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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두 번 다시 경험해선 안 될 나라

[매일칼럼] 두 번 다시 경험해선 안 될 나라

"그럼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이런 아내를 계속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겁니까."대통령 후보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한마디로 불리하던 전세를 뒤집었다. 장인의 좌익 전력이 문제가 됐을 때였다. 이후에도 노 전대통령은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좌충우돌했다. 생각이 다른 이해집단과 얼굴 붉히는 토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이게 대통령의 말이냐'는 논란에 휩싸인 적도 잦았다. "대통령 못해먹겠다." "이쯤가면 막하자는 거지요." 같은 어록이 남았다.그래도 노 전대통령은 지도자가 구사하는 언어의 중요성을 꿰뚫고 있었다. 투박하지만 솔직한 어법 속에 철학을 담으려 했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저서 '대통령의 말하기'에서 노 전 대통령이 '지도자의 말하기'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고 썼다."말을 잘하는 것과 말재주는 다른 것이다. 국가 지도자의 말은 말재주 수준이 아니고 사상의 표현이고, 철학의 표현이다. 가치와 전략, 철학이 담긴 말을 쓸 줄 알아야 지도자가 되는 법이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연설문을 직접 쓰지 못하면 리더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동은 표현에 있지 않다. 사실 즉, 팩트에 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의 용기"라고 진단했다.이 어록을 접하며 문재인 대통령을 생각한다. 문 대통령은 침묵 혹은 수사(修辭)의 대가다. 국민이 진실을 듣고 싶을 때 문 대통령은 침묵한다. 가끔 내놓는 말에도 국민이 듣고자 하는 이야기는 쏙 빠져 있기 일쑤다. 그저 듣기 좋은 의례적 수사만 되풀이하는 경우도 많다.북한군이 '대한민국' 국민을 사살하고 시신을 훼손한 사건에서도 그랬다. 문 대통령은 직접 국민 앞에 서지 않았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던 취임 때의 약속은 지킨 적은 없다. 대통령의 빈자리는 늘 청와대와 여당, 조국, 유시민, 김어준 같은 이들의 궤변이나 억지, 선동적인 언어들이 메운다.국민들이 온 나라를 뒤흔든 추미애 장관에 대한 대통령의 말을 듣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한마디도 없었다. 검찰개혁회의랍시고 청와대서 연 자리에 추 장관과 나란히 입장하는 것으로 입장을 드러냈을 뿐이다. 이 정부서 만든 첫 청년의 날. 청년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외면한 채 대통령은 '공정'을 37번 언급했다. 대통령이 말하는 공정의 실체 역시 국민은 궁금하다.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부정 사건이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침묵했다. 그러다 한 달이 다 지나서야 입을 땠는데 윤미향의 윤자도 꺼내지 않았다. "시민단체 활동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의례적 수사만 내놓았다.전라도권 공공의대 신설 꼼수가 알려지며 촉발된 의료 분쟁에선 의사와 간호사를 이간질하는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가 SNS글조차 스스로 쓰지 않는 사실이 들통 났다. 진중권 씨가 "문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달리 철학이 없다. 남이 써 준 원고나 읽는 의전 대통령 같은 느낌"이라고 하자 청와대 참모들이 발끈해 올린 것이 대통령이 원고를 교정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철학부재'와 '교정하는 모습'은 대체하기 부자연스럽다.지도자의 말에서 철학을 찾기 어려운 나라가 잘 돌아갈까. 집권과 함께 시작한 일자리 창출, 소득주도성장, 탈원전에다 최근의 부동산 정책까지 어느 것 하나 정책적 효과를 내지 못했다.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상황을 낙관한다. 한국경제가 "기적같은 선방을 했다" 하고 "외평채 발행에 성공했다"며 나랏빚 낸 것을 자랑한다.철학을 담지 않은 수사는 오래 갈 수 없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수사는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는 "두 번 다시 경험해선 안 될 나라"가 됐다.이쯤 되면 대통령이 나라 걱정에 잠을 못 이뤄야 하는데, 대통령은 낙관하고 온 국민이 나라를 걱정한다. 문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실적을 남기지 않은 대통령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렇게 된다면 이는 문 대통령이 애초 리더가 될 수 없었거나,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어서일 터다.

2020-09-28 05:00:00

[매일칼럼] 거대 공룡과 맞서려면

[매일칼럼] 거대 공룡과 맞서려면

행정통합과 광역경제공동체 형성이 지방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중앙정부와 수도권 공룡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지방의 몸부림이다. 이런 움직임은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고 활발하다. 수도권 집중, 서울공화국 현상이 지방을 옥죄는 수준이 아니라 그야말로 지방 소멸의 위협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수도권 인구 집중은 점점 심화돼 급기야 대한민국 인구 절반을 넘어섰다. 사람은 물론 돈, 정보, 교육, 문화를 송두리째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제 수도권 사람과 그 나머지 사람들로 구분될 지경이다.수도권은 팽창을 거듭해 날로 광역화, 비대화하고 있다. 세종시에는 중앙 부처가 거의 다 포진하고 국회 이전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서울·경기뿐 아니라 세종시를 포함한 충청권까지 범수도권으로 확장되면서 초거대 공룡이 탄생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로써 충청권을 포괄하는 한반도 중부권 경제공동체는 가시화되고 있다. 중앙정부도 수도권 집중 분산이란 미명 아래 수도권 초광역화를 부추기고 있다.반면 지방은 경제·사회·문화적 자원의 빈곤은 물론 정서적 빈곤에까지 허덕이고 있다. 삶의 양적 질적 저하로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지방민들과 지방정부는 이젠 단일한 광역경제권 형성 없이는 생존이 어려울 판이다. 광역경제권 형성이 절실하고, 그 핵심 전제 조건은 광역행정 통합이다.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이철우 경상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이 대구경북 행정통합에 적극 나선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양 단체장 중 한쪽이라도 호응하지 않으면 통합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대구경북을 위한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단체장 합의, 주민투표, 특별법 제정이란 세 관문 중 첫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대구경북의 행정통합 시동은 다른 지방정부에도 파급효과를 주고 있다.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이 광역경제공동체 실현에 고삐를 죄고 있고, 광주전남도 행정통합 논의에 물꼬를 트고 있다.광역행정의 분리는 행정과 경제,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비효율을 낳고 있다. 글로벌 시대 경쟁력 저하도 불 보듯 뻔하다. 인구가 늘고 면적이 광역화하면 그에 따른 사회간접자본 비용은 줄고 소득과 편익은 늘어나 지역 발전에 효율적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수도권 초광역화는 대구경북과 남부권 각 지방정부에 광역행정 통합을 넘어선 또 다른 생존 과제를 안기고 있다. 대구경북 행정통합과 부울경 경제공동체, 광주전남 행정통합만으로는 광역수도권, 이른바 중부권 경제공동체에 맞서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이 광역수도권과 맞설 수 있는 구도는 바로 남부권 전체의 경제공동체 형성이다. 그 대상은 바로 대구경북을 비롯해 부울경, 광주전남, 전북을 포괄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광역수도권의 거대 공룡에 맞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코끼리 정도로 거대 공룡과 맞붙을 수는 없지 않겠나.대구경북은 행정통합 과제 완수 이후 남부권 지방정부 네트워크 구성을 통해 남부권 경제공동체로 나가야 한다. 대구경북과 부울경이 영남권 5개 지방정부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남부권 전체 지방정부 네트워크 구성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행정통합 시동으로 대구경북은 수도권 거대 공룡에 맞서기 위한 첫걸음마를 뗐다. 두 단체장이 의지를 피력한 만큼 이제 시도민들이 주체가 돼 똘똘 뭉쳐 통합의 밑그림을 완성해야 할 때다. 그래야만 지역의 다음 세대들이 수도권 외 나머지 사람이 아니라 떳떳한 지방정부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누릴 수 있을 테다.

