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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국민 자존심은 무너진다

'한강의 기적'이란 말에 익숙했던 탓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8·15 기념사에서 '동아시아의 기적'을 말했을 때 뜨악했다. 한국의 대통령이, 광복 후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야기했으니, 당연히 '한강의 기적'이란 말이 나올 줄 알았다. 기대는 어긋났다. 문 대통령은 끝까지 '한강의 기적'을 언급하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기적을 말했지만 누가 그 주역이었는지도 침묵했다.'한강의 기적'은 폐기할 수 없는 한국 경제 성장의 상징이다. 폐허가 된 전쟁터에서 중화학공업 육성과 수출주도형 경제로 중진국으로 도약하는 기적을 일군 것이 '한강의 기적'이다. 세계가 한국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기성세대라면 누구나 경험한 일이다. 문 대통령이 말한 세계 6대 제조강국, 6대 수출강국의 원천 역시 '한강의 기적'이다. 그러지 못했다면 한국은 여전히 북한처럼 아직도 '이밥에 고깃국' 타령이나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강의 기적'은 '동아시아의 기적'으로 치환 불가한 한국민의 자존심이다.우리나라가 세계 어느 나라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나라라는 지표는 차고 넘친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 이상 국가)에 들었다. 지난해 IMF가 정한 세계 GDP 순위에선 11위에 올라 있다. 세계은행의 순위론 12위다. 세계 6위 수출대국이다. 국토 면적 순위 세계 109위, 인구 기준 27위 나라로는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뿐 아니다. 요즘 K팝에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한다. 드라마, 영화로 시작한 한류는 이제 세계 문화로 확산하고 있다.경제성장을 통해 국력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세계가 한국을 주목했을 리 없다. 국력이 뒷받침하지 않았다면 과거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국민 자긍심은 크고 자존심은 세졌다. 국민들은 어찌하면 더 강한 나라, 더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꿈꾸고 있었다.그런 대한민국이 마구 흔들린다. '한강의 기적' 이후 키우고 지켜온 국민 자존심이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다. 꿈은 멀어지고 네 편, 내 편 갈려 서로 적개심만 불태운다. 한국이 영락없는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대일 경제 전쟁이 벌어지자 문 대통령은 남북 경협으로 일본을 단숨에 넘겠다며 '평화경제' 카드를 내밀었다. 한반도는 세계 1·2·3위의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 일본의 각축장이다. 한국은 IMF 기준 11위 경제국이고 북한은 98위까지 매긴 IMF 순위 밖에 있다. 그런 집단과 협력해 극일하겠다는 발상이 국민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현실은 북한이 잘 짚고 있다. 북은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仰天大笑·하늘을 보고 크게 웃음)할 노릇"이라 했다.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며 콧방귀를 뀌고 있다. 그들 앞에 문 대통령은 '겁먹은 개'고,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이다.그런데도 아무 소리도 못하는 대통령은 비굴하고, 국민들은 비참하다. 국제적으로 이리저리 차이고 조롱당하면서도 말로 이루는 '평화'에 흠이 날까 집착하는 모습에 국민 자존심은 여지없이 또 무너진다.안보 경제가 모두 위기에 빠진 요즘 한국을 구한말에 견줘 걱정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당시 황준헌의 '조선책략'은 조선을 '연작처당'(燕雀處堂)에 빗댔다. 사람의 집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사는 제비와 참새가 집이 불타 저 죽을 줄도 모르고 재잘거린다는 뜻이다. 그런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

2019-08-19 06:30:00

김교영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한일 경제전쟁에서 빛나는 시민의식

시민들이 다시 촛불을 들었다. 무도(無道)한 일본 아베 정부에 대한 항거다.9일 대구에서 처음으로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경제보복 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NO 아베'를 외쳤다.서울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10일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70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아베 규탄 시민행동'이 '아베 규탄 4차 촛불문화제'를 개최했다. 시민행동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배상 판결로 촉발된 일본의 경제보복 조처가 '침략 역사에 대한 반성 거부'이자 '부당한 보복 조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일본 경제보복에 시민들의 첫 대응은 불매운동이었다. 이는 민주시민의 자발적인 주권 행사다. 불매운동은 들불처럼 번졌다. 하지만 열기가 고조되면서 우려가 제기됐다. 격한 반일(反日)로 비화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일식집은 손님이 끊겼다. 주인이 한국인이며, 국내산 재료를 쓰는 곳이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일본산 자동차는 세차장에서 퇴짜를 맞기도 했다. 일본산 제품을 쓰거나 사려는 사람에게 눈을 흘기는 일도 벌어졌다.정치권과 지자체는 한술 더 떴다. 여당은 '열두 척의 배' '죽창가' '의병' 등의 상징어로 국민 정서를 자극했다. '도쿄 여행금지' '올림픽 보이콧' 등의 제안도 내놨다. 일부 지자체는 한일 교류까지 중단했다. 자유한국당은 '신쇄국주의'라며 정부와 여당에 총질을 했다. 시민들은 혼란을 겪었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며, 어떤 것을 먹지 말아야 할지.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민사회는 엇나간 애국주의를 경계했다. 서울의 한 구청은 'NO 재팬' 깃발을 걸었다가 하루 만에 내렸다. 시민들의 질타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정부·정치권의 지나친 반일 행보를 호되게 비판했다. 시민사회는 'NO 재팬'이 아니라 'NO 아베'로 선을 그었다. 그래야 극일(克日)할 수 있다는 것이다.현명한 전략이다. 우리의 투쟁 대상은 일본 국민이 아니라, 일본 정부와 극우집단이다. 쇼비니즘(chauvinism·배타적 애국주의)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일본 국민을 배척하면 국제사회와 세계 시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또한 아베 정권을 끌어내리는 힘(투표권)은 일본 국민에게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일본에서도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들은 지난 8일 참의원회관에서 집회를 열고 '평화에 역행하는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정책에 항의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앞서 4일에는 도쿄 신주쿠역 앞에서 일본 시민들이 모여 '아베 정권 타도'를 외쳤다. 트위터에선 '#좋아요_한국' 등의 해시태그를 게재하는 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일본의 저명인사들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철회를 촉구하며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들은 '반(反)아베 공동전선'을 형성하기도 했다. 양국의 시민단체로 구성된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 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15일(광복절) 서울에서 '국제평화행진'을 한다.일본의 양심 세력이 일본에서 영향력을 갖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한국 시민사회는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 일본은 국제분업과 자유무역질서를 위배했다. 더욱이 식민지배 역사의 잘못을 부정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 정부에 공존공영과 호혜 협력 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인류의 보편 가치이며, 국제규범이다. 우리는 자신감을 갖고 우호적인 국제여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시민사회의 책무는 막중하다.

