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레밍은 왜 집단자살을 하나

레밍(Lemming)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서식하는 들쥐다. 임신 기간이 약 20일에 불과한 데다 한꺼번에 2~8마리의 새끼를 낳고 두 시간 후면 다시 임신이 가능해 폭발적으로 개체 수가 증가한다.레밍이 유명해진 것은 폭발적인 번식력 때문이 아니라 '집단자살' 때문이다. 3, 4년마다 수만 마리의 레밍이 바닷가 절벽에서 떨어져 집단자살을 한다는 것이다.집단자살 이유로 '개체 수가 과도하게 불어나 먹이가 부족하면 늙은 쥐들이 후손을 위해 자살하는 것'이라는 추론이 한때 있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레밍이 '이성'(理性)을 가졌다는 결론이 나온다.그러나 학자들의 연구는 전혀 달랐다. 레밍은 지독한 근시라고 한다. 먹이를 찾아 이동하다가 벼랑 끝에 다다랐을 때 바다를 작은 호수로 알고 앞에 가는 녀석이 뛰어내리면 뒤따라가는 녀석들도 덩달아 뛰어내려 마치 집단자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또 다른 연구 결과는 '과속'이 그 원인이라는 것. 레밍은 직선으로만 움직이는데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동 시 떼거리 본능이 있어 한 마리가 달려가면 다른 녀석들도 무조건 달라붙어 빠른 속도로 뒤따라간다고 한다. 그렇게 무리 지어 가다가 갑자기 벼랑이 나타나도 멈추지 못하고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레밍의 집단자살은 후손들을 배려한 행위가 아니라 '지독한 근시'와 '떼거리 본능에 따른 과속 질주'가 그 원인이다.요즘 '문재인 한국호'의 모습을 보면 레밍의 질주를 떠올리게 한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처리 방식이 한쪽에서는 국민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일자리와 대북·국방 분야에서 특히 레밍과 닮았다.지역 한 대학은 400명인 시간 강사를 250명 수준으로, 서울 한 대학은 1천200명인 강사를 내년 1학기까지 500명 감축한다. 내년 시행 예정인 '강사법'(고등교육법) 발효 여파로 대학가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 각 대학은 전임 강사로 기존 시간 강사의 자리를 메꿔야 해 큰 재정 부담을 안게 되면서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다.시간 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마련한 법이 오히려 그들의 일자리를 뺏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비정규직 교수 노조는 2만~3만 명의 시간 강사가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 정부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포용국가를 지향한다지만 정작 시간 강사는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최근 공공기관의 고용 세습과 내부자 거래를 통한 제 식구 채용은 문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맹목적 일자리 창출이 빚은 불포용적 국가의 모습이다. 구직자들은 보지 않는 지독한 근시와 속도전의 결과였다. 한국공항공사는 5천여 비정규직 가운데 매년 2천 명 정도는 순환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을 정규직화하면 수년간 일자리 문은 차단된다. 비정규직 축소는 맞지만 구직자들의 취업 문은 더 굳게 닫혀 버렸다. 이 또한 일부 구직자에겐 포용국가의 모습은 아닐 터이다.문 정부의 과속 질주는 대북·국방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미국 등 우리의 전통 우방들이 북의 비핵화 없인 제재 해제를 반대하고 있는데도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 해제를 줄기차게 요구한다. 종전선언도 과속 질주다. 우방 국가들이 북의 비핵화가 선행조건이라는데도 북·중 편에 서서 종전선언에 매달리고 있다.문 정부는 20년간 집권하겠다면서 왜 옆은 보지 않고, 왜 그리 급한가? 기어코 레밍의 길을 따라가려는가.

2018-11-04 17:08:08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낙동강 보 개방, 주민 뜻 따라야 한다

황천모 상주시장이 정부의 낙동강 보(洑) 개방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상주의 젖줄인 낙동강 상주보와 낙단보 지키기에 시장직을 걸었다. 기어이 정부가 보를 개방하려 든다면 바리케이드를 쳐서라도 막을 각오다.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이 정부 방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은 처음이다. '적폐'를 앞세운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에 모두가 입을 닫고 있는 시기다. 황 시장의 용기가 돋보인다.시장의 용기는 민심에서 나온다. 선출직 단체장은 민심을 거스르기 어렵다. 민심이 필요로 한다면 봇물은 유용한 것이고 보는 지켜야 한다. 봇물이 썩어 못쓰게 된다면 주민들이 가장 먼저 들고일어날 일이다. 지금 그 주민들이 보 개방에 결사반대하고 있다.정부는 난처해졌다. 보 개방 후 '모니터링을 거쳐' 보 철거로 이어가려던 정부다. 상주시 반발로 15일로 예정됐던 낙동강 상류 상주보, 구미보의 개방과 이달 중으로 예고했던 낙단보의 개방을 일단 보류했다.가뜩이나 정부의 보 개방 계획은 지지부진하다. 현재 정부 의도대로 보 수문을 완전히 개방해 저수율이 10%대로 떨어진 곳은 16개 보 중 금강의 공주보와 세종보 둘뿐이다. 보 철거는커녕 개방조차도 곳곳에서 농민 등 주민 반발에 직면해 있다. 당초 금강·영산강은 올해 말, 한강·낙동강은 내년 6월까지 보 개방 후 모니터링을 거쳐 철거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도 정부가 무리하지 않는다면 기약하기 힘들게 됐다.완전 개방된 세종보와 공주보는 보를 열었을 때 어떤 현상이 생기는지를 역설한다. 수문을 열어 과거 물 흐름으로 돌아간 세종보의 녹조는 지난해, 지지난해보다 더 심해졌다. 수려하던 경관은 사라졌고 과거의 건천화 현상은 다시 나타났다. 연간 1만1천 명이 사용할 전기를 생산하던 소수력 발전은 허공에 떴다. 보마다 수문을 막아달라는 주민 요구가 빗발치지만 환경부는 꿈쩍도 않고 있다. 상주보도 이미 지난 3월 9일 한 차례 개방한 바 있다. 하지만 보를 가득 채웠던 물이 사라지자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했다. 취수량 부족으로 수돗물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질 정도였다. 열렸던 보문은 17일 만에 다시 닫혔다.녹조 논란이 숙진 것도 아니다. 높은 수온이 4대강 녹조 발생 원인으로 지목됐으나 유량이 늘면 클로로필 농도가 오히려 감소한다는 논문이 잇따라 국제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학술지(SCI)에 실렸다. 한때 4대강 사업지에서 발견돼 수질오염의 징표라며 호들갑을 떨던 큰빗이끼벌레는 1~3급의 깨끗한 물에 사는 태형동물로 수질오염이 심한 곳에서는 오히려 죽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4대강 보 개방 혹은 철거 여부는 정치적 편향성에서가 아니라 보가 유용한지가 논의의 초점이 돼야 한다. 그 보의 유용성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것이 보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이다. 보가 가뭄과 홍수 예방, 주변 경관에 도움이 된다고 주민들이 판단하면 굳이 물을 빼거나 보를 허물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물이 썩어 농사를 지을 수 없고 고기잡이도 할 수 없게 돼 죽음의 강이 된다면 보를 그냥 두자 할 리 없다.영산강 주변 주민들이 승촌보 죽산보가 오염돼 헐어달라면 헐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낙동강 상주보 낙단보 주민들이 보를 지키려 하는데 굳이 헐어야 할 이유도 없다. 금강이건 한강이건 마찬가지다. 결정은 그 강을 생활 터전으로 살아가는 주민들 몫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정부가 하루 빨리 이를 깨쳐야 한다.

