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세풍] 권 시장의 인사 스타일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명언 가운데 하나다.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면 늘 인용되는, 유명한 격언이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몸은 빌릴 수 없다'는 명언도 남겼는데, 얼핏 리더로서의 자세와 건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처럼 들리지만, 인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머리를 빌리려면 사람을 잘 써야 하기 때문이다.재미있는 것은 YS만큼 인사의 중요성을 인식한 대통령도 드물었지만, 그만큼 인사에 실패한 대통령도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정부 출범과 함께 임명한 장관, 서울시장 등이 비리 전력으로 취임 한 달도 되지 않아 우수수 낙마했다. YS는 오랜 야당 생활로 신세를 갚아야 할 인물들이 너무 많았고, '보안'을 중시해 언론의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사는 아예 탈락시킨 것이 원인이었다. 거기다 차남 김현철 씨의 개입설도 끊이지 않았으니 잘되려야 잘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인사 실패로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으면 당시 유행어가 '인사가 망사(亡事)'였겠는가.한국의 중산층 형성 과정이 부동산, 탈세와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음을 감안할 때, 흠집 없는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문재인정부가 출범 두 달을 넘기고도 조각을 끝내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막상 누군가를 기용하려고 하면 흠집투성이고, 흠집 없는 인물은 매력이나 능력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YS처럼 '쓸 사람이 없다'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지 모른다.이렇게 YS를 언급한 이유는 인사 문제에 있어 권영진 대구시장과 비슷한 유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권 시장은 인사에 관심이 많고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그다지 성공적인 결과를 내지 못하는 점에서 YS를 빼닮았다. 주위에 들어보니 권 시장은 인사철이 되면 일주일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신경 쓴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권 시장 자신이 승진 대상자를 놓고 안팎에 전화를 걸어 두루 평판을 물어보고는 고심을 거듭한다는 점이다. 권 시장 자신만의 인물 평가 방법이어서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력만큼 성과가 신통치 않다는 것이 직원들의 대체적인 여론이다.권 시장이 5급 승진 대상자의 인사까지 챙기는 것도 직원들의 입방아에 올라 있다. 전임 시장들은 5급 대상자는 담당 국장에게 맡기고 과'국장만 챙겼는데, 권 시장은 정치인 출신이다 보니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거기다 권 시장 측근들의 인사 개입설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니 직원들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올 1월 인사 때만 해도 '측근이 권 시장보다 힘이 세다'는 말이 나돌았고, 여러 공무원들이 그에게 줄을 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달 초 인사 때에는 측근을 둘러싼 소문이 거의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시청 주변의 소문을 의식해 미리 몸조심을 한 듯하다.공무원 사회에서는 인사철을 전후해 온갖 소문과 뒷말이 무성한 것이 보통이다. 인사권자가 아무리 신경을 쓰더라도,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50%만 만족해도 성공'이라는 말이 생겼다. 권 시장의 인사를 보면 만족보다는 불만족 비율이 훨씬 높은 것 같다. 직원들은 공정하고 적절한 인사가 되지 않고 있다고 여긴다.누군가 필자에게 이런 반론을 내놨다. '과거에도 인사철에는 시끄럽기는 마찬가지 아니었나?' 맞는 얘기다. 뒷말과 소문이 무성하지 않은 때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전임 시장들은 공무원 출신이어서 그런지 조용조용하고 비밀리에 인사를 했는데, 권 시장은 내놓고 시끌벅적하게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임 시장들은 말이 나오거나 로비를 하는 직원은 인사에서 아예 배제했는데, 현재는 '설치면 출세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이유로 과거보다 인사 후유증과 생채기가 훨씬 크다는 여론이 많다. 권 시장은 재임 3년간 눈에 띄는 확실한 공적이 없다. 그런데도 인사 때마다 이렇게 시끄러우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인사 스타일을 바꾸길 권한다.

2017-07-18 00:05:01

[세풍] 국민 '재생'해야 나라가 산다

2분기 삼성전자 실적이 놀랍다. 매출 60조원에 영업이익이 14조원이다. 하루 2천억원, 매주 1조원을 벌었다. 언론은 찬사 일색이다. 이 추세라면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50조원을 가뿐히 넘길 전망이다. 분기 실적이긴 하나 이 바닥에서 신화 그 자체인 애플도, 24년간 반도체 아성을 지켜온 인텔도 '슈퍼 삼성'에 체면을 구겼다.많은 경제 전문가와 신문은 삼성전자의 상종가를 반도체 호황에서 찾고 있다. 올해부터 세계 반도체 수요가 폭증한 '슈퍼 사이클'에 올라타면서 휘파람을 불고 있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삼성은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전력투구했다. 화성 공장에 26조원을 쏟아부었다. 최근 모습을 드러낸 평택 고덕지구의 삼성 반도체 공장은 광활하다. 축구장 400개 크기(289만㎡)의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이다.그런데 이런 뉴스에도 대다수 국민은 공허하다. 초라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한쪽에서 엄청난 부를 창출해도 바로 옆은 쪽박 신세여서다. 곁불이라도 쬐면 몸이 따뜻해지는 게 이치인데도 말이다. '제조업 세계 1위 기업'이 주름잡는 나라에서 돈 구경하기가 더 어렵다. 삼성만 그런가. 지난해 상장기업 순익은 110조원에 육박한다. 기업마다 곳간에 현금이 그득하다. 순환출자제한 대상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무려 700조원이다. 게다가 지난해 국세 수입도 242조6천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전년보다 24조7천억원 증가했다. 기업과 정부는 잘 나가는데 경제 3대 주체 중 가계만 유독 냉골이다.삼성이 세계를 석권해도 일반 국민에게는 아무런 낙수효과가 없다. 그동안 19세기 자유주의자를 닮은 우파 정권들은 '트리클 다운'(Trickle Down)을 내세워 분배의 불만을 억눌렀다. 그들은 노동으로 번 돈을 투자하지 않고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소비하면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그들 말대로 금욕하고 절제하면 모두가 잘살고 경제가 발전할까? 지난겨울, 온 국민이 촛불을 든 이유는 그 주장이 착각이고 엉터리이기 때문이다.대한민국 국민이 누군가. 근면으로 치자면 둘째 가라면 서럽고 '돈내기' 말만 나와도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도 손에는 푼돈이 고작이다. 소수 부유층을 빼면 대다수는 빚더미다. 가계부채는 1년 새 100조원가량 늘어 1천400조원이다. 금리가 들썩이자 '이자폭탄'에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는 판이다. 금리가 1%포인트 올라도 추가 이자가 9조원이니 왜 안 그러하겠나.가계가 이리 쪼그라든 데는 경제 활동의 성과물인 소득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총소득에서 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7년 69.3%에서 2015년 62.0%로 떨어졌다. 이 와중에 '유리 지갑'이 낸 세금은 지난해 사상 처음 30조원을 넘어섰다. 1년 새 근로소득세가 14.6% 더 걷혔다. 정부는 명목임금 상승과 취업자 수 증가로 근소세가 늘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명백히 증세의 결과다. 쥐꼬리만한 월급에도 세금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지금 대한민국은 생계비 번다면 열 일 거부하지 않는 사회다. '아파트 로또'인 주택청약통장이 전체 인구 수만큼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취업 준비생 스펙은 찬란하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언저리의 아르바이트 자리와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노후 무대책인 노령인구는 해마다 팝콘처럼 불어나고 있다.문재인정부 발등에 떨어진 불들이다. 6'19 부동산 대책에 이어 세제 개편안과 가계부채 대책이 곧 나온다. 새 정부는 선거를 치르면서 '소득주도성장'으로 패러다임을 바꿔나가겠다고 했다. 가계소득을 늘려 성장 문제를 해결하고 불평등도 해소하겠다고 외쳤다. 이제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미국처럼 상위 1%의 부가 하위 20%가 가진 것의 무려 240배를 넘는 사회로 갈 것인지, 골고루 나눠 가지는 사회로 발전할 것인지 새 정부의 정책과 의지에 달렸다. 독일 속담에 '돈이 나가면 정의가 움츠린다'고 했다. 국민 삶을 재생하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2017-07-11 00:05:01

