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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암 서울지사장

[시각과 전망] 공항 갈등, 청와대가 책임져라

꼭 2년 전인 2016년 6월 22일 매일신문 1면은 백지였다. 1면은 신문의 얼굴이다. 그런데도 1면 백지 발행을 결행한 것은 전날 박근혜 정부의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로 지역민들의 얼굴이 백지장이 된 것을 대변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대구와 부산의 극심한 지역 갈등을 수면 아래로 내리려는 정부의 고육지책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 때문에 대구경북민은 관문공항에 대한 염원이 멀어져 갔고 차선책으로 대구통합공항으로 기수를 돌렸다.이런 우리의 진심과는 달리 부산의 오거돈 시장 당선인이 다시 갈등의 불을 지피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을 또 들고나온 것이다. 이번에는 힘으로 찍어 누르겠다는 기세다. 정치적으로 부산의 힘은 장난이 아니다. 부산 출신 대통령에, 부산시장 선거 사상 첫 민주당 출신이 나왔다. 구청장도 16개 기초단체장 중 13곳이 민주당이다. 시의원은 42명 중 38명이나 된다. 4년 전 지방선거 때 민주당 소속 구청장은 한 명도 없었다. 2년 전 선거 때 국회의원을 5명이나 당선시킨 데 이어 '부산의 강남'이라 불리는 해운대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압도적 표 차로 당선됐다.이런 세력을 바탕으로 오 당선인은 취임도 하기 전에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가덕도 신공항을 본격 거론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인 민주당 김경수 경남도지사 당선인 역시 김해공항 확장불가론을 펴고 있다. 이전에 경남은 신공항 입지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가덕도가 되든, 밀양이 되든 본인들은 불편한 게 전혀 없었기 때문. 그런 경남이 김해신공항 불가론을 주장하는 건 가덕도 신공항에 힘을 싣는 격이다. 이전 대구 편이었던 울산도 부산 편을 들 공산이 크다. 송철호 시장 당선인이 문 대통령 및 노무현 전 대통령과 3형제로 불릴 정도로 가깝다. 부울경을 장악한 민주당이 부산의 목소리에 동조하고 나설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반면 대구는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 한 명 배출하지 못했다. 대구경북의 민주당 국회의원도 25석 가운데 대구 2석에 불과하다.부산이 이런 정치적 구도를 믿고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인다면 대구경북은 무기력한 정치권을 대신해 시도민 전체가 나서서 극렬히 저항할 수밖에 없다. 향후 엄청난 갈등이 지속됨을 의미한다. 영남권 신공항을 한다면 가덕도보다는 밀양이다. 2년 전 정부 용역결과도 가덕도보다 밀양이 더 나은 점수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양보를 했다.부산의 생떼부리기에 대한 답은 청와대가 해야 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5일 기자간담회에서 "가덕도 신공항을 지금으로선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지만 미진하다. "지금으로선"이란 사족을 붙일 이유가 없다. 그럼 여건이 바뀌면 다시 한다는 말인가. 오 당선인이 그 정도 발언에 멈출 사람이 아니다. 그러기에 청와대가 입장 표명을 하라는 것이다.오거돈 당선인에게도 당부한다. 가덕도 신공항 문제는 문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 것인지, 부산의 대통령에 국한시킬 것인지 시험대가 된다. 대통령을 배출한 도시의 수장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지우는 일을 하는 게 과연 옳은 길인가. 단체장의 욕심 때문에 대통령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또다시 부산 시민들을 혼란과 혼돈 속에 빠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시도하면 할수록 세찬 소용돌이로 빠져들 가덕도 신공항 대신 되지도 않을 공항 때문에 막대한 재산권 침해를 당하고 있는 가덕도 주민들을 위한 발전 방안 마련에 전념하시라.

2018-06-27 05:00:00

조두진 문화부장

[시각과 전망] 어느 무소속 후보의 낙선

'6·13 지방선거'에 대구 수성구의회 의원에 출마했던 한 무소속 후보가 낙선했다. 그는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올해까지 7회 모두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2002년과 2014년에는 당선돼 의정활동을 펼쳤다. 그러니까 현재 수성구의회 의원이고 며칠 뒤 임기가 끝난다.(기자라는 직업상) 그와 명함을 주고받은 적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와 친분이 없고, 아는 사이라고 할 만한 정도도 못 된다. 그의 지역구 주민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낙선은 여러 가지 의문과 불만을 갖게 한다.내가 아는 수성구청 공무원들과 수성문화재단 임직원들에 따르면, 낙선한 그 의원은 임기 내내 열심히 했고, 잘 했다. 때로는 너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밉기도 하고, 짜증도 나지만, 그의 질문이나 의문은 대부분 구의회 의원으로서 마땅히 할 수 있는 질문이고, 해야 하는 문제 제기라는 평가가 다수였다. 그럼에도 그는 낙선했다.이에 반해 대구시내 각 기초의회에서는 구정질문이라는 것이 거의 트집 잡기 수준인 의원, 윽박만 지르는 의원, 자신이 집행기관(구청) 공무원이 아니라 의결·감시기관(의회) 의원이라는 사실조차 무시하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의원, 의회 일은 뒷전이고 구민들에게 인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당선된 경우도 있다. 유권자들이 후보를 모르기 때문이다.투표에 앞서 유권자들은 선거공보물을 제대로 읽었을까? 공보물을 꼼꼼히 읽기만 하면 어떤 후보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공약의 실현 가능성과 인간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을까? 어렴풋하게라도 말이다.6·13 지방선거에 앞서 집으로 배달된 공보물을 모두 읽는 데 1시간 10분 걸렸다. 기자라는 사람들은 신문이나 책을 통해 문장을 늘 접하는 만큼, 문장을 읽는 속도도 빠르고 의미를 파악하는 데도 익숙하다. 그럼에도 공보물을 다 읽는 데 1시간 10분이 걸렸고, 그걸 다 읽고도 각 후보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우리 대부분은 후보를 모르고 찍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정당정치는 장점이 많고 정당정치를 지지한다. 그럼에도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후보까지 정당이 공천하는 것에는 반대한다.지방선거의 경우 광역단체장,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교육감, 광역의회 비례대표, 기초의회 비례대표는 기본이고,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까지 겹칠 경우 8개까지 투표를 해야 한다. 평범한 시민이 후보를 자세히 알 수 없는 구조다.후보자에 대해 잘 모르니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특정 정당의 인기가 높은 지역에서는 생활정치를 한다는 기초의원 후보자들마저도 주민보다는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의 눈치를 더 살핀다. 국회의원이 떴다 하면 이른 새벽이고 늦은 밤이고 경마잡이처럼 시의원, 구의원들이 따라 나서는 일이 허다하다. 그렇게 '경마잡이'는 승승장구하고, 국회의원 '시다바리'할 시간에 구정이나 열심히 살피겠다며 무소속을 고집한 후보는 낙선한다.1995년 6월 27일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실시했으니 올해로 횟수는 7회째고, 세월로는 23년이다. 이만큼 경험이 쌓이고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후보를 모르고 투표한다.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은 폐지되어야 한다. 또한 선거공보물 형식(틀)은 지금과는 확 달라져야 한다. 선거공보물을 읽으면 적어도 그 사람이 해온 일, 그 사람의 인생관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집, 자기 회사에서 일할 사람을 뽑을 때 지금처럼 무턱대고 뽑지는 않을 것이다.

2018-06-19 13:58:28

김교성 북부지역 본부장

[시각과 전망] 권력, 쏠림의 단맛과 무상

권력(權力).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으로 정의한다.권력만큼 달콤하고도 씁쓸함을 동시에 지닌 게 있을까. 13일은 전국 4천16명의 정치인에게 지방 권력을 안기는 날이다.이날 밤 꽃다발을 받아들고 환호성을 터뜨릴 이들에게 보내는 축하 메시지와 경계의 말이다.먼저 경계로, 권력 무상이다. 얼마 전 지인의 혼사에 가다 호텔 내 도로에서 대구에서 자치단체장을 역임한 분을 보게 됐다.만나 인사한 게 아니고 도로 건너에서 짧게 눈이 마주친 후 피해 지나갔다. 그와는 사회부 기자 시절 좋은 인연보단 속칭 '까는 기사나 칼럼'으로 애를 먹인 일이 몇 차례 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피했는지도 모르겠다.재임 시절 참모들을 거느린 화려함 대신 혼자 수수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서글프게 다가왔다.이번 지방선거에 도전했다가 공천 과정에서 사퇴한 고위 공직자 출신의 한 후보는 "자치단체장이 되는 길은 능수능란한 정치인을 원했으나 서툴고 어리석은 정치 초보에게는 어려운 길이었다"고 아쉬워했다.고시 출신인 그는 공직자로 장밋빛 길을 걸었기에 대구경북의 여론 주도층으로부터 보수 정당의 공천을 받을 것으로 당연시됐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사전 여론조사 결과 그의 고향 사람들은 화려한 이력을 지닌 그를 외면하고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자신들과 함께한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행정전문가로 인정받으며 화려한 공직 생활을 한 그가 받은 상실감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비단 이날 당선된 지방 권력뿐이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참담한 국가권력은 얘기해 봐야 소용없는 단계까지 온 것 같다. 검·경과 고위 공직자, 군 장성 등 정부 권력자와 법원, 국회, 종교지도자, 재벌로 불리는 경제 권력자도 마찬가지다.권력을 내려놓고 나서 무상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일찍 등지는 인사도 여럿 있었다.권력의 달콤함이야 설명이 필요 없다. 허약한 체질로 나약해 보였던 공직자가 자치단체장이 되고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친분이 있었던 이 인사에게 "무슨 보약을 먹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일이 힘들고 민원이 쏟아져도 어디에선가 숨은 에너지가 나오더라. 보약을 챙겨 먹지 않아도 그냥 엔도르핀이 돋는다. (자치단체장이) 되면 안다"고 했다.한 자치단체장은 대구시 공무원 시절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한직을 맴돌았다. 그는 고시 출신인데도 승진이 늦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비관적인 말을 수시로 내뱉었다.그럼에도 그는 (경쟁 상대인 고위 간부들이 비리로 줄줄이 옷을 벗는) 시대를 잘 만나 승진을 했고 부단체장을 거쳐 민선 단체장이 되는 영예를 누렸다.오늘 대구경북에서도 525명의 지방 권력자를 배출한다. 재선, 3선으로 그동안 누린 권력을 이어가는 행운아도 있고 새내기도 탄생한다.기자 생활을 통해 숱하게 권력자의 탄생과 퇴장을 지켜봤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나 편견일 수도 있지만, 광역지자체 5급 담당(계장)으로 옷을 벗은 사람이나 2, 3급 실·국장(부단체장)을 하고 단체장에 오른 사람의 업무 능력 차이는 크게 없다.주변 상황 등 정치적으로 시대를 잘 만났거나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경제력에 의해 권력을 얻었을 뿐이다.이번 권력자들은 부디 후보자 때 외친 지역민을 위한 혁신과 봉사에 매진하길 바란다.