2018-10-15 05:00: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평화와 전쟁

"나는 우리 시대가 평화로울 것을 믿어 마지않습니다."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말은 1938년 9월 영국 총리 체임벌린이 런던 다우닝가 총리 관저 앞에 몰려든 지지자들에게 던진 말이다. 광기 어린 히틀러의 등장으로 영국민들이 전쟁의 공포에 떨던 때, 체임벌린은 적의 심장부인 독일 뮌헨을 찾았다. 그리고 히틀러와 담판했다. 그는 히틀러에게 체코 땅 주데텐란드를 넘겨주는 대신 '평화'를 약속한 선언서를 받아 들고 왔다. 돌아와 환호하는 군중을 향해 이를 흔들며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의기양양해했다. 히틀러는 그에게 더 이상 독재자가 아닌 "한 번 약속을 하면 믿을 수 있는 사나이"였다.영국 국민 또한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됐다며 열광했다. 하지만 '믿을 만한 사나이'에게서 약속받은 '평화'는 1년을 가지 않았다. 이듬해 9월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다. 히틀러는 '평화'를 적은 종이 한 장으로 유럽의 호랑이던 영국을 간단히 무장해제시킨 셈이다. 체임벌린은 속았다.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히틀러의 가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지도자를 둔 죗값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었다. 영국은 군인만 26만4천 명이 목숨을 잃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잊을 만하면 역사는 되풀이된다.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월맹(북베트남)의 르 둑 토가 월남전 종전을 다룬 '파리평화회담'이 또 그랬다. 당시 월맹의 요구 조건은 '평화협정' 체결과 '미군 철수'였다. 1973년 1월 마침내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됐다. '베트남의 평화적 수단에 의한 단계적 통일'을 약속했고 미군은 철수했다. 이후 월맹은 표변했다. 1975년 3월 10일 월남(남베트남) 총공세를 감행했다. 협정 체결 2년도 안 되어서다. 월남은 남남 갈등으로 갈가리 찢겨 있었다. 전쟁이 나면 다시 오겠다던 미군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월남이란 나라는 지도 상에서 사라졌다.선언적 의미의 '평화협정'은 허무하다. 지도자의 믿음 속 '평화'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을 "젊지만 아주 솔직 담백한 인물"이라 평했다. 그가 "비핵화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하다. 김정은의 친서를 받아 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역시 "그는 나를 좋아하고 나는 그를 좋아한다"고 했다. 반면 김정은은 연일 '초라하다'며 몸을 낮췄다. "우리가 속임수를 쓰면 미국이 강력하게 보복할 텐데 그 보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너스레도 떨었다.외교 관계에서, 특히 정상들이 이런 말의 성찬을 나누는 것은 나쁘지 않다.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 "상대방을 평가하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협상하는" 3단계 방식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행동이라면 달라야 한다. 트럼프의 태도는 시사적이다. 김정은을 좋아한다 말하면서도 '비핵화가 일어날 때까지' 대북 제재 고삐를 더 죄고 있다. 비행금지구역 확대,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철매-2 사업 중단 등 무장해제가 속속 이뤄지는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평화는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군사력과 정신적 무장 상태를 유지할 때 가장 가까이 다가온다. 전쟁 자격이 없는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강한 군대를 유지하는 이유다. 체임벌린과 파리평화회담이 던진 교훈을 과거의 일로 치부해선 안 된다. 또 아픈 역사가 되풀이될까 저어해서다.

2018-10-01 05:00: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세금을 이렇게 막 써도 되나

세금 함부로 써서 잘된 나라가 없다. 최근 몇 년 새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나라만 여럿 나왔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그리스 등이다. 이들 나라엔 천연자원이건 관광자원이건 많은 자원을 타고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도 공무원 증원 등 공공 부문 확대와 예산 퍼붓기식 복지는 이겨내지 못했다.브라질 정부는 요즘 '물구나무선 로빈 후드' 소리를 듣고 있다. 로빈 후드는 부자에게서 돈을 빼앗아 빈자에게 나눠 준 12세기 영국의 의적이다. 그 로빈 후드가 물구나무를 섰으니 반대 현상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돈은 빈자에게서 부자에게로 흘렀다. 세수의 3분의 1 이상을 복지비에 쏟아붓지만 잘못된 복지제도로 비대해진 공공 부문이 체리피커(자신의 실속만 차리는 소비자)가 됐다. 저소득·취약계층을 위한다지만 '못사는 사람만 더 못살게 된' 우리 경제 현실과 도긴개긴이다.세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돈이 아니다. 기업이 열심히 연구 개발 생산 판매하고, 국민들이 땀 흘려 일한 결과물이다. 정부가 이를 제 호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여겨선 안 된다. 함부로 쓰여도 안 되지만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쓰인다면 더욱 안 된다.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세금 씀씀이를 걱정하기 시작한 것이 꽤 됐다. 툭하면 세금으로 메우려 들었기 때문이다. '판문점 선언' 이행 비용 청구서가 국회에 날아든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우선 내년 4천712억원의 착수비만 슬며시 들이밀었다. 하지만 일단 국회 비준을 받게 되면 그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게 돼 있다. 비용을 가장 소극적으로 잡은 민간 씨티그룹조차 북한 인프라 구축 비용을 철도 27조원, 도로 25조원 등 총 71조원으로 추정했다. 특정 집단이 자기 호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생각하지 않고서야 이런 불확실한 투자청구서를 서둘러 들이밀 이유가 없다.게다가 정부의 세금 운용 실력은 이미 믿음을 상실했다. "4대 강 22조원이면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든다"던 정부가 2년간 일자리 예산으로 세금 54조원을 책정하고도 헛일만 했다. 그래도 아쉽다며 내년 일자리 예산을 사상 최대였던 올해보다 22% 더 늘리겠단다. 이쯤 되면 세금중독이란 공격을 받아도 어색할 리 없다. 올해 경찰 군인 교사 등 2만7천 명을 늘린 것으로 모자라 내년에 3만6천 명을 더 뽑겠다고 한다. 학생 수는 급감하는데 교사 수는 늘어간다. 5년 임기 동안 기어코 17만 명을 채울 기세다. 30년 동안 3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세금 부담은 안중에 없다. 25조원이면 넉넉할 원전 6기를 백지화하고 대신 100조원 이상이 필요한 태양광 시설을 늘리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국가채무는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660조원이던 채무는 올해 700조원을 넘고 2022년이면 900조원을 바라본다. 그런데도 정부는 선진국에 비해 국가채무가 GDP 대비 40% 선에서 안정적이라 한다. 공무원 비율도 스웨덴 같은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점을 강조한다.이것으로 세금이 함부로 쓰인다는 의구심을 상쇄할 수 없다. 스웨덴의 조세부담률은 40%를 넘는다. 우리나라는 20% 남짓하다. 조세부담률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면서 같은 복지와 공무원 비율을 추구하다가는 스웨덴이 아닌 브라질 짝이 나기 십상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나서는 대통령부터 국민 세금 쓰기를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2018-09-17 05:00:00

이춘수 편집국부국장

[매일칼럼] 문 정부의 녹슨 칼에 우는 서민·중산층

송(宋)나라 때 한 농부는 자기 논에 심은 모가 빨리 자라지 않자 상심이 컸다. 농부는 매일 같이 나가서 지켜봐도 모가 자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억지로라도 모가 자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는 모를 하나하나 뽑아서 크기를 높게 했다. 금세 모들이 커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아침부터 해가 서산에 떨어질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모를 뽑는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식구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한 일을 자랑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황급히 논으로 달려가 보니 모가 모두 뽑혀서 말라 죽어 있었다. 발묘조장(拔苗助長)의 고사다. 소득주도성장론에 기초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와 탈원전 정책 등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어 시행하고 있는 일련의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득 자체를 올려 주기 위한 노력은 정의감에 입각한 선한 의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최저임금은 꼭 필요한 제도다. 그러나 그 최저임금제로 살길이 막힌 600만 자영업자 예컨대 편의점과 치킨 점주, 미용실 원장 등 영세 자영업자들은 "노동자만 국민이냐, 우리도 국민이다"며 광화문 거리에서 절규했다. 그동안 좀처럼 단체행동에 나서지 않았던 사람들이 집단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늘린다는 일자리는 거꾸로 줄어들고, 줄어야 할 실업자는 늘어만 가고 있다. 문 정부의 방향과 목표가 백만 번 옳더라도 모를 빨리 키우고자 한 송나라 농부의 노릇처럼 모를 죽이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은가? 최근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하루아침에 1억원씩 오르기도 했다. 이런데 소득주도성장을 떠들어 본들, 어떤 규제를 내놓은들 서민·중산층은 일할 맛이 나겠는가? 이대로 가다간 서민과 중산층의 허탈과 불만은 폭발할 수밖에 없다. 문 정부의 위기다. 문 정부의 위기는 민심 향배를 최종 결정짓는 경제정책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다기한 경제 현장에서 과거 개발시대의 만능이었던 규제와 정부 재정만으로 접근하니 시장에서 약발이 전혀 먹혀 들지 않는 것이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노라면 허물어진 담벼락에 기대 녹슨 칼을 마구 휘둘러 대는 꼴이다. 여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정부와 여당은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이 폭등하자 돈줄을 더 조이기로 했다. 정부·여당은 물이 꽉찬 수도꼭지를 틀어막으려 하지만 투기 세력이나 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대출 규제는 녹슨 칼에 불과하다. 경제 문제는 '뜨거운 가슴'으로만 풀어갈 수 없다. 섣부른 경제정책은 자칫 갈등만 키울 수 있다. 문 정부는 쉬었다 갈 수도, 돌아갈 수도 있어야 한다. 핵심 정책을 중간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당초에 자신이 반대하던 한미 FTA를 앞장서 체결했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후퇴할 수 있는 것도 지혜요, 용기다. 그렇지 않으면, 또 때를 놓치면 폭삭 망한다. 불행해지는 것은 국민뿐이다. 이런 사태는 없어야 한다.

