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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진 문화부장

[시각과 전망] 밋밋한 일상에 리듬을 부여하는 소소한 일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서로 사랑하는 남녀(알프레도-비올레타)를 남자의 아버지(제르몽)가 억지로 떼어 놓는 이야기다.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남성 사교계 모임에 종사하는 여성이다. 어느 정도 지식과 교양을 갖춘 '화류계 여성'으로 보면 된다. 알프레도는 그녀를 사랑한다.오랜 연모 끝에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의 사랑을 얻고, 그녀와 동거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가 돌아서서 사교계로 다시 가버리자 '배신자'로 간주하며 모멸을 준다. 사실 비올레타가 알프레도 곁을 떠난 것은 '자신의 아들과 헤어져 달라'는 아버지 제르몽의 간곡한 당부 때문이었다. 이 오페라를 두 번 관람했는데, 그때마다 여주인공 비올레타를 안쓰러워했고,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라 트라비아타'를 세 번째 관람한 것은 작은 민간극장에서였다. 무대는 소박했고, 음악은 피아노 반주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날 공연에서 나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다.아들이 사교계 여성과 동거하고 있음을 안 아버지 제르몽은 그들의 거처를 찾아간다. 아들이 집을 비운 사이, 아버지 제르몽은 비올레타에게 아들 알프레도가 어린 시절 어떤 아이였으며, 지금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며, 아들이 장차 집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 주어야 하는지, 자신이 아들과 함께 바라보고 싶은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잔잔한 바리톤으로 노래한다. 그리고 부디 자신의 아들과 헤어져 달라고 당부한다.내게 그날 공연의 주인공은 비올레타나 알프레도가 아니라 아버지 제르몽이었다. 이전까지는 아버지 제르몽이 두 연인의 사랑을 방해하는 훼방꾼으로 보였는데, 그날은 비올레타가 아버지 제르몽의 삶과 사랑을 방해하는 훼방꾼으로 보였다.아버지 제르몽 역을 맡았던 바리톤의 노래와 연기가 워낙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내 아들이 이제는 소년이 아니라 청소년이고, 오래지 않아 어른이 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내 속에서 생겨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연인의 입장이 아니라, 아버지의 입장에서 공연을 감상했던 것이다.문학과 음악, 미술 등 예술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줄기(혹은 줄거리)가 아니다. 줄기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누구나 이미 아는 줄거리임에도 예술작품이 세월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견뎌내고 건재하는 것은 끊임없이 새롭게 탄생하게 하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감상하는 사람의 처지와 시선에 따라 하나의 작품이 다른 작품으로 거듭나는 것이다.어디에서나 창의성을 강조한다. 창의적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위험하다. 늘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것이 능사도 아니다. 그렇다고 같은 일상을 되풀이하자니 무기력과 우울감이 밀려온다.다행스럽게도 우리 곁에는 훌륭한 예술작품들이 있고, 인간에게는 하나의 작품을 여러 가지로 감상할 줄 아는 재능이 있다.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창조를 경험할 수 있다면, 밋밋한 일상도 얼마든지 리듬을 탈 수 있다. 19일(금)과 20일(토) 2018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폐막작 '라 트라비아타' 공연이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다. 이번 주말엔 리듬을 타보시길!

2018-10-16 14:30:55

김교성 경북본사장

[시각과 전망] 저가항공과 지방공항

마일리지가 소멸한다기에 회원 가입한 국내 양대 대형항공사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찾았다.예전 스포츠 기자로 활동하며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녔기에 마일리지가 꽤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직접 확인한 건 처음이었다.두 항공사의 마일리지 명세는 기대 이상으로 상세했다. 2000년 이전의 마일리지는 무관심으로 잃어버렸지만 2001년부터 사용한 마일리지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그런데 양대 항공사 이용 명세가 2014년 이후 뚝 끊겼다. 비행기를 타지 않은 게 아니라 국내외 저가 항공이나 외국 항공을 이용했기 때문이다.관심 없이 지나친 일이지만 항공사 이용 패턴의 큰 변화였다. 취재를 위한 장거리 해외 출장이 줄어들면서 휴가 개념의 단거리 해외여행이 많아진 것이다.자연스레 대구공항과 저가항공이 해외여행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티웨이, 에어부산, 제주항공 등 국내 저가항공, 외국계 저가항공이나 전세기를 주로 이용했다.이들 여행의 공통점은 대구공항 출발·도착이었다. 인천공항을 오가는 불편을 겪어봤다면 도심에 위치한 대구공항이 얼마나 편리한지를 알 것이다. 대구공항은 올해 사상 처음으로 이용객 400만명 시대를 열 것이라고 한다.대구공항을 이끄는 핵심은 저가항공이다. 티웨이항공은 대구공항을 거점 삼아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티웨이의 지난해 대구공항 점유율은 국제선 57%, 국내선 31%다.추석 연휴 전에 티웨이항공을 이용해 필리핀 세부를 다녀왔다. 귀국 길에 탑승한 상태에서 기체결함으로 운항이 취소됐다는 안내방송이 있었고, 다시 내려 탑승구역에서 대기하는 불편이 있었다.다행히 비행기는 3시간여 만에 수리됐고, 당시 필리핀 북부 지역을 강타한 태풍 '망쿳'을 피해 가는 항로 변경 끝에 아무런 사고 없이 돌아왔다.안전한 비행이었기에 감사한 마음이지만 대구공항을 주 무대로 하는 티웨이가 더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짚고 갈 게 있다. 돌발 상황에서의 대응 방법이다.비행기는 거대한 기계장치이기에 고장 날 수 있다. 날씨 등 천재지변도 피할 수 없다. 전문성이 없는 고객은 항공사 조치에 전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조치(안내 방송이나 현장 설명)는 항공사 신뢰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세부공항에서 티웨이의 조치는 기체결함으로 운항 취소되니 탑승구역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과 담요를 나눠주는 게 전부였다. 간접적으로 4시간을 대기한다는 말을 들었다.탑승객들의 항의에 부족한 담요를 이웃 항공사에 빌려 더 나눠준 게 추가 조치였다. 기장 등 승무원들과 직원들은 본사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고만 했다.이런 조치가 '고객님 사랑합니다'란 구호를 외치는 항공사의 매뉴얼일까. 현장에서 고장 수리에 따른 시간적, 단계적 조치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숨기고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일본과 태국 국적 항공사, 싱가포르 저가 항공 등을 이용하면서 고장 수리에 따른 지연 출발, 오버 부킹에 따른 피해를 본 적이 있는데 숙박과 위약금 등 적절한 피해 보상을 받았다. 조금 항의가 있었지만 자발적 조치였다.대구공항 활성화를 위해서는 저가항공이 더 발전해야 한다. 돈이 들지 않는 고객 서비스는 저가항공도 강화할 수 있다. 안내 서비스까지 저가항공 티를 낼 필요는 없다.

2018-10-09 11:51:54

김지석 동부지역본부장

[시각과 전망] 포항 재생사업, '팀 정신'으로 추진해야 의미 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포항 사람들은 주로 북포항우체국 앞에서 만났다고 한다. 대구 동성로의 대구백화점 앞이나 서울 명동의 롯데백화점 앞처럼 친구나 연인들을 기다리는 만남의 장소였다. 벽돌로 단단하게 쌓은 외관은 주위의 다른 상가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요즘처럼 하늘이 시리도록 맑고 푸른 날이면 우체국의 이미지는 윤도현의 서정적인 노래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떠올리게 한다.북포항우체국은 옛 포항역과 육거리 사이 중앙상가에 있다. 이 지역은 포항의 옛 중심지로 젊음과 활기가 넘쳤으나 2006년 이곳에 있던 포항시청이 옮겨가면서 쇠락했다. 옛 추억을 간직한 채 상인들의 한숨 소리가 커지다가 지난해와 올해에 구도심인 중앙동과 신흥동이 정부의 도시재생 사업 대상지로 잇따라 선정돼 기대가 부풀고 있다. 과거 해수욕장이 있어 인기 여름 휴양지였던 송도지역도 재생에 나서게 됐다. 또 지난해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흥해지역은 특별도시재생 사업지가 돼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게 됐다.중앙동 사업은 유휴시설과 공공기관 이전 부지에 청년 창업과 문화예술 허브 및 스마트 시티를 조성하기로 했다.신흥동에는 순환형 임대주택과 주민편의시설 조성, 마을기업협동조합 설립 지원 등을 통해 동네 공동체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송도지역은 차별화된 경제기반형 사업으로 막대한 사업비를 들여 'ICT 기반 해양산업 플랫폼' 조성, 첨단 해양레포츠 활성화, 해양 MICE 산업지구 조성, 복합문화예술관광 특화지구 조성 등 상전벽해 수준의 발전을 예고하고 있다.포항시는 풍부한 해양 자원과 전통문화, 산업화를 주도했던 경험과 잠재력을 바탕으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주민과 소통하면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포항시의 자세는 모범답안이 될 것이나 실제로 그렇게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재생 사업이 단순한 도시발전 사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포항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우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포항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별다른 침체를 겪은 적이 없는 도시다. 도시 규모도 성장 흐름에 따라 시가지가 확대되며 커졌다. 그러나 최근 수년 사이 철강산업 침체로 어려움을 겪었고 포항 경제도 가라앉았다. 지난해 11월 포항 지진은 엎친 데 덮친 격의 재난으로 포항 시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이번 포항의 도시재생 사업은 어려운 시기에 이뤄지는 사업으로 침체된 도시 분위기와 시민들의 의욕을 되살리는 촉매제가 되어야 한다.그런 점에서 포항시는 도시재생 사업 진행 과정에서 시민들의 여론을 청취하고 적극 반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업 지역별로 주민들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구성돼 있지만, 전체 포항 시민들의 의견을 구하는 소통 창구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이미 그려져 있는 사업의 큰 그림을 밑바탕으로 하되 참신한 제안이 있으면 사업에 녹여내도 될 것이다. 포항의 도시재생이 지역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팀 정신'으로 이뤄질 때 포항의 재도약을 위한 의욕도 도시 전체에 흘러넘칠 수 있다.

