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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청와대 권력

헬기를 타고 가던 사단장이 아래를 내려보다 거수경례를 하는 병사를 봤다. 사단장 왈(曰). "충성심이 남다른 저 병사에게 포상 휴가를 줘라." 뜻밖의 휴가를 얻은 그 병사, 사실은 헬기 소리에 하늘을 올려보다 눈이 부셔서 눈썹 위에 손을 올린 것뿐이었다.정권이 바뀌었어도 '청와대 권력'이 세긴 센 모양이다. 2017년 9월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이 토요일 국방부 근처 카페에서 육군참모총장을 만났다. 육군 인사 선발 절차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다며 행정관이 육참총장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실무자급에 확인할 수 있는데도 나이가 30대 중반인 행정관이 예순을 바라보는 육군 최고 책임자를 불러낸 것이다. 청와대 권력을 보여주는 만남이다.만나게 된 과정도 문제이거니와 성격과 내용, 끝맺음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장성급 인사 절차가 진행되는 시기에 육참총장이 청와대 행정관과 사전에 만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두 사람은 인사 자료를 가지고 장성 진급 인사 범위와 대상에 대해 논의했다. 만남에 동행한 다른 청와대 행정관은 장군 진급 심사 대상자였고 같은 해 연말 진급했다. 육참총장을 불러내 만난 그 행정관은 만남 후 군 인사 파일을 분실해 의원면직됐다.청와대 해명은 더 가관이다. 행정관이 의욕적으로 일을 하는 과정에서 군 인사 전반에 대한 파악이 필요해 육참총장에게 의견을 청취한 것이라고 했다. 4급 행정관이든 인사수석이든 똑같이 대통령 지침을 받아 수행하는 비서라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장성 진급 대상자에 대한 검증은 해당 행정관의 고유 업무가 아니었다. 청와대 인사 검증은 인사수석실이 아닌 민정수석실에서 담당한다.특감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 적자 국채 발행 압박 의혹 등 청와대 권력의 어두운 면들이 속속 노출되고 있다. 청와대의 권력 독점 현상을 지적한 정치학자 박상훈은 저서 '청와대 정부'에서 청와대가 내각을 수직적으로 지휘하는 정부 운영 방식은 비(非)민주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 때가 보수판 청와대 정부라면 지금은 진보판 청와대 정부라고 규정했다. 인적 쇄신을 통해 청와대가 얼마나 달라질지 두고 볼 일이다.

2019-01-08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구미 한 초부의 꿈

'우리 구미도 전망이 좋은 지역에 탑을 세우고, 청백리 228명을 모시는 공원을 만든다면 좋은 교육용 관광상품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지난해 12월 연말이 저물 즈음, 필자에게 한 권의 책이 배달됐다. 이종원(83) 전 구미문화원 이사가 지난 2011년 12월에 엮은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라는 제목의 책이다. 스스로 '나무하는 늙은이'라며 '초부'(樵夫)라고 소개한 그는 243쪽에 이르는 책을 엮은 까닭으로 청백(淸白)과 청풍(淸風)을 앞세웠다.구미에 청백공원과 청백탑이 세워지면 기릴 인물 228인은 조선조 선산(구미) 등 전국 청백리 219명에 정약용 등을 더한 숫자라고 했다. 그가 사비로 책을 출판한 것은 "청백은 후대에 물려줄 훌륭한 문화유산"이라 판단해서다.동서양의 여러 나라를 둘러보고 책을 냈다는 그의 설명에 따르더라도 그가 굳이 청백을 주제로 한 책을 낸 배경이 선뜻 이해되지 않지만 그가 살았고, 앞으로도 살아갈 삶터인 구미에 대한 국가의 청렴도 평가를 살피면 나름 이해할 만도 하다.정부 발표 청렴도에서 지난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10년의 구미시 성적은 초라하다. 2009년 5단계 평가에서 세 번째인 보통 또는 3등급이 2015년까지였다. 특히 2012년 5등 꼴찌 성적이 2016년부터 반복, 내리 3년째 이어졌으니 말이다.그가 이런 비참한 뒷날의 결과까지 미리 알고 이를 경계하기 위해 책을 엮지는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구미시의 청렴도 평가 결과를 보면 그가 일찍부터 청렴과 청백의 강조와 관광 상품화를 주장한 일은 되돌아볼 초부의 꿈이자 안목이 아닐 수 없다.비록 내용과 편집에서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세월 지난 그렇고 그런 종이 묶음에 그칠 수도 있는 책을 애써 소개한 까닭은 한 초부의 고향 앞날을 아끼고 걱정하는 한 조각 마음 씀씀이만큼은 그대로 묻어둘 수 없어서다. 또한 자신이 발을 딛고 머무는 터에 그만한 고민을 하는 초부가 새해에는 넘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담아서다.