2018-09-09 19:38: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우물 안 개구리거나 냄비 속 개구리거나

한국 속담에 '우물 안 개구리'가 있다. 넓은 세상을 알지 못하고 저만 잘난 줄 아는 사람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우물 안에서 태어난 개구리에게 우물 안은 세상의 전부다. 널리 보고 깊이 들으려 하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할 수 없다.서양 말에는 '냄비 속 개구리'가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이 든 냄비 안에 든 개구리'(a frog in a pot of slowly boiling water)다. '냄비 속 개구리'는 최악이다.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에 머물다 저 죽는 줄도 모르고 죽는다.우리나라 경제를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한 첫 보고서는 5년 전에 처음 나왔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의 '한국 스타일을 넘어: 새로운 성장공식 만들기'라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한국 경제를 '서서히 가열되는 냄비 속 개구리'에 비교했다. MGI가 던진 메시지는 이랬다. 국가의 경쟁력과 잠재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생산성, 인구 증가율, 저축률 등 세 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 모두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생산성을 높이고, 인구를 늘리고,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데 한국은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다. 중대한 위기가 다가오는데도 한국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그로부터 5년 후 MGI의 조너선 웨츨 소장의 경고는 계속된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 상태다. 5년 전보다 온도는 더 올라갔다."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저출산과 고령화가 맞물려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2분기 합계출산율은 0.97까지 떨어졌다.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고령사회에 들어섰다. 가계 부채 문제로 인해 저축은커녕 부채 문제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남은 것은 생산성 증가뿐이다. 그런데 이마저 거꾸로 간다. 우리나라 전체 산업의 1인당 노동 생산성지수는 2008년 이후 10년간 고작 1.3% 올랐다. 하지만 같은 기간 임금은 명목기준 37.0%(연평균 3.6%) 올랐다. 생산성은 제자리걸음인데 임금만 오르는 나라가 경쟁력을 가질까.MGI뿐만 아니다. 나라 안팎에서 우리 경제가 뜨거운 냄비 속에 들어 있다는 경고가 쏟아진다. OECD의 한국 경기선행지수는 지난 3월(99.9)부터 4개월 연속 100 미만이다. 지난해 3월 이후 15개월 연속 하락 중이다. OECD 지수는 IMF 위기나 금융 위기를 족집게처럼 짚어냈기에 지수의 연속 하락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한국개발연구원이 경제전문가 489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88.1%가 '한국 경제가 냄비 속 개구리'란 지적에 공감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정부의 소상공인 달래기용 지원책을 두고 '끓는 냄비 속에서 익어가는 개구리에게 먹이를 던져 주는 격'이라 꼬집었다.국민은 자신이 뜨거워지는 냄비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냄비는 소득주도성장, 저생산성, 낡은 이데올로기의 틀에 갇혀 달아오르고 있다. 국민은 하루빨리 뜨거워지는 냄비 속에서 뛰쳐나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더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한다. 대통령은 올바른 정책기조라며 손을 번쩍 들어줬다.'우물 안 개구리'들이 국민을 '냄비 속 개구리'로 몰아가고 있다. 모두가 뜨거워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이들은 기다리라 한다. 이러다 국민들만 여럿 죽게 생겼다.

2018-09-03 05:00:00

이춘수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혐오에 중독된 한국, 일상화되는 혐오 정치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혐오(嫌惡)다.한남유충, 김치녀, 수구꼴통, 좌빨, 틀딱이, 일베, 메갈, 개독…. 불과 2년 만에 생겨난 혐오 단어다. 모두 여성·남성 혐오, 보수·진보 혐오, 세대 간 혐오, 종교 혐오를 상징하는 말이다.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모이면 누군가를 혐오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고 공동의 혐오 대상을 가진 사람들은 친해지고 뭉치는 현상까지 보인다.인터넷, 정치 게시판,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미움과 혐오가 판을 치고 사람들은 이를 즐긴다. 외국인들의 눈에는 마치 한국은 전 국민이 혐오 중독에 빠진 것 같고, 혐오 에너지가 온 나라를 지배하는 듯 보일 게다.남녀 간, 세대 간, 보수·진보 간 분열과 갈등에는 상대를 인정 않으려는 혐오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최근 워마드와 일부 여성단체가 중심이 된 서울 혜화역 시위에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참석했다. 대통령에게 죽으라고 조롱하는 시위 현장에 국무위원이 참석한 것이다. 정 장관에게 페미니즘에 동조하는 진보적 입장을 탓할 수는 없지만 국무위원으로서는 아주 부적절한 처신이었다.혐오는 개인을 파괴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나라를 분열시키고, 국민들 간 신뢰를 무너뜨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혐오가 국가적 불행으로 이어지는데도 우리 사회의 리더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혐오 기류에 편승하고 있다. 오히려 혐오를 앞세워 혐오 정치를 거리낌 없이 한다.혐오는 다수와 소수,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강자와 약자 간 상대를 서로 비하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챙긴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정치적이기는 하다. 이 때문인지 한국에서도 혐오 표현(hate speech)을 활용한 정치가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동성애는 하늘의 뜻에 반하기 때문에 엄벌해야 한다"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지난해 대선 당시 발언과 "동성애로 에이즈가 늘어난다"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서울시장 선거 당시 발언은 한국에서도 '혐오 정치'가 일상화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우리 사회에서의 혐오는 이제 개인적 취향을 떠나 사회적·정치적 취향으로 고착화되면서 사회·정치 리더들의 혐오 정치를 부추기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내가 발산하는 혐오는 언젠가 나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이런 이유로 혐오를 만들고 유포함으로써 자신의 이익과 쾌락, 권력을 생산하고 강화하며 유지하는 자들을 고발하고 비판해야 한다.혐오 정치를 막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도 준비해야 한다. 선거 때는 다수에게 지지를 얻으면 되기 때문에 혐오 표현 문제가 더 격화될 수 있다.선거 시기 혐오 표현은 선거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한 규제가 필요하다. 혐오 표현을 형사범죄로 다룰 경우 정쟁으로 번지거나 표현의 자유 위축 논란에다 처벌할 수 있는 표현이 극히 일부로 한정될 수 있다.따라서 선관위가 혐오 표현에 관한 인식 수준을 높이고 다양한 비강제적 수단을 모색해야 한다. 혐오 표현에 대한 예방·대응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더해 가장 근본적 대책은 혐오를 저주하는 국민의 매서운 눈이다.

2018-08-26 18:35:55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문재인 정부 들어 저소득층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던 일자리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생계를 잇던 일자리는 위태로워졌고 물가는 다락같이 올랐다.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 등 사회적 약자층을 위한다는 선의를 내걸었지만 결과는 '없는 사람일수록 더 힘들어지는' 역설로 나타나고 있다.없는 사람, 못 배운 계층일수록 힘들게 됐다는 사실은 몇몇 수치만 봐도 단박에 알 수 있다. 지난달 고졸 취업자는 1년 전에 비해 28만8천 명 줄었다. 이들은 주로 기능·기계조작·조립·단순노무직으로 일한다. 반면 회사 사장이나 임원 등 고위직이나 변호사 같은 고임금 전문직은 호황이다. 1년 전보다 14만 명 가까이 일자리가 늘었다. 포퓰리즘 경제정책들이 서민 일자리만 잡았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 40대 가장 등 전통적 중산층은 무너지고 있다. 올 상반기 10~299인 규모 중소기업 4만5천여 곳이 문을 닫았다. 새로 문을 연 중소기업보다 1만1천여 곳이 더 많았다. 그만큼의 일자리도 허공에 떴다. 요즘 기업인들은 경기 침체에 가중되는 인건비 부담, 노조와의 갈등을 우려해 사업 확장이 아닌 접을 궁리만 하고 있다.자영업자들은 그들대로 아우성이다. 대표적인 서민 창업 대상인 음식점은 열고 닫는 속도가 비슷해졌다. 지난해 문을 연 음식점이 18만1천여 곳, 문을 닫은 곳은 16만6천여 곳이다. 10곳이 문을 여는 동안 9.2곳은 간판을 내렸다. 고용원 없이 혼자 가게를 운영하다 접은 경우도 10만2천 곳에 달한다. 최저임금이 대폭 오른 올해 폐업신고는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문을 닫고 여는 업소가 역전했을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거리마다 임대 현수막이 나부끼고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들은 거리로 나서고 있다.직장에선 40대 가장들이 밀려나고 있다. 지난달 말 40대 취업자수는 1년 전보다 14만7천 명이 줄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유례가 없는 일이다. 40대면 가정에서 한참 어린 자녀를 양육해야 할 시기다. 그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은 가정의 위기로 연결된다.세계가 다 우리나라 같다면야 이해하겠는데 그렇지 않다. 소득주도성장을 실험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세계는 대부분 호황이다. 미국과 일본은 완전고용을 자랑한다. 미국은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나서 "완전고용상태이거나 이를 넘어섰다"고 말하고, 일본은 공무원들의 '투잡'을 권할 정도로 인력난에 시달린다.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누구나 이유는 안다. 대다수의 손가락이 소득주도성장을 지목하고 있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손가락만 쳐다본다. 그것도 보고 싶은 손가락만 본다. 매번 더 나빠진 경제지표를 받아들면서도 날씨 탓, 인구구조 탓을 하기 일쑤다. 이명박·박근혜 전 정부 탓도 빠지지 않는다. 중국인 관광객 감소 탓도 나왔다. 소득주도성장엔 시간이 필요하다며 둘러댄다. 고용 쇼크에 19일 당·정·청이 긴급회의를 열고 '송구스럽다'며 내놓은 대책이 '재정확대'다. 문 정부는 지난 2년간 일자리 창출에 37조원을 쏟아부었다. 소득주도성장 아닌 세금주도성장이란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그런데도 정부는 세금 쏟아붓는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더러 불통 정부라 욕하더니 이보다 더한 불통 정부다.

