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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암 서울지사장

[시각과 전망] 시니어 안전운전 캠페인이 필요한 이유

#이달 초 광주에서 73세 할머니가 몰던 승용차가 가로수를 들이받아 동승한 2명이 숨지고 3명이 크게 다쳤다. 비슷한 시기, 같은 도시에서 75세 할아버지가 운전하던 차량이 식당으로 돌진했다.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잘못 밟았기 때문.#지난달 서울 강남에서 96세 할아버지가 몰던 차에 30대 여성이 치여 숨졌다. 할아버지는 기둥을 들이받은 뒤 후진하다가 이 행인을 치었다.#최근 남해고속도로에서는 저속으로 운행하던 72세 운전자의 트럭을 뒤따르던 차량이 미처 피하지 못해 뒤차 운전자가 사망했다.최근 우리가 접한 대표적인 시니어 교통사고 사례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2013년 1만7천590건에서 지난해 2만6천651건, 5년 사이 50% 이상 증가했다.시니어 운전자들의 교통사고 발생률이 급증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75세 이상의 경우 면허 갱신 때 교통안전교육을 이수하도록 했고, 적성검사 주기도 5년에서 3년으로 줄였다.그러나 단순히 검사 기간을 단축하고 일회성 교육만 추가한다고 고령 운전자 사고가 감소할까.시니어 교통사고 줄이기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대책에 답답해하던 지방자치단체들은 저마다 묘안 짜내기에 나서는 모양새다.서울시는 15일부터 면허증을 반납하는 만 70세 이상 고령 운전자 1천 명을 선발해 10만원이 충전된 교통카드를 지급한다.부산시는 지난해 7월부터 면허증 반납자에게 10만원 교통카드와 대중목욕탕, 음식점 할인카드를 제공, 반납 인원이 5천 명을 넘었다. 경기도도 면허증 반납 시니어에게 하반기부터 10만원대 교통카드 지급을 검토 중이다.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부산 서울 경기 등과는 달리 대구경북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그래서 대구시와 경북도에 제안해본다. 이미 일본이 시행해 효과를 보고 있는 제도들이니 의심은 거두시라.먼저 고령 운전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장애우·임산부·초보 운전자를 배려하듯이 시니어 운전자도 보호받아야 한다. '시니어 운전 스티커'를 달게 하고 일반 운전자들이 이 차를 배려하도록 하자. 도로교통공단, 손해보험협회와 공동사업을 펼치면 예산도 절약할 수 있다.나아가 관공서, 공공기관, 대형마트 등에 시니어 주차 구역도 설치하자. 시내버스를 타면 노약자 좌석이 있듯이 스티커를 단 시니어 운전 차량들이 편하게 주차할 수 있도록 하자. 성과를 봐가면서 점차 아파트 등으로 확대할 수 있다.이런 배려를 한 뒤에 면허증 반납을 유도하면 훨씬 많은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면허증 반납도 타 시·도가 하고 있는 10만원 대중교통권 이외에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세제 혜택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안전교육이 강화되고 적성검사 주기가 단축된다고 급작스러운 교통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는 없다. 시니어 운전자를 보호하고, 이를 토대로 고령 운전 인구를 줄여나갈 때만이 시니어 교통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지자체가 이렇게 열성적으로 움직인다면 정부도 지금처럼 마냥 책상 앞의 정책만 내놓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2019-03-20 06:00:00

김수용 편집국 부국장

[시각과 전망] 조합장 선거, 조용한만큼 깨끗할까

조용해서 더 불안하다. 이번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오늘 선거가 치러지는데, 유난스럽다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물론 지난달 말 후보자 등록을 받기 전부터 '돈 선거' 얘기도 나왔고, 적발 사례도 심심찮게 언론에 등장했다.조합원 28명에게 현금 1천290만원을 뿌린 혐의로 한 축협 조합장 출마 예정자 등 2명이 구속됐고, 한 농협 조합장 후보자의 장모는 사위의 출마 사실을 알리고 지지를 부탁하면서 조합원 10명에게 30만원씩 300만원을 돌렸다가 검찰에 고발됐다. 한 조합원이 선관위에 자수하면서 금품 살포가 밝혀졌고, 선관위가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SNS를 통한 자수 권유와 탐문 조사에 나서자 나머지 9명도 차례로 자수했다.이런 사례는 전국적으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넘쳐난다. 하기야 전국 1천344곳의 조합장을 동시에 뽑는 선거가 치러지는데, 이런 불·탈법이야 예상 못 했던 바도 아니다. 경북 180개 조합(농협 148곳, 수협 9곳, 산림조합 23곳)과 대구 26개 조합(농협 25곳, 산림조합 1곳)도 오늘 새 조합장을 뽑는다.그런데 이번 전국동시조합장선거는 4년 전인 2015년 치러진 제1회 선거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당시만 해도 첫 동시조합장선거였던 탓에 세간의 관심도 매우 컸다. 그 때문에 얼핏 시시콜콜해 보이는 일들까지 이면을 들추고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들이 적잖았다. 그 배경에는 이전투구식 내부 고발이 한몫했다.조합장 선거는 예비 후보자를 뽑거나 후보자 토론회를 여는 등의 예열 기간이 아예 없고, 선거운동 기간도 워낙 짧은 데다 후보자 본인 외에는 선거운동에 나설 수도 없다. 조합 내부 사람이 아니면 유권자가 누구인지, 후보로 나선 사람이 어떤 경력을 가진 인물인지도 모를 정도다.조합장의 성추문, 공금 횡령, 조합 판매상품 입점권을 둘러싼 금품 수수, 직원 채용 및 승진을 둘러싼 인사 청탁 등을 내부 고발 없이는 알 수 없다. 기존 조합장뿐 아니라 다른 후보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조합 이사나 주요 보직자들이 출마하기 때문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내부 직원들만큼 훤히 아는 사람도 없다.그런데 올해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는 이런 내부 고발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선관위나 검·경이 발표한 선거사범 통계치를 보면, 지난 선거보다 금전 살포 등 불·탈법 사례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뭔가 찜찜한 기분이 남는다.어두운 면을 들춰봐야 별 관심을 끌지 못하다보니 결국 용기 낸 사람만 찍혀서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팽배한 것은 아닐까. 워낙에 기존 조합장들이 유리한 선거판이다보니 괜스레 파열음을 냈다가 자기 자리 보전도 힘들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돈, 식사, 물품 등을 제공받은 조합원이 이를 신고할 경우 포상금 지급 최고액은 3억원이다. 2015년 제1회 동시선거 때에는 83명에게 4억9천800만원의 신고포상금이 지급됐다. 그리고 제1회 선거 당선인 중 52명이 위법행위로 당선 무효 처리됐다.부디 이번 선거에선 당선 무효 처리가 적게 나오기 바란다. 그런데 사법 처리 당선인이 적어졌다고 해서 과연 선거가 그만큼 깨끗했다고 믿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19-03-13 06:30:00

