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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수출1호 시(詩) 잇는 할매

'님이여, 강을 건너지 마오/ 님께서 끝내 강을 건너시네/ 강을 건너다 빠져 죽으니/ 님을 어찌하리오.'고조선 시대 작품으로 알려진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이다. 한국 가요에서 가장 오래됐고 1천800여 년 전 중국 후한 시대 즈음부터 중국 문인들에게도 알려져 그들의 문집에 소개된 노래다. 이러니 아마 한국 민간 가요로서 수출 1호의 시(詩)로, 오늘날 한류(韓流)의 원조쯤으로 봐도 무난한 작품인 셈이다.그런데 주인공과 노래를 부른 아내의 나이가 흥미롭다. 작품 주인공은 강가에 사는 흰머리 사나이, 즉 삶의 달고 쓴 풍파를 고루 겪었을 백수(白首) 남편이다. 이에 미뤄 이런 기가 막히는 슬픈 노래를 불러야만 했던 아내 역시 가슴 설레던 젊음을 보내고 삶의 뒤안길을 맞은 나이 지긋한 여인이었을 듯하다.우리의 첫 시는 이처럼 세월의 나이를 보낸 흰머리의 어른이 주인공이었고, 노래를 부른 이도 그만한 세월의 무게를 견딘 아내였을 터이다. 그래서일까. 이후 시대와 왕조가 바뀌고 강산이 변해도 세상에 나온 숱한 노래와 시에는 삶의 고비를 굽이굽이 지나온 옛 사람들의 작품이 적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올 들어 설밑에 잇따라 출판된 경북 할머니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시집 두 권도 이런 흐름과 다르지 않다. 지난달 출판된 경북 칠곡의 권연이 외 91명 할머니가 다듬은 작품을 담은 '내친구 이름은 배말남 얼구리 애뻐요'와 이달에 나온 김천 이길자 할머니 시인의 동시집 '나무 그늘을 파는 새'는 그런 사례다.경부선 기찻길로 통하는 뭣이 있는가. 두 곳 '할매'의 놀랍고 샘솟는 시의 열정은 감탄할 만하다. 칠곡에서는 지난 2015년 첫 할매 시집 '시가 뭐고?'부터 이번까지 벌써 세 권째다. 김천 이길자 시인 역시 2010년 첫 시집 '홍매화 입술' 이후 3권까지 낸 데 이어 올해 동시집도 냈으니 말이다. '노익장'(老益壯)이다.옛 우리 '할매' 핏속 시심(詩心)이 세월을 넘어 흘러 끊임없이 이어질 길조(吉兆)가 아닐 수 없다.

2019-02-16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표현의 자유

로베르 포리송(1929~2018). 프랑스 리옹 1대학에서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던 학자로 1979년 이후 "홀로코스트는 역사적 거짓말"이라는 주장을 펴온 인물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가 1990년 홀로코스트 부인을 범죄로 규정한 이후 여러 차례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1991년 대학에서도 파면됐다.이에 박해받지 않고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자유를 요청하는 국제적인 탄원서가 작성됐다. 500명이 서명한 이 탄원서에 '존경받는 진보지식인' 놈 촘스키도 친구의 요청으로 서명했다. 프랑스 언론은 여기에 주목해 그 탄원서를 '촘스키 탄원서'라고 불렀다. 이 일로 촘스키는 '반시온주의자'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수정주의자' '신나치주의자'로 비난받았다.촘스키는 "홀로코스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집단적 광기"라거나 "내가 볼 때 (유대인을 학살한) 가스실의 존재를 의심케 하는 합리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그런 점에서 탄원서 서명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 왜 서명을 했을까. 포리송의 주장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 때문이다.그는 쏟아지는 비난에 이렇게 말했다. "표현의 자유(학문의 자유를 포함)는 입맛에 맞는 견해에만 국한돼서는 안 된다. 널리 경멸·저주받는 견해라도 표현의 자유는 적극 옹호돼야 한다.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 힘센 사람의 의견이나 공적(公敵)의 인권침해를 비난하는 만장일치의 의견은 보호해주기 쉽다." 그뿐만 아니라 말할 자유의 옹호와 그 말을 한 사람의 주장에 대한 동의는 별개의 문제임도 분명히 했다.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사상까지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촘스키가 자유한국당 의원 3인의 '5·18 폄훼' 발언을 계기로 정치권이 5·18에 대한 어떤 부정적 견해도 법으로 불허하겠다고 벼르는 지금 한국 사회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표현의 자유에도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그 책임의 내용은 무엇일까. 자기주장에 대한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인가,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기자의 생각에 후자는 책임이 아니다. 입을 틀어막는 족쇄일 뿐이다.