[세풍] 헬무트 슈미트였다면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핵 문제 등 당면 현안에서 '큰 틀'의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뜻할까. 정상회담 이후 큰 틀의 합의를 떠받치는 여러 가지 '작은 틀'의 합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북한과의 대화 조건으로 미국은 '올바른 여건'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조건을 특정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올바른 여건'의 해석을 놓고 이견이 노출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이런 세부적 사안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정상회담은 '사진만 찍은' 회담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일정도 이를 가늠하는 핵심적 사안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사드는 의제에 오르지 않았다. 양국이 일부러 뺀 것이다. 그만큼 '뜨거운 감자'다. 정상회담이 순탄하게 끝날 수 있었던 것은 양국 모두 당장은 이 뜨거운 감자를 삼킬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문제는 앞으로도 이 감자가 쉽사리 식을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감자를 뜨겁게 달군 불길을 일으킨 청와대 내 소위 '자주파들'의 신념-북한이 핵과 미사일 등 여러 가지를 시험 발사했던 것은 오래전부터였다. 법적 투명성과 절차를 생략하면서까지 설치로 가야 하나?-를 보면 그렇다.문 대통령은 방미 중 미국 의회 지도부와 만나 "사드를 번복할 의사를 가지고 그런(환경영향평가) 절차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버려도 좋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 자신부터 사드에 부정적이었던 생각을 바꿔야 함은 물론 지지층까지 설득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지층의 이반(離反)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에는 그렇게 한 인물이 있다.소련은 1975~1976년 서유럽을 겨냥해 핵탄두를 탑재한 신형 중거리 미사일 SS-20을 동독과 체코슬로바키아 등에 배치했다. 이에 맞설 무기가 없었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1979년 이른바 '이중결의'(Double-track decision)를 채택했다. 우선 미국과 소련의 협상을 통해 4년 이내에 소련 미사일을 제거하되, 성사되지 않으면 서독 등에 미제 퍼싱Ⅱ 핵미사일(108기)과 순항미사일(464기)을 배치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주도한 이가 진보 성향인 사회민주당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였다.그러자 서독 전역에서는 동독 공산당과 연계된 반핵 단체들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사민당도 반대파 일색이었다. 빌리 브란트 당 총재부터 그랬다. 그러나 슈미트는 물러서지 않았다. 미제 핵미사일 배치는 반대하면서 그 원인인 SS-20에는 입을 닫은 반대파들의 이중성을 질타하면서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그 대가로 슈미트는 총리직을 잃었다. 1982년 자민당과의 연정이 붕괴되면서 제출된 내각 불신임안에 사민당 내 '좌파'들이 대거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책을 계승한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의 주도로 서독 의회는 불과 1년 뒤인 1983년 11월 퍼싱Ⅱ의 서독 배치를 결정했다.이는 소련에 치명적이었다. 서독에 배치된 퍼싱Ⅱ는 발사 7분 만에 모스크바에 떨어진다. 당시 소련공산당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는 훗날 "'퍼싱Ⅱ가 발사되면 경계경보를 발령할 시간도 없다'는 군부의 보고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것이 슈미트가 노린 것이었다. 소련은 군축 협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고, 마침내 1987년 중거리핵미사일폐기협정(INF)에 서명했다. 슈미트의 노림수는 멋지게 들어맞은 것이다. 이는 확실한 억지력만이 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해줬다. 문 대통령이 대북 정책을 구상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이제 사드 논란은 잦아들었다. 문 대통령은 '사드는 걱정말라'는 발언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미 간 불협화음을 촉발시킨 문 대통령의 일련의 국내 발언들은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였다. 미국에 가서 미국의 의구심을 불식시킬 얘기를 왜 국내에서는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17-07-04 00:05:01

[세풍] 6월을 보내며

올 6월은 어느 해보다 풍성했다. 최소한 호국 보훈에 관해서만은 말이다. 날이 새면 귀가 솔깃할 호국 보훈 이야기들이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나라 지도자들로부터 흘러나왔다. 6월 들어 시작된 호국 보훈을 강조한 말 잇기의 시작은 문재인 대통령이 열었다.문 대통령은 6일 현충일을 맞아 국립현충원 추념식에서 "국가보훈처를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유는 "애국의 대가가 말뿐인 명예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었을 것 같다. 특히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뒤집힌 현실"은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없다"고 믿은 결과이리라.이어 대통령은 같은 날 중앙보훈병원을 찾아 국가유공자와 상이 군경을 위로하며 "보훈만큼은 국가가 도리를 다해야겠다"며 국가 도리를 강조했다. 그동안 국가의 도리가 미흡했다는 말과도 같다. 따라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뜻을 드러냈음 직하다. 그리고 대통령은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보훈 가족 초청 청와대 오찬에서는 한발 더 나갔다.대통령은 "제대로 된 보훈이야말로 국민통합을 이루고 강한 국가로 나아가는 길"이라고까지 했다. 또한 "국민의 애국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치켜세웠다. 특히 이날 대통령은 허리를 깊이 숙여 거수경례 유공자에게 답례해 보는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대통령의 보훈에 대한 두드러진 말과 행동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로 이어졌다. 이 총리는 26일 열린 '모범 국가보훈 대상자 정부 포상식'에서 "보훈은 강한 안보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기본적인 책무"라며 "유공자 여러분이 합당한 보상과 예우를 받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보답해 나가겠다"며 실무 차원의 약속도 했다.문재인정부가 5월 출범하고 공교롭게도 곧바로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을 맞은 탓도 있겠지만, 호국 보훈에 관한 한 역대 정부와는 차별되는 모습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통령과 그를 도와 정부 부처 행정을 총괄하는 국무총리가 손발을 맞추며 호국 보훈에 대한 풍성한 말을 쏟고 의미를 부여하니 호국 보훈 가족들로서는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그러나 현실을 되돌아 보자. 과연 이 같은 숱한 장밋빛 이야기들이 제대로 실현될까. 필자로서는 "글쎄요"다. 무엇보다 먼저 국가가 보살펴야 할 보훈의 대상자가 한둘이 아니어서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5월 현재 18가지 분야의 보훈 대상자는 85만2천529명이다. 이들에게는 보훈급여금을 비롯한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이들의 다양한 분포도 한몫한다. 전체 보훈 대상의 세부 분야는 현재 41개에 이른다. 이처럼 보훈 대상 유공자가 여러 갈래인 탓에 이들 모두에게 대통령과 총리가 약속한 것처럼 정부가 '합당한 보상과 예우를 받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보답'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재정도 걱정이다. 그동안 앞선 정부들이 '국가 도리'를 하지 않았거나 못한 것은 국가재정의 뒷받침이 안돼서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오찬에서 밝힌 "애국'정의'원칙'정직이 보상인 나라를 위해 대통령과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면" 된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고 쓸모없거나 쓸데 없는 국민은 없다.특히 호국 보훈 분야는 더욱 그렇다. 명실상부하게 보상 예우는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면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그리고 우선순위의 맨 앞쪽은 독립유공자이다. 나라 수호의 의무를 지닌 공직도 없고, 최소한의 인권도, 어떤 보호막도 없는 망국민(亡國民)으로서 나라 되찾기에 나서 '3대가 망하고' 가족조차 붕괴되는 일도 감수하며 목숨마저 버렸으니 말이다.현재 생존 독립유공자는 59명, 순국선열'애국지사 유족이 7천45명이다. 우선 이들부터 잘 보살피자. 이는 국가 도리이고 나라다운 나라가 되는 길이다.

2017-06-27 00:05:11

[세풍] 무지의 베일

보석처럼 푸르게 빛나는 지구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행성이었다. 많은 우주 영혼들이 지구의 삶을 동경했다. 지구에서 태어나려면 번호표 뽑고 대기해야 한다는 루머마저 나돌았다. 영혼들은 탐색이나 하고자 지구 궤도를 빙빙 돌았다.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지구에 관한 정보는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어느 나라가 살 만하고 어느 나라에 태어나면 고생길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태어날 나라와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처지의 부모를 만날지도 백지 같았다.상상을 해보자. 만약 당신이 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지구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장광설처럼 들려도 이 같은 가정은 꽤 유명한 철학적 사유 실험 중 하나다. 미국의 철학자인 존 롤즈(John Rawls)가 저서 '정의론'을 통해 제시한 개념인데, 이름하여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다.설명하자면 이렇다. 자신이 어떤 환경 아래 태어날지 모르는 상태(무지의 베일)에서 선택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특정 사회가 얼마나 공정한가 하는 원초적 물음이다. 계층, 성별, 인종, 민족, 부모의 지위'경제력 등에 대해 아무것도 미리 알 수 없다면 사람들은 자기가 택할 세상이 어떤 모습이기를 바랄까. 선택하기에 이상적인 사회는 공정 사회일 것이다. 이런 사회라면 무지의 베일 뒤에서도 걱정 없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선택이 주저되는 사회는 불공정 사회다.무지의 베일에 대입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보자. 우리나라는 과연 공정 사회인가. 태어나기 전에 정보가 주어진다면 한반도를 선택할 영혼은 몇이나 될까. 두말할 것 없이 우리나라는 불공정 사회다. 이를 보여주는 지표는 많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19세 이상 남녀 2천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부의 공정한 분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응답이 83.6%나 됐다.불공정한 시대상을 나타내는 도구는 더 있다. 다름 아니라 유행어다.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을 꼬집는 유행어로 '흙수저'만큼 적나라한 것도 없다. 태어날 때부터 쥐고 태어난 것이 금수저도, 은수저도, 동수저도 아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흙수저로는 밥도 못 떠먹는다. 물에 녹기 때문이다. 유행어 '흙수저'에는 아이티 아이들이 배고파 구워먹었다는 '진흙쿠키'를 연상케 하는 상실감이 녹아 있다. '헬 조선' '노오력'도 빼놓을 수 없는데 사회의 집단의식이 반영되지 않고서는 이런 신조어들이 유행할 수 없다.하지만 젊은 세대들에 의해 '꼰대'라고 불리는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이 같은 유행어 자체가 마뜩잖다. 혹자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와 같은 '헝그리 정신'이 없다며 개탄스러워 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간극은 태평양만큼이나 벌어지고 있다.이미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세상은 더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인구 구조상 격변은 필연적이다. 올해는 인구절벽 현상의 원년이고 내년에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된다. 인구절벽과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는 부동산시장과 금융'산업 등 실물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 베이비부머 세대의 퇴장은 기성세대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지고, 정치 지형에도 전에 경험치 못한 파급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이런 시대 흐름을 간파한 이들에게 미래는 기회일지 모르나,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가혹한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특히나 정치가 그렇다. 여기에 보수나 진보라는 이분법적 구분 따위는 무의미하다.

