많이 산란이 되기 때문에 푸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지루한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파란색 가시광선이 산란이 잘 되는 아주 맑은 가을날을 이야기할 때 흔히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아주 맑은 가을날을 이야기하려면 하늘이 높다는 뜻을 가진 '천고'만 이야기하면 될 텐데 말이 살찐다는 '마비'를 함께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여름에 잃었던 식욕이 돋으니까 말이 살찌듯 사람도 살이 찔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을 해서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예상과는 달리 천고마비는 원래 흉노족들과 접경하고 있었던 변방 중국인들의 공포를 이야기할 때 쓰던 말이었다. 흉노족들은 기마병이 주력 부대였기 때문에 말이 활동하기 좋은 시절에 집중적으로 중국 본토를 침략했었다. 가을날에는 날씨가 적당하기 때문에 말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고, 말들마다 적당히 살이 올라서 충분히 뛸 수 있는 체력도 비축해 둔 상태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이 왔다는 것은 흉노족들에게는 전쟁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는 것이고, 중국 변방 사람들에게는 힘겹고 고통스러운 시절이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천고마비와 연관이 있는 사자성어로 넓적다리에 살이 찐 것에 대한 탄식이라는 뜻의 '비육지탄'(髀肉之嘆)이라는 말이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가 말을 타고 전쟁을 나갈 때는 넓적다리에 살이 없었는데, 오랫동안 말을 타지 않아 넓적다리에 살이 찐 것을 보고 탄식했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유비의 탄식은 자기가 한 일이 없이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는 생각에서 온 탄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것이 제일 중요한 업적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아무튼 유비도 천고마비의 계절에 열심히 말 타고 전쟁을 했으면 살이 빠졌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흔히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독서와 연관을 많이 시킨다. 앉아서 독서를 하면 살이 찌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천고마비는 독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살이 찌는 것과는 더더욱 관련이 없다. 반대로 야외에서 활동하기에 적합한 계절이어서 살을 빼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2018-09-09 15:45:12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훈수(訓手)

여름날 그늘 아래 평상에서 어른들이 장기판을 벌이는 모습은 도시나 시골이나 할 것 없이 매우 익숙한 장면이다. 그럴 때 장기판 주변으로는 으레 구경꾼들이 둘러서기 마련이다. 구경꾼들은 고이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한마디씩을 한다. 이렇게 구경하던 사람이 끼어들어 수를 가르쳐 주는 것을 '훈수'라고 하는데, 대결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점잖은 조언이 아니라 이래라저래라 하는 정신 사나운 간섭으로 들린다. 그래서 가끔은 대결에서 지고 마음 상한 사람과 훈수꾼의 멱살잡이가 일어나기도 한다. 훈수를 두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대결의 외부에 있고, 승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이 없기 때문에 기발한 수를 내놓을 수도 있으며, 외부에서 대결을 바라보기 때문에 대결을 하는 사람보다 넓게 바라볼 수도 있다. 그래서 대결을 하는 사람이 위기에 빠져 있을 때 훈수꾼의 조언은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책임감이 없기 때문에 훈수꾼들의 소리는 요란하지만 실속이 없는 경우도 많다. 이번 아시안 게임 축구대표팀의 황의조 선수는 경기에 황의조 혼자만 보인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했었다. 그런데 황의조 선수를 와일드카드로 뽑았을 때, 일부 언론이나 누리꾼들은 노련한 수비수가 부족한데 왜 이름도 없는 공격수를 뽑느냐, 감독의 인맥으로 뽑은 것은 아니냐 하는 말이 많았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황의조 선수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에 대해 김학범 감독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훈수꾼들은 자신이 잘못된 판단을 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훈수꾼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있고, 짧은 지식을 가지고도 전문가처럼 말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훈수꾼이 되는 길은 매우 쉽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면 훈수를 둘 때만큼 일이 쉽지 않고, 말도 조심을 해야 한다. 한편으로 훈수를 너무 안 듣는 것도 문제지만 자기가 일의 책임자로서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훈수꾼들에게 휘둘리는 것도 큰 문제가 된다. 당나귀를 타고 가든, 끌고 가든 자기 소신대로 하면 되는데, 소신 없이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다 보면 결국 당나귀를 메고 가는 최악의 수를 택하게 된다. 여론을 의식하느라 자신의 교육관이나 정책을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쓸쓸히 퇴장하는 전임 교육부 장관의 모습을 신임 교육부 장관은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 물론 이 말도 훈수이기는 하지만.