2018-06-13 05:00:00

[시각과 전망] 포항~경주 호국벨트 되살려야

1950년 9월 17일, 국군 제3사단 22연대 1대대 분대장이었던 연제근 이등상사가 8명의 특공 대원들을 이끌고 형산강을 건넜다. 6·25전쟁이 일어나 3개월째에 접어든 즈음, 국군은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패퇴를 거듭했고 낙동강과 형산강에서 필사의 방어전을 벌이던 상황이었다. 형산강 방어전 1차 전투에서 패해 북한군에 포항을 내준 국군은 전열을 정비해 포항 수복에 나섰고 연제근 이등상사의 특공대는 그 선봉에 나섰다.연제근 이등상사와 특공 대원들은 수류탄을 몸에 매달고 물이 불어서 가슴 높이까지 오는 물살을 헤치며 나아갔다. 북한군의 무차별적인 사격이 이어져 연제근 이등상사는 어깨가 관통당하는 중상을 입었지만, 그는 끝까지 전진하여 수류탄 3발로 적의 기관총 진지를 파괴한 뒤 장렬히 전사했다. 다른 특공 대원들도 함께 산화했다. 이들의 희생으로 국군 22연대는 형산강을 건너 다른 국군 부대와 함께 북한군을 몰아내고 포항을 탈환했다. 이 전투는 이후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포항 해도근린공원에는 연제근 이등상사와 특공 대원들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포항과 경주는 칠곡, 영천, 영덕과 함께 낙동강 방어전을 치열하게 치른 호국의 고장이다. 6·25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계~안강 전투'와 '기계~포항 쟁탈전', '안강~포항 피탈전' 등의 중요한 전투들이 벌어졌다. 학도의용군 71명이 북한군의 침공을 저지하다 산화하기도 했다. 이를 기리기 위한 전적비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 학도의용군 전적비는 현재 포항여고 정문 앞에 있고 포항 송도동 코모도호텔 맞은편에는 포항지구 전투 전적비가 있다. 북구 용흥동 탑산에는 포항지구 전적비가 들어섰고 덕수공원과 구룡포에 각각 충혼탑과 각종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포항 기계면 성계리에는 기계·안강지구 전투 전적비가 있다.국가보훈처와 경북도는 2008년에 낙동강 방어선의 주요 지역인 '칠곡~영천~경주~포항~영덕'을 하나로 묶는 호국평화벨트화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칠곡의 낙동강 호국평화공원, 영천의 호국안보테마공원을 만드는 성과를 낳았고 영덕은 장사상륙작전 기념 문산호복원사업을 벌였으나 부실 공사로 방치돼 있다. 그러나 포항과 경주는 이 사업에서 아예 빠져 있는데 당시 부지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사업 계획도 불투명하게 제출돼 누락됐다. 포항시와 경주시는 사업 보완에 나서 재추진할 의지는커녕 2013년에 호국평화벨트사업 자체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쯤 경주에는 기계안강전투기념공원, 포항에는 전승기념공원이 들어서 있을 것이다.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접어드니 호국의 도시임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포항시와 경주시의 허술한 과거 행정이 떠오른다. 특히 포항은 칠곡 다부동 전투와 함께 밀리던 국군이 반격의 계기를 삼은 격전들이 치러졌던 곳이다. 가슴 아픈 학도의용군들의 사연과 영혼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해병대 1사단이 주둔해 있는 군사 도시로서 호국보훈의 얼이 짙게 숨 쉬는 곳이다.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는 포항시장과 경주시장은 호국보훈기념사업에 다시 나섰으면 한다. 도시의 발전은 역사와 특징을 잘 살림으로써 이뤄져야 바람직한데 포항과 경주는 호국보훈의 의미를 더 많이 되살려야할 도시들이다. 국가보훈처와 경북도도 반쪽짜리에 그친 호국평화벨트사업을 완성시켜야 할 것이다.

2018-06-06 05:00:00

최정암 서울지사장

[시각과 전망] 강효상·정동영 의원에 박수를

2015년 1월 28일 대구에서는 흐뭇한 기적이 일어났다. 발단은 그보다 약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연말, 대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한 젊은이가 가방 속에 있던 돈다발을 뿌렸다. 돈은 대로변에 흩날렸고 길 가던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돈을 줍느라 일대 교통이 한동안 마비됐다.뿌려진 돈은 5만원권으로만 160장, 800만원이었다. 정신 질환을 앓던 젊은이가 고물상을 하며 힘겹게 생활하는 할아버지·아버지로부터 자동차를 산다고 받은 돈 중 일부였다.이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이튿날부터 돈을 주워간 사람들이 하나, 둘 지구대에 반납하기 시작했고, 20일 좀 넘은 기간 모인 돈은 285만원. 남은 돈은 515만원이었지만 돌아온 돈만으로도 대구는 양심도시로 부각됐다.기적은 그 직후 일어났다. 28일 신문 발행 준비에 바쁜 저녁 시간에 매일신문사를 찾은 수수한 옷차림의 중년 남성. 편집국 앞을 서성이다가 사회부 중견 기자에게 노란 봉투를 맡기고는 황급히 사라졌다.기자는 자리로 돌아와 봉투를 열어보곤 깜짝 놀랐다. 노란색 고무줄에 묶인 5만원권 100장과 2009년식 다이어리를 찢어 적은 메모지가 들어 있었다.'돌아오지 못한 돈도 사정이 있겠지요. 그 돈으로 생각하시고 사용해주세요.' 딱 30자짜리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시민들은 285만원이나 돌아왔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지만 그분은 돌려주지 못한 사람들의 아픔을 헤아렸던 것이다.이 사연은 메모지 사진과 함께 1월 29일 자 본지 1면 톱기사로 실렸고, 전국 대부분의 언론이 본지 기사를 전재하다시피 인용해 보도했다.3년이 지난 사연을 다시금 소개하는 것은 요즘 다시 도마 위에 오른 네이버의 갑질 때문이다. 그때 네이버는 본지의 특종 보도 대신 서울소재 신문사가 매일신문을 인용 보도한 것을 메인 화면에 실었다.본지의 항의에 "인링크 제휴사가 아니어서 매일신문 기사는 실을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이는 지역 일간지는 전국지를 능가하는 발행 부수와 인지도, 영향력을 갖고 있어도 '지방지의 하나'라는 오만한 인식에 다름아니다.지금도 지역 언론은 아무리 좋은 기사를 써도 포털 메인 화면에 소개되지 못한다. 이를 거의 베낀 수준의 인링크(포털이 언론사 기사를 자체 편집하는 시스템) 제휴사 기사를 우선 배치한다. 지역 언론은 인링크 제휴 대상에서 제외돼 있고, 단지 검색으로만 포털에서 볼 수 있다.이런 상황에서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이번에는 정치권과 서울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아웃링크(포털에서 기사를 검색하면 해당 언론사 사이트로 이동하는 시스템)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다.그러나 포털들의 지역 언론에 대한 홀대와 멸시가 개선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아웃링크만 도입되면 지역 언론은 완전히 설 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포털 메인화면에 지역 언론의 기사가 올라가 있지 않으면 아웃링크로 넘어갈 가능성은 제로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역 언론 기사를 무시하는 포털이 그때 가서 개과천선한다는 보장이 없다.최근 강효상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발의한 '지역신문·방송 기사를 포털 첫 화면에 게재하는 법률안'과 정동영 민주평화당 국회의원이 낸 '이용자의 위치정보를 바탕으로 지역신문·방송의 기사를 일정 비율 게재하는 법률안'이 통과돼야 하는 이유다.지역 언론의 필요성과 위기를 절감, 용기 있고 시의적절한 법률안을 발의한 두 국회의원에게 박수를 보낸다.

