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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지방 분권 한다더니 수도권 세상을 만들었다

수도권에 사는 인구가 비수도권에 사는 인구수를 추월했다. '수도권 세상'이 활짝 열린 것이다.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11.8%를 차지하는 서울·인천·경기 지역에 국민의 50% 이상이 산다. 수도권 인구는 매월 9천500명씩 불어나고 비수도권 인구는 3천500명씩 줄어든다. 지난해 대구에서 1만 명이, 경북은 더 많은 1만1천 명이 수도권으로 갔다.인구가 늘면 소리도 커지기 마련이다. 당연히 수도권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지방의 목소리는 작아진다. 지역균형발전은 더 멀어졌다. 2013년 75곳이던 30년 내 소멸 위험 지방자치단체는 지난해 89곳으로 늘었다.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꿰뚫고 있다. 재빨리 "우리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발전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2018년 2월 세종시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 비전과 전략 선포식에서 했던 말이다.문제는 실천이다. 노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에 공을 들였고 또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앙집권을 우리나라 지역불균형발전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하고 대책을 마련한 것이 노 정부였다. 그 결과 세종 행정수도가 나왔다.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153개를 비수도권 11개 지역에 이전하는 가시적 성과도 냈다. 노 정부를 거치며 수도권에 몰리던 인구가 2011년과 2013~2016년 지방으로 순이동하는 일이 벌어졌다.문재인 정부가 9일 반환점을 돌았다. 노 정부를 계승해 그보다 더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선언했으니 기대가 컸던 정부다. 하지만 문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은 노 정부와 달리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 달콤한 약속에 걸었던 지방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물론 문 정부가 그동안 고사 위기에 몰린 지방을 살리기 위한 시도를 안 한 것은 아니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한다며 취임 초 지방분권 개헌안을 제시한 적도 있다. 자치분권의 근간인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정부의 571개 사무를 지자체로 이양하는 지방이양 일괄법 개정안, 자치경찰제 실시를 위한 경찰법 개정안 등 소위 '자치분권 3법'을 국회에 올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법안만 올리고선 야당 탓만 할 뿐 통과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의문이다. 20대 국회의 법안 통과율이 30%가 안 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중앙집권은 더 강화됐고 수도권 쏠림 현상은 심해졌다. 지방재정은 중앙정부에 더 예속됐다. 선심성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생색은 정부가 내고 재정 부담은 지방이 떠안는다. 복지확대 정책 사업 예산이 대표적이다. 중앙정부가 해마다 지자체에 지급하는 지방교부세 대부분이 중앙정부의 보조 사업에 의무적으로 매칭하는데 쓰인다.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극히 제한됐다. 최저임금에 대해 지역별로 차등을 둬야 한다는 기본적인 요구마저 묵살됐다.반면 수도권 집중 기반을 다지는데는 거리낌이 없다. 지난달 말 대도시권 광역교통비전 2030계획을 발표했다. 대도시권이란 이름을 갖다 붙였지만 실상은 광역급행철도 건설 등 수도권 도시의 광역거점 간 통행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안이다. 수도권에 30만 호의 3기 신도시를 만들 계획도 나와 있다. 역시 수도권에 120조원을 쏟아부을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을 허용한 것도 문 정부가 한 일이다.문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즐겨 말하지만 실천은 않고 있다. 추진 의지는 더더욱 없어 보인다. 이러고도 지방분권을 말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다.

2019-11-10 22:26:35

김교영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박정희 추도식 초헌관(初獻官), 장세용 시장

장세용 구미시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에서 첫 잔을 올렸다. 장 시장은 취임 첫해인 지난해에는 추도식에 참석조차 않았다. '박정희 흔적 지우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장 시장의 바뀐 모습이다.장 시장은 추도식에서 "올해는 구미공단 50주년이다. 공단 역사 등을 볼 때,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수의 상징 같은 느낌으로만 봐선 안 된다. 실용주의적, 혁신가적인 면도 있었다 본다"고 했다.또 "지난 50년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어온 구미의 오늘은 고인의 선구자적 결단, 구미와 상생해 온 기업들, 노동자들의 헌신 및 시민들의 봉사·노력의 결과"라며 "이는 국가 발전을 최우선에 둔 국가주의적 실용주의자이자 국토 개발과 산업화를 이끌며 세상을 끊임없이 바꿔나간 혁신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향에 베푼 큰 선물이었다"고 덧붙였다.고심과 성찰이 벼린 말이다. 의미는 복합적이다.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업적을 치켜세웠다. 또 기업의 노력, 노동자·시민의 피와 땀을 빼놓지 않았다. 산업화에 대한 장세용식 정의다. '박정희 흔적 지우기'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굳은 의지가 읽힌다.장 시장은 취임 후 민감한 언행으로 보수층의 반발을 자주 샀다. 이는 보수-진보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구미시 새마을과 폐지 및 새마을테마공원 명칭 변경 추진, 그리고 구미공단 50주년 행사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빠진 홍보 영상 상영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구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다. 많은 구미시민과 보수층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과 애착이 깊다. 장 시장은 이를 가볍게 여긴 것 같다. 물론 민주화운동을 한 역사학자로서의 소신이 있을 것이고, 지지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구미시장이며, 그에게 표를 주지 않은 사람들도 구미시민이다.5년 전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는 깜짝 놀랄 공약을 내놨다.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짓겠다는 것이다. 그는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산업화의 교육장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또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와 교류를 통해 지역주의를 깨는 역할도 염두에 뒀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는 이 공약 때문에 지지층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가 호된 후폭풍을 무릅쓰고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외친 이유는 뭘까? 당시 김 후보는 매일신문·대구평화방송 주최 '대구시장 여야 유력 후보 토론회'에서 "저는 맞아 죽을 각오로 박정희 컨벤션센터 건립,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화해 같은 역사적인 과제를 풀어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정치인은 유연하고,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고 김대중 대통령은 훌륭한 정치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후배 정치인들에게 이런 조언을 자주 했다고 한다. "정치인으로서 훌륭하게 성공하려면 서생(書生)의 문제의식과 상인(商人)의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 서생의 문제의식은 원칙과 철학을 강조한 것이며, 상인의 현실감각은 타협을 해서라도 일이 되게 하라는 의미다.장세용 시장은 대구경북의 유일한 더불어민주당 단체장이다. 그 이유만으로도 외롭고 힘든 일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집권여당 시장으로서 대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지층만의 '반쪽 시장'이 돼서는 안 된다. 구미와 구미시민 모두의 시장이어야 한다. 초헌관(初獻官)의 마음으로 구미 경제의 영광을 되찾는데 힘써주길 바란다.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멀다.

2019-11-03 14:31:36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공수처, 그 치명적 유혹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검찰 수사가 지긋지긋할지 모르겠다. 조국 수사는 그 아내가 구속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애초 조국 가족을 목표로 나선 수사가 아니었다. 그의 법무부 장관 사퇴를 노려 시작한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니 아내가 구속됐다고, 조 전 장관이 사퇴했다고 멈출 수 있는 수사가 아니다. 오히려 끝장 수사를 통해 공정과 평등, 정의를 되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 달라는 국민적 요구에 윤석열의 검찰은 직면해 있다.다급해진 것은 문 대통령 쪽인 듯하다. 아직 이유는 알 수 없다. 조국이 사퇴하자마자 이번에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들고 나와 민심을 휘젓고 있다.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검찰에 재갈을 물릴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여기는 듯하다. 문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 법안 처리를 당부하기까지 했다. 물론 '검찰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는 명분을 달았다. '검찰 개혁=조국' 구도가 '검찰 개혁=공수처'로 바뀌었다. 민심에 어긋나는 외침은 논쟁만 부른다. 검찰 개혁을 두고 '하필 왜 조국이냐'던 국민들은 이제 '왜 그걸 공수처가 해야 하느냐'고 묻고 있다.많은 국민이 검찰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검찰이 정치 중립적이지 않다고 판단했을 때의 이야기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죽은' 혹은 '죽어가는 권력'에 대해서는 냉혹하다는 평가를 받을 때 국민들은 검찰 개혁을 지지했다. 검찰이 지금처럼 대통령이 싸고돌 정도로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 중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국민은 모순투성이 조국이 시도했던 자가당착적 검찰 개혁이나 옥상옥이 될 공수처를 앞세운 개혁에 냉소한다. 차라리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말을 지킬 수 있을지의 여부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광장으로 뛰쳐나간 국민이건, 침묵하는 국민이건 숨죽이며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이유다.문 대통령에게 공수처는 치명적 유혹일 것이다. 여당 안대로라면 공수처는 주로 판검사들을 대상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검찰 개혁의 명분은 두 갈래다. 정치검찰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다. 그다음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공룡권력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수처는 어떤가.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돼 있지도 않으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는 모순덩어리다. 검찰의 힘을 빼겠다면서 그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갖춘 기관을 만들어 대통령 휘하에 두겠다는 계산이다. 게다가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공수처가 이첩을 요구하면 검찰이건, 경찰이건 사건을 넘겨야 한다. 검찰이 조국 수사를 시작했는데 공수처가 이를 마땅치 않게 여겨 넘기라면 넘겨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조국 관련 수사가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통령으로서는 그런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그러나 "권력은 부패하기 쉽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했다. 19세기말 영국의 철학자 액튼 경이 했던 이 명언은 시대를 관통해 유효하다. 제왕적 대통령 소리를 들었던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걸었던 길이 이를 웅변한다. 문 대통령 역시 대통령이 되기 전 그 폐해를 깨닫고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지금은 왼손에 검찰, 오른손엔 공수처를 쥐려 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을 능가하는 권력을 꿈꾼다. 당장은 달콤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달콤함에서 벗어나야 그 자신이 살고 나라가 산다.