2017-06-20 00:05:00

[세풍] '모난 돌'의 화려한 귀환

정권이 바뀌면 고위 관료부터 우르르 교체되기 시작한다. 그때마다 탕평 인사니 지역 안배니 능력 위주 따위를 내세우지만, 결국에는 '자기 사람' '충성파'를 쓰는 것으로 귀결된다. 문재인 정권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일부 눈에 띄는 '인물'을 발탁해 호평을 받고 있다. 그 인물은 박근혜 정권에 찍혀 변방을 맴돌거나 공직에서 쫓겨난 이들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은 정권이 바뀌면서 화려하게 복귀한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주인공들이다.이들이 잘났거나 남보다 뛰어나기 때문은 아니다.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일 처리를 하다가 불이익을 당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잘 알다시피, 윤 지검장은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과정에서, 노 차관은 정유라와 관련된 승마협회를 감사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여느 공무원이었다면 정권의 입맛에 맞게 대충대충 처리했을 일을 원칙대로 처리하려고 덤벼들었으니 '죽을 짓'을 자청한 셈이다. 이렇게 눈치가 없으니 출세는커녕 도태되기에 딱 좋은 유형이다. 공무원 조직에서는 이런 유형을 흔히 '꼴통'이라 부르며 경원하고 배척하기 일쑤다. 흔히들 양심이니 신념이니 하고 쉽게 떠들지만, 사회'조직생활에서 이를 구현하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다.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대사가 기억난다. 우장훈 검사(조승우 분)는 깡패 안상구(이병헌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정의를 원한다. 대한민국 검사니까!" 그 말에 깡패는 기가 차다는 듯 실실 웃으며 이렇게 답한다. "존 웨인이다 이거야? 정의? 대한민국에 아직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긴 한가."이 대사를 곱씹을수록 재미있고 의미심장하다. 검사는 정의를 입에 담지만, 실제로는 출세만을 바라는 속물이다. 이 사실을 잘 아는 깡패는 코웃음을 치며 한껏 비웃는다. 과장이 있긴 하지만, 원작자인 만화가 윤태호의 현실감각과 예지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2년 전, 이 영화가 나올 때만 해도 검사의 도덕성이 깡패보다 그리 나아 보이지 않았다. 엘리트 계층인 검사를 '사회의 기생충'이나 다름없는 깡패와 비교하는 것은 대단히 모욕적인 일이겠지만, 지난해 최순실'우병우 수사 과정을 보면 그런 욕을 먹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검찰이 '산 권력'에 대해서는 충성하고 순응하는 모습을, '죽은 권력'에 대해서는 아귀처럼 물어뜯는 행태를 보였으니 누가 검찰을 좋아하겠는가.검찰 행태를 보면서 그 영화에 나오는 부장검사(정만식 분)의 대사가 떠올랐다. 그는 끝까지 사건을 파헤치려는 우장훈 검사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까라면 까고 덮으라면 덮는 게 대한민국 검사야! 이제 그만 물고 놔라."그 당시 검찰, 나아가 공무원 조직의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출세하고, 살아남으려면 상부의 부당한 명령에도 순응하고, 알아서 기어야 한다는 말인데, 대부분이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렇게 처신한다. 한 줌도 되지 않는 출세주의자들이 날뛰는 조직에서 괜히 원칙이나 상식 운운하다가 찍히거나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기에 그냥 눈감고 모른척한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말이 왜 있겠는가.어느 곳이든, 원칙과 상식을 고집하는 부류가 한두 명쯤 있기 마련이다. 조직 내에서는 '모난 돌'이거나 '튀어나온 못' 정도로 여겨지는 이들이지만, 이들은 귀하고 소중한 존재다. 이런 '꼴통'들이 정부 부처와 사회 곳곳에 박혀 있어야만, 국가는 무너지지 않고 최소한의 건강성을 유지한다.문재인정부의 인사라고 모두 박수받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 두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잘한 인사라고 평가하고 싶다. 우리 사회가 양심과 원칙에 따라 행동한 사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우하고 보상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더 공정하고 깨끗해질 것이다. 이와 함께 양심에 거스르는 행동은 더는 안전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을 것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2017-06-13 00:05:00

[세풍] 지혜로운 청산

르노와 닛산'미쓰비시 자동차를 총괄하는 카를로스 곤 회장은 '코스트 커터'(Cost Cutter)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1999년 파산 직전의 닛산 재건에 나선 그는 효율적인 비용 관리를 강조한 인물이다. 그는 관계와 평판, 절차 등을 중시하는 일본형 비즈니스 모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닛산 재생계획'으로 불린 과감한 구조개혁과 원가 절감만이 닛산을 살리는 길이라고 봤다.또 다른 별명도 있다. '세븐일레븐'이다.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하지만 세븐일레븐에는 다른 뜻도 있다. 그는 임직원과 늘 소통했다. 사장 집무실뿐만 아니라 전화'이메일 등 소통 수단을 언제든 활짝 열어놓았다. 24시간 늘 열려 있는 편의점처럼 편하고 친근한 이미지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초기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취임 한 달을 앞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84%다. 60대 이상, TK만 빼고 골고루 80% 이상 지지를 얻은 셈이다. 국민이든 참모든 야당이든 가리지 않고 적극 소통하려는 문 대통령의 스타일과 노력의 결과다. 야당과 언론에서는 '얄밉도록 국정 운영을 잘한다'느니 '인사가 응큼하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렇다 보니 문 대통령에게 '세븐일레븐' 별명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다.일부에서는 측근 2선 후퇴나 MB'박근혜정부의 인재 등용 등 문재인식 인사를 탕평과 파격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물론 임명권자 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이나 그게 상식이고 정상이다. 역대 정권이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다 보니 새 정부의 인사가 두드러져 보인 탓이다. '정부는 유한해도 국가는 영원하다'는 문 대통령의 말에서 그가 생각하는 국가 경영의 기초를 읽을 수 있다.아야 소피아 바실리카는 이스탄불의 명소다. 4세기에 처음 세워진 기독교 건축물로 '거룩한 지혜의 대성당'이라는 뜻이다. 숱한 지진과 반란으로 여러 차례 개축과 보수가 이뤄지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된 때가 537년이다. 거대한 돔 지붕은 지금도 불가사의다. 돔을 떠받치는 107개의 기둥 상당수가 그리스의 아르테미스 여신 신전의 기둥이다. 신전을 허물고 그 기둥을 그대로 가져다 세운 것이다.1453년 5월 아야 소피아는 새로운 운명 앞에 섰다. 오스만 제국이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리고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한 때문이다.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지난 1천 년간 기독교의 상징이었던 아야 소피아를 파괴하지 않았다. 성당 바깥에 4개의 미나레트(첨탑)를 추가하고 모스크로 탈바꿈시켰다. 모자이크나 프레스코 벽화도 뜯어내지 않고 회칠로 덮고는 이슬람 사원으로 활용했다. 토인비가 말한 '팍스 오토마니카'(오스만의 평화)를 아야 소피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오스만은 공정하고 온건하게 제국을 지배했다.지난 한 달간 문재인정부가 보여준 국정 방향과 인사에서 이와 비슷한 면모를 찾을 수 있다. 사드 보고 누락 조사나 4대강 사업, 방산 비리 감사 지시처럼 성급한 결기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절제하고 기다리는 지혜도 강하다. 보수 9년 '정치 빙하기'가 만들어놓은 두꺼운 얼음은 결코 하루아침에 녹지 않기 때문이다.기업의 최고 경영자는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국가에 있어 대통령은 단순히 최고 권력자가 아니다. 국가를 경영하고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문재인정부는 국가 경영의 한 방식으로 적폐 청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구습을 걷어내고 사람을 바꾸는 것만이 청산은 아니다. 지킬 것은 지키고 우리 사회에 더 좋은 구조를 고정시켜야 진정한 청산이다. 잘못된 관행은 기득권을 용인하는 통로가 되고 결국 특권 의식으로 굳어지기 마련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소수의 특권과 다수 국민의 불행이 짝을 이루는 현실이다. 새 정부는 지혜로운 청산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 그것이 문재인정부의 과제이자 남길 유산이기 때문이다.

2017-06-06 00:05:01

[세풍] 대통령은 달라야 한다

1938년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협상으로 평화를 지켜낼 것이라는 소망적 사고의 발로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재무장에 들어간 독일을 지켜보기만 한 결과 힘의 균형은 독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미 유럽의 정세는 전쟁 말고는 독일의 세력 확장을 저지할 수 없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유화정책의 파탄은 이런 현실에 대한 의도적 외면의 필연적 결과였다. 1938년 뮌헨회담에서 체임벌린은 독일인이 많이 거주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할양하라는 히틀러의 요구를 들어줬다. 체임벌린은 "이것으로 우리 시대의 평화가 도래했다"고 선언했지만,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통째로 먹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히틀러는 2년 뒤 프랑스 침공 때 유용하게 써먹은 체코제 탱크 600대를 비롯해 소총 150만 정, 항공기 750대, 야포 2천 문을 덤으로 얻었다. 유화정책은 평화의 도래는커녕 히틀러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하지만 유화정책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유화정책도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다만 전제가 있다. 적절한 조건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조건이란 바로 '힘'과 '의지'다. 뮌헨회담 결과를 '노상강도'를 당한 것에 비유했던 처칠도 그런 점을 분명히했다. "유화정책 그 자체는 경우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국력이 약하기 때문에 또는 공포 때문에 취하는 유화정책은 소용없는 정책일 뿐더러 치명적이기도 하다. 강한 힘이 뒷받침되는 유화정책은 관대하고 고상하며 세계 평화를 위한 가장 확실하고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1950년 12월 14일 하원 연설)북한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는 이런 간단한 진리를 외면한 결과다. 김대중정부 이후 남한 정부는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을 뿐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전제 조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조건이란 핵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의지와 그 실행이었다. 역대 정부에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유화정책의 성공 조건으로 처칠이 든 '힘'이 우리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매년 세계 군사력 순위를 발표하는 글로벌파이어파워(GFP)의 지난해 집계에 따르면 남한의 전쟁 수행 능력은 세계 11위로 25위인 북한을 압도한다.문재인정부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려 한다. 문 대통령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겠다고 했지만, 외교'안보 라인에서 나오는 소리는 '대화' 일색이다. 천안함 폭침으로 시행된 5'24 조치의 해제는 물론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을 재개하고, 민간 차원의 교류도 허용한다고 한다. 국가안보실도 대북 대화론자로 채웠다. 이에 북한은 29일 스커드 미사일 발사로 '화답'했다. '잘 해보자'고 손을 내밀었는데 뺨을 맞은 꼴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벌써 세 번째다. 북한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 그럴 생각도 없는데 문재인정부는 가망 없는 구애를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는 돈을 잃었지만, 이번에는 딸 것으로 확신하며 다시 돈을 거는 '도박사의 오류'의 전형이다.문 대통령은 지난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나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더 가치를 부여한다"고 했다. 지금도 그럴까? 그렇다면 참으로 문제다. 개인은 그래도 되지만 대통령은 그래서는 안 된다. 그 이유를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는 이렇게 갈파했다. "개인 입장에서는 '세계가 망할지라도 정의를 실현하자'라고 말할 수 있지만, 국가를 책임지는 정치가는 '국가가 망해도 정의를 실현하자'고 말할 권리가 없다…외형상 도덕적인 행위라고 여겨지는 행위가 초래할 정치적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정치적인 도덕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국가 간의 정치')히틀러는 1939년 폴란드 침공을 앞두고 휘하 장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적은 하찮은 벌레야. 나는 그 벌레들을 뮌헨에서 보았어." 김정은도 남한 정부를 두고 같은 말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017-05-30 00:05:03

