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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장관 구인난'

"링컨 대통령 흉내 좀 내려고 김근태·정동영 씨를 내각에 기용했는데 재미가 별로 없었다. 비슷하게 하고도 인사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고 사니까 힘들다." 2006년 12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장관 인사를 두고 한 '폭탄 발언'이다. 두 사람이 여권 대선주자로서 적절치 않다는 의견 표현이자 정부를 공격하는 데 대한 섭섭함에서 나온 발언이었지만 장관 인사 어려움을 토로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노 전 대통령이 닮고자 한 링컨은 경쟁자는 물론 정적(政敵)까지 장관 등 요직에 임명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링컨을 고릴라에 비유하는 등 모욕적 발언을 쏟아낸 에드윈 스탠턴이었다. 스탠턴을 전쟁 장관에 임명할 때 '내각에 왜 적을 임명하나'란 질문을 받은 링컨은 이렇게 얘기했다. "원수는 죽여서 없애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서 없애야 한다. 그를 기용하면 나는 적이 없어져 좋고 국민은 능력 있는 사람의 봉사를 받으니 좋다." 스탠턴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 가장 슬퍼했다.문재인 대통령이 2기 장관 임명 파동으로 곤경에 처했다. "인사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고 사니까 힘들다"는 노 전 대통령 말을 문 대통령이 읊조릴지도 모를 일이다.문 대통령의 장관 인사는 원초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요인을 갖고 있다. 장관으로 쓸 만한 인사 100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링컨처럼 통합에 중점을 두는 대신 문 대통령은 '코드'란 잣대를 들이댄다. 100명 중 절반가량이 코드가 안 맞아 배제되고 만다. 코드가 맞는 인사 50명 중 5대 인사 배제 원칙에 걸려 상당수가 또 도태된다. 남은 인사 중에서도 고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청문회에서 만신창이가 될까 봐, 국정 운영이 대통령과 청와대 중심이다 보니 장관은 허수아비에 그칠까 봐, 정권이 바뀌면 '적폐'로 몰려 탈탈 털릴까 봐 손사래를 치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남는 사람이 없다."왜 이런 사람을 추천했느냐"는 여권 질책에 청와대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코드에 맞는 사람만 고르다 보니 제대로 된 장관 후보자를 내놓기 어렵다. 탕평 인사를 하지 않는다면 장관 구인난과 인사 참사는 정권 내내 계속될 것이다.

2019-04-04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숙청은 면죄부?

1937년 4월 멕시코에서 미국 철학자 존 듀이의 주재로 트로츠키의 재심 재판이 열렸다. 이는 자기를 옹호하는 좌파들의 성원을 바탕으로 트로츠키가 존 듀이에게 직접 요청한 것으로, 1936년 소련이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하면서 트로츠키에게 적용한 '국가전복 기도혐의'의 타당성 여부를 심사했다. 결론은 '그 혐의는 날조, 트로츠키는 무죄'였다.이 재판은 각국의 민간인들로 구성된 국제조사위원회가 마련한 것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었다. 그러나 '무죄' 판결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트로츠키에게 전혀 가당치 않은, 혁명 러시아가 1인 독재체제로 타락하는 것을 막으려 스탈린에게 맞섰으나 패한, 불운한 혁명가라는 이미지를 입힌 것이다.재판 3년 뒤인 1940년 트로츠키가 망명지인 멕시코에서 스페인 출신 소련 비밀요원인 라몬 메르카데르에게 살해된 사건은 이런 희생자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한 것은 물론 그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의 상징으로 치켜세우는 희한한 유행을 낳기도 했다. 이들 모두 트로츠키의 실체와 전혀 무관한 상상력의 산물이었다.트로츠키는 숙청당했지만, 그것이 그가 스탈린 못지않은 폭력 숭배자이며 민주주의를 적대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그의 전기를 쓴 영국 역사학자 로버트 서비스는 그를 '권력을 잡지 못한 스탈린'으로 묘사한다. 그가 권력을 잡았어도 스탈린과 똑같았을 것이란 얘기다. 폴란드 출신 영국 철학자로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이란 방대한 저서를 쓴 레셰크 코와코프스키도 같은 의견이다.국가보훈처가 1일 개최한 '김원봉 독립운동 업적' 토론회에서 "북한 정권에 기여했어도 숙청 등으로 배제된 자들은 (독립운동) 공적을 평가해줄 필요가 있다"는 소리가 나왔다. 항일 무장 활동을 했지만, 해방 후 월북해 북한 정권 수립에 핵심 역할을 한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지정하기 위한 자락 깔기다. 김원봉이 1958년 김일성의 연안파(延安派) 숙청 때 제거됐다고 그의 반(反) 대한민국 행적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숙청은 숙청일 뿐이지 면죄부가 아니다.