2018-10-02 18:23:08

최정암 서울지사장

[시각과 전망] 노무현, 문재인과 부동산정책

5공 청문회 스타 시절부터 노무현을 좋아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자 내 일처럼 기뻐했다. 그러다가 정권 임기 중반을 넘기면서 마음 문을 닫아버렸다. 부동산 가격 폭등 때문이다. 당시 필자는 기자 생활 15년이 넘도록 내 집 마련을 못하고 있었다. IMF 외환위기 때 폭락한 집값은 김대중 정부 때 잠잠하다가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요동치기 시작했다. 2억원대 아래에 형성됐던 대구 수성구 아파트 분양가격(전용 84㎡ 기준)이 불과 1, 2년 만에 2억5천만원대로 25% 이상 급등한 것도 그때다. 전국이 비슷한 양상이었다. 다급한 정부는 종부세 및 다주택자 양도세 강화, 투기지역 지정 등 수십 종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앗아가 버렸다. 난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 문재인 대통령도 좋아한다. 가식 없고, 선하고, 열정적인 모습이 전임자와 달라 보여서다. 전임자의 황당무계한 국정 운영 방식 때문에 진심으로 당선을 바랐다. 출범 이후 국민들을 감동시키는 언행들로 인해 이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희망하는 중이다. 그런데 말이다. 부동산이 다시 나의 마음을 흔든다. 우리 경제에서 뛰고 있는 건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뿐이다. 정부 여당도 위기라고 보는지 출범 16개월 동안 벌써 8번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약효가 없자 정부는 금융 대출을 옥죄고, 세금 폭탄을 안기는 913 조치를 단행했다. 발표가 난 이틀 뒤인 지난 주말 서울에서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을 만날 일이 있었다. 그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들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학습효과 때문이다. 억눌러도 수요가 있는 이상 부동산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대답. 다들 사람과 돈이 몰리고 교육·정주 여건이 좋은 서울, 특히 강남에 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의 공급은 한정돼 있으니 집값 상승이 서울의 다른 구로 옮겨갔고, 급기야 수도권으로 확산됐다. 박원순 시장이 지난 7월 강남에 버금가는 강북을 만들고, 용산과 여의도를 개발하겠다고 하자 여의도와 노원구 월계, 상계동 일대는 30% 이상 가격이 폭등했다. 이렇다보니 대구 부산 광주 등 지방민들도 서울 아파트를 사려고 혈안이 돼 있다. 안 사면 바보처럼 보이는 형국이다. 지금은 백약이 무효인 상태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급을 늘려야 한다. 우선 매물이 나오게 해야 한다. 방법은 양도세 인하다. 팔 사람은 팔도록 해야 한다. 이번 정부 들어 요건을 강화시킨 재건축 규제도 해제하는 것이 맞다. 시내에는 택지 자체가 없다. 결국 있는 건물을 헐어서 새로, 더 많이 짓는 게 답이다. 시중 자금이 부동산에 쏠리는 건 다른 투자처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연구개발과 생산에 이어지도록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작업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모든 게 서울로 집중되는 상황에서는 서울 집값 폭등을 막을 수 없다. 지방에서도 서울 못지않게 일자리가 있고, 교육 여건이 된다면 서울 쏠림은 막을 수 있다.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이 그래서 필요하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정부는 오로지 서울이다. 국무회의도 서울서 열고, 경기 활성화 대책도 서울서 연다. 이러다가는 내 맘속의 지지가 떠날 것 같다.

2018-09-19 05:00:00

조두진 문화부장

[시각과 전망] 텃밭 가꾸기, 사람과 공동체를 살린다

제6회 대구도시농업박람회(9월 6~9일)가 막을 내렸다. 24만5천여 명이 박람회가 열리는 대구농업마이스터고를 방문해 성황을 이루었다. 도시에 살고 있지만 텃밭 농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말일 것이다. 도시(텃밭) 농부와 전업 농부는 작물 재배 방식이 많이 다르다. 전업 농부는 한두 가지 작물에 집중해 대량 재배하고, 텃밭 농부는 여러 가지 작물을 조금씩 재배한다. 전업 농부가 한두 가지 작물에 집중하는 것은 전문성을 강화하고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농사 목적도 다르다. 전업 농부는 판매 이윤을 추구하고, 텃밭 농부는 자가소비, 나눔, 취미 활동을 목적으로 한다. 오늘날 우리가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전문화·분업화를 통해 양질의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덕분이다. 땡볕 아래에서 비지땀을 흘리지 않고도 신선한 야채를 마음껏 먹고, 타이어 하나 바꿔 끼울 줄 모르지만 자동차를 운전하고, 도살이라는 난감한 일을 감당하지 않고도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도 전문화·분업화 덕분이다. 하지만 전문화·분업화는 전인적이어야 할 개인을 기능성 부품으로 만들고, 서로 보호하고 보호받아야 할 인간을 버려진 외톨이로 만든다. 인간소외와 공동체 붕괴를 야기하는 것이다. 산업이 발달할수록, 분야별 전문성이 고도화될수록 그런 현상은 심해진다. 공산주의 창시자 마르크스는 '종일 직물을 짜거나 구멍을 뚫고, 선반을 돌리고 삽질하는 게 어떻게 인간의 삶인가.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면, 사람은 누구나 오늘은 이 일을 하고, 내일은 저 일을 하고, 아침에는 사냥꾼이 되거나 농부가 되고, 오후에는 가축을 돌보고, 저녁에는 비평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단순노동과 인간소외에 지친 사람들에게 솔깃한 말일 수는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생산성은 급격히 떨어지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며, 평범한 사람들은 비참한 생활을 피할 수 없다. 인간소외를 극복하기는커녕 (물자 부족으로) 도처에 도둑이 창궐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전문화·분업화를 강화하면서도 인간의 부품화와 이웃 간 단절을 막는 것이다. 해결책 중 하나가 생활에서 전인적인 일을 찾는 것이다. 일주일 중 상당 시간을 자기 전문 분야 업무에 쓰되, 일정한 시간을 할애해 자기 의지와 기획에 따라 어떤 일 전체를 꾸려가는 것이다. 그 일은 생산성이나 이윤에서 비껴나 있어야 한다. 판매 이윤과 노동 효율성이라는 잣대를 갖다 대는 순간 부품의 기능성에 빠지기 십상이다. 텃밭 가꾸기는 전인적 삶을 꾸리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날씨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식물과 동물은 물론이고, 이웃을 생각하게 된다. 이전에는 몰랐던 풀과 곤충의 이름과 생태를 알게 되고, 라면밖에 끓일 줄 모르던 남편들이 반찬을 만들고 요리를 시작한다. 텃밭 농부들끼리 김장을 함께 담그기도 하고, 고구마나 감자 파티를 열기도 한다. 대구의 15층짜리 아파트에 사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자신의 텃밭에서 기른 야채를 나누어 주기 시작하자, 아파트 한 라인 30가구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텃밭이 위기에 빠진 인간을 구하고, 공동체를 살리는 것이다.