2019-02-15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신성모독과 폭력

1990년 1월 18일 오후 3시 일본 나가사키 시청 현관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승용차를 타던 모토지마 히토시(本島等·1922~2014) 나가사키 시장은 우익단체 조직원이 쏜 총에 맞았다. 왼쪽 흉부가 관통되는 중상이었으나 다행히 심장을 피했다.그가 총을 맞은 이유는 1988년 시의회에서 발언한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가사키 시의회에 참석해 공산당 소속 시의원의 질문에 "덴노(天皇)에게도 전쟁 책임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그때부터 모토지마 시장과 가족은 정상적인 삶을 포기해야 했다.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자민당에서 쫓겨났고, 사무실·집에는 살해 협박이 쏟아졌다. 시청 앞에는 전국 62개 우익단체가 80여 대 가두선전 차량을 몰고 와 연일 '천주'(天誅·하늘을 대신해 벌을 주다)를 외쳤다.모토지마 시장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총 한 방 맞고 '면죄부'를 받아 1991년 선거에 당선돼 4선 시장이 됐다. 후임 이토 잇초(伊藤一長) 시장은 2007년 폭력조직원의 총격을 받고 사망, 시장 두 명이 연속으로 테러의 희생자가 됐다. 범행 동기는 불명확했지만, 이토 시장이 '미군·핵무기 반대' '평화공원 조성' 등을 강하게 주창하다 우익의 반감을 샀다는 분석이 많다.일본에서는 일왕을 비판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일왕에 대한 불경은 테러로 이어지기 때문에 금기 중의 금기다. 일왕은 논리와 이성이 필요 없는 절대적인 존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2년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 사과'를 요구했을 때 일본은 난리가 났다. '한국을 적국으로 보겠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경제·문화 교류가 중단됐고, 한류는 된서리를 맞았다.며칠 전 문희상 국회의장이 "전범의 아들인 일왕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얘기지만, 일본에서는 역시 시끌벅적하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정부는 강하게 성토했다. 국회의장의 발언이기 때문인지, 이명박 전 대통령 때에 비해 강도는 약하지만, 아직 확전 여부는 미지수다. '살아 있는 신(神)'이라는 전근대적 가치에 목숨을 거는 일본인의 정신세계는 아무리 봐도 불가사의하다.

2019-02-14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규제 샌드박스

한국인은 빠르다. 정확히 말해 성미가 급(急)한 편이다. 조급함으로 해석될 만큼 '빠름'을 미덕으로 친다. 외국 생활 경험이 있는 한국인과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한국처럼 일처리가 빠른 나라는 드물다'며 이구동성이다. 급하면 정확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국인은 재바르고 정확하며 서비스 정신까지 갖췄으니 단점을 충분히 덮을만하다.독일에서 40년 넘게 산 동포로부터 "참고 기다리는데 익숙해지면 독일에서 절반은 적응한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길어야 이틀이면 개통될 인터넷이 2~3주가 걸리고, 주문한 가구가 배달되기까지 2달이 소요되면 '문화 충격'이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거기서는 기다리는 게 당연하고 정상이다. 느리지만 규정대로 바르게 처리되기 때문이다.그렇게 '쾌속' 시스템을 자랑하는 한국에서도 딱 한 가지 예외가 있다. 행정관청의 인허가 관련 사항이다. 업무 처리에 걸리는 최대 소요 시간이 규정돼 있으나 시간표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공무원 손끝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엿장수 마음이다. 정권마다 행정 업무 쇄신에 매달렸지만 소위 '철밥통' 위세를 꺾지 못했다.이는 우리 공직 사회에 마치 DNA처럼 대물림하는 기질 때문은 아닐까 싶다. 공무원 시험에 붙는 즉시 '괴상한' 습성이 발동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말썽 나거나 책임질 일은 피한다' '규정에 벗어나면 손사래 치고, 규정이 없으면 끌어대고' '모든 길을 로마로, 맡은 일은 내 손으로'라는 특유의 심리가 각종 인허가에 개입된다.기업인들이 규제 완화를 거듭 요구하자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 신청을 받았는데 도심 수소충전소 등 4건이 1호 사업에 뽑혔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일정기간 아무런 규제없이 허가하는 제도로 이번에 실증특례나 임시허가가 주어졌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언제 규제의 작두가 설컹 떨어질지 몰라서다. 만약 특유의 '쾌속' 시스템이 각종 인허가 규제에도 적용됐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더는 작은 이해가 혁신을 죽이고 창의를 질식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2019-02-13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똥'의 정치학