[세풍] 지금처럼만

퇴사 후 1988년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언론사 기자, 특히 외근기자 경우 부서가 바뀔 때마다 두려운 일은 새로 만나 인사를 나누는 출입처 사람의 '입'과 전임자의 '발자취'이다. 전임자에 대한 생생한 목격자이자 증언자인 그들의 입을 통해 전임자의 발자취는 비디오처럼 재생되고 그대로 드러나서다. 그 입과 발자취에 따라 후임자의 활동이 완전히 달라져야 할 때가 많다.전임자가 어떤 발자취를 남겼고 어떤 길을 걸었느냐에 따라 그 입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은 큰 차이를 나타냈고 후임자도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한다. 제대로 일을 잘한 선임자 뒤를 밟으면 비교적 순탄하고 고생도 덜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앞사람의 어지러운 발자취가 뒷사람에게 나쁘지만은 않다. 되레 도움되는 일도 허다하다. 그런 고마운 기회가 있으면 행운이다.비유가 적절하지는 않겠지만 지난 9일 국민에 의해 대통령으로 사역(使役)하게 된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도 그렇지 않을까. 문 대통령의 경우 앞선 박근혜정부에서 일어난 숱한 '저지레'는 문 대통령에게 더 없이 도움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문 대통령은 당선 이후 10일부터 국정 업무를 시작했다. 오늘로 14일째다. 지금까지 이뤄진 인사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어만 봐도 그렇다. 그리 나쁘지 않은 평이다.이 같은 문 대통령의 사람 찾기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총리 후보 등 여러 인물들이 선택을 받았지만 앞으로 부름을 받을 사람은 더욱 많다. 현재까지 이뤄진 문 대통령의 사람 선택 흐름을 보면, 향후 이어질 정부 각료 후보나 정부와 관련된 수많은 인사들의 발탁과 영입도 종전 정부와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모양이다. 국민들이 문 대통령의 인물 선택에 대한 남다른 기대를 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특히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동안 후보로서 토론회 등을 통해 세종대왕에 대한 흠모와 존경의 언사를 감추지 않고 드러낸 탓에 그의 사람 선택은 무엇보다도 큰 관심사다. 세종이 누군가. 역대 왕 가운데 그만큼 훌륭한 업적을 내면서 인재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인재 영입을 위해 노심초사한 군주가 있었던가. 과거 시험에 인재를 얻는 방법과 얻은 뒤 어떻게 키울 것인지 등을 자세히 캐물을 정도였으니.게다가 세종은 말을 실천했다. 신분의 엄연한 차별에도 출신을 따지지 않았다. 비천한 출신이지만 18년 영의정을 지낸 문관 황희(黃喜)와 당대의 과학자 장영실(蔣英實), 의사로 네 임금을 섬긴 전순의(全循義) 같은 인물을 곁에 두고 마음껏 실력을 발휘토록 했으니 말이다. 황희의 어머니가 노비였고, 장영실은 본인이 노비였다. 전순의 역시 비천한 출신으로 탄핵 상소도 받았다. 그러나 세종은 "노비는 비록 천민이나 하늘이 낸 백성"이라며 감쌌다.한때 남의 아내를 간통했다고 해서, 금으로 된 선물을 받았다고 해서 비난받던 황희를 발탁해 타고난 재주를 다하도록 했다. 장영실로 하여금 조선의 과학 세계를 앞당기고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될 측우기 등 각종 이기(利器)를 만들도록 했다. 전순의는 세종과 뒷날 왕들의 후원에 힘입어 음식과 농업, 의료에 대한 기록을 책으로 남기는데 앞장섰고 그가 남긴 책은 지금도 불멸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문 대통령이 이런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닮고 싶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멈춰야 한다. 대통령이 세종처럼 해주길 바라서는 안 된다. 바라면 과욕이다. 무엇보다 세종처럼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지금 주어진 시간은 5년뿐이다. 후보 시절, 문 대통령 스스로 "5년 임기는 오히려 짧다"고 했다. 소위 '촛불 민심이 요구하는 대청산과 개혁을 하려면' 짧을 수밖에.지금 우리가 바라는 일은 세종 같은 문 대통령이 아니다. 변함없이 지금 일하는 것처럼만 해도 족하다. 전임자의 발자취를 교과서 삼으면 더할 나위 없다. 그 때문에 뒷사람이 섭섭하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2017-05-23 00:05:00

김해용 논설위원

[세풍] 유승민론(論)

하루 수백㎏의 먹이를 먹는 아프리카코끼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남아나는 것이 없다. 사바나 초원에 수풀이 없는 것은 나무조차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코끼리의 습성 탓도 원인이다. 요즘 대구'경북의 정치적 지형도를 보면 마치 코끼리가 휩쓸고 지나가 자양분이 고갈된 자리 같다. 대통령이라는 코끼리를 다섯 명이나 배출했지만 향후 대한민국 정치권을 쥐락펴락할 만한 싹수 있는 정치인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서다.대구'경북 출신인 이명박'박근혜 두 정치인이 내리 대통령이 됨으로써 역설적으로 대구와 경북에서는 유력 정치인들이 자라날 토양이 척박해졌다. 이명박'박근혜 집권 9년 동안 대구'경북 정치인들의 경쟁력은 오히려 퇴행했다.그런 점에서 이번 19대 대선은 대구'경북 미래 정치 상황을 예상케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 대해 지역 표심이 압도적으로 쏠릴 것으로 예견된 상황이어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지역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표를 받는지가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유승민 후보 입장에서도 박근혜 배신자 취급을 받아 지역민으로부터 버림받느냐, 의미 있는 지지를 받아 미래를 기약하느냐가 달린 절체절명의 선거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대구'경북사람들은 홍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면서도 유 후보에게도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지(대구 12.6%'경북 8.75% 득표율)를 보내는 등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대한민국 정치 무대에서 유승민은 흔치 않은 캐릭터다. 안보에서는 그 누구보다 강경한 보수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지만 경제나 복지 분야에서는 정의당 못잖은 좌클릭 성향을 보인다. 해박한 경제 지식에 능숙한 토론 솜씨까지, 유승민은 이번 대선 토론회를 통해 네임 밸류를 확실히 높여놨다.그러나 그에 대한 대구'경북민들의 시선은 타지역보다 오히려 싸늘하다. 혹자는 "자기밖에 모른다"고 하고 누군가는 "서민 코스프레하는 금수저"라고 평가한다. 당사자로서는 그런 지적이 마뜩잖겠다. 동창생들의 평가를 빌리자면 그는 잘 놀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다.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부당하게 맞고 집 나간 친구를 찾겠다며 아버지 사무실 사무장으로부터 3만원을 빌린 뒤 가출을 감행한 전력도 있다. 귀가할 때 부모님께 사죄하는 뜻으로 머리를 빡빡 깎았다는 후일담으로 미뤄볼 때 그는 샌님이라기보다 쾌남에 가까운 듯싶다.일전에 신문사를 찾은 그와 20~30분 정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후보 사퇴하라는 당 안팎의 압력이 최고조에 달할 때였다. 원래 등 뒤에서 쏘는 아군의 총질이 가장 아픈 법이다. 완주할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나는 그날 그의 눈빛에서 그 말이 허언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는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을 사람인 듯 보였다.이런저런 평가를 차치하고서라도 본란이 정치인 유승민을 거론하는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명예 퇴진 이후 대구'경북이 처한 정치적 공백 상황 때문이다. '친박' 후광 효과에 기대 금배지를 단 정치인, 유권자는 안중에도 없고 중앙당만 쳐다보는 '해바라기' 국회의원들이 어디 한둘인가. 대선 주자급 정치인이 허다한 부산'경남과 너무 대조적인 대구'경북의 정치 지형도이다.결선보다 예선이 더 어려운 경우가 있다. 국가대표만 되면 올림픽 금메달은 따 놓은 당상인 양궁, 쇼트트랙이 그런데, 유승민으로서는 2020년 총선이 딱 그 짝이다. 전국적 인지도를 높여놨지만 다음 총선에서의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대구 동을을 버리고 서울로 지역구를 옮길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굳이 유승민이 아니더라도 대구'경북의 정치적 위상을 이끌 유력 정치인은 많을수록 좋다. '선수(選數)가 깡패'라는 말이 있듯이 중진 국회의원들을 많이 키워내도록 대구'경북 유권자들도 전략적 투표를 할 필요가 있고, 그 명단에 유승민을 올려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2017-05-16 00:05:04