2020-09-21 06:00:00

[매일칼럼] 나랏돈이 네 돈이냐

[매일칼럼] 나랏돈이 네 돈이냐

정부의 재정건전성 지표가 역대 최악이다. 들어오는 돈에 아랑곳없이 쓰는 일에 몰두하다보니 벌어진 일이다. 1~7월까지 정부 총수입은 280조4천억원에 불과한데 총지출은 356조원이다. 국세 수입이 지난해 보다 무려 20조8천억원이나 줄었다. 그래도 지출은 37조8천억원을 늘렸다. 경기를 살린다며 예산을 마구잡이로 끌어다 썼지만 경기 반등 기미는 없다. 세수 감소는 정책 실패의 방증이다.정책엔 실패해도 정부·여당은 돈쓰는 재미에 푹 빠졌다. 코로나를 이유로 이미 세 차례 추경을 했다. 이것만으로도 올해 늘어난 나랏빚이 100조원을 훌쩍 넘었다. 국민이 짊어질 빚이 1인당 200만원이상 증가했다. 4인 가족 기준 100만원씩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받고선 그 8배에 달하는 나랏빚을 덤터기 쓴 셈이다.그럼에도 정부의 돈 씀씀이는 거침이 없다. 3차 추경 사업 중 상당수가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는데 4차 추경을 서두르고 있다. "곳간에 쌓아두면 썩는다"던 곳간은 텅 비었다. 전액 빚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비상경제회의'서 '신속'이란 단어를 다섯 번이나 사용했다. 추석이전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많은 국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국민의 필요에 부합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선별지급이 말썽이다. 이미 공돈에 맛들인 국민들은 누군 주고 누군 안주냐고 아우성이다. 그러자 전국민에게 1인당 2만원씩 통신비를 준다는 무마책이 또 나왔다.나아가 여당 씽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원장인 홍익표 의원은 "내년 상반기엔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벌써부터 운을 뗐다. 내년 초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열린다.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이미 지난 총선서 재미를 쏠쏠하게 본 정부다.그 사이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3.5%까지 치솟았다. 박근혜정부 시절 '국채비율 40%가 마지노선'이라더니 이 정부 들어 '그 근거가 뭐냐'로 바뀌었다. OECD평균보다 크게 낮아 국가 재정이 매우 건전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는 매우 안이한 시각이다. 원화는 달러나 유로, 엔화처럼 기축통화가 아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국가들은 국채비율이 높다고 외환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는 국채비율이 급등하면 국가신용등급이 흔들리고, 국채 금리가 오르고, 원화가치가 떨어진다. 자칫 IMF사태 같은 외환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나랏빚 폭증이 정부 설명대로 코로나 탓이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하다. 문 정부는 출범이후 줄곧 적자재정에 기반한 초슈퍼 예산 정책을 펴왔다. 2018년 7.1%, 2019년 9.5%, 2020년 9.2%씩 예산 규모를 더 늘렸다. 내년에도 본예산만 8.5% 증액한 예산안을 내놓았다. 임기 내내 예산 증가율이 매년 경제 성장률을 3배이상 초과하고 있다. 역대 정부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코로나 탓' 추경도 빈말에 가깝다. 문 정부는 집권 후 한 해도 추경을 편성하지 않은 적이 없다. 2017년 집권 첫해엔 일자리추경을, 2018년엔 청년일자리 추경을 했다. 2019년엔 미세먼지와 경기대응 추경을 또 했다. 올해는 코로나를 이유로 추경규모와 횟수를 역대 최고, 최다로 늘렸을 뿐이다.정부가 초슈퍼 예산을 짰다고 '내 삶이 나아지는 나라'가 되었나. 부정적이다. 국민들은 언제 터질지 모를 빚만 잔뜩 짊어졌을 뿐 삶은 더 팍팍해졌다. 집 있는 사람들은 치솟는 세금을 걱정하고, 집 없는 사람들은 집값을 걱정한다. 도산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들은 정부 구제에 목을 매야한다. 지난달 구직급여액은 4개월 연속 1조원을 넘겼다.재정중독에 빠진 정부가 돈 풀기로 당장의 인기는 유지할 수 있다. 과거 그리스의 파판드레우, 아르헨티나의 페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이 그렇게 정권을 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라들은 예외없이 경제 위기를 맞았다.세계적 경영학자 피터드러커는 그의 저서 '미래경영'에서 기업 경영의 '효과성'과 '효율성'이란 마인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효과성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고 효율성은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한낱 기업도 이 두 가지에 실패하면 도태되기 쉽다. 하물며 나랏돈으로 살림을 꾸리는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해선 안 될 일을 구별하지 못하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나라의 미래는 어둡다.지금 포퓰리즘 소리가 나오는 정부의 돈 씀씀이에서 효과성과 효율성이 의심받는다. '국민이 원하면 다 줘라'는 정치로 두 차례 11년을 집권한 파판드레우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나랏돈이 네 돈이냐'는 말을 천둥처럼 들어야 할 것이다.

2020-09-14 06:30:00

[매일칼럼] 취약층 보호가 코로나 방역이다

[매일칼럼] 취약층 보호가 코로나 방역이다

-3.2%. 한국은행은 지난 1일 올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분기보다 3.2% 역성장했다고 발표했다. 2008년 4분기 –3.3%를 기록한 이래 12년 만의 최저 수준. '코로나 경제 대란'이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숫자는 추상적이다. 추상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통계는 개별성과 고유성을 드러내지 못한다. –3.2%는 소상공인, 자영업자, 취약계층에게 공허하게 들린다. 피눈물 나는 현실을 거울처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70~80% 준 음식점이 수두룩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일부 업종은 아예 영업을 못한다. 손님이 없어 스스로 휴업하거나 폐업한 가게들도 많다.벌이가 없어도 임대료와 인건비는 꾸준히 나간다. 어떻게 감당하냐고? 빚내서 버티고 있다. 2분기 예금대출기관의 대출 잔액이 역대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 산업별 대출금 잔액은 1천328조2천억원. 1분기 말보다 69조1천억원(14.2%) 증가한 규모다.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서비스업의 대출 증가 폭은 47조2천억원으로 가장 컸다."해외여행을 가지 못해 우울하다", "집콕, 방콕이 답답하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이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로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게시물이 많다. 자신만의 '홈 트레이닝'이나 '육아 팁'을 자랑하는 콘텐츠도 넘쳐난다. 몇 백 번 휘저어서 만드는 '달고나 커피'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사람들이 코로나 위기를 슬기롭게 견뎌내는 것처럼 보인다.이런 콘텐츠만 보고 있으면, 현실은 왜곡된다. 코로나 사태는 무료하고 불편하고 불안하지만, 죽을 지경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는 큰 착각이다. 중산층에 편향된 코로나 시대 일상일 뿐이다.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겐 위화감으로 다가온다. 당장 굶어죽을 지경인 사람들에게 코로나 블루는 감정과잉으로 여겨진다. 바이러스는 사람과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구체적 고통의 크기는 다르다. 코로나 사태는 성장의 그늘에 가린 취약층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손님이 급감한 영세 자영업자는 생계난에 허덕인다. 그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회적 고립'으로 읽힌다.자영업자와 취약계층 보호는 코로나19 방역에서 중요하다. 코로나는 모두의 기본 생활, 기초 건강을 지켜주지 못하면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지금까지 방역 지침을 잘 따랐다. 문을 닫거나 제한 영업을 하면서 손실을 감수해왔다. 하지만 고통의 한계치가 온다면? 생각만 해도 두렵다. 코로나 위험 속에서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미국 시민들의 시위를 지켜본 적이 있다. 건강과 감염 예방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연대하고 배려해서 대응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가장 취약하고 고통받는 계층에 역량과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다.코로나는 우리에게 값진 교훈을 줬다. 성장과 효율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 전문가들은 주기적인 감염병 유행을 경고하고 있다. 그 주기는 갈수록 짧아질 것이란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돼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이제는 감염병 시대에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모두가 안전하고 다 같이 잘사는 세상이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희망을 봤다. 코로나 1차 대유행 때 보여준 대구경북의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대구경북 사람은 봉쇄 조치가 없는데도 이동을 제한했고, 귀한 마스크를 나눠 가졌다. 연대와 배려가 나와 이웃을 지켜낸 것이다.

2020-09-06 15:00:00

[매일칼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상소문

[매일칼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상소문

부질없는 말이 되었지만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엔 "~(하)겠습니다"란 말이 60차례 등장한다. 나라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겠다'는 약속이 단문 단문 폭포수처럼 이어졌다. '연설문'은 명문장이었다. 대통령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 했다. 이를 듣는 국민들의 가슴도 뜨거웠다.그럼에도 부질없다고 한 것은 모두가 식언(食言)이 되어서다. 몇 가지만 꼽아본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습니다"던 약속. 최장집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 3년 '대통령의 권한'은 확장돼 왔고, '법의 지배'는 위협받았다는 말로 이를 일축했다."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던 다짐도 이내 버려졌다. 그러고도 최근 수도 이전 주장을 들고나왔다가 "대통령 집무실도 광화문으로 옮기지 못한 주제에"라는 핀잔을 들었다. "주요 사안은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한 것은 허언이었다. 국민들은 궁금한 점이 많다. 나라 경제는 상처투성이고 국민 삶은 힘겨운데 '기적 같은 경제 선방을 하고 있다'는 인식은 어디서 나왔는가. 코로나 전쟁의 최일선에 선 의사들의 등을 돌리게 한 공공의대 정책은 갑자기 왜 튀어나왔나. '부동산 정책은 자신 있다'던 그 자신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 대통령은 한 번도 이런 현안에 대해 언론에 직접 설명한 적이 없다."권력 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란 말 역시 토사구팽이 됐다. 국민들은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한 윤석열의 검찰이 몇 차례 인사를 통해 어떻게 정치권력의 애완견으로 전락하는지를 똑똑히 지켜봤다."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대목은 조국 전 수석과 맞물리면서 웃음거리가 됐다. 대통령은 그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다. 이는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은 '내 편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였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도 그렇게 공허해졌다.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조차 "언제부턴가 우리 편과 저 편을 가르기 시작했고 이중 잣대로 가늠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시중엔 대통령이 취임사 중 지킨 유일한 약속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든 것이라는 역설적 해석이 회자된다.이러니 나라 걱정을 하는 국민들이 많아졌다. 지난주엔 스스로를 '먼지'라 칭한 이(진인 조은산)가 대통령에게 올린 시무 7조 상소문이 화제였다. 상소문 역시 그 운율과 은유, 날카로운 관찰과 분석이 돋보이는 명문장의 연속이었다. "실정의 책임을 폐위된 선황에게 떠밀며 실패한 정책을 그보다 더한 우책으로 덮어 백성들을 우롱하니 그 꼴이 점입가경"이라 했다. "정책은 난무하나 결과는 전무하다"고 꼬집은 대목은 위정자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감성보다 이성을 중히 여기는 정책' '명분보다 실리를 중히 여긴 외교'를 펼치라는 고언도 잊지 않았다.조선조는 상소의 시대였다. 각계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상소가 올라왔다. 세종 같은 현군은 사소한 상소도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연산군 같은 폭군은 상소 기능을 없애려 했다. 선조는 왜적이 쳐들어올 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상소를 무시했다가 무능한 왕이 됐다.진인의 상소문 청원인이 30일 현재 40만 명에 육박한다. 옛 상소엔 임금이 직접 답했다. 문 대통령도 직접 답하기를 기대한다. 이는 대통령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직접 읽고 의미를 반추할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 상소문에 온 국민이 폭발적으로 반응한 것을 허투루 여기지 말았으면 한다. 대통령이 더 이상 내 편 말만 듣고 접하며 나라를 이끌 수는 없지 않은가.