2019-04-03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완장의 날들

'일제강점기…방우는 왜놈들과 어울려 다니더니 연락책(連絡責)이란 감투를 얻어냈다. 붉은색 완장을 차고 다녔다…그는 대단한 행세를 부렸다. 머슴살이 시절에 업신여김을 당했거나 조금이라도 서운하게 했던 사람에게 앙갚음을 시작했다. 심지어 없는 죄를 꾸미거나 부풀려서 일본 순사(巡査)에 일러바쳤다…평화롭던 시골이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였다….'(심성택, 『우리들의 봄날』, 2019년)'사농공상'(士農工商). 조선은 신분 사회로 백성은 완장을 찬 양반이 다스렸고, 양반은 과거시험으로 벼슬에 올라 감투를 쓰고 행세했다. 완장 두른 양반이 과거와 돈, 권력을 무기로 감투를 쓰면 대대로 영화를 누렸고 그들만의 삶을 이어갔다. 그렇게 양반의 완장과 감투는 이 땅의 신화가 됐다.이런 신화를 일제는 한민족 이간책으로 썼다. 높은 사람은 그들대로, 낮은 사람은 밀정과 헌병 보조원, 순사(보) 등 앞잡이로 완장과 감투를 준 일이다. 경상도 옛 머슴처럼 완장과 감투는 퍽 유용했다. 머슴은 일본을 믿고 온갖 횡포였고 다른 삶을 누렸다. 물론 광복이 되자 마을에서 그는 사라졌지만.완장과 감투 문화는 이어졌다. 자유당 말기가 배경인 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초등학교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힘으로 학교 '반장' 완장을 찬 엄석대가 담임을 믿고 학급을 주무르는 횡포도 같은 맥락이다. 담임이 바뀌고 반장 횡포도 끝나고 엄석대도 학교를 떠나지만 완장의 폐해는 어른 세계와 마찬가지다.완장과 감투 집착 모습은 오늘도 그대로다. 또 완장과 감투에 걸맞지 않으면서도 욕심이다. 최근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와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 등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8명의 인사검증 실패 인물들도 그렇다. 모두 각종 의혹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일들이 들통나서다.머슴과 엄석대의 완장 피해는 한 마을과 한 교실에 그쳤지만 나랏일을 보는 자리 완장은 이와 다르다. 완장을 채우는 사람이나 완장 차고 싶은 사람 역시 스스로 자격이나 있는지부터 되돌아볼 일이다. 완장과 감투, 이제는 결코 아무에게나 주는 '떡'이 아니다.

2019-04-02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기미상궁(氣味尙宮)

조선시대 왕의 죽음에는 유난히 독살설이 많다. 특히 국정이 혼미했던 조선 후기 국왕과 세자들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 독살설에 힘을 실었다. 어느 시대건 권력자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과 의혹 속에는 어김없이 권력과 암투 그리고 음모와 배신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마련이다.조선 왕의 독살설은 성군 세종대왕의 왕위를 물려받은 문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양대군이 권력을 찬탈해 세조로 즉위했을 때 형인 문종에게 잘못된 음식을 처방했던 의원의 이름이 공신 명단에 올랐던 것을 근거로 삼는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서 볼모 생활을 하며 국제 정세를 두루 익혔던 소현세자도 석연찮은 죽음을 맞았다.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의 죽음은 독살설이 가장 유력하다. 수구 세력인 노론 벽파를 등에 업은 젊은 할머니 정순왕후와의 권력 투쟁은 TV 드라마로도 많이 소개되었다. 정조의 손자이자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의 죽음도 그렇다. 영특했던 효명세자가 뜻을 펴보기도 전에 세상을 뜨면서 조선은 세도정치에 이어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당파 싸움과 권력 투쟁에서는 왕의 목숨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왕이 수라를 들기 전에 시좌하고 있던 상궁이 먼저 음식 맛을 보는 것이 의례적인 절차였다. 그것은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를 살피는 일종의 검식(檢食) 과정으로 '기미(氣味)를 본다'고 했다. 그 역할을 담당한 상궁을 '기미상궁'이라 했다.현대의 권력자도 마찬가지이다. 독재자일수록 그렇다. 늘 암살의 공포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수행비서에게 반드시 먼저 음식을 맛보게 했고,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도 여러 명의 검식관을 항상 대동하고 다녔다고 한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24시간 검식관이 동행하며 조미료까지도 검식한다고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북미 정상회담 때 기미상궁 역할을 한 수행원들이 있었다는 소식이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좋은 음식조차 맘놓고 먹지 못하고 뒤끝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독재자의 삶을 그래도 부러워해야 하나?

2019-04-01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文대통령의 '잔인한 봄'

문재인 대통령에게 2019년 봄은 '잔인한 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올해 신년사에서 천명한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려고 나름 애쓰고 있는 가운데 봄에 터져 나온 악재들로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문 대통령은 북미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최악의 미세먼지 사태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반대 여론은 거세졌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칼끝은 청와대로 향하고 있고, 장관 후보자들 부실 검증에 대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책임론이 불거졌다. 버닝썬 사건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재직한 경찰 총경이 연루됐다. 설상가상으로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논란까지 터져 문 대통령으로서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국내외 악재들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문 대통령의 앞날이 달렸다. 조기 레임덕에 빠져 국정 혼란이 갈수록 심해지느냐, 국정 동력을 회복해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느냐 갈림길에 섰다.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사퇴했다.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선택이다. 부동산 투기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엄중하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비롯해 하자투성이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는 게 마땅하다.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 수사를 지시할 때와 같은 결기를 문 대통령이 장관 임명에서도 보여줘야 국민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다음 달 한미정상 회담에선 북한 비핵화 해법 찾기는 물론 흩트러진 한미 공조를 회복하는 것도 문 대통령이 힘써야 할 일이다.2월 산업활동동향에서 생산, 소비, 투자 등 3대 경제지표가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들 지표가 모조리 마이너스인 것은 경제 위기 때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 경제가 올해 여러 측면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등 문 대통령 말에 동의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바닥으로 추락한 경제를 끌어올리는 것이 문 대통령 본인도 수렁에서 끌어올리는 길이다.

