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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거꾸로 가는 이니시계

기자에게 쇄도하던 부탁이 몇 달 전부터 갑자기 사라졌다. 부탁 내용은 "청와대 출입이니 이니시계(문재인 대통령 시계·'이니'는 지지자들이 문 대통령을 부르는 별명으로 문재'인이'를 소리대로 적은 것) 좀 구해달라"는 것이었다.부탁이 너무 잦아 친구들이 전화오면 투박스럽게 "내가 시계방 하나? 시계공장 돌리나?"라고 핀잔을 줬다. 연세가 드신 분들이 연락을 해오면 "저도 그 시계 갖고 있지 않고(기자는 청와대 출입기자단 전체에게 이 시계를 줄 때 받았다가 문 대통령을 너무 좋아한다는 친구에게 줬다) 구할 방법이 없네요"라는 요지로 말씀을 드렸다.그러나 이니시계에 대한 관심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고 시계를 구할 도리가 없는 기자에게 이니시계 '주문'은 오랜 골칫거리였다. 누가 내놨는지는 몰라도 제작비의 몇 배에 이르는 가격이 매겨져 있는 상태로 이니시계 구매자를 찾는 내용도 온라인상에서 자주 보일 만큼 인기는 대단했다.이니시계 인기는 취임 초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던 문 대통령의 '개인기' 덕분이기도 했지만 이 시계의 상징적 의미도 한몫했다.청와대 설명에 따르면 이니시계는 탈권위를 상징했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을 먼저 생각한다는 문 대통령의 민본주의(民本主義) 정치철학이 이니시계에 녹아 있다고 청와대는 강조했다. 그 전까지 시계의 대통령 표장을 권위적인 색깔이라 받아들여지는 황금색으로 하던 관행에서 탈피, 로즈골드색도 채용했다.하지만 취임 초 이니시계에 새겨 놓은 문재인 정부의 굳센 다짐은 사그라든 이니시계 인기가 보여주듯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있다. 야당은 물론, 전문가들의 의견도 무시한 채 취임 초부터 독불장군처럼 밀어붙인 소득주도성장·근로시간 단축은 경제인들의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에 불을 지폈다. 결국 지난해 40, 50대 비자발적 퇴직자가 최근 5년 새 최대치인 48만여 명을 기록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일자리정부라 칭해온 정부에서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다.문 대통령은 지난해 법무부 장관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앉히는 과정에서 각종 비리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내치지 않았다. 표창장 위조 등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는 수많은 논란이 불거졌는데도 문 대통령은 시종일관 조 전 장관을 두둔하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표적 진보 지식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문 정부에 대한 강력한 저격수로 전면 등장하는 아이러니까지 만들었다.올 들어서도 문 대통령은 지난달 2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재가함으로써 취임 이후 인사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장관 임명 기록을 23번째로 늘렸다. 역대급 불통정권, 사상 초유의 야당 무시라는 비판에 직면했지만 문재인 청와대에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일 뿐이었다.문 정부 탄생의 주역인 민주당은 보수정당이 따라오기 힘들었던 그들의 주특기마저 잃어버리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본원적 가치인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민주당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야당으로서 맹렬히 싸웠던 정당이었다. 하지만 최근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 칼럼 파문에서 드러났듯이 민주당은 그들을 비판하는 언론 자유를 짓밟으며 국민들 위에 올라서 "그 입 다물라"를 외쳤다. 문재인·더불어민주당 정부의 상징인 이니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대통령 임기가 아직도 2년 넘게 남았다. "거꾸로 가는 이니시계를 고쳐줄 시계 수리 명장들은 언제쯤 온단 말인가?" "4월 15일인가?" 이니시계를 부탁하던 사람들이 요즘은 이 질문을 기자에게 던지고 있다.

2020-02-18 18:29:41

11일 오후 광주 광산구 한 전통시장에서 공무원과 주민으로 구성된 방역단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 소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데스크 칼럼] '누죽걸산'

'누죽걸산'이라는 사자성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무슨 한자(漢字)로 이루어진 관용구인지, 어떤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조금 당혹스러웠다. 사자성어를 평소 많이 사용한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웬만한 것들을 알아듣기는 하는 수준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뜻을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르신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말이라고 한다.이 말을 처음 들려주신 분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전직 교수였다. 영남대학교와 포항공대(현 포스텍)에서 교편을 잡으시다 정년퇴직하신 K라는 분이다.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대구시내 이곳저곳에서 열정적으로 강의도 하고 계신다.살아오신 얘기를 하던 중 "사자성어 하나 가르쳐 드릴까요" 하시더니, 당신의 좌우명이기도 하며 어디에서든 꼭 얘기하는 네 글자라며 누죽걸산을 알려주셨다."사자성어가 모두 한자여야 한다는 법이 있나요. 옛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하면된다'라는 사자성어도 있잖아요? 이건 한글 사자성어예요. 누죽걸산, 바로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라는 뜻이라오, 하하하."20년 전 강단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덮친 뇌졸중이라는 병마와 싸우면서 터득하게 된 자신만의 진리라며, 지금은 누죽걸산 전도사가 되었다고 했다. 뇌졸중에 걸려 자리에만 누워 있다가 어떤 계기로 휠체어 대신 지팡이를 잡게 된 것이 누죽걸산의 첫 경험이었다고 한다. 여전히 몸 한쪽이 불편하고 지팡이에 의지해 걷지만, 반신불수가 되어 체념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게 되었으니 누죽걸산이 신앙처럼 되었다는 것도 당연하게 들렸다.누죽걸산은 평범하지만 중년 이후의 어른들이 꼭 새겨야 할 진리이다. 나이가 들면서 몸 움직이기가 점점 힘겨워지게 마련이다. 오래도록 사용해온 관절은 점점 닳고, 뼈를 지탱해주던 근육도 갈수록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K교수의 신념이다. 중년 이후 걷기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한 사람의 삶을 되살렸고, 이 땅 모든 중·노년층의 좌우명이 되어야 할 그 누죽걸산도 당분간은 접어두어야 할 판이다. 중국에서 날아온 불청객,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 가뜩이나 움츠러드는데, 연초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떨고 있다. 입춘이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춘래불사춘이 따로 없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다. 특히 나이 든 어르신들은 아예 바깥출입을 하지 말라는 경고다.며칠 전 어르신들의 단골 맛집인 시내 한 식당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그 북적이던 핫 플레이스에 손님이라곤 우리 일행뿐이었다. 누죽걸산이 아니라 '나죽집산'(나가면 죽고 집에 있으면 산다)인가. 요즘은 어떻든 안전이 가장 급선무이니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분간은 누죽걸산 대신 복지부동하고 기다려야 할 것 같다.감염병이 돌 때 어르신들의 행동거지가 더 조심스러워진다. 공공장소에서 젊은 사람들 대하기가 요즘처럼 조심스러울 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어른으로서 스스로 더욱 조심하고 또 조심했으면 한다. 어른들이 존경 대신 눈총을 받기 십상인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바깥나들이를 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어른들 스스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루 빨리 병마가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2020-02-12 17:57:49