김교성 경북본사장

[시각과 전망] 자결로 일제 치욕 씻은 임청각의 아들

매일신문 경북본사 인근에 안동 임청각이 자리한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가들의 몸부림이 태동한 곳이다. 임청각의 주인인 석주 이상룡(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선생은 99칸 보금자리를 팔아 중국에서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했다.임청각은 우리 국민에게 자랑스러운 곳이다. 임청각이 마련한 방명록을 보면 전국에서 꾸준히 많은 국민이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버스 대절한 관광객들이 들르는 코스가 됐으며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손을 잡고 애국 교육을 하는 가족을 만날 수도 있다.석주 선생 일가가 중심이 된 임청각 독립운동은 지금의 안동댐 아래로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처럼 거침없었다. 독립운동 서훈자 11명을 배출한 임청각의 독립운동은 석주 선생 일대기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임청각 여성들이 조명받기도 했다.조국 광복을 이끈 임청각 사람들에 대한 글과 자료를 보면서 어느 날부터 독립을 앞두고 자결한 석주의 아들 이준형 선생을 주목하게 됐다. 이준형 선생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이준형 선생의 삶을 추적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단했던 일상사를 엿볼 수 있다.석주 선생이 1911년 54세에 일가 50여 가구를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할 때 이준형은 36세였다. 사실상 이준형은 군자금 마련 등 석주의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면서 가족 살림을 책임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쓴 '선부군유사'(이상룡의 일대기)는 생생한 독립운동사로 남아 있다.이준형은 1932년 석주 선생이 길림성 서란현에서 서거한 뒤 가족들과 함께 귀국했다. 하지만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임청각 종가를 보존하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일제의 감시에다 중앙선철도 건설로 종가 입구 30여 칸이 잘려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가 된 이준형은 무너진 자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1942년 9월 이 선생은 지금 안동댐 수몰 지역이 된 월곡면 도곡리 범계정에서 동맥을 끊어 자결했다. 67세 생일날이었다."일제 치하에서 하루를 더 사는 것은 하루의 치욕을 더 보탤 뿐이다." 아들 이병화에게 가족 살림을 당부한 뒤 쓴 이준형 선생의 유서는 피가 묻은 채로 전해진다. 장렬했다는 표현이 맞을까. 일제의 끈질긴 협박과 변절의 요구에 맞선 이준형 선생의 비분강개함이 묻어난다. 이런 아픔 덕분에 우리는 독립의 염원을 이뤘고 임청각은 일부 훼손됐지만 고성 이씨의 후손이 보존하고 있다.임청각이 원래대로 보존된다고 하니 석주 선생 일가의 독립운동은 더 빛을 발할 것이다. 고성 이씨 21대 종손인 이창수 씨는 "집안 어른들의 희생정신이 나라 사랑 정신으로 이어지면서 임청각이 '교육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했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재현되고 있는데 현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 특성상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형편이다.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 독립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한 채 우리는 분단과 6·25전쟁을 겪었고, 오랜 북한의 위협에다 최근에는 좌우 이념 갈등으로 내홍에 빠져 있다. 임청각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눈앞 이익에 쫓겨 하루살이를 하는 게 아닌가. 이 시대의 대의가 무엇인가. 나라와 조상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

2019-03-06 06:30:00

이춘수 동부본부장

[시각과 전망] 남북 명운 걸린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7,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다. 회담의 종착지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은 달라진다. 회담 결과에 대해 미국 대부분의 언론과 정치인, 정보기관은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이번 회담에서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합의문에 담긴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진전이 있어야 한다.한미 양국이 그리는 북한 비핵화 로드맵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검증→핵무기·핵분열 물질 및 영변 외 시설 등에 대한 포괄적 신고와 완전한 핵 폐기'다.한국과 미국으로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최선이지만 북측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핵은 생존의 문제다. 김 위원장은 세습 왕조 체제를 보존하기 위해 핵을 만들었다. 북측 입장에서 보면 핵으로 미국 본토를 때릴 능력을 가지는 것은 미국을 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의 한반도 개입이나 북에 대한 무력 사용을 막기 위한 것이다. 미국의 개입 저지, 억제 수단인 셈이다. 따라서 김정은이 미국 본토에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핵 무력 완성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선택이다.반면 미국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은 북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 본토에 도달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서 "북한은 그동안 우리를 등쳐 먹었다. 다시는 수십억달러를 퍼주지 않겠다"고 했다.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도 상원 정보위에서 "김정은은 자신의 정통성과 체제 유지 때문에 핵 폐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이 때문에 북미 정상이 적정선에서 대충 타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완전한 핵 폐기 대신 핵 동결로 가고 ICBM만 없애는 수준의 합의 이른바 스몰 딜(small deal)을 하는 경우다. 대신 미국은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부분적인 대북 제재 완화와 종전선언 등을 해주는 것이다.이 경우 문재인 정부는 어떤 선택과 반응을 보일까? 문 정부는 애써 "전쟁과 대립에서 평화와 공존으로, 경제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신한반도체제가 구축됐다"고 자위할 것이다.그러나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은 점증할 것이다. 북측의 핵 동결 다시 말해 북이 기존의 핵을 보유하게 하는 어정쩡한 협상 결과가 탄생한다면 국민들로부터 핵무장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이는 '혹 떼려다 혹 붙인 꼴'로 미국 정부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어서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어둡게 하고 있다.비관적이지만 예상을 뛰어넘어 북측이 비핵화로 간다면 이는 결국 개혁 개방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김정은이 감당할 수 있을까? 베트남이나 중국과 달리 1인 세습 체제인 북한의 개혁 개방은 체제 수호의 가장 큰 위협이다. 이 또한 회담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미국이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진전을 전제로 종전선언과 연락사무소 개설 카드까지 내민 것으로 알려졌지만, 북한이 선뜻 받아들일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기대치를 밑돈다면 문 정부는 존립을 위협받을 것이다. 문 정부는 북이 고립과 자멸의 길을 걷게 압박하든지, 아니면 미국으로부터는 외면받고 북으로부터는 핵 위협을 받는 상황 가운데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2019-02-26 17:56:14

최정암 서울지사장

[시각과 전망] 대통령을 궁지에 빠뜨린 부산시장

서울에서도 가덕도 신공항이 화제다. 화제라기보다는 비판이 주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부산경제인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한 발언 때문이다. 오거돈 부산시장 등이 가덕도 신공항을 건의하자 "(부산·울산·경남 자체 검증 결과에 대해) 5개 광역단체장 뜻이 하나로 모인다면 결정이 수월할 것이고, 생각들이 다르다면 부득이 총리실 산하로 승격해 검증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그런 논의를 하느라 사업이 표류하거나 늦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부산은 대통령이 자신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환영 일색이다. 부산 정치권도 여야를 떠나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가덕도 신공항이 될지 안 될지 현 단계에서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부산이 고향 출신 대통령을 궁지에 빠뜨렸다는 점이다. 그것도 야당이 아니라 여당 출신 시장이 말이다.대통령만 곤란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향후 정부, 여당에 부담이 될 공산이 크다.엄청난 산고 끝에 결정된 '김해공항 확장, 대구공항 통합이전' 정책을 뒤집어엎고 이 정부가 부산 민심을 얻기 위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강행한다고 치자. PK를 제외한 전국 여론은 고향 퍼주기,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 행정이란 비판이 고조될 것이다. PK는 외톨이가 된다는 뜻이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 내놓은 발언이 결국 더불어민주당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격이다.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결정되면 과연 부산의 민심이 달라질까. 신공항은 앞으로 아무리 빨라도 10년 뒤의 일이다. PK에서 작년 지방선거를 싹쓸이할 때와 지금의 민심이 다른 건 먹고사는 문제에서 비롯됐다. 서민들 삶의 질이 팍팍해져서다. 대통령과 민주당을 지지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적폐 정권 때보다 못하다는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경제를 살리지 못한 청와대와 정부, 집권 여당의 무능으로 지지율이 급락했는데 공항을 건설한다고 해서 부산 시민들이 지지를 보낼까.대통령을 모신 자리에서 부산은 공항 문제를 거론은 해도 답변 요구는 말아야 했다. 예의에도 어긋난다. 지지율이 급락하자 고향으로 달려간 '심성 고운 대통령'이 시장과 경제인들의 거듭된 강요성 질문에 긍정적으로 읽힐 수 있는 답변을 안 할 도리가 없었다.이명박 정부 때와 박근혜 정부 때 영남권 신공항으로 밀양을 지지한 대구경북은 객관적 평가에서 가덕도를 내세운 부산에 비해 두 번이나 높은 점수를 받고도 버림받았다. 그래도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는 대통령을 닦달하지 않았다.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드는 게 대구경북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오히려 이들은 분노한 민심을 달랬고, 언론을 설득했다. 그게 광역단체장이 할 일이다.광역단체장은 정부를 공격하고 정치권을 질타해도 대통령이 빠져나갈 구멍은 마련해둬야 한다.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오거돈 부산시장이 자신의 공약인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만 집착한 나머지 부산의 신성장동력을 찾을 기회를 잃어버릴까 봐 걱정된다. 더욱이 고향을 도우려던 대통령과 집권 여당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단체장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PK 출신 기자로서 심히 우려스럽다.