2020-08-31 06:30:00

[매일칼럼] 어느 음모론자의 미소

[매일칼럼] 어느 음모론자의 미소

뜻하지 않은 사고로 남편을 잃은 뒤 외동아들을 데리고 귀향한 그녀(전도연 분). 시골에서 피아노 학원을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점차 고향 생활에 적응해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랑하는 아들이 납치되고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다. 삶의 희망이 무너져 내린다.망연자실한 그녀에게 이웃은 교회를 통해 마음의 병을 치유할 것을 권유한다. 기도회에 열심히 참여한다. 맹목적인 기독교인이 된 그녀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죽인 납치범을 용서하고 싶다고 한다. 교도소에서 납치범을 면회한 그녀."주님의 사랑으로 당신을 용서하기 위해 왔습니다."하지만 범인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나는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 하나님이 용서해주신 덕분에 너무 마음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말한다.(영화 '밀양' 중에서)신천지교회로 촉발된 코로나19 대구경북 대확산이 의료진과 방역 당국의 눈물겨운 사투로 6개월여 만에 숙졌다.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단체모임 자제하기 등 국민들의 차분한 대응은 전 세계인의 모범으로 주목받고 있다.이러한 때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 2차 대유행이 번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넘어 답답함이 밀려온다. 특정 교회와 이를 이끌고 있는 목사가 코로나 방역에 저항하거나 방해하면서 오히려 확산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2차 '슈퍼 전파'의 진원지는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다. 특히 이 교회를 이끌고 있는 전광훈 담임목사는 거짓과 음모론으로 교인과 국민을 현혹하는 반사회적 작태를 일삼고 있다.그는 집단 예배를 강행한 데다 서울시의 자가 격리 명령을 어기고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집회를 주도했다. 지난 3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그는 '위법한 집회나 시위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보석으로 풀려난 터였다.그런데도 광화문 집회에 참석, "나는 지금 멀쩡하다. 열도 안 오르고 증상이 전혀 없다. 그런데 격리 대상으로 정했다고 (지방자치단체가) 통보를 했다"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예배에 참여하면 성령의 불이 떨어지기 때문에 걸렸던 병도 낫는다"고도 했다. 그리고 이틀 뒤 확진 판정을 받았다.코로나 확산과 관련, "우한 바이러스를 우리 교회에다가 테러를 했다. 바이러스 균을 우리 교회 모임에다 부어버렸다"고 했다가 "테러가 북한 소행일 것 같다"고 북한 테러설까지 폈다.그의 황당한 음모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그는 "(코로나 확진자 발생) 2주 전부터 바이러스 테러를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후 손 소독부터 열 체크, 마스크 착용을 해왔고, 그동안 한 건도 (확진자가) 안 나왔는데, 8·15 대회를 앞두고 확진자가 쏟아졌다"고 했다. 광화문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누군가 테러를 감행했다는 것.서울의료원에 입원한 뒤에도 그는 기독교계 한 언론에 "(사랑제일교회) 성도들 보건소 가면 양성인데 병원 가면 음성인 게 수십 명씩 나온다"며 또 다른 음모론을 내세웠다.전 목사의 돌출 언행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지난해 3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시절, 당시 황교안 대표를 향해 "하나님께서 일찍이 준비하셨던 황 대표님을 자유한국당의 대표님으로 세워주셨다.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을 이어가는 세 번째 지도자가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황비어천가'를 불렀다.지난 17일 확진 판정 뒤 구급차에 올라 마스크를 내린 채 미소를 띠며 휴대전화를 하는 전 목사의 모습에서 영화 '밀양'에 나온 납치범의 미소가 겹쳐지는 이유는 뭘까.

2020-08-23 22:26:31

[매일칼럼] 토끼를 버린 잠수함

[매일칼럼] 토끼를 버린 잠수함

토끼를 버린 잠수함이 있었다. 태평양에 잠항 중인 한 잠수함에 탄 토끼가 갑자기 허덕거렸다. 호흡곤란이다. 토끼 관리 사병은 상황을 상관에게 보고했다. 이런 상황이면 함장은 수면 부상을 명령해야 한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명령은 지체되고 있다.함장실에서 큰소리가 흘러나왔다. 부함장과 주요 참모들은 토끼의 몸부림을 무시했다. "산소측정기는 정상 신호다. 토끼가 미쳐 날뛰는 것은 다른 병 때문이다"고 했다. 또 "지금 수면으로 올라가면, 적의 초계기와 군함이 공격할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초임 장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기계는 아직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적을 두려워하면 물고기 밥이 될 수 있다"며 수면 부상을 건의했다. 부함장과 참모들은 "상관의 말에 토를 달지 마라. 군기(軍紀)가 빠져도 한참 빠졌다"며 장교들을 군율(軍律)로 엄히 다스릴 것을 함장에게 요구했다. 또 말썽을 일으킨 '병든 토끼'는 창고에 가둬야 한다고 했다.함장은 고심했다. 그는 선한 눈매를 가졌지만, 카리스마가 없다. 하지만 부하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지휘관이었다. 이번에는 달라져야 했다. 초임 장교들의 충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단일 대오!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부함장과 핵심 참모의 의견에 무게를 둬야 했다. 부함장은 군부 내 인맥이 두텁다. 게다가 '마음의 빚'이 있는 사람이다. '별'을 달려면 앞으로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 함장은 부함장을 따로 불렀다.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임자 곁엔 내가 있잖아."(영화 '남산의 부장들' 대사).며칠 후 반 잠수 상태로 표류하던 잠수함이 발견됐다. 탑승자 모두 질식사한 상태였다. 당국은 사고 원인을 기계 고장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은 그 발표를 믿지 않았다.지어낸 이야기다. 그러나 잠수함에 토끼를 태우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잠수함에선 공기 중 산소 농도 유지가 중요하다. 잠수함 내 공기의 질은 승무원의 생명을 좌우한다. 토끼는 공기에 민감한 동물. 산소가 부족하면 사람보다 6~7시간 먼저 죽는다. 잠수함 속 토끼가 이상 행동을 보이면, 잠수함은 수면으로 올라가 산소를 보충했다.소설 '25시'를 쓴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 승무원이었다. 어느 날 잠수함에 있던 토끼가 죽었다. 그러자 함장은 감수성이 예민한 게오르규에게 '토끼 역'을 명령했다. 그는 이 특별한 체험을 하면서 통찰을 얻었다. 작가가 바로 '잠수함의 토끼' 같은 존재라는 점. 토끼가 잠수함 내 위기 상황을 몸으로 알리듯, 작가는 병든 세상을 글로 고발해야 한다는 것이다.'토끼와 잠수함'(박범신 작)이란 소설이 있다. 작가는 무단횡단, 음주 소란, 행상 등으로 경찰 호송버스에 잡힌 시민을 토끼라고 설정했다. 당시는 국민 입을 틀어막던 억압의 시대였다. 무더위 속에 창문마저 닫힌 버스에 갇혀 "우리도 사람이라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 한다"는 잠수함 속 토끼 같은 절규가 지금도 생경하지 않다.지루하고 음습한 장마처럼 이 나라의 정치와 국정은 지겹고 음험하다. 갈팡질팡하는 부동산 정책, 뜻 모를 사법·검찰개혁, 아리송한 검언(檢言) 유착, 무용지물 인사청문회, 내로남불식 대응. 여기에 다수결의 횡포와 진영 논리까지. 오죽하면 '나라가 니꺼냐'는 문구가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상위를 차지했을까. 내부의 쓴소리에 융단폭격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을 쫓아내려고 한다. 쓴웃음이 난다. 안동 외딴 동네의 비 오는 밤도 '광기의 시대'에서 자유롭지 않다.