2019-08-11 14:28:46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문재인 대통령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대통령 취임 때도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고 했다. 대통령의 뜨거운 열정은 실현됐다. 우리는 지금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한일 관계가 이토록 얼어붙은 적은 없었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라더니 일본이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인 한국만 콕 집어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북이 연일 신형 미사일을 쏘아대도 꿈쩍도 않던 대통령이 직접 나서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며 비장한 각오로 일전을 독려했다.한일 지도자들이 서로의 나라를 두고 '적반하장', '믿을 수 없는 나라'라며 노골적으로 능멸하는 상황은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양국 리더십이 정면으로 충돌하자 반세기 넘도록 쌓아온 한일 신뢰 관계는 한순간 적대 관계로 전락했다. 대통령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기업인은 없고, 불안해하는 국민은 많다. 저지레는 두 나라 정상이 하고, 걱정은 국민이 한다. 일찍이 없던 일이다.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다.안보는 시계 제로다. 북은 연일 신형 무기를 과시한다. 물론 한국이 '과녁'이다. 북은 우리 미사일 방어체계로 잡을 수 없는 신형임을 감추지도 않는다. 액체 연료던 미사일이 고체 연료로 바뀌었다. 고체 연료라면 우리 정부가 믿고 의지하는 킬 체인은 무력화되기 십상이다.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능력을 과시하고, 이를 탑재할 수 있는 3천t급 잠수함을 건조해도 정부는 무덤덤하다.반면 북은 악착같다. 사사건건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을 거론한다. 우리가 F-35기를 들여올 때도,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할 때도 어김없이 '자멸' '불바다' 운운하며 딴죽을 걸었다. 정부가 한 일은 그때마다 스스로를 무장해제한 것이다. 우리 군은 더 이상 북을 주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사실상 중단됐다. 한미일 동맹은 더 이상 굳건하지 않다.동맹이 흔들리니 영해와 영공도 흔들린다. 주변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를 건드리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해 7분 동안을 헤집고 다녔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동시에 우리나라 KADIZ를 연합해 침범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툭 하면 우리 안보를 시험하고 능멸한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를 대신하는데 돈을 내라며 압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영락없는 동네북 신세다. 그런데도 이를 경계하면 반평화주의자로 낙인찍힌다. 우리는 분명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다.경제성장률은 뚝뚝 떨어진다. 우리가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것은 보았지만 세계 성장률을 갉아 먹는 꼴은 처음이다. 수출이 쑥쑥 늘어나는 상황엔 익숙해도 두 자리로 감소하는 꼴은 경험하지 못했다.어쩌면 우리는 이미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서 계속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2013년 미국의 석학 엠마뉴엘 페스트라이쉬가 저서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말한 그 나라다. 그는 책에서 '저개발국가에서 선진국이 된 특이한 국가 발전 경험'을 이야기하고 자부심을 가지라고 주문했다. 그 세상에서 우리는 소득 수준 60달러에서 3만달러를 이루는 기적을 일궜다.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원조를 받던 나라서 주는 나라가 됐다.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기대하기보다 차라리 과거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꿔 나가는 편이 나을 뻔했다.

2019-08-05 06:30:00

김병구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개싸움과 소비 주권

"개싸움은 우리가 한다. 정부는 정공법으로 나가라.정부가 선동한 적 없다. 사회단체가 나선 것도 아니다. 그냥 국민 한 명 한 명이 빡쳐서(화나서) 스스로 하는 운동이다. 밖으로 큰 내색 않고 조용히, 언제나 그러했다는 듯 일상적으로 쓰던 것 안 쓰고, 꼭 써야 하는 것 다른 제품을 씀으로써 실행하게 될 것이다.삼성, 애증이 교차하는 우리 대표 기업이다. 우리 경제의 대표 주자이면서 범법행위도 많이 저질렀다. 그런 삼성의 옆구리에 비수를 들이대고 무너뜨리려 했다. 아무리 미워도 우리 기업에 부당하고 비겁한 공격이 들어오는 것은 못 참는다. 때려도 우리가 때릴 것이다.우리 국민들이 개싸움을 할 테니 정부는 당당하게 WTO 제소도 하고, 국제사회에 일본의 후안무치함과 편협함을 널리 알려라. 외교적으로 당당하게 나가라."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급속히 퍼지고 있는 글의 일부다.전쟁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적이 총칼을 앞세워 공격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무릎을 꿇어라'고 하는 이들은 첩자이거나 무기력한 패배자와 다름없다.더욱이 적의 공격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총부리를 내부로 겨누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의 굴욕을 다시 부르는 지름길이다. 무역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겨냥하지 않은 채 '토착 왜구'니 '토착 종북'이니 하면서 내부에서 서로 헐뜯기에 급급한 일부 진영의 행태를 보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물을 퍼내거나 구명장비를 챙길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 '네 탓'만 하고 있는 꼴이다.일본은 비겁하고 치졸한 방식으로 도발했다. 우리 정부가 타깃이면서도 애먼 우리 기업에 총칼을 들이대고 있다. 외교적 불만을 외교적으로 풀려고 하지 않으니 비겁하다. 도발의 이유로 여러 핑계를 들이대는 구차함과 치졸함도 엿보인다.일본의 도발이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란 것은 이제 국제사회에까지 알려지고 있다. 우리 사법부의 판결을 두고 한국 정부의 개입을 압박하거나 기업에 보복규제를 가하는 것은 상당히 무례하고 외교 관례나 국제 무역 질서에도 어긋나는 짓이다.일본이 이렇게 무리한 보복 조치를 밀어붙이는 저변에는 한국을 동등한 국가 간 관계로 보지 않고 '아래로 보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힘이 커진 데다 현 정부가 과거처럼 일본에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점도 이번 사태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여기에다 아베 총리 개인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고 존재감을 과시하겠다는 의도도 다분해 보인다.이런 마당에 우리 대통령이 먼저 아베에게 머리를 숙이라거나 제3국의 중재에 기대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은 치욕적이고 안일하게 들린다. 우리의 힘을 과신해서도 안 되겠지만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거나 비하할 필요는 더욱 없다.특히 민간에서 조용히, 그러나 온라인·오프라인 양동작전으로 세련되게 펼치고 있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폄하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도 바람직한 자세로 보기가 어렵다. 지나친 감정적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외교와 국제관계에 적용될 뿐 민간 부문의 운동에서는 감정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 감정 없는 싸움은 동력이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역전쟁에서 국민의 무기는 소비 주권이다. 기업은 자생력, 정부는 외교력이 무기다.이런 면에서 소비 주권을 지혜롭게 행사하는 국민들께 큰 박수를 보낸다.

2019-07-28 16:13:52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나라

불과 반세기여 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1955년 IMF에 가입할 때 1인당 GNI(국민총소득)는 65달러로 필리핀은 물론 아프리카 가봉보다 적었다. 같이 전쟁 참화를 겪은 북한도 우리보다는 한참을 더 잘살았다.외국의 평가 역시 냉혹했다. 미국의 국제개발처(USAID)는 한국에 막대한 원조금을 쏟아부었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자 원조를 줄이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pouring water into a sieve)라고 냉소했다. 같은 해 UN한국재건위원회 인도 대표 메논은 보고서에 '쓰레기통에서 과연 장미꽃이 피겠는가'라고 썼다. 영국의 '더 타임즈' 역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을 찾는 것과 같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은 간 데 없고 가난하고 더럽고 무질서한 나라에 대한 조롱은 넘쳐났다.이런 조롱을 박차고 기적을 일구는데 적어도 50년 세월이 걸렸다. 기적은 '후손들에게 잘사는 나라를 물려주자'고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시작됐다.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했다.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이었다. 65달러던 소득이 어느덧 1만달러, 2만달러를 넘었다.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카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1993년 한국의 경제성장을 다룬 논문을 쓰며 '기적 만들기'(Making a miracle)란 제목을 붙였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그 어떤 경제정책이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 기적이라 했다. 세계적 석학 기 소르망은 '한국의 경제발전사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치켜세웠다.경제 규모가 커지자 국제무대에서 위상이 달라졌다. OECD에서 나아가 2009년엔 OECD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 멤버가 됐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다. 2010년엔 G20 정상회의가 한국에서 열렸다. 당시 G20을 개최한 나라로는 미국, 캐나다, 영국이 전부였다. 한국이 아시아 국가 첫 G20 개최국 지위를 얻은 것이다. 모두가 한국의 경제 발전에 주목하지 않았다면 어림없을 일이다. 일본도 올해에야 G20을 유치했다.혐한론으로 들끓던 일본에서조차 '한국을 배우자'는 말이 나온 것도 그때였다. 요미우리 신문은 '지금은 더 이상 일본이 아니라 한국의 시대'라고 인용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세계에서 약진하는 한국 기업에 배우자'는 사설을 실었다. 한국을 쓰레기 더미에 비유했던 더 타임즈도 '한국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며 "인구는 인도의 20분의 1인데 영국보다 더 많은 상품을 수출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향후 영국이 추구해야 할 완벽한 롤 모델'로 한국을 지목했다.그로부터 10년이 안 지났다. 한국을 벤치마킹하려는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경계심은 허물어졌다. 대신 한국 패싱이 똬리를 틀었다. 한국을 다시 조롱거리로 삼으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속의 한국은 초라해졌다. 각 기관들은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앞다퉈 낮추고 있다. 세계 성장을 견인하던 한국이 오히려 세계 성장률을 갉아먹는 신세로 전락했다. 수출은 7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한국의 원전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반면 일본은 아베 정권 출범 후 29년 만의 최장 호황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 다시 만만한 나라가 됐다. 이러다가 후손들에게 '잘사는 나라' 대신 빚만 물려주게 생겼다. 이 모든 것이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여 만에 벌어지고 있다.