2019-02-20 06:30:00

조두진 문화부장

[시각과 전망] 저출산 대책에만 매달릴 때가 아니다

2018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97명일 것으로 예측됐다. 합계출산율이 1.0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통계조사 이래 처음이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하는 것인데, 인구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은 2.1명이다. 통계청은 합계출산율 급락으로 총인구 감소 시점도 당초 예상했던 2028년보다 앞당겨질 것이라고 전망했다.지난 12년간 정부가 저출산 대책 명목으로 쓴 예산은 150조원이 넘는다. 그럼에도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졌다. 출산장려금, 양육수당, 학자금 등등으로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다.실효성 있는 저출산 대책을 강구해야겠지만, 저출산 대책에만 매달릴 때는 이미 지났다. 이제부터는 저출산과 총인구 감소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인구 감소, 특히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시대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산업화와 함께 세계 각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것은 인구의 힘이었다. 인구 증가 덕분에 생산과 소비가 늘어나고, 생산과 소비가 늘어난 덕분에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워지고, 풍요 덕분에 인구가 더 늘어나는 식이었다. 전쟁으로 치자면 소총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손가락(인구)이 늘어난 덕분에 전쟁에 이겼고, 전쟁에 이긴 덕분에 풍요를 확보하는 식이었다.소총으로 전쟁하던 시대는 끝났다. 적어도 한국이나 유럽연합, 일본, 호주, 미국 등 선진국은 사람 숫자로 경제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인구 증가에 기준을 두고 정책을 짠다.일자리를 예로 들자면 1천만원을 들여 삽 1천 개를 장만하고 1천 명에게 삽질하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식이다. 1천만원을 들여 일자리를 1천 개나 만들었으니 대단한 성과를 낸 것 같지만, 시대착오적이다. 1천만원을 들여 굴삭기 1대를 장만하고, 1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시대에 부합하는 대응이다.육체노동 의존성이 높은 일자리일수록 생산성이 떨어지고, 보상도 낮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에 일자리가 넘쳐나는데도 젊은이들이 그 일을 마다하는 것은 생산성이 낮고, 보상도 낮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유난히 낮은 것도 고학력에 따른 기대 보상과 현실의 차이 때문이다. 굴삭기 면허를 따라고 공부시켜 놓고 손에 삽을 쥐어 주니 취업도 출산도 무너지는 거다.시군 단위 지방정부의 대응도 적절치 않다. 고향이 소멸될지 모른다며 타 지역 사람을 끌어오느라 온갖 유인책을 제시하고, 출산장려금을 퍼부을 때가 아니다. 상주인구 늘리기에 힘쓰는 편보다, 우리 고장에서 돈을 벌고, 우리 고장에서 돈을 쓰는 유동 인구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낫다. 나아가 1만 명 주민이 100억원을 벌기보다 1천 명 주민이 100억원을 버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미래지향적이다. 삽질하는 주민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굴삭기 운전하는 주민을 늘리지 못함을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중앙정부도 마찬가지다. 저출산 대책에 매달려 밑 빠진 독에 물 쏟아부어 될 일이 아니다. 출산 촉진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의 청년 세대들은 본인들의 삶을 가꾸기 위해 살지, 후세를 위해 살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 한 명에게 현금 얼마씩 퍼준다고 출산이 늘어날 리 없다. 인구 감소 혹은 현상 유지를 전제로 정책을 짜야 한다.

2019-02-12 13:47:07

김교성 경북본사장

[시각과 전망] 가족공동체 유지할 지혜 찾자

해가 바뀌고 다시 설이 다가왔다. 어린 시절의 설렘 대신 자식, 부모 된 도리로 설을 맞는다.나이 탓일까. 명절을 맞을 때마다 삶에 대한 고뇌가 깊어진다. 가족공동체 사회에서 미풍양속으로 이어져 온 명절의 의미와 가치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되뇌고 있었지만, 변화는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지난해 추석 연휴 때 일이다. 심심했다. 할 일이 없었다. 이래서 명절에 해외여행을 가는 것인가.예전, 명절에 낚시하거나 가게 문을 열고 장사하는 사람, 공원을 배회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을 비아냥거렸던 일이 현실이 됐다.추석 전, 장모는 대놓고 딸들에게 "친정에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단다. 이번 설에도 마찬가지다. 하나 있는 처남은 빠듯한 외국살이에 명절도 이제 안중에 없다.명절에 처가에 가지 않으면 할 일의 절반이 줄어든다. 좋고 싫음을 떠나 당연시한 처가 방문이 없어진 건 (말로는 귀찮은데 잘됐다고 했지만) 상실감으로 돌아왔다.우리 집도 예전과는 많이 변했다. 조상 제사 모시고 고향 집 근처 선산에 성묘하는 것까지는 이어지고 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꼬마였을 때 추억이다. 집성촌에서 촌수가 높았기에 어른들로부터 인사받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자주 못 본 어른들이 동네 선산에 성묘한 뒤 우리 집을 찾아 아저씨뻘인 나에게 공손했던 모습은 다른 세상의 얘기로 남을 것 같다.우리 세대까지는 그래도 몸에 밴 의무감으로 제사, 성묘까지는 이어질 듯싶다. 하지만 후손들에게 이를 기대하려면 대책이 필요하다.이 시점에서 보면 '제사답'은 미래를 내다본 조상의 지혜로 보인다. 대를 잇는 장손에게 제사를 모시는 용도로 일정한 논밭을 물려줬기에 최소한의 미풍양속이 살아 있는 듯싶다.그러나 이웃 동네를 오가며 일가들이 지낸 제사는 6촌, 4촌 형제로 참가 범위가 좁혀졌고, 이제 가족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주위를 들여다보면 명절에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아예 가족들이 모이지 않는 집이 꽤 많다. 급속히 이뤄진 산업화로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수단이 되면서, 이로 인한 가족공동체 해체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그래도 역과 터미널에 귀성 인파가 붐비는 아직은 조상의 얼을 잇고 미풍양속을 되살릴 희망이 있다.자식 세대에 제사 등 조상 모시는 일을 강요하는 게 맞는 일인지 회의감이 들 때도 있지만 인간의 도리를 지키고 삶의 가치를 높이려면 전통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제사답'을 이을만한 뭔가를 찾아보자. 재산이 있다면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려면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가족 간에 얽힌 사건·사고가 넘쳐나는 혼탁한 세상이다.올 설에는 가족들이 모여 가족공동체를 되살리는 지혜를 찾아보자. 가족공동체는 오랜 기간 효를 바탕으로 유지돼왔다.친구 가족의 사례다. 부인과 딸, 아들을 둔 친구는 명절은 물론 수시로 가족이 모여 식사하거나 여행을 간다고 한다. 아들, 딸이 멀리 떨어져 살기에 불편하고 돈이 들지만 가족이란 이유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2019-01-30 06:30:00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시각과 전망] 환동해에 흐르는 박정희의 눈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도전과 대한민국의 기적은 환동해의 경제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박정희 정부는 1967년 포항종합제철소(현 포스코) 설립을 추진했다. 당시 축적된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 등 우방국들이 차관을 거부하자 박정희는 결국 대일청구권 자금 중 농업지원용 8천만달러를 전용해 가까스로 제철소 건설 자금을 조달했다.신일본제철로부터의 기술 이전과 완벽 시공을 총괄한 박태준 전 포철 회장의 집요한 노력으로 포철은 1973년 6월 제1고로에서 쇳물을 쏟아냈다. 이후 포철은 시설 확장을 거듭했고, 최첨단 파이넥스 공법을 독자 개발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제철소로 발돋움했다. 포스코는 현재 포항시 경제 비중의 70%를 차지하고 있다.1970년대 초반 박정희는 울산 현대자동차로 하여금 수출 가능한 국산 고유 모델을 개발하도록 압박했다. 단순 조립·판매하던 현대차의 고유 모델 개발은 자칫 회사 전체가 결딴날 수도 있는 도박이었다. 하지만 최고 통치자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현대차는 최초의 국산 모델 '포니' 개발에 착수했고 필요한 기술은 세계 곳곳에서 사 오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후 현대차는 독자적인 기술 축적을 향한 험난한 여정에 돌입했다. 끝없는 실패를 반복한 끝에 현대차는 현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울산, 경주 등지에서 현대차가 차지하는 경제 비중은 50%를 상회한다.원자력발전의 숨은 설계자도 박정희였다. 그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수시로 헬기를 타고 가 당시 돈으로 100만∼200만원의 격려금을 놓고 갔다. 이런 지원 덕에 1971년 고리원전 1호기, 1977년엔 월성 1호기 착공으로 이어졌다. 싼값에 전기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원자력발전의 초석을 다진 박정희의 힘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 중단으로 동해안 건설 경기가 살얼음판이다.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대부터 40년 먹거리 산업을 제공한 포항, 울산, 경주 등 환동해권의 현재 상황을 본다면 통곡할 노릇일 게다.포스코가 포항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다지만 각 공단에는 공장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 기업의 주거래 은행은 공장 매물 중개에 바쁘다. 기업이 쓰러져 부실채권을 떠안지 않겠다는 심산에서다.포스코의 전통적인 철강 제품은 중국의 맹추격으로 예전의 독보적인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오늘 신공법으로 출시된 제품이 내일 중국에서 복사품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예전의 비교우위를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다품종,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눈을 돌리고 연료전지, 소재, 화학, 신재생에너지 등 신수종 사업 부문의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경주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부품업체 상당수가 명퇴 신청을 받고 있거나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울산은 현재 석유화학 부문이 버티고 있지만 2017년부터 자동차, 조선업은 저성장기에 접어들었다.'글로벌 톱10'에 드는 우리 경제 규모상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형 혁신가'는 나올 수 없다. 환동해가 다시 한 번 부흥하기 위해서는 포스코와 현대차, 현대중공업, 원자력발전소를 잉태한 박정희처럼 또 다른 혁신그룹이 나와야 한다. 그 역할은 환동해권의 정치, 경제 리더와 정책 브레인들 몫이다. 지역 리더들이 새로운 발상과 기업가 정신으로 달리지 않으면 언젠가 환동해의 쓰나미에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