국가 지도자의 건강 상태는 타국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상대국 지도자의 건강 여부에 따라 자국의 대외정책 방향이나 강도(强度)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 각국이 상대국 정상의 '똥' 채취에 엄청난 공을 들였던 이유다. 똥을 분석하면 그 사람의 건강 상태를 훤히 알 수 있다.1949년 12월 마오쩌둥(毛澤東)의 소련 방문 때 스탈린의 비밀경찰이 그렇게 했다. 당시 소련 비밀경찰은 외국 정상의 배설물을 수집'분석하는 특별 부서를 두고 있었는데 마오의 배설물이 하수구로 내려가지 않고 비밀상자에 담기도록 마오의 방에 특수화장실을 설치했다. 이렇게 모인 마오의 배설물은 꾸준히 분석됐으며 스탈린은 그 결과를 마오와의 협상에서 '참고자료'로 활용했다고 한다.브레즈네프도 이렇게 당했다. 그가 덴마크를 방문했을 때 서방 정보기관들은 그의 호텔 객실 바로 아래층에 방을 빌려 브레즈네프가 내리는 화장실 배수를 모두 수거했다. 분석 결과 브레즈네프의 간이 많이 손상된 것으로 추정됐다. 고르바초프도 마찬가지였다. 1987년 미국 방문 때 그는 미국이 제공하는 영빈관을 거절하고 소련대사관에 묵었으나 자기 똥을 지키지 못했다. 무슨 수를 썼는지 CIA는 그의 배설물을 채취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분석해 그가 먹는 약의 종류까지 알아냈다고 한다.이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방법은 딱 하나, '전용화장실'을 갖고 다니는 것뿐이다. 미국은 2006년 부시 대통령이 오스트리아를 방문할 때 전용 화장실을 가지고 갔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0년 평양 방문 때, 북한 김정은도 지난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 그렇게 했다.패스트푸드를 즐기고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매우 건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주치의가 밝혔다. 숀 코리 주치의는 8일(현지시각)트럼프의 건강 검진 사실을 발표하며 "재임 동안, 그 후에도 건강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재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검진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한다. 트럼프의 똥이 말해줄지 모를 '비정치적 검진결과'는 어떨지 궁금하다.

2019-02-12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김정은의 선택

베트남 축구 영웅 박항서 감독의 성공 비결은 '아버지 리더십'이다. 선수들이 박 감독을 아버지로 느끼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는 베트남은 부모와 자식 등 가족 관계를 중시한다. 박 감독이 다른 동남아 국가로 진출했다면 그의 아버지 리더십은 꽃피우지 못했을 것이다.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로 베트남 하노이가 낙점됐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다. 두 나라는 오랜 역사를 거치며 외세 침략, 식민지 경험, 내전 등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이겨냈다. 유교적 전통과 높은 교육열, 근면한 국민성도 유사하다.한국과 북한, 미국 세 나라에 베트남 이미지는 강렬하다. 우리에게 베트남은 여러 모습으로 각인돼 있다. 장노년층은 베트남을 '월남전 파병'으로 기억한다. 한국은 베트남전에 31만 명을 파병했고 5천여 명이 사망했다.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경제 분야에서 '혈맹'이 됐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6천100여 개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매년 휴대폰의 45%인 2억4천만 대를 베트남 공장에서 만든다. 삼성전자 한 곳이 수출하는 금액이 600억달러를 넘어 베트남 전체 수출의 25%나 된다. 두 나라가 걸어온 발자취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웅변한다.북한과 베트남 관계도 롤러코스터 급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조부 김일성 주석은 1958년, 1964년 두 차례 베트남 하노이를 찾아 호찌민 주석과 정상회담했다. 베트남전에는 북한이 공군 병력을 파견하고 군수물자를 지원해 두 나라는 혈맹이 됐다. 하지만 1978년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했을 때 북한이 베트남을 비난한 뒤 양국은 대사를 철수시키며 냉각기에 들어갔다. 1992년 베트남이 남한과 수교를 하면서 더욱 소원해졌다.미국은 베트남전에서 패해 철수했다. 미국이 패전한 유일한 전쟁이다. 베트남 하노이로 향하는 김 위원장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2차 북미 정상회담 성패가 달렸다. 반미국가에서 미국과 우호적 관계로 돌아서 경제성장을 구가하는 베트남을 선택할지, 미국과의 전쟁→미군 철수→월남 패망으로 이어진 베트남식 통일을 꿈꿀지…. 베트남 하노이에서 결판이 나지 싶다.