2018-09-02 14:44:29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사실과 진실

얼마 전에 50대인 아는 형님, 누님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인즉 현재 우리나라에 쌀값이 30% 이상 폭등을 하고, 쌀 창고마다 텅텅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북한에 퍼 주고 있어서 남한에 쌀이 없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과 '진실'을 구분하지 않으면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전적 의미로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이고 '진실'은 '거짓이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사실 중에 거짓이 포함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가만 따지면 사실에는 거짓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사실들 간의 관계를 규명하거나 사실을 해석할 때는 참과 거짓 즉, 사실과 진실의 차이가 드러나게 된다. 현재 쌀값이 30% 이상 폭등한 것은 실제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실이다. 그런데 '쌀값이 30% 폭등했다'라고 했을 때 얼마를 기준으로 해서 30%라는 말은 없다. 사람들은 당연히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쌀값, 즉 산지 기준으로 한 가마니 18만원 내외를 기준으로 폭등했다는 전제를 가지고 그 말을 접한다. 하지만 현재 쌀값은 18만원에서 30% 오른 23만원 정도 하는 것이 아니고 지난 2년간 폭락을 했었던 것이 17만원대를 회복한 것일 뿐이다. 어떤 사실을 이야기할 때 30%라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면 매우 신뢰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인 흐름을 보지 못하고 특정 시점이나 부분만 떼어 내서 보면 진실을 왜곡하기 쉬운 것이 바로 숫자의 함정이다. 쌀값이 급격하게 상승하자 정부에서는 비축미를 방출했다. 방출을 할 때 모든 미곡 창고에서 같은 비율로 방출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 미곡 창고는 비었다고 할 만큼 재고량이 적을 수 있다. 창고가 비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말도 사실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말을 할 때 '텅텅'이라는 말을 써서 과장을 한 것이다. 이러한 과장은 사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는 있지만 객관적인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쌀 창고마다'라고 표현한 것도 몇 개의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시키는 논리적 오류를 담고 있는 것이다. 빈 쌀 창고를 본 사람이 전국의 쌀 창고 상태를 모두 본 것도 아니고, 최소한의 샘플을 조사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가 본 것이 전부라고 믿는 경향 때문에 그런 표현을 하고,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사실에만 집착할 때 진실은 더 멀어지는 법이다.

2018-08-26 14:37:31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좋다'