이호준 사회부장

[데스크칼럼] 정말 공항을 원하는가

대구공항이 있는 대구 동구 지역은 지난 수십 년간 항공기 소음 피해에 시달렸다. 고도 제한 탓에 재산권 침해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렇다 보니 '피해는 동구가, 득은 수성구가 본다'는 말까지 생겼다. 참다못한 동구 주민들을 중심으로 군 공항 및 대구공항 이전 운동이 시작됐고, 최종 이전부지 선정을 앞두고 있다.공항 유치를 위한 경북 자치단체들의 경쟁은 치열했다. 과열 양상까지 띤 각축 끝에 군위 우보와 군위 소보·의성 비안 공동후보지 등 2곳으로 압축됐고, 지난달 21일 주민투표까지 치른 끝에 공동후보지로 판가름 났다.그러나 주민투표로 최종 이전부지를 결정하기로 한 대구시·경북도·군위군·의성군 4개 단체장들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군위군수가 우보를 이전지로 유치 신청하면서 공항 이전 사업은 올스톱 됐다. 공동후보지의 경우 군위와 의성에 걸쳐 있는 특성상 두 곳의 군수 모두 각각 유치 신청을 해야 하는데 군위군수가 소보는 하지 않고 우보만 신청했기 때문이다.군위군수는 '군민 뜻이 우보에 있음을 확인했고 이를 받들어 유치 신청도 우보로 했다'며 우보 신청 후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물론 군위군수로선 그럴 수 있다. 4개 단체장 간 합의가 있었다고 해도 찬성률 76.27%를 기록한 우보가 아닌 25.79%밖에 안 나온 소보에 대해 유치 신청을 하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그런데 군위군수와 군위군의 입장을 이해한다 해도 의아함은 남는다. 정말 원하는 게 공항이 맞는지 궁금해서다. 공항을 원하는 건지, 군의 발전을 위한 지원과 혜택을 원하는 건지 이쯤되니 헷갈린다. 공항이라는 애물단지를 끌어안고서라도 각종 지원과 혜택을 통해 군을 더 발전시키고 인구를 늘리려고 공항 유치에 나섰던 게 아니었던가 해서다.역설적이게도 이는 주민투표 결과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투표 결과 우보 단독후보지에 대한 찬성률이 투표에 참여한 군위 8개 읍·면 중 우보가 가장 낮았다. 86, 85% 등 80%를 넘은 곳이 3곳이나 있었지만 우보면의 찬성률은 59%에 불과했다.반대로 공동후보지인 소보에 대한 찬성률은 우보가 8개 읍·면 중 1등이었다. 이는 우보 주민 역시 '배후단지도 좋다'는 정서를 깔고 있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공항의 득은 보되 우리 지역에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속내도 투표에 투영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군위와 의성 모두 좀 더 냉정·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오로지 공항 유치에 모든 걸 걸고 달려오느라 간과했던 것을 흥분을 가라앉히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를.공항이 들어서고 난 뒤 어느 지역이 더 득을 볼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공항을 받지 않고도 그만큼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지원은 최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말이다.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는 공동 입장문을 통해 미선정 지역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도지사는 미선정 지역에 항공 클러스터 330만㎡ 조성과 사업비 8천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이는 선정 지역의 항공 클러스터 100만㎡ 조성과 사업비 2천500억원보다 더 큰 규모다.도는 미선정 지역에 민항 관계자, 산업 및 연구 종사자 등 2만 명을 수용하고 항공부품소재단지, 항공벤처연구단지, 항공전자부품단지 등을 조성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대구의 동구가 될 것인지, 수성구가 될 것인지 차분하게 꼼꼼히 따져 볼 일이다.

2020-02-05 17:01:09

최병고(경제부장)

[데스크 칼럼] 대통령의 워딩과 현실 인식

'워딩'(Wording)이란 단어를 검색해보면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언어 표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시중에선 생소할 법한 이 단어를 기자들은 자주 쓴다. 기자는 말을 좇는 직업이다.유력 정치인 같은 공인의 말 한마디는 기사가 되고 특종이 된다. 말은 해석이 따르고, 그 과정에서 진의 논란이 일기도 한다.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이 '그렇게 말한 적 없다'고 말을 주워 담거나, '그런 말은 했지만 그런 뜻은 아니었다'고 우기기도 한다. 그럴 때 기자들은 "그래서, 정확한 워딩이 뭐였지?" 하고 되짚는다.언론이 가장 주목하는 워딩의 주인공은 단연 대통령이다. 국민은 담화나 회견 등을 통해 최고 국정 책임자의 철학과 현실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워딩들은 꽤 우려스럽다. 자화자찬만 늘어놓거나, 말과 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어서다.문 대통령은 이달 7일 신년사에서 "일자리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신규 취업자가 28만 명 증가해 역대 최고 고용률을 기록했다"고 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경제 허리계층인 30, 40대의 감소가 두드러진 반면, 재정 투입 일자리로 분류되는 60세 이상은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초단시간 일자리 취업자는 역대 최대로 늘었다. 일할 능력이 있지만 '그냥 쉰다'는 인구(취업포기자) 역시 지난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취업포기자 중에는 한창 일할 나이인 20대와 30대가 가장 많다. 이게 현 고용시장의 적나라한 모습이다.지난해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는 부동산 관련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고 장담했다. 많은 국민들이 귀를 의심했다. 남의 나라 얘기인가. 그러고는 한 달 만에 역대 초고강도라는 12·16 규제를 전격 발표했다.경실련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년간 전국 땅값이 2천조원가량 올랐다. 역대 정부 최고 수준이다. 이 정부가 실시한 총 18번의 규제는 오히려 부동산을 과열시키는 불쏘시개가 됐다. '집값주도성장' '세금주도성장'이란 비아냥이 나온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현 정부의 집값 폭등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국 전 장관에 대해 "지금까지 겪었던 고초만으로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애틋함을 나타냈다. 불과 한 달 전 국민과의 대화에서는 "많은 국민들에게 갈등을 주고 분열하게 한 것은 정말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과연 연초 검찰 인사에서 조국 및 청와대 관련 수사를 담당하던 검사들이 대거 좌천되거나 물갈이됐다. 대통령의 진심을 짐작할 법하다.문 대통령은 지난 26일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의 세 번째 확진자가 국내에서 나오자 "정부를 믿고, 과도한 불안을 갖지 마실 것을 당부"했지만, 바로 다음 날 네 번째 확진자가 나오자 우한에서 입국한 이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뒤늦게 지시했다. 최근 14일 이내 우한에서 입국한 이들은 3천 명으로 추산된다.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안일하다는 비판이 곧장 쏟아져 나왔다.올해부터 문 대통령은 본격적인 집권 후반기로 접어든다. 정부로선 여러 정책 성과에 대한 중압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국민은 듣고 싶다. 듣기 좋은 소리, 남 탓만 하는 얘기 말고 부족한 점은 인정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대통령의 솔직한 워딩을.

2020-01-29 16:21:42

최창희 체육부장

[데스크칼럼] '스토브리그' 백승수 단장과 홍준학

'스토브리그'란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선수의 계약이나 트레이드가 이루어지는 기간에 팬들이 따뜻한 난로(스토브)에 둘러앉아 입씨름을 벌인 데서 비롯된 말이다. 이 기간에 팬들은 응원하는 선수나 구단의 소식에 관심을 두며 새 시즌에 대한 기대와 애정을 키워간다. 구단으로서는 트레이드나 선수 육성 등을 통해 한 해 농사가 결정되는 시기이기도 하다.최근 이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인기다. 현직 선수부터 프런트 직원, 야구팬들은 물론 야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시청자들까지 안방에 앉게 한다. 줄거리는 메이저리그 오클랜드의 이야기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 '머니 볼'과 맥이 닿아 있다. 4년 연속 꼴찌 팀 '드림즈'에 새로운 단장인 백승수(남궁민)가 부임하면서 스토브리그 기간 조직의 잘못된 시스템, 부조리, 악습 등을 없애고 강팀으로 만들어내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통쾌함을 선사한다. 구단 내부의 정치 싸움, 금품수수나 폭행 시비 등 실제 야구계에서 일어난 사건·사고를 드라마에 녹인 것도 현실적이고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그런데 드라마에 나오는 드림즈라는 팀이 삼성 라이온즈를 똑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4년간 꼴찌였던 드라마 속의 드림즈와 2016년 이후 4년째 바닥권을 헤매는 삼성의 성적이 비슷하다. 지난 시즌 때 논란이 됐던 선수단 내 기강 해이 문제와 트레이드를 둘러싼 잡음도 그렇다. 무엇보다 드림즈 해체를 원하는 구단 대주주가 선수 연봉을 30%나 삭감하는 행태와 2016년 1월 대주주가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뀐 후 투자에 인색한 모기업의 모습이 너무나 닮은꼴이다. 두 팀이 처한 현실은 비슷한데 해결 방법은 사뭇 다르다. 드림즈는 백 단장이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구단의 총액 삭감 압박과 유명 선수의 갑질 버티기를 이겨내고 데이터·분석 야구를 도입해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무엇보다 선수단 기강 잡기, 침체한 분위기를 살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드라마 '10회'에 방영된 감독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일부러 비활동 기간 훈련을 고집하다 반발하는 감독의 의견을 수렴하는 백 단장의 모습은 '권한의 위임'을 통한 진정한 리더십이 뭔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다.드림즈와 달리, 삼성의 스토브리그는 조용하다 못해 손을 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팀 내 최다 홈런을 치며 중심을 잡던 다린 러프가 팀을 떠나면서 전력 보강이 시급한 데도 이렇다 할 전력 보강에 나서지 않고 있다. 강민호와 이학주의 트레이드와 관련된 소문도 그렇다. 실명과 더불어 그럴듯한 내용이 거론되면서 선수 개개인의 사기 저하가 우려됨에도 삼성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할 뿐 슬그머니 넘어갈 뿐이었다. 사실이라면 더 큰 문제다. 이들 선수는 지난해 팀 내 드래프트 1순위(2019년)와 80억원대(2018년)의 거액을 주고 데려온 선수인데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는다면 그동안 선수 영입과 육성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다.삼성은 올 스토브리그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붕괴한 투수진을 재건하고 결정력 있는 타자를 영입하거나 길러내야 한다. 무엇보다 지난해 문제가 됐던 선수단 내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 시즌 때야 감독·선수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비시즌 때는 단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무리 훌륭한 감독이 있더라도 단장이 훌륭한 선수를 모아주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프로야구 개막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홍준학 단장에게 드라마 '스토브리그' 시청을 권한다.