2019-01-05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히든 피겨스

시어도어 멜피 감독이 2016년에 발표한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들은 소위 '마이너리티'로 취급받아온 흑인 여성들이다. 인간 존재를 피부색으로 나누고, 여성이라는 굴레에 편견까지 덧씌워 차가운 시선으로 보던 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감독은 앵글에 사실적으로 담아낸다.1960년대 초 미국 내에서도 흑인 차별이 가장 심했던 버지니아주에서 '흑인+여성'이라는 조합은 말 그대로 최악이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일하는 공간은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던 미국항공우주국(NASA)이라는 점은 단순히 차별과 편견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하기 힘든 대척점 그 자체다. 그럼에도 이들은 남다른 재능과 꿈을 갖고 '백인+남성' 구도를 조금씩 허물고 영화 제목처럼 '숨은 영웅들'의 실화 스토리를 완성한다.이처럼 이중 핸디캡을 보기 좋게 극복해낸 이들은 나사 최초의 흑인 여성 매니저이자 전산 전문가 도로시 본, '인간 컴퓨터'로 궤도 비행 성공에 기여한 수학자 캐서린 존슨,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항공엔지니어 메리 잭슨이다. 이들은 미·소 우주기술 경쟁에서 미국의 우위를 확보하는 데 크게 공헌한 숨은 공로자다.하지만 이들의 공적은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다. '흑인 여성'이라는 프레임 탓이다. 1958년 나사 출범 초기 고용된 흑인 여성들은 별도의 분리된 시설에서 근무할 정도로 극심한 차별을 받았다. 지금도 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가 어려운 이유다.미국 뉴욕주가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기념일을 제정한다는 소식이다. 뉴욕주 상·하원은 3월 1일을 '유관순의 날'로 정하는 결의안을 이달 중에 상정키로 했다. 지난해 '세계 여성의 날' 110주년을 맞아 뉴욕타임스가 세계 역사에서 주목할만한 여성 15명을 선정해 추모 부고(訃告)를 연재하면서 유관순의 삶을 재조명한 것이 계기다.삶의 형태는 다르지만 억압과 차별을 뚫고 치열하게 나아갔던 히든 피겨스, 숨은 영웅들의 귀환은 그래서 의미가 더 크다.

2019-01-04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남 탓'만 하는 문 정권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얘기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델포이 신탁(神託)을 받아보고 페르시아를 공격했다. 신탁은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로 출병(出兵)하면 대제국을 멸망케 할 것이다"였다. 그러나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에 패해 리디아는 페르시아의 속주로 전락하게 된다.이에 크로이소스는 신을 탓했다. 그러나 델포이 무녀(巫女)의 대답은 가혹했다. "신탁은 대제국을 멸망케 할 것이라고만 했을 뿐이다. 크로이소스가 신중하게 생각했다면 대제국이 페르시아인지 리디아인지 물었어야 했다. 신탁의 뜻도 모르고, 살펴보지도 않은 자신에게 죄를 돌리는 것이 옳다."이 이야기에 내포된 의미는 분명하다. 자신의 결정과 행동은 온전히 자기 책임이라는 것이다. 물론 델포이 무녀의 말은 '거짓 신탁'에 대한 교활한 변명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대제국'이 페르시아라고 제멋대로 해석하고 확신한 잘못은 온전히 크로이소스의 몫이다.히틀러가 독소전쟁에서 패한 책임도 마찬가지다. 히틀러는 당초 작전 개시일을 1941년 5월 15일로 잡았으나 6월 22일로 연기했다. 그리스를 침공한 무솔리니가 대패해 돕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을 끝낸다는 계획은 틀어졌다. 패배가 확실해지자 히틀러는 "이탈리아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었던 최선의 도움은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었다"며 무솔리니를 탓했다.하지만 패배는 예정돼 있었다. 서쪽의 미국과 영국, 동쪽의 소련과 동시에 전쟁을 할 능력이 독일에는 없었다. 무솔리니를 도울 일이 없어 예정대로 5월 15일 소련으로 쳐들어갔어도 독일의 패배는 불가피했다는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말 여당 지도부와 회동에서 경제 성과가 국민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며 '언론 탓'을 했다. 이에 앞서 7월에는 여당 원내대표가 고용난을 이명박박근혜 정부 탓으로 돌렸다. '남 탓'은 비겁한 책임 회피이자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는 고백이다. 크로이소스는 무녀의 말을 전해 듣고 잘못은 신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문재인 정권에 이런 '내 탓'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인 듯하다.

2019-01-03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새해 첫날의 '플랜B'