2019-10-27 19:04:33

김병구 편집국부국장

[매일칼럼] 50년 숙원, K2 공군기지 이전

한국전쟁 이후 1958년 허허벌판이던 대구 동구에 군기지(제11전투비행장)가 들어섰다. K2 공군기지다. 1961년 이 자리에 대구공항이 부산비행장 대구출장소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공군군수지원사령부도 자리 잡았다. 645㏊(195만 평)가량의 상당한 면적이다.1970년대부터 기지 주변에 주택이 하나둘 들어섰고, 1980년대부터 전투기 소음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50년이 지난 현재 황량했던 대구공항 주변은 주택과 학교, 의류단지 등이 둘러싸며 건물로 빼곡히 들어찼다.1988년 첫 직선제로 뽑힌 노태우 전 대통령은 소음 문제 해결을 위해 K2 이전을 공약했다. 하지만 군사 요충지를 명분으로 한 공군의 반대에 밀려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1990년대에도 끊임없이 기지 이전이 거론됐지만, 공군이 군사 요충지라는 명분을 내세울 뿐 아니라 이전 비용을 점점 높게 추산(4조원→5조원 등)하면서 대구시나 지역 정치권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동구 주민들은 국방부의 주변 학교 방음창 설치나 소음 피해 정도에 따른 일부 배상비 지급에 불만을 삭이면서 지속적인 소음을 감내해야만 했다. 고도 제한에 따라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것은 물론 전투기 굉음으로 참으로 지난한 고통을 겪어왔다.전투기 소음은 동구 주민뿐 아니라 항로에 인접한 수성구, 북구 일부 주민들의 생활에도 지금까지 여파가 미치고 있다,2008년 동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유승민 의원도 소음 피해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K2 이전을 최대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회 상임위 자리 중 국방위원회만 맡으면서 줄기차게 노력했다. 유 의원은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마련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거뒀지만, K2가 영남권 신공항 논란에 함께 휩싸이면서 매듭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대구시와 지역 정치권은 그동안 K2의 경북 외곽 이전에 상당한 공을 들였지만, 경북 지방자치단체들은 소음을 유발하는 군 공항 유입을 한사코 반대해 왔다.2019년 현재 드디어 K2 이전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민간 공항과 군 공항의 묶음(패키지) 이전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지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다. 군 공항 소음 피해 지역을 최소화하는 대신 민간 공항 유치에 따른 상당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대구시와 경상북도, 군위군과 의성군이 통합신공항(민간 공항+K2) 이전에 적극 나선 것은 다행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군위와 의성이 통합신공항을 서로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고무적이다.다만, 대구시와 경북도가 연내 이전지 선정에 동의하면서도 최근 권영진 시장과 이철우 도지사의 입장이 완벽한 일치를 보이지 않고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듯해 우려스럽다.국방부도 자치단체 간 이견을 빌미로 통합공항 이전을 더 이상 미적대서는 안 된다.군위군수와 의성군수가 서로 자기 지역에 공항을 유치하려는 모습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혹시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까지 이번 사안을 대구경북 통합공항이라는 큰 틀에서 보지 않고 대구와 경북이라는 분리된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곤란하다.두 단체장은 대구경북이 경제 통합을 넘어서 행정 통합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더욱이 통합신공항은 경북의 공항, 대구의 공항이 아니라 그야말로 대구경북의 공항이란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지역민들의 50년 숙원 해결이 자칫 두 단체장의 미묘한 입장 차로 늦춰진다면 그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2019-10-20 18:08:08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먼저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혹시 기억하지 못할까 몇 가지만 추려본다."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 취임식에서 했던 말이다. 이 말은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앞서 한 방송사에 출연해서는 "만약 문재인 하야 시위가 일어난다면 광화문 광장에 나가 끝장 토론이라도 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말도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줄 때는 "권력 눈치 보지 말고,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하게 대해 달라"고 주문했다. 불과 석 달 전이다.문 대통령의 어록은 주옥같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힘주어 말 할 때 국민들은 감동했다.화려한 수사(修辭)가 진실을 가린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하지만 진실을 아는데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이제 그 말의 성찬은 감동이 아닌 분노가 되었다. 화려했던 수사는 부메랑이 되어 문대통령을 향해 날고 있다.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자니 화병이 날 것 같아' 광화문 '조국 파면' 집회에 참석한다는 국민이 많다. '문재인 하야' 소리가 집회 때 마다 나온다.평범한 국민조차 문 정권이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으려 들고', '상식대로 하면 손해만 보는 세상'을 만들었음을 직감한다. 침묵하던 대통령은 '끝장 토론'에 나서기는커녕 검찰총장에게 '검찰 개혁'을 '지시'하며 화살을 엉뚱한 데로 돌렸다.일찍이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이 놓치지 않아야 할 감각으로 사물과 인간에 대해 거리감과 균형감을 갖는 '목측능력(目測能力)' 즉 '눈대중'을 꼽은 바 있다. 정치인이라면 모든 것을 자로 재 듯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눈대중으로 전체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대다수 국민이 조국은 아니라는데 조국만 쳐다보고, 광화문에 모인 성난 군중을 보고도 '국민분열이 아니다'는 대통령의 눈대중은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국민 눈에도 한참을 못 미친다. 베버의 시각에서 보면 문 대통령은 적어도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사람인 셈이다.그래서인가 지금 세상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상식과 거리가 먼 일들이 너무나도 자주, 태연히 벌어진다. 권력 한복판에 선 조국 장관의 동생은 구속영장실질심사조차 포기했음에도 '건강상의 이유'로 풀려났다. 조국 부인의 증거인멸은 또 다른 유력자의 입을 빌리는 순간 증거인멸이 아닌 증거보전 시도가 된다. 검찰은 의혹 당사자인 조국부부의 휴대폰조차 압수수색하지 못했다. 부부에 대한 계좌추적 역시 손도 못대고 있다. 그 사이 이 권력실세는 '깨끗한 사람'이 된다. 죄도 없이 온가족이 검찰에 탈탈 털린 피해자로 둔갑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일가 비리를 수사중인 검찰을 향해 조급한 개혁안을 쏟아내고 있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들이다.국민들은 상식의 붕괴를 걱정하고 있다. 서울대총학생회가 조국 사퇴를 촉구하며 내세운 구호가 '상식이 지켜지는 나라'다. 의사 5천명이상이 서명한 선언문 제목에도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등장한다.독일 법학자 게오르크 옐리네크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 했고, 또 상식은 도덕의 최소한이라 할 수 있다. 그리 보면 상식은 법의 최소한의 최소한인 셈이다. 그런 상식이 허물어지면 그 빈자리는 혼란이 밀고 들어올 것이다. 다시 '상식이 통하는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

2019-10-14 06:30:00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이게 나라다운 나라인가