2020-01-22 20:11:14

[데스크 칼럼]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꿔야 한다

늘 놀라운 소신 발언으로 국민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보면서 떠오른 건 아쉽게도 펭수가 아니라 팽글로스였다. 그는 18세기 프랑스 작가 볼테르가 쓴 소설 '캉디드'에 나오는 세상 둘도 없는 낙천주의자다. 'Panglossian'(근거 없이 낙천적인 사람)이라는 영어 단어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됐다.세상을 밝게 보는 게 뭐 나쁘냐고? 귀족 가문의 가정교사로서 순박한 청년 하인 캉디드에게 사상적 영향을 미치는 정도라면 괜찮다. 하지만 행정 수반으로서 다수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긍정론을 고집한다면 국가적 불행이다.대통령은 그제 회견에서 남북 관계, 경제 문제를 언급할 때 '낙관' '긍정' 같은 단어를 자주 썼다. 공교롭게도 각종 설문조사에서 시민들이 가장 자주 꼽는 대통령의 실책 분야다. '모든 것은 최선의 상태에 있다'는 팽글로스의 가르침과 달리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불행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대통령의 발언 중 그나마 주목할 만한 대목은 수도권 집중 해소였다. 그러나 대안으로 제시한 혁신도시 추가 지정 및 공공기관 이전도 행간에선 총선용, 특히 스윙 보터(swing voter)로 분류되는 충청권을 겨냥한 포석으로 읽힌다.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과정에서 저지른 인권침해를 조사해달라'고 독립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를 겁박하는 청와대이니 억측은 아닐 테다.사실 오늘부터 사전투표가 진행되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 또한 수도권의 일방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다. 제대로 된 국제공항만이 떠나간 인재와 기업을 다시 불러들여 고사 위기에 놓인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다. 과열 유치 경쟁 탓에 나온 잡음은 안타깝지만,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건 푸줏간·술도가·빵집 주인의 애타심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대한 그들의 관심 덕분"이라고 갈파한 걸 떠올리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최근 목소리를 높이는 대구경북 행정통합 역시 '지방도 먹고살자'란 의미에서 같은 맥락이다. 두 지역을 하나의 광역행정권으로 묶어야 수도권은 물론 세계와 경쟁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는 14일 매일신문이 주최한 재경 대구경북인 신년교례회에선 "대구와 경북이 통합되면 인구 550만 명의 핀란드, 530만 명의 노르웨이 등 선진국과 경쟁 가능하다"고 주장했다.우려하는 점은 구체적 비전이 있느냐다. 뭉치면 뭐라도 낫겠지 하는 기대감만 줘서는 부족하다. 2018년 기준 지역별 경제성장률이 제주와 함께 전국에서 유이하게 마이너스를 기록한 경북이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만년 꼴찌인 대구와 물리적으로 결합한다고 해서 엄청난 반전이 있으리라곤 생각하기 어렵다.만약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의 대전·충남 혁신도시 추진처럼 정치적 포석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가뜩이나 경북도가 행정통합 시기로 내심 목표하는 2022년에는 대선(3월)과 지방선거(6월)가 연달아 치러진다. 이번 총선이 지나면 그해 양대 선거를 동시에 치러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질 테고, 이 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 입장에선 행정통합 이슈만 잘 마무리한다면 인물 없는 보수 진영의 대권 카드로 떠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혹여 진정 지역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라면 권 시장과 이 도지사는 라스베이거스 CES 전시회를 갈 게 아니다. 이미 상용화된 기술이 아니라 막 잉태되고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 연구실에 가야 한다. 미망(迷妄)에서 깨어난 캉디드가 말한대로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0-01-15 19:40:33

정욱진 정치부장.

[데스크칼럼] 이제 좀 내려놓읍시다

#자유한국당이 지난 연말 실시한 당무감사 결과 '대구경북(TK)은 100% 갈아야 한다'는 소식이 지난 3일 알려졌다. 한국당 고위 당직자에 따르면 TK 현역 의원 중 한 명도 정당 지지도를 넘어서는 지지율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진은 물론 초·재선까지 다 갈아도 괜찮다는 결론의 성적표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TK 의원들은 "황교안 대표의 정치적 의도"라고 발끈했다. "TK를 우습게 알고 하는 헛소리"라는 말까지 나왔다.#황 대표는 같은 날 "총선에서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겠다. 중진들도 험한 길로 함께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승부수를 던졌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리더십 위기론을 봉쇄할 험지 출마 카드였다. 하지만 약발은 먹히지 않았다. 홍준표 전 대표는 "그게(험지 출마) 무슨 큰 희생이라고 다른 사람들까지 끌고 들어가냐"고 날을 세웠다. 다른 중진들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도입을 주장하며 맞섰다. 황 대표 체제에서는 야권 통합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황 대표 대신 비대위 체제로 가자는 주장이다.#7일 황 대표와 하태경 새로운보수당 책임대표가 만났다. 그동안 사분오열됐던 보수 진영의 대통합을 위한 큰 메시지가 나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전날 황 대표가 유승민 새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이 제안한 '보수재건 3원칙'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보수 통합 논의를 공식화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메시지는 없었다. 밤 사이 당내 최대 세력인 친박계 의원들이 황 대표에게 집중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이에 밀려 황 대표가 수용 선언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총선이 9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국당의 이런 행보를 보면 과연 총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의문부터 든다. 뭉쳐도 시원찮을 판에 대표와 중진들이 따로따로, 내홍만 거듭하면서 혼란스러움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지역 정치권은 "총선과 관련해 모든 면에서 여당에 밀리고 있는 한국당이 극심한 당내 갈등으로 '콩가루' 분위기만 보이고 있다. 그나마 돌파구로 보이는 보수 통합에도 손발이 맞지 않아 코앞에 다가온 총선에서 힘이나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한다.다른 보수 인사는 "정치권에선 구도, 인물, 정책(공약)을 선거의 승패를 가를 3대 변수로 꼽는다. 한국당은 이 중에서 어느 하나도 경쟁 정당을 앞서는 게 없다. 그런데도 당내 기반이 약한 대표가 공천 권한을 지렛대 삼아 마구 휘두르려고 하고, 이에 중진들은 집단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되풀이한다. 이런 내분이 계속되면 총선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고 혀를 찼다.모두 내려놓아야 다 같이 산다. 수도권이나 부산·경남에선 현역 의원의 4·15 총선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반면, 19명(대구 8명, 경북 11명)의 현역 의원이 있는 TK는 아직 불출마 선언 무풍지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잘나갔던 TK 한국당 의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정권 재창출 실패, 두 전직 대통령 구속, 지방선거 완패 등 보수의 잇따른 참사에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것에 대해 TK를 바라보는 다른 지역의 시선은 곱지 않다.보수대통합을 위해서도 그렇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통합 논의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노선 문제, 지분 이야기가 나올 테고 그 순간 협상은 결렬될 수밖에 없다. 모든 협상 주체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보수는 물론 중도까지 아우르는 '빅텐트'가 쳐질 수 있다. 그래야 등 돌린 민심을 안을 수 있다.