기해년 첫날 1월 1일을 관통한 키워드는 '플랜B'였다. 축구대표팀은 손흥민이 빠진 상황에 대비한 플랜B 전술을 점검하는 사우디와의 평가전에서 0대0으로 비겼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미국의 제재·압박이 계속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밝혔다. 플랜B에 대해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운을 뗀 것이다.59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하는 축구대표팀은 플랜B 전략을 모색했으나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손흥민이 키르기스스탄과의 아시안컵 2차전 이후 합류하는 까닭에 사우디전에서 대안을 찾으려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플랜B를 얼마나 숙달하느냐에 대표팀 우승이 달렸다.김정은 위원장이 발표한 신년사 대미(對美) 메시지는 2차 정상회담을 포함해 대화 의지를 피력하면서도 일방적 양보는 강요하지 말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는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 들고 제재 압박으로 나간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협상이 뜻대로 안 되면 플랜B로 갈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김 위원장이 언급한 새로운 길은 핵 프로그램 재개로 풀이된다. 북한이 새로운 길로의 진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사실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계속하는 조짐이 포착됐다고 했다. 미국 NBC는 북한이 이미 핵무기 양산에 들어갔고 2020년엔 1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지난해 11월 북한은 "관계 개선과 제재는 양립될 수 없는 상극"이라며 미국의 태도에 따라 핵무기 개발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바 있다. 김 위원장이 말한 새로운 길은 이 논평과 일맥상통한다. 미국이 찍어 누르면 북한이 미국 말을 듣고 수그리기보다 핵을 포기하지 않고 하루 세끼 먹고 버티는 쪽을 택할 것으로 보는 이가 많다.축구대표팀에게 플랜B를 안착시켜 꼭 우승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김 위원장이 플랜B로 갈 경우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19-01-02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북한의 성탄 예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유로 개인적 신앙심 이외에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고 역사학자들은 주장한다. 그 요지는 콘스탄티누스가 동로마의 기독교인들을 당시 한창 발흥하고 있던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의 대항 세력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특히 황제 권력의 강화에 이용 가치가 높다고 봤다는 것이다.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이단 박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카르타고의 도나투스파 탄압이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공인 후 황제는 하느님과 교회의 권위에 의해 임명되며 인간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웠다. 도나투스파는 교회 내에서의 이런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성스러운 것은 황제와 교회가 아니라 어떤 세속적 타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실한 믿음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새로 뽑힌 카르타고 주교 카에킬리아누스를 앞세워 이들을 무참히 박해했다.러시아 혁명 후 러시아정교회는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혁명 당시 교회는 4만6천457개, 수도원은 1천28개였으나 1939년에는 100개에서 1천 개 미만으로 격감했다. 이 과정에서 사제 80%가 처형되거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죽었다.1941년 6월에 터진 독소전쟁으로 이런 탄압이 끝나고 스탈린은 정교회 지원으로 돌아선다. 그 이유는 국민의 꺾이지 않는 신앙심이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1937년 인구조사다. 여기서 국민의 57%가 여전히 신앙인이라고 대답했다. 스탈린은 대독(對獨) 저항을 위해서는 국민 총동원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정교회가 해줄 것이라고 본 것이다.북한 민족화해협의회가 운영하는 사이트 '려명'이 26일 "조선반도의 평화 분위기가 사탄 무리들의 방해 책동으로 흐려지지 않도록 평화의 별이 걸음걸음 비춰주기를 기원하는 축복기도가 있었다"며 북한 내 교회에서 성탄절 예배가 진행됐음을 공개했다.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내보이기 위한 제스처다. 정치적 목적에 종교를 이용하는 불순한 의도를 여기서 다시 본다.

2018-12-2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옛 그 철길 걷는 날

'간도로 가는 유랑농민(流浪農民) 차림으로 3등 차에 올랐다. 겨우내 입고 나무하던 허름한 농민 옷 솜 속에 지폐를 펴서 넣고 전대에 넣어 허리에도 두르고…두루막에 수건을 머리에 동이고…괴나리봇짐에 보따리도 하나 들고 흡사 유랑농민 그대로 아무 환송하는 사람 없이 쓸쓸히 차에 올랐다.'100년 전인 1918년 2월, 옛 대구은행원 이종암은 대구 집을 떠나 왜관에서 숨어지내다 미리 마련한 군자금을 숨겨 허름한 옷차림으로 3등 열차에 몸을 실었다. 당시 일제의 극심한 농촌 침탈로 살길을 찾아 중국 간도로 떠나는 가난한 백성은 숱했고 일제도 이를 더욱 부추기던 즈음이라 엄한 감시도 잘 피했을 터이다.일제가 1905년 개통한 경부선 열차로 그가 100년 전, 서울 지나 경의선을 타고 국경 넘어 중국으로 망명했듯이 옛 철도엔 독립운동가들의 숱한 애환이 깃들게 됐다. 일제엔 한국 침탈과 자원 수탈의 수단으로, 또 중국 대륙 침략 군대와 물자를 옮기는 수송의 철길이었겠지만 항일 지사들은 되레 독립운동에 쓴 셈이다.그렇게 전국의 백성들은 살길과 광복을 위해 생사를 던져 국경 건너 남의 땅 중국 남쪽 상해로, 북경 밖 고비사막 지나 몽골로, 연해주와 극동을 거쳐 동토(凍土) 시베리아와 멀리 유럽까지 험난한 여정에 나섰다. 여운형과 서영해, 몽골의 은인(恩人) 의사(醫師) 이태준 같은 뭇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기록을 보면 더욱 그렇다.우리가 남북 강산의 통일을 애끊게 소원처럼 노래 부른 까닭도, 끊어진 남북 철도와 도로가 다시 잇기를 바라는 마음도 한결같다. 강산을 둘러싼 외세로 허리 잘린 역사도 통곡할 만한데 이제 우리끼리마저 갈래로 찢겨 다투며 날을 새는 판이니 오죽할까. 이제는 달라질 때도 됐지 않은가.마침 지난 26일 남북과 중국, 몽골, 러시아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북한 개성 판문역에서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열렸다. 곧 땅을 파는 착공의 속도전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미뤄졌지만 감회는 남다르다. 철도나 도로, 뭐든 뭍길을 잇는 날, 군자금을 숨긴 괴나리봇짐이나 전대도 없지만 옛 그 길을 마냥 걷고 싶어서다.