2020-08-09 15:00:00

[매일칼럼] 검찰총장·감사원장 대통령이 지켜줘야

[매일칼럼] 검찰총장·감사원장 대통령이 지켜줘야

#1. 불과 1년여 전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며 '우리 윤 총장님'이라 했다. 전직 대통령 2명을 감옥에 보낸 윤 총장에 대한 기대는 그만큼 각별했을 것이다.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그런 자세를 앞으로도 계속해서 끝까지 지켜 달라"고 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도 주문했다. '우리 윤 총장'은 이를 곧이곧대로 들었다. '정무 감각'이 없었다. 기어코 민정수석이던 조국을 정조준하면서 사달이 났다. 대통령이 '마음의 빚이 있다'는 인사를 정조준했으니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윤 총장은 멈출 줄 몰랐다.결과는 참담하다. 지금 윤 총장은 사면초가다. 수족이 잘려 나가고 조직이 공중분해될 위기다. 울산시장, 윤미향 사건, 라임 펀드, 옵티머스 펀드 등 의혹은 눈덩이인데 수사는 오리무중이다. 공수처까지 곧 더하게 생겼다.이로도 모자라 검찰총장을 조기 강판시키려는 정권 차원의 노력은 집요하다. 검찰 개혁 권고안은 '검찰총장 무력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검찰의 정점인 총장을 수사지휘 라인에서 아예 배제했다. 법무부 장관이 서면으로 고검장들을 지휘한다. 법무부 장관은 정치인이다. 검찰의 생명은 정치 중립성에 있다. 중립적이어야 할 검찰을 정치인 밑으로 밀어 넣으며 개혁이란다. 지켜보는 윤 총장은 참담할 것이다.#2. 문 대통령은 2018년 1월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스스로 자신을 엄격히 관리해 오셨기 때문에 감사원장으로 아주 적격인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당시 더불어민주당도 "합리적이며 균형 감각을 갖춘 적임자"라는 논평을 냈다. 이 정권은 그런 최 원장 역시 몰아세운다. 발단은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감사였다. 최 원장은 "외부의 압력이나 회유에 순치된 감사원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며 성역 없는 감사를 주문했다. 감사원의 본연의 기능을 강조한 것이다. '대통령이 시킨다고 다 하느냐'는 말도 그렇다. 감사원은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감사원이 할 일이 있고 대통령이 할 일이 따로 있다. 감사원은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기관이 아니다. 정부 입맛에 맞는 감사 결과를 내지 않는다고 여당이 떼로 들고 일어나 "대통령 국정 방향과 맞지 않으면 사퇴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그런데도 법으로 보장된 이들의 지위가 마구 흔들린다. 이들을 흔드는 것이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 정부라는 것이 문제다. 가뜩이나 이 정부 들어 법의 공정성은 껍데기만 남았다. '나라가 니 꺼냐'는 아우성이 나온다. 마음에 안 들면 법도, 사람도 갈아치우면 그만이라는 그들만의 절대 권력은 두렵다. 국민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칠 민감한 법안들이 제대로 된 심의도 없이 여당 의원들만의 기립 표결로 처리된다.이미 사법부와 입법부는 '맛을 잃은 소금'이다. 그나마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버틴다. 조선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은 자신에게 형 양녕대군의 잘못을 이르고 벌하라며 끊임없이 직언을 한 형조참판 고약해와 모든 신하들이 찬성할 때 홀로 반론을 펼친 이조판서 허조를 버리지 않았다.윤 총장이나 최 원장에게서는 문 대통령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임명 당시와 달라진 점을 찾기 어렵다. 달라진 것은 임명권자의 초심이다. 문 대통령이 이들마저 내친다면 이 땅에 정의는 사라지고 권력의 이익만 남을 것이다. 대통령은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우리 윤 총장님'과 '감사원장으로 적격인 분'을 지켜야 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은 틀린 적이 없다.

2020-08-03 06:30:00

[매일칼럼] 나 때는 말이야….

[매일칼럼] 나 때는 말이야….

"나 군대 생활 할 때는 말이야. 매일 밤 세면장으로 불려가 고참병에게 엉덩이에 피가 나도록 맞았어. 나중엔 팬티가 살에 붙어서 떼어 내기 힘들 정도였지. 매일 맞았는데, 하루 안 불려 가면 새벽까지 불안해서 잠을 못 잤어. 요새 군대는 군대도 아니야. 얼차려 없이 군대가 제대로 돌아가겠어?"1970, 80년대 군 생활을 했던 분들에게 술자리에서 가끔 듣는 얘기다. 부대 내 구타를 어느 정도 용인했고 얼차려 등이 있어야 군대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간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나도 후배 시절 많이 맞아 봤고, 후배 때나 지금이나 후배가 맞으면 분명 잘못이 있기 때문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말로 타이르고 주의 주는 건 누구에게나 한계가 있다고 본다. 요즘 후배들,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 잘하면 칭찬받고 못하거나 잘못하면 벌받는 건 당연한 건데, 선배들 욕하기 전에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 봐라. 이유 없이 폭력을 가했다면 안타깝겠지만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 한다."(2014년 5월 유도 올림픽 메달리스트 왕기춘)왕기춘은 당시 용인대 유도부 훈련단의 체벌 문화 비판 글을 보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같은 글을 올렸다. 그는 현재 미성년 제자 성폭행 혐의로 구속 상태다.왕기춘의 이 글로 봐서 선배는 후배가 잘못했을 때 벌을 줄 수 있고, 그 벌은 구타나 가혹 행위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인식한 듯하다.군사정권 때까지, 특히 군대나 체육계에 폭행과 가혹 행위가 만연했다. 일제 잔재이기도 하고, 반민주적인 군대 문화가 성행한 탓이기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1980년대 후반 사회 각 분야에 민주화 바람이 불었고, 이 바람은 군대든 체육계든 공기관이든 반민주적인 문화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에 영향을 미쳤다.하지만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일각에서 이런 구시대적 병폐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왜일까. 아직도 '고(故) 최숙현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물론 군대 내 모든 선임들이 폭행을 자행하는 것도 아니고, 체육계의 모든 선배나 코치, 감독들이 폭행을 일삼는 것도 아니다.극소수가 감독이나 선배라는 지위를 이용해 폭언이나 폭행을 가한다는 점에서 체육계 폭력의 주원인으로 개인의 인성 문제를 꼽을 수 있겠다. 이와 함께 체육계에 뿌리 깊게 밴 '성적 지상주의'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경북교육청은 '전임 코치 계약 관리 지침'에 '개인·단체경기 종목에서 최근 3년간 전국체육대회에서 입상 실적이 없을 때를 해고 사유로 두고 있다. 경북교육청은 이 조항을 근거로 지난 2월 말 코치 3명을 해고했다. 서울과 경기교육청도 비슷한 지침을 유지해 오다 지난해 2월 교육부 방침에 따라 이 조항을 삭제했다.성적 향상 압박에 내몰린 일부 감독이나 코치들이 기술이나 과학적 훈련 방식은 내팽개친 채 구시대적 폭력만으로 선수들을 옥죄면서 불상사를 부른 경우가 적지 않다. 한마디로 자질이 없는 감독·코치들이 우격다짐으로 성적을 올리려고 하다 보니 결국 꿈나무의 미래를 무참하게 짓밟아 버리는 경우다.체육계의 성적 지상주의가 청춘들의 꿈과 행복을 앗아가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 그렇다고 성적 지상주의라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내세워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폭력을 성적 향상의 수단으로 고집하는 이들은 애당초 감독이나 코치의 자격이 없다.폭력은 전쟁이나 정당방위 상황을 제외하고 어떤 명분으로도 미화될 수 없고,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2020-07-26 21:55:02