2019-02-11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노포(老鋪)의 퇴장

'반월당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일부 고령 세대를 빼면 반월당(半月堂)이라고 불러온 공간의 실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달리 말해 반월당은 도시가 바뀌면서 흔적도 남기지 않은채 사라지고 잊혀진 공간의 대명사다. 그나마 남은 지명은 옛 기억을 소환하는, 작고 희미한 단서다.대구 중구 서문로에 위치한 백화점 무영당(茂英堂)의 사정은 정반대다. 비록 옛 모습은 남았으나 그 존재는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노포(老鋪)의 흔적이다. 무영당은 고추씨 서말을 들고 대구에 정착해 거상이 된 개성 출신 이근무가 1937년 건립한 신식 건물이다. 82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옛 영화는 온데간데 없고 쇠락한 모습만 남았다. 바로 뒷쪽에 신축중인 높다란 오피스텔과 대조를 이뤄 더욱 이질적이다.1950, 60년대 대구를 대표한 음식점 기린원(麒麟園)도 마찬가지다. 수창동 옛 대구전매청 건너편의 기린원은 예식장과 함께 중화요리로 명성을 떨친 곳이다. 1990년대 말 덕영대반점으로 간판을 바꿔달기는 했으나 그럭저럭 명맥을 이어왔다. 그런데 얼마전 퇴근길에 보니 가림막이 둘러처졌다. 철거나 개축을 앞둔 모양이다. 문득 서울의 '을지면옥' 철거 논란이 생각났다. 시인 상희구의 시에도 등장하는 '기린원'의 옛 추억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못내 아쉽다.노포는 한때 근대의 상징물이자 시민 생활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공간들이다. 그래서 점점 옅어지지만 결코 지울 수 없는 추억과 아련한 감성을 시대 변화나 추세라는 말로 치환하기는 매우 어렵다. 도시를 살아있게 하는, 세포와도 같은 공간들의 파괴는 그만큼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대구 건축물의 절반이 30년 넘은 노후건물이라는 통계가 말해주듯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을뿐 노포의 퇴장은 숱한 이야기와 집단 기억과의 단절이다. 이런 소중한 자산을 지금 우리는 속절없이 잃고, 또 떠나보내고 있다.

2019-02-09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국민 누나

'국민 오빠' '국민 여동생' 같은 수식어가 붙는 연예인·스포츠 스타들이 있다. '국민 오빠'는 워낙 남용되는 호칭이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면 수십 명에 이른다. 연예 기사, 팬클럽 등에서 마구 붙이다 보니 젊은 연예인은 물론이고 가수 남진, 송해, 박항서 감독까지 '국민 오빠'에 등재돼 있다.'국민 여동생'은 2004년 영화 '어린 신부'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문근영이 독보적이다. 한때 김연아, 박보영, 아이유, 수지 등이 그 계보를 이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한국에서 이 같은 호칭의 원조는 유관순(1902~1920) 열사다. 투철한 애국심과 열정적인 행동력을 가진 독립운동가에게 '누나'라는 호칭은 얼핏 어울리지 않는 듯하고,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여성의 성취를 깎아내리는 듯한 정서다' '안중근 형이 아니듯 유관순 누나도 아니다' '관행적인 남성 위주의 시각이다' 등등.한 언론사 커뮤니티에 '유관순 누나인가, 유관순 아줌마인가'라는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일제하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1925년에 16.7세, 1930년 17세, 1940년 17.5세 정도였다. 유관순의 사망 당시 19세로 평균 초혼 연령을 초과한 나이다. (사진을 보면) 유관순의 머리는 (결혼한 여성의) 쪽머리임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초교생이 누나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나이가 많다. 차라리 유관순 이모나 고모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본문 요약〉'유관순 누나'가 입에 익은 것은 예전 초교 교과서에 나온 '유관순' 노래(강소천 작사, 나운영 작곡)에서 비롯됐다.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해방 직후 강소천이 자신보다 10여 세 많은 유관순 열사에게서 누나 이미지를 떠올리고 노랫말을 지었다고 한다. '열사'로 지칭했으면 이 노래의 생명력은 그리 길지 않았을 것이다.유관순 열사는 올해 100주년을 맞은 3·1운동의 상징이다. 신화적인 인물을 두고 이성적인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엄숙한 '열사' 호칭보다는 정겨운 '누나'라는 호칭이 더 적합한 이유다. '신화는 신화로 놔두는 것이 좋다.'

2019-02-08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감히'와 오만

"왜 김경수 지사 재판을 갖고 청와대 앞에 가서 그런 망동을 하느냐. 탄핵당한 세력들이 감히 촛불 혁명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대선 불복으로 대하느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자유한국당을 향해 쏟아낸 말이다. '감히' '망동' 등 도를 넘은 단어들이 동원됐다.한국당이 청와대 앞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문재인 대통령이 드루킹 댓글 조작을 알았는지 입장을 밝히라고 한 것은 야당으로서는 당연하다. 민주당이 야당이라면 더했을 게 분명하다.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감히란 말을 수차례 쓰며 언성을 높였다. 오만과 독선이 묻어나는 모습이다.문재인 정부 출범 후 민심 이반을 부른 집권 세력의 발언들을 보면 그 바탕에 오만과 독선이 깔렸다. 한국당을 공격하려는 조급한 마음에 이 대표가 장애인 비하 발언을 한 것이 얼마 전이다. 정부 정책 실패로 일자리 대란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50·60대 동남아 가라'며 국민에게 잘못을 떠넘겼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리 의혹을 폭로한 청와대 행정관을 '미꾸라지' '꼴뚜기' '피라미' 등으로 비하한 것 역시 오만과 독선이 표출된 결과다. "문재인 정부 DNA에는 민간 사찰이 없다"는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도 매한가지다.민주당은 한국당 곽상도 의원에 대한 고발장을 7일 접수할 예정이다. 곽 의원은 문 대통령 딸 내외의 부동산 증여와 매매 그리고 해외 이주에 관한 공개질의서를 발표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사안 역시 많은 국민이 의문을 갖고 있다. 사실관계를 조사해 국민에게 알려주면 될 일을 여당이 고발부터 하려는 까닭은 이 대표의 '감히'처럼 문 대통령을 향한 질문조차 못 하게 입을 틀어막으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이 대표 발언에 대한 한 댓글이 정곡을 찌른다. "촛불 민심은 '민주당이 집권해 주세요'가 아닌 '잘못된 나라 바로잡아 주세요'였다." '혀는 강철은 아니나 사람을 벤다'고 했다. 베이는 대상이 타인은 물론 자신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을 집권 세력은 깨닫기 바란다.