나라가 두 동강이 났다. 진보와 보수의 분열이 아니다. 좌파와 우파의 대결도 아니다. 오직 조국 한 사람이 촉발한 분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지난 주말 서울 서초동은 '조국 수호'와 '조국 파면'을 외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대구에서도 그랬다. 평범한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평소 정당 활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에 빠져 있다. 3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의 판박이다. 나라의 시계는 미래가 아니라 좌우로 쪼개진 시위대가 극렬하게 충돌하던 60년 전으로 돌아갔다.국민을 거리로 내모는 정치는 실패다. 조국 사태는 두 달이 지나도록 이어지며 온 국민을 정치판에 옭아매고 있다. 조국을 욕하는 사람들과 검찰을 비난하는 사람 간 감정의 골은 깊게 패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골은 더 크고 깊어진다. 전 국민이 둘로 갈려 이토록 증오하고 반목하게 한 죄는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가뜩이나 내우외환에 빠진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이 많아졌다. 이 정부 들어 경제성장률은 곤두박질쳤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는 봇물을 이루고, 외국인의 국내 투자는 반 토막이 났다. 무디스는 한국 기업들의 무더기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 지수가 치솟은 결과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라는 한국이 주변 강대국 외교 무대에서 패싱당하는 일은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된다. 온 국민이 국익을 위해 하나로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이다. 아까운 국력이 그렇게 소진되고 있다.그 중심에 조국이 있다. 그가 야기한 국가 분열은 이성적으로 설명 불가다. 그는 자신의 말과 글, 행동이 따로 노는 그저 그런 인물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를 둘러싼 해명은 지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자신으로 인해 온 나라가 불구덩이에 빨려들고 있는데도 자리에 집착하는 모습에서 그 그릇의 크기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조선시대 언관에게 탄핵당한 관리는 사실 여부를 떠나 사직해야 했고 무고함이 밝혀진 후 복직했다"고 트위터에 올렸던 그다. "시민과 언론은 '공적 인물'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공인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부분적 허위가 있었음이 밝혀지더라도 법적 제재가 내려져서는 안 된다"는 트윗도 했다.지금 정부 들어 윤석열의 검찰이 지은 죄를 찾기 어렵다. 애초 철저한 인사검증이 이뤄졌더라면 조국은 장관 꿈도 꾸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청와대가 못한 일을 지금 검찰이 하고 있다. 입장을 바꿔 전 정권에 대해 검찰이 그토록 악착같이 달려들지 않았더라면 현 정권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지금 검찰은 과거 정권에 매서운 칼날을 들이댔던 그 검찰이다. 과거 정권에 들이댔던 잣대를 지금 살아있는 권력에 들이댄다고 수사 중인 검찰을 향해 '검찰 개혁'을 이야기한다면 그야말로 개혁 대상이다. 무엇보다 윤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며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던 것은 문 대통령 자신이다.이제 국민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해주는 것이 문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다. 국민이 거리로 나와 정치 걱정, 나라 걱정을 하지 않게 해줘야 한다. 이야말로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는 길이며, '아무도 흔들지 못하는 나라'를 만드는 길이고,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는 길이다. 그러잖으면 조국이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2019-09-30 06:30:00

김병구 편집국부국장

[매일칼럼] 삭발, 그 뒷얘기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 정치권의 삭발은 낯설다.삭발은 그동안 진보 진영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1970, 80년대 운동권 학생들과 민주화 인사, 노동자·농민단체들이 자신들의 주장과 저항의 결기를 삭발이나 단식 등을 통해 표현해왔기 때문이다.하지만 강요된 삭발이나 단발은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과 무관치 않다.구한말 단발령, 일제 치하 학생들의 단발, 군사정권하의 두발 단속 등은 모두 일제에 의해 강요됐거나 일제 잔재의 하나였다.1895년 일제의 강요로 고종이 먼저 단발한 뒤 전국적으로 단발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는 유교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저항을 불렀다. 일제 치하 초·중·고 학생들이나 1970, 80년대 청소년들에 대한 두발 단속도 특정 집단을 단일 규제로 묶으려는 정치·사회권력의 대표적 통제 문화의 하나로 꼽힌다.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지난 16일 언론과 여론의 관심 속에 삭발을 단행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을 따내야 할 국회의원, 원외 당협위원장 등 상당수도 자리를 함께했다. 원내 사령탑인 나경원 원내대표도 눈에 띄었다.이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 2년 5개월 만에 어깨 수술을 위해 구치소를 나오는 날이기도 했다. 태극기 부대를 비롯한 일부 지지자들이 '박근혜 석방' 등 구호를 외쳤지만 황 대표의 삭발 소식에 가려 메아리는 크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때 대통령과 국무총리로 국정 파트너였지만, 이날은 투쟁하는 제1 야당 대표와 질환에 고통받는 수감자로서 각자의 길을 나설 뿐 상호 교감이나 관심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황 대표는 왜 하필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를 나오는 날 삭발을 감행했을까. 이날 오후 5시에 할 삭발을 오전부터 대대적으로 예고하면서까지. 여기에는 의도성이 다분하다는 시각도 있다.황 대표의 삭발 이후 한국당 인사들의 삭발이 이어지고 있다.상대적으로 공천권 확보가 여의치 않은 비례대표나 원외 인사들이 초반 삭발을 주도하다 뒤늦게 일부 지역구 의원들까지 뒤따르는 모양새다.황 대표는 삭발 릴레이가 계속되자 '공천을 위한 퍼포먼스 삭발'이란 역풍을 우려해 최근 자제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황 대표 본인으로서는 이제 삭발 효과는 충분히 거둘 만큼 거뒀다고 판단한 셈이다.그도 그럴 것이 삭발을 통해 구치소 밖 병원 입원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쏠릴 여론을 차단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황 대표로서는 '박근혜 신당설'을 비롯해 보수층의 관심이 박 전 대통령 쪽으로 모이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더욱이 총리 시절 황 대표에 대한 '문자 해임통보'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치소 의자 반입 불허'로 얽힌 양측의 좋지 않은 감정이 지금까지 계속 쌓여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나 원내대표도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대권에 관심을 품고 있는 그로서는 원내에서의 정책 투쟁이야말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하지만 한국당의 투쟁은 광화문이나 청와대 집회, 삭발 등 장외로만 향하고 있어 곤혹스러운 지경이다. 이런 투쟁에 대한 관심과 공은 오롯이 황 대표에게로 돌아가기 마련이기에 떨떠름할 수밖에 없다. 한국당 안에서 장외 투쟁이 반복되는 것을 반대해온 나 원내대표의 속내이기도 하다.정치권에서는 황 대표가 이번 삭발을 통해 문재인 정권에 대한 제1 야당 대표로서의 투쟁 결기는 물론 박 전 대통령과 나 원내대표에 대한 견제 등 일석삼조를 거뒀다는 뒷얘기가 나온다.

2019-09-22 16:18:07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공정과 정의가 사라진 나라