[매일칼럼] 대구경북 신공항, 다시 선택의 시간이다

[매일칼럼] 대구경북 신공항, 다시 선택의 시간이다

군위와 의성군은 사라질 위험성을 두고 전국 1·2위를 다툰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지방소멸 위험지수 공동 1위에 올라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11월에 내놓은 예측 결과다. 지수는 한 지역의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으로 산출한다. 이 값이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수치가 낮으면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약 30년 뒤에는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군위와 의성, 두 지역은 이 수치가 각각 0.143에 불과하다.유소년 인구 100명당 고령 인구를 뜻하는 노령화지수라고 다를 게 없다. 군위군은 687.8로 전국에서 단연 1등이다. 다음이 의성군으로 646.6이다. 이는 유소년 1명에 65세 이상 노인이 6, 7명이란 의미다. 이대로라면 두 지역은 머잖아 전국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운명이다.군공항 이전이란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군위와 의성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유치에 나선 데는 이런 절박함이 있다. 또 통합신공항은 이에 부응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군사시설 상주 인구만 5천 명 이상이고 가족과 민항시설 인력까지 고려한다면 최소 1만 명 이상의 추가 인구 유입도 가능하다. 공항 접근성 제고를 위해 광역철도망이 구성되고 도시철도가 연결될 것이다. 물류·항공 산업과 관련된 산업단지 조성도 기대된다. 어디가 되건 소멸위험지역이 명품 공항도시로 거듭날 더없는 기회를 잡게 되는 셈이다.하지만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위기다. 이 지역으로의 공항 이전은 이달 말까지 시한부다. '대구군공항 이전부지 선정위원회'가 군위 우보 단독 후보지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남은 것은 군위 소보와 의성 비안 공동 후보지다. 이마저 적합 여부 판단을 이달 말까지 유예해뒀을 뿐이다. 유예기간 내 유치 신청이 없으면 자동으로 '부적합' 처리한다고 못 박았다. 실낱같은 희망을 살려 놓았을 뿐 사실상 어느 지역에도 짓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을 받아 들고 있다.마지막 기회를 놓쳐 공동 후보지마저 무산됐을 때 공항 이전지가 단독 후보지로 갈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김영만 군위군수는 군민 76%가 우보 유치에 찬성했으니 우보 아니면 신청할 수 없다며 강고하다. 하지만 역으로 의성군(비안)은 공동 후보지 찬성률이 90%를 넘겼다. 이쪽이 소송을 하면 저쪽도 소송을 걸게 돼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군위군수가 신청도 않은 공동 후보지를 지정할 리 만무하다. 소송의 빌미가 될 것이 너무도 뻔해서다. 차라리 정부는 제3의 이전지를 거론하며 대구공항 통합이전 백지화란 선택지를 만지작거릴 것이다. 그 사이 부산 지역에서는 가덕도 공항이 뜬다. 이리 되면 군위, 의성의 동반 몰락은 물론이고 공항 이전을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던 대구경북민들의 염원도 물거품이 된다.원래 군위와 의성은 이웃사촌이다. 군위장에 의성군민이 가고 의성장엔 군위군민이 함께한다. 두 지역 사투리도 같다. 두 지역 통합 주장도 나온다.이런 두 곳을 갈라놓은 것이 통합공항이었다. 공항으로 갈라진 민심은 공항으로 다시 합쳐야 한다.지도자의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선택하지 않은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원하는 모든 것을 홀로 다 가질 수는 없다. 하물며 그 선택에 지역사회의 미래가 걸렸다면 그 선택은 합리적이고 대승적이어야 한다. 때로는 자기희생도 필요하다.공항 이전 문제에 있어 서로를 배려하는 선택은 상생의 길이고, 나와 내 지역의 이익만 선택하는 것은 공멸의 길이다. 또 다른 선택지는 없다.

2020-07-19 23:26:20

[매일칼럼] 담대한 도전, 권영진-홍의락 협치

[매일칼럼] 담대한 도전, 권영진-홍의락 협치

담대한 도전이다. '보수의 안방' 대구에서 첫 여야 협치가 시작됐다. 권영진 대구시장(미래통합당)과 홍의락 대구시 경제부시장(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대구형 협치가 지난 1일 닻을 올렸다.대구형 협치는 절박함의 소산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4·15 총선 결과는 대구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코로나 최전선이었던 대구는 혹독한 고통을 겪고 있다. 자영업 휴폐업이 잇따르고, 고용은 전국 최악이다. 올 1~5월 대구의 평균 고용률은 55.4%. 지난해 동기 대비 2.2%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전국 평균(0.4%포인트 하락)의 5배가 넘는 수치로, 17개 시·도 중 가장 큰 하락 폭이다.대구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팽배하다. 대구는 코로나 최전방에서 악전고투했다. 하지만 SNS에는 대구를 폄훼하는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친(親)정부 언론은 대구시의 코로나 대응에 대해 가혹하고 왜곡된 비판을 했다. 코로나 사태의 끝이 보이지 않는 지금, 시민들은 암담하다.4·15 총선 후 대구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이다. 정부·여당과 소통 채널이 없어 불안하다. 특정 정당의 싹쓸이 후유증은 넓고 깊다. 청와대 및 정부 주요 인사와 예산에서 차별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 대구는 '보수-진보 프레임'에 갇혔다.막다른 길은 또 다른 시작이다. 협치는 절체절명(絶體絶命) 위기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권영진 시장은 지난달 26일 페이스북에서 "지금 대구는 정파를 초월해 지혜와 힘을 하나로 모으는 협치의 시정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변화는 절박함에서 나오고, 협치는 낡은 격식과 셈법을 파괴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했다. 홍의락 부시장은 첫 출근 날 "기존에 하던 대로 말고 다른 식으로 해보라는 명령으로 알고 다르게 접근해 보겠다"며 포스트 코로나를 기회로 만들도록 혼신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권영진-홍의락 협치를 비판하는 여론도 있다. '차기 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인의 야합' '적과의 동침' '들러리 부시장' …. 일부 인사들은 홍 부시장을 '트로이의 목마'에 빗대며, 협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당리당략(黨利黨略)을 따질 만큼 대구 현실은 한가하지 않다.시민들은 협력과 연대를 통한 대구형 협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매일신문 창간 74주년 기념 여론조사에서 그 염원이 확인됐다. 권 시장이 홍 전 의원을 경제부시장으로 영입한 것에 대해 대구 시민 절반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매우 도움이 될 것'이란 응답은 19%, '다소 도움 될 것'이란 응답은 30%에 달했다. 물론 부정적 의견도 적지 않았다. '전혀 도움 되지 않을 것'이란 응답은 8.3%, '별 도움 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은 32.1%였다.정당을 초월한 협치는 쉽지 않다. 협치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다. 보수성이 강한 기득권의 반발도 예상된다. 그러나 협치는 (성공할 경우) 대구가 정치적 고립, 패배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다. 경제 회생과 함께 정치 역량 강화의 노둣돌이 될 것이다. 또한 시정(市政)의 지평을 넓혀줄 것으로 기대된다.협치 성공의 열쇠는 분명하다. 첫째, 권 시장과 홍 부시장의 헌신(獻身)이다. 정치적 계산이 끼어들면 협치는 도로아미타불이다. 지역 발전과 시민 행복이 우선돼야 한다. 사심(私心)이 없으면 천지는 넓다. 둘째, 시민의 참여다. 대구가 바뀌지 않는 것은 우리의 삶과 생각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다.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권영진-홍의락 협치가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리는 마술이 되길 바란다.

2020-07-12 15:00:00

[매일칼럼] 되살아나는 독재의 망령

[매일칼럼] 되살아나는 독재의 망령

흉보면서 배우고 욕하면서 닮아 간다더니 요즘 우리나라가 딱 그렇다.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던 운동권 출신들이 득세해 이제 국민의 삶 주변에 '독재'라는 말이 얼씬도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독재라는 말이 망령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문주주의'란 신조어까지 등장해 회자된다.민주주의는 독재의 대척점에 있다. 단연 국민 모두가 주인이다. 대통령도 틈만 나면 '국민의 뜻'을 들먹이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다. 그런데 모두는 아닌 모양이다. 문주주의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국민이 아닌 '문(문재인 대통령)이 주인'이란 것이다. 따져 보면 틀릴 것도 없다.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했으니 원하던 대로다. 반대파 입장에서는 "'이니' 뜻대로만 하고 있으니" 맞는 말이다.신조어는 현상을 투영한다. 대통령을 풍자한 대자보를 붙이면 유죄고, 대북 전단을 살포하면 잡혀갈 터다. 정책 잘못을 지적했다간 '인민재판'에 가까운 마녀사냥을 감수해야 한다. 40년 전 군부독재 시절 벌어진 사건에 저들과 다른 표현을 썼다가는 살인죄에 버금가는 징역을 살 수도 있다. 사법부 판사가 재판에 나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이 탄핵을 들먹이는 세상이다.그뿐 아니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현 정권의 저격수로 등장한 진중권 전 교수는 '웅동학원 탈탈 털어먹었죠?'라며 지난 3월 게시글을 올렸다가 뒤늦게 고발당했다. 그는 문 정권의 민주주의 개념을 '나치 독재'에 빗댔다. 자신을 '싸가지 없다'고 비난한 여당 의원에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문주주의' 국가에서는 가능하다"고 맞받았다. 그를 고발한 단체는 '적폐청산 국민참여연대'란 이름을 달고 있다.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독재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한 개인, 단체, 계급, 당파 따위가 어떤 분야에서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하는 것이다.지금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그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여당은 단독으로 국회 문을 열자마자 17개 상임·특별위원장직을 싹쓸이하고 또 나흘 만에 35조원짜리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했다. 추경 처리에 '비상 대책'을 요구한 대통령의 한마디에 입법부가 수족처럼 움직였다. 제1야당 참여 없는 국회 단독 개원은 1967년 7대 국회 이후 53년 만이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의석수에 따라 나눠 갖던 여야 협치의 전통은 28년 만에 물거품이 됐다. 법사위원장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관례대로 하자는 야당의 요구는 '발목잡기'이고, 여당의 단독 개원은 '일하는 국회'로 포장했다. 독재시대에도 없던 일이다.대통령 인사권을 통해 사법권력을 장악했고, 협치를 버린 대가로 입법권력도 장악했다. 이제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와 '내 편' 아닌 판검사들의 목줄을 거머쥘 공수처 설치만 남았다. 이는 문주주의의 결정판이 될 것이다.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8년 6월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나라의 특징으로 '집권 세력이 쉴 새 없이 가상의 적들을 만들어내고 공격하는 것'을 짚었다. 그다음 단계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막는 독립적인 기관들(특히 사법부와 언론들)의 발을 묶거나 거세하는 것'이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사례 연구를 통해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군인이 아닌 선출된 지도자에 의해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둘을 오버랩하면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사례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든다.