2018-09-11 15:31:20

김교성 경북본사장

[시각과 전망] 이철우의 '도백 3선 트리플'

김관용 전 경상북도지사가 도백 재선을 앞둔 시점의 일이다. 경북도는 당시 김 지사의 23개 시군 순회 특강을 추진했다. 대상은 시군 공무원이었다.공무원은 선거직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집단으로, 여론을 조성하고 전파하는 첨병이다. 김 전 지사는 강연을 통해 지지 기반을 확실히 넓히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김 전 지사는 유일하게 포항 입성에 실패했다. 그때 박승호 포항시장은 차기 도백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로, 김 전 지사의 특강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례 하나 더. 김 전 지사가 재선에 성공한 뒤 만난 적이 있다. 기자는 "이제 다음 선거 신경 쓸 것 없이 소신껏 하면 되겠습니다. 멋진 도정을 기대합니다"라고 했다. 다분히 그의 나이를 고려한 축하 인사였다. 나중 알고 보니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한 말이었다. 큰 실수였다. 김 전 지사의 선거 캠프 관계자로부터 들은 말은 충격이었다. 재선 확정과 동시에 3선 준비 캠프를 가동한다는 것이었다. 뒤통수를 제대로 한 방 맞은 뒤부터 관심 밖이었던 정치인들을 조금이나마 머릿속에 두려 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 집단이 정치인임을 확인했다. 정치를 모르거나 외면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여전히 비정치적이고 정치인 기피 성향인 점을 다행으로 여기지만 테크노 집단을 요리하는 정치인들의 능력에 감탄할 때가 많다. 서론을 길게 호흡한 건 정치 무대를 국회에서 경북도로 옮긴 민선 7기 이철우 도백의 입지를 점쳐보고 싶어서다. 도백 첫 임기를 시작한 이 지사에게 기분 나쁜 말이겠지만 그가 얻을 건 많지 않아 보인다. 잘해야 본전이고 아주 완벽히 잘하지 않는 한 잘못한 일만 두드러져 보일 수 있다. 민선 전임자인 1~3기 이의근, 4~6기 김관용 지사는 12년 동안 3선을 꽉 채웠다. 김 전 지사는 구미시장까지 6선을 했다. 이 지사가 12년을 채워 '도백 3선 트리플'을 달성해야 체면치레가 된다. 안타까운 건 이 지사가 치적 쌓을 일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최대 과제였던 도청 이전은 끝났고, 신도시 개발과 안착이란 골칫거리만 남았다. 대구시와 제대로 된 상생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대구공항 이전', '대구 취수원 이전' 등 대구시와 풀어야 할 일은 난제다. 구미시 등 기초단체의 동의 없이 추진할 일도 아니다. 정부 지원이 필요하지만, 야당 처지라 협조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인구가 줄면서 여러 차례 제기된 '도 단위 광역단체 무용론'은 도청 이전으로 방패막이를 했으나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대구시와 달리 간접 행정이다 보니 직접 빛낼 사업도 많지 않다. 이전 집행부가 기업체 유치 등 양해각서를 남발했기에 더욱 궁색해 보인다. 이 지사의 초기 행보는 비교적 조용하고 은밀해 보인다. 잡음 나는 인사도 아직 없다. 일부에선 정보기관 출신답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그의 의전 파괴와 소탈한 행보는 공무원 구애로, 환동해추진본부 강화 등 제2 도청 구상은 포항 공략이다. 이는 재선3선을 향한 포석이다. 이 지사에게 던지는 우문이다. 다음 선거를 바라보지 않고 일하십시오. 이 지사가 전임자들의 겉치레 의전과 보여주기식 행사를 버리고 고위 관료 남발 인사 등 식구 챙기기를 그만둘 수 있을까.

2018-09-04 20:08:37

김지석 동부지역 본부장

[시각과 전망] 신음하는 형산강

포항의 젖줄인 형산강에는 흥미로운 설화가 깃들어 있다. 옛날 포항과 경주 사이에 형제산이 있었는데 신라 말기에 형제산이 형산과 제산으로 갈라져 그사이를 강이 흐르게 되었고 그 강을 형산강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울산 울주군에서 발원하여 경주를 지나 포항 연일읍을 거쳐 영일만으로 흘러든다. 수량이 풍부한 강이다.형산강은 2년 전부터 중금속에 오염된 것으로 밝혀져 식수 문제가 불거졌다. 형산강의 지류로 포항철강공단을 지나는 구무천의 중금속 오염이 심각했고 형산강에도 중금속이 흘러들었다. 포항시가 조사한 결과, 하천 퇴적물 오염 평가에서 수은 4등급 기준을 초과하는 구간은 유강보 하류 400m에서 영일만 유입부까지로 나타났다. 구무천과 공단천 전 구간의 퇴적물 역시 처리가 절실하다.포항시는 형산강(지천) 중금속 정밀조사 및 하천복원 기본계획, 구무천공단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작업을 마무리했고 문제 구간의 환경 준설을 통해 오염원을 제거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3천77억원의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며 형산강이 국가 하천인 만큼 중앙정부가 해결하도록 건의하기로 했다. 포항시는 중금속 안정제로 수질을 관리하면서 오염 원인자 조사와 구무천 중금속 오염 차단, 하수관거 정비사업에 나서기로 했다.환경부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당시 환경 문제를 제대로 제기하지 못했던 전력이 있다. 현 정부 들어 환경부는 국가사업 등에서 환경 점검을 철저히 하도록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 물 관리 일원화의 주무 부서도 환경부로 정리됐다. 권한과 책임이 더 커졌으며 미세먼지 대책 등 할 일이 더 많아졌다. 지난 4월에는 수도권 일부 재활용 폐기물 수거 업체들이 중국의 폐자재 수입 금지 조치에 따라 폐비닐 등의 수거를 거부하면서 벌어진 '쓰레기 대란' 사태에 대한 대처가 허술해 장관의 위기 대처 능력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환경부가 형산강 수질 개선 문제에 적극적으로 응할지 우려스럽다. 적지 않은 예산이 드는 데다 미세먼지 문제 같은 전국적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항시가 지역 국회의원과 도의회, 시의회, 관련 기관 등과 협력해 총력 대응해 나가기로 한 것도 환경부가 관심을 갖기를 촉구하려는 것이다. 포항 지역구의 박명재 국회의원과 김정재 국회의원도 지역 현안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능동적인 역할에 나서야 한다.지역적 사안일 수 있어도 50만 시민의 식수 문제를 소홀히 취급해선 안 될 것이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개각 대상에 오르긴 하지만, 과거에 낙동강 페놀 사태 때 '페놀 아줌마'라 불릴 정도로 수질 개선 운동을 벌였던 전력이 있는 만큼 형산강 수질 개선에 대한 포항 시민들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이다. 장관 교체 여부에 관계없이 환경부는 포항시의 요청에 응답해 형산강 수질 개선 관련 예산을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포항은 바다와 아름다운 산천을 동시에 갖춘 매력적인 도시이다. 인구가 많지도, 적지도 않으며 도시의 기능을 골고루 갖춰 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중요 주거 조건의 하나로 떠오른 수질을 개선시켜 포항시민의 근심을 덜어줘야 한다.

2018-08-28 14:56:15

최정암 서울지사장

[시각과 전망]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고용 개선을 이루는데 직을 걸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20일 수석·보좌관회의 때 엄명은 우리의 고용 문제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용 사정이 나아지지 않을 경우엔 청와대와 내각의 경제팀에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니 당사자들로선 섬뜩했을 터이다.뒤늦은 감이 있을 정도로 적절한 주문이지만 대통령의 이 한마디로 고용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각종 통계는 우리의 고용 현황이 심각해도 너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실업률, 취업률 모두 최악의 상황이다.(통계청 8월 통계자료) 통계로 잡히지 않은 실물경기는 또 어떤가. 장사가 안돼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여의도만 해도 저녁때 손님이 절반이라도 들어선 식당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올 상반기 폐업한 자영업 수는 20만 곳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보다 22%나 높은 역대 최대치(신한카드 자료)다.게다가 대통령의 발언에는 전제가 깔려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문재인 정부의 3대 경제정책 기조는 유지하라는 것. 최저임금 획기적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은 계속 추구하면서 고용을 늘리라는 주문이다.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는 게 자영업자, 영세근로소득자 모두를 어렵게 만든다는 아우성이 거세도 이 정부의 정책 기조가 옳다는 대국민 선언이다. 그래놓고 일자리를 늘리지 않으면 자르겠다고 하니 관료들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메우려 한다. 세수가 넘쳐나니 괜찮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최저임금 인상 직격탄을 맞은 외식업중앙회는 "자영업자에 대한 사형선고"라며 거리 시위에 나섰다. 이들 대부분은 실업자 대열에 가세할 것이다. 3대 경제정책 기조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고용 문제보다 더 심각한 데도 정부가 고용 대책에서 간과하고 있는 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다. 정부 재정을 쏟아부어 취업만 시킨다고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에 취업했다가 곧바로 뛰쳐나온다. 무조건적인 고용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준다.산업연구원의 '자동차산업 하도급거래 실태와 임금격차 현황'에 따르면 2016년 현대차, 현대차 계열사, 납품업체(1차)의 평균 임금은 각각 9천390만원, 7천832만원, 5천791만원. 납품업체를 2·3차로 넓히면 협력업체 임금은 3천만원대로 수직 하향한다. 그러니 청년들은 임금 수준이 낮은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는 것이다.따라서 고용 증대도 중요하지만 정부는 연대임금 전략을 통해 임금 격차를 줄이고, 하도급 거래 관행 전반을 손봐야 한다. 정부의 중재,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동의 노력에 공공기관, 금융권, 대기업 노조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가능하다.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1천 명이 고용된 직장에서 임금을 동결하면 40명가량의 고용 증대 여력이 생긴다고 한다. 기존 직원들의 임금을 일부 삭감해 그 재원으로 일자리 창출에 나선다면 고용 증대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이것이 상생의 문화요, 배려의 사회이다.이것을 민간 기업에 먼저 강요할 수는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앞장서야 하고 월등히 임금 복지 수준이 나은 금융권이 나서야 한다. 그냥 일자리는 의미가 없다. 노동자의 삶에 만족을 주는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2018-08-22 05:00:00