2020-01-08 16:55:37

이석수 선임기자

[데스크 칼럼] 이제 그만 옥상에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의료를 담당하는 기자가 영남대병원을 갈 때마다 보기 불편한 모습이 있다. 본관 1층에 들어서면 대형 매트 2장을 붙인 자리를 깔고 초록색 조끼를 입은 사람이 앉아 있다. 뒤편 대형 안내판엔 '영대의료원 해고자 고공농성 및 로비농성 돌입'이라고 씌어 있다. 건물 기둥과 벽면 곳곳에도 붉은 글씨로 '노조파괴 진상규명 해고자 원직복직' 등의 투쟁 구호들을 붙여 놓았다.하루 수천 명에 이르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병원 건물 안 농성장을 비켜 지나가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무려 반년(半年) 이상 계속되는 시위를 보며 노사 간에 엄청난 갈등이 있겠거니, 혹은 병원이 큰 잘못을 한 것으로 짐작을 한다.하지만 병원 로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영남대병원 소속이 아니다. 민주노총 산하 여러 산별노조 조합원들이 돌아가면서 영남대병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휴일 밤에도 이불을 펴 놓고 자면서 24시간 점거하고 있다. 새해 첫날로 185일째가 됐다.제각기 다른 회사의 직원들이 남의 직장에 들어앉아 있는 희한한 점거 농성을 보면서도 병원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112 신고를 하고 경찰서에 집회 중지 요청 공문을 보내도 순찰차가 와서 한 번 보고 갈 뿐이다. 명백한 불법임에도 치안 공권력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영남대병원은 지난해 7월 1일부터 시작된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 각종 노조 결의대회나 총파업대회 후 본관까지 행진, 여러 집회 등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특히 호흡기센터 앞에서 수차례 벌인 대규모 집회는 몸 아픈 환자에 대한 배려조차 없었다.영남대병원에 대한 노동계의 '실력 행사'는 지난여름 해고 간호사 2명이 병원 옥상에 올라가 원직 복직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세 계절이 바뀌는 동안 1명은 옥상에 계속 머물고 있다. 두 해고 간호사는 지난 2006년 291일간의 불법파업을 이끌어 파면을 당했다. 이는 대법원까지 가서 정당한 해고임이 확정된 사안이다.노조 측은 당시 병원이 컨설팅사를 통한 노조 기획 탄압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1천 명에 가까운 노조원이 압박에 의해 대거 이탈해 노조가 붕괴됐다는 것. 하지만 2012년 고용노동청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제기됐지만 부당노동행위 사실을 밝혀낼 수 없었다.당시 10개월 가까운 파업으로 병원 문을 닫을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어쩌면 서로 세련되지 못한 접근은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무려 13년이나 지나서 "복직시켜 달라"며 대법원이 확정한 판결을 뒤엎겠다는 시도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 뿐이다.지난 세월 노동운동은 근로자의 권익을 지켜주는 큰 역할을 해왔다. 옥상에 계신 분의 표현대로 이제는 의사들이 시키는 담배 심부름을 거절할 줄 알게 됐고, '미스 리'에서 '선생님' 호칭도 얻었다. 지금은 간호사들이 병원을 이직할까 봐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과거 억압과 불평등의 구조 속에서 '을'을 위한 노동운동은 대중적 지지를 받았지만, 노동단체가 거대 세력으로 정치 지향성을 나타내고 '갑'으로 군림하려는 태도는 시민들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밖에 없다. 현재 영남대병원 노조원이 전체 구성원의 0.5%밖에 안 되는 현실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말하는 직원들이 많다.다행히 노·사·정이 함께하는 사적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7차례 조정을 거치면서 중재안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간다는 얘기가 들린다. 서로의 명분을 살려주는 현명한 사회적 대타협을 수용하길 기대한다. 공공재인 병원을 투쟁의 공간으로 마냥 둘 수는 없지 않는가. 국민 건강추구권이 침해당해선 안 된다.

2020-01-01 17:03:42

석민 선임기자

 [데스크칼럼] 길 잃은 대한민국, '폭망' 남부권

송구영신(送舊迎新). 묵은 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인삿말처럼 쓰인다. 올해는 다른 것 같다. 조국 일가에서 비롯한 혼란이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울산시장 부정선거 의혹 등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 법안으로 인해 국회는 난장판이다.정권마다 각종 비리·부정부패·게이트들이 터져 나왔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좀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대한민국을 떠받쳐 왔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라는 3대 기둥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이 기둥들을 굳건히 버티게 하며 번영의 토대가 되었던 한·미군사동맹을 기초로 한 안보가 무너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6·25전쟁에 버금가는 해방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보수·우파를 중심으로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려는 투쟁은 새해에도 더욱 가열차게 진행될 전망이다. 하지만 보수·우파의 승리가 모든 걸 해결해주진 못한다. 특히 대구경북을 포함한 남부권 8개 시·도 주민의 입장에선, 이러나저러나 폭망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각종 정책을 앞세운 번지르르한 미사여구는 지금까지 허울 좋은 말장난에 불과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상당수 보수·우파가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개발경제 시대 성공의 함정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한국은 성장했고 세상은 변했다. 글로벌 경쟁의 단위는 국가가 아니라 도시로 바뀌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도시는 서울이다. 그래서 서울로 R&D를 비롯한 핵심 두뇌 기능이 집중되고, 광역서울도시권에 속한 수도권·충청으로 첨단산업이 쏠리는 것이다. 그 이하 남부지역은 서울도시권(메가시티 리전)의 블랙홀 현상으로 황무지화하고 있다. 남부권 대도시 부산과 대구조차 인구소멸위험 '주의 단계'라는 것이 쉽게 믿기지 않지만 엄연한 사실이다.서울경제권(서울+수도권+충청·강원권=중부경제권)의 남부권 낙수 파급효과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신성장동력 약화와 저성장 기조, 사회 부문별 양극화 심화로 인해 중부경제권 자체의 경쟁력 유지에도 벅차다. 인구 감소로 소멸 직전에 놓인 시·군은 '경북 의성·군위·봉화·영양·청송·청도·영덕' '전남 보성·고흥·함평·신안' '경남 합천·의령·산천·남해' 등 남부권에 집중되어 있다. 서울경제권(중부경제권)은 높은 집값과 교육비, 교통 대란 등 규모의 불경제로 인해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남부권은 먹고살 것이 없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해법은 간단하다. 중부경제권에 버금가는 남부경제권을 재창조해 대한민국에 2개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메가시티 리전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고, 국가적 활력을 되찾아 통일한국 시대를 제대로 열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있다.이달 19, 20일 남부권 8개 시·도의 학계 및 전문가들이 대구에 모여 '제1회 남부경제권 포럼'을 열었다. 정치적 성향과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영호남의 대표적 전문가들이 뜻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남부권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남부권 주민의 깊은 관심과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 있는 행동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버림받아 황폐화하는 남부권에도 봄이 올 것이다.

2019-12-25 07:31:16

모현철 정치부장

[데스크칼럼] TK 물갈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인적 쇄신 바람이 대구경북(TK)을 강타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안팎에서 물갈이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TK 한국당 의원들은 '물갈이 소용돌이'에 포함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한국당 총선기획단은 지역구 의원 30%를 공천 배제(컷오프)하는 것을 포함해 현역 의원 50%를 물갈이한다고 밝힌 상태다. 현재의 한국당 TK 현역 의원 수에 단순 대입하면 전체 19명 중 최소한 6명은 컷오프로 탈락하고 10명은 공천에서 물갈이된다는 계산이 나온다.지역 정치권에서는 3선 이상, 고령자, 탈당 전력, 지난 지방선거 성적 등을 반영한 구체적인 물갈이 대상 의원 실명이 거론되는 '살생부'도 나돈다. TK 친박 의원들이 불출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병준 전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20대 공천 파동의 수혜를 입은 TK 의원들은 차기 총선 불출마에 앞장서라"며 TK 친박 의원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하지만 TK 한국당 현역 의원들은 인적 쇄신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3선의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김병준 전 위원장이 TK 출마 의사를 접는 등 한국당 인사들이 인적 쇄신에 동참하고 있지만 TK 의원들 가운데 내년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힌 인사는 한 명도 없다. 세대 교체 요구에 대해 TK 의원들이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매일신문이 한국당 TK 의원들을 대상으로 인적 쇄신과 관련해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한 전수조사를 한 결과, TK 의원 전원이 총선 재도전 의사를 나타냈다. 이들은 총선 재도전과 관련해 지역구 발전을 이유로 꼽았으며, 현재 추진하고 있는 지역 현안에 "본인이 없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면서 인적 쇄신 요구에 귀를 닫았다.인적 쇄신에 대해 현역 의원과 정치 신인,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 현역 의원들은 선거 때마다 TK에서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져 정치적 위상이 위축됐고 예산과 인사 등에서는 홀대를 받았다면서 반대한다. 반면 정치 신인들과 지역민들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 새로운 인물이 새로운 정치를 이끌어야 한다면서 물갈이에 찬성한다. 정치 신인들이 도전하려고 해도 인지도에서 현역 의원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지역의 많은 정치 신인들이 한국당에 "제발 경선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21대 총선 예비후보 등록일이 다가오고 있다. 출마 예정자들이 속속 출사표를 던지면서 본격적으로 총선 국면이 시작된다. 20대 국회는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동물국회' 등 온갖 부끄러운 기록을 남긴 정치권이 지역민에게 속죄하는 방법은 지역을 잘 알고 전문성이 있는 정치 신인들에게 정치 참여의 기회를 최대한 많이 주는 것이다.한국당의 텃밭이라는 TK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국당의 공천 물갈이가 단순히 숫자 늘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20대 총선 당시 TK에서 물갈이가 상당수 이뤄졌지만 지역민들이 원하는 정치 발전은 요원한 상황이다.한국당은 공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진박 공천' '옥새 파동'으로 참패한 탓이다. 한국당이 이번 공천에서도 기득권을 챙기고 계파에 매몰된다면 정치 혐오에 빠진 지역민들로부터 또다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지역민들은 지역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정치 신인들이 드물다고 우려한다. 한국당이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을 통해 능력 있고 참신한 젊은 정치 신인을 발굴하기를 기대해본다.