2018-08-20 05:00:00

이춘수 편집부국장

[매일칼럼]문 정부의 경제 브랜드 체인지(Brand Change)

청와대의 경제 노선 투쟁이 심상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인도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했던 '일자리 창출' 부탁을 잊었는지 청와대 참모들은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이 부회장을 만나는 것에 대해 '투자고용 구걸'을 하는 것이냐며 딴죽을 걸었다. 김 부총리가 이 부회장을 만나는 것이 '구걸'이라면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했던 부탁 역시 '구걸'인데 이는 청와대 실세들과 문 대통령 간 경제 노선을 두고 심각한 이견이 표출된 것이어서 보통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8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다 최근의 지지율은 58% 전후로 떨어졌다. 여론조사 회사별로 평균 20% 가까이 하락했다. 이를 국민 대비 단순 수치로 환원하면 약 800만 명이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하락 요인은 바로 악화일로인 경제 때문이다. 해프닝 같은 사건 같아 보이지만 이번 '투자고용 구걸' 논란은 향후 문 정부의 공과(功過)를 가를 수 있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사태는 결국 문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력을 위해 좀 더 시장기업친화적으로 가느냐, 아니면 저소득층에 대한 분배 중심의 소득주도성장을 그대로 밀어붙이느냐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 본질이다. 달리 말하자면 앞으로 문 대통령이 어떤 경제 브랜드로 마케팅할 것이냐로 귀결된다. 싱가포르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 전 총리의 아들 리센룽 총리는 2005년 4월 의회를 찾았다. 카지노가 낀 복합리조트 개발계획을 관철시키기 위해 의원들을 만나러 갔다. 그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카지노는 안 된다"고 한 아버지는 겨우 설득했지만 의원들은 '사행심을 조장하고, 전 국민의 도박중독 위험' 이 있다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했다. 이에 리 총리는 "자신도 한때 카지노를 반대했다. 다른 글로벌 도시들에 뒤처지는 싱가포르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카지노가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카지노가 싱가포르 사회에 끼치는 마이너스 요인들을 열거한 뒤 이렇게 얘기했다. "창문을 열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지만 동시에 파리 같은 곤충과도 싸워야 한다. 곤충이 싫다고 문을 안 열 수는 없다." 싱가포르 경제를 일으킨 '신의 한 수'라고 평가받는 마리나베이샌즈(MBS)는 이렇게 탄생할 수 있었다. 요즘 우리 경제를 흔드는 이들은 국민과 기업이 아니라 오히려 청와대, 이 정권을 탄생시키는데 일조했다고 자부하는 얼치기 진보 좌파 이론가들과 시민단체이다. 문 대통령이 규제혁파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이를 대기업에 대한 특혜로 규정해온 일부 좌파들은 문 정부가 대기업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데 대해 불만을 쌓아 왔다. '투자 구걸' 주장은 이념적 선명성을 유지하려는 세력의 집단적 불만이 투영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진정 리센룽 총리처럼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정권을 받치는 내부 파리들과 과감히 싸우고, 여의치 않을 경우 결별까지 감수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 고용을 늘릴 수 있다면 경제부총리가 아니 대통령이 구걸을 한들 어떻고, 읍소를 한들 어느 국민이 싫어하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도 우군이었던 좌파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은 흔들어도 경제는 흔들지 말아주십시오".

2018-08-13 05:00: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갈등 권하는 정부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필요한 것을 갖기 위해 다툰다고 한다.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인간 사회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장으로 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다투기만 했다면 오늘날 인류가 공존하고 있을 리 없다. 인간은 투쟁의 장을 공존의 장으로 바꾸는 기술을 찾았다. 바로 정치다. 이를 두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인류 사상 최초의 직업이 정치'라고 짚었다. 정치인을 욕하지만 인간은 더불어 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상생의 장치로 정치를 택했다.정치는 독이기도 하고 약이기도 하다.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정치는 치열한 투쟁의 장이 된다. 온갖 이해 집단들의 이해관계는 난마처럼 얽혀 갈등이 분출한다. 훌륭한 리더는 이를 뚫고 큰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간다. 이엔 시간과 끈기가 필요하다. 한때 그것이 부족한 리더는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했다. "여기에 앉은 내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 미국 대통령(하딩)도 있었다. 물론 그는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았다. 그렇다고 엉킨 실타래를 단칼에 베어 해결하려는 시도는 현명하지 않다.요즘 국민들 마음이 편치 않다. 엉킨 실타래를 풀 생각은 않고 단칼에 베려 든다는 생각이다. 갈등은 분출하고 출구는 암흑천지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갈등 조정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2년간 최저임금을 30% 가까이 올리면서도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등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해 비롯된 일이다. 소상공인들은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며 아우성이다. 갈등의 골은 깊어 가는데 청와대는 그저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 일일 뿐이란다. '최저임금 이의신청'이란 소상공인들의 마지막 몸부림마저 가벼이 걷어차 버렸다. 물론 정부는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하지만 진정한 대책은 '나를 잡아가라' 아우성치는 소상공인의 뜻을 깨우치고 연착륙 기회를 주는 것이다.문재인 정부는 조급하다.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할 때 밀어붙이자는 의도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점은 득은 적고 실은 많다는 것이다. 북 비핵화를 확인도 않은 채 남북경협부터 추진하는 것이 그렇다. 덜컥 탈원전부터 선언해 잘 가동 중인 원전을 세운 것도 마찬가지다. 정작 일자리를 만드는 주역인 기업은 후려치면서 성장과 일자리를 강조하는 대목은 코미디 수준이다. 덕분에 일자리 전광판은 싸늘하게 식었다. 내 편만 챙기는 사이 갈등은 지역, 세대, 노사를 넘어 남녀 성 간 갈등까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사회 갈등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다 보니 세계 경제는 호황인데 우리나라 경제만 곤두박질치고 있다.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성공하기 어렵다. 지금 박수소리가 크다고 그 정책이 훗날의 박수로 이어질 리도 만무하다. 갈등을 해소한답시고 막대한 예산을 들이미는 것은 임시방편은 될지 모르나 미래의 화를 키울 뿐이다.19세기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는 나라 밖으로 유럽의 세력 균형을 주도하고, 안으로 사회주의자들을 회유하며 불만을 누그러뜨려 독일제국을 일궜다. 그의 리더십 아래 독일은 통일되고 융성했다. 그는 정치를 두고 '통치의 예술'이라 했다.문 대통령에게서 '예술 같은 통치'를 기대하는 것은 허튼 꿈인가.