추석 민심은 조국 법무부 장관 편이 아니었다. 삼삼오오 모인 곳에선 어김없이 탄식과 분노가 터져 나왔다. '조국 사태'로 두 동강 난 '나라 꼴'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젊은이들은 이 땅에 정의가 남아 있긴 하냐며 자조했다.나라 꼴을 이렇게 만든 주역은 '공정'과 '정의'를 말해 온 조국 자신이다. 추석 민심이 끓어 오른 것은 그의 말과 행동에서 이중성을 읽었기 때문이다. '공정'과 '정의'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에게서 이를 실천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반면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려 한 흔적은 넘쳐 난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천연덕스레 늘어놓았던 그다.'선친이 했다'던 딸의 출생신고는 사흘도 안 돼 자신이 한 것으로 밝혀졌다. '총장상을 준 적이 없다'고 폭로했던 최성해 동양대 총장에겐 '위임해 준 것'으로 하자며 회유를 시도했다. 그의 부인은 '사문서 위조 혐의'로 기소됐다. 그가 이사로 있던 웅동학원이 관련 소송에서 한 번도 변론을 않아 패소를 자초한 일은 수상하기 짝이 없다. 모르쇠로 일관했던 가족 사모펀드가 투자한 웰스씨앤티의 사업 수주와 투자 유치 과정은 의혹투성이다. 해외로 달아났던 펀드의 핵심 5촌 조카는 버젓이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온갖 거짓과 불법 의혹을 두고 윤석열의 검찰이 그와 그 가족을 정조준하는 것은 상식이다. 이를 두고 정치 검찰의 부활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번 추석, 국민 관심은 '검찰 개혁' 이 아니라, 오롯이 '검찰에 대한 지휘권을 거머쥔 조국과 그 가족'을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에 쏠려 있었다. 검찰 개혁 설문조사(SBS) 결과 '조 장관이 검찰 개혁 적임자여서 잘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18.9%에 불과했다. 국민은 더 이상 자신의 말대로 만신창이가 된 조 장관이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떠나 검찰 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검찰 개혁의 적임자란 명분을 내세워 임명됐는데 개혁을 할 수 없다면 법무부장관으로 자격도 사라진다.윤 검찰총장을 임명하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를 가져 달라'고 했던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네 편 내 편에 따라 다른 잣대를 주문하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제기된 의혹과 공정의 문제를 깡그리 무시하며 대통령이 임명했을 때 국민은 이 정부의 자랑거리이던 공정과 정의가 스스로 부정되는 것을 목도했다.공정과 정의가 사라진 나라에서 조국은 살아 펄펄 뛰는 권력이다. '공정한 법질서를 만들겠다'는 등의 공허한 수사를 제외하면 그런 권력자의 취임 일성이 "검찰에 대한 적절한 인사권 행사"였다. 2년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과 달리 검사 인사권은 사실상 법무부 장관이 행사한다. 그의 과거 행태로 보면 그가 말한 적절한 인사권 행사가 자신과 관련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 특수부를 의식해서라는 의심은 자연스럽다. 취임 이틀 만에 내놓은 법무부의 검찰에 대한 감찰 활성화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취임하자마자 법무부 차관과 검찰국장이 대검찰청 간부들에게 '윤석열 총장을 배제한 특별수사팀을 구성하자'는 제안을 내놓은 것도 공교롭다. '보도를 보고 알았다'는 조 장관의 말은 놀랍지도 않다.조국은 그렇게 공정과 정의의 화신이 아닌 '내로남불'과 '유체 이탈 화법'의 대가가 됐다. 그가 그 자리에 머무는 한 '공정' '평등' '정의'는 한낱 물거품일 뿐이다. 나라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이쯤에서 그만 내려놓을 때가 됐다. 그게 정권이 아니라 나라를 구하는 길이다.

2019-09-16 06:30:00

김교영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

"우리는 2016년의 대한민국을 기억한다. 시간이 흘렀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제도적인 정비는 미흡하고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는 그들만의 리그는 무너지지 않는 듯하다…(조국 후보자에 대한 의혹은 물론) 고위 공직자 자제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하라. 이러한 사태가 과연 이번 후보자만의 문제겠는가. 이미 존재하는 그들의 카르텔에 대한 전면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8월 26일 발표한 경북대총학생회 성명)준엄한 경고다. 이 성명은 국민들의 공감을 불러왔다. 이화여대 커뮤니티에 올라온 풍자도 곱씹어야 한다. "개천에서 용이 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자더니, 우리는 그냥 평생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라는 거냐." 이는 조 후보자가 2012년 트위터에 올린 글에 대한 비판이다. 당시 조 후보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표현에 빗대어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청년의 가슴을 부풀게 했다.우여곡절 끝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끝났다. 의혹은 풀리지 않았고,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투게 됐다. 대통령은 임명을 고심하고 있다. 조국 사태는 진영 간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됐다. 이를 바라보는 세대와 계층 간의 간극도 크다.조국을 둘러싼 의혹은 청년과 서민에게 큰 상처를 줬다. 불법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내면 된다. 하지만 청년과 서민의 절망과 분노는 어쩔 건가. 조국 사태는 '정의' '공정' '평등'에 대한 기대를 짓뭉개버렸다. 가진 자의 기득권이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사람들은 "보수나 진보나 도긴개긴"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불법이 아니면 특혜를 누려도 상관 없다는 이기심이 세상을 지배할까 두렵다.국회 인사청문회는 '그들만의 리그'의 연작이다.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자녀 입시비리 및 취업청탁 ▷논문표절 ▷탈세 등은 청문회 세트 메뉴다. 청문위원으로 후보자를 이런 의혹으로 공격하던 사람이, 훗날 후보자가 돼 같은 의혹으로 추궁을 받는 부조리를 너무 많이 봤다.사회 여론을 이끈다는 지식인과 유력 인사들은 또 어떤가. 낮에는 재벌과 부자들을 비판하면서, 밤에는 자신의 이익 궁리에 바쁘다. 이런 아수라판 속에서 서민과 약자들은 아등바등 살고 있다.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자본을 경제자본, 문화자본, 사회자본으로 세분했다. 경제자본은 부동산, 현금 등을 말한다. 문화자본은 가정교육과 가정환경으로 획득한 일체의 것을 뜻한다. 사회자본은 인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총체다. 이들은 따로지만, 상승작용을 해 자본을 확대한다. 부르디외의 이론은 부의 세습, 소득 양극화, 소득 수준에 따른 교육 및 건강 격차 등의 사회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최근 출간된 '20 vs 80의 사회'가 회자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인 리처드 리브스가 쓴 이 책은 한국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저자는 미국 사회 20%인 중·상류층이 대입·부동산·인턴제도 등을 중심으로 '기회 사재기'를 통해 불평등을 대물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자신도 20%에 속한다고 한 저자는 "(중·상류층이) 이기심을 희생해야 한다"며 각성을 촉구한다.조국 사태는 큰 숙제를 안겼다.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로남불은 적폐다. '내 안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이 열린다.

2019-09-08 14:15:11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나라를 망치는 데 조국 하나면 족하다

대통령이 사람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은 통치의 기본이다. 과거 선현들이 '신하를 가려 쓰는 것'을 군주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꼽은 것과 같다. 반경(反經)의 저자 조유(趙莥)는 이를 두고 "사람을 아는 것이 군왕의 길"이라고 콕 짚었다.군주의 사람 보는 눈은 중요하다. 군주가 어리석으면 자신을 위태롭게 하고, 나라를 위기로 몰고 간다. '이순신과 12척의 배'에 나라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사태를 자초했던 선조가 대표적이다. 선조는 '왜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던 황윤길을 서인이라는 이유로 내치고 '왜의 침략은 없다'고 한 동인 김성일의 보고를 받들었다. 정작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달아나기 바빴다.선조는 간신 원균의 꼬드김에 빠져 충신 이순신을 내쳤다. 결국, 다시 등장한 이순신은 12척의 배로 왜구와 맞서며 나라를 구했다. 하지만 선조는 천수를 누렸고 이순신은 전사했다. 이렇듯 어리석은 군주를 만나면 나라는 위태해지고 국민의 삶은 피폐해지기 마련이다.사리사욕이 앞서 군주의 눈과 귀를 흐리게 만든 간신은 역사에 널려 있다. 고려사에도 "세상에 간신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世未嘗無姦臣也)는 기록이 나온다. 문제는 이를 꿰뚫어보는 군주의 혜안이다. 송사 유일지전은 "천하의 다스림은 여러 군자로도 이루기 부족하지만 망치는 것은 소인 하나로도 남는다"(天下之治, 衆君子成之而不足, 一小人敗之而有餘) 했다.그렇다 보니 온갖 '변간법'(辨姦法'간신을 가리는 법)이 나왔다. 한나라 유향은 '설원'(說苑)에서 이를 육사신(六邪臣'해로운 여섯 유형의 신하)이라 정리했다. 먼저 자리 보전에만 급급하며 사리사욕만 채우는 구신(具臣)이다. 오직 군주의 마음만 사로잡으려 하는 유신(諛臣)이 있고, 군주로 하여금 신하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만들어 사욕을 채우는 간신(奸臣)이 있다. 거짓으로 타인을 끌어내리는 참신(讒臣), 당파를 만들고 권세를 제멋대로 휘두르는 적신(賊臣)이 이어진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망국신(亡國臣)이다.육사신을 가려내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간신열전에 그 예가 많다. 당 덕종때 노기(盧杞)는 현란한 말솜씨로 황제에게 다가갔다. 황권을 가리고 온갖 못된 짓을 했으니 장안에서 문을 닫지 않은 상점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변방 절도사들이 결국 반란을 일으켰다. 덕종은 도망치는 신세가 됐다. 노기는 반란을 진압한 절도사에 의해 처형됐다. 그래도 덕종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가 죽은 뒤 덕종은 말한다. "노기의 충정과 청렴을 모르고 사람들은 간사하다고 하니 짐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필이 답했다. "노기가 간신인 것을 폐하만 모르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노기가 간사하다는 증거입니다. 진작 깨달았다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겠습니까."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두고 나라가 들썩인다. 일개 장관 후보자를 두고 온 나라가 이렇게 흔들린 적은 없었다. 국민들은 그의 언행에서 '평등, 공정, 정의' 대신 '불평등, 불공정, 불의'를 읽는다. 그에게선 '법의 수호자'가 아니라 국익을 앞세워 사익을 챙긴 육사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노자가 꼽은 통치의 가장 하수는 '통치자를 조롱'하는 단계다. 지금 온 국민이 '조로남불'이니 '조국캐슬' '조적조'라며 조롱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침묵하고 범여권은 '조국 구하기'에 맹목적이다. 이에는 대통령의 뜻이 담겨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진정 대통령이 그를 쳐내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2019-09-02 06:30:00