2019-12-11 17:42:54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겸 편집위원

[데스크칼럼] 오래 못 간 일류 흉내

"우리나라 기업은 이류, 행정은 삼류인데, 정치는 사류다."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4년 전인 1995년 4월, 국내 언론사 베이징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폭탄 발언을 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건드릴 수 없었던 한국 사회의 치부를 그대로 진단해 등급을 매겨버린 것이다. 이 회장이 정조준한 곳은 바로 정치권이었다. 당시 정치권은 "건방지다"며 발끈했지만 "속 시원하다"는 여론에 밀려 속만 부글부글 끓였다.세월은 흘렀지만 "이 회장의 분류법이 이제는 틀렸다"고 손들고 나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강산이 두 번 넘게 바뀌었지만 정치가 사류에 머물러 있다는 솔직한 평가만은 지속되고 있다.'정치 사류 이론'의 정점에 바로 청와대가 있다. 여당이 청와대만 바라보며 좇아가는 한국 정치의 독특한 특징은 청와대가 변하지 않고는 국회도 바뀔 수 없다는 법칙을 만들어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줬던 모습은 아직도 이 법칙이 한국 현실 정치에서 유효함을 여실히 드러냈다."저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밤잠을 이루기도 힘이 듭니다. 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이런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2016년 11월 4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2차 대국민 사과문 내용 중 일부다. 최서원 씨와 관련해 그에 대해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부분을 뒤늦게 후회하는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은 "내가 이러려고…했나"라는 유행어까지 남겼다.문재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이 측근으로 인해 참혹한 결과를 맞이한 것을 보면서 '내가 이러려고…대통령'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했을 것이다."우리는 상대적으로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덕적 가치를 높게, 존중하는 그런 DNA를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적폐 청산이고, 그 중심에는 부정부패의 청산, 이것이 놓여 있는데 우리 스스로가 도덕적이지 못하다면 국정 과업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습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직후 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꺼내 놓은 말이다.문 대통령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도덕적이고 깨끗한 청와대'임을 구호처럼 내걸고 대놓고 자랑하며 '일류'를 자처했다. 대한민국의 정의와 도덕을 문재인 정부가 모두 소유하고 있는 듯 '정의 독점 시대'를 선언한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조 전 장관 사태,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하명 수사' 의혹, 구속된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의혹까지, 전혀 도덕적이지 않고, 정의롭지도 못한 '시리즈물'을 국민들은 지금 보고 있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 근무했던 검찰 수사관의 사망 소식은 "뭔가 큰일이 났구나"라는 국민적 의구심도 만들었다.의혹을 둘러싸고 문 대통령 측근들 이름까지 잇따라 호명되는 중이다. 비리가 적발됐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감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가 최근에야 검찰에 구속된 유 전 부시장은 문 대통령을 '재인이 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국민들은 또다시 대통령 측근이 등장하는 '사류 정치'를 목격 중이다. 도덕으로 무장하고 정의를 독점한 것처럼 보이던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일류 흉내를 냈을 뿐, 그 실체는 사류였다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가짜는 진짜가 될 수 없다. 일류 흉내가 오래갈 수 없는 이유다.

2019-12-04 16:56:20

홍헌득 편집국 부국장

[데스크 칼럼] '지공'을 어찌 할꼬

70대 중반인 ㅂ씨는 가급적이면 이른 아침 시간에는 외출하지 않는다. 지인 만날 약속을 잡을 때도 오전 시간은 피하려 한다. ㅂ씨가 아침에 버스를 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이다. 자신처럼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굳이 복잡한 시간대에 나갈 이유가 뭐 있느냐는 거다. "바쁜 출퇴근 시간 젊은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일이 아닐까요. 괜히 눈총까지 받아가며-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그런 분위기도 느껴진단다-버스 탈 필요는 없으니까요."ㅂ씨처럼 자발적으로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이용을 삼가려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는 한편으로, 어르신들의 대중교통 이용과 관련한 세대 간의 갈등도 심심찮게 들려온다."바쁜 출근 시간 안 그래도 복잡한데 어르신들이 너무 많아 힘들어요. 나도 좀 앉아서 가보고 싶거든요." "자리 양보를 안 해주면 호통을 치기도 해요. 시끄럽게 떠들기도 하니 싫죠." "경로(노약자)석이 엄연히 마련되어 있는데 왜 일반석 쪽으로 오셔서 눈치를 주는지 모르겠어요. 그럴 땐 자리를 양보해드리고 싶지 않아요."이들 불만의 저변에는 "공짜로 타는 주제에…" 하는 의식이 깔려 있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도시철도 무임승차는 뜨거운 감자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전국 6대 도시의 지난해 도시철도 적자액이 6천억원을 넘었다고 한다. 그 적자액의 상당 부분이 무임승차에서 비롯되었다는 목소리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지공거사'들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그 적자액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를 두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도 점차 증폭되는 모양이다.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지자체들은 노인들의 무임승차가 교통 복지이니 당연히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고, 정부는 정부대로 도시철도가 없는 다른 지자체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들며 국비 지원은 어림없다며 버틴다.적자 규모가 갈수록 늘어나는 데도 누구 하나 먼저 나서 선뜻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 하지 않는다. 전면 무임승차는 이 시점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수정이 불가피한 데도 노인들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폭탄 돌리기만 계속되고 있다.몇 십 년 내에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노인 인구로 채워지게 된다고 하니, 지금부터라도 이 문제는 하루바삐 매듭짓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서 정부가 복지 비용으로 생각하고 적자를 보전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상당수는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하고 요금을 할인해주는 방안을 제시한다. 제도는 유지하면서 수혜 연령을 현재 65세에서 70세로 높이자고도 한다.무임승차가 노인들의 이동권과 관련한 복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적자 폭을 지자체들이 감당하기 어렵다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정부에서 어느 정도 적자를 보전함과 함께 출퇴근 시간에 한해 무임승차를 폐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복지도 지키고 적자도 어느 정도 줄이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아침저녁 2, 3시간 정도씩 무임승차를 폐지하면 대중교통 이용객 분산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어르신들의 이동권도 크게 훼손하지 않을 것이다. 운영 적자를 줄이는 데도 조금은 기여할 수 있을 것이고. 영국이나 프랑스 등 이런 방식으로 무임 혹은 할인을 유지하는 나라들도 있으니 연구해봤으면 좋겠다.

2019-11-27 17:50:25

한국과 미국은 19일 내년도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을 결정하는 제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제3차 회의를 열었으나 양측의 입장이 강하게 부딪힌 끝에 다음 회의에 대한 논의도 없이 종료됐다. 사진은 이날 회의 종료 뒤 미국대사관에서 관련 브리핑을 하는 제임스 드하트 미국 측 수석대표 와 외교부에서 브리핑하는 정은보 한국 측 협상 수석대표(오른쪽 사진). 연합뉴스

[데스크칼럼] 양키 고 홈

1980, 90년대 초 대학가 운동권의 대표적인 구호 중 하나는 '양키 고 홈'이었다. 말 그대로 '미군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의미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말고 떠나라'는 메시지였다.30년 가까이 잊고 지내던 이 구호가 최근 불현듯 생각난 건 미국, 일본과 엮인 지소미아 연장 문제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 한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 순간 떠올랐다.아마 청와대 참모진은 물론 국회의원, 정권 실세 중 당시 '양키 고 홈'을 앞장서 외쳤던 인사가 적잖게 포진돼 있기 때문에 그러했던 거 같다. 이들이 이 난국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혹여나 '그럼 그냥 철수하세요'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을지 자못 궁금했던 것이다.미국은 일본을 대변하듯, '북한의 위협 앞에서 한일의 군사 정보는 계속 공유돼야 한다', '지소미아는 종료돼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우리 측에 분명히 전했다.나아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 북한의 위협 등으로부터 한국을 지키기 위해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만큼 한국이 주한미군 유지비를 실질적으로 분담해야 한다며 엄청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 분담금은 현재의 5배, 6조원에 달한다.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을 지키는데 왜 미국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느냐는 건 미국으로서 할 수 있는 얘기다.그러나 미군 주둔이 한국 보호만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국전쟁 전후 세계가 냉전시대로 양분돼 맞섰던 당시, 한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이기도 했다.당시 소련과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반도의 북쪽이 공산화된 상황에서 남한까지 공산화가 되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이 정면으로 대치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미국은 자국을 지키고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해서라도 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혹여 그 땅이 한국이 아니었더라도, 자비를 들여서라도 말이다. 한국이 미국의 군사기지이자 지정학적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지금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미국의 세계 1인자 자리를 호시탐탐 넘보고 있는 상황과 북한의 핵 위협 앞에서 미국 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도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절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은 분명하다.미국의 사드 배치 압박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우긴 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로부터 미국 본토를 보호하고, 중국의 턱밑에서 중국을 위협할 수 있는 군사장비를 배치,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선 남한에 사드 배치가 필요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물론 주한미군이 그동안 한국을 방어해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전쟁 후 미국의 원조와 도움 아래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두고두고 감사해야 하는 것도 맞다.중국과 북한의 위협과 협박 속에서도,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 기업과 경제, 관광이 엄청난 타격을 입는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가 미국의 강력한 '사드' 배치 요구에 응했던 것도 이러한 전통의 굳건한 한미동맹 관계 때문이었다.그런데 수십 년간 이어져온 한미동맹이 최근 몇 년 새 큰 변화에 맞닥뜨렸다. 미국이 변했고, 국제 정세도 급변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이들 문제를 두고 한미 관계가 깨지지 않고, 한일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묘수 짜기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해법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이 땅에 미군이 없다면? 가정이지만 궁금하다.