국어사전에서 '좋다'를 찾아보면 18개의 뜻풀이가 나온다. 18개의 뜻이 있지만 대부분은 '품질이 좋다'에서처럼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등이 보통 이상의 수준이어서 만족할 만하다는 의미에서 확장된 것들이다. '성격이 좋다'에서는 성품이나 인격이 원만함을, '체격이 좋다'에서는 신체적 조건이나 건강 상태가 보통 이상임을, '날씨가 좋다'에서는 만족할 만한 맑은 날씨를 의미한다.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이어서 만족할 만하다는 공통점은 존재한다. 그런데 '좋다'의 의미는 사전에 있는 18개의 의미로도 잘 잡히지 않는 부분이 있다. "저는 선생님이 좋아요."라고 할 때, 사전에서는 '어떤 일이나 대상이 마음에 들 만큼 흡족하다'로 풀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동사 '좋아하다'에 가깝다. 그리고 단순히 만족할 만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경우 아이에게 '좋은 아버지'라고 하면 용돈을 많이 주는 아버지가 될 수 있고, '좋은 학교'라고 하면 자기가 대학을 가는 데 유리한 학교의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음흉한 생각도 흡족한 느낌을 준다면 '좋은 생각'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좋은 아버지', '좋은 학교', '좋은 생각'이라고 할 때는 단순히 만족할 만하다는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름의 의미까지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국 단위 시험 문제를 출제할 때, 출제자들은 교육과정을 충실히 반영하고, 학생들의 사고력을 측정할 수 있는 참신한 문제를 '좋은 문제'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세상에 나오면 학생들은 자기가 아는 문제를 좋은 문제라고 하고, 교육청이나 교육부에서는 언론의 바람과 반대로 아무런 오류나 논란이 없는 것을 좋은 문제라고 한다. 이처럼 올바름에 대한 생각이 없는 '좋다'는 아전인수가 되거나 때로는 부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지난주에 우리 학교에서는 야구계의 전설인 이승엽 전 선수를 초청해서 특강을 했었다. 그의 강연을 한마디로 요약을 하자면 그는 '좋은 선수'였고, 지금은 야구장학재단을 이끌며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이상의 실력보다 더 빛나는 것은 끊임없이 노력해서 실력을 쌓은 올바른 선수였다는 것이고, 지금은 가정 형편으로 인해 아이들이 꿈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올바른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전 인터뷰에서 사인의 희소가치를 위해 사인을 안 해준다고 말실수했던 것에 대해서 반성하며 팬 서비스에 소홀하지 않는 것도 그의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다.

2018-08-19 14:51:21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망양정(望洋亭)의 올은말이(올라보니)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 면접시험에서 한 교수님이 '관동별곡' 마지막 부분을 외워 보라고 했다. 긴장을 많이 한 터라 더듬더듬 '명월(明月)이 천산만락(千山萬落)에 아니 비친 데 없다'를 이야기하자 다른 교수님이 해석을 해 보라고 했다. 다행히 아는 내용이라 자신 있게 "임금의 은혜가 온 세상에 미치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칭찬할 줄 알았는데 교수님들은 "뭘 근거로 그렇게 해석하는 건가?", "다르게 해석할 수는 없는가?" 하고 공격적으로 질문을 했다. 정신이 반쯤 나갔다가 겨우 "학교에서 그렇게만 배웠는데요. 대학에서 좀 더 잘 배워서 답변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답을 했었다. 지금 그 질문을 들었으면 조금 여유 있게 여러 가지 답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전시가에서 세상을 다 비추는 것으로 표현된 존재는 주로 임금님이므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고, 임금에서 잘 보이려는 마음이나 자기가 관할하는 지역이 이상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오늘날로 치면 강원도 도지사가 보름 넘게 일도 안 하고 놀러 다니는데도 아무 일도 없는 것에서 느끼는 평화로움과 여유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작가인 정철이 그런 기분을 느꼈던 곳, 바로 울진의 망양정에 가 보면 '아! 이래서 정철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망양정에 올라가 바다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바다 밧근 하ᄂᆞᆯ이니 하ᄂᆞᆯ 밧근 므서신고 / ᄀᆞᆺ득 노ᄒᆞᆫ 고래, 뉘라셔 놀내관ᄃᆡ / 블거니 ᄲᅳᆷ거니 어즈러이 구ᄂᆞᆫ디고"에서처럼 노한 고래가 물을 내뿜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이름난 정자들이 그렇듯이 망양정도 항상 시원한 바람이 부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시원한 바람이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오면서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화풍(和風)이 습습(習習)ᄒᆞ야 냥ᄋᆡᆨ(兩腋)을 추혀 드니 / 구만리댱공(九萬里長空)애 져기면 ᄂᆞᆯ리로다"고 한 말을 직접 느낄 수 있는데, 날지 않고 그냥 정자에 누워만 있어도 신선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전문학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바로 옛사람들이 있었던 장소에 우리도 가 볼 수 있으며, 그 장소에서 옛사람들이 느꼈던 것들을 함께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과서로만 배우고, 그냥 외우기만 하면 고전문학을 배우는 의미는 반감된다. 아직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면, 혹은 동해안 쪽으로 여행 갈 일이 있다면 울진 망양정에 올라가 한숨 자고 오는 것을 강력 추천하고 싶다.