김병구 매일신문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낙하산과 험지

내년 총선을 약 8개월 앞두고 보수 진영의 두 인물이 지역에서 주목받고 있다.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와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이다.두 인사는 많이 다른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총선 국면을 앞두고 염치없고 옹졸한 공통점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보수 진영의 대권 후보에 관심 있는 두 인사가 총선에 출마하는 것은 전혀 나무랄 일이 아니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으로도 보인다.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총선 출마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 방식이 당당하지도 않을 뿐더러 대권을 꿈꾸는 인사의 위상으로는 전혀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현재까지의 행보로 볼 때 이들은 내년 총선에서 한국당의 텃밭인 대구경북(TK)에 손쉽게 안착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것도 다른 후보와 직접 맞붙기보다는 전략 공천을 은근히 바라는 모양새다. 안방에서, 그것도 내리꽂기를 통해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으로 금배지를 그저 거머쥐겠다는 속셈이다.이들은 언론 접촉이 있을 때마다 TK 출마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지역의 바닥 민심이 심상치 않다" "이대로는 TK 석권이 어렵다"며 한국당 내 총선 불안감을 은근히 부추기면서 중량감 있는 자신들이 출마해야 한다는 논리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지역 여론에 대한 '간보기'이자, 한국당 지도부에 대한 '공천 희망 메시지'를 동시에 던져보는 사전 포석이다.홍 전 대표는 내년 총선 출마지로 대구 몇몇 곳을 언론을 통해 흘리고 있다. 속내로는 그중에서도 대구 달서병이나 북을을 가장 원하고 있는 것으로 한국당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홍 전 대표가 속내를 드러내 이 지역을 끝까지 고집한다면 지역민은 물론 당내의 비아냥거림을 피해 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달서병과 북을은 한국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없는 곳으로, 대구 어느 곳보다 공천을 얻기 쉬운 곳이다.북을은 대표 시절 자신이 당협위원장을 셀프 임명한 곳이고, 달서병은 자신의 비서실장을 지낸 강효상 국회의원(비례)에게 당협위원장 자리를 넘겨준 곳이기도 하다.김 전 비대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그가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대구 수성갑은 정순천 전 대구시의회 부의장을 자신이 직접 당협위원장으로 임명한 그 지역이다. 수성갑에 꾸준히 밭을 갈아온 정 전 부의장이나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 정치 지망생 등을 제치고 낙하산으로 내려앉겠다는 것은 몰염치하기 그지없는 행태다.홍 전 대표와 김 전 위원장이 진정으로 대권 도전에 마음이 있다면 텃밭이 아닌 험지에 출마해야 마땅하다.홍 전 대표의 험지는 초·중·고를 다닌 대구도, 도지사를 지낸 경남도 아니다. 김 전 위원장도 고향인 경북이나 학창 시절을 보낸 대구를 출마지로 택해서는 여론의 차가운 눈초리를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이들이 출마지로 꼽아야 할 곳은 바로 한국당의 험지이자, 대권의 교두보로 삼을 수 있는 수도권이다.대권이 아니라, 이를 빌미로 국회의원 자리 한 번 해볼 심산으로 TK에 내리꽂기를 시도한다면 자신의 고교대학 후배에게 망신만 당하고 대구 입성에 실패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전철을 되밟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각인하기 바란다.그나마 TK 외에는 어느 곳도 발붙일 선택지가 없다면 전략 공천에 기대지 말고 당당히 경선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

2019-08-25 17:08:14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국민 자존심은 무너진다

'한강의 기적'이란 말에 익숙했던 탓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8·15 기념사에서 '동아시아의 기적'을 말했을 때 뜨악했다. 한국의 대통령이, 광복 후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야기했으니, 당연히 '한강의 기적'이란 말이 나올 줄 알았다. 기대는 어긋났다. 문 대통령은 끝까지 '한강의 기적'을 언급하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기적을 말했지만 누가 그 주역이었는지도 침묵했다.'한강의 기적'은 폐기할 수 없는 한국 경제 성장의 상징이다. 폐허가 된 전쟁터에서 중화학공업 육성과 수출주도형 경제로 중진국으로 도약하는 기적을 일군 것이 '한강의 기적'이다. 세계가 한국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기성세대라면 누구나 경험한 일이다. 문 대통령이 말한 세계 6대 제조강국, 6대 수출강국의 원천 역시 '한강의 기적'이다. 그러지 못했다면 한국은 여전히 북한처럼 아직도 '이밥에 고깃국' 타령이나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강의 기적'은 '동아시아의 기적'으로 치환 불가한 한국민의 자존심이다.우리나라가 세계 어느 나라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나라라는 지표는 차고 넘친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 이상 국가)에 들었다. 지난해 IMF가 정한 세계 GDP 순위에선 11위에 올라 있다. 세계은행의 순위론 12위다. 세계 6위 수출대국이다. 국토 면적 순위 세계 109위, 인구 기준 27위 나라로는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뿐 아니다. 요즘 K팝에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한다. 드라마, 영화로 시작한 한류는 이제 세계 문화로 확산하고 있다.경제성장을 통해 국력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세계가 한국을 주목했을 리 없다. 국력이 뒷받침하지 않았다면 과거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국민 자긍심은 크고 자존심은 세졌다. 국민들은 어찌하면 더 강한 나라, 더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꿈꾸고 있었다.그런 대한민국이 마구 흔들린다. '한강의 기적' 이후 키우고 지켜온 국민 자존심이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다. 꿈은 멀어지고 네 편, 내 편 갈려 서로 적개심만 불태운다. 한국이 영락없는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대일 경제 전쟁이 벌어지자 문 대통령은 남북 경협으로 일본을 단숨에 넘겠다며 '평화경제' 카드를 내밀었다. 한반도는 세계 1·2·3위의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 일본의 각축장이다. 한국은 IMF 기준 11위 경제국이고 북한은 98위까지 매긴 IMF 순위 밖에 있다. 그런 집단과 협력해 극일하겠다는 발상이 국민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현실은 북한이 잘 짚고 있다. 북은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仰天大笑·하늘을 보고 크게 웃음)할 노릇"이라 했다.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며 콧방귀를 뀌고 있다. 그들 앞에 문 대통령은 '겁먹은 개'고,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이다.그런데도 아무 소리도 못하는 대통령은 비굴하고, 국민들은 비참하다. 국제적으로 이리저리 차이고 조롱당하면서도 말로 이루는 '평화'에 흠이 날까 집착하는 모습에 국민 자존심은 여지없이 또 무너진다.안보 경제가 모두 위기에 빠진 요즘 한국을 구한말에 견줘 걱정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당시 황준헌의 '조선책략'은 조선을 '연작처당'(燕雀處堂)에 빗댔다. 사람의 집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사는 제비와 참새가 집이 불타 저 죽을 줄도 모르고 재잘거린다는 뜻이다. 그런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