2019-02-07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따로민주당'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1심 재판부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공세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 재판장 성창호 부장판사를 법관 탄핵 대상에 넣으려 하는 등 사법부를 겁박하고 있다.민주당이 가장 비판받는 것은 법원 판결에 대한 이중적 태도다. 성 판사가 박근혜 정부 인사들을 단죄할 때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도 불리한 판결이 나오자 비수를 꽂고 있다. 성 부장판사가 작년 7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수수 사건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하자 민주당은 "지극히 예상 가능한 결정"이라고 반겼다. 2017년 1월 전 대통령 비서실장·문화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성 판사가 발부했을 때도 "당연한 결과"라고 환영한 바 있다.삼권분립 위협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민주당이 성 판사를 공격하는 데엔 노림수가 있다. 유력 대권 주자인 김 지사에 대한 2심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술수다. 민주당 대책위원장은 "항소심을 맡을 서울고법 판사들 절대다수가 사법 농단 판사들이어서 걱정"이라며 2심을 맡을 판사를 겁박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 지사의 선거 부정이 대선 공정성 논란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깔렸다.작게는 민주당, 크게는 문 정부에 닥친 위기를 돌파하려 지지 세력 결집 차원에서 민주당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여기서 밀리면 다 죽는다"는 심리가 민주당을 지배하고 있다. 1심 재판부 전원 사퇴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 명 넘게 동의한 것을 보면 민주당의 전술이 먹혀들었다고 볼 수 있다.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박기후인'(薄己厚人)을 언급했다. 지금 민주당의 모습은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다는 박기후인과 거리가 멀다. 자기 허물엔 한없이 관대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난도질하는 언행으로는 민심을 잃기 마련이다. 탈당한 손혜원 의원이 작명했다는 더불어민주당이 '따로민주당'이 될 수밖에 없다.

2019-02-02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서울 33, 大慶 33

"그 소년은 우리 교인들 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대구 출신 독립운동가 이갑성은 1903년 6월 개신교 세례를 받고 미국인 선교사 부해리(헨리 브르엔)로부터 소년야구단에서 야구를 배웠고, 부해리의 한국말 배우기 연습 상대가 됐다. 그래서 부해리는 이갑성을 기억,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부해리의 기대처럼 뒷날 이갑성은 걸맞은 일을 했다. 1919년 최연소 3·1운동 민족대표 33인으로 경상도를 맡아 2월부터 대구·부산·마산을 오가는 심부름과 연락책의 역할을 했다. 비록 인물 영입은 실패했으나 특히 대구경북 만세운동의 밑거름을 뿌렸다.그의 서울 방은 민족대표들의 밀회 장소였고, 3월 만세운동 투옥 등 1945년 광복의 바로 그해까지 8차례 9년 넘게 감옥을 드나들었다. 1953년 이후로는 33인의 유일 생존 대표로 1965년부터 광복회 1·2대 회장까지 지냈다.100년 전, 이갑성의 활동과 자극을 계기로 대구경북 사람들은 서울과 평양보다 늦었지만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5월까지 장터, 묘지 부근, 산 위에 이르기까지 고을마다 독립과 만세를 외쳤고 희생을 치렀다.특히 대구 계성학생 등 11명을 중심으로 그해 4월 꾸린 비밀조직 혜성단은 돋보였다. 경찰과 군대, 그 끄나풀인 보조원·밀정들의 불을 켠 감시망 속 11가지 2천 매 넘는 인쇄물을 만들고 돌렸다. 만주 연락책을 둘 만큼 기개 넘친 큰 틀의 독립운동 밑그림도 그렸다.결국 만세시위로 대구에서만 1명 사망, 102명이 기소되는 희생이 있었지만 대구는 독립운동가 양성소가 됐다. 민족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까지 뭇 사상과 이념을 수용한 대구는 젊은이가 독립운동 정신으로 무장하는 도시였고, 학생 비밀결사는 그치지 않았고 광복 뒤의 학생 의거 바탕이 됐다.31운동 100주년이 한 달 남았다. 대구경북 33개 지자체마다 기념 행사 준비로 그때처럼 2월은 바쁜 달이다. 나라 안팎으로 힘든 지금, 100년 전 서울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외친 것처럼 대구경북 33개 지자체 대표와 시도민이 한뜻으로 지방식민주의에서 독립, 지역과 나라가 함께 사는 앞길을 여는 3·1절을 그려본다.