2018-12-28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권력의 타락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영국 역사가 존 달버그-액튼이 19세기에 남긴 유명한 말이지만, 행동심리학자들은 이 명언을 입증하기 위해 숱하게 실험했다. 대처 켈트너 UC버클리 교수의 '쿠키 몬스터'(cookie monster)라는 실험이 흥미롭다.'실험 대상 3명을 한 조로 묶어 임의로 1명에게 리더의 자격을 부여하고, 과제를 할당한다. 작업 시작 30분 후에 갓 구운 쿠키 한 접시를 제공한다. 접시에 담긴 쿠키는 4개. 3명이 쿠키 1개씩 먹고, 남은 쿠키는 누가 먹을까?' 대부분 리더로 지목된 사람이 먹는다. 남들은 1개씩밖에 못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리더 자신은 거리낌 없이 2개를 가져간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리더들은 쩝쩝 소리를 내며 먹거나 부스러기를 흘리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켈트너 교수는 대학, 의회, 스포츠계 등을 상대로 다양한 실험을 한 결과, 지위가 올라갈수록 점차 나쁜 행동을 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했다. 권력을 얻기 전에는 으레 선한 행동, 관대함과 공정성, 나눔 등의 행태를 보이지만, 권력을 얻으면 무례하고 이기적이고 부도덕한 행동을 하기 쉽다는 결론이다. 권력자의 타락은 인간 본성에 기인한다는 의미일 것이다.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에 비슷한 사례가 있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항에서 24세 보안 근무자에게 '갑질' 논란을 벌인 것은 권력의 타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XX들이 똑바로 근무 안 서네"라고 겁박하는 것으로 부족한지, '이리저리 전화 걸고, 사진까지 찍은 것'을 보면 비열함의 극치다.그가 젊을 때도 이랬을까. 김 의원 블로그를 보면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과 함께 30여 년이 넘는 시간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달려왔다'고 쓰여 있다. 아마 학생운동, 재야운동 때에는 그런 비열함을 드러내지 않았고 두루 민중을 사랑했을 것이다.청와대가 전 감찰반원 김태우 수사관을 두고 '6급 주사' '미꾸라지'라고 지칭하는 걸 보면 권력이 서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권력 앞에선 진보나 수구 세력이 똑같다. '인간이 제대로 돼야…' 하는 옛말이 생각난다.

2018-12-27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불자동차' BMW

올해 92세인 KBS '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송해 씨가 자신의 건강 비결은 'BMW'라고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BMW를 자주 탄다. B는 버스고 M은 메트로(지하철)이고 W는 워킹이다. 그래서 BMW라고 하는 거다."BMW는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다. BMW는 원래 항공기 엔진 업체였다. 1916년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기에 쓰이며 선두 자리에 올랐다. 패전 이후엔 군수품이란 이유로 생산이 금지되기도 했다. BMW는 모터사이클로 재기했고, 1928년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다. BMW의 지난해 판매량은 자동차 246만3천500대, 바이크 16만4천 대로 역대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매출액은 120조원에 달했다.이런 BMW가 한국에서는 '불자동차'로 불리고 있다. 불자동차란 의미가 불을 끄는 소방차에서 불이 자주 일어나는 BMW를 일컫는 것으로 바뀌었다. 실제 올 상반기 등록 차량 1만 대당 화재 건수는 BMW가 1.5건으로 국산·수입차를 통틀어 1위다.BMW 화재 원인을 조사한 민관합동조사단이 차량에 엔진 설계 결함이 있었으며 회사 측은 이를 알고도 은폐 축소하면서 리콜을 지연시켜온 것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BMW 코리아를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형사고발하고 늑장 리콜에 대한 과징금 112억원을 부과하기로 했다.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화재 사고 원인이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에 대한 제작사의 설계 결함 때문이라고 밝힌 부분이다. BMW로서는 설계 결함은 치욕적이자 치명적이다. 설계 결함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경우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런 까닭에 BMW는 설계 결함은 아니라며 정면 반박했다. 양측 모두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어서 앞으로 첨예한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한 지인이 몇 해 전 장성한 자녀로부터 생일 선물로 BMW 자동차를 받았다고 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BMW가 불자동차란 불명예를 떨쳐버리지 않는 한 부모에게 BMW를 선물하는 자녀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송해 씨도 요즘엔 BMW를 탄다는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

2018-12-26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아우성의 나라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청마 유치환은 '깃발'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그렸다. 청마의 깃발은 소리가 없는 아우성이어서 더 울림이 크다. 청마는 간파했다. 인간은 이상향에 대한 간절한 동경을 품고 있지만, 갈 수 없는 근원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그것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역설한 것이다.그렇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은 이데아계와 감각계에 동시적으로 관여하는 중간자"라고 했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수학자인 파스칼도 유명한 명상록 '팡세'에서 "인간은 신과 동물의 중간자"라고 했다. 그래서 인간 사회에서는 아무리 좋은 이념과 제도를 내세워도 이상적인 공동체를 건설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를 보면 그렇다. 천사도 짐승도 아닌 내 스스로를 들여다봐도 그렇다.우리 국민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보다는 이상에 대한 맹목적인 열망에 기우는 경향이 짙다. 시위와 집회로 지새우는 어제와 오늘이 그 방증이다. 촛불 정권의 업보 때문인가, 문재인 정부 2년 차인 올해 들어 각종 집회와 시위가 그전보다 57%나 급증했다고 한다. 경찰청은 올 한 해 전국에서 열린 집회·시위가 6만7천 건을 넘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그중에서 약 10%가 민주노총의 집회라고 한다. 모든 분야에서 모든 욕구가 분출하고 있다. 시·공간도 가리지 않는다. 법과 질서의 개념은 도외시한 지 오래다. 각자의 목소리가 극과 극을 이루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방불케 한다.다양한 목소리가 화음을 이루는 민주정치가 아니라, 저마다의 악다구니가 소음으로 증폭되는 중우정치(衆愚政治)가 횡행하고 있다. 외국 언론은 한국을 '시위 공화국' '아우성의 나라'라고 비꼰다. 평범한 일상조차 보장받지 못하니 '이게 나라냐'는 자조적 통탄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차라리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목소리들이 예사롭지 않다. 도대체 얼마나 더 투쟁하고 얼마나 더 쟁취해야 직성이 풀릴까. 이러다가 '깃발'마저 부러질 판이다.