2019-11-20 16:23:36

최병고 디지털뉴스부장

[데스크칼럼] 수험생 모두 수고했어요

92학번인 기자는 1991년 12월에 대학 입시를 치렀다. '학력고사' 시절이었다. 4지선다형 지식암기형 문제가 너무 많다는 비판에 밀려 학력고사 대신 수능이 처음 치러진 건 2년 후인 1993년.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이자, 수능 1세대인 응사 학번이 그렇게 탄생했다.말하자면 기자는 학력고사 끝물 세대다. 당시는 '선지원 후시험' 방식이었다. 먼저 원하는 대학에 입학원서를 쓰고, 이후 시험 점수에 따라 당락이 갈렸다. 전국 100만 명 수험생을 일렬로 줄을 세웠다. 1년에 한 번, 오직 학력고사 성적만 반영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같은 복수 지원도 없었다. 지원한 대학에 떨어지면 '묻고 더블'(재수)로 가는 수밖에. 아니면 후기 대학이나 전문대를 가야 했다. 눈치 경쟁도 극심했다. 대입 원서 마감 날, TV에선 선거 개표 방송처럼 전국 각 대학 학과 경쟁률을 자막으로 밤늦도록 내보내곤 했다.91년 그 겨울, 학력고사 시험장은 경북대의 어느 단과대학이었다. 이른 아침의 대학 교정은 낯설고 안개로 자욱했다. 키 큰 가로수 길을 주눅 든 채로 한참 걸었다. 그날 시험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교문을 나서며 후련했던 느낌만이 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정류소를 몰라 도청교 근방을 헤매다 캄캄해서야 집에 도착했다. 무슨 일이라도 났나 싶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 부모님은 시험을 어떻게 쳤는지에 대해선 묻지도 않으셨다.오늘은 2020학년도 수능일이다. '합격 기원' '수능 대박' 응원으로 시험장 교문 앞마다 떠들썩할 테다. 이제 겨우 중학생 아이를 둔 기자도 마음이 콩닥콩닥한다.올해 수능 응시생은 54만8천여 명으로 전년보다 4만6천여 명이 줄었다. 재수생을 뺀 재학생은 39만4천여 명으로 수능 사상 처음으로 40만 명 아래로 내려갔다. 졸업생 응시생은 14만2천여 명으로 전년보다 6천700여 명이 늘었다. 지난해 불수능으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졸업생들이 재도전에 많이 나선 것 같다고 한다. 그렇든 말든 고3도, N수생도 오롯이 자신에만 집중하길 바랄 뿐이다.오늘 저녁 아이들은 집에 돌아와서도 쉬지 못할 것이다. 수능 가채점을 하고 자신의 예상 등급을 맞춰 봐야 하기 때문이다. 논술과 면접 응시 여부를 따지면서 수시 일정을 맞추고 대입 전략을 세워야 한다. 입시 업체들은 '진짜 입시는 이제부터'라며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학원 앞에 아이를 내려줄 때마다, 무거워 축 처진 가방을 멘 또래 아이들을 본다.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짐을 이고 줄지어 가는 개미 군단 같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이 엄마 찬스, 아빠 찬스로 불신받고, 그래서 입시 정책이 또 요동쳐도 아이들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수능일 아침 배웅하는 학부모와 수험생의 마음이 어떨지, 기자는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인생의 큰 통과의례 앞에 선 아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힘내라고, 그리고 수고했다고 등을 토닥여 주고 싶다.'자존감이 높은 부모는 점수보다는 아이의 수고를 먼저 인정해 주고,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는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원하는 성적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자존감이 낮은 부모일수록 자녀들이 매사에 완벽해지기를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존감이 높은 부모는 완벽을 요구하거나 강요하기보다는 결과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윤일현 '밥상과 책상 사이' 중)

2019-11-13 19:02:01

최창희 체육부장

[데스크칼럼] 시장님과 친하세요?

프로야구도 끝나고 프로축구도 막바지 몇 게임만 남았다. 팬들 입장에서는 아쉽고 허전해지는 계절이다. 이맘때면 체육계는 사실상 동면기에 접어든다. 일부 겨울 스포츠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종목들이 다음 시즌 준비를 위해 선수 영입과 동계훈련에 나서기 때문이다.그런데 올해만큼은 체육계가 때 아닌 선거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지역체육회 곳곳에서는 민간체육회장을 선출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대구·경북 체육회를 비롯해 구·군 체육회도 이달 내로 회장선거관리 규정 공고, 회장 입후보자 등록, 선거관리위원회 설치, 선거일 확정·공고 등 주요 일정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그동안 지역체육계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당연직 회장으로 취임해 예산 지원과 행정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겸직은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당선된 단체장이 체육회장직을 맡아 주요 직책에 선거 캠프 인사를 임명하는 등 체육회를 선거 조직으로 활용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체육계는 각종 선거 때마다 소위 '표밭'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아왔다. 대구에만 53개 종목 단체가 있는 데다 생활체육계에 속한 유권자까지 포함, 무시못할 규모와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어서다. 막강한 조직력으로 지방선거는 물론 총선, 심지어 대선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해왔다.이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민간체육회장 선거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임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내년 1월 16일부터 시행된다. 정치와 체육의 분리, 체육의 독립성과 자율성 확립 등을 위한 취지에서다. 그러나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선거인수 결정 및 배정 등을 두고 곳곳에서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정치색 짙은 후보들이 난립하면서 선거 과열과 불·탈법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추대나 경쟁 등 선출 방식을 두고서도 지역체육계가 갈리고 있다.지난 1일 열린 대구시체육회 임시 대의원 총회에서는 "예산을 따기 위해서는 현 시장과 대척점에 있는 인사를 회장으로 뽑으면 안 된다"는 발언이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시·도체육회장은 한 해 수백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으로 수십 개의 경기단체와 생활체육지원을 관장하며 시·군 체육회 업무를 조율하는 매우 주요한 자리다. 그럼에도 지역체육 발전을 이끌 능력과 의지가 있느냐보다는 단체장과의 친분이 회장 선출의 중요한 잣대로 평가받는 게 체육계의 현실인 셈이다.민간회장 선거는 태생부터 '딜레마'를 안고 태어났다. 단체장과 코드가 맞는 회장이 당선되면 예산 확보에는 용이하겠지만 정치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체육의 탈정치와 독립성 확보라는 취지에는 정면으로 반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예산 축소 등으로 지역체육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매년 체육 관련 예산이 증가해왔고 올 들어 처음으로 200억원을 돌파한 대구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이 같은 딜레마에 빠지는 근본 원인은 체육회 예산의 많은 부분을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에 의존하는 구조 탓이다. 체육회가 자치단체로부터 체육 관련 예산과 시설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 등 안전 장치가 절실하다. 아울러 확보된 예산을 투명하게 처리할 수 있는 원칙도 만들고 감시 체계도 만들어야 한다.두 달 후면 첫 민간체육회장이 선출된다. 체육인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회장 선출이 단체장과의 친소 관계가 아니라 지역체육에 대한 이해와 발전 의지에 달려 있음을 체육인 스스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2019-11-06 17:32:44