2019-07-22 06:30:00

편집국 편집국부국장

[매일칼럼] 오늘의 그들이 어제의 우리였다

지난주 대법원은 이혼한 이주여성이 억울하게 추방되는 것을 막는 판결을 내놨다. 이혼 책임이 한국인 배우자에게 더 많다는 사실만 증명되면, 이주여성의 체류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한국인 배우자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을 때만 체류 연장이 가능하다'고 봤던 기존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재판부는 "(이주여성이) 정상적인 혼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어 이혼에 이르게 된 것이 오로지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사유 탓인 경우에만 체류 자격을 연장해 준다면, 외국인 배우자로서는 혼인 관계를 적법하게 해소할 권리를 행사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한국인 배우자가 이를 악용해 외국인 배우자를 부당하게 대우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이 판결은 '베트남 아내 폭행 동영상'으로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우리 사회에는 결혼이주여성에게 차별적인 제도와 인식이 있다. 이주여성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 이혼을 하려면 추방을 각오해야 한다. 이주여성의 체류권이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존되는 독소 조항 때문이다. 이주여성이 비자 연장이나 영주권 신청을 할 때는 남편의 신원보증이 꼭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이주여성들이 가정폭력에 피눈물 흘리면서도 이혼을 꺼린다.가정폭력에는 나쁜 인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가부장주의와 성차별이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의 경우 언어·문화적 갈등과 차별·멸시가 추가된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성일수록 그 정도는 심하다.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결혼이주여성(920명)을 조사한 결과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10명 중 4명(42.1%)이 가정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가정폭력 유형은 ▷심한 욕설(81.1%) ▷한국 생활 방식 강요(41.3%) ▷폭력 위협(38%) ▷생활비 미지급(33.3%) ▷성행위 강요(27.9%) ▷부모·모국 모욕(26.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국제결혼 과정이 이런 결과의 원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결혼은 '인연'보다는 '거래'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베트남 여성,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2007년 미국 국무부의 인신매매보고서에 증거물로 공개된 한국 길거리의 현수막 문구다. 보고서는 브로커를 통한 한국의 국제결혼을 인신매매로 규정하며 "동남아 저개발국 여성들을 상품처럼 다룬다"고 지적했다.지금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베트남 여성은 순종적이다. 생활력이 강하다. 부모님을 극진히 모신다' 등의 표현을 쓰고 있다. 또 업체들은 여성의 국적에 따라 권장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 국제결혼업체 홈페이지에 소개된 '베트남 결혼 일정표'는 놀라울 따름이다. 현지에서 7박 8일간 일사천리로 결혼까지 이뤄진다. 몇 번의 맞선을 거쳐 3일 차에 '최종 결혼 승낙', 4일 차에 결혼식과 웨딩 촬영을 한다. 이후 혼인 접수와 데이트로 '결혼 원정기'는 마무리 된다.한국에서 국제결혼은 전체 혼인의 10%에 이른다. 저출산 고령화로 이주노동자가 늘고, 결혼이주여성도 증가할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37만 명이다. 10년 뒤엔 한국 인구의 10%(5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우리나라는 이제 외국인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됐다.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 세심한 인권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문명국가의 기본이다. 대한민국이 가난할 때, 우리도 설움을 겪었다. 오늘의 그들이 어제의 우리였다.

2019-07-14 14:45:39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다시 끄집어 낸 영남권신공항 용역 보고서

2016년 6월 나온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최종 보고서'는 방대하다. 분량만 3권 787쪽에 이른다. 보고서는 국토교통부와 영남권 5개 시도지사 합의로 국제 입찰을 통해 프랑스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이 만들었다.앞서 영남권시장도지사협의회는 2014년 10월 2일과 2015년 1월 19일 두 차례 한자리에 모였다. 영남권 신공항 갈등이 10년 가까이 계속되며 지역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던 때였다. 진화가 필요했다. 5개 시·도 단체장은 "신공항 입지 선정 용역은 정부가 외국의 전문기관에 의뢰해 결정하도록 일임"하고, "정부의 입지 선정 결과 수용"에 극적으로 합의했다.그 결과 ADPi가 2015년 5월 용역기관으로 최종 낙찰됐다. ADPi는 베이징신공항을 비롯해 두바이, 상하이 푸둥공항 등 100여 개 공항 설계 공정에 참여하고 공항 관련 프로젝트 수주만 700개를 넘긴 세계적인 업체로 평가된다. 세계 어느 나라도 그 전문성과 권위에 토를 달지 않았다. 게다가 이 용역엔 5개 시도가 추천한 전문가들도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용역 결과에 대한 공정성 시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장치를 더한 셈이다.정부는 용역비로 물경 20억원을 썼다. 잠시 거액 용역 논란이 일었지만 세계적 전문기관에 용역을 맡겨 갈등을 그만 끝내자는 염원이 컸다. 결과에 대한 수긍과 갈등의 해소를 위해서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조사를 해야 했고, 독립된 해외 컨설턴트를 고용하는 것이 제격이었다.ADPi는 기대에 걸맞은 보고서를 냈다. 분석 결과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이었다. 공항 입지 선정을 위한 모든 전문적·보편적 지식을 이 한 편의 보고서에 쏟아부었다. 보고서를 받아 든 국토부 관계자들이 그 정교함과 전문성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가덕도 유치에 시장직까지 걸었던 서병수 당시 부산시장도 결국 승복했다.입지 평가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미국연방항공청(FAA),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정한 국제 가이드라인에 맞췄다. 일본 간사이공항 등 이전 공항 입지 선정 사례들을 무수히 벤치마킹했다. 항공기 운항의 안전성과 효율,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가를 따진 입지의 잠재성, 소음·문화유산 등 사회적 비용과 경제 환경에 대한 영향, 비용과 리스크 등 세부 항목을 일일이 찾아 계량화했다.그 결과로 나온 것이 김해신공항안이었다. 기존 2본 활주로에 1본을 추가하는 확장안이 805점을 얻었다. 압도적 1위였다. 2위가 밀양(활주로 2본 687점, 1본 686점), 가덕도(1본 619점, 2본 574점)는 꼴찌였다.이렇듯 어렵게 결정된 김해공항 확장안에 대한 재검증 논란이 나오는 것부터가 소모적이다. 김해공항도 부산 강서구에 있고, 가덕도도 부산 강서구에 있다. 가덕도로 공항을 옮기면 대다수 부산 시민들에게 접근성은 떨어진다. 모든 울산 시민들도 더 불편해진다. 경남도 역시 다수인 북부에서의 접근성이 현저히 나빠진다. 보고서는 이 역시 잘 지적하고 있다.논란을 부를 때는 심사숙고해야 하고 논란만큼의 이익이 따라야 한다. '총리실 재검증' 운을 떼 논란에 불을 붙인 문재인 대통령이 이 보고서를 읽어 보았는지 의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독을 권한다. 김해신공항은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내놓은 최선안이다. 이보다 더 공정하고 전문적인 검증단을 꾸리고 결과를 뒤집을 자신이 없다면 욕심은 버리는 것이 옳다. 입지의 타당성을 무시하고 정치적 이유로 지은 공항이 성공한 사례는 없다.