2018-12-25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국회의원 갑질 논란

1인당 국민소득이 5만달러가 넘는 스웨덴의 국회의원 세비는 9천만원가량이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못 미치는 우리나라는 2억원을 훌쩍 넘는다. 연봉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스웨덴 국회의원은 '3D 직업'으로 꼽힌다. 1년에 10개월이나 회기가 이어져 쉴 틈이 없다. 재임 4년 동안 1인당 평균 87개의 법안을 발의할 만큼 격무에 시달린다. 그런데도 의원 개인 보좌관이 없다. 소속 정당 정책보좌관 몇 명에게서 도움을 받는다.스웨덴 국회의원은 전용차가 없는 등 특권도 찾기 어렵다. 수도인 스톡홀름에 사는 의원은 버스나 전철, 트램 등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해야 한다. 자전거를 타는 의원을 쉽게 볼 수 있다. 국외 출장 때엔 규정에 따라 이코노미석을 이용해야 한다. 일은 고되고 특권은 없는 까닭에 자발적 불출마자가 30%에 달한다.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는 의원이 적지 않다.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은 칭찬보다는 비난을 많이 받는 존재다. 온갖 특권과 특혜를 누리면서 하는 일은 없다는 게 국회의원에 대한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다.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둘러싼 갑질 논란이 뜨겁다. 김 의원이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줄을 섰는데 공항 직원이 김 의원에게 탑승권과 신분증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김 의원이 지갑에 신분증을 넣어둔 채 보여주자 직원은 신분증을 지갑에서 꺼내서 보여달라고 했다. 김 의원은 신분증이 투명하게 보인다는 이유로 거절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욕설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적으로 지금껏 비행기를 타면서 신분증을 지갑에 넣고서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다.김 의원은 김경수 경남지사의 지방선거 출마로 공석이 된 김해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부산대 재학 중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됐을 때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고,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엔 농업법인 봉하마을 대표이사를 지내 '노무현의 마지막 호위무사'로 불렸다. 누구보다 특권 없는 세상을 꿈꿨던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이 각별한 김 의원이 갑질 논란 한가운데 섰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2018-12-24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거지'의 완장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각설이패가 동냥을 하면서 불렀다는 '각설이 타령'이다. 경상도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타령은 거지라도 남의 도움을 그냥 받지 않고 춤과 노래로 청중에 보답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역대 왕조는 전쟁·흉년 등으로 생긴 거지 떼를 사회 불안 요인으로 여겨 동향에 신경을 썼다.거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한 최초의 왕은 명태조 주원장이다. 자신이 젊었을 때 구걸 행각을 한 적이 있으므로 그 경험을 살려 거지들의 자치단체를 만들고 우두머리로 단두(團頭)를 임명했다. 단두는 잘못을 저지른 하급 병사 출신으로 채워졌는데, 권한이 막강했다. 거지들이 동냥해 온 음식·금품을 공동 수거해 분배하는 것은 물론이고 거지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처벌하는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었다.당시 단두는 타구봉(打狗棒·개 쫓는 몽둥이), 한연관(旱煙管·중국 곰방대) 등을 신물(信物)로 삼았는데,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거지 문파인 개방(丐幇)의 모티브가 됐다. 단두 완장만 차고 있으면 하루 종일 누워 뒹굴다가 동냥해 온 것 중에 맛있는 것만 골라먹으며 거지들의 왕 행세를 했다. 그 정도라면 괜찮지만, 인간의 탐욕은 가히 끝없다. 아이를 잡아다 실명케 하거나 팔다리를 잘라 장애인으로 만들어 앵벌이를 시키는 악행도 일삼았다. 한국의 거지왕 김춘삼은 고아원 설립, 거지·창녀의 결혼 주선 등 좋은 일을 많이 했지만, 중국의 거지왕들은 빌붙어 먹는 '거지 근성'의 정점에 있는 대표적인 군상이다.땀 흘려 돈 벌지 않은 이들은 그 수고로움을 모른다. 월급 받은 적이 없고, 남의 돈을 갖다 쓰기만 한 이들은 일종의 '거지 근성'이 배어 있다. 그런 이들이 완장을 차니 온통 시끄럽다. 노동의 가치·노력에 대한 대가 등은 무시하고 그저 남의 것을 내놓으라고만 한다. 법은 필요 없고 '떼법'만 있을 뿐이다.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수구 세력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혼탁한 세상이다.