조두진 문화부장

[데스크 칼럼]대구 북동 중학교와 고산 도서관

몇 해 전 경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본 풍경이다. 저학년 아이들 하교 무렵이었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열 명쯤 되는 엄마들이 우산을 들고 학교 안, 교사(校舍) 근처에 모여 자녀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그 엄마들을 보고 나서야 좀 전에 지나친 외국인 여성이 떠올랐다. 그녀는 우산을 받쳐 든 채 학교 정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아마 이 여성 역시 하교하는 자식을 기다리는 엄마였을 것이다.매일신문은 10여 년 전부터 매년 '전국다문화가족 생활수기 공모전'을 열고 있다. 심사에 몇 번 참여한 적이 있는데, '아이가 (엄마인) 나를 부끄러워해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한다' '선생님 말씀을 못 알아듣는다며 아이가 마구 화를 냈다' '말을 못 알아듣는다며 남편이 때렸다'와 같은 사연을 수없이 읽었다. 학교 정문에서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던 경주의 그 엄마 역시 '아이가 부끄러워할까 봐' 학교 안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우리나라의 다문화가족 정책은 외국인의 한국화에 집중돼 있다. 그들은 한국에서 살기로 작정했으니 한국화가 필요하다.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우리 문화도 알아야 하고, 전통 음식도 만들 줄 알아야 하고, 관습도 익혀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능사는 아니다.외국 출신 엄마를 아무리 한국화하더라도 그들은 한국인 엄마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 능력이 떨어지니 아직 어린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못마땅해 할 수 있다.여기에 더해 아버지와 조부모가 가하는 비난은 어린아이로 하여금 엄마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할 것이다. 자신이 아는 사회라고는 가정과 학교밖에 없는 아이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학대받고 무시당하는 엄마를 존경할 가능성은 낮다.엄마를 부끄러워하는 아이가 학업에서 성취를 이룩하고, 반듯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가능성이 낮을 것이다. 아직 어릴 때는 엄마에게 가하는, 결국은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과 모멸을 어쩔 수 없이 참겠지만, 청년이 되면 그 분노는 가정과 사회로 터져 나올 것이다.'한국인 양성'에만 집중돼 있는 다문화정책을 '국제인 양성'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 한국어에 약한 엄마가 사실은 '베트남어에 능하다'는 것을, 한국 관습을 모르는 엄마가 모국 전통에 박식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생활 속에서 자주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엄마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말을 못 알아듣는다'며 타박할 게 아니라 아내의 모국어를 한마디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자식을 반듯하게 키우고, 아내에게 존중감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길이다.대구 북동중학교(달성군 논공읍)의 국기 게양대에는 태극기를 포함해 7개국의 국기가 펄럭인다. 덕분에 이 학교의 다문화가정 아이들, 외국인 아이들은 태극기를 향해, 그리고 어머니 혹은 아버지 나라의 국기를 향해 경례하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낀다.대구 수성구립 고산도서관(수성구 달구벌대로 650길)에서는 다문화가정 엄마가 강사로 나서 모국의 전통 놀이를 한국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가르친다. 어눌한 줄 알았던 아내, 말귀를 못 알아듣는 줄 알았던 엄마가 여러 사람을 가르치고, 이끄는 모습을 보며 남편들과 자식들은 박수를 치고 감동한다. 그런 아이는 엄마를 자랑스러워 한다. 더 많은 북동중학교, 더 많은 고산도서관이 생겨나기를 소망한다.

2019-10-02 14:02:54

모현철 정치부장

[데스크칼럼] 조국과 총선

'구미국가산단 50주년' 행사가 최근 경북 구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기념식장에서 상영된 홍보 영상이 발단이 됐다. 이 홍보 영상에 구미산단을 설립한 공로가 큰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내용이 빠진 탓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만 등장했다. 보수단체들은 구미시장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구미산단을 설립한 것에 따른 공로는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야권의 반발도 거셌다. 구미지역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구미시장의 행보를 '박정희 지우기'로 간주해 성명서를 내는 등 '박정희 지키기'에 나섰다.수년 전에는 당시 구미시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96회 탄신제'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이라고 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조국 근대화의 초석을 세운 업적을 칭송하면서 나온 얘기였다. 오래전부터 박 전 대통령 탄생 기념 행사 때마다 헌사가 수없이 쏟아졌다. 박근혜 정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칭송은 끝도 없이 올라가 결국 '반신반인'이라는 말로 정점을 찍었다.이처럼 보수 또는 진보 진영에서 상징이 되어 있는 인물이나 대상을 건드리면 상대편은 화를 내며 달려드는 경우가 많다. 올 초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세월호 유가족을 비하한 전현직 의원도 막말 논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상징화돼 있는 금기를 건드려 비난을 자초했다. 현재 영어의 몸으로 재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태극기 부대'로부터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 있다.한국 사회에서는 중도 세력과 함께 보수, 진보 세력이 존재한다. 갈수록 보수, 진보 진영이 상대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신들의 목소리만 높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8월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내정 발표 이후 한국 사회는 '조국 지지' 또는 '조국 반대'를 외치는 양 극단의 사회로 변해버렸다. 조국 장관 임명 이후 보수, 진보 진영의 '이념 전쟁'은 더욱 격화했다.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조국 장관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한다. 검찰이 조국 장관의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조 장관이 위기에 처하자, 여권에서는 조국 지키기에 올인을 하고 있다. 일부 여당 국회의원은 이미 "조국은 촛불 정권의 상징"이라면서 조국 장관을 적극 옹호해왔다.문 대통령도 조국 장관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현 정부의 정통성을 국민에 의한 촛불 혁명이었다고 했다. 여당은 촛불 정신을 조국 장관에게 대입시켜 촛불 정권의 상징으로 만드는 듯하다. 시대정신을 상징화한 인물은 절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말로 들린다. 시대정신의 상징을 향한 모든 공격은 핍박이고 고난이며 탄압을 받고 있다는 논리를 편다.내년 총선이 이제 7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양 진영의 싸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일부 진영이 보기에 조국 장관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이 받는 검찰의 수사가 촛불 정신이라는 시대정신에 대한 탄압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한국당은 조국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 릴레이 투쟁을 하고 있다.조국 사태의 핵심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보수와 진보의 주도권 다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각 진영이 승리를 거두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대선 승리도 장담할 수 없다. 조국 사태에 대한 지역 민심이 악화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지역 민심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심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2019-09-25 17:38:47

최경철서울정경부장 겸 편집위원

[데스크 칼럼] 대통령의 안경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6일, 구속·수감된 지 900일 만에 바깥 세상으로 나왔다. 서울 강남의 성모병원으로 들어서는 박 전 대통령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재임 중 안경을 전혀 쓰지 않았던 박 전 대통령은 구속·수감된 뒤 법정에 출두할 때 이따금 안경을 착용했고 병원에 입원한 이날도 안경을 썼다.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안경을 쓴 사람은 거의 없다. 짧은 기간 재임했던 윤보선·최규하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비교적 긴 임기를 가졌던 대통령들은 거의 모두가 안경을 쓰지 않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해,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안경을 착용하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기 후반에 안경을 쓰기도 했지만 원래 모습은 나안(裸眼)이었다.안경 안 쓴 대통령 후보들이 대다수였기에 역대 대선 과정에서는 '안경의 저주'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안경을 착용했던 대선 후보들은 어김없이 패(敗)하는 경우가 많았던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국가 경영의 꿈을 키웠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대표적인 '안경의 저주'에 해당된다. 안경을 쓰지 않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결, 이른바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연거푸 고배를 마신 이회창 전 신한국당 총재도 그 징크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19대 대선에서 승리, 청와대로 들어온 문재인 대통령도 18대 대선에서는 안경을 쓰지 않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졌다. '안경의 저주'에 한 번 휘말렸던 문 대통령이었지만 19대 대선에서는 안경 안 쓴 안철수 후보 등을 꺾고 무난히 승리, 안경 징크스를 깼다.대통령의 안경 얘기를 꺼내놓은 것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시각 때문이다. 청와대에서 기자가 봐 온 문 대통령의 '인격과 품성'을 감안할 때 사모펀드 등 숱한 의혹에 휩싸인 조 장관은 문 대통령의 '눈에 들지 않는' 후보자가 분명하다. 지명 철회 의견이 응답자의 과반을 넘긴 조사 결과가 셀 수 없을 정도였는데도 문 대통령은 여기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의 NH농협은행 본점을 찾아 국내 소재·부품·장비산업에 투자하는 '필승코리아 펀드'에 가입하면서 금융상품 판매 직원이 주식·펀드 투자 경험을 묻자 "일체 없었습니다"라고 답했다. 평생 예·적금 외에 주식이나 펀드는 아예 쳐다보지를 않았던 것이다.판매 직원이 금융상품에 대한 지식 수준을 묻자 문 대통령은 '높은 수준'에 체크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비서실장을 역임하면서 숱하게 많은 투자 정보를 들었을 터. 변호사였으니 각종 사건 수임 과정에서 금융 지식도 쌓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금융상품을 모를 리 없다.그러나 문 대통령의 전 생애에 걸친 금융 장바구니에는 주식·펀드가 없었다. 이자가 미리 정해져 있는 예·적금과 달리 시시각각 변하는 수익률에 대해 '맹렬한 집착'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주식·펀드가 혹여 탐욕의 세상·천민자본주의의 세계로 자신을 오도할 수 있다는 경계심의 발동 때문이 아니었을까?문 대통령은 이런 기준을 세우고 살아왔건만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 재직 때 사모펀드에 가입했고 가족 펀드를 만들었다는 의심도 받으면서 위선자라는 비난에 직면해 있는 조국 장관에 대해서는 왜 이리도 관대한 것일까?야당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묻고 있다. 대통령의 안경이 혹시 잘못된 것이 아닌지, 지금 바로 고쳐 써야 되는 것이 아닌지?