2018-05-30 05:00:00

[시각과 전망] 모두 가난해지자는 사람들

좌파들은 자본주의가 부(富)의 대물림을 강화하고 계층 이동을 어렵게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경제 시스템 중에 자본주의만큼 계층 이동을 유연하게 해 준 시스템은 없었다. 과거 봉건사회는 정치권력을 장악한 집단이 경제력까지 장악했다. 고려왕조, 조선왕조, 유럽의 왕조들이 다 그랬다. 공산주의 사회도 마찬가지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집단이 경제 시스템과 재산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 북한이 그 예다. 왕조국가와 공산국가에서 정치권력을 장악한 자들은 권력 세습을 통해 대를 이어 부를 누리고, 다수 국민들은 대대로 가난에 허덕인다. 이는 역사 속에 그리고 38선 너머에 생생하게 실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자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이익을 남기고 부를 축적할 수 있다. 새로운 산업이 나오면 새로운 부자가 나온다. 기존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되기도 하지만, 부자가 쇠락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기업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IMF 이후 우리나라 30대 대기업 중 16개가 사라졌다. 우량기업으로 인정받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법인 중 40%가 실적이 나빠 상장폐지 됐다. '부익부 빈익빈'을 흔히 자본주의 병폐로 여기지만, '부익부 빈익빈'은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전에 훨씬 심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줄었다. 세습 정치권력으로 부를 유지,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금방금방 관심이 변하는 시장의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왕조사회, 공산주의 사회에서 '한번 노동자는 평생 노동자'에 머물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해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 작은 업체로 시작해 큰 기업을 일군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에 반해 공산국가에서 잘 먹고 잘살자면 당 간부의 자식, 혁명가의 핏줄로 태어나야 한다. 북한과 중국의 핵심 권력자 중에 권력자의 자손이 아닌 사람이 있는가? 좌파들은 자본주의 때문에 빈부 격차가 커졌다고 주장한다. 빈부 격차가 커진 것은 경제 총규모가 커진 데 따른 현상이며, 이는 자본주의 발달이 원인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시장경제에 과한 제약을 가하거나, 왕창 걷어 왕창 나누자는 사회주의적 발상은 모두를 가난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부도덕하다. 전교생 100명이 각각 100점부터 10점까지 획득한 점수를 모두 더한 뒤 평균 점수를 내 모두가 같은 점수를 가져간다고 치자. 시험을 칠수록 평균 점수는 낮아질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빼앗은 재산(세금)을 관리하고 분배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정치권력을 장악한 집단이다. 그들은 걷은 세금을 축적하거나 투자하는 대신 모조리 써버린다. 어떤 나라가 가난하다면, 이는 자본 축적이 적고 투자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세계 산업 규모는 갈수록 커지기 마련이고, 자본 축적과 투자가 약한 국가는 쇠락할 수밖에 없다. '과도한 빈부 격차'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타인의 가난과 고통에 아픔을 느끼는 것은 인류의 보편 심성이다. 우리의 초점은,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서도 개인의 창의성과 노력을 어떻게 자극하고 보장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부의 평등에 대한 열망은 모두를 불성실하고 부도덕하게, 그리고 가난하게 만들 뿐이다.

2018-05-23 00:05:00

[시각과 전망] 고속도로 뚫린 청송의 꿈

경상북도의 내륙 낙후지역인 청송 소재지로 가는 길은 대구를 기준으로 크게 두 갈래였다. 영천 화북면~청송 현서면의 노귀재를 거치거나 안동에서 청송 진보면을 통하는 길이다. 이는 청송 파천면을 지나는 당진~영덕고속도로가 2016년 12월 개통하기 전까지 상황이다. 이제 청송 연고자나 관광객들이 청송을 가는 길은 사실상 하나다. 돌고 돌아가는 영천, 안동 코스 대신 중앙고속도로와 연결해 청송으로 차를 타고 달릴 수 있다. 군 소재지는 1시간 30분, 대표 관광지인 주왕산은 2시간 정도면 된다. 주왕산이 영천 쪽에 치우쳐 있지만 당진~영덕고속도로를 통하는 게 국도보단 더 빠르다. 고속도로의 괄시 못할 능력이다. 크게 바깥나들이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대구경북 사람이라면 청송과 한두 가지 인연을 쌓고 있을 것이다. 기자 초년 시절 신혼살림을 청송에서 차렸는데 약 2년간 주말부부로 열심히 청송을 다녔다. 영천에서 청송 가는 길 곳곳은 비포장 자갈길이었다. 진보~청송 국도가 당시 국회의원의 맨발 시위로 포장된 시절이었다. 열악한 도로 사정에도 청송의 잘 알려진 관광지뿐만 아니라 골짜기까지 참 많이 다닌 기억이 있다. 젊은 시절에 흠뻑 젖은 청송의 아름다운 자연이 경상북도 도청 이전과 고속도로 개통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 국제슬로시티인증, 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 개최, 청송민예촌 개관, 대명리조트청송 개장 등으로 청송의 브랜드 가치가 달라졌다. 지난해 4월 청송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는 제주도에 이은 국내 두 번째로, 내륙에서는 처음 이룬 쾌거다. 최근 광주 무등산이 포함되면서 국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은 세 곳이다. 청송군은 앞으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센터를 유치, 국내 세계지질공원의 거점화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지질공원센터를 유치하면 지질공원 조성과 홍보, 세계 각국 지질공원과의 국제협력, 해설사 양성 등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다. 유네스코 브랜드를 발판삼아 청송을 지질공원 교육도시, 국제협력 도시로 성장시킨다는 복안이다. 기존 청송을 대표한 사과와 주왕산도 업그레이드했다. 청송 사과는 지난달 24일 열린 '2018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 시상식에서 6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 주왕산은 인근 주산지, 얼음골 계곡과 함께 관광힐링 도시 청송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청송의 변신에는 지역민들의 부단한 노력 이면에 자치단체장의 남다른 의지가 있었다. 지난 10년간 군정을 이끈 한동수 군수가 큰 역할을 했다. 청송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쌓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 군수가 많은 일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 유무형 자산의 가치를 알고 효율적으로 잘 개발했다는 것이다. 한 군수는 기술직 공무원으로 대구시에서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굵직한 도시철도 건설 사업을 이끈 경험을 청송에 잘 접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낙후한 환경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이를 활용한 사업을 기획, 추진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홍보해 '청송의 힘'으로 만들었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치단체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자치단체장의 능력은 오롯이 지역의 힘이다. 비단 청송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한마음으로 능력 있는 지도자를 기대하고 있다. 지방 소멸의 우려가 점점 짙어지는데 새로 수장이 될 단체장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지역 발전에 대한 비전을 갖춘, 각오가 단단한 후보자들이 나서야 한다.

2018-05-16 00:05:01

[시각과 전망] 한반도 신경제, 포항 신경제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했다는 '한반도 신경제 구상' 자료에 관심이 쏠린다. 김 위원장이 회담에 임한 태도와 전후의 발언들을 볼 때 비핵화와 북한 체제 안전 보장이 이뤄지면 경제 발전에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중국의 덩샤오핑처럼 되고 싶어 하는 김 위원장은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처지다. '한반도 신경제 구상'은 문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공약한 '한반도 신경제 지도'를 구체화한 자료로 남북 간 경제 협력 방안을 담았다. 지난해 8월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펴낸 백서에도 '한반도 신경제 지도 구상'이 제시됐는데 3대 경제 벨트를 이어 H 형태로 개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부산~포항~원산~단천~청진~나선을 연결하는 '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 목포~수도권~개성공단~평양~신의주를 연결하는 '서해안 산업·물류·교통벨트', 'DMZ 환경·관광벨트' 등 총 3대 경제 벨트를 잇는 남북 공동 경제 개발 구상이다. 한반도 신경제 구상은 금강산 관광 사업과 개성공단 운영 정도에 머물렀던 남북 경제 협력 수준을 고도화하는 사업으로 북미 간 비핵화 합의와 평화 협정에 따라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가 풀릴 때에야 성사될 수 있다. 한반도 신경제 사업은 남북한의 경제를 연합화함으로써 동북아 전체를 평화와 경제 공동체로 묶어 전쟁 위협을 사라지게 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특히 성장 에너지가 떨어져 가는 남한이 북한의 경제 발전에 동참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원을 찾을 수 있고 이는 경북과 포항 경제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북한 시장은 남한 경제에 30년 이상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고, 특히 SOC 사업 시장만 봐도 북한의 도로를 남한 도로율의 70%까지 올리는데 1천52조원이 들어간다고 분석한다. 1천52조원은 1980년대 초반 중동 특수의 100배에 달하는 것이다. 또 러시아산 가스를 직접 들여오면 현재 가스비의 25% 수준에서 사용할 수 있고, 철광석 등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져올 수 있어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한다. 경북과 포항에는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재개된다면 러시아산 유연탄을 나진항을 통해 포스코 등으로 운송, 물류비의 10~15%를 절감할 수 있다. 포항∼나진·선봉∼러시아를 잇는 해상 운송로를 구축해 포항 영일만항을 중심으로 환동해 해양 물류 벨트의 구축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영일만항은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동해안 물류 핵심 항만으로 특화·육성되어야 하며 남과 북, 러시아를 잇는 크루즈 관광 사업의 거점 항구로도 필요성이 커진다. 또 올해 초 개통한 포항∼영덕 동해선 철도는 삼척을 거쳐 북한뿐만 아니라 시베리아까지 연결될 수 있다. 현재 공사 중인 포항∼영덕 고속도로도 강원도를 지나 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반도 신경제 사업은 남한과 북한의 경제를 획기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으며 경북도와 포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경북도는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대비해 도 차원의 사업 계획들을 점검하고 특히 포항시를 잘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영일만항 발전 계획을 좀 더 빨리 앞당길 수 있도록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2020년 개통 예정인 동해선 철도 영덕~삼척 구간, 2023년 완공 예정인 포항~영덕 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차질없이 해나가면서 동해고속도로 영덕~삼척 117㎞ 연장 사업도 당위성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2018-05-09 00:05:01