2019-03-30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성추문과 정치

요즘 한국에는 온종일 섹스 스캔들로 시작해 그것으로 끝난다. '성 추문 사회'를 방불케 한다. 인터넷·방송 등에서 쏟아지는 것은 버닝썬·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장자연 사건이다.이들 사건에는 폭력, 몰카, 별장 동영상, 성 접대 등 말로만 듣던 추문이 모두 들어 있다. 거기다 가수, 배우, 전 법무부차관, 언론사 사장 일가 등 잘나갔거나 높은 지위의 인물이 대거 연루돼 있다. 높이 올라간 인사들이 추락하고 폭망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즐거움을 줄지 모른다. 이 때문에 스캔들은 대중에게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필요악이란 말이 있는 모양이다. '너도 별 볼 일 없구나. 역시 같은 인간이었구나'는 생각과 함께.세 사건 모두 정치적 배경을 갖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예상 밖에 버닝썬 사건까지 정치권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일 국회에서 "버닝썬과 관련해 연예인 승리를 매개로 YG엔터테인먼트와 양민석 대표, 국정 농단의 차은택 감독, 조윤선 전 장관까지 연결된다"며 "이 사건의 최초 폭행자인 서현덕은 최순실의 조카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실체적인 진실인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여당은 '제2의 최순실 게이트'라고 규정한다.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사건의 불똥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튀어 그 여파가 상당하다. 황 대표가 김 차관의 재임 시절 장관이었고, 곽 의원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점 때문인데, 제법 그럴듯한 그물망으로 보인다. 장자연 사건은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는 조선일보와 관련된 만큼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해도 검찰이 열심히 파헤칠 것이 분명하다.우연인지, 의도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세 사건 모두 현 정권 인사는 아무 관련이 없고, 야당 혹은 정권에 적대적인 인사뿐이다. 집권 세력이 유독 깨끗하고 도덕성이 있기 때문일까. 문재인 대통령까지 이례적으로 검경의 명예를 걸고 이들 사건의 진상을 밝히라고 지시했다. '정치적 음모설'에 기름을 붓는 지시였다. 성 추문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저급하고 정치 도의에 맞지 않다. 성 추문은 성 추문으로 놔두는 게 어떤가.

2019-03-2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울릉 대구경북 33선언

"한국의 이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항상 가난했기 때문에 경제공황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농장이나 혹은 다른 사람의 농장에서 나는 생산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바깥세상은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백인 여성으로는 1923년 처음 들른 뒤 1932년 다시 울릉을 찾은, 대구의 미국인 선교사 부해리(傅海利)의 부인 하복음(河福音)이 남긴 편지글이다. 1909년 울릉에 첫 교회가 생긴 뒤 전도를 위해 찾은 섬이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기억된 셈이다.11일 동안 머물며 총 72㎞, 많이 걸을 때는 하루 12㎞(30리)까지 다니며 5곳 교회와 2곳의 기도처를 도느라 몸무게가 2.7㎏이나 빠졌고 '산을 넘어 걷고,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해서' 울릉의 여러 마을(창형·천포·저동·도동·다동)을 누빌 수 있었다.이런 울릉은 고종 때 본격 재개척됐다. 1882년 6월 검찰사 이규원을 '비워둔 섬' 울릉에 보내 조사하고 그해 12월 개척령을 내리면서다. 이듬해 16가구 54명을 옮겨 살게 했고 이후 독도까지 거느린 울릉은 더욱 중요한 섬이 됐다.일제의 수탈 시절도 보낸 울릉은 1963년 종합개발계획 수립 뒤 섬 일주도로 공사 착공 등으로 다시 변화와 발전을 노렸다. 그러나 돈 문제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다 지난해 12월, 55년 만에 완전히 뚫렸다. 울릉 개척사의 경사다.게다가 이를 축하하고 더 빛낼 행사마저 이뤄지게 됐으니 울릉은 올해 특별한 3월을 맞고 보내는 셈이다. 29~30일 대구경북의 광역·기초자치단체 33곳 대표들이 처음 울릉에 모여 대구경북의 발전과 앞날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유독 대구경북은 정부 인사, 예산, 각종 정책 등에서 가뜩이나 홀대와 찬밥 신세인 즈음이라 이런 모임이 더 반갑다. 100년 전, 한민족 운명을 바꾼 민족대표 33인의 3·1운동 독립선언서 같은 그런 결과물도 기다려진다. 일주도로 개통으로 울릉의 모습이 달라지듯, 이번 33인 대표 모임에서 지금의 고립에서 벗어날 대구경북의 큰 그림도 그려지길 바라면 지나칠까.

2019-03-28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월경(越境)

공항은 한 국가의 관문이자 국경이다. 정상적인 여권이나 입국사증을 가지면 누구든 절차를 밟아 통과할 수 있다. 종종 허술한 감시를 틈타 입국 심사대를 뛰어넘어 불법 월경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하지만 공항은 항만·육상 등에 비해 통제가 잘 되는 국경이다.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터미널'(2004년)은 '경계선'으로서의 공항의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크로코지아라는 동유럽의 한 가상국가에서 뉴욕으로 여행 왔다가 공항에서 발이 묶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여행 도중 자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신분 상황이 복잡해지면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처지가 되자 공항 터미널을 집 삼아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앵글에 담았다.이 같은 스토리는 비단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공항에서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최근 언론에 조명된 인천공항 1터미널 46번 게이트에서 70여 일째 머무르고 있는 콩고 출신의 앙골라인 일가족 6명의 사연은 영화보다 더 절박하다. 콩고 출신에 대한 앙골라 사회의 박해를 피해 부부와 네 아이가 지난해 연말 관광비자로 인천에 도착했지만 입국이 거부되면서 공항 터미널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현재 인천공항 내 난민인정심사 대기실이나 송환 대기실에 머무는 사례는 훨씬 더 많다. 법무부 자료에 입국이 거부돼 송환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만도 74명에 이른다. 몇 해 전 입국 거부 조치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내고 터미널에서 200일 넘게 체류한 사례도 있다.성범죄 의혹 사건으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의 내사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 주말 인천공항을 통해 방콕으로 몰래 빠져나가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를 확인한 법무부의 긴급 출국 금지로 탑승 게이트 앞에서 월경이 무산됐지만 국민 뒷맛이 쓰다. 잘못을 저지르고 해외로 도피하는 공직자나 범죄 혐의자의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어서다.긴급 출금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논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도피로 책임을 덮으려는 그의 행동에서 지도층 인사의 윤리 수준을 보여준다. '본인이 아닌지, 맞는지'는 다시 조사해 밝히면 될 일 아닐까.