2018-08-06 05:00:00

이춘수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좌파 권력과 시장 권력

노무현 정부 때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로 아파트 공급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시민단체들은 공사 원가 공개를 요구했다. 정부가 의지만 있었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정부 통제 아래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 하여금 원가를 공개토록 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는 상황이었다.하지만 노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스스로 고백했듯이 재임기간 내내 신자유주의를 정책의 틀로 삼았다.외환위기 후의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 정부에서도 신자유주의가 사회적 지배 원리로 작동하면서 비정규직과 청년실업가계 부채의 증가, 아파트가격 폭등,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를 가져왔다.노 전 대통령의 신자유주의적 사고는 시민사회단체와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한미 FTA 체결에서도 잘 드러난다. 노 정부는 시장이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하도록 해주면 경제 전반이 활성화되면서 모두가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한 실패였다.이에 대한 반작용일까? 프레임 설정에 강한 노무현 후계자들, 문재인 대통령과 정책 참모들은 노 정부의 실패를 교훈 삼아 '시장 중심주의'에서 국가의 시장 개입과 통제를 정책 작동 원리로 신봉하고 있다.문재인 정부는 사사건건 정부 재정을 투입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국가의 힘으로 시장을 제어조율할 수 있다고 맹신하는 듯하다. '재정 중독증 정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문 정부는 정부 재정을 투입해 공무원 수를 늘리고 공공 부문 비정규직을 줄이는 방법 등으로 81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공약했다. 더불어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 주 52시간 근무 정착, 청년실업 해소 등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문 정부는 공공 부문이 모범적인 고용주 역할을 하면 그 효과가 일반 기업에까지 전파된다고 보는 듯하다. 1990년대 이전까지와는 달리 시장에 대한 국가의 우위는 사라졌다. 기업 중심의 경제 권력이 국가 중심의 정치 권력을 능가하고 있다.국가가 시장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보면 큰 오산이다. 우리 경제와 기업은 이미 국가 간, 지역 간 경계가 없는 글로벌 시스템에 편입되어 있다.문 정부의 취지는 좋다. 그러나 결과는 사회적 약자들이 피해를 보고, 기업주들은 문 정부의 바람과는 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 기업들은 문 정부의 노동조건 개선에 맞서 고용을 늘리기보다는 자동화, 해외 이전, 사업 축소 혹은 포기 등 다양한 형태로 대응하고 있다.문 정부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고용의 80% 이상을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 정부가 그토록 의식하는 대기업 중심의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는 5%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주와 그곳 노동자들의 눈물도 닦아주는 대책이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다.'시장을 이기는 정책 없다'는 지적을 문 정부는 곱씹어 봐야 한다. 해결 방향은 단순하다. 국가와 시장이,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뿐이다.문 정부 브레인들과 여당 일각에서 기업 성장 원인을 노동자 착취로 보는 이상 아무리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경제 활력은 찾을 수 없다. 문 정부와 여당이 한때 해체 대상이라고 주장했던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에게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을 부탁하지 않았던가.

2018-07-29 15:26:14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착한' 정부의 함정

문재인 정부는 '착한' 정부를 표방한다. '착한'이란 말이 늘 따라 다닌다. 문 정부가 편성한 예산은 착한 예산이 되고 착한 추경이 된다. 부자과세는 착한 과세고 청와대 초청 기업은 착한 기업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착한 경제요 착한 성장이다. 해주지 않고서야 착하다는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 근로자 최저임금을 서둘러 1만원까지 올리려는 것부터가 그렇다. 올해 최저임금을 10.9% 올린 후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목표가 사실상 어려워지게 된 것'에 대해 대통령이 나서 사과했다. 내년부터 300만 가구가 근로장려금을 받게 된다. 예산은 4조원으로 늘었다. 저소득층 노인 기초연금은 30만원으로 올렸다. 노인층에 60만개의 일자리도 제공한다. 저소득층 청년은 현재 최대 90만원인 구직활동 지원금을 내년부터 최대 3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환자가 전액 부담했던 비급여 진료를 단계적으로 급여화하는 '문재인 케어'도 현실화하고 있다.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일단 해주고 보자는 취지다. 취지가 착하다고 모든 정책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특히 미래 국민의 삶의 질이 담보되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문제는 재정이다. 문 정부는 지난 정부가 편성한 일자리 예산 17조9천억원에 더해 지난해 7월 추경 11조원을 편성했다. 올해도 본예산 19조2천억원에 추경 3조9천억원을 더했다. 2년간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도 받아든 성적표는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고용쇼크다. 정부는 나아가 내년 470조원에 이르는 슈퍼 팽창 예산을 계획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이후 2년간 연 20조원이상씩 세금이 더 걷히고 있는데 이를 아낌없이 쓸 계획이다. 지금이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청구서는 이 정권 이후에나 날아들게 돼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복지 확대를 위한 적자재정이 지속되면 2060년 국가 채무가 기존 예상보다 3천400조원 폭증한다고 경고했다. 각종 기금도 줄줄이 바닥난다. 지난 정부에서 20조원이상 쌓였던 건강보험적립금은 2026년이면 고갈되게 생겼다. 이후 건보료 인상 외엔 답이 없어보인다. 지난해 말까지 10조원 정도를 모아둔 고용보험기금도 실업수당 급증으로 2020년까지 버티기도 힘들게 됐다. 국민대다수가 노후를 의존해야 할 국민연금은 새 정부 코드에 맞는 기금운용본부장을 구하지 못해 수익률이 코스피 수익률을 한참 밑돈다. 현재 42조원의 여유자금을 가진 주택도시기금도 현 정부의 주거복지 로드맵에 따르면 빠르게 말라간다. 값싸고 안정적인 원전을 줄여나가면 머잖아 전기료를 안 올릴 재간이 없다. 국민들에게 많이 해주려면 많이 벌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돈 벌 궁리는 않고 저지레를 하고선 뒷수습은 고스란히 기업과 국민 세금에 떠넘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중소기업'소상공인 등이 아우성을 치자 김상조공정거래위원장은 예정에도 없던 대기업 갑질 조사 카드를 디밀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삼성이 협력업체를 쥐어 짜 세계 1위를 만들었다'며 화살을 한국대표 기업에 돌렸다. 그러는 사이 한국에서 2만3천개 대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문정부 출범후 불과 2년사이 벌어진 일이다. 자영업 매출은 1년 새 12%가 급감했다. '착한' 경제는 허울 뿐이다. 이쯤 되면 착한 정부가 아니다. 그저 착한 척하고 있을 뿐이다.대통령부터 미래를 위해 '착한'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 독해져야 한다. 지금 정부는 정치에만 독하고 경제에는 무르다. 이래서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다.

2018-07-23 05:00:00

이춘수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취수원 문제 우(禹)가 물길 트듯이

197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농업용수 문제가 심각했다. 마른장마에 가뭄이 닥치면 천수답의 말라 죽는 벼와 함께 농부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도랑물을 가두는 보매기(보막이)는 벼농사의 성패를 좌우했다. 날이 가물면 물을 지키고, 빼가려는 농부들 사이에 크고 작은 싸움이 벌어졌다.보 싸움과 물꼬 싸움에는 이웃사촌도 없었다. 육두문자가 오가는 것은 기본이고 논두렁에서 육탄전을 벌이는 것도 다반사였다.부처님의 고향인 카필라와 이웃 부족인 콜리야는 로히니강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심한 가뭄이 계속되자 양쪽 부족 사람들은 물을 좀 더 확보하기 위해 강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었다.처음에는 몇 사람의 입씨름에서 비롯된 싸움이 급기야 군대까지 동원되기에 이르렀다. 이 소식을 접한 부처님은 분쟁 지역으로 달려갔다. "그대들은 물과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소중하오?" "물보다는 사람이 훨씬 소중합니다." "그런데도 물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버리려고 합니까?" 부처님의 중재로 싸움은 끝났다. 하마터면 피로 물들 뻔한 로히니강은 다시 두 부족의 소중한 식수원이 되었다.대구권 취수원의 구미 이전 문제가 꽉 막힌 채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물꼬 싸움하듯 격렬한 대치만 있다. 낙동강 페놀오염 사태와 최근의 과불화화합물 유출 파동에서 보듯 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는 대구권 300만 주민들에게 생명선이나 다름없다.생명을 담보하는 안전한 취수원 확보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부, 대구시, 경북도, 구미시 4자가 마주 앉아 해법을 찾아야 한다. 먼저 대구시는 시장, 국회의원, 경제계 및 민간대표들로 사절단을 꾸려 구미시민을 만나라. 만남을 거부하면 수십 번이라도 찾아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 만나서 대구시민들의 절박한 사정을 진정성 있게 이해시켜라.행정적으로는 정부가 나서 구미시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공업용수 부족과 취수원 이전 지역의 재산권 침해에 대한 보상을 약속해야 한다. 공업용수 부족이 사실이라면 이에 대한 대책도 만들어야 한다.이에 더해 구미지역의 각종 인프라 건설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한 역대 총리가 취수원 이전 문제 해결을 약속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다. 정부도 낙동강 수계오염이 '물복지' 차원에서 국가적 비상 상황으로 인식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대구와 구미 간 중재에는 경북도의 역할도 중요하다.구미는 대구에 사는 내 친구의 고향이고, 대구가 고향인 나의 사촌은 구미에서 다섯 식구가 오손도손 살고 있다. 구미와 대구는 한 우물을 파서 먹고 살아가야 할 이웃사촌이다.왕조시대에도 물을 다스리는 것은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과제였다. 요(堯) 임금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황하의 범람이었다. 신하들은 곤(鯀)을 천거했다. 그는 흙으로 높은 방죽을 쌓아 물을 가두려고만 했다.그러나 아무리 둑을 높이 쌓아도 폭우가 쏟아지면 무너졌다. 9년 동안 둑 쌓기를 반복했지만 황하의 범람을 막을 수 없었다. 곤은 치수사업 실패로 죽임을 당했다.다음 해결사로 우(禹)가 천거됐다. 그는 둑을 쌓기보다는 물길을 돌리는데 주력했다. 물길을 터서 흘러가게 했으며 물길을 분산시켜 힘을 약화시켰다. 우는 인심을 얻어 결국 왕이 되었다.대구 취수원 이전과 관련된 지도자들은 '지혜롭기가 우가 물길 트듯이' 결단해야 한다.