조두진 문화부장

[시각과 전망] 지기로 작정한 팀과 그 팬들

'잡고 싶은 공만 잡는다.' 박민규의 야구 소재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던질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치기 어렵도록 던지는 게 아니라, 내키는 대로 던진다. 경기에 임하든, 응원을 하든 대다수 사람들은 우리 편이 이기기를 원한다. 이기려면 잡기 어려운 공을 잡아야 하고, 치기 힘든 공을 쳐야 한다. 어려운 공을 잡거나 치려면 평소 고된 훈련은 필수다. 당연한 말이지만, 훈련은 하고 싶을 때뿐만 아니라, 하기 싫을 때도 해야 한다. 작가 박민규는 그렇게 살지 말자고 말한다. 요컨대 이 작품은 치열한 경쟁과 승리만 추구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작품은 이성(理性)과 현실에 비판적이고, 수성(獸性)과 낭만에 우호적이다. 메시지는 이성적 판단에 대한 반성과 비판인 경우가 많다. 그 위치가 바로 문학이 설 자리이기 때문이다. '영웅을 영웅으로, 도둑을 나쁜 놈으로 규정하는 이야기' 혹은 '도둑이 도둑질하는 이야기, 경찰이 도둑 잡는 이야기'는 좋은 작품이 되지 않는다. 박민규가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 승리하는 이야기를 썼더라면(현실에서는 그 스토리가 타당하지만), 문학적 가치는 확 떨어졌을 것이다. 근래 우리 사회는 구성원 모두 작가가 된 듯하고, 모든 현안을 소설처럼 풀어내려고 작정한 듯하다. 언론은 여름마다 녹조라떼와 죽은 물고기를 애도하면서, 4대강 사업 덕분에 웬만한 가뭄에도 물 걱정 없이 농사짓는 이야기는 보도하지 않는다. 대규모 터널공사 때마다 '시대착오적 토목공사'라고 비판할 뿐, 터널 덕분에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고, 그것이 민간 복지에 기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터널공사로 생태계가 파괴된다며 단식 농성까지 하면서, 심각한 교통 정체나 먼 거리 우회로 발생하는 자동차 매연과 환경오염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닫는다.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매국적 행위라고 난리를 치더니 대책은 내놓지 않는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최저임금을 덜컥 올려놓고는 고용이 줄고, 실업이 급증하자 세금으로 메운다. 원자력발전도 마찬가지다. 원전은 현재로는 경쟁력이 가장 뛰어난 발전 수단이다. 환경오염과 위험이 예견 된다면, 보완책을 강구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대뜸 탈원전이 합리는 아닐 것이다. 그 결과 한국전력은 3분기 연속 적자에 2분기 적자만 6천871억원을 기록했다. 그렇게 현실을 무시하고 낭만적인 이야기나 해대면서 스스로를 '고상한 존재'인 양 여긴다. 소설가 박민규는 '잡고 싶은 공만 잡는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이성을 비판하고 수성을 옹호해야' 하는 '문학적 요구'를 빈틈없이 충족시키고 있다. 겉으로는 생뚱맞은 소리나 늘어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가 마땅히 서야 할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몽상적 기질이 강한 소설가도 현실에 묵직하게 발을 딛고 소망을 노래한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정부도 언론도 시민단체도 '잡고 싶은 공만 잡자'고 한다. 하고 싶은 일만 하니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잡고 싶은 공만 잡는 팀, 지기로 작정한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도 딱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패배'를 넘어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소멸할 것이다.

2018-08-14 15:12:56

김교성 경북본사장

[시각과 전망] 흔적 지우기는 본능인가

초중고 시절 잘 나가던 남녀 운동선수가 있었다. 고교 졸업 후 실업 무대로 직행해 성공 가도를 이어갔다. 이들의 활약상은 매일신문을 통해서도 알려졌다.그런데 이들이 인터넷으로 검색되는 신문 기사를 삭제해 달라고 신문사에 요청했다는 얘기를 들었다.신문을 확인했으나 마땅히 잘못한 부분이 없어 그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결혼을 앞둔 여자 선수는 신문에 실린 어린 시절 자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까맣게 탄 얼굴 사진을 혹여 시댁 식구들이 볼까 걱정이 된 것이었다.남자 선수는 경북의 산골 출신이란 꼬리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선수는 가족들이 산골 출신으로 알려지는 게 싫다고 한다며 인터넷에서 신문 기사가 검색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두 운동선수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어려운 시절의 얘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숨기려고 한다. 본능에 가까운 흔적 지우기다.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흔적 지우기는 정치 무대에서 가장 활발하게 나타난다. 비효율적이며 치사하고 냉혹해 보일 정도이지만 정당의 이념을 앞세운 정치인들은 전임자 흔적 지우기를 통과의례로 여긴다.다른 사람이 의욕적으로 한 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게 인간의 의지라고 하더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진정한 치적은 다른 사람이 추구한 일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게 아닐까. 새로움은 일시적이고 또 다른 새로움에 밀려난다.요즘 지방정치 무대가 시끄럽다. 6·13 지방선거의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새판짜기가 본격화하면서 흔적 지우기와 관련한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들여다보면 사실과는 거리가 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것 같지도 않다.권력을 잡은 단체장들은 이전 집행부의 사업을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한다. 조직 개편과 인사를 통해 이를 위한 포석을 하고 있다. 일종의 길들이기다.의회와 언론 등 외부의 조언과 견제가 있지만 외면하기 일쑤다. 권력을 다지려는 의지가 강하기에 약간의 출혈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3선을 채운 김관용 전 경북도지사 치적 중 하나인 경주세계엑스포도 영향을 받고 있다. 민선 7기 경상북도의 주인이 된 이철우 도지사는 "경주세계엑스포는 공무원들의 원성이 높은 사업"이라며 손질을 예고했다.경북도뿐만 아니다. 수장이 바뀐 자치단체의 핵심 사업은 대부분 전면 재평가되고 있다.이 과정에서 정치 보복이나 전임자 치적 깎아내리기 등 사심이나 정치적인 판단은 배제되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시행착오가 반복된다. 이로 인해 피해와 불편은 고스란히 민초에게 돌아간다.지금 우리는 지난해 정권 교체 후 흔적 지우기에 따른 시행착오로 무수한 생활, 경제 고통을 겪고 있다. 전임 정부를 완전히 부정하고 새로 쏟아내는 정책이 현장에 잘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이로 인한 부작용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폭염 사태 속에서 뒤죽박죽이 된 전력 수급 정책도 그중 하나다.무조건적인 반대에 대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집행부뿐 아니라 지방의회의 혼란도 심하다. 한 지방의회 의장은 "어릴 때부터 수십 년을 함께한 친구가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반대를 한다. 기초의회까지 당파 싸움을 해야 하는 건지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새로 선택받은 권력자들이 정의를 바탕으로 현명하게 칼을 휘두르길 바란다. 4년 후의 평가는 이미 시작됐다.