2019-07-08 06:30:00

김병구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부울경의 생떼

집권당으로 당선된 부산·울산·경남(부울경) 단체장들이 3년 6개월 전의 대국민 약속을 깨고 '신공항 생떼'를 부리고 있다.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서 고향 PK 표를 의식해 이 생떼에 선뜻 부응했다. 꼿꼿해 보이던 국토교통부는 한발을 빼고, 국무총리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 지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십수조원의 대규모 혈세가 투입되는 국책사업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뒤집거나 되돌려 놓는다면 앞으로 어떤 국책사업인들 제대로 굴러갈 지 국민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개탄스럽기 그지없다.부울경의 속셈은 뻔하다. 김해신공항이 동남권, 아니 영남권 신공항으로서 부적합하다고 우겨 이를 폐기하고 가덕도에 신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하지만 부울경과 정부가 명심해야 할 명약관화한 사실 하나는 김해신공항이 부울경만의 신공항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해신공항은 밀양과 가덕도를 대상으로 신공항 후보지 평가를 벌이다 외국 전문기관이 대안으로 제시한 신공항이고, 또 영남권 5개 지역이 이를 수용했던 영남권 전체의 신공항이란 점이다. 따라서 김해신공항이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판단과 결정은 부울경만이 아니라 부울경과 대구경북(TK)의 공동 합의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TK가 합의하지 않는 그 어떤 결정도 의미나 효력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백번 양보해 영남권 5개 지역이 김해신공항이 영남권 관문공항으로 부적격하다고 판단하더라도 그 대안으로 가덕도는 제외해야 한다. 가덕도를 빼고 밀양 등 다른 지역의 신청을 받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왜냐하면 가덕도는 2016년 6월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의 용역 결과 후보지 평가에서 어떤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꼴찌인 데다 안전이 전혀 담보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가덕도 1㎞ 이내 낙동강 하구에 국내 최대 철새 서식지가 있어 철새와 항공기 충돌, 이른바 '버드 스트라이크' 우려가 높다. 또 대형 선박의 가덕 수로 통항량이 연간 4천 회가 넘어 '선박 충돌' 위험도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평균 수심 18m인 일본 간사이공항이 개항 6년 새 11m나 침하했고 지금도 계속 가라앉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평균 수심이 16~35m인 가덕도의 침하는 불 보 듯 뻔하다. 가덕도 해상의 비행 경로가 김해공항과 일부 겹치는 것도 안전에 치명적 요소의 하나다.또 하나, 부울경이 김해신공항에 대한 TK의 관심을 애써 돌리려고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얘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은 영남권 관문공항과는 전혀 별개의 사안으로, K2 비행장의 소음 문제 해결을 위해 30여 년 전부터 대구 시민들이 이전을 요구해온 숙원사업일 뿐이다. 통합신공항은 영남권 관문공항과는 상관없는 대구경북의 신공항으로, 부울경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부울경과 정부는 김해신공항 재검증을 당장 그만 두든지, 아니면 내년 총선 이후 대구경북이 참여한 가운데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총선용 야합' '지역 이기주의에 매몰된 생떼'란 비난을 피해갈 수 있다.

2019-06-30 14:46:47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자기 말에 자기가 속는다

자기 말에 자기가 속는다고 한다. '열 번 거짓말하면 사람들이 다 속고, 백번 거짓말하면 자기 스스로가 속는다'는 그리스 속담도 있다. 물론 자기 말에 자기가 속을 정도면 속이고 싶어 속인다기보다는 그릇된 신념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영국의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은 이를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개념으로 정리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인간의 오류를 콕 짚어 낸 것이다. 이런 오류에 빠지면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는 재빨리 받아들이지만 다른 정보는 무시하거나 오히려 견강부회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짓말은 깊어지고 편향성은 심해진다.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 동시 교체를 보며 이 정부가 확증편향이란 오류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온 국민이 경제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아우성인데 정부는 '이대로'를 외쳤다. 청와대는 그러면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3대 핵심 경제정책의 성과 창출을 가속화하는 데 역할을 할 것"이란 빛바랜 기대를 빼먹지 않았다. 전임 투톱에 대해서도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문책성 인사라는 해석이 나올까 봐 지레 선을 그었다. 이에 청와대 경제 라인 역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며 맞장구를 쳤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충성 맹세도 빠지지 않았다. 물러난 경제 투톱이 성과를 냈고, 현 정부의 정책 기조도 그대로 이어 가겠다면 굳이 인사를 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확증편향이 걱정인 것은 윗사람이 권력을 무기로 자신의 그릇된 신념을 고집할 때 종종 두려운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랫사람들까지 맞장구를 치고 나서면 영락없는 '벌거벗은 임금님' 꼴이 된다.조짐은 벌써 확연하다. 대통령은 고비마다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쏟아냈다. 경제성장률은 꺾여 OECD 국가 꼴찌 수준으로 내려앉았는데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주류 경제학자 대부분이 족보가 없다는 소득주도성장은 대통령이 나서는 순간 '세계적으로 상당히 족보 있는 얘기'가 된다.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은 튼튼하다. 제조업 가동률이 금융 위기 수준까지 떨어졌는데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라'고도 했다. 확증편향 의심 속에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곧 나타날 것이란 희망고문은 계속된다.아랫사람들은 열심히 이에 맞장구를 친다. 소득주도성장이란 실험이 한국 경제를 빈사 상태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은 당정청을 막론하고 금기시 된다. 오히려 경제 위기를 말하는 것은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며 역성을 든다. 어려운 경제가 걱정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진 사실을 대통령이 알까 더 두려운 듯하다.보다 못해 경제 원로학자인 진념 전 경제부총리가 "혁신 없는 소득주도성장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명예교수는 "어설픈 진보와 개념 없는 정치가 만나 소득주도성장을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현 정부서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지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우리가 따를 만한 족보란 없다"고 단언했다.'때때로 한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에 전체 국민이 대가를 지불한다'는 독일 속담이 현실이 될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요즘이다.

2019-06-24 06:30:00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기업을 춤추게 하라

잘사는 나라들은 일자리 호황을 즐기고 있다. 영국의 경제 전문 '더 이코노미스트'지가 최근 전한 선진국 근황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 나라들의 일자리 붐은 '유례가 없을'(unprecedented)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4월 미국의 실업률은 3.6%로 반세기 만에 가장 낮다. 일본은 15~64세 사이인 생산가능인구의 77%가 일한다. 6년 사이 고용률이 6%나 올라갔다. 일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 일하는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다. 독일은 노동시장이 커지면서 세수까지 덩달아 늘어 즐겁다. 올해 영국인들의 총 근로시간은 550억 시간이란 금자탑을 쌓을 전망이다.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도 2005년 수준 이상의 고용률을 회복했다.소위 '3050클럽' 국가들의 일자리 성적표는 이렇듯 화려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나라도 가입했으니 국민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던 그 나라들의 성적표다. 하지만 한국만 쏙 빠졌다. 일자리를 두고 재앙 수준이라는 한탄이 쏟아지는 한국이 낄 자리는 없었다. 이래서야 자부심을 갖기 어렵다.잘사는 나라들(the rich world)에선 일자리가 양적으로 풍부해졌을 뿐만 아니라 질도 좋아졌다. 구직난이 구인난으로 바뀌며 근로자들의 협상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자본주의가 근로자들의 운을 빠르게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표현했다. 일자리 호황으로 일터를 골라잡을 수 있게 된 근로자들의 소득이 늘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소득을 나눠 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가 늘어야 소득이 늘어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유례없는' 일자리 감소에 '글로벌 경제'니 '외부 요인' 탓을 하던 우리 정부도 이쯤 되면 머리를 쥐어뜯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나서서 책임지겠다는 이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국민 억장 무너뜨리는 소리를 연발한다.2년여 전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며 출범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쯤은 결과물이 나와야 할 때다. 그런데 오늘날 선진국이 누리고 있다는 일자리 호황이란 말을 듣도 보도 못했다. 거꾸로 기업들은 가히 엑소더스(대탈출) 수준이다. 너나없이 국내가 아닌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설비투자는 급감하고 해외투자는 사상 최고다. 가동률이 떨어지며 불야성을 이루던 공단 지대는 불빛이 사라졌다. 소상공인들은 고용을 줄여가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정부는 기업을 옥죄고, 기업인들은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다.잘사는 나라들의 일자리 호황은 기업을 춤추게 한 결과다. 잘사는 나라일수록 고용은 민간 몫이라는 자본주의 원칙에 충실하다. 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여건 조성에 힘을 모은다. 감세를 하고 규제를 완화한다. 해외에 나간 기업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유인한다.기업이 춤을 추면 일자리는 저절로 늘어나게 돼 있다. 잘사는 그 어떤 나라도 정부가 직접 고용에 목매지 않는다. 세금으로 만드는 일자리보다 세금을 내는 일자리에 관심을 둔다. 소득을 늘려 성장할 수 있다면 가난한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통렬하다.3년차 정부가 여전히 2년 전 막춤을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배우지도 않았고 소질도 없는 막춤을 고집할 때가 아니다. 춤은 기업이 추게 해야 한다.