2019-03-27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과잉 경호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 살해는 암살 가능성에 대한 페르디난트의 무신경과 허술한 경호 대책이 초래한 비극이었다. 페르디난트가 살해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방문 날짜부터 적당하지 않았다. 6월 28일은 '성 비투스의 날'(St Vitus'day)로, 1389년 이날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 연합군이 오스만터키에 패배한 이후 '민족 부흥'을 염원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날이 돼왔다.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수복'할 땅으로 여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한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가 하필 이날 방문한다는 것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 큰 모욕으로 비쳤다. 세르비아 민족주의 테러단체인 '흑수단'(黑手團)이 이날을 거사(擧事)일로 잡은 이유다. 방문 날짜가 불길하다는 우려가 현지에서 나왔으나 페르디난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경호 대책도 엉망이었다. 페르디난트 부부가 탄 무개차가 군중이 밀집한 대로를 지나가도록 동선(動線)을 잡아놓고도 도로 양측에 경비병을 배치하지 않았고, 경호대도 대원 대부분을 페르디난트가 처음 도착한 철도역에 머물게 한 채 경호대장만 방문단에 동행했다.흑수단의 1차 폭탄 암살이 실패한 뒤의 대처는 더 한심했다. 1차 암살을 모면한 뒤 동선을 급히 변경했으나 운전사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그 바람에 페르디난트를 태운 차는 처음 동선대로 움직이다 변경된 경로로 급히 우회전해야 했다. 이는 그 주변에서 기다리던 19세의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하늘이 준 기회였다. 그가 발사한 권총탄 한 발은 황태자의 목 정맥을, 또 한 발은 그 아내의 위장 동맥을 끊었다.문재인 대통령이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했을 때 청와대 경호원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댄 채 기관단총을 노출해 '과잉 경호' 논란이 일고 있다. 문 대통령의 민생 현장 방문 때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하필 문 대통령 지지도가 낮은 대구에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은 대구를 '위험지역'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해프닝'인지 '기획'인지는 청와대만 알 것이다.

2019-03-26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박영선·유시민의 입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테세우스가 처단한 악당 중 프로크루스테스가 있다. 거인인 그는 여인숙을 차려 놓고 손님이 들어오면 쇠 침대에 눕혔다. 쇠 침대는 큰 것과 작은 것 두 개였다. 키가 큰 사람에게는 작은 침대를 내주고 작은 사람에게는 큰 침대를 내줬다. 키가 침대보다 커서 밖으로 튀어나오면 침대의 크기에 맞게 머리나 다리를 톱으로 잘라내고 작으면 몸을 잡아 늘여서 죽였다. 테세우스는 똑같은 방식으로 프로크루스테스를 침대에 눕혀 밖으로 튀어나온 머리를 잘라서 죽였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을 가르쳐 주는 신화다.말 잘하기로 이름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자신이 한 말로 말미암아 곤경에 처했다. '맹자'의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두 사람이 뱉은 말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2016년 국회에서 박 후보자는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씀씀이를 비판했다. "조 장관의 씀씀이 유명하죠. 연간 5억, 문화부 장관 되기 전에 여성부 장관 시절에는 연간 7억5천." 이번엔 박 후보자가 이번 주 청문회에서 자신의 씀씀이를 해명해야 할 처지가 됐다. 최근 5년 동안 박 후보자와 배우자가 신고한 소득은 약 33억원, 같은 기간 늘어난 재산은 9억9천여만원이다. 23억원가량이 어딘가에 쓰였다는 말이다. 자유한국당은 1년 평균 생활비가 4억6천만원에 달하는 '내로남불 씀씀이'라고 공격하고 있다.유 이사장은 2015년 마약 투약 혐의가 적발된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 사위에 대해 "마약 복용은 차고도 남는 이혼 사유다. 매우 흐뭇하게 이 사건을 보고 있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조카인 영화감독 S씨가 대마초 밀반입으로 실형을 확정받고 수감 중인 데 대해 별다른 얘기를 않고 있다. 알릴레오 홈페이지엔 "남의 도덕성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라" "내로남불 끝판왕" 등의 댓글이 달렸다.자업자득에서 업은 나쁜 업을 일컫는다. 가장 많이 저지르는 업이 말로 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뱉은 말이 자신을 향하는 비수(匕首)가 된다는 사실을 말 잘하는 박유 두 사람이 잘 보여주고 있다.