2019-01-22 16:40:55

조두진 문화부장

[시각과 전망] 친환경 생활에 관한 오해들

1월 1일부터 대형마트나 165㎡(50평) 이상의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됐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마트에서 유상이든 무상이든 비닐봉지를 제공하면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3월 말까지 계도 기간)환경오염이 심각하니 불가피한 조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생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마늘이나 양파는 수확 후 적절히 건조해서 보관하면 상당 기간 저장 가능하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양파나 마늘 까는 걸 싫어하니, 대형마트에서는 깐마늘과 깐양파를 판매한다. 미리 껍질을 까서 내놓으니 신선도와 저장성이 금방 떨어지고, 이를 조금이라도 상쇄하려고 비닐 랩으로 둘러싼다. 이런 비닐은 금지 대상도 아니다.가을 무 역시 흙이 묻은 채로 저온 보관하면 오랫동안 신선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흙 묻은 무를 싫어하니 생산자들은 무를 박박 씻어서 내놓고, 그러다 보니 신선도가 금세 떨어진다. 그래서 또 얇은 비닐로 둘러싼다.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 한 환경보호는 난망한 것이다.일회용 비닐봉지 대안으로 제시되는 에코백이나 플라스틱 장바구니, 일회용 컵 대신 권하는 텀블러에도 함정이 있다.(제품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에코백이 일회용 비닐봉지보다 환경친화적이려면 130회 이상 사용해야 한다. 텀블러가 일회용 종이컵보다 친환경적이려면 1천 회 이상을 써야 한다. 에코백이나 텀블러를 생산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그만큼 환경을 해치기 때문이다.'푸드마일리지'(food mileage)는 식품이 생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운반된 거리에 수송량(t)을 곱한 값을 말한다. 운반 거리가 멀수록, 운반량이 많을수록 환경을 더 많이 해친다. 그래서 우리는 소비지에서 가까운 곳에서 생산한 농산물이 좀 더 친환경적이라고 흔히 생각한다.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농약과 비닐을 사용해 채소를 재배했다면, 운반 거리는 짧지만 환경에는 더 많은 해악을 끼친다. 농약과 농사용 비닐을 만들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생각해보면 된다. 푸드마일리지가 짧다고 곧 친환경은 아닌 것이다.일회용 비닐봉지를 대체할 '친환경 가방'이 시장에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친환경 마크'가 붙은 제품을 쓰는 것이 곧 친환경 생활은 아니다.기업은 '친환경' 증표를 단 제품들이 몇 회나,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해야 일회용 비닐이나 컵보다 환경친화적일 수 있는지를 제품의 유통기한처럼 표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는 친환경이고 뒤로는 환경을 더 해칠 수도 있다.2015년 기준 한국인 1인당 연간 비닐봉지 사용량은 약 414장이다. 온 국민이 하루에 한 번씩 장을 봐도 연간 414장을 소비하지는 못한다. 결국 대형마트나 슈퍼에서 제공하는 운반용 비닐봉지가 핵심은 아니라는 얘기다.생산과 유통, 소비 전반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자면 불편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하고, 그러자면 소비자가 변해야 한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눈길이 향하는 곳을 좇기 마련이다. 더불어 '친환경 제품'이 오염원을 다른 단계, 다른 장소에 전가하는 '가짜 친환경'은 아닌지도 알뜰히 살펴야 한다.

2019-01-08 17:20:29

김교성 경북본사장

[시각과 전망] 기부로 얻는 마음의 명예

대구·경북에서 알아주는 부자로부터 5만원짜리 상품권을 받은 적이 있다. 시골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이 분은 경제인으로 활동하면서 민선 자치단체 의원으로도 족적을 남겼다.그와는 처가 쪽에 친분이 있고, 출입처에서 기관장과 기자로 만난 인연이 있다. 오래전 인사차 그의 회사에 들렀는데 손때 잔뜩 묻은 상품권을 건넸다. 만지작거린 흔적이 역력했다. 지역 사회에서 돈에 인색하기로 소문났기에 대접받은 느낌을 받았다.세월이 흘러 그가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에 가입했다는 기사를 보게 됐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7년 12월 설립한 개인 고액기부자 클럽이다. 1억원 이상을 한 번에 내거나 5년 이내 납부를 약정하면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된다.그는 부인, 아들, 딸 등과 함께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당시 가족이 한꺼번에 가입해 화제가 됐다. 안부 전화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옮기지 못했고 얼마 안 돼 그의 부고를 접했다.운명을 앞두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게 아닐까.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가 생전에 좀 더 일찍 더 많은 기부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매일신문이 매주 화요일 연재하는 '이웃사랑'은 그 이전부터 '燈'(등)이란 컷으로 사회면 등에 실렸고, 사연을 안타깝게 여긴 독자의 성금 기탁이 이어졌다. 매일신문은 성금을 받아 신문에 실린 당사자들에게 전달했다. 1990년대 초 담당 업무를 맡은 기자는 성금을 받은 뒤 간이 영수증을 끊어줬는데 이를 받지 않으려는 익명의 독지가들이 많았다. 성금을 착복하거나 유용할 수 있기에 현시점에선 납득하기 어렵지만, 매일신문에 대한 공신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현재 '이웃사랑'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역본부를 통해 기부 영수증을 발행하고 있다.연말연시 '기부의 계절'이지만 한파만큼이나 기부 손길이 얼어붙었다. 사회복지모금회가 시행(지난해 11월 20일~1월 31일)하는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가 예년보다 낮다고 한다.증가세를 보이던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자도 지난해에는 줄어들었다. 아너 소사이어티 경북 가입자는 2017년 20명이었으나 2018년 14명에 그쳤다.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다. 성금 착복과 유용 등이 뉴스가 되면서 기부금 모금 단체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탓도 있다.기본적으로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가 높아지려면 경제 사정이 좋아져야 하고 기부 단체를 신뢰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만 기부 문화의 확산이 더 필요하다.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은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일에 도움을 주고 싶어 하지만 선행이 남에게 알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들은 자기 일에 열정적이며 기부를 당연한 사회적 책임으로 여긴다. 기부로 즐거워하며 마음의 명예를 얻고자 한다.최근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무대는 개인에서 부부, 가족, 친구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그럼에도 아너 소사이어티를 비롯한 기부자는 여전히 부족하다. 숨어 있는 알짜 부자들의 통 큰 기부가 절실하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오피니언 리더의 기부 동참도 요구된다. 새해에는 내가 아는 이들의 기부 소식을 더 많이 접하길 소망한다.