[세풍]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다

오늘 밤, 대한민국의 역사가 새로 쓰여진다. 제19대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봐야 할 터인데,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질 것 같다. 새로운 출발은 희망과 기대를 던져줘야 마땅한 일이건만,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대통령 취임식을 여러 번 지켜봤지만, 착잡한 기분이 든 때는 일찍이 없었다. 새 대통령과 정치적 성향과 이념이 다르더라도, 새로 취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설렘과 호기심을 자아내곤 했다. '모든 것은 시작될 때 언제나 가장 좋다'는 말처럼 그 순간만큼은 국민 모두가 진심이었다. 대부분 대통령이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역시나'로 끝났지만, 첫발을 내디딜 때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훌륭한 대통령'이 되길 바랐다. 참담한 실패로 끝났지만,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마음이었던 것 같다.이번만큼은 과거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누가 당선되든,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보다는, 그렇지 않은 국민이 훨씬 더 많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과거에도 소수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이 있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때와는 너무나 다르다. 이번에 낙선한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새 대통령에 대해 아주 적대적이거나 최소한 방관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이다. 이들은 5년 내내 대통령을 공격할 기회를 노리다가 틈만 보이면 행동으로 나설 그룹이다. 이들은 새 정권과 화해할 생각이 전혀 없고, 정권이 잘못되기만 바랄 것이다. 정치인들이 보수니 진보니 하며 정권 다툼을 벌이면서 국민을 얼마나 갈가리 찢어놓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이번 대통령 선거의 성격부터 살펴보면 새 정부의 앞날이 얼마만큼 험난할지 알 수 있다. '촛불 집회'에 의해 전직 대통령이 쫓겨나고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촛불 혁명'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촛불이 아니었다면 존재할 수 없는 대선이었다. 촛불 집회 참석자의 정서와 생각이 비슷한 후보가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고 갈 것이 확실하다. 그것이 합당한 결론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민심의 흐름이자 역사의 순리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촛불 민심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가장 높은 후보의 첫 번째 공약이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 설치'라고 한다. '적폐 청산'은 오랜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찾아내 뜯어고치고 개혁하겠다는 의미다. '적폐 청산'은 이론적으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것이다. 잘못을 고치고 바로잡겠다고 하니 그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그렇지만,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고 해도 때가 있는 법이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싸우고 다투는 나라에서 과거의 상처를 더 헤집고 까발리는 것이 좋은 일일까. 검경 수사와 법원 판결 등 사법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하면 될 일을 초법적인 기구까지 만들어 조사하고 처벌하겠다고 하니 참으로 혁명적인 발상이다. 혁명 정부가 적폐 세력을 깡그리 수용소에 집어넣고 외국으로 쫓아내지 않는 이상, 반대 세력만 양산하고 여론 분열을 심화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혹자는 진보 세력의 '한풀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분위기가 엿보인다. 사회정의를 명분으로 내걸고 있지만, '보수 세력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복수 심리와 교만함이 숨어 있다. 흔히 편 가르기와 편향적인 자기 확신은 진보의 부정적인 유산이라고들 한다. 박근혜 정권도 아버지 때의 향수를 잊지 못해 과거에만 매달리다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라봐야 희망이 있다.정권을 잡았다고 기고만장해선 안 된다. 자신만이 반드시 정의는 아니다. 힘은 가졌을지 모르지만, 반대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문재인 후보가 '국민 통합'과 '적폐 청산' 두 가지를 내걸었지만 '국민 통합'이 먼저다. 국민 통합에 도움된다면 우선적으로 수용하고 그 반대라면 폐기하는 것이 옳다. 오늘의 걱정과 두려움이 기대와 희망으로 바뀔 수 있을지 여부는 새 집권층이 '오만'과 '아집'을 버릴 수 있느냐에 달렸다.

2017-05-09 00:05:00

[세풍] 한국 정치의 '백지선'

백지선 감독이 이끄는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믿기지 않는 승전보를 보냈다.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 남자 세계선수권 디비전 1그룹 A대회에서 깜짝 놀랄 성적으로 '꿈의 리그'인 1부 리그에 사상 처음으로 진입했다는 소식이다. 많은 국민들은 김연아의 밴쿠버올림픽 금메달 소식만큼 후련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귀를 의심했다.한국의 월드챔피언십(1부 리그) 승격은 1928년 국내에 빙구(氷球)가 소개된 지 89년 만의 일이다. 현재 톱 디비전에 이름을 올려놓은 아시아 국가는 우리가 유일하다. 대표팀이 캐나다'러시아'미국 등 15개 아이스하키 강국과 어깨를 겨루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분석하느라 전문가와 언론이 덩달아 바빠졌다.대표팀 선수들의 불굴의 의지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빙판에 청춘을 건 귀화 외국인 선수들도 '원팀'이 됐다. 투지는 엔돌핀을 치솟게 한다. 하지만 투지만으로는 병아리가 싸움닭이 될 수는 없다. 등록 선수라고는 233명이 고작인 국내 링크에 2014년 첫발을 내디딘 백 감독에게서 결국 답을 찾아야 한다.그는 '새 역사를 쓰자'는 큰 꿈을 이야기했고 선수와 공유했다. 한국식 전술도 가세했다. 퍽을 다루는 기량과 신체 조건이 월등한 일류 선수들과 어떻게 싸워야 이길 수 있는지 해법을 찾은 것이다. 빠른 스피드와 강인한 체력, 자신감이 바탕이 된 전략의 승리다. 불과 3년 만에 3부 마이너 리그에서 빅 리그로 용솟음한 이유다. 감독과 선수 모두 가슴에 새긴 '와이 낫'(Why not) 정신이 2018년 평창올림픽 본선 진출권까지 제 힘으로 거머쥐게 한 가장 큰 동력이다.일주일 후면 우리 정치도 대표팀을 뽑는다. 대통령이 이끄는 새 국정 대표팀이다. 누가 지휘봉을 잡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아이스하키에 비유하자면 새 대통령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국가 경영'이라는 미끄러운 얼음판 위에 서게 된다는 점이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관계의 판은 아이스 링크보다 더 미끄럽다. 벌써 중국은 사드 보복 카드로 우리를 옥죄고 있고, 북한 김정은은 불장난에 여념이 없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1조원짜리 사드 청구서를 들이밀고 간보기를 하고 있다. 연일 '찔러보기' 수가 현란하다. 트럼프가 팩트에 전혀 개의치 않는 인물임을 감안하면 우리의 대응수가 궁하다 못해 안쓰러울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새 대통령은 취임 선서를 해야 한다.트럼프의 사드 비용 청구는 우리를 우왕좌왕하도록 만든 후 그 빈틈 노리기다. 상황에 맞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조커 카드인 셈이다. 부동산 사업가로 잔뼈가 굵은 트럼프는 상대방에게 동쪽으로 가는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고는 서쪽으로 가는 교란술에 능하다. 말하자면 트럼프는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칭기즈칸식 '이일대로'(以逸待勞)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먼저 싸움을 걸어 상대방을 자극하고 싸우는 척하다가는 뒤로 빠지는 기만술이다.우려되는 것은 우리가 호들갑을 떨며 그 수법에 말려들어 가는 일이다. 만약 사드와 한'미 FTA 재협상 운운에 정치권과 국민이 서로 편이 갈리고 국론이 분열된다면 트럼프 입장에서는 이보다 손쉬운 상대가 없다. 새 대통령은 최고 경영자이기에 앞서 CRO(Chief Risk Officer)라는 의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위기를 관리하지 못하는 대통령에게서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없다. 이 말은 위기나 변화에 둔감한 사람은 위기관리 능력 자체가 없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대선은 표를 다투는 단기전이다. 하지만 승자 앞에는 선거와는 양상이 판이하게 다른 몇 년의 장기전이 기다리고 있다. 국민은 대통령의 합리적인 국가 경영과 민생, 위기관리 능력을 주시한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이념도 정당도 뛰어넘는 지도자에 주목한다. 유권자가 그런 국정 철학과 원칙, 꿈을 가진 후보를 찾는 게 이번 대선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의 백지선은 누구인가?

2017-05-02 00:05:01

[세풍] 누가 비열한가?

'트로츠키주의자'의 정의(定義)는 레프 트로츠키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이나 분파쯤 될 것이다. 트로츠키의 사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매우 길고 복잡한 서술이 필요하지만 '러시아 혁명은 서구에서의 혁명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는 '영구혁명론'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나 레닌이 죽은 뒤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서 트로츠키가 패하면서 트로츠키주의는 그런 가치중립적 의미를 박탈당하고 '배신자'와 동의어가 됐다. 이때부터 각국 공산당은 자신의 지도에 따르지 않는 공산주의자를 '트로츠키주의자'인지와 상관없이 '트로츠키주의자'란 딱지를 붙였다. '트로츠키주의자'는 만능패가 된 것이다.대표적인 예가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 반란군에 대항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민병대를 조직한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POUM)의 숙청이다. POUM의 지도자 안드레스 닌은 트로츠키의 비서를 지낸 적이 있지만, 1935년 트로츠키와 결별했다. 그럼에도 당시 소련의 지도를 받고 있던 스페인 공산당은 공산당 이외의 좌파 세력 제거를 위해 POUM을 '트로츠키주의자'로 몰아 말살했다. 안드레스 닌도 체포돼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스탈린이 보낸 하수인에 의한 암살도 그중 하나다.1930년대 공산권을 횡행했던 '트로츠키주의자'와 비슷한 만능패가 21세기 한국의 대선판에도 등장하고 있다. 바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자신의 안보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꺼내 드는 '색깔론'이다. 그 방식은 자동반사적이다. 불리하면 "또 색깔론이냐"는 식이다.문 후보는 "북한이 주적(主敵)이냐"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질문에 "(그렇게 규정하는 것은) 국방부가 할 일이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고 대답했다. 보수 진보를 떠나 문 후보의 안보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자 문 후보 측은 "현재 국방백서에서 주적 개념은 삭제된 것"이라며 "이 문제는 안보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색깔론에 가까운 정치 공세"라고 했다.'팩트'부터 틀렸다. '주적'이 '우리의 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주적'이 삭제됐기 때문에 북한이 주적이냐고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주적'과 '우리의 적'이 어떻게 다른지 확실한 개념 정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국방백서가 '우리의 적'으로 명시한 대상은 '북한 정권과 북한군'뿐이다. '주적'이나 '우리의 적'이나 그게 그거라는 것이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 식으로 말한다면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라는 기의(記意)의 기표(記標)가 '주적'에서 '우리의 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노무현정부가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했다는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의 주장에 대해서도 문 후보는 '색깔론'으로 비켜간다. 문 후보는 문제의 주장이 담긴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이 공개된 뒤 그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송 전 장관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문건'을 다시 공개하자 문 후보는 '비열한 새로운 색깔론'이라고 했다. 23일 TV토론회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거짓말을 하면서 계속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 데 대한 반응도 "구태의연한 색깔론"이었다.색깔론은 나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지도자의 색깔이 국가의 정책과 국민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면 '색깔 검증'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색깔론'으로 이를 회피하는 것은 자신의 진짜 색깔을 감추기 위한 '역색깔론'일 뿐이다. 그러면 문 후보의 색깔은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것일까? 문 후보의 TV토론단장인 진성준 전 의원의 말은 그 판단 기준이 될 듯하다. 그는 22일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한 입장을 북한 당국에 물어봤다 쳐도, 그게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라고 했다.이쯤 되면 누가 비열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 후보의 안보관을 검증하려는 측이 비열한가 아니면 그것을 '비열한 색깔론'으로 모는 문 후보가 비열한가?