[시각과 전망] 포스코그룹 회장의 조건

포스코의 본사 주소는 포항이다. 서울 테헤란로에 번듯한 사옥이 있는데 정식 명칭은 서울사무소다. 하지만 포스코의 모든 결정은 서울사무소에서 이뤄진다. 당연히 회장과 주요 임원들은 서울에 상주한다. 이 때문에 국민들뿐만 아니라 포스코인들도 본사는 서울에 있다고 여긴다. 이러다 보니 역대 회장들은 포항을 '공장이 있으니 어쩌다 한번 들르는 곳'으로 인식했다. 권오준 현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다시 새 임기를 시작했지만 포항은 단순히 공장이 있는 곳으로 여겼다. 그런 그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서울의 언론인들을 대거 대동하고 지난 3월 30일 포항을 방문했다. 공장을 돌면서 자신의 업적을 세세히 설명한 그는 다음 날 열린 기념식에서 성대한 포부를 밝혔다. 사람들은 그가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킨 채 남은 임기동안 포스코를 의욕적으로 이끌겠다는 의지를 포스코 태생지 포항에서 대내외에 천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불과 18일 만에 회장직 사의를 밝혔다. 당연히 정치권과 기업 안팎에선 정권 외압설이 난무한다. 정권이 바뀌면 수장이 쫓겨난 포스코의 흑역사가 어김없이 재현됐다고 본다. 포스코를 전리품으로 취급하는 정권이 문제라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포스코는 창립 이후 지난 50년 동안 박태준, 황경로, 정명식, 김만제, 유상부, 이구택, 정준양 회장에 이어 현 권오준 회장까지 8명의 회장을 배출했고, 이들은 모두 정권 교체를 전후해 불명예 퇴진했다. 권오준 현 회장 역시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퇴진설을 달고 다녔다. 그런데 시각을 조금만 달리해 보자. 과연 역대 포스코 회장들의 진퇴에 대한 책임이 정부나 정권에만 있을까. 포스코는 떳떳하고, 포스코 경영진은 당당했는데 정권이 무리하게 칼자루를 휘두른 탓일까. 기자가 포항에서 2년, 서울에서 3년을 근무하면서 직접 포스코인들을 만나거나 전해 들은 바를 종합하면 정치권력만큼이나 포스코 경영진에도 문제가 많았다. 핵심 임원들이 먼저 정치권력에 손을 내밀었거나 권력 뒤에 줄 선 정황은 너무 많다. 정기인사철이나 주주총회를 앞두고 임원들이 정치권 인사 사무실을 드나든다는 얘기는 내부 구성원이면 다 안다. 주요 보직자 선임에도 정치인들의 결재 아닌 결재를 받는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유력 정치인과 약간의 친분만 있다고 소문나면 속된 말로 포스코가 '알아서 기는' 일은 다반사다. 협력업체 경영진 선정 때도 내부 구성원들의 의사가 아닌 지역구 국회의원과 먼저 의논하는 것을 관행처럼 여겼다. '지역협력'을 명분으로 국회의원이 추천한 사람을 협력업체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포항 유지들 중 포스코에서 뭔가 이권사업 하나 챙기지 않으면 그 사람이 이상할 정도라는 냉소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방의원이나 정치인 중에도 포스코 협력업체를 소유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회삿돈 빼먹는 정치인보다 돈과 이권을 자진 상납하는 임원들이 더 나쁘다"는 직원들의 자조에 포스코 고위층은 어떤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까. 현재 서울에서는 사외이사들이 중심이 된 'CEO 승계 카운슬'이 본격 가동되고 있다. 빠르면 이달 중에 CEO가 결정될 수 있다. 새로 선임된 CEO의 사명은 막중하다. 정권의 압력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임원들의 정치권 줄서기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한다. 포스코는 특정 세력이나 정권의 소유물이 아닌 국민기업이다. 새 CEO가 국민 여망을 등에 업고서 서울사무소가 아닌 포항 본사에서 정치권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2018-05-02 00:05:00

[시각과 전망] 한국 좌파의 끝없는 위선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오해 중 하나가 보수 우파는 부패하고, 진보 좌파는 청렴하다는 말이다. 이는 좌파의 선전일 뿐 사실이 아니다. 진보=좌파, 보수=우파라는 인식 역시 합리적이지 않다. '우파=보수' '좌파=진보'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진보 좌파라는 사람들은 정의, 선, 따뜻한 공동체를 입에 달고 살지만 행동은 대체로 그 반대다. 그들이 말하는 정의, 선, 배려는 거의 언제나 타인을 향한 요구일 뿐 정작 본인들은 실천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파로 간주되는 사람들이 봉사와 성금, 선행으로 이웃을 보살핀다. 주변 20, 30명을 살펴보시라. 최근 논란이 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한국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창립 멤버이자 사무국장, 정책실장, 사무처장,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평소 타인의 잘못을 추상같이 비판했다. 국회의원이던 2014년 10월 그는 국정감사에서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에게 "지원을 받으려는 기업과 그것을 심사하는 직원의 관계에서 이렇게 기업 돈으로 출장 가서 자고, 밥 먹고, 체재비 지원받는 것, 정당합니까?"라고 따졌다. 그래놓고 자신은 피감기관인 한국거래소, 우리은행,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돈을 받아 중국, 인도, 미국, 벨기에, 이탈리아, 스위스로 출장 다니며 먹고 자고 썼다. 김 전 원장은 '청렴성'을 강조하는 시민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김영란법' 도입을 주도한 인물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9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수감되던 날 그는 손에 백합꽃을 들고 나타나 진실 운운했다. 백합의 꽃말은 '순결'이다. 이번 김기식 논란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가 '위법해석'을 내리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선거법을 손보겠다'고 겁박했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야당의 저질공세'로 몰아세웠다. 진보 좌파의 위선과 남 탓은 끝이 없다. 자기는 집 여러 채 갖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왜 그리 탐욕스럽나'고 하고, 상대가 댓글 조작한다고 비난하더니 정작 자기네들이 엄청나게 댓글 조작한 것이 드러나고, 제 자식은 특목고 보내면서 다른 사람 자식은 못 가게 한다. 교육감 후보로 나와 거액을 주고 후보 단일화를 했다가 발각되자 "선의로 줬는데, 편파 수사"라고 하고, 재판 중에 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지만, 2심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지사직을 상실하자 "강원도를 지켜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한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강원도가 무슨 상관인가? 며칠 전 '드루킹 여론조작 특검 도입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한 정당의 설문에 2천162명(전체 응답자의 91.3%)이 특검 도입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여론조작으로 이 난리를 치는 와중에도 거리낌 없이 여론을 왜곡, 조작하는 것이 한국 좌파다. 진보 좌파란 자들은 죄가 명백히 드러나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인 양 굴거나 남 탓으로 돌린다. 실체와 다른 이름, 다른 얼굴, 그럴듯한 명분으로 사회를 망치고 잇속을 탐하는 것이다. 하도 그럴듯해서 상당수 사람들은 막연히 '진실은 따로 있을 것'이라고 믿거나, '그들이 박해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들의 위선과 선전에 현혹되어 맹렬히 지지까지 한다. 오늘의 한국은 '자유와 책임, 노력과 성취, 선의와 자기희생을 우선하는 우파가 주류인 나라'가 아니다. 한국 우파는 '이념의 무임승차'가 끝났음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까지 거의 공짜로 사유재산과 평화, 노력과 성취,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왔지만 이제는 아니다. 우파의 가치가 무엇이며, 왜 한국 사회의 주류이어야 하는지 공부하고 또 전파해야 한다. 한국 우파는 그 일에 소홀했고 그 사이 좌파들은 집요하게 선전전을 펼쳤다. 그 결과가 작금의 한국이다.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파의 가치와 실체를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 꽃 같은 우리 젊은이들이 진창을 울면서 걸어야 한다.