2018-07-16 05:00: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한전 사장의 두부값 타령

기업의 가장 큰 목표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얻는 것과 살아남는 것이다. 세계 3대 경영 석학으로 평가받는 마이클 포터 미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지적이다. 기업이 이윤을 내야 살아남고, 살아남으려면 지속적으로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은 평범한 진리다.그런데 예외가 있다. 최소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최대 이익을 남기지 않아도 계속 존속할 수 있는 기업들이 있다. 이른바 공기업이다. 공기업은 공익을 앞세운다. 이를 이유로 대개 독점적 지위를 부여받지만 실은 수익도 비용도 고스란히 국민 호주머니서 나온다.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문 닫을 염려도 없다. 방만 경영으로 부실해지면 요금을 올리면 그만이다. 공기업 사장이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업가로서 주인의식을 갖지 않으면 국민이 괴로워지는 이유다.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이 두부값 타령을 했다. '콩을 가공해 두부를 생산하고 있다' 했으니 자신을 영락없는 두부공장 사장에 빗댔다. 두부값이 콩값보다 싸졌다며 '두부공장의 걱정거리'라 했다. 여기서 '두부공장'은 한전이다. '두부'는 전력이고, '콩'은 석탄, LNG, 석유가 된다. 콩값이 올랐는데 두부값을 제때 올리지 않아 적자로 돌아섰다며 은근슬쩍 전기료 인상을 시사한 것이다.그런데 찜찜하다. 멀쩡하던 콩값은 갑자기 왜 올랐을까. 값싸고 질 좋은 콩은 값이 하나도 안 올랐다. 비싸고 질 떨어지는 콩만 올랐다. 그런데 안 오른 콩은 버리고 오른 콩만 골라 두부를 만들더니 두부값 타령이 나왔다. 비싼 콩만 사들인 것은 두부공장 사장이고, 이를 시킨 것은 그 위의 회장이다.한전은 2015년부터 2년간 매년 10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냈다. 그러다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한 지난해 영업이익은 5조원 밑으로 반 토막이 났고 급기야 지난해 4분기 1천294억원, 올 1분기 1천276억원 등 2분기 연속 손실을 봤다. 80%대를 웃돌던 원전 가동률은 50%대로 떨어졌다. 올 1분기 발전원별 전력단가는 ㎾h당 원자력은 67원, 석탄은 92원, LNG는 125원, 신재생에너지는 165원이다. 2016년 29%이던 원전 생산 비중은 올 1분기 18%로 줄었고, 석탄 비중은 같은 기간 39.8%에서 43.4%, LNG 비중은 23%에서 30%로 늘었다. 콩값이 올라 두부값과 역전한 것이 아니다. 무리해서 비싼 두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원자력발전은 미세먼지(PM10)나 초미세먼지(PM2.5)의 원인이 되는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모두 0g/㎿h다. 반면 석탄발전은 질소산화물을 무려 411g/㎿h를 내놓는다. '친환경 발전'으로 포장한 LNG 발전소는 인체에 해로운 초미세먼지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에너지원이다. 기체 형태를 포함하면 석탄발전에 비해 초미세먼지 발생량이 최고 7.6배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미세먼지로 매년 460만 명이 사망한다.이쯤 되면 한전 사장의 두부값 타령은 선후가 바뀌었다. 정부가 비중을 늘리고 있는 태양광풍력발전을 모두 포함해도 모든 발전 수단 중 원전으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낮다. 특히 우리가 사용 중인 가압경수로형 원전의 경우 세계적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례가 없다. 한전 사장의 비싼 두부는 이를 버린 탓이다.공기업도 기업이다. 최대 이윤은 몰라도 최소 비용으로 양질의 재화와 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진다. 값 싸고 질 좋은 에너지원이 무조건 우선이다. 그렇잖으면 '두부공장의 걱정거리'가 '국민의 걱정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2018-07-09 05:00:00

이춘수

[매일칼럼] 친문 패권과 한국 리스크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8월 25일 당 대표와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치른다. 새로 선출될 당 대표는 2020년 21대 총선 공천권을 갖고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를 수 있어 민주당의 3선급 이상 의원 다수가 욕심을 내고 있다. 하마평에 오른 친문(親文) 후보만 줄잡아 10명이 넘고 나머지 도전자들도 범문(汎文)임을 자임하고 있다. 당 안팎에선 진문(眞文)이 누구를 미느냐로 당권이 교통정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 친문의 권력 독과점은 2016년 8·27 전당대회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이때 친문은 당 대표, 최고위원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또 민주당은 최근 3년간의 선거에서 트리플크라운(20대 총선, 19대 대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을 기록했다. '보수 폭망'에 따른 반사이익도 있었지만 모두 친문에 의한. 친문을 위한, 친문의 정치로 국민의 평가를 받은 결과였다. 이 때문에 한국의 정치 시계는 친문의 선택이고, 한국의 권력 지도는 친문의 향배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치는 생물이라지만 보수가 지리멸렬한 현재의 여건상 친문의 위상과 국정 주도력은 당분간 불가역적일 정도로 철옹성에 가까워 보인다. 친문은 친노(친노무현)에 뿌리를 두고 한때 폐족(廢族-조상이 큰 죄를 지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처지)을 자처했다가 문재인 대통령을 얼굴로 내세워 권력을 다시 잡았다. 친문을 좀 더 확장하면 정부와 국회의 기성 정치인, 민주당을 떠받치는 대의원권리당원 중심의 풀뿌리층, 혐(嫌)보수가 본질인 좌파 이데올로그와 열혈 지지층으로 세분화할 수 있겠다. 현재 여권은 친문을 중심으로 구심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집권 초반인 점, 웬만한 정치 이슈와 정책어젠다를 삼키는 한반도 정세, 보수든 당 내부이든 대체 세력의 부재로 친문의 길은 현재 탄탄대로이다. 그러나 친문의 위기는 시작됐다. 역설적이게도 여권 내부에서 반문(反文) 기치가 전혀 없다는 점이 위기의 근본 원인이다. 불가역적일 것 같은 친문의 철옹성은 독단과 교조적 행태를 양산해 나라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원전을 폐기하자면서도 수출은 하겠다는 이중성, 자신들이 임명한 경제부총리가 소득주도성장의 문제점과 폐해를 강력히 제기하고 시간당 최저임금 때문에 청년과 서비스 부문 실업이 늘고 있는데도 홍보 부족이라며 귀를 막는 현장 괴리 포퓰리즘, 북측 김정은 독재정권에는 핵폐기와 인권 개선 요구는 못하면서 동맹국에는 '할말 하겠다'는 역주행 안보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리스크로 심화될 것이다. 친문의 또 다른 위기는 내부 세력 간 주도권 싸움으로 권력의 사유화가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내 사람 심기가 진행되면서 친문의 분화는 필연적이다. 친문 분화가 계파 갈등의 출발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특히 문 대통령의 임기가 종반으로 접어드는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선 친문의 분열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친임(친임종석)이든, 친이(친이낙연)든 차기 대권으로 시선이 옮겨갈 것이다. 친문의 원심력이 본격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친문 성향의 권리당원과 대의원, 중앙위원이 80%에 가깝다는 말들이 나온다. 이 때문에 어느 누구도 반문은커녕 비문(非文)을 자처하지 않는다. 친문이 지금은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화양연화(花樣年華)를 구가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친이와 박근혜 정부의 친박이 어디에 있는지 보라.