2018-08-08 05:00:00

김지석 동부지역 본부장

[시각과 전망] 동부청사 반대 소동

새로운 도정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는 이철우 경상북도지사가 출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포항의 경북도청 환동해지역본부를 '동부청사'로 확대 개편하려는 이 도지사의 계획에 대해 도의회가 제동을 걸었다. 도청 소재지인 안동지역 여론이 반대에 나섰고 경북도의회는 관련 조례 개정안을 진통 끝에 통과시켰다. 안동 여론은 도청 이전 후 오히려 인구가 감소하고 도심 공동화가 가속화하는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균형 발전을 위해 옮겨온 도청의 일부 기능을 포항의 동부청사로 확대해 옮기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조례안이 통과됨으로써 동부청사 계획이 별 무리 없이 진행되겠지만, 안동의 북부권과 포항·경주의 동남권 갈등이 빚어질 뻔했다. 도청 제2청사인 동부청사는 동해안전략산업국과 해양수산국의 2개국 7과 2개 사업소 체제인 환동해지역본부에다 부지사 직속의 종합민원실과 관광마케팅과를 신설하기로 돼 있다. 또 신재생에너지 개발·보급, 해상풍력 클러스터 조성, 환동해 에너지 혁신성장벨트 조성, 영일만항 대형 컨테이너선 및 크루즈 추진 등의 업무 외에 조직과 기능을 점차 확대운영하기로 했다. 북방 경제협력이 구체화할 것에 대비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동부청사 계획은 포항의 항만 특성을 이용해 북방 경제협력사업의 선점 효과를 노리며 에너지, IT 등의 인프라를 살려 발전을 촉진하기 위함이다. 안동 도청까지 먼 길을 가야 하는 포항·경주 등지의 민원 불편을 없애기 위한 목적도 있다. 당연히 포항·경주 등지의 도민들은 환영하며 그 역할이 더 확대되기를 바라고 있다. 안동 여론은 이에 대해 한 번 제동을 걸면서 경북도가 안동의 발전에도 신경을 기울일 것을 환기시켰다. 도청 이전의 목적이 그랬듯이 경북도는 앞으로도 경북 지역 내 균형 발전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안동 도청이 지역 발전 가능성을 높이긴 하겠지만 도청의 존재만으로 발전이 이뤄질 수는 없다. 경북도와 안동시가 안동 원도심과 도청 신도시 직행로 건설, 유교 문화 중심의 관광 개발 사업 계획 등 이미 마련된 구상들을 실행하는 것과 별도로 북부권 산업 개발 등 좀 더 새롭고도 구체적인 권역별 발전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포항과 경주 등 동남권은 동남권대로, 안동 등 북부권은 북부권대로 지역 특성에 맞는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도지사의 동부청사 구상이 동남권 발전을 강조하는 것에 비해 북부권 발전은 소홀하다고 여겨 반발하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그간 북부권은 동남권에 비해 발전이 늦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도청을 안동으로 옮겼는데 일부 기능을 포항 쪽으로 가져간다니 반대 심리가 생겨났던 것이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서로 다른 지역 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여지는 언제든 있다. 정책 취지가 좋더라도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이해관계의 조정, 설득, 통합이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능란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정치력이 필요하다.

2018-08-01 05:00:00

최정암 서울지사장

[시각과 전망] 열정적인 지자체 공무원들

부산 해운대에서 강원도 고성을 잇는 770km 해안에 조성된 걷기 좋은 길의 이름은 '해파랑길'이다. 그 중 가장 먼저 시작됐고, 가장 예쁜 길이 영덕해안에 조성된 '블루로드'(64.6km)이다.이 길이 만들어진 계기가 재미있다. 제주 올레길이 한창 인기몰이를 할 무렵 문화관광부의 전국 올레길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해안올레길을 만들고 싶었던 경북도는 해안을 접한 시군들에게 연락했다.국도비를 보내주려 하는데 해변산책길을 만들 의향이 있느냐는 것. 한 지자체는 전화를 받은 곳에서 "그럴 계획이 없다"고 했다.포항시에서는 전화를 받은 부서가 "우리는 주무과가 아니니 다른 과로 돌려주겠다"고 했고, 우여곡절 끝에 관광과로 연결돼 3억원의 예산을 받았다. 이 돈으로 호미곶 경관조명 사업을 했다고 한다.영덕군은 달랐다. 경북도의 전화를 받은 당시 영덕군청 문화관광과 강영화 관광개발계장(현 상수도계장)이 "빠른 시일내 도청으로 가서 설명드리겠다"고 말한 뒤 상부에 보고했다. 군에선 바로 프로젝트팀이 가동됐다. 해안선을 꿰뚫고 있던 강 계장이 중심이 돼 특별사업계획서를 만들었다.군의 신속하고 치밀한 사업 방안과 추진의지에 감동한 경북도와 문화체육관광부는 그해 경북도에 배정된 올레길 조성 예산 대부분을 영덕군에 지원했다. 그 결실이 맺어져 오늘날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블루로드가 탄생했다.2012년 포항시 관광과에 '충남'북'대전 시군연합노래교실' 운영자가 전화를 해왔다. 몇 군데 지자체로부터 거절당한 후 포기하는 심정이었다. 노래교실 단원들이 방문하면 식당소개와 함께 뒷풀이 공연 공간을 제공해줄 수 있느냐고 했다. 전화를 받은 당시 편장섭 관광마케팅계장(현 효곡동장)은 "어서 오시라"는 답변을 했고, 주말 포항을 찾은 그들에게 시청옆 복지동 공간을 제공했다.포항을 찾아준 것이 고마워서 인솔자, 노래교실 담당자 등 3명에게 포항시장 명의의 감사패도 전달했다. 그렇게 들어간 돈은 10만 원정도. 대신 대형관광버스 25대에 나눠타고 온 1천여명이 포항에 뿌린 돈은 1인당 식사비 1만원만 잡아도 하루 1천만원. 즐길 줄 아는 노래교실 단원들이 포항까지 찾아와서 단순히 식사만 했을까.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경북정무부지사 시절 '단순히 고위공무원들의 명함 관리용 자리에 머물던 정무부지사 자리'를 '일하는 자리'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그는 잠시도 자리에 앉아 있지를 못했다.특히 투자 유치를 위해 국내외를 훑고 다녔다. 해외 투자자가 국내로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만났다. 2007년 재일교포 파친코 재벌인 마루한의 한창우 회장이 고향(경남 사천)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당시 김관용 도지사를 모시고 김해공항에 가서 플래카드를 내걸고 환영한 일화는 유명하다.이런 열정이 그를 시도민들의 주목을 받게 했고, 국회의원 3선을 거쳐 경북도지사로 우뚝 서게 했다.위 사례들은 철밥통 공무원과 열정적 공무원이 낳은 극명하게 다른 결과다. 민선 7기에는 열정공무원이 많아지는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경북도가 이달말이나 8월초 국장, 부단체장, 서울지사장 인사를 실시한다. 벌써부터 특정인의 공모직 내정설 등이 나오긴 하지만 열정적으로 일한 덕분에 그 자리에 선 이 도지사가 능력보다 정실인사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철우 도지사호 운항을 책임질 열정적 공직자들의 면면이 기대된다.

2018-07-25 05:00:00

조두진 문화부장

[시각과 전망] 노동자 임금을 누가 주는 걸까

올해(16.4% 인상)에 이어 내년도에도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기로(10.9% 인상) 한 것을 두고 논란과 걱정이 많다. '1만원 대선공약'을 지키라는 목소리도 높다. 연대임금이라는 용어가 있다. 동일업종 노동자는 모두 동일임금을 받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현대자동차 생산'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는 그들 각각이 현대자동차 본사에 근무하든 하청업체에 근무하든 동일임금을 받는 임금 체계다. 이 체계에서는 해당 업체 전체의 평균 생산성을 기준으로 임금을 정하고, 노동자는 어느 업체, 어떤 작업에 종사하든 동일임금을 받는다. 당연한 결과로, 생산성이 평균보다 높은 업체는 흑자를 보고, 생산성이 평균보다 낮은 업체는 적자를 본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어느 정도 지속되면 생산성이 평균 이하인 업체는 망한다. 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은 '연대임금'과 같지는 않지만 닮은 구석이 많다. 숙련공이든 비숙련공이든, 삽으로 땅을 파든 숟가락으로 파든 1시간에 최소 8천350원을 지급하라니 말이다. 한국 사회에 '삽으로 땅을 파는 업체'는 아직도 존재하지만, 삽으로 땅을 파는 데 시간당 8천350원을 지불하고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업체는 없다.(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을 통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간당 8천350원이 부담되지 않는다면 논란이 될 것도 없다. 그러나 사업을 접어야겠다는 영세사업주, 최저임금을 보이콧하겠다는 소상공인, 차라리 범죄자로 남겠다는 자영업자가 나오는 상황이라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노동자의 임금은 누가 주는 것일까. 국민 상당수는, 그리고 현 정부는 기업체 사장이 준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노동자의 임금은 시장, 즉 소비자가 준다. 노동자가 받는 임금 크기는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결정하는 것이다.(콩나물 1천원어치를 살 때도 가격 대비 품질을 알뜰히 살피는 당신 모습을 보시라) 시장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인위적 임금'은 부작용이 크기 마련이다. 기업주들이 임금을 착취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욕심을 덜 부리면 노동자들이 잘먹고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참 잘못 생각하는 거다. 적어도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임금 착취로 버티려는 기업은 경쟁력을 잃고 곧 망한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어 한다. 그들이 인간성이 좋아서가 아니다. 경쟁 업체보다 조금이라도 임금을 더 주고 더 똑똑한 인재를 채용하고 싶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은 똑똑한 직원들이 더 나은 제품을 생산하고, 시장의 인정을 받아 자기 사업체를 키우고 싶어 한다. 나는 시장이 만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저임금과 관련해 '시장'을 배제하고, '착취' 대(對) '권리'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정치 슬로건'이지 '경제'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선한 의도와 달리 큰 불협화음과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하는 것은 임금을 지불하는 직접 당사자인 '소비자'를 배제하고, 간접 관계자인 정부가 그 크기를 결정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시장(소비자)을 넓히지는 못하면서 임금을 올리자니 정부는 '일자리 안정자금'이라는, '해당 기업의 돈이 아닌 돈'을 끌어다 붓고, 업체는 영업시간 감축, (근무 중) 휴게시간 확대라는 변칙을 쓴다. 더 나쁜 것은 안 그래도 취직이 어려운 노동취약 계층이 일자리를 잃고 더 가난해진다는 점이다.