2018-04-25 00:05:00

[시각과 전망] 왜 자연인을 꿈꾸나

인간은 아주 넉넉잡아도 100년을 살기 어렵다. 다른 세상을 가보지 않아 모르고, 뚜렷한 종교관도 없어 내세의 의미도 모른다. 다만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행복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뭘 해도 불행의 그림자 속에 놓여 있다. 행복의 순간은 짧고 불행의 시간은 길어 보인다. 훌륭한 삶을 산 성현들도 불행의 고통에 번민했음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방황하던 고교 시절 학교를 그만두고 절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다. 어머니로부터 가톨릭의 영향을 받았지만 성당보다는 불교와 절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때 스님이 되었다면 나의 삶은 어떠했을까. 속세에서 벗어난 구도자의 길을 가고 있을까. 아니면 세상과 더불어 사는 대중적이거나 정치적인 종교인으로 살고 있을까. 사이비 교주가 돼 비난받고 있지는 않을까. 기자로 밥벌이하면서도 사회에서 헌신하거나 구도자의 삶을 사는 종교인에 대한 선망이 있었다. 보통 사람보다 더 세상에 찌든 종교인들을 알게 되면서 순수했던 바람은 오래전에 깨어졌다. 사람들은 왜 그들을 존경하고 대접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는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기 때문이다. 결혼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인 성(性)에 대한 욕구를 자연스럽게 없애는 수단이다. 또 동물의 본성인 종족 번식, 즉 자식을 낳아 대를 잇는 방법으로 중요시했다. 이런 욕망을 단절하고 살아간다는 건 무척이나 어렵기에 사제와 스님을 경외하는 게 아닐까. 아들, 딸이 다 자란 요즘 머리 안에는 어떻게 '자연인'이 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자연인은 일부 중장년 남성들의 꿈이다. 주위에는 자연인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을 고정적으로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다. 장년에서 노년을 향해 달리는 50대 중반의 또래들이다. 이들은 직장 생활을 마무리한 뒤 제2의 삶을 자연인으로 보내고 싶어한다. 애초 자연인을 다룬 프로그램은 세상과 단절하고 홀로 사는 사람들에 집중했지만 요즘은 성공한 삶을 보내고 자연에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그리고 있다. 왜 자연인이 되려고 하는가. 종교인의 삶에 가장 근접한 점을 그 이유로 꼽고 싶다. TV 속 자연인들은 하나같이 개인 욕망과 사회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자유인으로 자연과 함께 살고 있다. 이 속에는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여성으로부터의 도피도 포함돼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듯 여성이 좌우하는 삶에서 탈피하려는 남성도 많다. 나이 들어 저지를 수 있는 세상의 추잡함에서 탈출하는 수단으로도 자연인은 훌륭한 선택이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미투 운동'으로 비난받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노욕이 꿈틀대고 있다. '미투 운동'으로 남성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말부부라 안동에서 다세대주택에 살고 있는데 주로 거주하는 젊은 여성들과 마주칠 때는 먼저 피한다. 따라가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고, 좁은 복도에서 부딪힐 수도 있기에 근본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업무로 여성들을 상대할 때는 스스로 말조심할 것을 다짐한다. 그나마 기자 세대는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 여성 위에 군림하고 살았기에 덜 억울할 수도 있다. 세상이 달라졌음을 인정해야 하지만 요즘 결혼한 젊은 남성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부인을 하늘 같이 떠받드는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도 없고 아예 결혼할 수도 없는 세상인 것 같다. 그렇지만 혼자 사는 자연인이 되기는 쉽지 않다. 종교인이 되려는 각오가 필요해 보인다. 엄청난 용기가 뒤따라야 한다. 자연인의 삶을 꿈꾸면 좀 더 일찍 자연에 뛰어드는 게 좋다고 하는데…. 언제쯤 욕망과 욕심을 내려놓을까?

2018-04-18 00:05:00

[시각과 전망] 왜곡된 정보 유통, 바로잡을 때 됐다

신문업 종사자 이외는 잘 알지 못하지만, 1896년에 독립신문이 창간된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기념한다. 신문업계 내외부에서 충분히 축하할 날이지만, 위기에 빠진 신문산업의 현실이 예전과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문산업은 IT의 발전으로 부침이 심했던 다른 업종들처럼 지난 20여 년간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과거에 종이 신문을 보던 많은 독자가 이제는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접한다. 신문산업이 위축되는 동안 네이버 등 포털업체가 정보 유통 시장을 장악, 독점적인 지위를 구축했다. 신문사들은 독자층이 줄어들어 주로 고령층 위주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종이 신문을 발행하면서 포털사이트에 뉴스를 공급하는데 뉴스 사용료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정보 유통의 거대 공룡이 된 포털 업체들은 뉴스의 90% 이상을 신문사에서 받으면서 이익의 10%도 안 되는 금액을 지불하고 있다. 네이버는 2017년에 1조1천79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언론사에 보전해 준 금액은 1천억원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화 시대에 정보를 공급하는 신문사들이 어려움에 빠지는 아이러니가 생겨났고 포털에 사로잡혀 종속된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나 성공의 찬란한 햇살 뒤에 독점과 문제점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포털업체 스스로는 언론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뉴스 편집을 하며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고 있다. 포털을 언론으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는 포털업체들이 뉴스 편집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해 언론이 아니도록 자리매김하는 게 맞다고 본다. 네이버와 다음 등 국내 포털은 특정 기사를 클릭하면 자사가 편집한 기사를 포털상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인링크와 언론사 홈페이지로 넘어가 기사를 읽을 수 있는 아웃링크 방식을 모두 사용 중인데 인링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계적 포털인 구글이나 중국 1위 포털 바이두 등은 아웃링크 방식만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 포털의 뉴스 배치나 댓글 운영 방식으로 포털 뉴스가 매우 비대하며 포털은 언론사들의 갑이 돼 버렸다. 포털업체들이 클릭 수 증대를 위해 인위적인 편집을 하며 그 때문에 공정성 시비가 불거지게 되므로 인링크 방식은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유한국당 등 정치권에서 인링크 원천 차단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반드시 입법화해야 할 것이다. 가짜 뉴스와 댓글의 폐해도 심각하다. 선동적인 가짜 뉴스와 댓글에 누리꾼들이 많이 몰릴수록 광고 수익도 늘어나기 때문에 포털은 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댓글 기능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네이버와 다음 등은 오히려 포털 규제가 필요하다는 일련의 논의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명백한 가짜 뉴스나 인권을 침해하는 댓글이 사회와 구성원에 끼치는 해악을 생각한다면 억지 주장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포털이 가짜 뉴스와 댓글을 방치할 게 아니라 자율 규제를 강화하고 문제가 된 댓글들에 대해 고소·고발 조치를 하는 등 더 적극적인 자정 작용을 하도록 해야 한다. 지난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올해 신문의 날 기념 세미나가 열렸다. 신문산업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신문산업을 사기업의 영역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서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개진됐다. 이를 위해 포털 수익의 일정 부분을 미디어기금으로 출연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내용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 오래 누적된 정보 유통의 왜곡된 독과점 질서를 바로잡는 데 나서야 한다. 나아가 지방분권 시대를 맞아 지방 여론을 살리기 위한 지방 언론 육성과 지원에 관한 법'제도적 지원, 신문 시장에서 중앙 전국지의 독과점 여부를 살피고 규제하는 작업도 검토할 때가 됐다.

2018-04-11 00:05:00

[시각과 전망] DGB금융그룹 수장의 조건

박인규 전 대구은행장 겸 DGB 금융그룹 회장이 여론의 반발을 수용, 회장직에서도 전격 사퇴하면서 대구은행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만신창이가 됐던 은행이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은 다행이다. 대구은행의 환골탈태를 바랐던 은행 구성원들과 지역민들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동시에 지배구조 개편과 후임자 선출에 따른 파장이 얼마나 클지에 기대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현재 거론되는 지배구조 개편 문제가 거창한 것 같지만 결국 후임자 선출 방식으로 귀결된다. CEO에게 지주회장과 은행장을 동시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분리할 것인지의 문제다. 금융지주사 체제를 운용하는 곳 중 회장과 은행장이 통합된 곳은 DGB금융지주뿐이다. 금융당국도 분리를 선호한다. 거기다가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이 제왕적 회장 체제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사람들은 회장'은행장 분리론에 동조한다. 그러나 회장과 은행장을 분리한 금융지주사들과 달리 DGB는 은행의 비중이 90% 이상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 국내 은행권 운영체제를 볼 때 금융지주제에서는 회장의 권한이 절대적이고 은행장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다. 과거 단일 은행으로 치면 행장과 수석부행장 정도의 구조로 이해하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 회장과 은행장을 분리하면 규모가 작은 DGB의 경우 두 사람 간의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 조직을 화합시키려고 만든 구도가 자칫 더 큰 분쟁을 나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안의 본질은 회장에 어떤 인물을 앉힐 것인가다. 일부에선 회장과 은행장을 분리한 뒤 은행장은 내부를 잘 아는 DGB 출신이 맡되, 회장은 현 정권과 교감하는 인물을 서울에서 모셔오자는 주장을 한다. 낙하산을 자청하는 구조다. 부산의 BNK가 그렇게 했으니 DGB라고 못할 게 없다는 것이다. BNK 회장 경우 지난해 9월, 선임을 앞두고 부산은행은 물론 부산 경제계, 시민사회단체까지 나서서 반대했던 인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으로, 현 정권과 교감할 수 있는 부산 출신의 대표적 금융인이라는 점 때문에 결국 반발이 무마됐다. 은행은 물론 부산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DGB는 상황이 다르다. 대체 재경 대구경북 출신 어느 금융인이 현 정권 핵심과 연결돼 있다는 말인가. 서울에서 파악한 바로는 핵심은커녕 주변인이라도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 없다. 있지도 않은 인물을 어떻게 만들어서 모셔오자는 주장인지 모르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특정 조직이나 지역의 순혈주의가 동종교배를 초래해서 결국 둥지를 망치고 만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대구은행의 경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전'현직 임원들이 있다. 회장 권한대행과 은행장 권한대행을 맡은 김경룡'박명흠 등기임원, 차기 유력주자로 부상했다가 지난 연말 부당하게 내쳐진 노성석'성무용'임환오 전 등기임원,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생명'캐피탈'신용정보'유페이 등 자회사 사장단의 면면에서 은행의 미래를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은행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니 이들을 제쳐두고 외부 인사를 모셔 와서 역할을 맡겨보자는 발상은 지나치게 유아적이다. 은행은 안중에도 없고 본인들의 이해득실로만 판단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DGB금융지주 사외이사 5명의 역할은 엄중하다. 조해녕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전 대구시장), 하종화 세무법인두리회장(전 대구국세청장), 이담 대구변호사회 회장, 서인덕 영남대 명예교수, 전경태 계명대 명예교수 등인데, 이들로 임원추천위원회가 구성된다. 임원추천위원회는 회장뿐만 아니라 은행장도 사실상 결정하는 기구다. 심정지 상태였던 은행에 심폐소생과 수술을 하는 역할이 동시에 맡겨졌다. 지역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외이사들이 어떤 결정을 하는지에 대구은행과 지역 경제의 미래가 달렸다.