2019-06-10 06:30:00

[매일칼럼] 아첨과 독재

"천재적인 예지와 탁월한 영군술, 무비의 담력과 필승의 신념을 지니시고… 조국 통일의 밝은 앞길을 열어 나가시는 위대한 은인, 불세출의 영장.""우리의 희망의 등불이요, 국난 극복을 해결해 줄 구세주.""100년마다, 1세기마다 사람이 하나 난다 그러는데 건국 100년, 3·1절 100년(에) 나타난 분."언뜻 들어보면 이런 발언들의 화자(話者)나 대상을 따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첫 발언은 북한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군 최고사령관 추대 7주년을 맞이한 지난해 12월 30일 김 위원장을 한껏 치켜세운 선전 문구다.뒤 발언은 지난달 유림 단체 두 인사가 경북 안동을 방문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향해 각각 던진 용비어천가다.기독교 단체를 대표하는 한 인사도 지난 3월 황 대표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일찍이 준비하셨던 황교안 대표님을 자유한국당의 대표님으로 세워 주셨다"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을 이어가는 세 번째 지도자가 되어줬으면 좋겠다"란 표현을 쏟아냈다.정치판에 아첨과 아부의 말이 판을 친다.60여 년을 세습 독재 체제로 이어온 북한은 그렇다 치더라도 21세기 한국 정치·종교계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상황은 볼썽사납기 그지없다.국내에서 일본 제국주의 치하와 독재 정권 시절, 아첨하고 알랑거렸던 교언영색의 모양새는 언론과 종교계에서 특히 두드러졌다.우리나라 대표적 한 중앙 일간지는 1936년부터 5년 동안 매해 신년마다 일본 왕의 사진을 신문에 실었다. 심지어 1936년 신년호에는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하겠다"는 요지의 사설도 냈다.일제와 독재 정권 아래에서 권력이나 부의 찌꺼기라도 받아 챙기려고 횡행하던 행태를 50년, 100년이 지난 지금 이어가는 당사자들은 낯부끄럽지 않은지 모를 일이다.언론이나 종교가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릴 때 독재 정권을 낳을 소지가 크다는 것은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세계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북한이 그렇고 나치 독일이 그랬다. 역사적으로 편향된 언론과 종교가 나팔수로 동원돼 독재 정권을 낳기도 하고, 거꾸로 독재 정권이 언론과 종교를 장악해 핵심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언론과 종교가 특정 정파에 편향돼 아첨을 일삼을 때 독재의 싹이 트고, 균형을 잡고 바른 말을 할 때 민주주의가 꽃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성싶다. 두 집단은 민주주의에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역으로 국가 지도자나 회사 CEO가 아첨꾼의 달콤한 언사에만 빠져 지내다가는 나라나 회사를 망치기 십상이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황제 유선이 환관 황호의 아첨에 현혹돼 지내다 결국 위나라에 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듣기 좋은 말 하는 사람들만 끌어안고 쓴 말 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내치면서 작금의 불행한 사태를 자초했다.아내에게 아부하고 남편에게 아첨하는 것은 가정의 행복 윤활유가 되겠지만, 정치판이나 국가권력 주변에서 난무하는 아부와 아첨은 민주주의의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요즈음이다.

2019-06-02 18:31:34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세금을 덜 풀어 경제가 안 풀리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세수 실적이 좋아 증세나 국채 발행 없이도 추경예산 편성이 가능하다. 이렇게 대응할 여력이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다면 정부의 직무유기고 나아가서는 우리 정치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많이 들어본 듯한가.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다. 올해가 아니다. 2년 전. 정확히 2017년 6월 12일 국회에서다. 소위 일자리 추경을 요구하며 했던 말이다.일자리 추경에 반대하는 야당을 향해 대통령은 일갈했다. "해법은 딱 하나다.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경제는 적정한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현재의 실업대란을 이대로 방치하면 국가 재난 수준의 경제 위기로 다가올 우려가 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을지도 모른다."갓 취임한 대통령의 지지도가 80%를 넘어설 때다. 일자리 창출이란 명분은 컸다. 국회는 11조2천억원의 일자리 추경안을 통과시켰다.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일자리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일자리는 사라졌고 분배는 악화했다.문 대통령은 실용적이지 않다. 올해도 또 추경안을 국회에 넘겼다. 취임 후 내리 3년째다. 이번에는 6조7천억원짜리다. 여기엔 3조6천억원의 적자 국채 발행까지 예고돼 있다. 올해 본예산은 역대 최대인 470조원 규모로 슈퍼예산이라 불렸다. 이 역시 아직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시점이다. 그런데도 "추경은 타이밍과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 추경안 처리가 지연될수록 효과가 반감되고 선제적 경기 대응에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며 국회를 닦달하고 있다. 야당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 이달 들어서만 여섯 번이다. 이쯤 되니 경제 실정을 추경을 제때 통과시키지 않은 야당 탓으로 몰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인다. 추경을 하지 않아 경제가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면 앞에 벌어진 일이 뒤따른 일의 원인이라고 착각하는 전형적인 인과 설정의 오류다.호미를 들먹이며 천문학적 세금을 썼지만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3월 기준 청년층 체감 실업률은 25.1%로 최악이다. 세금으로 만든 60대 이상 취업자는 30만 명이 늘었고 30, 40대 일자리는 2개월 연속 20만 명대로 감소했다. 세금을 퍼부어 노인 일자리는 만들었어도 좋은 일자리는 만들지 못했다. 수출은 부진하고 경상흑자는 6년 9개월 만에 최저다. 올 1분기엔 우리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OECD에 이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도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까지 낮췄다. 경제정책에 F학점을 주며 대한민국 부도 위기를 거론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돈을 더 풀자 국가 채무 증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만 키웠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GDP 대비 국가 채무 40% 선을 넘기면 신용등급 하락 위험이 커진다. 문 대통령 스스로 야당의원 시절 이를 질타한 바 있다. 이미 이 비율은 40% 문턱에 와 있다.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이면 41.8%까지 치솟을 전망이다.세금을 덜 써서 경제가 나빠진 것이 아니라 정책 실패로 나빠진 것이다. 세금으로 일부 경제지표를 눈속임할 수는 있어도 경제 실정을 다 가릴 수 없다. 돈 더 쓰게 해 달라고 야당을 들볶기보다 대통령이 이 사실을 깨우치는 것이 먼저다. 그래도 가래로 막을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중한 것이 작금의 우리나라 경제 현실이다.

2019-05-27 06:30:00

김교영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구미 경제는 한국의 미래다

성형외과 의사인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밥벌이가 어떻냐고 안부를 물었다. 후배는 "대구의 개업 의사인 제가 구미와 한국의 경제를 걱정할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했다.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이어진 얘기로 궁금증은 풀렸다. "환자 중에 구미의 LG, 삼성에 다니는 여성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한 명도 없습니다. 공장 이전, 희망퇴직이다 해서 난리라고 하더군요. 동료 의사들도 구미 불황으로 환자가 많이 줄었다고 걱정합니다."대구에서도 구미 불황을 체감하고 있다. 대구와 구미는 '경제 공동체'다. 산업기지 구미의 베드타운이 대구다. 대구~구미 통근자는 어림잡아 5만 명. 이들이 구미에서 돈을 벌어 대구에서 쓴다는 얘기다. 대구에는 구미 소재 대기업의 협력업체도 많다.구미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이다. 구미국가산업단지는 1999년 단일 산단 최초로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했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빨간불이 켜졌다. 삼성, LG 등 대기업 사업장이 핫바지 방귀 새듯 해외로,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구미산단은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옛 명성에 비해 현재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수출액은 2013년 367억달러로 최고점을 찍은 뒤 하락세다. 지난해는 259억달러까지 떨어졌다.구미산단 내 공장 가동률은 2014년 말 80%에서 지난 2월 55.5%로 추락했다. 근로자 50인 미만 업체(산단업체의 88%)의 가동률은 불과 33.7%. 구미산단 근로자 수는 9만 명 선이 무너졌다. 최근 4년 새 1만2천 명이 줄었다.구미산단의 불황은 지역 상권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임대매매' 문구가 곳곳에 붙어 있다. 원룸이 많은 구평동 일대는 빈집이 속출하고 있다. 인동에서 식당을 하는 지인은 "인동의 밤거리는 젊은 직장인들로 술렁였던 곳이다. 지금은 적막강산이다"며 "장사를 접고 싶어도 가게를 인수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구미시는 몇 년 전부터 정부에 '산업 위기 대응 특별지역' 지정 요청을 했다. 정부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시민들의 속은 타들어갔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생각이 지역에 퍼졌다. 그런 민심이 6·13 지방선거에서 장세용 구미시장을 만든 것이다. 구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보수의 핵심'. 이런 곳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시장 당선은 그만큼 절박했다는 뜻이다.장 시장은 구미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청와대정부 인사, 여당 인사들을 만나 도움을 구했다. 여당과 정부도 구미에 관심을 보였다. 작년 8월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첫 최고위원 회의를 구미서 열었다. 이 대표는 전략적으로 구미를 지원하겠다고 했다.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구미시민들이 염원했던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는 경기도 용인으로 결정됐다. 정부, 여당 관계자가 '구미형 일자리' 사업을 언급했다. 19일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6월 내에 제2 광주형 일자리의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구미산단이 녹슬어서는 안 된다. 구미는 훌륭한 산업 인프라를 갖춘 곳이다. 50년 축적된 우수한 기술과 연구 인력이 있다. 신산업을 발굴하고 노후 산단을 재건해야 한다. 구미 경제의 회생은 한국 경제를 살리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말부조'는 지겹다. 구미시민들은 너무 지쳐 있다. 장 시장의 어깨는 그만큼 무겁다.