2018-12-22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트럼프 양서류'

학명(學名)은 학문 연구의 통일성과 효율성을 위해 생물에 붙이는 분류학적 이름이다.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가 고안했으며 속(屬)명, 종(種)명 순서로 이어 쓴다. 생물 분류 체계에서 가장 낮은 단계가 종, 한 단계 높은 개념이 속이다. 학명은 해당 생물의 발견자가 재량껏 붙일 수 있다. 대체로 유명 인사나 지역의 이름이 붙는데 대통령 이름도 자주 쓰인다.학명에 가장 많이 이름을 올린 대통령은 오바마이다. 물고기, 이끼, 도마뱀, 기생충 등 모두 9종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다. 이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7종)을 넘는 역대 1위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만 들면 미국 하와이 해안에서 발견된 물고기 '토사노이데스 오바마'(토사노이데스는 일본 연안에 서식하는 물고기 속)이다.이 물고기를 발견한 하와이 비숍박물관의 해양생물학자들이 오바마 대통령이 하와이 해양보호수역을 4배로 늘린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렇게 붙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물고기 사진을 보고 "잘 생긴(nice-looking) 물고기"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지미 카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름이 들어간 생물도 있다. 이를 포함해 대통령의 이름을 딴 생물은 200여 종에 이른다.학명에 유명인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오바마 전 대통령과 같이 대개 감사, 칭찬, 현양(顯揚)의 의미다. 올해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에서 발견된 바다 딱정벌레의 학명이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이름을 딴 '그로벨리누스 리어나도디캐프리오'가 된 것은 그런 예이다. 생물 다양성을 연구하는 네덜란드 민간단체가 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해 만들어진 디캐프리오 재단 설립 20주년을 기념해 그렇게 작명했다고 한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우는 정반대다. 중미 파나마에서 새로 발견된 양서류의 학명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딴 '데르모피스 도널드트럼피'로 정해졌는데 그 이유는 원시적인 형태의 눈을 갖고 있어 앞을 보지 못하는 이 생물의 특징이 지구온난화를 믿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와 닮아서라고 한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난 믿지 않는다"고 했다. 학명을 제대로 붙인 것 같다.

2018-12-21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팔공산 구름다리

강원도 정선과 평창군에 걸쳐 있는 가리왕산(加里旺山)은 해발 1,561m로 국내에서 9번째로 높은 산이다. 지리산·오대산처럼 산세가 장중하고 바위보다 흙이 많아 육산(肉山)으로 통한다. 원시림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큼 우거진 삼림은 가리왕산의 자랑거리다. 2008년 정부가 유전자보호림 구역을 더 확대해 모두 2천475㏊에 이를 정도이니 말 그대로 하늘이 준 선물이다.그런데 가리왕산에 먹구름이 낀 것은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가 계기다.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면서 가리왕산 중봉에 알파인스키장 건설을 놓고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당연히 자연 훼손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었는데 국책사업과 환경보호 목소리가 극심하게 충돌한 대표 사례가 됐다. 당시 정부는 올림픽이 끝나면 원상 복원한다는 조건으로 특별법까지 만들어 공사를 강행했다.가리왕산은 주목·자작나무 군락, 이끼계곡 등 훼손 우려 때문에 함부로 발을 들여놓기가 조심스럽다는 평가가 많다. 활강코스 공사를 위해 아름드리나무를 베어내기 전에 봐두어야겠다며 등산객 발길이 이어진 것도 그 위상을 말해준다.하지만 올해 말로 국유림 사용허가 만료를 앞두고 최근 가리왕산 생태 복원과 스키장 존치를 놓고 또 의견이 맞서고 있다. 환경부와 산림청은 약속대로 복원하자는 입장이고, 강원도와 스키협회는 2천억원의 예산이 든 국제시설인데 스키장이나 곤돌라 등 일부는 그대로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어느 쪽이 더 명분과 설득력이 있는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지역에서도 팔공산 '구름다리' 조성을 둘러싼 진통이 크다. 시민단체와 종교계는 팔공산 8부 높이에 320m 길이의 구름다리가 놓이면 동식물 서식지 파괴 등 자연 훼손이 불을 보듯 뻔하다며 반대한다. 시는 관광 활성화를 명분으로 건설에 힘을 주고 있다. 자연환경의 미래는 현재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서 그 길이 갈린다. 어떤 인공 구조물이든 긍정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오른 만큼 내려오는 게 산행의 이치이듯 자연에 한 번 손을 대면 본연의 가치를 잃는 건 피할 수 없어서다.

2018-12-20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불법 사찰의 역사

"우리 사회에 권력과 이권을 같이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2010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와의 월례회동에서 강조한 얘기다. 대통령의 공개 발언치고는 강도가 셌다. MB가 누구를 염두에 두고 이런 멘트를 날렸는지 설왕설래가 분분했지만 얼마 후 정두언, 정태경, 남경필을 지칭한 것으로 드러났다. MB정권 창업 공신인 이들 3명은 이상득 의원의 퇴진을 요구하며 권력 내부 싸움을 벌이던 와중이었다. 누가 MB에게 3명의 비리를 부풀려 보고했을까? 이들을 사찰한 것은 국무총리실 공직지원윤리관실이었지만, 누가 보고한 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다수 민간인, 여야 정치인을 사찰해 파문을 일으킨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이어진다.정권의 민간인 사찰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정권 안위에 관련된 일인 만큼 불법 사찰의 유혹은 끊을 수 없는 '마약'과 비슷한 모양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에는 사찰이 노골적이고 광범위해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지만, 노무현 정부 때에도 그 강도는 약했을망정 불법 사찰 논란이 있었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유신시대를 회고하며 정보사찰기관의 행태를 이렇게 기억했다. "유신정권이 정보부, 보안사, 경찰 등 정보원을 많이 거느리다 보니 그들끼리 경쟁이 생겨서 새 정보가 안 나오면 지어내서라도 보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보 활동을 하는 자가 상부의 의중 희망 사항을 알고 구미에 맞게 쓰면 벌써 역기능이 생긴다." DJ의 말처럼 사찰기관이 권력의 보위기구로 움직이면 폐해가 생기기 마련이다.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 전직 총리 아들, 은행장, 특정 민간회사 동향 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청와대는 특별감찰반에서 쫓겨난 인물의 개인 일탈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언젠가 의혹이 밝혀지겠지만, 권력의 속성에 미뤄 청와대의 반박을 믿지 않는 분위기다.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3년 후 정권이 바뀌면 사건 관련자들이 뒤탈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