2018-08-12 15:00:02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상대와 절대

요즘 교육계의 가장 큰 화두가 되는 말은 '상대'와 '절대'이다. '상대적'이라는 것은 사전으로 말하면 '서로 맞서거나 비교되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반의어는 '비교하거나 상대될 만한 것이 없는'을 뜻하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이라는 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 보면, 때와 상황에 따라 위치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무슬림들에게는 불경한 것이 된다. 이것은 문화권마다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화 상대주의이다. 시골에서는 나름 지역 유지에 부자라고 힘주는 사람도 진짜 부자들 사이에 가면 부자도, 영향력 있는 인사도 아닌 그저 그런 촌사람이 되는데, 이것은 위치의 상대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적이라는 말의 반의어에는 '고정', '불변'이라는 말도 추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계는 내신이나 수능 모두 상대 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선택형 교육과정을 시행하면서 과목간 문제의 난이도에 따른 유불리를 없애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학생이 받은 점수는 상대적 위치로 환산이 되다 보니 학생의 노력보다 집단의 특성이 점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자신의 점수가 오른다는 것은 객관적인 실력이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한 명을 제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협력보다는 경쟁이 강조된다. 경쟁을 통해서 실력을 키우는 것이 나름 의의는 있다 하더라도, 진짜 문제는 공부하기가 어렵고 우수한 학생이 많이 선택하는 과목은 기피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과 학생들은 공대나 자연대에 꼭 필요한 물리Ⅱ, 화학Ⅱ는 선택하는 학생이 1%밖에 선택하지 않는다. 문과 학생들은 경제 과목이 어렵고 우수한 학생들이 선택한다고 해서 2%밖에 선택하지 않는다. 제2외국어는 찍어도 3등급을 맞을 수 있다고 소문난 아랍어 선택자가 2/3 이상을 차지한다. 수능 선택 과목이 그렇다 보니 학교교육과정도 파행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수능에서 과목 선택을 늘리고 상대평가를 고수할 경우, 필요한 과목보다 당장 진학에 유리한 과목으로 쏠림 현상이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 영어처럼 1점 차이로 등급이 나뉘고, 9점 차이는 같은 점수로 인정되는 절대평가 방식도 공정하지는 못하다. 그럴 바엔 차라리 원점수를 활용하고, 대학에서는 경제, 경영학과에 오려면 경제 과목을, 공대에 오려면 물리Ⅱ를 선택해야 한다고 지정해 주는 것이 문제가 덜한 방법이 될 수 있다.

2018-08-05 14:35:20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인간에 대한 예의