2019-01-01 18:44:58

김지석 동부본부장

[시각과 전망] 울릉도의 설움

시인 유치환은 1948년에 발표한 시 '울릉도'에서 울릉도를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애달픈 국토의 막내'로 표현했다. 멀리 떨어진 국토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아냈다. 문학평론가들은 유치환이 8·15 이전에는 생의 허무함과 운명에 도전하는 시를 주로 썼으나 광복 직후에는 국토와 민족에 대한 애정과 함께 조국의 앞날이 밝기를 노래했는데 울릉도는 그 상징적인 공간이라고 보았다.70년 전 울릉도는 말 그대로 절해고도였다. 섬 주민들은 육지와 단절되다시피 한 삶을 살았고 화산섬이 빚어낸 자연과 고유의 기후와 식생 속에서 독특한 생활 양식도 만들어졌다. 지금은 왕래 배편도 늘어나고 관광객도 많이 찾아 고립감을 덜 느끼지만, 계절적으로 11월부터 4월 사이에는 파도가 높아 배편의 결항이 잦다. 이 시기에 울릉 주민 중 일부는 포항 등지에 나와 생활하기도 한다.1만여 명이 사는 울릉도는 기이하고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 도동항 입구에 우뚝 서 있는 기암괴석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외국에서 오래 살고 많이 다닌 가수 이장희가 울릉도의 자연에 반해 눌러앉아 살게 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장희의 홍보 덕분인지 몰라도 울릉도에 관광객이 크게 늘었고 청정 지역이라는 점도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울릉도를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자립섬'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시행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2015년에 시작된 이 사업은 민간출자자가 포함된 특수목적법인이 투자해 디젤발전 중심의 울릉군 하루 전력 사용량 19㎿를 지열 12㎿, 풍력 6㎿, 수력·태양광발전 1㎿로 대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1·15 포항 지진의 원인으로 지열발전이 거론되면서 사업이 중단 상태에 접어들었다. 경북도는 지열발전을 풍력 등으로 대체하기 위한 에너지저장장치 구축 사업비 140억원과 도서 지역 전력거래단가 우대 등의 지원을 정부에 요청했지만 외면당했다. 정부는 민간사업이어서 공적 자금을 투입할 수 없고 전력거래단가 정책 변경도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정부의 논리가 일견 타당하지만, 왠지 매정한 듯하다. 울릉도는 지금까지 발전사업에서 많이 소외되고 설움을 겪었다. 울릉일주도로가 최근 개통했지만 착공한 지 55년 만에 이뤄졌다는 점이 단적인 예다. 2016년에 정부가 사동항 2단계 항만계획 사업 중 여객선 접안시설을 취소했다가 주민들이 반발하자 되살린 것도 그러하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사업이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맞는데 묵살한 것도 석연치 않다. 이 때문에 전 정권에서 계획된 사업이어서 외면받았다는 뒷말도 무성하다.울릉도가 그간 소외당하였다는 사정을 고려해 '에너지 자립섬' 사업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민간출자 사업이라 하더라도 예산을 지원하고 이익을 적절히 환수하는 방안을 검토하든지, 순수 공적 사업으로 전환해 사업을 재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구가 적은 지방의 SOC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적용, 균형 발전을 추구하고 있는데 울릉도 에너지 자립섬 사업은 경우가 좀 다르더라도 많이 소외된 지역을 배려해 발전을 촉진한다는 차원에서 정부의 방침이 재고되어야 한다. '애달픈 국토의 막내'의 애달픔을 달래주면 좋겠다.

2018-12-25 16:18:55

최정암 서울지사장

[시각과 전망]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은 민심역행이다

요즘 지상파 방송을 보다 보면 상당수 프로그램이 2부작이다. 1부에 이어 60~90초 광고가 나오고 다시 2부가 이어진다. 전에는 광고 없이 한 번에 끝냈던 것을 "60초 후에 이어집니다" 등의 자막과 함께 광고가 나온다. 이렇게 하면 시청자 이탈 방지 효과가 프로그램 전후 광고보다 4배 이상 높다고 한다. 현행법상 지상파의 중간광고가 허용되지 않지만 정부가 이를 가장한 프리미엄광고(PCM)를 방치했기에 가능하다.그뿐이 아니다. 최근 '드라마 한 회당 PPL(간접·협찬광고)이 57개에 이른다'는 서울 YMCA 보고서도 있다. 아예 광고하듯이 드라마 대사가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부가 방송계 요구를 전폭 수용해서다. 이로 인해 방송 광고 수입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정부는 '꿈의 주파수'로 불리는 700㎒대 부여, PCMPPL 허용 등 지상파에 해줄 수 있는 건 거의 다해줬다.그런 정부가 이제는 아예 지상파 방송 중간광고를 전면 허용하겠다며 입법예고에 들어갔다. 방송 환경 변화로 지상파의 경쟁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지상파에만 중간광고를 금지하는 건 과도하다는 얘기다.정부 스케줄대로 간다면 40일간의 입법예고와 규제개혁위원회 심의, 국무회의 등을 거쳐 이르면 내년 4월 실시될 예정이다.정부의 이 방침에 대해 지상파를 제외한 신문, 비지상파, 인터넷 매체 등 거의 전 언론이 반대하고 있다. 특히 진보적인 언론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조차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간광고 허용과 같은 땜질식 처방이 지상파의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해야 방송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공적 역할을 강화할 수 있는지 근본적 방법 강구가 먼저라고 비판한다.언론기관이나 유관단체만 지상파 중간광고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정부는 걸핏하면 촛불 민심을 내세운다. 적폐 정권을 몰아내고 현 정부가 들어선 것은 민심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에 대해 압도적인 반대(60.9%, 10월 리얼미터 조사)가 나왔다. 민심이 이런데도 강행하겠단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야만 민심인가.지상파에 중간광고가 도입되면 그러잖아도 상황이 어려운 신문 업계는 큰 타격을 입는다. 한국신문협회 분석으론 중간광고가 도입되면 지상파 방송은 해마다 1천114억∼1천177억원의 수익을 더 올리지만, 신문 광고비는 매년 201억∼216억원씩 감소한다. 매체 간 불균형이 급속도로 심화된다.PCMPPL광고에 이은 중간광고 허용은 지상파에 대한 엄청난 특혜다. 당연히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방송을 장악한 데 대한 보상이라는 비판으로 연결된다.전국 곳곳에서 정권과 같은 방향을 설정한 지상파들의 보도 행태가 큰 파열음을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방만한 경영과 편향적 방송으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아서 시청률이 하락하고 경쟁력이 떨어졌는데 이를 정부가 나서서 보전해준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특정 세력에 특혜를 주기 위해 민심을 등한시할 때 어떤 결말이 올 것인지는 불보듯 자명하다.