2019-02-01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5060세대

복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와 교복을 벗어던지고 우물가로 나가니 커다란 수박 한 덩이가 대야의 찬물 속에 담겨 있었다. 갈증이 심하던 차에 군침을 흘리며 수박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데 뒤에서 어머니의 경고가 귓전을 때린다. "아부지 오실 때까지 손대지 마라." 먼 훗날 중년의 가장이 되었을 때이다. 무더운 여름 퇴근하자마자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여니 잘 익은 수박 반 통이 들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꺼내 먹으려고 하는데 뒤에서 아내가 일침을 한다. "얘들 학원 갔다 올 때까지 손대지 말아요!"5060세대는 이렇게 살아왔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게 당연한 도리였고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 헌신하는 게 마땅한 의무였다. 그러나 5060세대는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까지 부양하고도 대우받지 못하는 최초의 세대이기도 하다. 이른바 '더블케어'(Double Care)의 상황이다. 6·25전쟁 후 베이비 붐 세대인 5060의 삶은 한마디로 험난했다.먼 길을 걸어서 통학하기 일쑤였고,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향학열을 불태웠다. 김치나 고추장 반찬이 전부인 도시락도 꿀맛이었다. 청소년기에 새마을운동을 경험하며 군사교육도 받았다. 대학 시절에는 독재에 저항하는 데모로 최루탄 가스를 질리도록 마셨다.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 민주화 항쟁을 목격했다. 군대 생활을 할 때는 한바탕 얼차려나 구타를 당하고 잠자리에 드는 게 차라리 편했다.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이룬 후에는 내 집 마련과 아이들 교육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농경 사회에서 산업화와 정보화 사회로, 군부 통치에서 민주화와 중우정치의 사회로 옮겨가는 혼란과 격동의 세월을 고스란히 겪었다. 소비보다는 절약을, 개인보다는 조직을 우선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흰머리가 늘어나고 사회에서 은퇴하면서 이제는 보수와 권위만 남은 '꼰대'라 손가락질을 받는다. 아직도 연로한 부모를 돌봐야 하고 취직 못한 자식도 품고 살아야 하는데…. 명색이 청와대 경제보좌관이란 사람까지 나서서 "한국에서 할 일 없다고 산에 가거나 SNS에서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동남아로 가라"고 했다.

2019-01-31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적임과 정실

사람을 평가할 때 흔히 다섯 가지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오시'(五視)인데 평소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를 보고,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누구를 천거하는지, 넉넉할 때 어떤 아량을 베푸는지, 곤궁할 때 행동거지가 어떤지, 미천할 때 재물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라는 것이다.다섯 가지 중 어느 것이든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바르게 처신하기가 쉽지는 않다. 특히 '인물 천거'는 가장 어려운 일로 꼽힌다. 남을 천거하는 일이 본래 의도와 어긋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신중을 기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중신을 잘 서면 술이 석 잔, 잘못하면 뺨이 석 대'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자기 눈높이에 맞춰 사람을 어설프게 평가하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는 인재라고 천거했다가는 되레 화를 부르는 경우도 많다. 엽관(獵官)이나 정실(情實)에 기운 경우가 대표적이다.사상 처음으로 도입한 '법원장 추천제'에 따라 그제 지역 각급 법원장이 임명됐다. 기수 관례를 벗어난 의외의 결정이라는 목소리도 없지 않으나 피추천인에 대한 주변의 높은 평가에 기초해 내린 판단이라는 여론이 더 우세하다. 소속 법관들이 오랜 시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 사람의 역량과 됨됨이, 소통 능력 등 여러 면을 보고 추천한 결과라는 점도 이번 법원장 인사에 관한 일반인의 이해와 납득을 두텁게 하는 요소다.반면 적임이라며 추천했지만 기대와 어긋나는 '인물 천거' 사례가 최근 잇따라 불거져 논란이다. '목포 게이트'로 물의를 빚은 손혜원 의원이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무형문화재위원회 등 문화부 산하 기관에 주변 인사들을 여럿 추천하면서 잡음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보도다.한편에서는 '사람을 추천하는 게 뭐가 잘못됐나'고 반박하지만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능력이나 경험 등에서 적임이 아니라는 주변의 평가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 비단 손 의원뿐 아니라 누구든 자기 눈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은 내가 잘 안다'는 주관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옛 사람들이 '오시'를 품인(品人)의 틀로 삼은 것도 다 이유가 있다.

2019-01-30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방콕' 대통령?