2019-05-19 14:41:09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대통령은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나

큰 사고는 어느 순간 갑자기 터지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일정 기간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나타난다. 방치하고 무시하면 큰 재해가 닥친다. 이를 통계적으로 실증한 것이 미국인 허버트 W. 하인리히였다. 그가 쓴 '산업 재해: 과학적 접근 방식'에서다. 이는 오늘날 '하인리히의 법칙'으로 남았다. 요즘은 경제 현상을 두고 더 널리 인용된다.우리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성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올 1분기 우리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부터 그렇다. 10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도 문제지만 더 불길한 것은 OECD 국가 중 거의 유일하다는 점이다. 수출은 5개월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4월 한국 원화 가치는 G20 국가 중 외환 위기설이 도는 터키 다음으로 많이 떨어졌다. 국제 사회가 한국 경제를 불안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책연구기관인 KDI가 '경기 부진' 진단을 내렸고 글로벌 신용 평가사들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기업들이 우리나라를 등지는 것도 안 좋은 징후다. 지난해 우리 기업의 해외 직접 투자액이 55조원에 달했다. 통계 작성 이래 최고였다. 중소기업의 해외 투자만 11조6천억원에 이른다. 중소기업이건 대기업이건 틈만 나면 해외 진출 의지를 감추지 않는다. 고용에 기여하고 많은 법인세를 꼬박꼬박 내면서 악인 소리 듣느니 해외로 나가 대접받으며 하겠다는 기업인이 부지기수다.그런 나라에서 일자리 전광판을 만들어 대통령이 아무리 쳐다본다 한들 일자리가 생길까. 청년 체감실업률은 통계 작성 후 최악으로 치솟았다. 한창 일해야 할 청년들이 네 명 중 한 명꼴로 놀고 있다. 우리 경제의 주축인 30, 40대 일자리가 무더기로 사라지고, 세금으로 만드는 노인 일자리가 고용지표를 왜곡하고 있다.서민 경제가 무너지는 조짐 역시 뚜렷하다.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가 사상 처음 100만 명을 넘어섰다. 한때 불야성을 이루던 공단 주변은 어둠이 깔리면 인적을 찾기 어렵다.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들은 보험을 깬다. 보험 해지 환급금이 1년 새 2조원 늘었다. 소득주도성장이란 허울은 의도와 달리 최빈층 지갑만 가벼이 했다. 소득 최하위 20% 계층의 절반 이상이 무직자로 전락했다. 정부가 지난해 지급한 실업급여액은 사상 최대였다. 빈부 격차는 최악으로 확대됐다. 경제지표마다 수년 혹은 수십 년 만에 최악이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이 지경이니 국민들이 나라 경제를 걱정한다. 문재인 정부 2년을 맞은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경제정책에 대해 '잘한다'는 긍정 평가는 23%에 불과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여론조사에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살림살이가 나빠졌다는 국민이 59%나 됐다. 그만큼 여론이 싸늘하다.그런데 대통령은 "거시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가 크게 성공한 것은 인정하라"고 말한다. "경제 패러다임 전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저임금 긍정 효과가 90%', '물들어 올 때 노 저어라'고 했던 바로 그 대통령이다. 그런 대통령에게 '하인리히의 법칙'이 던지는 경고는 그저 '경제 성과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일 뿐이다.이쯤되니 의문이 인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대통령이 사는 세상이 다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대통령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2019-05-13 06:30:00

김병구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기로에 선 한국당

패스트트랙(신속안건처리) 정국에서 여야 4당이 일단 실리와 명분을 챙긴 모양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점한 셈이다.이번에 눈여겨볼 대목은 자유한국당이 전략 부재와 투쟁 경험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이다. 향후 어떻게 싸워야 할지 방향타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한국당은 공격 타깃을 정확히 겨누지 못했을뿐더러 다른 야당이나 여론을 우군으로 만들지도 못한 채 소총 대신 대포를 쏘는 형국을 만들며 패배를 자초했다.패스트트랙 자체를 악법이나 불법인 것처럼 과도하게 포장해 여기에 투쟁력을 집중한 것은 가장 큰 패착으로 보인다.패스트트랙이 지정되면 마치 3개 법안(공직선거법 개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검경수사권 조정)이 곧바로 통과되는 양 비분강개했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이나 공분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현 정부를 1980년대식 독재정권으로 몰아붙인 것도 '너무 나갔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패스트트랙이 담긴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이 주도해 만든 법이다. 게다가 패스트트랙은 법안 통과와는 상관 없는, 본회의 상정을 위한 절차일 뿐이다. 이를 두고 입법 쿠데타니 날치기니 하면서 결사 항전했으니, 큰 호응을 얻을 리 만무했다.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설사 날치기였다 하더라도 과거 날치기 경험만 많았지 막아 본 경험이 별로 없는 한국당이 제대로 대응했을지 의문스러워하기도 한다.정치적 싸움에선 명분과 머릿수가 강력한 무기다.그런데도 이처럼 명분이 약한 상황에서 야 3당 또는 일부라도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한 채 외로운(?) 싸움을 벌인 것도 한계였다. 특히 바른미래당 보수 세력과는 연대는커녕 조선 정조 때 당파 싸움과 다름없는 이전투구만 벌여 향후 보수대연합의 가능성마저 쪼그라들게 했다. 권역별 준연동형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란 당근을 내밀며 야 3당을 끌어안은 민주당과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그렇다고 개별 법안에 대해 반대 여론을 조성하는데 공을 들인 것도 아니다.패스트트랙 막는 데만 급급했지 정작 법안 내용을 갖고 국민을 설득하거나 맹점을 끄집어내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3개 법안을 뭉뚱그려 반대하는 것도 전략 부재로 볼 수밖에 없다.무엇보다 공수처에 대한 한국당의 입장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공수처 신설은 주로 정부 여당이 반대하고 역대 야당이 권력형 비리 견제를 위해 강하게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정권에 휘둘려온 검찰 고위직, 권력에 취하기 쉬운 대통령 친인척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그동안 견제 장치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 눈치를 보지 않고 비리를 수사할 기구가 필요한 이유다.선거 연령 문제도 그렇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만 18세가 선거권을 갖지 못한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한국당은 선거 연령 하향 불가를 고수하며 젊은 층에 인기가 없다는 점을 자인할 때가 아니다. 이를 과감하게 수용하고 젊은 층을 견인하는 정책과 정치력을 발휘해 지지층을 넓혀나가야 할 시점이다.특정 지역과 계층, 연령만 겨냥해서는 지역 정당의 울타리에 갇혀 제1 야당 자리도 지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2019-05-05 14:38:56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어느 원전 세일즈맨의 오지랖