2018-04-04 00:05:00

[시각과 전망] 대통령 개헌안 한참 부족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개헌안을 발의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거의 전부가 하야, 피살, 수감, 자살, 탄핵 혹은 가족과 측근 비리로 엉망이 됐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다수 국민들이 '개헌'을 원했던 것은 '권력을 분산해 제왕적 대통령의 비극을 끝내자'는 공감에서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 개헌안에서 권력 분산 의지를 찾기는 어렵다. 청와대는 개헌안에 대해 '대통령 권한을 상당히 내려놓았다'고 자평한다. 정부 형태는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4년 1회 연임'이 가능토록 했고,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하는 부분을 삭제했다. 총리에 대해서는 헌법 제86조 2항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는 조항 중 '대통령의 명을 받아'라는 문구를 삭제해 책임총리 구현에 힘을 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통령 사면권 축소, 감사원 독립기관화, 국회 예산 심의 강화, 헌법재판소장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 삭제 등을 권한 내려놓기로 든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제왕적 대통령은 안 된다'는 국민 요구와 거리가 멀다. 검찰총장, 경찰청장, 감사원장, 국정원장 등 권력기관과 대법원장, 국무총리 등 사법부와 행정부 수장에 대한 대통령 인사권은 문 대통령 개헌안에 그대로 있다. 9인의 감사위원을 국회, 대통령, 대법관 회의가 각 3명씩 선출 또는 지명하도록 하고 있지만, 대통령과 대법관 회의 몫 위원이 6명(과반)이라는 점에서 별로 달라진 것도 없다. '대통령의 국가원수 지위'를 삭제한 것은 '수식어'(修飾語)를 줄인 것일 뿐 권한 내려놓기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라는 문구를 삭제한 것이 '국무총리 권한 강화'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총리와 장관 인사권을 대통령이 갖고 있는데, 총리가 어떻게 자기 소신대로 한단 말인가. 소신대로 하다가 대통령과 갈등이 생기면 바로 잘린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이회창 책임총리'는 소신대로 하다가 4개월 만에 사퇴했다. 대통령제에서 '총리'의 존재 자체가 기형이다. 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임기와 권한을 보장하는 부통령이 옳다. 당장 그것이 어렵다면 국무총리에게 임기 보장과 국무위원 제청 권한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개헌안에 그런 조항은 없다.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장관)을 겸직하는 것 역시 그대로다. 국민이 선출한 '입법부 대표자'가 '대통령의 참모'가 되어 행정부 업무에 매달리는 게 말이나 되나.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그래서 '제왕'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제에서 '국회의 국무총리 선출'이 삼권분립에 위배되듯이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장관)을 겸직하는 것 역시 삼권분립 위반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은 인사권, 검찰권 등에서 거의 왕 같은 권한을 가진다. 대통령들이 퇴임 후 수난을 겪는 것은 재임 시절 인사권과 검찰권을 독점한 탓에 견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이번 개헌안은 '제왕적 권력 내려놓기'와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일반 법률안과 달리 국회에서 수정할 수 없다. 그대로 수용하거나 부결해야 한다. 개헌안이 가결되려면 현 재적의원(293명)의 3분의 2인 196명이 동의해야 하니 국회 통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결국 여야가 국회 개헌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바람에 여당은 난처하게 됐지만, 도리 없다. 여야는 적어도 대통령 개헌안보다는 권력 분산이 훨씬 크게 이루어지는 개헌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이 비극의 반복을 막을 길이 없다. 더불어 국회가 사사건건 행정부의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대안도 내놓아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인사권과 검찰권에서 제왕 같은 권력을 누리는 반면 정책에 있어서는 국회가 거의 제왕 같은 힘을 갖고 있다. 대통령은 칼만 휘두르고, 국회는 발목만 잡으면 누가 일을 하나.

2018-03-28 00:05:00

[시각과 전망] 비운의 은메달리스트 김보름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낳은 최대 비운의 주인공은 김보름일 것이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영광스러운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그는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온몸으로 떠안았다. 여자 팀추월 예선 경기에서 빚어진 '노선영 왕따 주행 논란'은 그의 창창한 삶 전체를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25세 젊은 여성이 안고 가기에는 너무 버겁다. 그와 뒷바라지한 어머니가 입원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논란이 된 경기 당일 TV 중계가 끝난 뒤 기자는 20대 후반의 아들과 김보름의 플레이를 놓고 때아닌 설전을 했다. 김보름의 페어플레이 실종을 지적하는 아들의 목소리에 스포츠 논리로 김보름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꽤 오래 언쟁을 했다. 당시 TV 카메라에 담긴 경기 장면과 노선영의 골인 후 울먹이는(?) 모습, 중계 캐스트와 해설위원의 격앙된 질타, 김보름의 인터뷰 태도는 경기 전후의 사정을 모르는 시청자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비쳤다. 언론 뉴스와 짧게 편집돼 SNS로 퍼진 영상은 국민적인 공분으로 이어졌고 역대 최고인 6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낳았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사태 초기 단계부터 김보름을 두둔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김보름의 인터뷰 태도에 문제가 있었지만, 전후 사정을 들여다보면 억울한 점이 많다는 반론이었다. 소신을 밝힌 기자들은 기사 댓글 등을 통해 김보름 못지않게 엄청난 욕을 먹었다. 스포츠 현장을 오랜 기간 누빈 기자의 경험상 김보름의 처지를 반영한 이들은 올림픽이란 스포츠 자체로 경기를 봤다. 인터뷰는 개인적인 행동으로 보고 판단의 비중을 낮췄다. 김보름은 세계 최고 선수들만이 참가하는 올림픽의 0.1초를 다투는 종목에서 최선을 다해 질주했다. 3명으로 짜인 팀의 맨 앞에서 홈그라운드 팬들의 열광적인 함성 속에 온 힘을 다해 스케이팅했다. 골인 지점을 향해 마지막 스퍼트를 했고, 막내 박지우는 처지지 않고 따라붙었다. 다만 언니 노선영은 훈련 부족 등으로 뒤처졌다. 노선영이 후배들을 제대로 따라왔다면 4강에 오를 수 있었다. 이게 경기 상황이다. 팀추월이란 경기의 특성을 들며 왜 함께 들어오지 않았느냐는 게 논란의 근거 중 하나인데 이는 해석의 차이이다. 정확한 해석도 아니다. 앞선 대회에서 노선영이 먼저 들어온 일도 있었고, 다른 팀의 경기에서도 이런 모습은 있었다. 무엇보다 3명이 사이좋게 나란히 골인한 팀추월 순위 결정전의 기록은 왕따 주행 논란을 일으킨 예선 때보다 더 좋지 않았다. 메달을 따려고 4년을 준비한 올림픽에서 전력 질주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김보름이 일방적으로 비난받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김보름이 매스스타트에서 투혼을 발휘하며 은메달을 획득하고, 일부 언론을 통한 노선영의 여론몰이 등 전후 과정이 확인되면서 상황은 확 달라졌다. 김보름 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스포츠를 보는 우리 국민의 수준에 문제가 있다. 엘리트나 프로 스포츠는 경쟁과 돈이란 도박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기에 관객들은 대리 만족을 추구한다. 또한 기록과 결과를 점치며 자신과 싸움을 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가 간 경쟁을 하는 메이저대회에선 애국심이란 요소가 추가된다. 이 때문에 스포츠를 냉정히 보기는 쉽지 않다. 전문 기자들도 이해관계에 따라 춤을 추곤 한다. 김보름 논란은 TV 중계와 영상을 본 관객의 순간적인 감각에 의해 빚어진 사태다. 이를 유발한 언론의 잘못이 크다. 막무가내식 언론 보도와 마녀사냥 같은 철부지 국민청원, 냄비 근성은 익명의 온라인시대를 맞아 악화일로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국민성으로 대변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허탈하다.