2019-03-25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외교 결례

과거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백악관에서 레이건 미국 대통령 부부와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를 가졌다. 웨이터의 주문 요구에 레이건 대통령이 "Coffee please"라고 하자, 낸시 여사가 "Me too"라고 했다. 그러자 전 대통령이 "미쓰리"라고 했는데, 옆에 있던 이순자 여사가 "왜요? 나 여기 있는데…"라고 했다.김영삼 대통령의 방미 때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How are you?"라고 인사말을 건네고, 클린턴이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하면, "Me too"로 마무리하라고 영어 자문을 했다. 그런데 김 대통령이 그만 "Who are you?"라고 인사를 하는 바람에 이를 조크로 받아들인 클린턴 대통령이 "I'm Hillary's husband"라고 받아넘겼다. 그런데 김 대통령이 "Me too"라고 해버린 것이다. 대통령의 방미 후 유행한 우스갯소리다.최근 동남아 3국 순방을 다녀온 문재인 대통령의 잇단 말실수가 외교적 결례 논란으로 비화했다. 말레이시아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인도네시아 말로 인사를 하고, 낮 행사에서 밤 인사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체코를 방문했을 때도 뒷말이 무성했다. 방문국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고 없는데 정상외교를 한다고 가서는 국내에서 적폐 취급하는 원전을 팔려고 했다는 것이다.2017년 12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문제가 더 심각했다. 차관보가 공항 영접을 나오는 푸대접에 이어 외교부장이 팔을 툭툭 치는 결례를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을 수행 취재하는 기자들이 집단 폭행을 당하는 참사까지 겪었다. 베이징에 머물던 대통령이 열 끼 식사 중 중국 관계자들과 함께한 것은 두 끼에 불과해 '혼밥'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현 정부 출범 이래 외교 결례와 의전 엇박자가 빈발하고 있다. 실수를 범하든 박대를 당하든 외교 결례는 나라 망신이다. 경험을 갖추고 능력이 검증된 외교관들을 적폐로 내몰고 코드 인사에 집착한 결과라는 비아냥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2019-03-23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차라리 DMZ(비무장지대)가 낫겠죠!

"답답하지요. 숱하게 건의했지요. 그러나 우리가 힘이 없으니, 동네 사람 가운데 잘난 사람도 살지 않으니 누가 농민 뜻을 알아주나요? 오로지 미군이 좀 더 배려(?)해주길 바랄 뿐이지요."경북 칠곡군청이 위치한 왜관읍 한 고을의 미군 부대기지 공사는 1953년 한미 방위조약이 체결되고 1959년 시작됐다. 이듬해 부대가 머물며 편입 자연부락 농민은 농토를 다른 곳으로 대토(代土)하거나 삶터를 옮기고 떠나야만 했다.붙박이처럼 남은 사람은 미군 부대를 지나 '자유롭게' 농로를 오가며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농로는 1970년대 새마을사업으로 시멘트로 포장됐고, 지금처럼 농로가 철조망으로 싸여 갇히지도 않았고 통행 제한도 별로였다.그러나 새벽별을 보고 집을 나서고, 달빛 아래 밤늦도록 일하다 귀가하는 옛 영농 방식을 그대로 잇던 시절은 사라졌다. 20여 년 전부터다. 미군 부대 울타리를 따라 수㎞를 빙 둘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200~300m 지름길 농로 사용 시간을 제한해서다.거의 자유롭던 통행은 농로 주변 철조망 설치 뒤 줄어 올 1월부터는 오전 7시~오후 7시까지 12시간으로 제한됐다. 마을 입구 설치 농로 첫 철문부터 농지 입구 마지막 철문까지 4개를 지나야 한다. 통과에 걸리는 시간은 늘 다르다.가운데 2개 철문 통과 때문이다. 통과를 위해 두 철문 사이 초소에 힘껏 소리쳐 근무자를 불러야 한다. 초소 시설 안 사람이 듣지 못하면 마냥 외칠 뿐이다. 목청 외 달리 연락할 수단이 없어서다. 초인종도, 전화선도, 연결 끈조차 없다.사정이 이래도 그나마 철조망 지름길이 고맙기만 하다. 이마저 막히면 농민들은 목숨을 걸고 위험한 찻길로 다닐 판이다. 게다가 찻길을 잇는 마을길은 심한 경사의 비탈진 언덕길이다. 맨몸 걷기는 물론, 차량이나 농기계는 드나들기 위태롭고 아찔하다.휴전선 비무장지대의 농사도 이렇지는 않다. 우리 땅을 내주고도 겪는 왜관 땅 이들 농민의 비애는 누구의 관심거리도 아니다. 주민까지 줄어도. 농사철이면 "하늘의 해라도 좀 더 머물기를 바란다"는 '칠곡 비무장지대' 농민의 한숨이 현실이 되길 비는 마음이다.