2018-12-19 06:30:00

조두진 문화부장

[시각과 전망] 하고 싶은 대로 말고, 해야 할 일을 하시라

취미나 예술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은 까탈스럽다. 가령, 생업 농부들은 작물에 병이 들면 농약이나 영양제를 투입해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취미로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은 병든 작물을 뽑아내고 새로 심거나 수확을 포기한다. 농약을 쳐 키운 작물은 자신이 원하는 작물이 아니기 때문이다.이름난 도예가들이 멀쩡해 보이는 항아리를 미련 없이 깨부수는 것은 그들이 항아리의 기능성이 아니라 예술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찾는 딱 그 핸드백이 아니면, 크기와 디자인이 비슷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것 역시 핸드백의 기능성이 아니라 정체성에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21세기 한국은 기능성과 예술성 모두를 욕심내도 좋을 만큼 여유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가난 극복에 매진해야 했던(기능성만 살펴야 했던) 앞세대와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 사회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유리 상자 속 사회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문재인 정부는 눈만 높은 견습 도공과 닮았다. 마음에 안 든다며 때려 부수기는 잘하지만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한다. 박근혜 정부와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합의를 '10억엔에 혼을 팔았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다. 나쁜 정부가 혼을 팔았다면, 좋은 정부가 혼을 찾아오면 될 텐데, 문 정부는 전임 정부를 욕할 입은 있어도 더 나은 걸 만들어낼 실력은 없다.드러난 현상만 보는 것도 문 정부의 특징이다. 비정규직제도를 기업이 근로자를 착취하는 제도라며 없애려고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구조, 즉 정규직 해고가 거의 불가능한 한국 사회 노사관계를 조정할 실력이나 생각은 없다.그런 예는 많다.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주 52시간 근무를 법제화해 근로자들의 임금 하락을 야기하고, 기업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해 일자리를 빼앗고 생활 물가를 올렸다.올해 10월 실업률은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청년 실업은 말할 것도 없고, 55∼64세 중장년층 실업률 역시 외환위기 후 처음으로 미국을 앞질렀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며 청와대에 일자리 현황판을 설치하고 50조원 이상을 갖다 붓고도 공무원 숫자와 단기 일자리만 늘렸을 뿐이다. 양극화 해소한다더니, 오히려 심화시켰다. 눈에 보이는 것만 때려잡기 때문이다.북한 비핵화도 마찬가지다. 해외 순방에서 '선(先)대북제재 완화'를 외쳤지만 각국으로부터 '비핵화가 먼저다'는 반박을 받았다. 현실을 외면한 채 하고 싶은 말만 하기 때문이다.가계소득 분배가 계속 악화하고 있다는 통계조사 결과가 이어지자, 정책 수정은커녕 통계청장을 전격 교체하더니, 더 나아가 내년부터 가계동향조사 (방식을) 개편하겠다며 예산을 확정했다.(159억4천900만원)좋은 정부란 장단이 섞인 딜레마를 조정하고 적절한 대책을 내놓는 정부다. 마음에 안 든다고 때려 부수고, 그 손해와 고통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정부는 나쁜 정부다.국가 경영은 성공해도 저 홀로 성공하고, 실패해도 홀로 실패하는 은둔 예술가의 작업이 아니다. 성과가 없어도 그만인 취미 생활도 아니다. '우리 이니(문재인 대통령)'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하시라.

2018-12-11 16:24:40

김교성 경북본사장

[시각과 전망] 스포츠 신화의 몰락

야구는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가 됐을까. 컬링이 올해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인기 종목으로 떠오른 이유는.야구와 컬링은 경기 내내 빠른 두뇌 회전을 해야 하는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머리가 좋아야 하는 운동이다.우리 국민은 머리가 좋기에 야구를 좋아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급속히 알려진 컬링은 머리를 굴리는 국민 정서에 부합했다. 두 종목은 올림픽 메달로 민족적 자긍심을 높였다. 야구와 컬링을 보는 관람객들은 치열한 두뇌 싸움에 빠진다. 공 하나하나에, 스톤이 손을 떠날 때마다 경기 상황이 달라지기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자신과의 도박이다. 나는 이렇게 던지고 치길 바랐는데. 성공과 실패가 순간순간 반복된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관람한다.보는 사람이 이럴진대 선수, 감독 등 종사자들의 머리 회전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두 종목 종사자들이 머리를 너무 많이 굴렸을까. 올해 야구 국가대표팀과 컬링 '팀킴'이 국민 인기를 제 발로 걷어찼다. 이 과정에서 스포츠 성공 신화를 만든 '국보 투수' 선동열과 김경두 경북컬링훈련원 원장은 불명예에 신음하고 있다. 그들 삶의 뿌리가 뽑혀 나간 형국이다.스포츠의 가치를 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성적으로 대변되는 스포츠 신화 탄생은 이제 국민 안중에 없다. 성공을 가늠하는 잣대가 성적(메달)이 아니라 공정한 과정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인권과 투명한 돈 처리란 항목이 가세하면서 스포츠계의 기존 방식을 박살 내고 있다.한국 스포츠의 세계화를 이끈 성과주의 스포츠의 몰락이다. 일정한 인권 제한과 자유로운 돈 처리가 성과주의의 바탕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선동열은 선수 시절의 영광과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거둔 업적을 올해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면서 모두 잃어버렸다.물론 일부 평가이지만, 선 감독은 선수를 부정 선발해 형편 없는 대회의 금메달을 땄고, 선수들이 군 면제를 받도록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선 감독은 소신껏 감독의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으나 무지한 정치권 추궁과 KBO의 책임 전가에 결국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보장된 감독직을 자진해서 사퇴했다.컬링 신화의 산증인 김경두 원장 가족은 팀킴이 던진 호소문에 파렴치한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20여 년간 애써 일군 그들의 업적은 이미 풍비박산 났다.김경두 원장 가족에 대한 팀킴의 호소문 사태는 진실 공방으로 이어지면서 감사 중이다. 김 원장은 맨땅에서 가족 중심으로 살림을 일구다 보니 현재 시점에서 요구하는 인권과 투명함을 지키지 못했을 수도 있다. 더불어 올림픽 후 선수단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선수들과의 마찰은 불가피했다. 좀 들여다보면 팀킴의 호소문은 따져봐야 할 대목들이 있다. 그들에게 컬링을 가르쳐 안정적인 직장과 올림픽 연금 등 큰돈을 안긴 스승에게 던진 호소문은 배은망덕한 행위로 비칠 수 있다. 팀킴이 평창 대회 후 치솟은 인기와 유명세에 사로잡혀 초심을 잃었다는 지적도 있다.김경두 원장은 팀킴을 희생양으로 보고 있다. 그는 어떤 목적을 가진 세력이 팀킴의 배후에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선동열 감독은 왜 오지환과 박해민을 뽑았고, 팀킴은 무엇을 위해 호소문을 냈는지 진실은 감춰진 느낌이다.

2018-12-04 19:23:44

김지석 동부지역본부장

[시각과 전망] 차별은 범죄로 인식되어야

요즘 포항 구룡포 과메기 덕장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찾아와 바쁘게 일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다문화 이주민들의 가족으로 과메기를 손질하는 일꾼으로 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피붙이와 만나고 같이 지내면서 돈도 번다. 다문화 이주민들은 포항과 경주 등에 많이 몰려 사는데 과메기 생산자들에겐 이들과 계절 노동자로 찾아오는 노동자들의 가족은 고맙고 요긴한 존재들이다.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다문화 결혼은 전체 결혼의 8.3%였고 다문화 가정 출생자 비중은 5.2%였다. 결혼 지속 기간이 늘고 이혼율이 줄었다는 긍정적 흐름도 이 통계에서 읽을 수 있다. 다문화 가정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고 튼튼히 뿌리 내릴 수 있도록 국가적, 사회적 관심이 더 커져야 한다.그러나 다문화 가정의 현실이 녹록지만은 않다. 때로는 비극적 사건도 일어난다. 최근에는 다문화 한부모 가정의 중학생이 동급생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지는 사건도 일어났다. 참담하고 가슴 아픈 일이다. 이러한 비극은 다문화 가정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서 벌어지는 슬픈 양상들이긴 하나 다문화 가정에 이러한 불행들이 닥칠 때 사회적으로 취약한 이들의 현실을 되짚게 된다.다문화 가정에 대해 우리 사회는 친절과 차별의 이중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이방인에 대한 이중적 자세가 일반적이며 최근 들어서는 인종 차별과 이민자에 대한 혐오 등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 어느 곳이든 양극화가 심해지고 삶이 더 팍팍해지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일 테지만 씁쓸한 심정으로 인간 심성의 보편적, 부정적 측면이라고 느끼게 된다.우리 사회는 정도가 더 심하게 느껴진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회적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갑질'과 '왕따' '집단 괴롭힘' 등이 허다하게 일어난다. '남혐', '여혐' 등의 위험한 정서가 일각에서나마 존재하고 갖가지 혐오의 정서가 스멀스멀 스며든다. 사회 구성원들의 정서가 갈수록 건강하지 않게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우리 사회는 좀 더 포용적이고 관용적으로 바뀌어나가야 한다. 다문화 가정을 비롯해 나와 다른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앞으로 사회 구성이 더 이질적이고 복잡하게 변하게 될 것이며 그럴수록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포용과 관용의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역사적으로도 로마제국과 프랑스, 미국 등 이방인에 대해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사회는 융성했고 안정을 이뤘다.그에 앞서 차별에 대한 법적인 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 곳곳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요구된다. 얼마 전 차별금지법 도입을 둘러싸고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에 대한 적용 여부로 논란이 크게 일었다. 이 부분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만큼 제외하고라도 인종, 장애, 나이 등을 차별하면 처벌하는 법안을 고려해봄 직하다. 엄격한 처벌을 통해 차별이 잘못된 행위라는 인식을 심은 후 포용과 관용의 분위기가 흐르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2018-11-27 18:44:30