프랑스는 자원 빈국이다. 소비하는 석유의 1%, 천연가스도 2% 정도를 자체에서 생산할 뿐이다. 2004년 이후 석탄은 더 이상 캐지도 않는다. 그런 프랑스의 에너지 자립도가 50%를 넘나든다. 전력은 남아돈다. 남는 전력을 처음 수출한 나라가 프랑스였다.그 비결은 원자력이다. 프랑스는 미국에 이은 세계 최고의 원전 대국이다. 58기의 원전이 전국에 골고루 분포해 있다. 원전 의존도가 70%를 넘는 세계 유일의 나라다.프랑스가 이처럼 원전 강국이 되는 토대를 깐 것이 반핵을 외치던 좌파 정부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은 1981년 반핵을 내걸고 집권했지만 이후 원전을 가속화했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설치에도 속도를 냈다. 좌파 집권 후 원전에 대한 정치적 반대 세력은 사실상 사라졌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한때 탈원전이 거론됐지만 이 역시 진보 성향의 마크롱 대통령 당선 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국민들은 프랑스 원전이 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임을 이해하고 변함없이 신뢰한다.프랑스는 한국의 거울이다. 우리나라 역시 자원 빈국이지만 원전이 있었기에 에너지 강국 반열에 합류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를 우리나라처럼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나라가 없다.오늘날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 중국, 일본 등 7개국뿐이다. 우리나라가 2009년 UAE 바라카 원전을 수주하며 대열에 합류한 것은 국가적 큰 성취였다.지금 세계는 원전 각축장이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2017년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이 16개국 59기에 이르고 발주를 앞둔 원전도 12개국 86기에 이른다. 시장 규모가 6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수주 경쟁 또한 치열하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에다 경제성까지 갖춘 우리나라가 뛰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원전 수출은 기술력만 믿었다간 낭패다. 정치력, 외교력이 훨씬 중요하다. 이는 그 나라 리더의 의지에 달렸다. 트럼프가, 푸틴이, 또 시진핑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이유다. 이 중 그 누구도 내 나라엔 짓지 않겠다고 선언한 나라는 없다. 39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중국은 18기를 건설 중이고 31기의 추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99기의 원자로를 가진 미국도 2기를 짓고 있고 8기를 추가한다. 35기를 가진 러시아도 건설 중 7기, 계획 중 22기다.문재인 대통령도 세일즈 외교에 가세했다. "한국은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원전 수주에 진정한 의지가 담겼는지는 의문이다. 수주 실적은 한 건도 없다. 정부는 탈원전과 원전 수출은 별개라지만 탈원전을 거둬들이지 않는 한 글로벌 원전 시장은 그림의 떡이다.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지그지글러는 이렇게 썼다. "자신이 팔고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확신이 없다면 자신이 팔고 있는 것의 가치에 의문을 달아 보라." 고객이 사지 말아야 할 물건을 사게 만드는 사람은 유능한 세일즈맨이 아니라 비윤리적인 세일즈맨이다. 스스로 탈원전을 해야 할 정도로 원전에 대한 확신 없이 세일즈를 한다면 비윤리적이고, 확신을 가지고 원전을 팔려 든다면 탈원전의 근거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자칫 원전은 못 팔고 오지랖 넓다는 소리나 듣게 생겼다.

2019-04-29 06:30:00

김교영 편집국편집부국장

[매일칼럼] 공유경제는 '착한 경제'가 아니다

150여 년 전 영국 런던. 마차(馬車)에 탄 사람이 붉은 깃발을 들고 증기자동차를 선도했다. 엉뚱한 풍경이지만, 이유가 있다. 첫째, 차의 속도와 소음을 줄이기 위해서다. 둘째, 마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셋째, 마차 사업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배려다.'붉은 깃발 조례'(Red Flag Act)를 얘기한 것이다. 이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1865년) 제정됐다. 조례에 따르면 증기차 1대를 운행하려면 운전사, 기관원, 기수 등 3명을 고용해야 했다. 시가지에선 시속 3.2㎞ 이하로 속도를 제한했다. 기수는 붉은 깃발(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55m 앞에서 차를 이끌도록 했다.30년간 유지된 이 제도는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명사로 꼽힌다. 영국 자동차산업 발전을 지체시켰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신산업(자동차)과 기존 산업(마차)의 이해 충돌을 완화한 정책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붉은 깃발 조례는 공유경제가 논의될 때 자주 언급된다.공유경제가 확산되고 있다. 공유경제는 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해 사용자를 모집, 유휴 자원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자동차, 숙박, 사무실, 주방 등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한계비용 제로 사회'라는 책에서 '2050년엔 공유경제가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공유경제는 복음일까? 한국개발연구원('공유경제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2016)이 국내 경제학자 200명에게 물어봤다. 93.5%가 '공유경제가 사회 후생에 기여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공유경제가 '착한 경제'라는 환상은 금물이다. 공유경제는 사회적 경제, 혹은 자본주의의 대안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저성장 시대에 새롭게 적응한 비즈니스다.공유경제로 말미암은 사회적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공유숙박 플랫폼인 '에어비앤비'가 확산된 국가에서는 주택 임대료 상승 현상이 나타났다. 집주인들이 기존 장기 임대보다 수익률 높은 단기 임대(공유숙박)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차량 공유의 경우 '우버'가 허용된 국가들의 택시 기사 소득이 평균 10% 하락했다. 우버 소속 기사들 역시 저임금에 허덕이고 있다.국내에서도 공유경제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풀 서비스'. 택시업계는 카풀 도입에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택시 기사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카풀택시업계 대표는 지난 3월 7일 사회적 합의를 했다. 그러나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공유숙박'도 논란거리다. 정부는 도시 지역 내국인의 공유숙박 허용(연간 180일 이내)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숙박업소 업주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숙박업소 공실률은 지금도 50%에 이른다. 숙박업계는 공유숙박이 본격화되면 '줄초상이 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공유경제는 세계적인 추세다. 공유경제는 누군가에겐 편익을 주지만, 다른 누군가의 일자리를 뺏어간다. 카풀과 공유숙박을 둘러싼 갈등은 시작에 불과하다.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유경제가 기존 산업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사회적 토론과 대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공유경제가 플랫폼을 운영하는 대자본의 배만 불리게 된다면, 사회적 재앙이다. 그것은 건강한 공동체의 갈 길이 아니다.

2019-04-22 06:30:00

김교영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공유경제는 '착한경제'가 아니다

150여년 전 영국 런던. 마차(馬車)에 탄 사람이 붉은 깃발을 들고 증기자동차를 선도했다. 엉뚱한 풍경이지만, 이유가 있다. 첫째, 차의 속도와 소음을 줄이기 위해서다. 둘째, 마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셋째, 마차사업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배려다.'붉은 깃발 조례'(Red Flag Act)를 얘기한 것이다. 이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1865년) 제정됐다. 조례에 따르면 증기차 1대를 운행하려면 운전사, 기관원, 기수 등 3명을 고용해야 했다. 시가지에선 시속 3.2km 이하로 속도를 제한했다. 기수는 붉은 깃발(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55m 앞에서 차를 이끌도록 했다.30년간 유지된 이 제도는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명사로 꼽힌다. 영국 자동차산업 발전을 지체시켰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신산업(자동차)과 기존산업(마차)의 이해충돌을 완화한 정책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붉은 깃발 조례는 공유경제가 논의될 때 자주 언급된다.공유경제가 확산되고 있다. 공유경제는 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해 사용자를 모집, 유휴 자원의 활용을 극대화 하는 방식이다. 자동차, 숙박, 사무실, 주방 등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한계비용 제로 사회'라는 책에서 '2050년엔 공유경제가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공유경제는 복음일까? 한국개발연구원('공유경제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2016)이 국내 경제학자 200명에게 물어봤다. 93.5%가 '공유경제가 사회후생에 기여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공유경제가 '착한경제'라는 환상은 금물이다. 공유경제는 사회적경제, 혹은 자본주의의 대안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저성장 시대에 새롭게 적응한 비즈니스다.공유경제로 말미암은 사회적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공유숙박 플랫폼인 '에어비앤비'가 확산된 국가에서는 주택임대료 상승 현상이 나타났다. 집 주인들이 기존 장기임대보다 수익률 높은 단기임대(공유숙박)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차량공유의 경우 '우버'가 허용된 국가들의 택시기사 소득이 평균 10% 하락했다. 우버 소속 기사들 역시 저임금에 허덕이고 있다.국내에서도 공유경제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풀서비스'. 택시업계는 카풀 도입에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택시기사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카풀·택시업계 대표는 지난 3월 7일 사회적 합의를 했다. 그러나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공유숙박'도 논란거리다. 정부는 도시지역 내국인의 공유숙박 허용(연간 180일 이내)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숙박업소 업주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숙박업소 공실률은 지금도 50%에 이른다. 숙박업계는 공유숙박이 본격화 되면 '줄초상이 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공유경제는 세계적인 추세다. 공유경제는 누군가에겐 편익을 주지만, 다른 누군가의 일자리를 뺏어간다. 카풀과 공유숙박을 둘러싼 갈등은 시작에 불과하다.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유경제가 기존 산업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사회적 토론과 대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공유경제가 플랫폼을 운영하는 대자본의 배만 불리게 된다면, 사회적 재앙이다. 그것은 건강한 공동체의 갈 길이 아니다.