2017-04-25 00:05:24

[세풍] 누가 독립운동하랬냐

"짐(朕)은 다시 말하지 않겠으니 잘 알리라고 생각한다."500년 조선 마지막 왕인 순종은 1907년 이토 히로부미 통감의 눈치를 보며 조칙(詔勅)이라는 임금의 말을 백성들에게 여럿 내렸다. 군대를 없애라는 조칙도 있다. 1907년 7월 31일이다. "우리 군대는… 상하가 일치하여 나라의 완전한 방위를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유다. "혹시 칙령을 어기고 폭동을 일으킨 자는 진압할 것을 통감에게 의뢰하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일제의 침탈에 순수 민병(民兵)인 의병들이 '소요'를 일으키고 8월 1일 군대 해산으로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은 해산 군인까지 더해 전국이 의병 '소요'로 들끓자 9월 18일 조칙을 또 내렸다. "무장을 풀고 집에 돌아가서… 부모 처자와 함께 태평스러운 행복을 함께 누릴지어다"며 타일렀다. 의병을 해산하고 일본군과 싸우지 말라는 뜻이었다.그래도 13도 의병이 이어지자 12월 13일 '반란으로 소요를 일으키는 어리석은 백성'과 '무도한 백성'에게 귀순(歸順)의 조칙을 다시 내놓았다. "날씨는 춥고 해가 저물어 얼음과 눈 속에서 허덕"이느라 "부모는 동구에 나아가 울고 처자들은 배고파 울면서 기다리고" 있으므로 귀순하라 했다. 그러면서 "순종하지 않는 자는 법에 의하여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겁까지 줬다.이토 통감의 지시(?)에 순종한 순종의 왕명에도 말발이 먹히지 않자 일제는 앞선 화력과 대규모 병력, 그동안 기른(?) 한국인 앞잡이를 내세워 대토벌에 나서 완전 진압을 눈앞에 두었다. 일제는 순종의 이용 가치도 떨어짐에 따라 마침내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을 통째로 삼켰다. 경술국치 패망, 흑역사(黑歷史)의 시작이다.그런데 지금, 대구에서는 순종이 부활하고 있다. 대구 중구청이 지난 2013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70억원을 들여 순종을 기리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다. 이는 순종이 1909년 1월 7일 첫 방문에 이어 부산과 마산을 둘러보고 12일 다시 대구에 들른 일을 기념해서다. 그러나 대구에 와서 순종은 '소요' 때문에 골치였다. 그래서 "지방 소요는 가라앉지 않고 서민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으니 가슴 아프다"며 '난국을 구하려' 이토 통감과 남쪽을 둘러보고 있다는 조칙을 발표했다.순종의 대구 방문은 오히려 이토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킨 기회였다. 이토는 일본 기녀를 끼고 놀았고 일장 연설의 호기까지 부렸다. 당시 대구 일본인들은 환호했고 숙소에 이르는 길을 화려한 등불로 장식했다. 대구에서 맘껏 부린 이토의 호기는 거기까지였다. 그해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손에 의해 중국 하얼빈에서 악행의 심판을 받아서다.이런 흑역사 기리기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인 대구에서 참으로 믿기 어려운 기막힌 일이 지난주 매일신문에 보도됐다.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망한 나라를 구하겠다며 젊음을 내던져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이상정 장군 손자의 힘든 삶이다. 일흔을 눈앞에 둔 손자 이재윤(69) 씨. 그는 1950년 3세 때 소아마비로 장애가 된 불편한 몸으로 월세방에서 힘겨운 삶을 버티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특히 그의 삶이 아린 것은 마침 대구 도심에서 할아버지 4형제(상정'상화'상백'상오)와 이들을 뒷바라지했다는 종증조부 이일우 등 소위 이일우 집안을 일컫는 '이장가'(李庄家)의 업적을 조명하는 행사가 열리는 터여서 더욱 그렇다. 게다가 올 4월은 정부가 할아버지를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뽑아 온 나라에서 기리는 달이지 않은가.70억원짜리 '순종황제어가길' 조성 사업으로 이일우가 운영한 우현서루 터와 여러 곳을 새 단장하느라 돈이 아낌없이 쓰이고 있다. 이장가 사업 홍보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는 누구를, 무엇을 위함인가. 그나마 시민들이 한푼 두푼 모아 어제 손자에게 성금을 전달했다니 다행이다. 이것만으로 위안을 삼기에는 가슴 답답한 현실이다. 박중양과 이완용이 "그래, 누가 독립운동하랬냐"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듯하다.

2017-04-18 00:05:05

[세풍] 레이저 눈빛

조선시대 명재상 황희는 눈빛이 날카롭기로 유명했다. 일설에 의하면 심약한 사람은 그 눈빛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기가 꺾였다고 한다. 안광(眼光)에 관한 한 속칭 '넘사벽'인 황희 정승을 좌절시킨 존재가 있었다. 뜻밖에도 사람이 아니라, 삽살개였다. 황희의 형형한 눈빛을 받고도 삽살개는 전혀 꿀리지 않고 매섭게 황희를 노려봤다. 삽살개가 귀신을 쫓는다는 옛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삽살개를 눈싸움으로 제압하지 못한 황희는 한탄했다. "나도 이제 죽을 날이 다 되었구나!"황희 정승은 타인의 눈을 수시로 응시한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는 깊이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웬만해서 남과 눈길을 정면으로 마주쳐서는 안 된다. 동물 세계에서는 눈을 응시하는 행위 자체가 싸우자는 의사 표시로 해석되며 여기에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동물이든, 사람이든 노려보는 시선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특히 상대방이 자신보다 강자라면 그 눈길을 받는 것 자체만으로 간담이 서늘해진다. 이는 호랑이나 늑대 같은 맹수의 눈길을 경험했던 선사시대 인류의 본능 탓이다. 포식동물의 눈동자는 수직형인데 아주 매섭게 느껴진다. 수직형 눈동자는 전방의 물체에 집중하는 데 유리하게끔 진화된 결과다.반면, 동그랗고 커다란 눈동자는 순해 보인다. 소나 말과 같은 초식동물의 눈이 그렇다. 둥그런 눈동자는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초식동물의 눈은 포식자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내기 쉽게끔 진화했다. 크고 둥근 눈동자에 사람들이 호감을 느끼는 이유는 초식동물의 눈길 자체가 위협이 아니라는 본능적 직감 때문이다.눈은 영혼의 창이자 드러난 뇌라고 했다. 눈동자로 많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기에 우호적인 마음을 눈길에 담는 것이 인간관계에 좋다. 그런데도 눈에서 레이저라도 쏠 듯이 사람을 노려보는 이들도 있다. 직장 상사가 그렇고, 을에 대한 갑의 눈길이 그렇다.레이저 눈빛에 관한 한 박근혜 전 대통령만큼 많이 회자되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레이저 눈빛을 받고 등골 오싹한 경험을 한 각료들이 적지 않은데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정유라 승마 지원에 대한 불만과 질책을 듣고 "대통령이 화났을 때 눈빛이 레이저를 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고 측근들에게 토로했다고 한다.그러나 눈에서는 레이저는커녕 그 어떤 빛도 나올 수 없다. 눈빛은 눈매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경험한 레이저 눈빛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막강한 권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자신보다 지위가 높고 강한 사람이 노려보면 사람은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게 돼 있다. 역설적인 것은 우리 사회의 슈퍼 갑 중 슈퍼 갑인 이 부회장 역시 알게 모르게 아랫사람들에게 눈빛 레이저를 쏘아댔을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레이저 눈빛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 레이저 눈빛을 가능케 하는 것은 권력이고 그 이면에 권위주의라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황희 정승도 눈빛이 날카롭다고 소문날 수 있었던 것은 왕 못지않은 그의 권세 때문이었을 것이다. 권세가 사람에게 통했는지는 몰라도 물빛 모르는 삽살개에게는 무용지물이었던 것이 아닐까.여기 레이저 눈빛에 관한 한 빼놓을 수 없는 이가 한 명 더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지난해 11월 검찰에 출두했을 때 그는 혐의 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묻는 기자를 향해 강렬한 눈 레이저를 쏘아댔다. 청와대 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때야 그의 눈빛이 오금을 저리게 했을는지 모르지만, 끈 떨어진 그가 쏘는 눈빛은 그저 예의 없는 행동이었을 뿐이다.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최근의 세 번째 검찰 출두에서는 태도가 확 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친정인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마저 청구된 상황이니 눈빛도 힘을 잃을 만하다. 그래서 화무는 십일홍이고 권력은 무상한 것이다.