문명사회의 언어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거나 부정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것, 성(性)적인 것처럼 사회적으로 금기된 것을 이야기할 때는 모호하고 우회적인 말로 이야기하는 완곡어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것은 완곡어법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완곡어법을 사용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욕설의 경우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이나 정신적 타격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에 완곡어법으로 변환해야 하는 말들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욕설에 배설물이나, 성과 관련된 신체 기관, 죽음과 관련된 말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의 여러 언어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완곡어법은 죽음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문화가 달라도 죽음이라는 것은 부정적이고, 불쾌하고, 피하고 싶은 것인 동시에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말에서는 죽음을 완곡하게 표현할 때 '운명(殞命)하다'나 '유명(幽明)을 달리하다'와 같은 표현들을 사용한다. '운명하다'라는 것은 목숨이 사라지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이다. '유명을 달리하다'에서 '유명'(幽明)은 빛과 어둠, 이승과 저승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죽음이라는 것은 이승과 저승의 세계를 달리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계인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생각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세계로 간다는 것이고, 죽음 앞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해진다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각자 다른 능력과 환경을 가지고 태어난다. 타고난 능력과 환경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든 인간이라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죽는 순간에는 능력도, 환경도 모두가 똑같아진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는 사랑, 미움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들을 모두 내려놓고 경건해지는 것이 한때 같은 세상에서 살았던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할 수 있다. 지난주에는 두 분의 유명 정치인이 유명을 달리하셔서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두 분의 일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자기와 반대 진영에 있다고 해서 죽음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말을 인터넷 공간에 마구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지천명을 넘은 어른이나 정치인, 언론인들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죽음까지도 진영 논리로 이해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일도, 인간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2018-07-29 14:36:12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구지가

거북아 거북아 龜何龜何(귀하귀하) 머리를 내놓아라 首其現也(수기현야) 내놓지 않는다면 若不現也(약불현야 구워서 먹겠노라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우리나라에서 향가 이전의 고대가요로는 '공무도하가', '황조가', '구지가' 세 편이 한역되어 전해지고 있다. 이 중 앞에 제시한 '구지가'는 집단적 제의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어서 다른 두 작품과 달리 해석이 명확하지 않고 그에 따라 여러 설들이 있다. '구지가'의 해석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거북', '머리', '구워서 먹겠다'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가락국의 건국 설화 속에 삽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거북'을 토템으로 하는 사회에서 '우두머리'(수로왕)를 내려달라고 기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해석은 토템인 동물에게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구워서 먹겠다고 위협한다는 문제가 있다. 정병욱 교수는 거북의 머리에서 연상되는 것을 통해 집단적인 성적 욕망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는데, 얼마 전 인천의 한 국어 교사가 '구지가' 수업을 하다 성희롱으로 징계를 받은 것은 바로 이 해석과 관련된 것이다. '구지가'는 노래가 나온 맥락을 통해서 학생들이 다양하게 해석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교육의 현장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배경 설화를 보면 계욕일에 구지봉(거북이 엎드린 모양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림)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구간들이 모인다. 하늘에서는 '구지가'를 부르면서 춤을 추면 대왕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면 거북은 구지봉의 정령이나 천상의 명을 대행하는 존재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신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구워서 먹으리라고 위협할 수도 있는 가까운 존재로 볼 수 있다. 아이들이 놀이를 하면서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라고 할 때의 두꺼비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학생들이 문학 시간에 배워야 할 것은 학자들의 학설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스스로 근거를 찾아 해석을 하는 것이다. 아마 논란이 된 국어 교사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성적인 해석을 이야기했을 수도 있지만, '구지가'만이 아니라 '가락국기'의 내용을 학생들에게 충분히 제시하고,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해석하고 감상하는 활동을 했다면 불필요한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2018-07-22 14:43:11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만하다