최정암 서울지사장

[시각과 전망] 김병준, 자유한국당, 대구경북

인적 쇄신에 관해 극히 말을 아끼던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19일 비대위를 주재하면서 "오늘은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중심으로 인적 쇄신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했다.한국당 국회의원들은 이를 예사롭지 않은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전원책 파문으로 존재감이 적어진 김 위원장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 그러려면 큰 반발에도 불구하고 당협위원장 교체가 최고의 카드다. 이를 인적 쇄신으로 포장할 수 있다. 그는 내년 2월 전당대회를 치르겠다고 했으니 적어도 그전에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교체하려 할 것이다. 당협위원장이 교체되면 신임 당대표가 선출돼도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다시 바꾸는 게 쉽지 않다. 특히 국회의원이 당협위원장에서 배제된다면 이미지 실추로 인해 재기가 어렵다. 국회의원들이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어떤 국회의원이 배제 대상인지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미 조강특위가 그 범위를 계속 흘리고 있다. 영남권 다선들과 진박이 표적이다.여기서 가장 민감한 쪽은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이다. '공천이 곧 당선'이란 말이 나오는 지역에서 누리기만 한 분들은 젊은 인재들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는 게 조강특위의 기본 인식이다. 특히 지방선거 공천(公薦)을 사천(私薦)함으로써 선거 참패에 일조한 다선의원은 물러나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문제는 이런 논리를 갖다 대면 한국당은 대구경북에서 3선 이상 다선이 전멸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회는 선수(選數)가 대장이다. 아무리 유능해도 초·재선 때는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상임위원장이나 원내대표를 해보려면 3선 이상은 돼야 한다. 대구경북 다선 가운데 차기에 국회직이든 당직이든 중용될 사람은 가능하면 살려야 한다. 그럴 가능성이 없는 다선은 존재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진박 논란은 대구경북을 더 어지럽게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진박들이 활거하면서 한국당은 지난 총선을 망쳤다. 현재 대구경북 20명(대구 7명, 경북 13명)의 자유한국당 지역구 국회의원 중 진박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은 대구 서너 명, 경북 한두 명 정도다. 나머지 사람들은 저마다 진박감별사의 눈도장이라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공천을 청와대가 주도하는데 청와대 및 진박을 자처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은 국회의원이 되지 말라는 것이었다.이런 사람들을 진박의 지원을 받았다고 다 배제하는 것은 단연코 옳지 않다. 비록 장관급으로 있다가 발탁된 바람에 논란에서 자유롭진 않지만 지역 현안을 챙기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은 살려야 한다. 그의 노력과 인맥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어서다. 나름대로 전문성을 갖추고 이익단체들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도 필요하다.하지만 장차관, 청와대 수석을 하고도 어떻게 행동하는 게 지역 발전인지 모르는 사람, 금배지에 눈이 멀었다가 선거구민 외면받자 남의 지역구를 엿보는 사람, 진박 대표였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지원을 받아 당선됐지만 그가 어려움에 처하자 외면하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은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 김병준 위원장이 이런 사람들을 날려야 당도 살고, 자신도 산다.

2018-11-21 06:30:00

조두진 문화부장

[시각과 전망]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

대구시가 국채보상운동 아카이브관(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을 국채보상운동 아카이브관으로 변경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일어나고 있다.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을 박물관으로 용도 변경해 리모델링하고, 그 안에 국채보상운동 아카이브 전시실과 도서실 등을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구한말 일본의 조선 침략 방식은 1592년 일본의 조선침략(임진왜란)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총칼을 앞세웠다면, 근대 일본은 총포와 더불어 자본이라는 신무기로 조선을 침략했다.서양 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조선은 전국 각지의 성(城)을 개보수해 총칼로 맞서고자 했다. 외세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쳐들어오는 데 조정은 여전히 옛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다.대구 사람들은 달랐다. 패러다임 변화를 정확히 이해했고, 자본이라는 외세의 신무기에 대응하자면, 자본이라는 신무기로 맞서야 함을 알았다. 1907년(융희 1) 2월 대구 사람들이 시작한 국채보상운동이 그것이다.나라가 일본에 빌린 돈을 갚자며 대구가 일어섰고, 전국이 들불처럼 일어섰다. 국채보상운동은 나랏빚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치열한 독립 투쟁이었다. 그러니 국채보상운동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은 역사적 자산을 가꾸고, 미래를 여는 작업이다.중앙도서관의 출발은 1919년 경북도청 안에 있던 뇌경관이었다. 몇 차례 이전과 개보수, 이름 변경을 거쳐 1985년 12월 현재 자리(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내)에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중 두 번째로 설립된 도서관이고, 2017년 한 해 이용자만 160만 명이다.100년 세월을 쌓아온 만큼 보존 가치가 높은 자료들도 많다. 독립신문 영인본, 1904년부터 1910년까지 발행된 대한매일신문, 순조 임금이 하사한 '어정대학유' 등. 무엇보다 중앙도서관 자체가 대구 근대역사의 한 축이다. 그러니 만약 중앙도서관을 없앤다면 근현대 대구 역사의 한 축을 허무는 것이 되고 만다.도서관은 고대부터 대표적인 정보 저장소이자, 사회 구성원 간 소통을 도모하는 문화시설로 역할을 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열람실 중심에서 벗어나 자료실, 복합문화시설로 거듭나고 있다. '라키비움'(Larchiveum), 즉 도서관(Library)과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을 합한 것과 같은 공간과 역할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대구의 역사 자산인 국채보상운동을 널리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리모델링 이후 새롭게 탄생할 시설은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이 합당하다.2017년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대구지역 공공도서관 1관당 연평균 이용자는 35만8천900여 명이다. 박물관 1관당 연평균 관람자는 7만6천400여 명이다. 서울, 부산, 인천, 광주도 양상은 거의 비슷하다. 시민들이 박물관보다 도서관을 친밀하게 인식하는 것이다.이런 점을 고려할 때,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을 리모델링한 뒤 그 명칭을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으로 하고, 국채보상운동 아카이브관과 중앙도서관 기능이 그 안에서 함께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럴 리 없겠지만 하나의 역사적 자산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다른 역사 자산을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

2018-11-14 05:00:00

김교성 경북본사장

[시각과 전망] 혼돈에 빠진 우리의 소원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어린 시절부터 부르고 들은 동요 '우리의 소원'이다. 북한에서 불리는 노래 제목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인 1947년 발표된 것으로 요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노랫가락이 예전만큼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얼마 전 TV 뉴스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최전방 경계초소(GP)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궁예 유적지인 태봉국 철원성에 대한 군 관계자의 설명을 듣는 모습을 봤다. 임 실장은 이날 남북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지뢰 제거 작업 현장을 둘러본 후 이곳을 찾았다.얼른 채널을 돌렸지만, 그 모습이 머리 안에서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한껏 폼을 잡은 임 실장의 모습에서 머리가 굵은 뒤에는 희미해진 한반도 통일이 무섭게 다가왔다. 이거 정말 '386세대' 운동권 주사파들이 그리는 고려연방제식 북남 통일이 추진되는 거 아니냐. 극우파들이 주장하는 대한민국의 공산화다. 쓸데없는 걱정이겠지만 임 실장의 이날 군 방문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로 군 서열 1위다. 대통령이 외유 중인 상황에서 국방부·통일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 등을 대동하고 군부대를 시찰한다는 건 대통령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의지다. 하기야 북한 김정일의 호칭도 비서였다.임 실장의 행동이 마뜩잖은 건 군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군 관계자로부터 브리핑을 받은 GP는 기자가 1980년대 중반 군 생활을 한 곳이다. 수색대대에서 소대 통신병으로 복무하며 GP 부근에서 수색·매복 작전을 했고, GP와 군사분계선 사이 추진철책 건설을 위해 지뢰 제거 작업을 했다. 지뢰탐지기가 아닌 긴 드라이브를 날카롭게 갈아 땅을 쑤시며 지뢰를 찾을 때 임 실장은 뭘 했나. 그는 알려졌듯이 북한 체제에 동조하며 반미 시위를 이끈 인물이다. 당시 다수의 수색 대원이 지뢰 제거를 하다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개죽음을 당했다.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군대에 가지 않은 임 실장은 궁예의 흔적을 바라보며 어떤 통일의 모습을 그렸을까. 궁예의 '관심법'으로 통일을 설계했을까. 첨예하게 맞선 분단국가의 현실에서 정상적인 군 복무를 한 사람이라면 임 실장과 같은 통일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극단적 진보주의자들의 통일관은 이상적이지만 위험하다. 북한을 지원해(퍼주기) 더불어 잘살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고, 북한이 은밀히 감춘 핵무기로 핵보유국이 되는 시나리오다. 자부심이 느껴지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6·25전쟁 경험 세대를 비롯한 보수 세력들은 경제적, 군사적 우월감을 내세우며 우리나라와 미국이 주도하는 힘의 통일을 바라고 있다. 김씨 일가에 의한 세습 독재 체제인 북한의 몰락이다. 자유민주적인 통일이 아니라면 대치 국면의 현상 유지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많다. 지정학적 요인을 고려하면 외세는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이를 외면하고 남북한이 어디까지 관계 개선을 할 수 있을까.정권에 따라 정치 논리로 통일을 추구하고 있으니 국민은 혼란스럽다. 외세의 이해관계를 반영해야 하고, 세대 간 간극도 커져 통일로 가는 길은 더 험난하다. 우리의 소원마저도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2018-11-06 18:09:53