2017-04-11 04:55:01

[세풍] 대선을 보는 또 다른 시각

대통령 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니 오래전에 맛보았던 낭패감이 다시 떠오른다. 누가 당선될지도 모르면서, 기자랍시고 함부로 떠들던 그 치기와 미숙함을 생각하면 낯이 뜨거워진다.2002 한일월드컵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퇴직한 선배 언론인과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그분이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이번 대선에 누가 당선될 것 같은가?" 필자는 '왜 이렇게 뻔한 질문을 하시나'는 생각에 말장난이나 유머를 날리는 게 아닌가 싶어 잠시 멈칫했다. 그러면서 "해보나 마나 같은데요. 이회창 씨가 되겠지요"라며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대선이 서너 달 남은 때였지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경쟁은 거인과 코흘리개 아이의 싸움처럼 보였다. 이회창 씨는 이미 대통령이 된 듯 선거일만 손꼽아 기다렸고, 노무현 씨는 김대중 대통령 아들의 비리사건, 지방선거의 참패에다 당내 내분까지 겹쳐 전전긍긍했다. 여론조사 예측도 이회창의 승리 일색이었다. 이런 배경을 아는 필자의 대답은 일반인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선배 언론인의 예측은 달랐다. "내 판단으로는 노무현 씨가 이길 거야." 깜짝 놀라 이유를 물었더니 그분의 말씀은 이랬다. "월드컵 때 붉은악마를 떠올려봐. 그 젊음의 에너지와 열정이 이제 어디로 표출될지 상상해보게."선거가 가까워질수록 그분의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그해 투표소에는 젊은 유권자들이 줄을 서 기다릴 정도였으니 그분의 예측은 너무나 정확했다. 노무현의 당선은 기적이 아니었고,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언론에선 노무현의 매력이나 이회창의 실책이 승부를 가른 요인이었다고 떠들었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본질은 아니었다. 그해 월드컵이 열리지 않았더라면 노무현의 당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젊음의 열정과 에너지는 기록에도, 통계에도, 수치에도 잡히지 않지만, 한국 정치의 향방은 물론이고 국가의 운명까지 결정짓는 절대적인 요소다. '젊은이의 열정은 거칠고 미숙한 듯하지만,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진리다.흥미로운 사실은 '젊은 세대의 반란'이 15년을 주기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1987년 6월 항쟁과 2002년 월드컵, 2017년 촛불집회는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도를 바꿔놓았다.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는 김영삼'김대중의 분열로 노태우 씨를 당선시켰고, 2002년 16대 대선은 노무현의 극적인 역전승으로 끝났다.이번 대선에서 젊은 세대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가. 촛불집회에 모인 젊은 층의 열정을 떠올리면 그 해답은 분명하다. 젊은 세대는 박근혜 정권을 규탄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정치적으로 훈련하고 단련하는 기회를 잡았다.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이 현실 정치에 눈뜨면서 적극적인 투표 행사층으로 바뀔 것이다. 이번 대선은 젊은 세대의 성향에 따라 대통령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나이 드신 유권자에게는 기분 나쁜 얘기일 수 있지만, 이번 대선의 주연은 젊은 층이다. 젊은 표심이 움직이면 진보 색채의 후보 당선으로 이어질 테지만, 좋든 싫든 대한민국의 운명이라 여길 수밖에 없다.'15년 주기론'은 뜬금없는 논리지만, 대통령 선거 세 번 하고 나면 사회적인 격변이 일어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사회적 모순과 병폐가 집적돼 있다가 주기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은 후진적 구조를 개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취업'결혼과 경제적 불평등에 고민하면서 극심한 좌절과 분노를 맛보고 있는 세대다. 촛불집회는 평화롭게 끝났지만,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 사정과 기득권층의 이기주의를 볼 때, 다음에는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차기 대통령은 젊은이의 분노와 좌절을 보듬어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가 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젊은 세대를 배신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대통령이 되는 길이다.

2017-04-04 04:55:02

[세풍] 알뜰한 지도자

버락 오바마는 성공한 대통령이다. 미 의회방송(C-SPAN)이 얼마 전 역사가와 정부 전문가 91명에게 물은 결과 역대 미국 대통령 중 12번째로 손꼽았다. 케네디나 레이건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첫 흑인 대통령의 지도력과 도덕성 등을 높게 쳤다. 이런 호평은 그가 괜찮은, 매력 있는 정치 지도자라는 뜻이다.일반 미국인 대상의 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다. '현직보다 나은 전직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취임 직후 지지율이 역대 최저인 30%대로 추락했다. 반면 옷을 벗은 오바마 지지율은 60%대를 넘나든다. 프랑스에서 수만 명이 "제25대 공화국 대통령으로 모시자"며 온라인 청원에 서명할 정도면 속된 말로 '그놈의 인기'라는 말도 나올 법하다.돌이켜보면 대통령에 도전한 오바마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그의 이상한 이름만큼 생경했다. 2008년 선거 때 민주당 분위기는 싸늘했다. 저평가하는 정도가 아니라 조롱하고 비판했다. 러닝메이트인 조 바이든 부통령은 오바마와 말도 섞지 않을 정도였다. 빌 클린턴은 대놓고 깎아내렸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커피 심부름이나 했을 인물"이라며 비아냥댔다. "피부색이 너무 검지 않고 니그로 방언도 쓰지 않는다"며 은근히 무시한 민주당 거물급 인사도 있었다. 기자들이 미국 대선 막후를 조명한 책 '게임 체인지'에서 이 에피소드를 공개해 파문이 컸다.대선 후보 오바마는 조직력도 처졌다. 하지만 미국의 정신과 비전, 희망과 통합을 강조하며 침착하게 선거 캠페인을 진행했다. 오바마 캠프는 고비 때마다 단결했고 변화를 외쳤다. 젊고 스마트한 이미지의 오바마는 힐러리 대세론도 무너뜨렸다. 공화당은 적수조차 되지 못했다.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체면을 구긴 매케인 후보나 '급조된' 세라 페일린은 오히려 오바마를 돋보이게 했다. 말 그대로 '포일(Foil) 효과' 수준이었다. 오바마의 승리는 권력이 아니라 미국을 본 결과다. 유권자들은 온유한 자신감과 진정성이 배어 나오는 오바마의 맑은 눈빛과 미소 띤 얼굴, 울림이 큰 연설에 표로 화답했다.재임 중 공화당이라면 치를 떨 만큼 분노하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지만 그는 결코 교만하지 않았다. 언제든 적에게도 손을 내밀 줄 아는 지도자였다. 그는 백악관의 말단 직원, 소시민 누구와도 주먹을 부딪치며 소통했다. 정중하면서도 소탈하고 인간미가 넘쳤다.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끈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8년 임기를 마무리한 오바마에게 허접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우리 대선이 코앞이다. 장미꽃이 한창인 5월에 치른다고 '장미 대선'이라고 부르지만 장밋빛 미래를 여는 선거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비정상의 국가 시스템을 정상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도자가 뽑힌다면 만족이다. 적어도 물결을 잘 살피고 배를 바르게 몰아가는 선장이면 됐다.2017년 현 대한민국이 바라는 지도자는 프랑스 대혁명 초기 '국가가 파산했다'라는 연설로 주목받은 콩트 드 미라보 같은 인물이 아니다.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현실을 꿰뚫어보고 잘못된 것을 하나씩 바꿔나가는 지도자, 신중하면서도 바른 결단력을 가진 '알뜰한'(참되고 지극한) 대통령을 원한다.문재인 후보가 대세론을 업고 대선 레이스에서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그가 국민을 풍파로 몰아넣지 않을 지도자인지는 알 수 없다. 스스로 "검증된 후보"라고 말하지만 글쎄다. 대다수 국민은 그의 리더십과 비전, 도덕성과 국정 수행 능력을 알지 못한다. 그를 떠받치는 세력의 극성맞음 정도만 안다.40여 일 후 장미 대선이 국민이 진정 주인 대접을 받는 선거가 될지, 아니면 노랫말 처연한 '봄날은 간다'를 읊조리는 선거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겨우 악몽에서 벗어난 국민이 또다시 가위눌림에 허우적댄다면 '봄날'은 없다.

2017-03-28 04:55:05

[세풍] 文의 이중 잣대가 적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진(自盡)은 계산한 것이라는 손혜원 의원의 발언은 '사건'이었다. '사건'인 이유는 '천기누설'이기 때문이다. 천기란 문재인과 그쪽 진영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손 의원의 발언은 그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해줬다. 손 의원을 포함해 그 누구도 노 전 대통령이 '계산'했는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계산이 사실인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보는 것 자체가 그들의 방식이다. 그 방식이란 '모든 것을 우리에게 득이 되느냐를 계산해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쯤 될 듯하다. 그들은 무슨 소리냐고 눈을 부라리겠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불복 예고'와 '승복'을 오간 그들의 언행은 이를 잘 보여줬다.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한 뒤 그들의 입에서 일제히 나온 말은 '승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사저(私邸)로 퇴거하면서 기대했던 "승복" 대신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하자 문재인은 "국민과 헌법에 대한 모독"이라며 "사죄와 승복"을 요구했다. 촛불집회에 빠짐없이 나가 "탄핵 인용"을 선동하고, "기각이면 혁명밖에 없다"며 헌재를 겁박했음을 상기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는 헌재가 '기각'이나 '각하'를 결정했다면 그들이 어떻게 나왔을지를 가늠케 한다. '불복의 촛불'로 헌재를 태워버리려 했을 것이다.이러한 '선택적 승복'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북한은 북한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종북주의자들의 '내재적 접근'이다. 북한을 북한의 시각으로 보면 북한은 전혀 이상한 나라가 아니듯이 '문재인들'의 언행도 같은 도구상자에 넣어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일관된 논리는 우리에게 득인가 실인가라는 '계산'이고, 이는 그들의 '세계'에서 공기만큼이나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에서는 그 자체로 존중하고 따라야 할 근본적 가치나 규범은 없다. 우리에게 유리하면 선이고 불리하면 악이다. 탄핵 심판도 마찬가지다.노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한 문재인의 소회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지난 대선 출마를 앞두고 펴낸 자서전 '운명'(2011년)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는 다행히 기각됐다. 하지만 만약 인용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실제로 헌법재판관 2명은 인용 의견이었다. 같은 의견을 가진 재판관이 다수였다면 대통령은 탄핵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줬을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의 정당성이 어디에 있을까? 국민이 그들을 헌법재판관으로 선출한 것도 아니다."이 논리대로라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은 정당하지 않음은 물론 앞으로도 다른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도 탄핵할 수 없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고 헌재 재판관은 국민이 선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면 엄청난 결론에 이른다. 재판관을 투표로 뽑지 않는 한 헌재는 존재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그러나 문재인은 그렇게 정당하지 않은 헌재의 판결을 쌍수로 환영했다.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을 기각하자 "건강한 헌재의 결론이 일반 국민의 상식과 똑같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같은 해 노무현정부의 행정수도 이전에 헌재가 기각 결정을 내리자 180도 달라졌다.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국회에 맞서는 것이다."이뿐만 아니다. 박근혜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헌재에 청구했을 때 문 전 대표는 정부의 '성급함'을 강력히 비판했다. "이석기 내란 음모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보지도 않고 해산을 청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탄핵에서는 전혀 달랐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시작도 안 했다. 그럼에도 탄핵을 밀어붙였다. 참으로 편리한 이중 잣대다. 그래서 문재인의 승복 요구는 공허함을 넘어 기만적이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보고 배울까 겁난다. 문재인은 적폐 청산을 얘기하지만 자신의 이중 잣대부터가 적폐다.