2018-07-17 16:42:39

김지석 동부지역 본부장

[시각과 전망] 겸허하고 책임감 있게

지난달 25일 매일신문 주최 지방선거 당선인 결의대회 참석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밝았다. 치열한 선거 끝에 승리한 이들은 환하게 웃고 서로 축하하고 때로 득의만면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 모두 가문의 족보에 빛나는 족적을 남기게 됐으니 당선을 충분히 즐길 만하다.한편으로 그들의 어깨 위에는 무거운 짐이 얹어졌다. 지역을 발전시키고 지역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당선의 기쁨은 '어제 내린 눈'처럼 뒤로 돌리고 진지하게 지방 정치에 임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제 역할을 다하기보다는 자그마한 권력에 취하겠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지방자치는 성년에 해당하는 20년을 훌쩍 넘어 민선 7기 시대를 맞게 된다. 그 시간만큼 빛과 그림자도 뚜렷하다. 지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행정을 펼치면서 주민복지 증진, 민원 서비스 친절도 향상 등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다. 자치단체장이 경영가로 나서 기업을 유치하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업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도 한다.반면에 별 성과도 없는 전시성 사업을 벌여 재정적 손실을 끼치거나 뇌물수수, 횡령, 배임 등의 범죄로 법정에 서는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적지 않다. 의회가 지방자치단체와 단체장을 제대로 견제하지 않기도 한다. 최근 포항시의회가 시정 질문에 대한 시장의 답변 의무를 '정책적인 질문'으로 한정하는 내용의 회의규칙을 통과시킨 것은 견제 의무를 내팽개치는 것이나 다름없다.지방자치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긍정적 이미지보다 부정적 이미지가 더 큰 느낌이다. 이는 일부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의 의식 수준과 자세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원들 중에는 공무원들을 함부로 대하고 때로 갑질하듯 오만한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평판이 좋지 않아 선거에 떨어지거나 운 좋게 당선되더라도 정치 생명이 길 수 없다. 이런 의원들일수록 성실하지도 않아 정책 질의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의정활동이 부진하다.단체장과 지방의원, 그리고 그들의 이른바 '선거 공신' 중에 완장을 찬 듯 설치며 이권에 개입하려는 악행이 빚어지기도 한다. 아직도 은밀히 '돈 선거'를 치른 지역이 있다고 하는데 '선거 빚'을 메우려 본전 찾을 생각을 하다가는 언제든 철창행이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때마침 대통령이 지방선거 이후 지방 권력에 대한 감찰과 감시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적절한 지시라고 할 수 있다.민선 7기를 기점으로 지방자치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도 거론되는 만큼 지방자치의 질이 더 세련되게 높아질 때가 됐다. 주민의 삶을 위한 행정 서비스와 정책이 더 강화되어야 하고 단체장과 지방의원은 겸허한 자세로 책임과 의무에 더 열중하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비판받는 지방의원들의 외유성 해외 연수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국회의원의 특권 폐지 여론이 높고 산하기관 지원에 의한 외유성 해외 출장 규제 움직임에 비춰 지방의원의 외유성 해외 연수도 없어져야 한다.자유한국당 일색이던 지방의회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대거 진출해 소통과 협치의 필요성도 커졌다. 정책 간 견해 차이에 따른 갈등과 당쟁은 이해할 수 있지만, 당리당략에 따라 소모적 갈등이 커진다면 지방자치의 본질과 의미를 훼손하게 될 것이다. 정책을 둘러싼 경쟁을 건전하게 펼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단체장에 대한 견제의 역할을 더 충실하게 해야 박수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18-07-04 05:00:00

최정암 서울지사장

[시각과 전망] 공항 갈등, 청와대가 책임져라

꼭 2년 전인 2016년 6월 22일 매일신문 1면은 백지였다. 1면은 신문의 얼굴이다. 그런데도 1면 백지 발행을 결행한 것은 전날 박근혜 정부의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로 지역민들의 얼굴이 백지장이 된 것을 대변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대구와 부산의 극심한 지역 갈등을 수면 아래로 내리려는 정부의 고육지책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 때문에 대구경북민은 관문공항에 대한 염원이 멀어져 갔고 차선책으로 대구통합공항으로 기수를 돌렸다.이런 우리의 진심과는 달리 부산의 오거돈 시장 당선인이 다시 갈등의 불을 지피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을 또 들고나온 것이다. 이번에는 힘으로 찍어 누르겠다는 기세다. 정치적으로 부산의 힘은 장난이 아니다. 부산 출신 대통령에, 부산시장 선거 사상 첫 민주당 출신이 나왔다. 구청장도 16개 기초단체장 중 13곳이 민주당이다. 시의원은 42명 중 38명이나 된다. 4년 전 지방선거 때 민주당 소속 구청장은 한 명도 없었다. 2년 전 선거 때 국회의원을 5명이나 당선시킨 데 이어 '부산의 강남'이라 불리는 해운대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압도적 표 차로 당선됐다.이런 세력을 바탕으로 오 당선인은 취임도 하기 전에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가덕도 신공항을 본격 거론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인 민주당 김경수 경남도지사 당선인 역시 김해공항 확장불가론을 펴고 있다. 이전에 경남은 신공항 입지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가덕도가 되든, 밀양이 되든 본인들은 불편한 게 전혀 없었기 때문. 그런 경남이 김해신공항 불가론을 주장하는 건 가덕도 신공항에 힘을 싣는 격이다. 이전 대구 편이었던 울산도 부산 편을 들 공산이 크다. 송철호 시장 당선인이 문 대통령 및 노무현 전 대통령과 3형제로 불릴 정도로 가깝다. 부울경을 장악한 민주당이 부산의 목소리에 동조하고 나설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반면 대구는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 한 명 배출하지 못했다. 대구경북의 민주당 국회의원도 25석 가운데 대구 2석에 불과하다.부산이 이런 정치적 구도를 믿고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인다면 대구경북은 무기력한 정치권을 대신해 시도민 전체가 나서서 극렬히 저항할 수밖에 없다. 향후 엄청난 갈등이 지속됨을 의미한다. 영남권 신공항을 한다면 가덕도보다는 밀양이다. 2년 전 정부 용역결과도 가덕도보다 밀양이 더 나은 점수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양보를 했다.부산의 생떼부리기에 대한 답은 청와대가 해야 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5일 기자간담회에서 "가덕도 신공항을 지금으로선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지만 미진하다. "지금으로선"이란 사족을 붙일 이유가 없다. 그럼 여건이 바뀌면 다시 한다는 말인가. 오 당선인이 그 정도 발언에 멈출 사람이 아니다. 그러기에 청와대가 입장 표명을 하라는 것이다.오거돈 당선인에게도 당부한다. 가덕도 신공항 문제는 문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 것인지, 부산의 대통령에 국한시킬 것인지 시험대가 된다. 대통령을 배출한 도시의 수장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지우는 일을 하는 게 과연 옳은 길인가. 단체장의 욕심 때문에 대통령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또다시 부산 시민들을 혼란과 혼돈 속에 빠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시도하면 할수록 세찬 소용돌이로 빠져들 가덕도 신공항 대신 되지도 않을 공항 때문에 막대한 재산권 침해를 당하고 있는 가덕도 주민들을 위한 발전 방안 마련에 전념하시라.