2018-07-02 05:00: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한쪽 날개로는 날 수 없다

서울 구청장 선거 당선자 수 25대 0.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아니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때 일이다. 싹쓸이한 것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전북 단 한 곳에서만 당선자를 냈다. 이어 열린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대권을 거머쥐었다. 여세를 몰아 2008년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둔다. 보수 정당은 내리 3연승 했다.2018년 6월엔 뒤집어졌다. 서울 구청장 당선자 수 24대 1. 이번에는 여당이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광역자치단체장 당선자를 낸 곳은 TK뿐이었다. 민주당은 2017년 대선에서 승리했고 앞서 2016년 총선에선 제1당으로 부상했다. 이번엔 진보 정당의 3연승이다. 여론은 이렇듯 표변한다. 다만 먼저 3연승 했던 한나라당은 오만해지면 망한다는 선례를 남겼다.영국의 정치철학자 로저 스크러튼은 "보수는 훌륭한 유산은 쉽사리 창조되지 않는다는 믿음"이라 했다. 그에 따르면 보수란 "과거를 지키면서 현대적이어야 하고 전통을 지키면서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서서히 진화하며 어렵게 만들어진 긍정적 유산과 전통, 문화를 지녀야 진정한 보수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지도층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보수는 수구가 된다. 오만해진 한나라당이 그 길을 걸었다. 물론 위기의 순간마다 새누리당으로, 또 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본질을 바꾸지 못했다.보수 정당이 사라지는 것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 정당이 끊임없이 견제와 균형을 이룬 나라일수록 발전해 온 역사가 말한다. 보수당과 노동당이 대립한 영국이 그렇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을 세운 미국이 그렇다.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가 선진국 문턱을 넘은 사례가 없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정권 역시 유정회를 만들며 보수와 진보의 균형을 깨트린 후 10년을 넘기지 못했다.수구로 몰락한 한국당은 갈 길을 잃었다. 보수를 표방한 정당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한 후에도 그 단초가 됐던 계파 싸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친박의 망령'이니 '목을 친다'느니 하는 계파 다툼이 여전하다. 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홍준표 전 대표는 이를 '고관대작 지내고 국회의원을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나 '국비로 세계 일주가 꿈인 사람' 등으로 잘 요약했다. 이쯤 되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한 것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 정당이란 점이 너무나 분명해졌다.민주당은 이런 수구 정당의 궤멸을 즐기고 있다. '20년 진보 집권론'을 공공연히 흘리며 들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말 등골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을 느낀다'면서도 소득주도 성장과 탈원전 등 국민이나 기업을 볼모로 삼거나 미래 국민에게 부담을 떠안기는 경제정책을 밀어붙일 명분을 삼았다. 제대로 된 보수 정당이 존재했다면 정책 논의라도 해 보겠지만 지금 해체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당은 그럴 여력이 없다.한쪽 날개로 날 수 있는 새는 없다. 보수의 구심점이 될 정당이 사라진 것이지 적어도 40% 이상으로 추정되는 보수 세력이 사라진 적은 없다. 민주당은 비대해진 한쪽 날개로 기꺼이 날아보겠다지만 자칫하면 또 10년 전의 데자뷔가 될 수 있다. 현 정부가 많은 국민들이 수긍하기 어려운 정책을 마냥 밀어붙일 수만은 없는 이유다.정신줄 놓고 있다 사라진 새누리당이 벽에 붙여 놓았던 구호는 이랬다. '정신 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

2018-06-25 05:00:00

이춘수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TK의원들 참회하고 결단하라

침묵과 보신에 대한 경고였다. 대구경북(TK)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았고,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여러 차례 경고음을 보냈건만 TK 국회의원들은 의식조차 못 했던 자신들의 적폐(積弊) 때문에 살을 에는 채찍을 맞았다.6·13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사실상 한국당을 정치적으로 파면시켰다. 한국당에 더 충격적인 사실은 보수의 텃밭이라 여겼던 TK에서의 선거 결과다.TK 민심도 한국당에 마지막일지도 모를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구 광역의원 30명 가운데 9명, 기초의원 116명 가운데 50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수성구는 재적의원 20명 가운데 10명이 민주당이다.한국당 대구 기초단체장 당선인들은 4년 전 평균 득표율이 67%였지만 이번엔 48% 득표에 그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가 가장 짙게 남아 있는 구미에서 민주당 후보 당선은 이번 선거의 결정판이다.이번 선거는 TK 정치 기반과 유권자 의식이 뿌리에서부터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일시적인 바람이 아니다. TK 유권자들은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한국당 국회의원들만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권이 진보·좌파일 때는 보수의 목청만 높이면 당선됐고, TK 출신 대통령일 때는 줄만 잘 서고 친이·친박·보수 물결에 편승만 하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TK 한국당의 실패는 국회의원들이 시대 변화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태어나 19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유권자가 이제 40대 중반이 되었다. 이들과 그 밑의 세대들은 진보냐, 보수냐는 관심 없다. '박정희 시대'를 살아본 50대 이상의 장노년층과 달리 정책과 신념에 대한 접근이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다. 또 어느 당과 후보가 나의 삶과 가치를 고양시킬 수 있느냐로 행동한다.이런데도 한국당은 한반도 정세 변화를 맹목적 색깔론 프레임으로 맞섰고, 대안 제시 없이 '샤이 보수'의 결집에만 기대었다. 20, 30대에겐 한국당 대표의 '꼰대' 이미지가 싫었고, 막말이 혐오스러웠고, 심술부리는 동네 아저씨 같은 모습이 무조건 싫었다.또 TK 유권자들은 국회의원들이 행동해야 할 때 침묵하는 무소신과 존재감 없음에 더 실망하고 분노했다. 친박비박 패권 다툼이 있을 때, 당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누구도 "이건 아니다"라고 외치지 못했다. 친박을 자처했던 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는데도 "내 탓이오" 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는 의원 하나 없었다. 오히려 친박 색채를 빼려 하고, 당 지도부에 빌붙어 후일을 기약하기에 바빴다.사실상 '한국당 붕괴'의 채찍을 내려친 민심은 이제 TK 정치권에 '어디로 갈 것이냐'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보수의 본류'였던 TK 보수의 새로운 상(像)을 정립하고 새판을 짜야 한다. 먼저 보수재건, 보수혁명의 그림부터 그려야 한다.시대의 변화를 읽고 보수 노선을 재정립해야 한다. 전통적 보수는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자유, 안보와 경제성장 가치 지향을 근본으로 한다. 적어도 이에 동의하는 인사들이라면 야당 전체의 새 판을 짜야 한다. 또 외부에서 보수 혁신과 야권 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인물을 당의 얼굴로 영입하는 데 TK 의원들이 주도하고 궐기해야 한다.이대로라면 2020년 4월 치러질 총선에서 TK 한국당 의원 대다수가 살아남기 힘들다. 결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더 이상 숨어있지 마라. TK발 보수재건, 보수혁명을 위해 온몸을 던지라는 것이 지역 유권자들의 마지막 명령이다.