김지석 동부지역본부장

[시각과 전망] 언성 히어로 이규준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박지성은 '언성 히어로'(unsung hero)로 통했다. 스포츠에서 자주 쓰이는 이 용어는 충분히 찬양받아야 함에도 찬양받지 못하는 '숨은 영웅'의 의미로 스타 대접을 받지 못해도 그 이상의 활약과 기여를 하는 선수를 가리킨다. 스포츠 외의 다른 분야, 그리고 지나간 역사 속에서도 많은 언성 히어로들이 있는데 석곡(石谷) 이규준 선생 역시 그러한 인물일 것이다.포항 출신의 이규준(1855~1923)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한의학자이자 유학자, 천문학자이자 문인이었다. 학문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적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림, 건축, 과학, 의학 등 다방면에서 큰 업적을 남긴 것처럼,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이 정치가, 외교관, 자연과학자로서 다채로운 삶을 산 것처럼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깊은 학문적 성취를 이뤘다.그는 한의학자로서 두드러진다. 황도연, 사상체질 의학을 주창한 이제마와 함께 허준을 잇는 인물로 꼽히며 이제마와 더불어 '근대 한의학의 양대 산맥'으로 통한다. 약물 356종을 집대성한 백과사전 '신농본초'(神農本草)를 저술했고 중국의 '황제내경'과 허준의 '동의보감'을 '소문대요'와 '의감중마'로 재정리했다. 그는 또 중국 한방과 배치되는 독창적인 이론, 모든 병은 양기를 북돋워줘야 낫는다는 '부양론'을 주창했고 이는 후학들에게 전승되었다.천문학자의 면모도 빼놓을 수 없다. 후학들은 서양 천문학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수만년 후의 일월식을 다 맞히진 못하나 이규준의 수 계산법은 일월식 계산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높게 평가한다. 빼어난 문장과 작품들을 남긴 유학자이자 문인이기도 했다. 유학자의 소양을 지닌 의학자라 해서 '유의'(儒醫)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기성 유학자들의 권위주의적인 허세·허식을 배척하며 유학이 근본이념으로 회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당시의 풍토에 일침을 가해 사문난적으로 배척당하기도 했다.삶의 발자취도 훌륭하다. 동해면 임곡리의 가난한 집에서 출생, 동해면 석리로 이주해 살며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스스로 공부해 학문적 이치를 깨우쳤다. 그는 살던 지명을 따서 '석곡'이라는 호를 지을 만큼 소박했다. 나라 잃은 원인이 백성을 외면한 권력 때문이라고 지적했고 가난한 백성들과 다친 의병들을 치료하는 등 평생을 백성들과 함께했다. 그는 생전에 가난과 집안이 변변치 못해 스승을 얻지 못한 것, 혼란기에 태어난 것을 자신의 삶에 다행스러운 세 가지로 꼽았다. 어려운 여건을 오히려 삶의 동력으로 삼을 만큼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였다.이규준은 오랫동안 잊혔다가 포항의 향토사학자 황인 선생과 이규준의 일대기를 책으로 펴낸 포항 출신의 동화작가 김일광 등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포항시도 최근 '석곡 인문학 축제'를 열어 향토 출신의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인물을 널리 알리고 기리고 있다. 어려운 시대를 진정한 지식인으로 살다 간 이규준은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위대한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앞으로 포항을 넘어 전국적으로 더 널리 알려져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2018-10-30 17:48:47

최정암 서울지사장

[시각과 전망] '통일신라와 고려의 만남전'을 준비하자

통일부가 다음 달 제주에서 '남북 지방자치단체 교류 사업 관련 워크숍'을 연다고 한다. 곧 밀어닥칠 남북 교류에 대비해 지자체와 정보를 공유하고 사업의 사전 조정을 위해서란다. 이는 지자체마다 경쟁이 치열함은 물론 특색 없는 사업은 먹혀들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광역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남북 교류에 대비, 사전 준비에 나선 것과는 달리 대구경북은 너무 조용하다. 향후 남북 교류시대에도 대구경북의 처지가 현 정국에서의 위상만큼이나 걱정이 된다.그래서 우선 경북도에 제안한다. '통일신라와 고려의 만남전'을 여는 건 어떨까. 지자체마다 문화 교류를 내놓겠지만 경북도에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있다. 경주엑스포는 1998년 시작된 이래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성공적으로 행사를 개최, 브랜드 가치가 있다. 2006년 앙코르와트(도시는 캄보디아 시엡립), 2010년 방콕(태국), 2013년 이스탄불(터키), 2017년 호찌민(베트남)과 문화엑스포를 교류한 경험이 있다.물론 경주엑스포가 투자에 비해 성과가 턱없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많다. 전시 행정적이고 낭비성 행사를 신임 도지사가 굳이 안고 가야 할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의 엑스포 형태라면 당연히 그렇다.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20년 동안 이어져 온 경주문화엑스포를 통해 '경북 주도, 세계문화공동체 네트워크'가 가능하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엑스포를 공동 개최했던 도시들은 경주엑스포와 협력할 의사를 지속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여기에 경북도가 주도한 동북아자치단체연합에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을 포함시킨다면 상당히 모범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이 경우 문화 네트워크 참여 주체가 각자 경비를 부담, 올림픽 형식으로 행사를 치를 수 있다. 예산 쏟아붓기 비판이 사라질 여지가 크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같은 이벤트도 이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면 횟수 제한 없이 신청 가능하다.(현재 국가 단독등재신청은 2년에 1회) 등재도 쉽다. 안동탈춤을 네트워크 내의 도시 탈춤과 같이 등재신청하면 성사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는 의미다.이것의 일환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의 만남전'을 해보자.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경주가 아니라 통일신라의 문화를 토대로 했다. 통일신라의 문화는 고구려, 백제의 문화가 신라와 융합됨으로써 만들어진 통일 문화의 시발점이다. 문화 네트워크의 출발은 통일신라시대의 수도 경주와 고려시대의 수도 개성이 만나는 '개성-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된다.이는 단순히 경주와 개성의 문화 교류가 아니다. 통일신라와 고려를 잇는 대한민국과 북한의 시대적 만남이다. '평양-경주세계문화엑스포'라면 고구려와 신라의 대비, 남북한의 지역적 대결로 이어질 여지가 있지만 통일신라와 고려는 한반도를 통일한 국가였다.여기에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노동자들의 참여만 이끌어낸다면 실질적인 경제성도 확보 가능하다.다른 시도의 남북교류문화사업이 대부분 북한 사람들을 한국으로 초청하거나 아니면 북한에 가서 우리 행사를 보여주는 전시 행사에 그칠 것이다. 반면 통일신라와 고려의 만남은 차별적인 남북 교류사업이 됨은 물론 경북을 아시아문화 네트워크, 세계문화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만들 것이다.

2018-10-24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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