2018-12-19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그 때는 잘 몰랐다

2012년 4월에 치러진 19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간 최대 쟁점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 문제였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재협상을 촉구했다. 한미 FTA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4월 2일 타결됐다는 점에서 이는 민주통합당의 어처구니없는 자기부정이었다. 민주통합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추진을 적극 찬성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명숙 총리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불법, 폭력집단 주동자뿐만 아니라 적극 가담자, 배후 조종자까지 법과 원칙에 따라 엄단하겠다"고까지 했다.이런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기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는 찬성해 놓고 이제 와서 반대하는 것은 무슨 의도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통합당은 곤혹스러웠다. 어떻게든 이런 비판을 피해갈 묘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강구해낸 논리가 '그때는 잘 몰랐다'였다. 한미 FTA 찬성할 때는 몰랐지만 이제 와서 보니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는 구차한 변명이었다.당시 정동영 민주통합당 의원의 '고백'이 대표적이다. 그는 2011년 10월 20일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끝장토론에서 "저도 까맣게 몰랐습니다. 2008년 월가가 무너지고 나서야 '아 이게 신기루구나. 우리가 금융허브, 우리도 돈장사해서 미국같이 홍콩같이 돈을 벌 수 있다라고 생각했던 FTA가 환상이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라고 했다.노무현 정부 때 법무부 장관으로 한미 FTA 비준을 위한 합동 담화문에 서명까지 했던 당시 천정배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2011년 11월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법무부 장관이었음에도 협상이나 과정을 제대로 알기 힘들었다"고 했다.국방부가 대규모 군사훈련과 무력 증강을 남북이 협의한다는 9·19 남북군사합의서 1조 1항 내용의 수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무력 증강이란 표현이 옛날식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지만 실제로는 예비역 장성들의 비판대로 이 조항이 군사주권의 침해에 해당하는 것임을 뒤늦게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군사 합의는 졸속이었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 역시 그때는 잘 몰랐기 때문일까?

2018-12-18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윤창호법

지난 2006년 일본 법원은 우체국 직원을 치어 식물인간으로 만든 음주 운전자에게 징역 2년 4개월을 선고했다. 함께 진행된 민사소송에서는 3억엔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지금 환율로 30억원에 이르는 액수다. 당시 일본 내 교통사고 소송에서 이례적인 고액 판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2006년은 '음주운전과의 전쟁' 평가가 나올 정도로 일본에서 음주운전이 큰 이슈가 된 해다. 이듬해 일본 국회는 도로교통법 등을 개정해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한층 강화했다. 음주운전 적발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엔 이하의 벌금으로 바꿨다. 또 음주운전을 방조한 동승자는 물론 음주운전을 할 우려가 있는 사람에게 차량 또는 주류를 제공한 사람도 처벌하도록 법을 개정했다.지난해 한국에서 음주운전 사고로 모두 439명이 숨졌다. 하루 1.2명꼴이다. 2013년 727명, 2014년 592명과 비교하면 감소하는 추세다. 하지만 지난해 상반기 음주운전으로 재판에 넘겨진 2천164명 중 173명만 실형 판결이 났다. 음주운전 사고와 후속 과정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소리다.최근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도 이런 사회적 우려 때문이다. 이른바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냈을 경우 법정형을 현행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3년 이상의 징역 혹은 무기징역으로 형량을 늘렸다. 함께 개정된 도로교통법의 운전면허 정지 및 취소 기준도 훨씬 엄격해졌다.음주운전이나 보복운전 등 사회 안정을 위협하는 범죄를 보는 일본 사회의 시선은 냉혹하리만큼 단호하다. 한 사람의 일탈로 피해를 입은 사람과 그 가족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해자 보호법'으로 불릴 정도로 무르기만 했던 우리의 관련 법규가 이제 개정된 만큼 법 적용 관행도 달라져야 한다. 엄한 처벌만이 음주운전을 줄인다고 통계는 이미 증명했다.