2019-08-19 06:30:00

김교영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한일 경제전쟁에서 빛나는 시민의식

시민들이 다시 촛불을 들었다. 무도(無道)한 일본 아베 정부에 대한 항거다.9일 대구에서 처음으로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경제보복 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NO 아베'를 외쳤다.서울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10일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70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아베 규탄 시민행동'이 '아베 규탄 4차 촛불문화제'를 개최했다. 시민행동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배상 판결로 촉발된 일본의 경제보복 조처가 '침략 역사에 대한 반성 거부'이자 '부당한 보복 조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일본 경제보복에 시민들의 첫 대응은 불매운동이었다. 이는 민주시민의 자발적인 주권 행사다. 불매운동은 들불처럼 번졌다. 하지만 열기가 고조되면서 우려가 제기됐다. 격한 반일(反日)로 비화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일식집은 손님이 끊겼다. 주인이 한국인이며, 국내산 재료를 쓰는 곳이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일본산 자동차는 세차장에서 퇴짜를 맞기도 했다. 일본산 제품을 쓰거나 사려는 사람에게 눈을 흘기는 일도 벌어졌다.정치권과 지자체는 한술 더 떴다. 여당은 '열두 척의 배' '죽창가' '의병' 등의 상징어로 국민 정서를 자극했다. '도쿄 여행금지' '올림픽 보이콧' 등의 제안도 내놨다. 일부 지자체는 한일 교류까지 중단했다. 자유한국당은 '신쇄국주의'라며 정부와 여당에 총질을 했다. 시민들은 혼란을 겪었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며, 어떤 것을 먹지 말아야 할지.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민사회는 엇나간 애국주의를 경계했다. 서울의 한 구청은 'NO 재팬' 깃발을 걸었다가 하루 만에 내렸다. 시민들의 질타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정부·정치권의 지나친 반일 행보를 호되게 비판했다. 시민사회는 'NO 재팬'이 아니라 'NO 아베'로 선을 그었다. 그래야 극일(克日)할 수 있다는 것이다.현명한 전략이다. 우리의 투쟁 대상은 일본 국민이 아니라, 일본 정부와 극우집단이다. 쇼비니즘(chauvinism·배타적 애국주의)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일본 국민을 배척하면 국제사회와 세계 시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또한 아베 정권을 끌어내리는 힘(투표권)은 일본 국민에게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일본에서도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들은 지난 8일 참의원회관에서 집회를 열고 '평화에 역행하는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정책에 항의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앞서 4일에는 도쿄 신주쿠역 앞에서 일본 시민들이 모여 '아베 정권 타도'를 외쳤다. 트위터에선 '#좋아요_한국' 등의 해시태그를 게재하는 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일본의 저명인사들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철회를 촉구하며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들은 '반(反)아베 공동전선'을 형성하기도 했다. 양국의 시민단체로 구성된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 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15일(광복절) 서울에서 '국제평화행진'을 한다.일본의 양심 세력이 일본에서 영향력을 갖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한국 시민사회는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 일본은 국제분업과 자유무역질서를 위배했다. 더욱이 식민지배 역사의 잘못을 부정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 정부에 공존공영과 호혜 협력 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인류의 보편 가치이며, 국제규범이다. 우리는 자신감을 갖고 우호적인 국제여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시민사회의 책무는 막중하다.

2019-08-11 14:28:46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문재인 대통령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대통령 취임 때도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고 했다. 대통령의 뜨거운 열정은 실현됐다. 우리는 지금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한일 관계가 이토록 얼어붙은 적은 없었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라더니 일본이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인 한국만 콕 집어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북이 연일 신형 미사일을 쏘아대도 꿈쩍도 않던 대통령이 직접 나서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며 비장한 각오로 일전을 독려했다.한일 지도자들이 서로의 나라를 두고 '적반하장', '믿을 수 없는 나라'라며 노골적으로 능멸하는 상황은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양국 리더십이 정면으로 충돌하자 반세기 넘도록 쌓아온 한일 신뢰 관계는 한순간 적대 관계로 전락했다. 대통령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기업인은 없고, 불안해하는 국민은 많다. 저지레는 두 나라 정상이 하고, 걱정은 국민이 한다. 일찍이 없던 일이다.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다.안보는 시계 제로다. 북은 연일 신형 무기를 과시한다. 물론 한국이 '과녁'이다. 북은 우리 미사일 방어체계로 잡을 수 없는 신형임을 감추지도 않는다. 액체 연료던 미사일이 고체 연료로 바뀌었다. 고체 연료라면 우리 정부가 믿고 의지하는 킬 체인은 무력화되기 십상이다.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능력을 과시하고, 이를 탑재할 수 있는 3천t급 잠수함을 건조해도 정부는 무덤덤하다.반면 북은 악착같다. 사사건건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을 거론한다. 우리가 F-35기를 들여올 때도,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할 때도 어김없이 '자멸' '불바다' 운운하며 딴죽을 걸었다. 정부가 한 일은 그때마다 스스로를 무장해제한 것이다. 우리 군은 더 이상 북을 주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사실상 중단됐다. 한미일 동맹은 더 이상 굳건하지 않다.동맹이 흔들리니 영해와 영공도 흔들린다. 주변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를 건드리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해 7분 동안을 헤집고 다녔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동시에 우리나라 KADIZ를 연합해 침범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툭 하면 우리 안보를 시험하고 능멸한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를 대신하는데 돈을 내라며 압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영락없는 동네북 신세다. 그런데도 이를 경계하면 반평화주의자로 낙인찍힌다. 우리는 분명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다.경제성장률은 뚝뚝 떨어진다. 우리가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것은 보았지만 세계 성장률을 갉아 먹는 꼴은 처음이다. 수출이 쑥쑥 늘어나는 상황엔 익숙해도 두 자리로 감소하는 꼴은 경험하지 못했다.어쩌면 우리는 이미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서 계속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2013년 미국의 석학 엠마뉴엘 페스트라이쉬가 저서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말한 그 나라다. 그는 책에서 '저개발국가에서 선진국이 된 특이한 국가 발전 경험'을 이야기하고 자부심을 가지라고 주문했다. 그 세상에서 우리는 소득 수준 60달러에서 3만달러를 이루는 기적을 일궜다.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원조를 받던 나라서 주는 나라가 됐다.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기대하기보다 차라리 과거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꿔 나가는 편이 나을 뻔했다.

2019-08-05 06:30:00

김병구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개싸움과 소비 주권

"개싸움은 우리가 한다. 정부는 정공법으로 나가라.정부가 선동한 적 없다. 사회단체가 나선 것도 아니다. 그냥 국민 한 명 한 명이 빡쳐서(화나서) 스스로 하는 운동이다. 밖으로 큰 내색 않고 조용히, 언제나 그러했다는 듯 일상적으로 쓰던 것 안 쓰고, 꼭 써야 하는 것 다른 제품을 씀으로써 실행하게 될 것이다.삼성, 애증이 교차하는 우리 대표 기업이다. 우리 경제의 대표 주자이면서 범법행위도 많이 저질렀다. 그런 삼성의 옆구리에 비수를 들이대고 무너뜨리려 했다. 아무리 미워도 우리 기업에 부당하고 비겁한 공격이 들어오는 것은 못 참는다. 때려도 우리가 때릴 것이다.우리 국민들이 개싸움을 할 테니 정부는 당당하게 WTO 제소도 하고, 국제사회에 일본의 후안무치함과 편협함을 널리 알려라. 외교적으로 당당하게 나가라."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급속히 퍼지고 있는 글의 일부다.전쟁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적이 총칼을 앞세워 공격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무릎을 꿇어라'고 하는 이들은 첩자이거나 무기력한 패배자와 다름없다.더욱이 적의 공격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총부리를 내부로 겨누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의 굴욕을 다시 부르는 지름길이다. 무역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겨냥하지 않은 채 '토착 왜구'니 '토착 종북'이니 하면서 내부에서 서로 헐뜯기에 급급한 일부 진영의 행태를 보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물을 퍼내거나 구명장비를 챙길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 '네 탓'만 하고 있는 꼴이다.일본은 비겁하고 치졸한 방식으로 도발했다. 우리 정부가 타깃이면서도 애먼 우리 기업에 총칼을 들이대고 있다. 외교적 불만을 외교적으로 풀려고 하지 않으니 비겁하다. 도발의 이유로 여러 핑계를 들이대는 구차함과 치졸함도 엿보인다.일본의 도발이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란 것은 이제 국제사회에까지 알려지고 있다. 우리 사법부의 판결을 두고 한국 정부의 개입을 압박하거나 기업에 보복규제를 가하는 것은 상당히 무례하고 외교 관례나 국제 무역 질서에도 어긋나는 짓이다.일본이 이렇게 무리한 보복 조치를 밀어붙이는 저변에는 한국을 동등한 국가 간 관계로 보지 않고 '아래로 보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힘이 커진 데다 현 정부가 과거처럼 일본에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점도 이번 사태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여기에다 아베 총리 개인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고 존재감을 과시하겠다는 의도도 다분해 보인다.이런 마당에 우리 대통령이 먼저 아베에게 머리를 숙이라거나 제3국의 중재에 기대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은 치욕적이고 안일하게 들린다. 우리의 힘을 과신해서도 안 되겠지만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거나 비하할 필요는 더욱 없다.특히 민간에서 조용히, 그러나 온라인·오프라인 양동작전으로 세련되게 펼치고 있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폄하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도 바람직한 자세로 보기가 어렵다. 지나친 감정적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외교와 국제관계에 적용될 뿐 민간 부문의 운동에서는 감정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 감정 없는 싸움은 동력이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역전쟁에서 국민의 무기는 소비 주권이다. 기업은 자생력, 정부는 외교력이 무기다.이런 면에서 소비 주권을 지혜롭게 행사하는 국민들께 큰 박수를 보낸다.