'국가 지도자에게는 비밀이 없다.'민주주의 국가라면 대통령·총리의 사소한 몸짓조차 국민의 눈을 피할 수 없다. 국가 지도자는 사생활과 일탈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없다. 오죽했으면 미셸 오바마 여사가 백악관을 두고 '최고급 교도소'라고 했을까.미국 대통령의 일정은 매일 오전 9시 백악관 대변인에 의해 사전에 공개된다. '오늘의 대통령 일정'이란 제목으로 시간대별로 상세하다. 이때 대통령이 누구와 만나고, 만나는 사람이 어떤 직함을 갖고 있는지 알려준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휴일에 골프를 치러 갈 때도 동일하다. 2017년 9월 24일 일요일 일정을 보면 '대통령, 오후 3시 트럼프골프장에서 출발. 3시 30분 모리스타운 시립공항 도착, 3시 40분 모리스타운 골프클럽 이동…' 등으로 10분 단위로 공개한다.일본 총리는 미국보다 더 강도 높게 언론의 감시를 받는다. 총리의 일정은 다음 날 조간신문에 분 단위로 상세하게 공개되고, 누구와 만났는지, 어디에서 밥을 먹었는지 국민 누구나 안다. 아베 신조 총리는 하루 두 차례 사무실과 관저를 오가며 '부라사가리'(ぶら下がり)라는 즉석 기자회견을 하는 귀찮음을 감수한다. '부라사가리'는 기자들이 관저나 복도에서 요인을 에워싸고 같이 걷거나 말을 건네는 취재 관행을 말한다.일정 공개 측면에서 한국은 미국·일본에 비해 훨씬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일정을 공개하지 않거나 일정 없이 관저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이 탄핵의 뇌관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확연히 나아졌을까. 며칠 전 자유한국당이 문 대통령의 일정을 분석해 '방콕' 대통령이라고 공격해 떠들썩하다.한국당의 분석에 과장·중복 사례가 다수 있지만, 완전히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현재 청와대 홈페이지의 '공개 일정'에는 고칠 부분이 많다. 공개 시점이 일주일 단위로 너무 길고, 사후에 공개되고, 비공개 일정이 상당히 많다. 지극히 형식적이어서 옳은 공개라고 하기는 민망하다. 청와대는 '벌컥' 화를 내기보다는 일정 공개를 좀 더 개방적이고 정확하게 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옳지 않을까.

2019-01-2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SKY 욕망 대물림

"웃더라고요. 아들에게 이 나라 헌법이 국민에게 바라는 네 가지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더니 보인 반응입니다."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헌법에서 말한 네 가지 의무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과연 웃을 만도 하다. 나라 지키기(국방), 꼬박꼬박 각종 세금 내기(납세), 자녀 가르치기(교육), 나라에서 혹 시키는 일(근로)의 의무를 잘 따르고 지키는 바가 실제로 쉽지 않은 탓이다.가짜 진단서와 부모 배경, 종교적 양심 등 온갖 구실로 요리조리 빠지는 국방에 응하고, 전문가를 앞세운 절세·탈세 물결 속에도 세금은 떼어먹지 말고, 자녀 대학 졸업까지 드는 4억원(보건복지부)도 대고, 나라의 또 다른 부름에 나서라고 강요(?)했으니 말이다.그러나 아들은 달리 말한 모양이다. "아버지가 계시기에 오늘 제가 있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한 가정을 맡아 이끄는 부모를 떠올리며 버티었고, 제대한 군 복무 외의 일도 잊지 않겠노라 대답했다는 아들의 이야기가 오래 남는다.지금, 이름난 '서울의 세 대학교' 입학을 겨냥해 이 나라의 가진 부모들이 표출하는 욕망과 사연을 다룬, TV 드라마의 극 중 모습이 온통 세간의 관심사다. 고액 과외 등 보통의 부모에겐 나라 밖 일 같은 현상에 정부까지 나서 대책을 세운다고 소란들이니.대구에서도 이런 여파 탓인지 지난 24일, 대구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을 찾고자 여러 교육인들이 모였다. 이들의 목소리는 "결국 학교에 답이 있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이르렀지만 학교가 과연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걱정이다.방송 내용이나 나라 현실은 가진 사람이 더 갖고 누리는 삶이다. 게다가 아이들마저 그런 흐름이지 않은가.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의 3년 조사가 그렇다. '10억원 생기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 가도 괜찮다'는 2012년의 초(12%), 중(28%), 고교생(44%) 응답이 해마다 늘어나 2015년에는 17%, 39%, 56%로 나타났다.서울의 세 대학에 들어가 나오면 더 벌고, 더 갖고, 더 누릴 것이라는 부모의 욕망이 자녀에게 전해진 꼴이다. 아들에게 헌법이 정한 네 가지 할 일을 주문했다는 한 가장이 떠오르는 즈음이다.