2018-03-21 00:05:00

[시각과 전망] 미투와 지방선거

6·13 지방선거를 3개월가량 앞두고 '미투 운동'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충격적인 '안희정 추문'에 이어 정봉주 전 의원, 민병두 의원 등도 '미투 바람'에 휩쓸렸다. 해당자들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어서 메가톤급 악재가 됐고 자유한국당에는 그만한 반사이익을 안길 수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좌파가 더 많이 걸리면 좋겠다"고 말한 것은 그 발언의 저열성을 제쳐놓고라도 그러한 속셈을 드러낸 것일게다. 미투 운동의 가시권 내에 여야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 것이며 이를 두고 선거의 유불리를 따지는 일은 정치의 본질을 외면하는 얄팍한 처사일 뿐이다. 피해자들의 아픔을 감싸 안고 더는 '권력형 성범죄'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정치권 전체의 의무이다. '미투 운동'은 거대한 해일처럼 휘몰아치고 있으며 혁명적 단계에 이르고 있다. 사회 각 분야 권력 구조 속에서 어둡고 상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졌으며 친근감 있고 존경받았던 유명인들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냈다. 평범한 사람들도 권력형 성범죄의 덫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성의 지위가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실상은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현실이 버젓이 존재한다. '미투 운동'은 이처럼 일그러진 사회 구조를 뒤엎으려는 여성들의 거센 저항이다. 당황한 남성들이 여성들과 접촉을 최소화하는 해법을 찾고 있다는데 이는 조직 내에서 여성들을 따돌리는 또 다른 성차별임을 알아야 한다. '미투 운동'은 '촛불 혁명'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촛불 혁명은 최고 권력의 불법에 대항해 떨쳐 일어났으며 공평과 공정, 정의를 지향했다.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두고 여론이 들끓었던 것도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며 그러한 사회의식은 언제든 살아 숨 쉰다는 점을 보여줬다. 권력형 성범죄 역시 부당한 갑을 관계에서 빚어지는 불평등과 불의 속에서 일어난 불법으로 '미투 운동'은 여성들이 이에 더는 숨죽이고 지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촛불 혁명을 통해 새 시대를 연 우리 모두는 '위드 유'로 연대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어머니, 아내, 누이, 딸들이 양성평등, 성차별 철폐의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손잡고 나가야 한다. '안희정 추문'이 터졌지만 그렇다고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오르지도 않는다. 상대 악재에 반사이익을 얻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자신의 가치가 빛을 발해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의 연루자가 어느 정당 소속인지가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미투 운동'에 대해 어떤 자세로 대처하는지 보고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당이 홍 대표의 발언에서 보듯 이를 선거에 유리하게 이용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민주당의 악재에 대한 반사이익조차 챙기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은 국정 농단 사태 이전의 총선에서 얻은 의석 수로 제1야당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후 국정 농단에 대한 반성 없이 쪼그라든 지지층에 연연해 극우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투 운동'처럼 더 나은 국가를 갈망하는 흐름을 읽고 진정한 보수 정당으로 쇄신해야 지지율을 높일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번 지방선거와 차기 총선은 보수 정당들의 앞날에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될 터인데 한국당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암울한 결과를 받아들 수 있다. 민주당은 미투 악재에 부딪혔지만, 북핵 위기를 헤쳐나가는 문재인 정부의 성과에 힘입어 지지도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대구경북에서도 전에 없이 후보들이 많이 나오고 한국당과의 지지율 격차도 좁혀지는 등 좋은 분위기를 타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대구경북에서 더 좋은 인재들을 발굴하는 등 공을 들여야 제대로 된 교두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018-03-14 00:05:00

[시각과 전망] 안희정 사태가 몰고 올 후폭풍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그의 평생 은인이었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안희정 당시 국정상황실장이 저녁 자리를 같이했다. 그때 대통령이 안 실장에게 "정치하지 말고 농사를 지으라"고 했다. 안 실장은 대답없이 눈만 껌뻑거렸다. 다음 모임에서도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대통령의 말과 표정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2013년 출간된 '강금원이라는 사람'에 나오는 대목이다. 우여곡절 끝에 복역을 했던 안희정은 출소 이후 모시던 주군의 진정 어린 권유에도 불구하고 정치 행보에 나섰고, 재선의 충남도지사가 됐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는 국민 화합의 아이콘으로 우뚝 섰고 성공한 정치인이 되는 듯 보였다. 그런 그가 하룻밤 사이 성폭행범으로 전락했다. 민주당은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그를 출당'제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런 사태를 예견했던 것일까. 5일 밤 뉴스를 시청했거나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를 지지했건, 싫어했건 국민들은 믿고 싶어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그는 진영 논리를 떠나 국민들을 어루만질 수 있는 '따뜻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심어줬다. 그래서 그의 추문을 전해 들은 사람들 다수의 반응은 처음엔 "정말이냐"는 것이었다. 사실임을 확인하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환멸로 분노하고 있다. 그의 정치 인생은 이제 막을 내렸다. 6일 도지사를 사퇴한 그가 재기할 가능성은 단언컨대 제로다. 충남경찰청이 성폭행범으로 수사를 시작했으니 그는 어쩌면 차가운 감방 신세를 져야 할 수도 있다. 진보가 외견상 내세우는 가장 큰 덕목은 정직과 도덕성이다. 진보 진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수 쪽보다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 안희정은 진보가 더 깨끗할 것이라는 국민들의 인식에 난도질을 해버렸다. 차라리 극좌나 극우 진영 인사였다면 '사회의 일탈자니까'라며 일말의 이해라도 했겠지만 그는 좌우를 보듬을 수 있는 포용적 인물이어서 상실감이 더 크다. 안희정이라는 대형 재료로 인해 3개월 뒤 지방선거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으로 흘러가게 됐다. '자유한국당 필패' 분위기의 급격한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안희정을 내세우며 민주당 간판을 달고 충남도지사 선거운동을 하던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이 6일 선거운동 잠정 중단을 선언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5일까지도 '안희정의 친구'가 당선의 바로미터였는데, 불과 몇 시간 뒤 '분노'로 바뀔 조짐을 감지한 것이다. 이는 비단 충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전국적 사안으로 급부상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지지율에도 엄청난 악영향이 예상된다. 홍준표 대표가 대학 시절 '돼지 발정제' 얘기를 했다고 해서 그가 이끄는 자유한국당을 향해 성추문정당이라고 매도했고, 그로 인한 반사이익을 지지율로 보상받은 게 민주당이다. 그런 정당의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이 현직 도지사 지위를 이용해 수행비서를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해왔다. 행사장에서 미투운동 지지 발언을 한 당일 저녁에도 거부하는 비서에게 몹쓸 짓을 했단다. 최고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의 정점에서,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을의 항거가 불가능한 것을 알고서 저지르는 갑의 성폭력은 가중처벌돼야 한다. 이제 미투운동은 정치권으로 향하고 있다. 여의도에는 안희정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프로들이 많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국회의원을 지낸 작가 전여옥은 "그들은 아마 쉴새 없이 머리를 돌리며 '성폭력이 아니라 성매매였다'는 대사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다시 국민들에게 상실감을 안겨줄 자들이 얼마나 나올 것인가. 안희정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언을 들었더라면 이렇게 나락에 떨어지는 일은 없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2018-03-07 00:05:00

[시각과 전망] 세계 최고 텃밭도시를 꿈꾸며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집에는 마당이 있었다. 마당은 평소에는 비어 있고, 딱히 기능이 규정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기능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마당에서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었다. 손님이 많을 땐 멍석을 깔고 밥상을 내놓으면 식당이 되고, 무더운 여름밤에 멍석을 깔고 홑이불을 덮으면 침실이 되었다. 비어 있기에 언제든,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도시 주택의 '정원'과는 다르다. 도시 주택의 정원이 대체로 관상수(觀賞樹), 관상초, 관상석을 채운 '관상공간'이라면, 마당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일터이자 놀이터였다. 닭들은 마당에서 모이를 쪼았고, 아이들은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를, 어른들은 빨래를 널어 말리거나 새끼를 꼬고, 고장 난 농기구를 고쳤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햇볕에 까슬까슬 마른빨래, 철 따라 새끼를 꼬고 이엉을 엮는 손놀림에서 이웃들은 그 집안의 무탈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당은 집주인의 사적 공간인 동시에 공적 공간이었다. 괭이를 들고 밭으로 나가던 이웃이 불쑥 들어와도 내 공간을 침입당했다는 거부감이 들지 않는 장소, 방물장수가 예고 없이 들어와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을 펴놓고 집주인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집집마다 마당이 있었기에 동네 사람들은 이웃에 어떤 손님이, 무슨 일로 왔는지, 그 집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까닭에 마당은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는 동시에, 지켜주는 안전장치였다. 아파트는 물리적으로 옆집과 붙어 있지만, 이웃을 철저히 차단한다. 옆집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해도, 노인이 홀로 세상을 떠나도 모른다. 아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아무도 모른다. 도시 주택도 마찬가지다. 비록 그 집에 마당이 있다고 하더라도 높은 담과 철조망, 철 대문에 둘러싸인 마당은 이미 '마당'이 아니다. 안전을 위해 높은 담과 철 대문을 둘렀는데, 안전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위태로워 진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 한국의 도시인들이 집집마다 마당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낯모르는 방물장수가 우리 집에 불쑥 들어오게 허락할 수도 없다.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다고 해서 온갖 편리와 사생활을 포기하기도 어렵다. 이웃이 우리 집 밥숟가락 개수까지 꿰고 있다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도시 텃밭은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마당'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농약을 치지 않은 건강하고 신선한 야채를 먹을 수 있고, 푸드 마일리지와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음식물 쓰레기는 좋은 퇴비가 된다) 아파트라면, 주차면적 확보하듯 텃밭을 확보해보자. 전체 주차면적의 10분의 1 정도만 할애해도 상당수 입주가구가 작은 텃밭을 가꿀 수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텃밭에 들르기만 해도 신선한 야채를 듬뿍 얻을 수 있고,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웬만큼 몸을 움직여도 좀처럼 땀이 나지 않는 노인들도 햇볕 쏟아지는 텃밭에서는 쉽게 땀을 흘릴 수 있고, 가족 외에는 이웃을 모르는 아이들은 마을과 공동체를 알게 된다. 단독주택이라면 이웃집과 우리 집을 가르는 담을 허물면 된다. 폭 30, 40㎝쯤 되는 담을 허물어 생기는 공간을 이웃과 반씩 나눠 텃밭을 가꿔 보시라. 이웃의 얼굴을 마주 보며 멀뚱하게 있자면 불편하지만, 각자 텃밭을 가꾸면 불편함 없이 마당을 회복할 수 있다. 담이 막고 있을 땐 바로 옆집조차 알 수 없지만, 담을 허물고 텃밭을 가꾸면 서너 집 건너까지 인사를 나누게 된다. 봄에 내가 이웃에 상추와 근대를 건네면, 이웃은 가을에 내게 들기름을 건넬지도 모른다. 주택의 담을 허물어 텃밭을 가꾸면 집집마다 작은 마당이 생기고, 마당 있는 집들이 모이면 마을이 된다. 넘기만 하면 몸을 숨길 수 있는 담이 없으니 도둑은 설 자리를 잃는다. 텃밭으로 마을을 형성하면 노인은 덜 외롭고, 아이들은 더 안전해진다.