2019-07-28 16:13:52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나라

불과 반세기여 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1955년 IMF에 가입할 때 1인당 GNI(국민총소득)는 65달러로 필리핀은 물론 아프리카 가봉보다 적었다. 같이 전쟁 참화를 겪은 북한도 우리보다는 한참을 더 잘살았다.외국의 평가 역시 냉혹했다. 미국의 국제개발처(USAID)는 한국에 막대한 원조금을 쏟아부었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자 원조를 줄이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pouring water into a sieve)라고 냉소했다. 같은 해 UN한국재건위원회 인도 대표 메논은 보고서에 '쓰레기통에서 과연 장미꽃이 피겠는가'라고 썼다. 영국의 '더 타임즈' 역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을 찾는 것과 같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은 간 데 없고 가난하고 더럽고 무질서한 나라에 대한 조롱은 넘쳐났다.이런 조롱을 박차고 기적을 일구는데 적어도 50년 세월이 걸렸다. 기적은 '후손들에게 잘사는 나라를 물려주자'고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시작됐다.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했다.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이었다. 65달러던 소득이 어느덧 1만달러, 2만달러를 넘었다.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카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1993년 한국의 경제성장을 다룬 논문을 쓰며 '기적 만들기'(Making a miracle)란 제목을 붙였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그 어떤 경제정책이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 기적이라 했다. 세계적 석학 기 소르망은 '한국의 경제발전사는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치켜세웠다.경제 규모가 커지자 국제무대에서 위상이 달라졌다. OECD에서 나아가 2009년엔 OECD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 멤버가 됐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다. 2010년엔 G20 정상회의가 한국에서 열렸다. 당시 G20을 개최한 나라로는 미국, 캐나다, 영국이 전부였다. 한국이 아시아 국가 첫 G20 개최국 지위를 얻은 것이다. 모두가 한국의 경제 발전에 주목하지 않았다면 어림없을 일이다. 일본도 올해에야 G20을 유치했다.혐한론으로 들끓던 일본에서조차 '한국을 배우자'는 말이 나온 것도 그때였다. 요미우리 신문은 '지금은 더 이상 일본이 아니라 한국의 시대'라고 인용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세계에서 약진하는 한국 기업에 배우자'는 사설을 실었다. 한국을 쓰레기 더미에 비유했던 더 타임즈도 '한국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며 "인구는 인도의 20분의 1인데 영국보다 더 많은 상품을 수출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향후 영국이 추구해야 할 완벽한 롤 모델'로 한국을 지목했다.그로부터 10년이 안 지났다. 한국을 벤치마킹하려는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경계심은 허물어졌다. 대신 한국 패싱이 똬리를 틀었다. 한국을 다시 조롱거리로 삼으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속의 한국은 초라해졌다. 각 기관들은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앞다퉈 낮추고 있다. 세계 성장을 견인하던 한국이 오히려 세계 성장률을 갉아먹는 신세로 전락했다. 수출은 7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한국의 원전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반면 일본은 아베 정권 출범 후 29년 만의 최장 호황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 다시 만만한 나라가 됐다. 이러다가 후손들에게 '잘사는 나라' 대신 빚만 물려주게 생겼다. 이 모든 것이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여 만에 벌어지고 있다.

2019-07-22 06:30:00

편집국 편집국부국장

[매일칼럼] 오늘의 그들이 어제의 우리였다

지난주 대법원은 이혼한 이주여성이 억울하게 추방되는 것을 막는 판결을 내놨다. 이혼 책임이 한국인 배우자에게 더 많다는 사실만 증명되면, 이주여성의 체류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한국인 배우자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을 때만 체류 연장이 가능하다'고 봤던 기존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재판부는 "(이주여성이) 정상적인 혼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어 이혼에 이르게 된 것이 오로지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사유 탓인 경우에만 체류 자격을 연장해 준다면, 외국인 배우자로서는 혼인 관계를 적법하게 해소할 권리를 행사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한국인 배우자가 이를 악용해 외국인 배우자를 부당하게 대우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이 판결은 '베트남 아내 폭행 동영상'으로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우리 사회에는 결혼이주여성에게 차별적인 제도와 인식이 있다. 이주여성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 이혼을 하려면 추방을 각오해야 한다. 이주여성의 체류권이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존되는 독소 조항 때문이다. 이주여성이 비자 연장이나 영주권 신청을 할 때는 남편의 신원보증이 꼭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이주여성들이 가정폭력에 피눈물 흘리면서도 이혼을 꺼린다.가정폭력에는 나쁜 인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가부장주의와 성차별이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의 경우 언어·문화적 갈등과 차별·멸시가 추가된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성일수록 그 정도는 심하다.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결혼이주여성(920명)을 조사한 결과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10명 중 4명(42.1%)이 가정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가정폭력 유형은 ▷심한 욕설(81.1%) ▷한국 생활 방식 강요(41.3%) ▷폭력 위협(38%) ▷생활비 미지급(33.3%) ▷성행위 강요(27.9%) ▷부모·모국 모욕(26.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국제결혼 과정이 이런 결과의 원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결혼은 '인연'보다는 '거래'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베트남 여성,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2007년 미국 국무부의 인신매매보고서에 증거물로 공개된 한국 길거리의 현수막 문구다. 보고서는 브로커를 통한 한국의 국제결혼을 인신매매로 규정하며 "동남아 저개발국 여성들을 상품처럼 다룬다"고 지적했다.지금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베트남 여성은 순종적이다. 생활력이 강하다. 부모님을 극진히 모신다' 등의 표현을 쓰고 있다. 또 업체들은 여성의 국적에 따라 권장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 국제결혼업체 홈페이지에 소개된 '베트남 결혼 일정표'는 놀라울 따름이다. 현지에서 7박 8일간 일사천리로 결혼까지 이뤄진다. 몇 번의 맞선을 거쳐 3일 차에 '최종 결혼 승낙', 4일 차에 결혼식과 웨딩 촬영을 한다. 이후 혼인 접수와 데이트로 '결혼 원정기'는 마무리 된다.한국에서 국제결혼은 전체 혼인의 10%에 이른다. 저출산 고령화로 이주노동자가 늘고, 결혼이주여성도 증가할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37만 명이다. 10년 뒤엔 한국 인구의 10%(5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우리나라는 이제 외국인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됐다.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 세심한 인권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문명국가의 기본이다. 대한민국이 가난할 때, 우리도 설움을 겪었다. 오늘의 그들이 어제의 우리였다.

2019-07-14 14:45:39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다시 끄집어 낸 영남권신공항 용역 보고서