2020-07-06 06:30:00

[매일칼럼] 대구경북 하늘길도 위천의 물길처럼

[매일칼럼] 대구경북 하늘길도 위천의 물길처럼

석심산에서 출발해 113㎞를 달려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위천(渭川). 군위 효령들과 소보들, 의성 안계평야를 살찌우는 젖줄이다.군위군 고로면 학암리에서 발원한 이 물줄기는 의흥면과 우보면을 거쳐 효령면에서 남천을 받아들인 뒤 군위읍과 소보면을 지나 의성 땅인 비안면 옥연리로 흘러든다. 의성군 비안면에서 쌍계천을 품은 위천은 남대천, 안평천을 함께 모아 구천면, 안계면, 단북면, 단밀면을 적시며 흘러 상주시 중동면에서 낙동강과 몸을 섞는다.위천은 군위와 의성의 크고 작은 하천 24개를 모아 흘러드는 낙동강 제1지류다. 군위 효령들과 소보들을 기름지게 하고, 의성 안계평야의 '의로운 쌀' '황토쌀'을 잉태하는 모체이기도 하다.이처럼 군위와 의성은 위천을 매개로 한솥밥을 먹는 식구다.인구는 계속 줄면서도 땅 넓이는 군위가 서울 면적과 비슷하고, 의성은 서울의 두 배가량이다. 젊은 층이 먹고살기 위해 빠져나가고 있지만, 사람과 나무, 작물이 자랄 수 있는 땅은 그만큼 넓다.두 지방자치단체장이 이런 여건과 상황을 고려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유치에 목을 매고 있다. 두 단체장 모두 군위를 살리고, 의성을 살리겠다는 좋은 취지의 발로다.단체장이 해당 지역에 한 명의 인구라도, 한 푼의 세금이라도, 한 개의 시설이라도 더 모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위천을 수변테마파크, 생태하천으로 꾸미기 위해 양 지자체 모두 아름다운 경쟁을 펼치고 있다. 공항 유치 경쟁도 이런 차원에서 나무랄 일은 아니다.하지만 10년 건설, 100년 대계를 내다보는 통합신공항 유치는 두 지역의 아귀다툼 대상은 아니다. 공항 건설은 해당 지역은 물론 주변 지역에 미치는 부대 효과가 워낙 막대하기 때문이다.공항과 활주로, 항공클러스터, 진입도로와 부대시설, 인적·물적 흐름 등을 감안하면 한쪽이 하나를 챙기면 다른 쪽이 하나를 잃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하나를 주고 다른 하나를 받을 수 있는 윈윈 게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두 지자체는 공항 유치 못지않게 오히려 공항이 군위나 의성에 들어온 후 이를 통해 문화·관광·산업적 효과를 어떻게 극대화시킬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두 지자체가 위천 생태하천 꾸미기에 경쟁적으로 나서듯 공항 부대시설과 관광숙박 인프라 조성에 힘을 쏟을 때 향후 군위와 의성이 항공기에서 내린 승객들이 스쳐 지나가는 지역이 아니라 머물고 즐길 수 있는 지역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테다.군위와 의성은 위천이라는 엄마의 젖줄을 함께 받으며 살아온 형제나 다름없다.위천은 통합신공항 후보지인 우보, 소보, 비안을 모두 꿰뚫고 있다. 위천이 군위, 의성을 관통해 강으로 흘러가듯, 통합신공항도 군위나 의성 어느 곳에 있더라도 그 경제적 효과는 군위와 의성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방안이 분명히 있다.이런 점에서 통합신공항의 하늘 길이 위천의 물길처럼 '물 흐르듯' 열릴 수 있도록 두 단체장이 손을 맞잡아야 할 때다. 국방부도 양측이 알아서 합의하라는 식으로 방관하지 말고 공항이 반드시 건립될 수 있는, '되는 방향으로' 양 지자체를 설득할 책무가 있다.두 단체장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신공항 건설을 끝내 무산시킬 경우 대구경북의 하늘길을 막은 당사자로 오롯이 낙인찍힐 수밖에 없다. 통합신공항이 열 미래는 군위와 의성만의 하늘길이 아니라 대구경북, 나아가 한반도 남부권 국민 모두의 하늘길임을 다시금 각인해야 하겠다.

2020-06-28 18:59:45

[매일칼럼] 평화 타령만 하다 북 비핵화 물 건너갔다

[매일칼럼] 평화 타령만 하다 북 비핵화 물 건너갔다

우리 '국방백서'가 북한을 '주적'(主敵)이라 명기했던 적이 있었다. '1994 국방백서'다. 이전 우리 정부의 어떤 공식 문서에도 이 표현은 없었다. 1972년 말 정부가 국방목표를 설정할 때도 '주적'은커녕 '적'이란 말도 쓰지 않았다. 1988년 국방백서를 처음 발간하면서 국방목표를 "적의 무력 침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고 규정한 것이 고작이었다. 북한을 직접 거론하지도 않았다. 그렇던 북한이 국방백서에 '주적'이 된 것은 오롯이 '핵'과 '막말' 때문이었다.1993년 한반도는 이미 북핵 문제로 시끄러웠다. 북은 돌연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하더니 이듬해엔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박차고 나갔다. 핵무기 개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 프로젝트 저지를 위해 한·미가 기민하게 움직였다. 남·북은 판문점에서 8차례 실무접촉을 가졌다. 이때 북측 대표였던 박영수 입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왔다.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다"며 "전쟁이 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 막말이 공개되며 국민감정을 뒤집어 놓았다. 북핵에 대한 우려와 '서울 불바다'에 대한 공포가 어우러져 북한은 공식적인 우리의 '주적'이 됐다.이후 26년이 흘렀다. 그동안 북은 변하지 않았다. 한 번도 핵 개발 의지를 꺾은 적이 없다. 벼랑 끝 전술로 몇 번 실리를 챙기고, 때론 평화를 위장하며 시간을 벌더니 급기야 2018년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제는 "비핵화라는 개소리는 집어치우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포기하려면 왜 (핵무기를) 만들었겠는가"라는 말이 선언 끄트머리에 '한반도 비핵화'를 집어넣은 판문점선언이 몽상이었음을 웅변한다.북의 위장 전술에 놀아나 북핵을 고착화한 잘못은 우리 정부에 있다. 이는 국방백서 변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북은 우리 정권 성향에 따라 '주적'이 되기도, '위협'이 되기도 했다. 다시 '적'으로 돌아가더니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됐다. 참여정부는 2004 국방백서에서 주적을 빼고 '위협'이란 말로 대체했다. 그러다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지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으로 부활했다. 이 또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2018 국방백서에서는 사라졌다. 북은 일관됐고 백서는 정권 입맛에 따라 갈팡질팡했다. 하기야 남북 정상이 얼싸안고 포옹을 하는 마당에 북을 적이라 칭하는 것은 마뜩잖을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라고 쓰고선 북 비핵화가 실현된 듯 포장한 것도 그랬다. 그렇게 위장된 평화공세에 놀아난 정부가 오판의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뒷마당에 핵폭탄을 잔뜩 쟁여 둔 북은 이제 해묵은 벼랑 끝 전술을 동원해 경제까지 챙기려 든다. 뒷배가 든든하니 언사는 거칠다. 우리를 '적'으로 간주하겠다면서 온갖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옥류관 주방장까지 나서 "국수 처먹을 때는 요사를 떨더니"라며 대한민국 대통령을 모욕한다. 우리 군을 향해서는 "찍소리 말고 제 소굴에 박혀 있지 않으면 큰 경을 치를 것"이라고 위협한다.그래도 정부는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우리 국민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여전히 북과의 '대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북이 싫어하는 비핵화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는다. 온갖 막말을 들으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도 없는 정부를 보며 국민들은 모욕감에 치를 떤다."확전을 억제하려면 적보다 나은 의지와 용기,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20세기 최고의 미래학자로 꼽히는 허만 칸이 던진 명제다. 그 명제가 새삼 그리운 요즘이다.