2019-09-18 19:39:33

홍헌득 편집국 부국장

[데스크칼럼] 잊지 않으려면…

"그X들이 얼매나 독한 놈들인지 몰라. 쇠붙이란 쇠붙이는 숟가락 몽뎅이 하나까지 싹 다 뺏어 가버렸잖아. 우리는 어려서 잘 몰랐지만 어른들은 참말로 기가 막혔을 거라. 집에 솥이 몇 개 있어도 밥 하는 거 하나, 쇠죽 끓이는 거 하나씩만 남겨 놓고 다 떼어 가버렸으니까. 솥뚜껑은 아예 다 뺏어 가버리고. 솥뚜껑을 마당에 내다 놓고 뚜드려서 깨버리니까 환장하는 거지. 그래 놓고 그걸 지들이 실어 가는 것도 아니라. 솥 뺏긴 사람들이 지게에 지고 읍내로 갖다 주기까지 해야 하는 기라. 숟가락이야 나무로 다듬어서 먹었지만 솥뚜껑이 없으니 밥은 우예 하고 쇠죽은 우예 끓이노. 나무로 밥솥 뚜껑을 만들어 덮으니 밥이 끓기만 하면 뚜껑이 휘딱 벗겨져 달아나버리는 거라. 쇠죽 쑤는 솥에는 가마니를 덮어서 안 끓였나."추석 아래 조상님들 산소 벌초를 하고 성묘도 할 겸 숙부님들을 모시고 산으로 가는 길, 두 분이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 주거니받거니 옛날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기 시작하셨다. 당신들 유년시절 얘기를 하시다가 어느새 일제강점기 후반부 어디쯤으로 빠져버리더니, 한참 동안 그 어름을 맴돌았다."밥솥만 있으면 뭐해. 밥을 해 먹을 쌀이 있어야제.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동네별로 이미 물량을 다 정해 놓는 거라. 그래 놓고는 가을 되면 싹 들고 가버리니까, 도대체 먹고살 수가 있나. 집 안에 숨겨 놨다가 들키면 경을 치고 쌀은 쌀대로 뺏기거든. 그래서 채소밭에다 막 묻어 놓고는 했어."두 분 뛰놀던 산기슭 가까이를 지날 때쯤엔 할아버지 징용당해 가시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저기 저 산에 나무하러 가셨던 아버지가 멧돼지 새끼 잡아 오신 거 기억나는가. 그때가 아버지 북해도 징용 가시기 닷새 전인가 그랬는데, 저 앞산에 가시더니 멧돼지 새끼 한 마리를 지게에 올려 지고 오셨대. 그거 한 마리 삶아 드시고 징용 가셨지. 북해도에서 정말 죽을 고생을 하셨던가 봐. 해방되고 그 다음 해에 돌아오시대. 3년 만이었지. 우리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해서 (피해자) 신고도 못했는데, 그걸로 보상(배상)을 받은 사람도 있다 하대. 그거 참말인강?"요즘 우리나라와 일본 양국 사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이야기이다. 잊고 지냈는데 내 할아버지도 생전 언젠가 북해도 '다녀 왔다'고 하시지 않았던가. 징용이나 공출이라는 사건들이 내 할아버지와 숙부님들, 그리고 함께 살던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거다. 대법원 판결이 어떻고, 강제징용 배상이 어떻고, 개인의 청구권이 어떻고 할 때도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그 이야기들을 내 집안 내 조상의 일화로 들으니 감회가 달랐다.내 할아버지는 벌써 세상을 뜨셨지만,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숙부님 같은 분들의 시간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일제의 그런 만행에 대해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들도 사라지겠지.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 등 우리 민족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도 어느새 잊히고 말겠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오늘날까지 왜 그렇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게 되겠지.이번 추석 나이 드신 어른들이 계신 집안이라면 그분들께 졸라 이런 얘기도 한 번 들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자식들에게도 전해 주고…. 잊지 않으려면 말이다.

2019-09-11 17:28:12

이호준 경북부장

[데스크칼럼] 국방부의 통합신공항 간보기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이 갈수록 태산이다. '대구 군 공항 이전부지 선정위원회'가 정한 최종 이전지 선정 기한이 석 달도 채 안 남았지만 실타래가 풀리기는커녕 더욱 꼬여만 간다.통합신공항 이전 후보지인 경북 군위군과 의성군의 합의 도출 기미는 보이지 않고, 대구시와 경북도도 군위와 의성의 합의를 유도하기 위한 이렇다할 묘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이런 상황에서 국방부와 국회의원마저 '간보기'식 계획을 툭툭 던지는가 하면 헛발질을 하며 군위와 의성의 갈등만 더욱 부추기고 있다.통합신공항 입지 선정 작업이 지지부진하자 국방부는 '주민투표 찬성률로 입지를 결정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지난달 백승주 국회의원에게 전했다. 백 의원을 통해 슬쩍 흘렸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이는, 다른 방식의 입지 선정을 주장하고 있는 의성군의 강한 반발을 샀고, 가뜩이나 '불리한 싸움을 하고 있다'며 마뜩잖아 하던 의성군의 등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의성군은 '더 이상의 타협은 없다'는 내부 방침을 정하고 여차하면 행정소송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3일 해프닝은 더욱 가관이었다. 백승주 국회의원이 '국방부가 통합신공항 이전 경쟁 탈락지에도 1천50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고 밝히면서 이번엔 군위군까지 헤집어놨다.이전지역에 지원하기로 한 이전주변지역 지원금 3천억원 중 절반을 탈락한 지역에 주겠다는 게 백승주 의원 측이 밝힌 이 계획안의 골자다.이는 앞서 '찬성률로 선정한다'는 국방부 계획에 찬성 입장을 보였던 군위군으로선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군위군 입장에선 찬성률로 입지를 결정할 경우 지원비 3천억원을 다 받거나 설사 공동유치를 한다 해도 최소 1천500억원을 이미 확보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이렇다 보니 군위군은 강하게 반발하며 '국방부로부터 탈락지 지원금과 관련해선 들은 바도 없고, 관련법상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발끈했다. 탈락지에 지원금을 주려면 다른 재원에서 지원금을 마련해야지 이전주변지역 지원금을 반 뚝 잘라 선심 쓰듯 갈라 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백승주 의원 측은 한술 더 떠 '국방부가 이미 탈락지 지원금과 관련해 군위군과 의성군에 전달하고 관련 사업계획서를 만들어보라고 제안까지 했다'고도 했으나, 확인 결과 이는 백 의원 측이 국방부의 얘기를 듣는 과정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해프닝인 것으로 드러났다.그러나 이미 군위군과 의성군, 나아가 경북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뒤였다.아무리 입지 선정 작업이 어렵다 하더라도 국방부가 마치 해당 지방자치단체들의 '간을 보듯' 국회의원을 통해 특정안을 툭툭 던지는 건 옳지 않다. 지지고 볶고 싸우더라도 해당 지자체들과 함께 지원위원회, 선정위원회 등 공식 협의기구를 통해 협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신뢰와 공신력을 얻을 수 있다.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해보고, 그렇게 해도 결론이 나지 않거나 도저히 기한 내에 선정하기 힘든 상황이 오면 욕을 먹더라도 결단을 내리면 된다.간을 봐선 안 된다. 국회의원 뒤에 숨어서도 안 된다. 꼼수는 더더욱 안 된다. 그럴수록 상황만 악화될 뿐이다.친구들끼리나 할 법한 '툭 던져 보고 아님 말구'식의 추진 방법은 정말 아니다. 통합신공항은 대구경북의 미래가 걸린 대사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2019-09-04 19: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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