2016년 6월 나온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최종 보고서'는 방대하다. 분량만 3권 787쪽에 이른다. 보고서는 국토교통부와 영남권 5개 시도지사 합의로 국제 입찰을 통해 프랑스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이 만들었다.앞서 영남권시장도지사협의회는 2014년 10월 2일과 2015년 1월 19일 두 차례 한자리에 모였다. 영남권 신공항 갈등이 10년 가까이 계속되며 지역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던 때였다. 진화가 필요했다. 5개 시·도 단체장은 "신공항 입지 선정 용역은 정부가 외국의 전문기관에 의뢰해 결정하도록 일임"하고, "정부의 입지 선정 결과 수용"에 극적으로 합의했다.그 결과 ADPi가 2015년 5월 용역기관으로 최종 낙찰됐다. ADPi는 베이징신공항을 비롯해 두바이, 상하이 푸둥공항 등 100여 개 공항 설계 공정에 참여하고 공항 관련 프로젝트 수주만 700개를 넘긴 세계적인 업체로 평가된다. 세계 어느 나라도 그 전문성과 권위에 토를 달지 않았다. 게다가 이 용역엔 5개 시도가 추천한 전문가들도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용역 결과에 대한 공정성 시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장치를 더한 셈이다.정부는 용역비로 물경 20억원을 썼다. 잠시 거액 용역 논란이 일었지만 세계적 전문기관에 용역을 맡겨 갈등을 그만 끝내자는 염원이 컸다. 결과에 대한 수긍과 갈등의 해소를 위해서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조사를 해야 했고, 독립된 해외 컨설턴트를 고용하는 것이 제격이었다.ADPi는 기대에 걸맞은 보고서를 냈다. 분석 결과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이었다. 공항 입지 선정을 위한 모든 전문적·보편적 지식을 이 한 편의 보고서에 쏟아부었다. 보고서를 받아 든 국토부 관계자들이 그 정교함과 전문성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가덕도 유치에 시장직까지 걸었던 서병수 당시 부산시장도 결국 승복했다.입지 평가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미국연방항공청(FAA),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정한 국제 가이드라인에 맞췄다. 일본 간사이공항 등 이전 공항 입지 선정 사례들을 무수히 벤치마킹했다. 항공기 운항의 안전성과 효율,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가를 따진 입지의 잠재성, 소음·문화유산 등 사회적 비용과 경제 환경에 대한 영향, 비용과 리스크 등 세부 항목을 일일이 찾아 계량화했다.그 결과로 나온 것이 김해신공항안이었다. 기존 2본 활주로에 1본을 추가하는 확장안이 805점을 얻었다. 압도적 1위였다. 2위가 밀양(활주로 2본 687점, 1본 686점), 가덕도(1본 619점, 2본 574점)는 꼴찌였다.이렇듯 어렵게 결정된 김해공항 확장안에 대한 재검증 논란이 나오는 것부터가 소모적이다. 김해공항도 부산 강서구에 있고, 가덕도도 부산 강서구에 있다. 가덕도로 공항을 옮기면 대다수 부산 시민들에게 접근성은 떨어진다. 모든 울산 시민들도 더 불편해진다. 경남도 역시 다수인 북부에서의 접근성이 현저히 나빠진다. 보고서는 이 역시 잘 지적하고 있다.논란을 부를 때는 심사숙고해야 하고 논란만큼의 이익이 따라야 한다. '총리실 재검증' 운을 떼 논란에 불을 붙인 문재인 대통령이 이 보고서를 읽어 보았는지 의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독을 권한다. 김해신공항은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내놓은 최선안이다. 이보다 더 공정하고 전문적인 검증단을 꾸리고 결과를 뒤집을 자신이 없다면 욕심은 버리는 것이 옳다. 입지의 타당성을 무시하고 정치적 이유로 지은 공항이 성공한 사례는 없다.

2019-07-08 06:30:00

김병구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부울경의 생떼

집권당으로 당선된 부산·울산·경남(부울경) 단체장들이 3년 6개월 전의 대국민 약속을 깨고 '신공항 생떼'를 부리고 있다.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서 고향 PK 표를 의식해 이 생떼에 선뜻 부응했다. 꼿꼿해 보이던 국토교통부는 한발을 빼고, 국무총리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 지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십수조원의 대규모 혈세가 투입되는 국책사업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뒤집거나 되돌려 놓는다면 앞으로 어떤 국책사업인들 제대로 굴러갈 지 국민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개탄스럽기 그지없다.부울경의 속셈은 뻔하다. 김해신공항이 동남권, 아니 영남권 신공항으로서 부적합하다고 우겨 이를 폐기하고 가덕도에 신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하지만 부울경과 정부가 명심해야 할 명약관화한 사실 하나는 김해신공항이 부울경만의 신공항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해신공항은 밀양과 가덕도를 대상으로 신공항 후보지 평가를 벌이다 외국 전문기관이 대안으로 제시한 신공항이고, 또 영남권 5개 지역이 이를 수용했던 영남권 전체의 신공항이란 점이다. 따라서 김해신공항이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판단과 결정은 부울경만이 아니라 부울경과 대구경북(TK)의 공동 합의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TK가 합의하지 않는 그 어떤 결정도 의미나 효력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백번 양보해 영남권 5개 지역이 김해신공항이 영남권 관문공항으로 부적격하다고 판단하더라도 그 대안으로 가덕도는 제외해야 한다. 가덕도를 빼고 밀양 등 다른 지역의 신청을 받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왜냐하면 가덕도는 2016년 6월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의 용역 결과 후보지 평가에서 어떤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꼴찌인 데다 안전이 전혀 담보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가덕도 1㎞ 이내 낙동강 하구에 국내 최대 철새 서식지가 있어 철새와 항공기 충돌, 이른바 '버드 스트라이크' 우려가 높다. 또 대형 선박의 가덕 수로 통항량이 연간 4천 회가 넘어 '선박 충돌' 위험도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평균 수심 18m인 일본 간사이공항이 개항 6년 새 11m나 침하했고 지금도 계속 가라앉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평균 수심이 16~35m인 가덕도의 침하는 불 보 듯 뻔하다. 가덕도 해상의 비행 경로가 김해공항과 일부 겹치는 것도 안전에 치명적 요소의 하나다.또 하나, 부울경이 김해신공항에 대한 TK의 관심을 애써 돌리려고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얘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은 영남권 관문공항과는 전혀 별개의 사안으로, K2 비행장의 소음 문제 해결을 위해 30여 년 전부터 대구 시민들이 이전을 요구해온 숙원사업일 뿐이다. 통합신공항은 영남권 관문공항과는 상관없는 대구경북의 신공항으로, 부울경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부울경과 정부는 김해신공항 재검증을 당장 그만 두든지, 아니면 내년 총선 이후 대구경북이 참여한 가운데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총선용 야합' '지역 이기주의에 매몰된 생떼'란 비난을 피해갈 수 있다.

2019-06-30 14:46:47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자기 말에 자기가 속는다

자기 말에 자기가 속는다고 한다. '열 번 거짓말하면 사람들이 다 속고, 백번 거짓말하면 자기 스스로가 속는다'는 그리스 속담도 있다. 물론 자기 말에 자기가 속을 정도면 속이고 싶어 속인다기보다는 그릇된 신념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영국의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은 이를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개념으로 정리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인간의 오류를 콕 짚어 낸 것이다. 이런 오류에 빠지면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는 재빨리 받아들이지만 다른 정보는 무시하거나 오히려 견강부회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짓말은 깊어지고 편향성은 심해진다.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 동시 교체를 보며 이 정부가 확증편향이란 오류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온 국민이 경제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아우성인데 정부는 '이대로'를 외쳤다. 청와대는 그러면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3대 핵심 경제정책의 성과 창출을 가속화하는 데 역할을 할 것"이란 빛바랜 기대를 빼먹지 않았다. 전임 투톱에 대해서도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문책성 인사라는 해석이 나올까 봐 지레 선을 그었다. 이에 청와대 경제 라인 역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며 맞장구를 쳤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충성 맹세도 빠지지 않았다. 물러난 경제 투톱이 성과를 냈고, 현 정부의 정책 기조도 그대로 이어 가겠다면 굳이 인사를 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확증편향이 걱정인 것은 윗사람이 권력을 무기로 자신의 그릇된 신념을 고집할 때 종종 두려운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랫사람들까지 맞장구를 치고 나서면 영락없는 '벌거벗은 임금님' 꼴이 된다.조짐은 벌써 확연하다. 대통령은 고비마다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쏟아냈다. 경제성장률은 꺾여 OECD 국가 꼴찌 수준으로 내려앉았는데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주류 경제학자 대부분이 족보가 없다는 소득주도성장은 대통령이 나서는 순간 '세계적으로 상당히 족보 있는 얘기'가 된다.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은 튼튼하다. 제조업 가동률이 금융 위기 수준까지 떨어졌는데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라'고도 했다. 확증편향 의심 속에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곧 나타날 것이란 희망고문은 계속된다.아랫사람들은 열심히 이에 맞장구를 친다. 소득주도성장이란 실험이 한국 경제를 빈사 상태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은 당정청을 막론하고 금기시 된다. 오히려 경제 위기를 말하는 것은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며 역성을 든다. 어려운 경제가 걱정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진 사실을 대통령이 알까 더 두려운 듯하다.보다 못해 경제 원로학자인 진념 전 경제부총리가 "혁신 없는 소득주도성장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명예교수는 "어설픈 진보와 개념 없는 정치가 만나 소득주도성장을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현 정부서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지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우리가 따를 만한 족보란 없다"고 단언했다.'때때로 한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에 전체 국민이 대가를 지불한다'는 독일 속담이 현실이 될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요즘이다.

2019-06-24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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