2020-06-22 06:30:00

[매일칼럼] 마스크는 공공재여야 한다

[매일칼럼] 마스크는 공공재여야 한다

공공재(公共財)는 정부 재정으로 공급된 재화나 서비스로 개인 모두가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다. 교육·국방·치안·도로 등이 대표적인 공공재다. 이런 것들이 공공재가 된 핵심 이유는 외부효과(外部效果)가 크기 때문이다. 외부효과(긍정적 외부효과)는 한 사람의 행위가 제3자의 경제적 후생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는 현상이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시대에 마스크는 공기만큼 소중하다. 정부는 마스크 착용을 감염 예방의 제1 수칙으로 강조한다. 마스크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호흡은 불온한 셈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탈 수도 없다. 마스크는 자신은 물론 이웃을 보호한다. 개인이 낀 마스크가 국가 전체에 엄청난 외부효과를 낳고 있다.그래서 마스크는 공공재가 돼야 한다. 물론 마스크가 공공재의 요건을 충족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란 위중한 현실, 방역 기여도, 개인의 과도한 부담, 마스크 착용률 제고 등을 고려하면, '마스크 공공재 정책'은 긴요하다.정부는 최근 공적 마스크 제도 개선 조치를 발표했다. 6월 1일부터 요일별 구매 5부제를 폐지했다. 원하는 날에 직접·대리 구매를 가능케 한 것이다. 주당 구매 수량은 1인당 3개를 유지하면서 18세 이하는 5개로 확대했다. 또 더위에 대비해 수술용(덴탈) 마스크 생산량을 2배 이상 확대한다고 밝혔다. 마스크 수급 상황이 개선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하지만 정책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공급이 원활한데도 공적 마스크 가격은 그대로다. 시중 마스크 가격도 아직 비싸다. 찜통더위에 마스크 쓰기는 고역이다. 덴탈 마스크를 비롯한 '여름용 마스크'는 보기 드물다. 정부는 여름에 대비해 비말 차단용 마스크를 인증 항목으로 추가했다. 이 마스크는 일반 KF 마스크보다 얇고 통풍이 잘된다. 그러나 비말 차단용 마스크 구입은 쉽지 않다. 최근 한 업체가 이 마스크를 처음으로 온라인 판매 했는데, 아수라장이 됐다. 공급 물량은 20만 장. 780만 명이 이를 사려고 몰려드는 바람에 서버가 다운됐다. 이 마스크는 현재 온라인 사이트에서 웃돈 거래되고 있다. 2차 마스크 대란이 우려된다. 마스크 정책은 여름날 마스크 쓰기만큼 답답하다.코로나 사태는 언제 종식될까. 마스크에서 해방되는 날이 오기는 할까. 예방백신이 개발된다고 해도, 그때는 또 다른 바이러스가 나타날 것이다. 황사와 미세먼지도 우리의 숨통을 죄고 있다.'마스크 기근'은 사회적 재난이다. 마스크 한 장 값은 부자에겐 '껌값'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겐 생존을 위협하는 금액이다. 가난한 이들의 주거·노동 환경은 마스크를 많이 쓸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폐지를 주워 하루 몇천원을 버는 노인이 1천500원짜리 마스크에 쉽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4인 가족이 매일 공적 마스크 한 장씩을 사용할 경우 비용은 월 18만원. 이는 4인 가족 최저생계비(월 185만원)의 10%다.재난은 가난에 더 가혹하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존 C. 머터 교수는 저서 '재난불평등'에서 "부자는 재난으로부터 멀리 피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빈곤의 덫에 갇히거나 덫 안쪽으로 더욱 깊숙이 미끄러져 들어간다"고 했다.정부와 국회는 '마스크는 공공재'란 인식을 갖고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가 무상제공하거나 국민건강보험 적용 방안(대한약사회가 정부에 건의한 상태)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상제공은 무상급식과 같은 개념이다. 건강보험 적용의 경우 최소한의 본인부담금만 받고 가입자 1명당 매월 5~10장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은 생각의 대전환에서 시작된다.

2020-06-14 15:00:00

[매일칼럼] 위안부 할머니와 불나방

[매일칼럼] 위안부 할머니와 불나방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이른바 위안부 논란에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관심이 75~76년 전 일제 침탈기에 희생된 위안부 문제 해결과 향후 한일 관계 정립과는 한참 비껴나 있다는 점이다.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은 위안부 단체를 이끌었던 윤미향 국회의원 개인과 그 단체의 도덕성, 부패 의혹에 집중돼 있다.이 할머니와 윤 의원이 주고받은 기자회견은 30년 잘 지내오다 완전히 틀어진 고부 사이를 연상케 했다. 그 사이가 왜 틀어졌는지 두 당사자들은 잘 알겠지만, 제3자로선 정확하게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고부 사이는 남편이나 자식들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니만큼.이번 사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우려와 희망이 서로 교차한다.우려되는 점은 이번 논란이 두 당사자 간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나 욕심에서 비롯됐을 경우다. 개인적인 권력욕이나 섭섭함 등 사적인 갈등으로 인해 빚어졌다면 주변에서 개입해 해결할 수도, 개입할 필요도 없겠다. 더욱이 이번 일로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들의 수십 년 활동 노력과 성과가 폄훼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이들의 활동이 과대평가돼서도 안 되겠지만, 자기희생적인 오랜 활동이 물거품으로 돌아가서는 더더욱 곤란하다.반면 희망적인 측면은 두 당사자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투쟁 방식이나 해결 방안에 대한 견해 차로 인해 갈등을 빚은 경우다. 이럴 경우 우리 사회가 이를 공론화해 민간과 정부가 함께 논의해 볼 여지가 높다.하지만 이 할머니의 첫 번째 기자회견 이후 일부 언론과 정치권은 불나방처럼 무작정 덤벼들고 있는 모양새다. 엄청난 양의 의혹과 공세를 퍼붓고 있다. 심지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 할머니와 윤 의원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성 댓글까지 난무하고 있다. 개인과 시민단체에 대한 온갖 의혹과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정작 위안부 문제 자체에 대한 진지한 논의나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이 할머니가 강조했던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정 어린 사죄와 배상, 한일 학생 간 교류를 통한 역사 재인식,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의 재정립 등은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지는 듯하다.위안부 문제를 꺼내면서 온갖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과 정치권을 보면서 이들이 과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동안 얼마나 관심을 가져왔는지, 실제 해결 의지는 있는지 되묻고 싶다. 현 상황을 놓고 보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총선이 끝난 마당에 특정 세력이나 상대 진영에 화풀이식 공세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번 사태를 빌미로 특정 개인에 대한 마녀사냥식 공격이나 다른 진영이나 정치집단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으로 카타르시스를 얻으려고 한다면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서로 생채기만 낼 뿐이다.어떤 진영이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진실인 양 호도해 마구잡이식 공격을 일삼는다면 그야말로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음모론의 배후 세력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윤 의원과 해당 시민단체에 제기된 의혹은 사법기관의 철저한 수사에 맡기면 될 일이다.언론과 정치권은 이제부터라도 의혹 재생산과 정치 공방을 자제하고 80년 가까이 그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에 더 깊고 폭넓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불나방처럼 덤벼들다 불빛이 약해지면 다른 불빛을 찾아 흩어지는 식이 돼서는 곤란하다.정부도 뒷짐 지듯 방관하지 말고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2020-06-01 00:05:00

[매일칼럼]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이나 보라니

[매일칼럼]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이나 보라니

이명박 정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일 교섭을 맡았던 천영우의 언급은 많은 것을 함축한다. 그가 밝힌 당시 한·일 교섭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이던 윤미향 당선인(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의 반응은 이렇다."(2012년 봄) 일본 특사가 위안부 문제 해법을 가지고 한국을 찾았다. 거기엔 주한일본대사가 위안부 피해 생존 할머니를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일본 총리의 사과 친서와 일본 정부 보상금을 전달한다는 아이디어가 담겨 있었다." 천 전 수석은 윤미향 당시 정대협 대표를 만나 설명했다 "정대협이 지지는 못하더라도 극렬한 반대는 하지 말아 달라. 위안부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이보다 나은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때 "윤 대표 얼굴에 아주 곤혹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그 표정을 보고서야 '정대협과 할머니들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1990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단체들이 모여 만든 것이 정대협이다. 하지만 20년이 넘도록 문제 해결은 여전히 지지부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특사가 해법을 들고 왔는데 이를 전해 들은 윤 대표가 곤혹스러워 했다는 것이다."30년간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다"는 이용수 할머니의 내부고발은 충격이었다. 윤 당선인을 둘러싼 온갖 의혹은 이후 불거졌다. 천 전 수석의 발언에 현재의 상황들을 오버랩하면 의문을 풀기가 어렵지 않다.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은 일찍부터 윤 당선인 가족의 자금줄이자, 놀이터였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녀는 1992년부터 정대협 간사, 사무총장을 거쳐 2005년부터 상임대표를 지냈다.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이 이런 놀이터의 소멸로 다가왔을 수 있다.무엇보다 윤 당선인은 법인이 아닌 개인 계좌로 수시로 모금을 했다. 모금액이 얼마이고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알 수 없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이라 말한 피해 할머니도 있다. '법치주의 바로세우기 행동연대'는 이들이 국세청 공시에 빠뜨린 국민 기부금과 정부 보조금이 37억여원에 이른다고 했다. 7억5천만원을 들여 '위안부 쉼터'라며 마련한 집에서 정작 할머니들은 쉰 적이 없다. 대신 6년간 7천500만원이 그 집 관리비 명목으로 윤 당선인 아버지에게 건너갔다. 7년 후 그 집은 4억2천만원에 팔렸다. 제값에 샀고 제값에 팔았다고 한다.정의연엔 정부 보조금, 기업 후원금, 시민 기부금이 쏟아졌다. 이 돈이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쓰일 것이라고 모두가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제 국민들은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그런데 윤 당선인이나 민주당은 이를 친일·반일 프레임으로 덮으려 든다. 윤 당선인은 의혹을 캐는 언론에 "일제에 빌붙었던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한 친일 언론"이라 쏘아붙였다. 반면 기부금 사용 내역 공개에 대해선 "세상 어느 시민단체가 기부금 내역을 샅샅이 공개하느냐"며 거부했다. 압수수색에 나선 검찰을 두고 "위안부 피해자 모독이며 인권 침해"라는 반발도 나왔다. 민주당 의원들은 "친일 반인권 반평화 세력이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우려는 운동을 폄하하려는 공세"로 몰아간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쳐다보라고 우기는 꼴이다.윤 당선인은 "6개월간 가족과 지인들의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고 했다. 궁금한 점은 조국 전 장관이 소식을 접하고 화를 냈을까 동병상련을 느꼈을까다.