2019-04-21 14:53:56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헐어 쓰고 빌려 쓰며 당당한 나라

지난해 태어난 아이들은 1인당 3천260만원의 빚을 안고 세상에 나왔다. 2016년생 아이들은 2천796만원씩이었다. 불과 2년 만에 빚이 17% 늘어난 셈이다. 빚은 빛의 속도로 늘고 있다. 아이의 부모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똑같은 빚을 지고 있다. 4인 가족이라면 그 빚이 1억3천40만원이다. 물론 이는 나랏빚이다. 빚은 나라가 안겼지만 갚는 것은 오롯이 미래 세대 몫이다. 그 빚이 빠르게 늘고 있다면 걱정해야 한다.문재인 정부는 천하태평이다. 걱정하는 기색이 없다. 이 순간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금고를 연다.정부가 봄 추경 편성 방침을 정한 것은 그래서 비관적이다. 경기 대응과 일자리 지원, 미세먼지, 포항지진 대책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자그마치 6조원이다. 이를 맞추려면 빚을 더 내야 할 것이다. 문 정부는 이미 470조원에 이르는 슈퍼예산을 편성해 나랏돈 씀씀이를 보여줬다. 그중 일자리 예산만 23조원이다. 미세먼지 예산도 1조9천억원이 들어가 있다. 아직 지난해 편성한 예산 집행도 지지부진하다. 여기다가 또 예산 덧칠을 하겠다고 나섰다. IMF와 같은 경제 위기 때가 아니고선 봄 추경은 유례가 없다. 당정청은 이런 추경안을 이달 중 처리하겠다고 한다.그러잖아도 문 정부는 나라 곳간을 허는 데는 귀신이고, 쌓는 데는 등신이다. 국민의료 혜택을 늘리는데 5년간 41조원을 쓰기로 했다. 국민의료 혜택을 늘리는 것을 마다할 수는 없지만 쌓아 둔 돈을 헐어 쓰자니 문제다. 지난해 건보는 2010년 이후 처음 적자로 돌아섰다. 올해 적자 규모가 3조원을 훌쩍 넘기게 생겼다. 20조원이 넘게 쌓였던 적립금은 2026년이면 바닥이 난다. 보험료를 해마다 3.49%씩 올리고도 빚어질 일이다.국민연금은 늦어도 2057년이면 끝장난다. 고갈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춰보려던 시도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대신 현 정부는 연금 지급 보장을 책임지겠다고 한다. 이를 믿었다간 장래 똥바가지를 덮어쓸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공무원 증원도 문제다. 당장의 급여도 문제거니와 이들이 평생 받아갈 연금 충당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돼 있다. 지난해 공무원연금 충당 부채만 94조원 늘어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나랏돈을 물 쓰듯 하려면 그만큼 벌어오면 된다. 그런데 돈 버는 일엔 젬병이다. 흑자를 내던 공기업들이 줄줄이 적자로 돌아섰다. 2016년 10조9천억원의 흑자를 냈던 자산 2조원 이상 시장형 공기업 16곳은 지난해 1조1천362억원의 적자를 냈다. 2년 만에 12조원 이상을 까먹었다. 원전 산업이 대표적이다. 원전은 그동안 R&D에서 투자 대비 경제 성과가 16배에 달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런데 이 정부는 그런 거위의 배부터 갈랐다.지금처럼 하면 미래세대가 아무 문제없이 이를 떠안을 가능성은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98명이었다. 이대로라면 50년도 안 돼 인구는 반 토막이 난다. 우리나라의 총인구 대비 생산가능인구 비율은 2065년이면 OECD 국가 중 꼴찌로 전락한다. 생산가능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떠안아야 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이런 사회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금 빌리고 헐어 쓰면서도 당당하면 미래는 그야말로 '헬조선'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정부와 함께하고 있다.

2019-04-15 06:30:00

김병구 편집국부국장

[매일칼럼] 김부겸, 유승민, 그리고 한국당의 과제

내년 국회의원 선거가 꼭 1년 앞으로 다가왔다.21대 총선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지역으로선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유승민 바른미래당 국회의원의 행보에 더 눈길이 쏠린다. 지역 자유한국당으로 봐서는 상임위원장 이상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진 국회의원을 어느 정도 배출할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다.김부겸·유승민 두 의원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들이 중도개혁 진영과 보수 진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지역의 대표 정치인이란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들에겐 이번 선거가 총선으로서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장관 역할을 마치고 돌아온 김 의원과 당내 사정 등으로 진로가 불분명한 유 의원의 행보에 따라 차기 대권 구도까지 요동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움직임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우선 김 의원은 내년 총선을 계기로 민주당의 지역 저변 확대, 여당 내 자기 세력 확장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할 판이다.비록 여당이긴 하지만 대구경북 현역 25명 중 홍의락 의원과 함께 2명만으로는 정부나 국회에서 지역 숙원사업을 제대로 풀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대구에서 교두보를 마련했다고는 하지만 참신하고 유능한 인물의 꾸준한 양성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각인해야 한다. 민주당이 지역에서 저변을 확대하는 길이 바로 김 의원 자신의 정치적 저변을 확대하는 길이기도 하다. 지역구 의원 배출이 여의치 않다면 전문성을 가진 참신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역에서 다수 배출하는 것도 한 방법으로 보인다.여당 내 친문(친문재인) 주류 세력 틈바구니에서 자리를 확고히 굳히고 세력을 확장해야 하는 것도 대권 가도에 선 김 의원의 주요 과제 중 하나다. 이 과제 역시 민주당의 지역 내 세력 확장과 무관치 않다.수도권에서 3선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김 의원과 달리 고향에서 내리 4선을 하고 있는 유 의원에겐 또 다른 난제가 놓여 있는 것 같다. 당장 바른미래당의 진로와 유 의원의 당내 입지, 자유한국당과의 관계 설정 등이 미묘하게 얽혀있어서다.보수 정당의 통합 또는 보수 후보 단일화 없이는 절대 대선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한 차례 도전에 나섰던 유 의원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에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바른미래당이 전국 정당으로 안착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보수 정당이 묶이지 않고는 유 의원의 대권 도전은 개인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한계가 뚜렷하다.한국당 입장에서도 바른미래당 또는 유 의원을 끌어안지 않고서는 보수의 집권 가능성이 요원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내년 총선 이전에 어떤 식으로든 양측 간 물밑 접촉이 예견된다.출마 지역도 유 의원의 또 다른 고민으로 보인다.비록 본인은 누차 "고향 대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곤 했지만, 국회의원 선수(選數)가 아니라 대권을 향한 정치적 중량감 키우기를 고려할 수도 있는 셈이다. 더욱이 지역 일부 노년층을 중심으로 한 '배신자 프레임'에 언제까지 갇혀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수도권 출마 고민을 완전히 떨쳐버리기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지역 한국당은 내년 총선에서 중진 의원 배출이 주요 과제 중 하나다. 대구는 전체 소속 의원 8명 중 초선이 5명이고 상임위원장이 가능한 3선 이상은 1명뿐인 상황에서 국회나 중앙부처에 '말발'이 먹힐 리 만무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겠다.

2019-04-07 16: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