'믿을만한 정보', '콩알만한 돌', '형만한 아우'. 이 중에서 띄어쓰기가 맞는 것은 몇 개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어문규정상 정답은 '믿을만한 정보' 한 개다. 그것도 원칙적으로는 맞지 않는데 허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 대부분 바로잡는데, 이 문제에서는 틀린 것을 고쳐도 또 틀리는 경우가 많다. 띄어쓰기를 바로 하면 '콩알만∨한∨돌', '형만∨한∨아우' 이렇게 된다. 의미상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만한'의 띄어쓰기가 이렇게 다른 것에는 우리말 형태소 분석에 대한 여러 난제들이 있다. '믿을 만한'의 경우 '믿을'이 '만한'을 수식하는 형태이다. 관형사형인 '믿을'이 용언을 수식한다는 것은 어법상 맞지 않기 때문에 현재 문법 체계에서는 궁여지책으로 '만하다'를 보조형용사로 분류하고 있다. 보조형용사는 '먹고 싶다'에서 '싶다'처럼 본용언에 '-아/-어, -고, -지'로 연결되어 의미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말인데, '믿을 만하다'는 형태가 일반적인 보조용언과는 많이 다르다. '만하다'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말로는 '듯하다', '척하다' 등이 있는데, 이 말들의 공통점은 의존 명사 '만, 듯, 척'에 '하다'가 붙어서 한 단어로 쓰이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믿을 만도 하다', '맞는 듯도 하다', '아는 척을 하다'와 같은 형태도 가능하다. '만하다'를 한 단어가 아니라 '앞말이 뜻하는 동작이나 행동에 타당한 이유가 있음'을 나타내는 의존명사 '만'과 '하다'로 본다면 관형사형이 용언을 수식하는 모순은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만∨하다'가 아닌 '만하다'의 형태로 많이 쓰기 때문에 설명이 꼬일 수밖에 없다. '만하다'를 한 단어로 취급할 경우 '형만한'의 경우는 앞에 체언인 '형'이 오기 때문에 보조형용사로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앞에 체언이 오는 경우 '만한'을 '형만한', '콩알만한'과 같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조사처럼 앞말에 붙여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에도 '형만하고, 형만하지'처럼 서술격 조사도 아닌데 활용을 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만하다'가 한 단어가 아니라 '앞말이 나타내는 대상이나 내용 정도에 달함'을 나타내는 보조사 '만'과 '하다'로 보아 '형만∨한∨아우'와 같은 식으로 띄어 쓴다는 것이 현재의 규정이다. 우리말은 규정이 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냐고 욕을 하게 되지만 세상 일이 다 그렇듯 그렇게 된 사정을 자세히 알고 보면 고충이 이해될 '만하기도' 하다.

2018-07-12 12:00:53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고2병

2000년쯤에 생겨난 신어 중에는 '중2병'이라는 단어가 있다. 보통 사춘기가 되면 자아에 대한 의식이 강해지면서 세상을 다 아는 듯이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사춘기 특유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면서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데, 보통 그 시기가 중학교 2학년 무렵이어서 그런 말을 쓰게 된 것이다. 이 병의 특징은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치유가 된다는 것이며, 치유가 된 후에는 병을 앓던 시절이 매우 부끄러운 기억, 즉 흑역사로 남는 후유증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학계에는 보고가 되지 않았지만 '고2병'이라는 새로운 병이 창궐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학생들은 다들 자기가 서울대나 의대를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1학년 성적표를 받고 난 후에는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고2병의 발병 원인은 바로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 중에는 자기가 갈 수 있는 대학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고3 가서 수능 한 방으로 역전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주사제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 수능 전형은 인원이 적은 데다 재수생 비율이 워낙 높은지라 희망이 되지 못한다. 1학년 때 평균 4등급을 받았다면 죽어라 공부해서 등급을 더 올린다 하더라도 서울 상위권 대학이나 지방 국립대학을 가기는 어렵다. 고2병의 중요한 특징은 '안고수비'(眼高手卑)로 요약할 수 있다. 눈은 높지만 실력도, 현실적인 여건도 받쳐주지 않는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각성해서 실력을 키우면 좋으련만,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게임이나 유튜브 같은 엉뚱한 것에 몰입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부모님과의 갈등도 많아진다. 부모님으로부터 혼이 났으면 각성해서 올바른 길로 가면 좋으련만, 혼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또 엉뚱한 일을 한다. 내신 성적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학교에 오면 자는 경우가 많다. 고3이 되면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가능한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고2병은 사그라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 2학년 때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도 시험 하나를 망치는 일이 발생하면 고3이 되어서 고2병이 발생한다. 그렇다 보니 학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고등학교에 있는 3년은 살얼음판 그 자체다. 대학 입시에서 정시를 늘리는 안이 지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학 줄 세우기, 교육과정의 왜곡과 같은 부작용 때문에 정시를 늘리는 것이 어렵다면 성적 향상자 전형과 같은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하다.