2018-02-28 00:05:00

[시각과 전망] 누가 컬링을 즐기나

스포츠가 지닌 최대 무기는 열정과 감동이다. 이는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어김없이 전해지고 있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을 제외한 대다수 종목이 우리에겐 어색하지만 현장 관람과 TV 중계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묘미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생소한 종목이었던 컬링은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외신 등을 통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의성을 본거지로 한 경북체육회 팀이 컬링 세 종목의 태극마크를 독차지하고 있기에 지역민들의 시선은 더 뜨겁다. 지난 19일 월요일 오전 9시 경기로 펼쳐진 한국과 스웨덴의 여자 경기를 휴대전화로 시청했다. 같은 시간 인터넷 접속 건수가 3만이나 됐다. 프로야구나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서나 볼 수 있는 수치다. 국내 프로축구 경기의 접속자 수가 많아야 수천 명인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관심이다. 올림픽 이전 인터넷으로 컬링 경기 중계를 찾아본 사람은 100명을 넘지 않았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18일 경기를 관람한 뒤 페이스북을 통해 "컬링 팬이 됐다"고 할 정도로 컬링은 평창올림픽을 통해 상한가를 치고 있다. 이런 열기는 한국 컬링대표팀의 선전 덕분이다. 대표팀은 이미 가진 것 이상의 실력을 발휘했다. 믹스더블팀은 2승 5패를 기록, 6위로 경기를 마쳤다. 남자팀은 올림픽 첫 출전에 종주국 영국을 상대로 첫 승리를 맛보는 등 3승을 챙겼다. 여자팀은 목표한 메달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컬링의 도입, 발전 과정과 현실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컬링을 즐길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비인기 종목인 컬링을 국내에 보급하고 평창올림픽 대표팀을 발굴·육성한 데에는 김경두 경북컬링협회 전 회장의 희생이 있었다. 김 전 회장은 가족과 친구를 앞세워 처절한 홀로서기로 지금의 영광을 일궈냈다. 김 전 회장의 아들(김민찬)·딸(김민정)·사위(장반석)는 선수와 감독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하고 있으며 친구인 오세정 현 경북컬링협회장은 아들(오은수)을 국가대표로 두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을 때 컬링을 개척했다. 레슬링 선수 출신인 그는 1990년대 초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컬링의 미래를 점치고 보급에 나섰다. 영어 원서 번역으로 컬링을 공부한 뒤 선진국을 찾아다니며 기술과 인프라를 연구했다. 이렇게 해서 국내 첫 컬링전용경기장인 경북컬링훈련원이 2006년 탄생했고, 이를 기반으로 현 국가대표팀이 성장했다. 그 과정은 험난했고, 지금도 가시밭길이다. 컬링이 가족 스포츠란 점은 명확하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가족 팀은 비난거리였다. 선수가 없어 아내와 아들·딸, 친구와 그 가족을 동원했는데, 컬링이 전국체전 정식 종목이 되는 등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혼자 다해 먹는다"는 말이 돌아왔다. 지난해 대한컬링연맹 회장 직무대행을 맡아 올림픽 준비에 나섰으나 거센 방해에 시달렸다. 다른 종목과 달리 단일팀으로 선정되는 국가대표 세 자리를 경북체육회가 싹쓸이한 게 화근이었다. 회장 선거를 기한 내에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맹은 대한체육회의 관리단체가 됐고, 그는 징계받을 상황까지 몰렸다. 방해 세력과 대한체육회는 올림픽 준비보다 회장 선거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피해는 고스란히 대표팀에 돌아갔다. 올림픽 경기장인 강릉컬링센터의 개보수로 홈 어드밴티지를 누리는 사전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국가대표 훈련장도 시설 미비로 사용할 수 없었다. 관리단체이다 보니 다른 종목 대표팀이 누리는 올림픽 지원 프로그램은 그림의 떡이었다. 정부와 대한체육회는 컬링 발전의 훼방꾼 역할을 했다. 경상북도와 의성군은 의성컬링장 건립을 도왔지만 방관자로 머물러왔다. 대구시는 1990년대 컬링 개척자들의 대구 정착을 외면했다. '컬링 팬' 이낙연 총리는 국가대표팀의 선전을 시기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컬링장을 건립하고 컬링국제투어를 유치, 스포츠로 상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2018-02-21 00:05:00

[시각과 전망] '미투' 바람의 끝은?

포항시가 직장 여성 등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원더마마 서비스'는 긍정적이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시간당 5천원의 비용으로 2시간에서 최대 4시간까지 아동보호사가 자녀 하굣길을 동행하거나 일시적으로 돌봐준다. 제대로 운영한다면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하느라 고달픈 직장 여성들의 고충을 덜어줘 여성의 경제활동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등의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포항시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광역'기초자치단체들이 '여성 행복도시' '여성 친화도시' 등을 내세우며 밤늦은 귀갓길 동행 서비스, 출산'육아 지원 서비스 등의 정책을 시행 중이다. 여성 친화 정책은 '여성이 행복해야 남성도 행복해진다'는 모토를 담고 있다. '아내가 행복해야 남편과 자녀도 행복해진다'는 '가정의 법칙'을 사회 전체로 확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 여성들의 평균적인 행복도가 그리 높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 과중한 스트레스, 심한 빈부 격차 등으로 '피로 사회'라 할 만한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지 않은데 또 다른 고충을 안고 사는 여성들의 행복지수가 높을 수는 없다고 본다. 최근 여성 검사 성추행 피해 폭로로부터 촉발된 '미투' 바람에서 보듯 적지 않은 여성들이 성추행이나 성폭행의 그늘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검찰 진상조사단은 피해 사례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성범죄 혐의가 드러난 현직 부장검사를 긴급 체포했다. 문단에서는 원로 시인이 오랫동안 여성 시인들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터져 나왔다. 한 항공사 여승무원들은 회장의 성추행 문제를 거론했다. 지난해 미국 거물 영화 제작자의 성추행과 성폭행을 폭로한 할리우드의 '미투' 바람이 전 세계로 확산했고 국내에서도 '미투' 운동이 퍼져가고 있다. 사실 국내에서 수년 전부터 일종의 '미투' 운동이 제기됐으나 불씨가 살아나지 못하다 이번에 재점화됐다. 많은 사람이 '미투'에 동참했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군에서도 성추행 등 피해 실태 조사에 나섰다.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조직일수록 '미투'의 피해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군과 경찰에서는 이전부터 남성 상관의 성폭행에 시달리던 여성 하급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일어났다.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은 야만적 행위들이다. 군사 문화 잔재가 남아 있는 기업에서도, 영향력 큰 인물이 좌우하는 문화계에서도 이처럼 추잡한 행위가 만연했음이 드러났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했거나 그 정도일 줄은 몰라서 놀라운 일들이다. '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갑질' 중에서도 피해자의 영혼을 파괴하는 악질적인 범죄 행위이다. 가해자 스스로 크게 부끄러운 줄 알고 무거운 죄의식을 느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많이 높아졌다. 과거의 남존여비식 문화는 많이 사라졌으며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의 발언권이 강화됐다. 법적으로도 동등한 상속권을 보장받으며 여성들의 사회 진출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편으로 여성의 고위직 상승은 미약한 '유리천장' 현상이 뚜렷하며 조직 내의 성추행, 성폭행 피해가 끊이지 않는 등 이중적 현실이 여전하다. 언제부턴가 그릇된 '여성 혐오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 '미투' 운동은 단순히 가해자를 적발해서 처벌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처절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공공 조직이든 사기업이든 스스로 돌아보고 여성을, 인간을 존중하는 조직 문화로 바꿔나가야 한다.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딸 바보'들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딸과 누이, 엄마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나가야 한다. 여성에 대한 위압적 갑질을 없애고 양성 평등사회로 나아갈 때 사회는 더 행복해지고 국가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2018-02-14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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