2018-06-27 05:00:00

조두진 문화부장

[시각과 전망] 어느 무소속 후보의 낙선

'6·13 지방선거'에 대구 수성구의회 의원에 출마했던 한 무소속 후보가 낙선했다. 그는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올해까지 7회 모두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2002년과 2014년에는 당선돼 의정활동을 펼쳤다. 그러니까 현재 수성구의회 의원이고 며칠 뒤 임기가 끝난다.(기자라는 직업상) 그와 명함을 주고받은 적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와 친분이 없고, 아는 사이라고 할 만한 정도도 못 된다. 그의 지역구 주민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낙선은 여러 가지 의문과 불만을 갖게 한다.내가 아는 수성구청 공무원들과 수성문화재단 임직원들에 따르면, 낙선한 그 의원은 임기 내내 열심히 했고, 잘 했다. 때로는 너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밉기도 하고, 짜증도 나지만, 그의 질문이나 의문은 대부분 구의회 의원으로서 마땅히 할 수 있는 질문이고, 해야 하는 문제 제기라는 평가가 다수였다. 그럼에도 그는 낙선했다.이에 반해 대구시내 각 기초의회에서는 구정질문이라는 것이 거의 트집 잡기 수준인 의원, 윽박만 지르는 의원, 자신이 집행기관(구청) 공무원이 아니라 의결·감시기관(의회) 의원이라는 사실조차 무시하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의원, 의회 일은 뒷전이고 구민들에게 인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당선된 경우도 있다. 유권자들이 후보를 모르기 때문이다.투표에 앞서 유권자들은 선거공보물을 제대로 읽었을까? 공보물을 꼼꼼히 읽기만 하면 어떤 후보가 어떤 일을 해왔는지, 공약의 실현 가능성과 인간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을까? 어렴풋하게라도 말이다.6·13 지방선거에 앞서 집으로 배달된 공보물을 모두 읽는 데 1시간 10분 걸렸다. 기자라는 사람들은 신문이나 책을 통해 문장을 늘 접하는 만큼, 문장을 읽는 속도도 빠르고 의미를 파악하는 데도 익숙하다. 그럼에도 공보물을 다 읽는 데 1시간 10분이 걸렸고, 그걸 다 읽고도 각 후보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우리 대부분은 후보를 모르고 찍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정당정치는 장점이 많고 정당정치를 지지한다. 그럼에도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후보까지 정당이 공천하는 것에는 반대한다.지방선거의 경우 광역단체장,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교육감, 광역의회 비례대표, 기초의회 비례대표는 기본이고,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까지 겹칠 경우 8개까지 투표를 해야 한다. 평범한 시민이 후보를 자세히 알 수 없는 구조다.후보자에 대해 잘 모르니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특정 정당의 인기가 높은 지역에서는 생활정치를 한다는 기초의원 후보자들마저도 주민보다는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의 눈치를 더 살핀다. 국회의원이 떴다 하면 이른 새벽이고 늦은 밤이고 경마잡이처럼 시의원, 구의원들이 따라 나서는 일이 허다하다. 그렇게 '경마잡이'는 승승장구하고, 국회의원 '시다바리'할 시간에 구정이나 열심히 살피겠다며 무소속을 고집한 후보는 낙선한다.1995년 6월 27일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실시했으니 올해로 횟수는 7회째고, 세월로는 23년이다. 이만큼 경험이 쌓이고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후보를 모르고 투표한다.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은 폐지되어야 한다. 또한 선거공보물 형식(틀)은 지금과는 확 달라져야 한다. 선거공보물을 읽으면 적어도 그 사람이 해온 일, 그 사람의 인생관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집, 자기 회사에서 일할 사람을 뽑을 때 지금처럼 무턱대고 뽑지는 않을 것이다.

2018-06-19 13:58:28

김교성 북부지역 본부장

[시각과 전망] 권력, 쏠림의 단맛과 무상

권력(權力).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으로 정의한다.권력만큼 달콤하고도 씁쓸함을 동시에 지닌 게 있을까. 13일은 전국 4천16명의 정치인에게 지방 권력을 안기는 날이다.이날 밤 꽃다발을 받아들고 환호성을 터뜨릴 이들에게 보내는 축하 메시지와 경계의 말이다.먼저 경계로, 권력 무상이다. 얼마 전 지인의 혼사에 가다 호텔 내 도로에서 대구에서 자치단체장을 역임한 분을 보게 됐다.만나 인사한 게 아니고 도로 건너에서 짧게 눈이 마주친 후 피해 지나갔다. 그와는 사회부 기자 시절 좋은 인연보단 속칭 '까는 기사나 칼럼'으로 애를 먹인 일이 몇 차례 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피했는지도 모르겠다.재임 시절 참모들을 거느린 화려함 대신 혼자 수수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서글프게 다가왔다.이번 지방선거에 도전했다가 공천 과정에서 사퇴한 고위 공직자 출신의 한 후보는 "자치단체장이 되는 길은 능수능란한 정치인을 원했으나 서툴고 어리석은 정치 초보에게는 어려운 길이었다"고 아쉬워했다.고시 출신인 그는 공직자로 장밋빛 길을 걸었기에 대구경북의 여론 주도층으로부터 보수 정당의 공천을 받을 것으로 당연시됐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사전 여론조사 결과 그의 고향 사람들은 화려한 이력을 지닌 그를 외면하고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자신들과 함께한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행정전문가로 인정받으며 화려한 공직 생활을 한 그가 받은 상실감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비단 이날 당선된 지방 권력뿐이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참담한 국가권력은 얘기해 봐야 소용없는 단계까지 온 것 같다. 검·경과 고위 공직자, 군 장성 등 정부 권력자와 법원, 국회, 종교지도자, 재벌로 불리는 경제 권력자도 마찬가지다.권력을 내려놓고 나서 무상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일찍 등지는 인사도 여럿 있었다.권력의 달콤함이야 설명이 필요 없다. 허약한 체질로 나약해 보였던 공직자가 자치단체장이 되고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친분이 있었던 이 인사에게 "무슨 보약을 먹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일이 힘들고 민원이 쏟아져도 어디에선가 숨은 에너지가 나오더라. 보약을 챙겨 먹지 않아도 그냥 엔도르핀이 돋는다. (자치단체장이) 되면 안다"고 했다.한 자치단체장은 대구시 공무원 시절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한직을 맴돌았다. 그는 고시 출신인데도 승진이 늦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비관적인 말을 수시로 내뱉었다.그럼에도 그는 (경쟁 상대인 고위 간부들이 비리로 줄줄이 옷을 벗는) 시대를 잘 만나 승진을 했고 부단체장을 거쳐 민선 단체장이 되는 영예를 누렸다.오늘 대구경북에서도 525명의 지방 권력자를 배출한다. 재선, 3선으로 그동안 누린 권력을 이어가는 행운아도 있고 새내기도 탄생한다.기자 생활을 통해 숱하게 권력자의 탄생과 퇴장을 지켜봤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나 편견일 수도 있지만, 광역지자체 5급 담당(계장)으로 옷을 벗은 사람이나 2, 3급 실·국장(부단체장)을 하고 단체장에 오른 사람의 업무 능력 차이는 크게 없다.주변 상황 등 정치적으로 시대를 잘 만났거나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경제력에 의해 권력을 얻었을 뿐이다.이번 권력자들은 부디 후보자 때 외친 지역민을 위한 혁신과 봉사에 매진하길 바란다.

2018-06-13 05:00:00

[시각과 전망] 포항~경주 호국벨트 되살려야

1950년 9월 17일, 국군 제3사단 22연대 1대대 분대장이었던 연제근 이등상사가 8명의 특공 대원들을 이끌고 형산강을 건넜다. 6·25전쟁이 일어나 3개월째에 접어든 즈음, 국군은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패퇴를 거듭했고 낙동강과 형산강에서 필사의 방어전을 벌이던 상황이었다. 형산강 방어전 1차 전투에서 패해 북한군에 포항을 내준 국군은 전열을 정비해 포항 수복에 나섰고 연제근 이등상사의 특공대는 그 선봉에 나섰다.연제근 이등상사와 특공 대원들은 수류탄을 몸에 매달고 물이 불어서 가슴 높이까지 오는 물살을 헤치며 나아갔다. 북한군의 무차별적인 사격이 이어져 연제근 이등상사는 어깨가 관통당하는 중상을 입었지만, 그는 끝까지 전진하여 수류탄 3발로 적의 기관총 진지를 파괴한 뒤 장렬히 전사했다. 다른 특공 대원들도 함께 산화했다. 이들의 희생으로 국군 22연대는 형산강을 건너 다른 국군 부대와 함께 북한군을 몰아내고 포항을 탈환했다. 이 전투는 이후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포항 해도근린공원에는 연제근 이등상사와 특공 대원들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포항과 경주는 칠곡, 영천, 영덕과 함께 낙동강 방어전을 치열하게 치른 호국의 고장이다. 6·25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계~안강 전투'와 '기계~포항 쟁탈전', '안강~포항 피탈전' 등의 중요한 전투들이 벌어졌다. 학도의용군 71명이 북한군의 침공을 저지하다 산화하기도 했다. 이를 기리기 위한 전적비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 학도의용군 전적비는 현재 포항여고 정문 앞에 있고 포항 송도동 코모도호텔 맞은편에는 포항지구 전투 전적비가 있다. 북구 용흥동 탑산에는 포항지구 전적비가 들어섰고 덕수공원과 구룡포에 각각 충혼탑과 각종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포항 기계면 성계리에는 기계·안강지구 전투 전적비가 있다.국가보훈처와 경북도는 2008년에 낙동강 방어선의 주요 지역인 '칠곡~영천~경주~포항~영덕'을 하나로 묶는 호국평화벨트화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칠곡의 낙동강 호국평화공원, 영천의 호국안보테마공원을 만드는 성과를 낳았고 영덕은 장사상륙작전 기념 문산호복원사업을 벌였으나 부실 공사로 방치돼 있다. 그러나 포항과 경주는 이 사업에서 아예 빠져 있는데 당시 부지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사업 계획도 불투명하게 제출돼 누락됐다. 포항시와 경주시는 사업 보완에 나서 재추진할 의지는커녕 2013년에 호국평화벨트사업 자체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쯤 경주에는 기계안강전투기념공원, 포항에는 전승기념공원이 들어서 있을 것이다.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접어드니 호국의 도시임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포항시와 경주시의 허술한 과거 행정이 떠오른다. 특히 포항은 칠곡 다부동 전투와 함께 밀리던 국군이 반격의 계기를 삼은 격전들이 치러졌던 곳이다. 가슴 아픈 학도의용군들의 사연과 영혼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해병대 1사단이 주둔해 있는 군사 도시로서 호국보훈의 얼이 짙게 숨 쉬는 곳이다.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는 포항시장과 경주시장은 호국보훈기념사업에 다시 나섰으면 한다. 도시의 발전은 역사와 특징을 잘 살림으로써 이뤄져야 바람직한데 포항과 경주는 호국보훈의 의미를 더 많이 되살려야할 도시들이다. 국가보훈처와 경북도도 반쪽짜리에 그친 호국평화벨트사업을 완성시켜야 할 것이다.