2019-03-22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10대 국가대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만큼 유머러스한 인물도 드물다. 1980년대 어느 날 은퇴한 축구선수 펠레를 접견했다. "제 이름은 로널드 레이건입니다. 저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본인이 누구인지 밝힐 필요가 없습니다. 펠레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축구 황제' 펠레는 타고난 천재다. 실내축구팀에서 성인들과 뛰기 시작한 것이 14세 때였고, 명문 산토스 클럽에 입단한 것은 15세 때였다. 1958년 17세의 나이에 국가대표에 선발됐지만, 하마터면 스웨덴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할 뻔했다.브라질 대표팀에 동행한 심리학자가 펠레와 '드리블의 마술사' 가린샤를 놓고 '선발 불가'라며 가로막고 나섰다. 이유는 두 사람의 정신 수준이 10대 초반에도 못 미쳤기 때문이다. 비센치 페올라 대표팀 감독은 이렇게 반박했다. "당신의 의견이 맞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당신은 축구를 알지 못하고, 나는 펠레의 플레이를 보았다." 펠레가 스웨덴월드컵 8강전 웨일스전에서 월드컵 최연소 골(17세 244일), 4강전 프랑스전에서 최연소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우승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0대 선수 멀티골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19세)가 기록할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는 17세 때인 197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 선발되지도 못했고, 리오넬 메시도 18세 때인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3경기에 교체 멤버로 출전했다. 영국의 웨인 루니는 18세 232일의 최연소 기록으로 유로 2004에서 4경기 4골의 경이적인 활약을 펼쳤으나 3차례의 월드컵에서는 단 1골에 그쳤다.18세에 축구 대표팀에 선발된 이강인(발렌시아)이 화제다. 22일 볼리비아전에 출전하면 18세 31일로 한국 최연소 기록이다. 10대가 발군의 활약을 보이는 이유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펠레나 마라도나처럼 무학력에 가까운 이들은 주입식 교육을 받지 않아 창의성 있는 플레이가 가능했다고 한다. 어쨌든, 한국에도 운동과 학벌, 두 마리 토끼를 좇던 시대는 지난 것 같다.

2019-03-21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먹방

거센 조세 저항 때문에 벽난로세(Hearth Tax)를 폐지한 영국 의회는 세금 징수에 큰 타격을 입자 1696년 '창문세'를 신설했다. 건물의 창문 수에 따라 세금을 매겼는데 당시만 해도 유리 가격이 매우 비싸 창문 있는 집에 사는 서민이 드물었다고 한다.그런데 부자들도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창문을 아예 없애거나 창문 수를 줄이면서 박쥐 소굴처럼 어두컴컴한 건물이 크게 늘었다. 불합리한 조세 정책이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창문세는 1851년 주택세 도입과 함께 150여 년 만에 폐지됐다.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먹방'이 사회·경제적 현상의 한 축으로 등장했다. 먹방은 창문이 없어 컴컴한 방이나 실내 공간을 지칭하는 속어다. 신호가 끊긴 전화기를 두고 먹통이라고 하듯 햇빛이 들지 않아 깜깜한 공간을 이르는 말이다.먹방의 대표적인 사례가 고시원이다. 빈민가 쪽방이나 PC방·만화방·찜질방 등 비주택 거주민 숙소들의 형편도 별반 다를 바 없지만 고시원은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독신 저소득층 주거시설의 대명사다. 벌집처럼 수십 개의 방을 촘촘하게 잇댄 탓에 최소한의 주거 요건도 갖추지 못한 곳이 더 많다. 보안이나 건축비 절감을 이유로 창문을 따로 내지 않기 때문이다. 고시원은 현대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자 기형적인 주거 공간 현상의 하나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서울시가 고시원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고시원 주거기준'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그제 발표했다. 고시원 화재로 인명 피해가 계속 이어진 때문이다. 방 면적은 7㎡(2.12평) 이상 되어야 하고, 창문 설치도 의무화했다. 노후 고시원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비용도 지원한다. 현재 전국 1만2천 곳 고시원의 절반이 서울에 몰려 있는데 74%가 먹방이다.먹방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선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둔한 방향 감각을 잘 보여준다. 국민 주거 복지를 위해 세금을 아끼지 않는 게 바로 선진국이다. 고시원 등 다중생활시설의 구조 개선은 인간다운 주거 공간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라는 점에서 건축법 개정도 서둘러야 할 때다.

2019-03-20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집권 3년 차 징크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쫄 것 없다"고 했지만 중도층 이탈 등 실상을 들여다보면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쫄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로 떨어진 것은 역대 대통령들에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라고 변명할 여지가 있다. 문제는 지지율을 반등시킬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데 있다. 시쳇말로 북한 이슈는 '약발'이 다 떨어졌다. 오히려 악재로 바뀌었다. 경제·민생에서 성과를 내 지지율을 끌어올리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문 대통령이 여러 난관에 봉착하자 문 정부 역시 역대 정부처럼 집권 3년 차 징크스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집권 3년 차에 여러 악재가 돌출하면서 지지율이 하락하고 민심 이반이 일어나는 현상이 앞선 정부에서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김영삼 정부는 삼풍백화점 붕괴 및 대구 지하철 공사장 폭발 사고, 김대중 정부는 정현준·진승현 게이트와 의약분업 사태,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값 폭등이 집권 3년 차에 일어났다.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 수정안 부결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박근혜 정부는 '정윤회 문건 파동' '성완종 리스트' '최순실 사태'로 몰락을 재촉했다.집권 3년 차 이후 선거에서 여당이 대부분 패한 것도 징크스로 꼽힌다. 네 번의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모두 패했다. 다섯 번의 총선에선 여당이 네 번을 졌다. 노무현 정부는 3년 차인 2005년 27곳 재·보선에서 전패(全敗)했다.이 같은 이유에서 다음 달 3일 치러지는 경남 창원 성산, 통영·고성 두 곳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결과에 주목하게 된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 앞날이 달렸다. 민주당이 두 곳 모두 패하면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문 대통령은 급격한 레임덕이 불가피하다. 민주당은 텃밭을 내주게 돼 내년 총선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역대 정부의 집권 3년 차 징크스에서 챙겨야 할 교훈이 하나 있다. 임기 중반을 넘어서면 국민의 시선이 냉철해진다. '남 탓'만 해서는 국민 지지를 받기 힘들다.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는 것만이 집권 3년 차 징크스를 피하는 비결이다.