2020-05-24 20:08:10

[매일칼럼]  TK, 진보-보수 프레임에 갇혔다

[매일칼럼] TK, 진보-보수 프레임에 갇혔다

대구경북(TK)이 위기에 놓였다. 감염병 쇼크, 경제 쇼크, 정치적 쇼크가 꼬리를 물고 있다. 삶은 피폐하고 생산과 고용은 곤두박질하고 있다. 여당 당선인 한 명도 없는 21대 총선 결과는 앞날을 불안하게 한다. TK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이다.21대 총선 결과는 'TK 차별' 우려를 낳고 있다. 기우(杞憂)라면 다행이다. TK 지자체들은 내년 예산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통합신공항 건설 등 주요 현안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총선이 끝난 뒤 부산·울산·경남 여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김해신공항 검증 결과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부울경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들이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가덕도신공항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의미다.기업인들의 시름도 깊다. "'대구 주소'를 들고서는 다른 지역 공사를 따내기 힘들다. 계약 직전에 수주에 실패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총선 후 분위기가 더 좋지 않다. 원래 건설업이 정권 바람을 많이 타지만, 지금은 심하다." 건설업을 하는 지인의 푸념이다.시도민들은 일상에서 차별과 소외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한다. 최근 발생한 두 지역의 산불을 보자. 정부와 서울 소재 언론은 경북 안동의 산불보다 피해가 적은 강원 고성 산불에 더 관심을 쏟았다. 4월 24일 발생한 안동 산불은 산림 800㏊를 태우고 40여 시간 만에 진화됐다. 5월 1일 고성 산불은 발생 12시간 후 불길이 잡혔고, 산림 피해는 안동의 10%인 85㏊였다. 이틀 동안 사력을 다해 안동 산불 진화에 나섰던 공무원들은 "힘이 빠진다"고 했다.TK는 코로나 확진자 폭증 속에서 악전고투했다. 'K-방역'의 시발점은 대구다. 병실이 없어 대기 중인 환자들이 죽어갈 때 대구시와 의료진이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해 생겨난 것이 '생활치료센터'다. '드라이브 스루 검사'를 처음 시행한 곳도 지역 병원이다.그러나 '코로나 모범 방역국'의 찬사는 '처절한 전쟁터인 TK'가 아니라 정부의 몫이 됐다. SNS에는 정부에 도와달라고 한 권영진 대구시장의 읍소를 '징징거린다'고 조롱하는 글들이 많았다. 대구 시민에 대한 모독이다. 당시 대구는 확진자 폭증으로 인적·물적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대구 시민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지적은 적절했다. 그는 4월 28일 페이스북에 "(코로나) 사태 수습에서 가장 수고한 것도 통합당 소속 지자체장이었다. 그런데 정작 미디어의 관심을 받은 것은 경기도지사와 서울시장"이라면서 "누구는 신천지 본부로 쳐들어가는 활극을 벌여 일약 코로나 극복의 영웅으로 떠오르기도 했다"고 했다.총선 결과를 놓고 TK를 모욕하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4월 16일 김정란 시인은 페이스북에 "대구는 독립해서 일본으로 가시는 게 어떨지. 소속 국회의원과 지자체장들 거느리고. 귀하들의 주인 나라 일본, 다카키 마사오의 조국 일본이 팔 벌려 환영할 것"이란 글을 올렸다. 지지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 지역을 혐오·차별하는 언행은 반(反)민주적이다. TK는 미래통합당 지지자들만 사는 곳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대구 28.5%·경북 25%의 득표율(지역구)을 기록했다. 특히 대구의 민주당 득표율(지역구)은 ▷19대 총선 20.9% ▷20대 24.4%에 이어 상승세를 보였다.'진보는 옳고, 보수는 그르다. 따라서 보수의 심장인 TK는 옳지 않다'는 인식은 낡은 이념과 지역주의 망령에서 비롯된 것이다. TK는 '진보-보수 프레임'에 갇혔다.

2020-05-17 15:00:00

[매일칼럼] 기우에 그쳐야 할 국가 채무 걱정

[매일칼럼] 기우에 그쳐야 할 국가 채무 걱정

예정된 결과였다. 나라 곳간이 빠르게 비어간다. 곳간에 재정을 쌓아두면 썩어버린다는 발상을 했던 청와대 대변인은 21대 국회서 금배지를 달았다. 이 후보를 당선시켜 주면 '100% 국민 모두에게 돈을 드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던 여당 원내대표는 선거 승리를 이끌었다. 이젠 '재난지원금이 너무 적다'며 '몇 차례 더 해야 한다'는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가 나왔다. 대통령은 "1, 2차 추경에 이어 3차 추경도 준비하고 있다"고 자랑처럼 말한다.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GDP 대비 부채 비율 40%'는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국채 비율이 40%를 넘어 60%에 이르는 것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국가 채무에 관한 우려는 기우'라는 여당 간부의 주장을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하다. 국가 채무를 걱정하는 것이 우국(憂國)도, 애국(愛國)도 아닌, 기우(杞憂)가 됐다.국민 관심도 국가 재정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에 있지 않다. 당장 나에게 돌아올 돈이 얼마인가, 언제나 받을 수 있는가에 쏠려 있다. 긴급고용안정지원금, 긴급재난지원금, 아동수당, 각종 소비 쿠폰 등 공짜 천지인 세상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나랏빚보다 나라에서 더 받아낼 것은 없는지를 살피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카산드라를 떠올린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했던 트로이의 공주다. 예언의 능력은 얻었지만 아무도 그 예언을 믿지 않도록 설계된 저주받은 인물이었다. 그녀는 그리스가 선물이라며 보낸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고 절규했다. 목마는 선물이 아니라 트로이의 멸망을 재촉하는 예언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트로이는 성곽을 허물면서까지 거대한 목마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망했다.2015년 국가 부도를 경험한 그리스에 카산드라에 비유된 인물이 있었다. 2001년 노동부장관이던 타소스 지아닛시스였다. 그는 일찌감치 그리스의 비극적 상황을 예견, 과감한 개혁을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 모든 것이 좋은데 왜 10년 뒤의 일로 귀찮게 하느냐"는 푸념만 들었다. '정부와 당을 망치려 한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빚을 내 연금을 주고, 공무원 수도 팍팍 늘리는 일이 이어졌다.10여 년 후 경제 위기가 닥쳤다. 평소 1천 명 미만이 찾던 아테네시 운영 무료급식소는 하루 2만 명을 맞아야 했다. 길게 늘어선 줄이 외신을 탔다. 포퓰리즘의 종말은 그렇게 시간을 두고 찾아온다. 그리스는 공무원 23만 명을 줄이고 연금은 최대 44% 깎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포퓰리즘은 짧은 기간 선물처럼 다가오지만 장기간 불행의 예고편이다. 국민 일부나 모두에게 단기적으로 선물로 보이지만 그 부정적 효과가 나타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통합재정수지는 거의 매년 흑자를 기록했다. 10년 누적 흑자액이 115조원에 이른다. 그렇던 통합재정수지가 불과 2년 만에 91조원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 1분기만 정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가 45조원 적자를 냈다. 재정적자 규모가 커지면 국채는 빠른 속도로 는다. 나라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건전재정의 축은 소리 없이 무너진다.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같이 포퓰리즘으로 무너진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왕의 의자에 앉은 거지'로 불린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졌으면서도 나라가 휘청대니 '천연자원의 저주'라는 말 그대로다.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국가도, 국민도 포퓰리즘에 취해 빚잔치를 벌이면서도 지도자에게 열광했다는 사실이다.

2020-05-11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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