2018-06-18 05:00:00

[매일칼럼] 누구를 뽑을 것인가

정치판이 절정이다. 지방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거리마다 플래카드가 넘쳐난다. 지지를 호소하는 전화와 문자가 홍수를 이룬다. 듣도 보도 못했던 유권자를 향해 후보들은 깍듯이 절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몸값이 치솟는 세상이다.선거 열기가 뜨거울수록 공약(公約)인지 공약(空約)인지가 난무한다. 구청장 선거에조차 대통령이 나서도 힘든 공약이 등장한다. 대구공항은 과연 옮겨야 하는지, 군공항만 옮겨가는 것은 또 가능한지가 화두다. 초중등교육을 담당할 교육감 선거에서 대학교수 경력이 강조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어떤 후보는 장관 경력을 내세운다. 유권자들은 헷갈린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공약을 보면 더 헷갈린다. 투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감한 상황이다.아쉽게도 이를 극복하는 것은 오롯이 유권자 스스로의 몫이다. 지방선거는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역 발전을 고려해 선거를 치러 본 적이 거의 없다. '묻지 마' 선거는 일상이다.정치인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금물이다. 정치인의 자질은 동서고금을 통해 국민 눈높이에 맞은 적이 없다. 유권자가 깨어나지 않으면 정치는 영원한 삼류다. 고대 그리스 최대의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오늘날 정치인은 학식 있는 사람이나 성품이 바른 사람이 아니다. 무식한 깡패들에게나 알맞은 직업이 정치"라고 했다. 여기서 '오늘'이란 것이 2천400여 년 전이다. 민주주의가 처음 싹을 틔운 시절부터 정치란 것이 그랬던 모양이다. 프랑스 극작가 카뮈는 "자신 속에 위대함을 지닌 자들은 정치하지 않는다"고 했고, 독일의 막스 베버는 "어중이떠중이가 다 뛰어드는 것이 정치판"이라 했다.정치인의 자질이 떨어진다고, 찍을 사람이 없다고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나쁜 선택이다.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포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찍어야 하나.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최악을 피하려면 차악이라도 택해야 한다.최근 가정마다 배달된 선거공보물엔 의외로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후보의 면면을 파악하는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후보자의 인적 사항과 재산, 납세 실적, 전과 등 기본 사항은 물론 어떤 공약을 내걸었는지 살피는 것은 필수다.파렴치한 범죄 경력은 없는지, 세금은 제대로 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나아가 공약을 제대로 살피는 것은 후보자 선택의 바로미터다. 실현가능한 공약인지, 지킬 수도 없는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눈과 귀만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약을 지켰을 때 진정 주민들의 삶의 질이 나아질 일인지, 당장은 좋아 보이지만 결국 살림만 거덜 내는 것은 아닌지 꼼꼼한 판단이 필요하다.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파트 단지 우편함엔 아직 찾아가지도 않은 선거공보물이 상당수 남아 있다. 뜯지도 않고 버려진 것이 얼마나 될 지도 알 수 없다.이래서야 후보자들의 유권자 대접은 시한부다. 딱 이틀 남았다. 깍듯한 인사도, 따듯한 메시지도, 이틀이면 끝이다. 그냥 끝내지 않으려면 유권자들이 눈을 부릅떠야 한다. 감시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기대에 못 미치면 4년 후 갈아치운다는 각오가 서야 선거 이후에도 유권자들이 대접 받을 수 있다.프랑스 사상가 루소가 남긴 통찰은 깊다. "많은 정치인은 선출과 동시에 지배하고 군림하려 든다. 지도자를 뽑았는데 지배자가 되려 한다." 우리는 이런 지역 정치인을 막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2018-06-11 05:00:00

이춘수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6·13 의미와 옥석 가리기

613 지방선거는 대선이나 총선과 달리 워낙 후보가 많은 데다 대형 이슈에 가려 있어 '깜깜이 투표'로 치러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다룰 북미 정상회담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국민의 눈과 귀가 온통 여기에 쏠려 있다. 그 때문에 이번 선거는 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 지역 단위, 그리고 정당과 인물 대결 위주로 치러지는 흐름이다.다른 지역과 달리 대구경북(TK)은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적으로 많은 변곡점을 그릴 수도 있다. 지금까지 TK 주축 정치세력인 자유한국당의 수성 여부와 지지율, 더불어민주당의 득표력과 단체장 배출 여부, 바른미래당의 의미 있는 득표율이 관전 포인트이자 지역 정치권 개편의 변수다. 넓게는 향후 TK의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는 촉매로도 작용, 2020년 총선을 앞두고 TK가 여야 전체의 정계개편 진원지가 될 수도 있다.한국당이 지역에서 일부 단체장을 잃고, 득표율에서 민주당을 압도하지 못할 경우 TK가 주축인 한국당은 진앙에서 정계개편의 회오리바람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일부 후보들이 유세 지원을 거부할 정도인 홍준표 대표 체제에 대한 불신임도 발화될 전망이다.민주당은 TK에서 기초단체장 몇 곳을 차지하고 정당 득표율이 30%를 넘길 경우 확실하게 지역에 착근할 수 있게 된다. 지역에서 민주당에 대한 변화는 공천 과정에서 예년에 없던 경쟁률을 보인 데서 전조를 보였다.바른미래당은 지방선거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국회의원과 당원들이 또 다른 야당으로 이탈할 여지가 많고, 당의 간판인 유승민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크게 약화된다. 야권 전체가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 경우 어느 한쪽으로의 쏠림보다는 '헤쳐 모여'식 정계개편이 이뤄질 수도 있다.613 지방선거가 깜깜이 선거로 진행되고 있지만 TK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양상도 읽힌다. 4일 발표된 본지 여론조사에서 보듯 대구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한국당을 앞섰다. 보수 텃밭이라는 대구에서의 이런 흐름은 다수의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이 한국당을 추월하거나 근접 추격하는 모양새다.그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1, 2위를 다투고 있다. 최종 당락은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전 선거와는 분명 다른 양상이다. 모든 것은 TK 유권자들의 선택에 달렸다.이번 선거의 정치적 함의와는 별도로 최악의 인물이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도민들이 선거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옥석을 가릴 책임과 권한은 유권자들에게 있다.유권자가 지역 주민의 살림살이를 책임질 일꾼을 뽑는 데 소홀히 하면 부도덕하고 무능한 후보들이 활개를 치게 된다. 지방선거 후보자 등록 명부를 보면 전체 후보자의 38.1%가 벌금 100만원 이상의 전과기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보 10명 중 4명꼴이다.유권자들이 '밝은 눈'으로 정책과 공약을 꼼꼼히 비교해 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정책공약 알리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빅데이터로 분석한 '우리동네 공약지도' 역시 유용한 사이트다. 여기서는 유권자들이 직접 희망하는 공약을 제안할 수도 있다.지방자치는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으면 꽃을 피울 수 없다. 주거교통환경교육 등 주민 삶과 밀접한 정책과 집행을 다룰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 못지않게 중요하다.

2018-06-05 05:00:00

[매일칼럼] 외눈박이 일자리 정책

어느 나라 대통령이나 취임하면 일자리에 욕심을 내기 마련이다. 경제가 정부 명운을 가르고, 일자리는 그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취임 일성이 일자리였다. 비슷한 시기에 취임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그랬다. 대통령의 일자리 욕심은 바른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이룰 수 있다.마크롱은 취임하자마자 프랑스 노조의 철밥통을 깨트리는 것에 정치 생명을 걸었다. '저성장-고실업'으로 대변되는 '프랑스 병'은 깊다. 마크롱은 그 원인을 각종 고용 보장 장치가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은 탓이라고 봤다. 누구도 손 못 대던 노동개혁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고용 10인 이하 소기업은 1분기, 49인 이하 기업은 2분기 연속 매출 감소만으로도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산별 노조의 협상 권한은 대폭 축소했다. 임기 5년간 공무원 일자리 12만 개를 줄이겠다는 폭탄선언도 내놨다. 만성적자에 빚투성이인 국영철도공사부터 메스를 들이댔다. 그의 철학은 '해고를 더 쉽게, 고용도 더 쉽게'로 요약할 수 있다.고용시장이 유연해지자 기업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앞다퉈 프랑스로 몰려들고 있다.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는 3억유로를,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는 9억유로를 투자했다. 이렇게 끌어들인 해외자본이 우리 돈 4조원이 넘는다. 기업이 몰려들자 성장률은 두 배로 뛰고, 양질의 일자리는 25만 개 이상 늘었다. 늘 두 자릿수였던 프랑스의 실업률은 지난해 4분기 8.6%까지 떨어졌다. 반면 고용률은 65.7%로 올라 1980년대 이후 최고다.문 대통령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고용의 유연성 보장이 아닌 소득 주도 성장론을 들고나온 것부터 그렇다. '소득 주도 성장'이란 실험을 한다며 최저임금을 충격적인 수준으로 올렸고, 더 올리겠다고 벼른다. 가뜩이나 강성 소리를 듣는 노동계의 목소리는 커지고 기업은 아예 입을 닫았다.성적은 시원찮다. 기업은 기업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아우성이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인 제조업의 몰락이 심상찮다. 지난 3월 중 생산과 투자가 동시에 큰 폭 하락했다. 공장 가동률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이고, 제조업 재고율은 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다.지난해 세금 25조원을 일자리정책에 쏟아부었지만 청년들은 반듯한 일자리는커녕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지난 3월 실업률은 17년 만에 최악이다. 올 1분기 하위 20% 계층의 소득은 1년 전보다 8%나 줄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줄자 저소득층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동네 식당은 속속 문을 닫고 있다. 물가는 다락처럼 올랐다.그런데도 경제 정책 라인의 해석은 '제 편한대로'다.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 수석은 일자리 감소 지적에 "사실 일자리는 계속 늘고 있다"고 했다. 장하성 대통령 정책실장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효과는 없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침체 국면 초기 단계'라고 하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성급하다'고 반박했다. 경제 전반에 걸쳐 울리는 경고음은 묻히고 '이대로'라는 외침만 강하다.정부는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한다. 이대로라면 세계적 호황 속 불황을 겪는 우리 경제를 바로 세울 수 없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일을 잘못 하는 데 있지 않다. 일을 거꾸로 하는 데 있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프랑스 따라잡기는 영 글렀다.

2018-05-28 05:00:00

기획 & 시리즈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