2019-03-1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송사, 대통령과 그 사람들

"할아버지는 8형제 가운데의 여섯 번째이다…하동 지방에선 8형제 8천 석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내가 태어날 무렵엔 거의 몰락 상태에 있었다…중부(仲父)의 독립운동이 그 원인이었다. 3·1운동에 관여하여 대구 감옥에 수감된 중부를 구출하기 위해…자금을 일본인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빌렸다…변호사 사례금 등 꽤 많은 돈을 백 두락 이상의 토지를 저당 잡히고…속수무책으로 빼앗겼다."소설가 이병주는 1921년 태어나 부자 집안이 몰락한 까닭을 글로 남겼다. 작은아버지를 구하려다 일본인 농간에 말린 사연이다. 돈을 기일에 맞춰 갚으러 갈 때마다 일본인이 자리를 피했고, 결국 기일을 넘겨 땅은 강제 차압됐고 오늘날 공탁제도처럼 달리 길이 없어 땅을 앗긴 사연이다. '그 무렵 일본인들은 그런 술책으로 조선인의 토지를 빼앗은 모양'의 '그 술책을 알아차렸을 때 이미 늦었다'.당시 이런 일은 그럴 만했다. 일제가 만든 겹겹의 족쇄 탓이다. '새 법령이 매일 비 오듯이 쏟아진다'는 말과 총독부 기관지 보도처럼 '오늘에 한 법이 나오고 내일에 또 한 법이 나오'니 미처 적응할 틈조차 없던 백성은 그저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큰소리를 내도', '솔잎을 긁어도' 죄가 되니 온통 죄인이지만 돈 없으면 변호사는 그림의 떡이고, 그냥 볼기짝 맞는 태형(笞刑)만이 해결이었다.게다가 393명의 변호사 자격인(1932년 기준)도 일본인 173명, 한인 220명이나 한국인조차 통감부와 총독부 판·검사 출신이 122명이었으니 재판은 이미 기운 운동장이었다. 소송에 말린 백성이 몸과 재산을 지키기는 그야말로 독립운동만큼 난제였을 것이다.지금도 소송은 늘 돈 싸움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변호사 비용을 대느라 자택(95평)을 팔았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자택(83평)을 내놓고 거제도 집(25평)은 넘겼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역시 집(43평)을 판 모양이다.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에 여럿 사람들이 송사로 부동산 매각 등 돈 마련에 나선 소식이다. 이병주의 증언과 다르지만 소송의 재산 손실 결과는 고금이 같은 듯하다. 송사! 돈 없으면 피하고 멀리 하라는 가르침인가, 경책인가?

2019-03-18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100년 전 그랬듯이

"지금 어떤 사람이 남의 땅을 빼앗았다고 합시다. 빼앗긴 사람이 땅을 다시 찾으려고 한다면, 빼앗은 사람이 도적이오 찾으려는 사람이 도적이오? 찾으려는 사람과 빼앗은 사람이 재판소에 와서 송사를 한다면, 재판관은 장차 누구를 도적이라 하겠소?"(장석영 지음·정우락 옮김, '국역 흑산일록-대구감옥 127일, 그 고난의 기록', 2019년)한국의 독립을 외치는 글 서명으로 일제는 1919년 3월 16일(음력) 국법을 어겼다며 유학을 배운 경북 성주의 장석영을 감옥에 가뒀다. 검사가 '죄'를 묻자 그가 '도적'인 일제에 들려준 대답이다. 사실 일제 도적은 주인 노릇이었고 친일파를 뺀 백성은 '짐승보다 못한' 삶이었다.19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호국의 고을답게 대구경북에서는 여러 행사가 열렸다. 대구에서는 불교 1월 17일, 기독교 2월 22일, 천주교 3월 5일 각각 기념 학술행사를 가졌다. 저마다 만세운동에 나선 교계 사람들의 활동과 용기를 기리고 그날의 함성을 잊지 않고 앞으로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였다.대구경북은 여러 종교가 어울려 지내고, 믿음을 위해 목숨조차 버린 흔적과 나라를 위해 힘을 보탠 역사적 자산을 가진 곳이다. 불교의 이차돈 순교, 평등 세상을 바란 동학 최제우의 순도, 천주교 신자들의 희생이 그랬다. 일제 시절엔 여러 종교인들이 뛰어난 독립운동을 펼쳤다.유림도 빠지지 않는다. 137명이 서명한 파리장서운동이 그렇다. 서명자에는 대구경북 사람이 62명으로 가장 많고, 대구 출신은 13명으로 성주(15명) 다음이다. 이처럼 대구의 종교인들은 믿음은 달라도 바라는 독립은 같았던 셈이다.이런 대구경북의 종교 자산은 귀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해가 엇갈린 사회 갈등을 풀고 종교 간 화합으로 이을 고리가 됨직하다. 이를 엮어 또 다른 힘으로 바꾸는 일은 '도적'을 쫓고 '주인'이 된 오늘의 우리들 몫이다. 정치적으로 어두운 요즘, 이런 역사적 자산을 잘 쓰는 지혜가 기다려지는 대구경북이다.