2018-12-15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할머니의 가훈

'너희들은 청렴하게 살거라!'경북 예천이 고향인 류우순(86) 할머니가 50여 년 전, 고향 초등학교 앞에서 가게를 하며 한 초교생의 학용품값 500원의 거스름돈을 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뒤늦게 그 학생을 찾아 사과하려는 사연을 '야고부'에 소개(본지 10월 29일 자)했다. 그 인연으로 지난달 할머니의 '평생일기'를 아들 정완영 부경대 교수로부터 받았다.할머니가 평생 쓴 일기를 2012년 책으로 엮은 자서전인 셈이다. 하지만 책을 보니 아들의 고민이 컸음을 짐작할 만한 내용이 숱했다. 집안의 아픈 상처나 감추고 싶은 일이 수두룩해서다. 그러나 정 교수는 '한 번은 정리하고 가야 한다'는 어머니 뜻을 차마 거스르지 못해 그대로 옮겼다고 한다.그런데 할머니의 책 마지막 부분이 돋보였다. 마치 결론처럼 실은 가훈으로, 스스로 배운 서예 실력으로 적은 가훈은 한자로 된 '청렴'(淸廉)이었다. 서애 류성룡의 후손이란 자긍심에다 사별한 교사 남편에 이어 5남매 자녀 가족이 초·중·고·대학교에 몸을 담은 탓인지 청렴 두 글자가 책의 마지막을 장식했다.류 할머니의 가훈 '청렴'이 돋보이는 까닭은 '정신수도'를 외치던 경북 안동시청이나 안동·예천에 걸쳐 둥지를 튼 경북도청 주변에서 일어난 여러 일들이 세상 사람 입방아에 오르내려서다. 안동시청 공직자 비리 소식은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그 상위 기관들의 실망스러운 행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그런 탓인지 이철우 도지사 취임 뒤 옛 모습을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다. 5천만원 상당의 값이 나간다는 돌에 새겨진 '사람 중심'이란 도청 입구 글귀 교체나 해마다 2천500만원 넘는 관리비로 골머리였던 높이 30~33m 높이의 5개 깃발 게양대 철거도 그렇다. 대대적인 사람 교체도 곧 있을 모양이다.이런 흐름이 경북도의 거듭나기로 이어지길 바란다. 특히 청렴도 평가에서 마침 올해는 중간 성적이었지만, 만년 하위에 맴돌던 과거를 정리하고 부패를 막는 계기로 삼으면 금상첨화이겠다. 류 할머니가 옛일을 잊지 않도록 일기를 책으로 남기고, 자녀들에게 청렴을 가훈으로 남겼듯이 말이다.

2018-12-14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첫눈이 내리면

첫눈이 오면 무엇을 할까?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를 만나고 싶다. 친구도 좋고, 옛 애인도 좋고, 스승도 좋다. 그와 함께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눈 내리는 풍경을 한없이 지켜보겠다. 첫눈이 내리는 날, 일상에서 벗어나 낭만에 젖고 싶은 것은 누구나 소망하는 일이다.시인 정호승은 '첫눈 오는 날 만나자'에서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고 했다. 정겹고 낭만적인 시구다.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몇 년 전에는 대구에 첫눈이 오면 영화 '닥터 지바고'를 함께 보는 작은 이벤트가 열리곤 했다.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닥터 지바고'를 좋아하고, 추억에 빠져들고픈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3시간 20분의 상영 시간에 몇 번씩 본 영화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시베리아의 설원과 자작나무, 오마 샤리프·줄리 크리스티의 애절한 사랑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뒤풀이로 눈을 안주 삼아 소주잔 기울이면 그야말로 환상이었다.첫눈은 누군가에게는 낭만이고 추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고통이고 악몽일 수 있다. 군에 갔다 온 이들은 눈을 두고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 '악마의 X가루'라고 했다. 눈만 내리면 온종일 삽 들고 제설작업을 했던 고통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첫눈을 보고 좋아했다가 고참들에게 맞아 죽을 뻔했다'는 이도 있다.11일 대구에 첫눈이 내렸다. 아침부터 내린 눈이 금세 비로 바뀌어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싸락눈'이 됐다. 다음 날, 곳곳이 얼어붙거나 진창길로 바뀌었다. 통행에 불편하기 짝이 없으니 짜증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길가의 얼음은 아이들에게는 스케이트 타는 즐거움을 주지만, 노인들에게는 낙상의 위험을 준다. 그렇더라도 눈 내리는 날이 좋다. 올겨울, 옛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2018-12-13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노이무공' '탈'

연말이면 올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무엇이 선정될지 관심을 두게 된다. 촌철살인의 묘미를 지닌 사자성어가 뽑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설문조사플랫폼 두잇서베이와 함께 '올 한 해 자신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한 사자성어'를 물었더니 다사다망(多事多忙·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이 1위로 꼽혔다. 그다음으로는 고목사회(枯木死灰·형상은 고목과 같고 마음은 재와 같아 무기력함) 노이무공(勞而無功·온갖 애를 썼지만 보람이 없다)이 선정됐다. 각자 살길을 찾아간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룬다는 전전반측(輾轉反側) 수중에 가진 돈이 하나도 없다는 수무푼전(手無分錢)도 이름을 올렸다. 힘들고 팍팍한 삶을 반영하는 사자성어들이다.자영업자들이 가장 많이 고른 게 노이무공이다. 갖은 애를 썼지만 보람을 찾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경기 침체에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의 심경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노이무공은 문재인 대통령의 올해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도 들어맞는 것 같다.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 등 미국과 북한을 오가며 온갖 애를 썼지만 보람을 느낄 만한 결과를 끌어내지 못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지 않는 등 남북 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을 결과로 내세울지 모르지만 애초 목표한 북한 비핵화는 전혀 진척되지 않았다.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수십조원에 이르는 세금을 쏟아부었지만 고용지표가 참담한 수준으로 추락한 것도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노이무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사자성어 대신 한 글자로 올해를 정리한다면 '탈' 자를 꼽고 싶다. KTX가 탈선(脫線)해 국민 불안이 증폭하고 있다. 사고 전 이상 징후가 수차례 나타났는데도 시정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사고가 나지 않은 게 이상할 지경이다. 또 탈(脫)원전 정책에 따른 전력 수급 불안을 막으려고 한국전력이 중국·러시아에서 전기를 수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탈원전 부작용이 속출하는데도 문 대통령과 정부는 엉뚱한 길로만 가고 있다. 대한민국이 단단히 탈이 났다.

2018-12-12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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