2018-07-08 15:41:05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양심

지난주 헌법재판소에서는 종교나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등에 따라 입영을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를 적시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런 내용의 기사가 나올 때마다 인터넷 댓글에는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이 "그러면 우리는 비양심적이어서 군대를 갔나?" 하는 분노에 찬 목소리들이 올라온다. 그렇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는 말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양심적'이 '병역 거부자'를 수식하는 구조이다. 즉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병역 거부자' 중에서 비양심적인 사람과 상반되는 개념이지 '병역 이행자'와 상반되는 개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양심은 사전적으로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규정된다. 맹자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고 남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미워하는 본성을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양심에 대한 또 다른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양심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고,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의미가 강하다. 헌법재판소에서는 헌법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에 명시된 양심에 대해서 '어떠한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규정하였다. 여기에서 양심은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와 관련된 것으로 보편적인 도덕법칙에서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어떤 관점을 취하든 양심은 선악을 판단하는 능력이자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며 인간답게 살려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쉽고, 편하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또 다른 경향도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들은 도덕에 어긋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양심이 제동을 건다. 양심이 있는 사람에게 양심은 '양심의 가책'이라는 말처럼 의무와 불편함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양심을 지키며 살 때에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을 한다는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군대에는 취사, 간호, 행정과 같이 총을 잡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살리는 병과도 많다. 그런 병과에 30개월 정도 복무를 하게 하면, 양심을 지키며 살려는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대구 능인고 교사

2018-07-01 14:50:18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비난과 비판

"한국 축구 자존심도 끈기도 없어, 투지마저 실종", "한국 축구 테스트만 하다 날 샌다." 위의 기사 제목은 최근의 것이 아니라 4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2002년 월드컵 대표팀에 대한 2002년 초의 기사 제목들이다. 그때 당시 감독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에 대한 기사들은 조금 더 신랄하다. 축구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여 '무지에서 비롯된 테스트를 즉각 중단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고종수나 이동국을 안 뽑고 황선홍과 같은 퇴물이나 박지성 같은 듣도 보도 못한 선수를 뽑은 것을 가지고도 문제 삼았다. 한 신문의 기사들을 보면 이런 구절들이 있다. "전쟁터에 나간 장수가 여자 친구를 대동해 물의를 일으키는 모습 역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형 전술'을 개발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반면, 필립 트루시에는 독특한 일본형 수비 전술을 개발해 성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말을 교묘하게 바꿔가며 '6월을 목표로 세운 계획에 맞춰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히딩크의 태도다. (중략) 한국 축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언어의 마술사'가 아니라 능력 있는 축구 지도자다." 이 기사의 내용을 보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히딩크와는 사뭇 다르다. 히딩크가 이러한 기사들을 보고 자신의 계획을 바꿔서 4강을 간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기사가 나간 뒤에도 그는 여자 친구를 데리고 다녔고, 더 현란한 '언어의 마술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계획과 전술을 밀어붙여 결국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다. 히딩크가 그 기사들에 휘둘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러한 기사들을 보면 '비판'과 '비난'을 구분할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비판'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비판을 하는 목적은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함께 책임을 지고자 하는 의식도 반영되어 있다. 이에 비해 '비난'은 남의 잘못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하는 것이다. 비난을 하는 이유는 누구를 하나 희생양으로 해서 감정을 해소하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싫다는 감정 외에 다른 근거는 필요 없으며, 책임 같은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망해가는 집안에서는 원래 비판보다는 비난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비난이 난무하는 곳에서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게 마련이다. 일이 되게 하려면 칭찬은 앞당기고, 비난은 뒤로 미뤄야 한다. 그리고 건전한 비판을 통해 문제점들을 고쳐 가면 좋은 날이 올 수 있다.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2018-06-2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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