2019-03-16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관치 미학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TV 프로에서 한 외국인 출연자가 이런 말을 했다. 서울을 둘러보고 느낀 첫인상을 그는 '거칠다'고 표현했다. 맥락상 고층빌딩 등 건축물에서 자연미나 세련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의미로 들렸다.그가 사는 북유럽 도시의 공간 구성과 미학이 서울과는 차별되고 생소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적 아름다움과 개성이 결여된 우리의 건축 감각에 대한 솔직한 평가라는 점에서 한국적 공간 건축에 대한 해석과 표현, 디테일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게 한다.개인적으로 지방 소도시 중 가장 자주 찾은 곳은 무주군이다. 우선 덕유산을 빼놓을 수 없지만 무주 곳곳에 들어선 공공건축물이 제시하는 여유로움과 정결한 소읍 풍경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무주 나들이만도 10여 차례가 넘는다.무주는 6개 읍면에 인구 2만4천 명의 작은 농촌 지역이다. 대구로 치면 동(洞) 인구 규모와 비슷하다. 그런 무주가 공공건축의 실험장이 된 것은 2001년 무렵으로 건축가 정기용이 '작은 사회운동'으로 평가한 '무주 프로젝트'가 배경이다. '진도리 마을회관'을 처음 설계하고 완성하면서 마을과 사람과의 관계 재편 등 새로운 공간 해석에 골몰했다.정기용은 한 보고서에서 '무주 프로젝트는 고통스러운 노동과 희생 위에서 가능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 고통의 결실은 컸다. 공공건축과 디자인의 힘이다. 단순히 멋이 아니라 사람이 주체가 되는 공간, 그런 철학을 반영한 건축의 중요성에 주목한 것이다. 사람이 중심에 서는 도시공간 재창조를 모토로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한 영주시 도시재생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서울시가 최근 아파트 재건축·재개발 시 구획과 층수, 디자인 등의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허가를 않겠다고 선언했다. 민간 건축물에까지 도시계획 결정권을 확대한다는 방침인데 도시 경관의 관치(官治) 우려가 불거지며 논란이 거세다. '성냥갑' 오명을 벗는 돌파구가 될 수도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는 것이다. 자고나면 불쑥 솟아오르는 대구시내 '닭장' 아파트 단지들을 보면서 문득 대구의 도시공간 전략이 궁금해진다.

2019-03-15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조선(造船)의 운명

기원전 480년 그리스 함대가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왕이 이끄는 대전함을 무찔렀다. 그렇게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그리스는 황금기를 구가한다. 당시 집정관이었던 테미스토클레스가 포퓰리즘 정책을 거부하고 전함을 구축해 전투를 지휘한 결과였다.1592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한산도에서 학익진을 펼치며 일본 함대와 싸워 대승을 거뒀다. 임진왜란의 전세를 크게 바꿔 놓은 이 대첩에 등장한 전함이 거북선이었다. 1805년 넬슨 제독의 영국 함대는 나폴레옹의 전선을 트라팔가 해전에서 물리쳤다. 나폴레옹의 날개를 꺾은 싸움이었다. 이때 활약한 주력 전함이 98개의 대포로 무장한 테메레르호이다.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해전과 그 승전의 배경에는 해군력을 뒷받침한 조선술(造船術)이 있었다. 서양의 조선술과 항해술은 신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를 건설했다. 해양력을 상실한 동양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중국은 명나라 때 인도양을 거쳐 이슬람권에까지 이른 정화의 대원정 이후 바다를 외면하고 말았다. 한반도의 백제가 해양세력을 구축하고, 통일신라의 장보고가 해상왕국을 건설한 것도 조선술이 바탕이 되었다.거북선도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닐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조선(造船)의 DNA가 흐르고 있다. 한국의 조선업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원동력이다. 그것이 무역 대국 대한민국을 견인했을 것이다. 최근 우리 조선업이 중국을 제치고 다시 '수주 1위'를 탈환했다는 소식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합친다는 빅뉴스도 들린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면서 최첨단 기술을 요하는 기술집약적 산업이기도 하다.세계적인 브랜드를 갖춘 대기업과 고품질의 후판(厚板)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철강 업체도 있어야 한다. 기술력이 뛰어난 기자재 업체의 지원과 창의적인 엔지니어들의 손재주가 필요한 종합예술이다.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국과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일본 조선업을 누르고 다시 조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2019-03-13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대통령들의 비극

영화 '벤허'에 나왔듯이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은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황제가 있는 곳까지 행진했다. 개선식에서 장군을 뒤따르며 노예가 계속 외친 말이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의역하면 '너도 언젠가 죽는다는 걸 잊지 마라'는 뜻이다. 전쟁에 한 번 이겼다고 해서 교만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23년 만에 법정에 다시 선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며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이 떠올랐다. 제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두른 대통령들은 대부분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1996년 내란수괴·내란·내란목적살인 등 13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전 전 대통령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법정에 또 나왔다. 보석으로 풀려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주거지 및 접견·통신 제한을 받아 '자택구금' 신세다.유일하게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직 옥중에 있다. 탄핵 2년째인 10일 지지 단체들이 전국 곳곳에서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조만간 석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구속 재판 기간이 끝나거나 현직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받는 방법이 있지만 두 가지 모두 어려운 상황이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아들이 구속됐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년가량 복역하다 사면조치로 풀려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8년간 장기 집권했지만 부하에 의해 시해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장기 독재 집권을 하다 4·19혁명으로 하와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청와대 본관엔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다. 전직 대통령들의 초상화를 보면서 현직 대통령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나간 대통령들의 영광만 기억했을 뿐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은 돌아보지 않았지 싶다. 그랬다면 대통령들의 비극은 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을 따라다니며 '메멘토 모리'를 외쳐줄 수도 없고, 역대 대통령들의 비참한 순간을 청와대에 초상화로 남겨둘 수도 없고…. 대통령들의 비극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마음이 무겁다.

2019-03-12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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