2017-03-21 04:55:03

[세풍] 물망(勿忘)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정치인을 여러 번 만났다. 유학과 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해 주변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다. 당연히 국내 정치 관행(?)에 어두웠다. 2006년, 선거에서 공천을 받을 때 일이다. 당시 공천 특별 헌금이 필요하다는 당 간부의 귀띔에 내키지 않았지만 5천만원을 우선 입금시켰다. 그런데 며칠 뒤 깜짝 놀랐다. 은행 통장으로 5천만원이 고스란히 송금됐기 때문이다.사연을 알아본 결과,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돈 공천 불가 방침 때문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박 전 대통령과의 아름다운 인연을 생각하며 빛바랜 오랜 은행통장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불통'(不通)과 '수첩공주' 등과 같은 여론의 비난과 비판이 난무할 때도 그랬다. 그에게 박 전 대통령 이미지는 세상을 뒤덮은 부정적인 소문에도 여전히 깨끗한 정치인의 모습이었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과 탄핵 심판 과정에서 불거진 부정과 비리 의혹이 세상에 드러난 지금 그의 심정은 알 수 없지만 말이다.우리 역사에서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이들로 이뤄진 위정자들의 부패와 비리는 빠질 수 없는 단골 주제이다. 왕조가 바뀌고 시대가 흘러도 변함없다. 그만큼 뿌리가 깊고도 넓다. 고조선 시대 팔조금법(八條禁法)이 생긴 이래 처벌도 다양하고 많아졌다. 기록이 시작된 이래 부족했던 적이 없다. 되레 반대였다. 의도적이었지만 그래서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전한 우리 자료에는 유독 부패와 비리 이야기가 넘치고 남는다. '지방수령을 한 번 하면 3대(代)가 지낸다'거나 '관찰사 특히 경상도관찰사를 한 번 지내면 7대(代)가 먹고산다' '관리에게 진공(進供)하면 일이 잘 풀린다'는 등의 기록이 그렇다.경계 글도 넘쳤다. 조선 8도(道)에서 가장 크고 넓은, 72고을의 경상도 감영이 그렇다. 물(?)도 좋은 만큼 집권 세력의 관리가 선호한 곳으로 비리도 당연했다. 오죽했으면 임금이 최고 관리인 관찰사가 머물던 대구감영(監營)에 조심하라는 글까지 내렸을까? '네가 받는 월급은 백성의 기름이고(爾俸爾祿民膏民脂), 아래로 백성을 괴롭히기는 쉬우나 위로 하늘을 속이기는 어렵네(下民易虐上天難欺)'라는 글이다.이런 우리의 부패 역사로 1~16대 대통령은 취임 때부터 비리 척결을 약속했다. 물론 지켜지지 않았음을 국민들은 경험했다. 그래서 17대 이명박'18대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때 직접적인 부패 비리 근절 약속이 없어도 무신경했다. 약속해도 지켜지지 않아서다. 어김없이 17'18대 두 직전 대통령 재임 시절, 비리는 터졌고 뭇 측근들이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지금도 그렇다. 박 전 대통령 관련 비리는 재판 중이다. 박 전 대통령도 숱한 의혹과 관련한 수사가 불가피하게 됐다. 앞선 정치인처럼 박 전 대통령을 깨끗한 정치인 상징으로 여긴 국민 심정은 참담하다.역대 대통령의 수난사는 왜 못 막을까? 2012년 12월, 서울지사장 재직할 때 경기도 파주의 나남 출판사 조상호 대표와의 만남이 떠오른다. 처음 만난 필자에게 3권짜리 '소설 징비록, 왜란'을 주면서 독후감을 부탁했다. 필자의 독후감은 '물망역사'(勿忘歷史) 즉 '역사를 잊지 말자'였다. 고개를 끄덕이던 조 대표의 미소가 생각난다.필자는 달리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작가가 소설 끝에 쓴, 징비록 저자 류성룡이 1607년 66세로 죽기 직전, 선조에게 올린 유소(遺疎)에서 '난리는 언제나 일어날 것이니, 먼 장래까지 대비하소서. 신하들을 깊이 관찰하시어 바른 정사를 세우소서. 백성을 고이 기르시고 어진 이를 등용하소서. 군정을 밝게 하시고 훌륭한 장수를 골라 쓰소서'라는 글이 가슴에 와 닿아서다.그렇다. 대비는 지난 잘못을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부패와 비리도 다르지 않다. 이번 대통령 탄핵과 파면에 이르기까지 저질러진 잘못과 비리도 잊지 않으면 충분히 처방이 될 것이다. 물망 최순실, 물망 탄핵. 이것만으로도 뒷사람 경계에 모자라지 않는다.

2017-03-14 04:55:01

[세풍] 김관용의 대망

언론사에 있으면 정보를 많이, 그리고 깊숙이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최근 지인 여러 명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김관용 경상북도지사가 대권에 도전한다는데 출마하려는 진짜 이유가 뭐요?"누가 보더라도 김관용 도지사의 대권 도전이 무모하다는 전제가 바탕에 깔려 있는 질문이 아닌가. 지금의 여론 지지율로 볼 때 유력 주자로 평가받지 못하는 그가 대통령 선거에 왜 나서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세간의 인식을 담은 물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 지사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나 역시 아는 게 없기는 마찬가지다.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면 가장 정확하겠지만 요즘 김 지사가 대권 행보하랴, 도정 챙기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고 하니 연락 닿기가 쉽잖다. 또한 대권 도전 의사를 이미 내비친 마당에 면전에서 그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결례일 수 있겠다 싶어 결국 간접 취재에 나섰다. 경상북도 고위 공무원이나 도지사 측근이라 불릴 만한 인사를 만날 때마다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답변은 거의 비슷했다. "대권 도전 의지가 아주 강하다." "스스로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김 지사가 얼마 전 간부 회의 석상에서 자신의 대권 도전에 대해 냉소적인 공무원들이 많다며 한 소리 했다고 하더라."적어도 김 지사의 대권 도전은 '쇼'가 아닌 것 같다. 3선 임기 말에 접어든 요즘 '도정 레임덕'을 막기 위해 대선 출마 카드를 만지작거린다거나 퇴임 이후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추측은 그의 내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이다.항간의 시선과 달리 김 지사 본인은 이번 대선을 해볼 만한 승부처라고 믿으며 나름대로 준비도 많이 해온 것 같다. 이런 자신감은 그의 정치 여정과 무관치 않다. 그는 우리 정치사에 유일무이한 6선 단체장(기초 3선'광역 3선)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치러진 6번의 선거에서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것이다. 구미시장 3선을 끝내고 도지사 선거 출사표를 던질 때에도 친이계 후보에 뒤진다며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만류했지만 경선에 나섰고 판세를 뒤집어 도지사에 당선됐다.단체장으로 보여준 역량과 뚝심을 볼 때 정치인으로서 그는 부족함이 없다.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과 이슈 중심에 서는 감각도 뛰어나다. 또한 목표를 설정하고 나면 될 때까지 집중한다. 모두가 불가능하리라고 여겼던 경북도청 이전을 임기 내에 이룬 것만 보아도 그렇다.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연설 솜씨가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점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구미시장에 처음 출마했을 때 대중 앞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른 경험을 한 이후 그는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연설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연설 강사로부터 특별레슨까지 받았다.김 지사는 박근혜정부의 실정으로 여론이 극히 악화돼 있지만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면 양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선거가 시작되면 보수 성향 표심이 집결하면서 박빙의 싸움이 될 것이고 보수 진영 단일 후보가 되기만 하면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것이 그의 판세 분석이다. 향후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대구경북 입지의 급격한 약화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경북도지사가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것 자체도 지역에는 나쁜 그림이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식적인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무엇보다 'TK 3선 광역단체장'과 '친박' 타이틀이 지금까지는 그의 정치적 자산이었지만 대권 가도에는 큰 핸디캡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이 아닌 타지역에서 대중적 인지도 정체 현상도 넘어야 할 산이다. 김 지사보다 늦게 대선 판도에 뛰어든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지지율이 두드러지게 오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보수 진영 경선을 통과할 비책과 정치적으로 새로운 핵심 브랜드 발굴이 김 지사에게는 절실해 보인다. 제19대 대선에서 대구경북의 광역단체장이 군소 후보 취급을 받는 일만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2017-03-07 04:55:01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