2018-06-06 05:00:00

최정암 서울지사장

[시각과 전망] 강효상·정동영 의원에 박수를

2015년 1월 28일 대구에서는 흐뭇한 기적이 일어났다. 발단은 그보다 약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연말, 대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한 젊은이가 가방 속에 있던 돈다발을 뿌렸다. 돈은 대로변에 흩날렸고 길 가던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돈을 줍느라 일대 교통이 한동안 마비됐다.뿌려진 돈은 5만원권으로만 160장, 800만원이었다. 정신 질환을 앓던 젊은이가 고물상을 하며 힘겹게 생활하는 할아버지·아버지로부터 자동차를 산다고 받은 돈 중 일부였다.이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이튿날부터 돈을 주워간 사람들이 하나, 둘 지구대에 반납하기 시작했고, 20일 좀 넘은 기간 모인 돈은 285만원. 남은 돈은 515만원이었지만 돌아온 돈만으로도 대구는 양심도시로 부각됐다.기적은 그 직후 일어났다. 28일 신문 발행 준비에 바쁜 저녁 시간에 매일신문사를 찾은 수수한 옷차림의 중년 남성. 편집국 앞을 서성이다가 사회부 중견 기자에게 노란 봉투를 맡기고는 황급히 사라졌다.기자는 자리로 돌아와 봉투를 열어보곤 깜짝 놀랐다. 노란색 고무줄에 묶인 5만원권 100장과 2009년식 다이어리를 찢어 적은 메모지가 들어 있었다.'돌아오지 못한 돈도 사정이 있겠지요. 그 돈으로 생각하시고 사용해주세요.' 딱 30자짜리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시민들은 285만원이나 돌아왔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지만 그분은 돌려주지 못한 사람들의 아픔을 헤아렸던 것이다.이 사연은 메모지 사진과 함께 1월 29일 자 본지 1면 톱기사로 실렸고, 전국 대부분의 언론이 본지 기사를 전재하다시피 인용해 보도했다.3년이 지난 사연을 다시금 소개하는 것은 요즘 다시 도마 위에 오른 네이버의 갑질 때문이다. 그때 네이버는 본지의 특종 보도 대신 서울소재 신문사가 매일신문을 인용 보도한 것을 메인 화면에 실었다.본지의 항의에 "인링크 제휴사가 아니어서 매일신문 기사는 실을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이는 지역 일간지는 전국지를 능가하는 발행 부수와 인지도, 영향력을 갖고 있어도 '지방지의 하나'라는 오만한 인식에 다름아니다.지금도 지역 언론은 아무리 좋은 기사를 써도 포털 메인 화면에 소개되지 못한다. 이를 거의 베낀 수준의 인링크(포털이 언론사 기사를 자체 편집하는 시스템) 제휴사 기사를 우선 배치한다. 지역 언론은 인링크 제휴 대상에서 제외돼 있고, 단지 검색으로만 포털에서 볼 수 있다.이런 상황에서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이번에는 정치권과 서울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아웃링크(포털에서 기사를 검색하면 해당 언론사 사이트로 이동하는 시스템)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다.그러나 포털들의 지역 언론에 대한 홀대와 멸시가 개선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아웃링크만 도입되면 지역 언론은 완전히 설 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포털 메인화면에 지역 언론의 기사가 올라가 있지 않으면 아웃링크로 넘어갈 가능성은 제로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역 언론 기사를 무시하는 포털이 그때 가서 개과천선한다는 보장이 없다.최근 강효상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발의한 '지역신문·방송 기사를 포털 첫 화면에 게재하는 법률안'과 정동영 민주평화당 국회의원이 낸 '이용자의 위치정보를 바탕으로 지역신문·방송의 기사를 일정 비율 게재하는 법률안'이 통과돼야 하는 이유다.지역 언론의 필요성과 위기를 절감, 용기 있고 시의적절한 법률안을 발의한 두 국회의원에게 박수를 보낸다.

2018-05-30 05:00:00

[시각과 전망] 모두 가난해지자는 사람들

좌파들은 자본주의가 부(富)의 대물림을 강화하고 계층 이동을 어렵게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경제 시스템 중에 자본주의만큼 계층 이동을 유연하게 해 준 시스템은 없었다. 과거 봉건사회는 정치권력을 장악한 집단이 경제력까지 장악했다. 고려왕조, 조선왕조, 유럽의 왕조들이 다 그랬다. 공산주의 사회도 마찬가지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집단이 경제 시스템과 재산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 북한이 그 예다. 왕조국가와 공산국가에서 정치권력을 장악한 자들은 권력 세습을 통해 대를 이어 부를 누리고, 다수 국민들은 대대로 가난에 허덕인다. 이는 역사 속에 그리고 38선 너머에 생생하게 실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자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이익을 남기고 부를 축적할 수 있다. 새로운 산업이 나오면 새로운 부자가 나온다. 기존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되기도 하지만, 부자가 쇠락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기업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IMF 이후 우리나라 30대 대기업 중 16개가 사라졌다. 우량기업으로 인정받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법인 중 40%가 실적이 나빠 상장폐지 됐다. '부익부 빈익빈'을 흔히 자본주의 병폐로 여기지만, '부익부 빈익빈'은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전에 훨씬 심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줄었다. 세습 정치권력으로 부를 유지,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금방금방 관심이 변하는 시장의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왕조사회, 공산주의 사회에서 '한번 노동자는 평생 노동자'에 머물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해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 작은 업체로 시작해 큰 기업을 일군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에 반해 공산국가에서 잘 먹고 잘살자면 당 간부의 자식, 혁명가의 핏줄로 태어나야 한다. 북한과 중국의 핵심 권력자 중에 권력자의 자손이 아닌 사람이 있는가? 좌파들은 자본주의 때문에 빈부 격차가 커졌다고 주장한다. 빈부 격차가 커진 것은 경제 총규모가 커진 데 따른 현상이며, 이는 자본주의 발달이 원인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시장경제에 과한 제약을 가하거나, 왕창 걷어 왕창 나누자는 사회주의적 발상은 모두를 가난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부도덕하다. 전교생 100명이 각각 100점부터 10점까지 획득한 점수를 모두 더한 뒤 평균 점수를 내 모두가 같은 점수를 가져간다고 치자. 시험을 칠수록 평균 점수는 낮아질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빼앗은 재산(세금)을 관리하고 분배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정치권력을 장악한 집단이다. 그들은 걷은 세금을 축적하거나 투자하는 대신 모조리 써버린다. 어떤 나라가 가난하다면, 이는 자본 축적이 적고 투자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세계 산업 규모는 갈수록 커지기 마련이고, 자본 축적과 투자가 약한 국가는 쇠락할 수밖에 없다. '과도한 빈부 격차'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타인의 가난과 고통에 아픔을 느끼는 것은 인류의 보편 심성이다. 우리의 초점은,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서도 개인의 창의성과 노력을 어떻게 자극하고 보장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부의 평등에 대한 열망은 모두를 불성실하고 부도덕하게, 그리고 가난하게 만들 뿐이다.

2018-05-23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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