2019-01-28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홍역

1960, 70년대만 해도 홍역을 앓다가 속수무책으로 죽는 아이들이 많았다. 홍역을 흉한 귀신의 장난으로 여겼던 어머니들은 장독대 앞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 놓고 어린것의 쾌유를 빌고 또 빌었다. 옛날에는 홍역이 유행하면 한 집 건너 한 아이는 앓다가 거의 죽다시피 했으니 마을 산 중턱에 아총(兒塚)이 흔했다.마진(痲疹)이라 불렸던 홍역은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이렇게 공포와 외경의 대상이었다. 몹시 곤욕을 치르거나 어려움을 겪었을 때 쓰는 '홍역을 치렀다'는 말이 생긴 연원이다. 홍역에 대한 우리의 첫 역사적 기록은 삼국사기이다. 고려 때도 홍역이 널리 유행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시대에는 홍역이 창궐할 때마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조선, 홍역을 앓다'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홍역 치료 역사를 다룬 책이다. 전통의학을 통해 홍역과 맞섰던 인물과 그들이 남긴 문헌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마과회통'도 그때 나온 홍역 전문 의서이다. 홍역은 1879년 지석영이 종두 사업을 본격 시행하면서 감소 추세를 보였다. 1962년 홍역 백신을 소개하고 대대적인 예방접종을 실시하면서 홍역은 마침내 공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미국의 경우도 남북전쟁 당시 홍역이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부대 단위가 해체되기도 했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의 첫 남편이 참전하자마자 세상을 떠나는 장면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홍역을 앓는 자녀를 돌보느라 혁명의 성난 물결에 적절한 대응을 못 해서 쫓겨나고 말았다고 한다.꺼진 불도 다시 보라고 했던가. 최근 홍역이 되살아나면서 방역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20, 30대 감염자가 많은 것은 1회 접종에 그친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신고된 후 홍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그야말로 또다시 '홍역'을 치르지 않으려면 개인이건 당국이건 예방에 허점이 없어야 할 것이다.

2019-01-26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서울의 세 모녀(母女)

"내게도 우리 조국 한국이 으뜸이고, 우리 어머니 서중하 여사가 세계에서 으뜸가는 어머니이다…어머니의 사랑은…가실 줄 모르는 사랑, 그것이…어머니의 사랑이다."'바보'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남겼다. 1955년 어머니가 72세로 삶을 마치고 돌아가신 지 30년 즈음인 1984년, 월간지 '샘이깊은물'의 창간호에서 끝없는 자식 사랑을 실천한 어머니를 회상하며 그렸다.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간 형이 다쳐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에 일본말도 못 하면서 주소 하나 달랑 들고 떠나 결국 들것에 눕혀 데려와 온갖 정성으로 완치시켰다. 그런 어머니를 추기경은 "어머니의 의술이 참으로 신기했다"고 기억했다.또 어머니는 다시 중국으로 떠난 형을 찾아 멀리 만주와 하얼빈까지 헤맸다. 끝내 아들을 데려오지 못하고 '소식이 끊긴 아들'을 가슴에 묻은 채 눈을 감자 추기경이 "우리 어머니가 눈을 감을 때에 가장 잊지 못한 것이 그 아들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한 까닭이다.어느 어머니인들 다를까. 끝없는 자식 사랑은 '가실 줄 모르고', 죽음 앞에도 '잊지 못한 것'은 아마도 자식이리라. 추기경이 생전 어머니를 그린 심정은 세상 어느 자식이라고 같지 않으랴. 그러나 어머니 부재(不在)의 뼈저린 후회 전에는 어머니의 소중함을 잊는 게 또한 우리 범부(凡夫)이리라.묵은해를 보낸 2019년, 새해부터 가슴 칠 서울의 세 모녀(母女) 사연이 안타깝다. 80대 노모와 함께 반지하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50대 딸의 가난, 넉넉한 살림에도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청부 살해하려던 30대 교사인 딸을 재판에 넘긴 검찰 소식이 그렇다.앞서 유력 인사의 딸과 아들이 자살한 어머니에게 생전에 한 잘못으로 유죄에 사회봉사명령까지 받은 소식도 참담하다. 특히 자녀에 헌신적이었다는 그 어머니가 유서 등을 통해 "자식이 망가지면 안 된다"며, 삶을 놓는 순간까지 자식 걱정한 사연이 가슴 저린다.2월 16일, 선종 10년을 맞는 '바보' 추기경의 '어머니, 우리 어머니' 글이 더욱 와닿는 날들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한 삶, 한 목숨을 누리건만 연초부터 들리는 서울 모녀 소식이 어찌 이리도 아린가.

2019-01-25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금탄(金炭)

1960, 70년대 겨울철 도시 골목길의 흔한 풍경 중 하나가 새끼줄에 꿴 연탄이다. 퇴근길에 한두 장 사 들고 집으로 향하던 서민의 어깨가 몹시 힘겨워 보였다. 수백 장씩 쟁여둘 형편이 안 돼 낱장 연탄을 사서 끼니도 해결하고 온 식구 언 몸도 녹이던 시절이었다.당시 가정용 연탄의 주종은 22공탄이다. 1965년부터 생산한 22공탄은 6·25 직후 보급된 19공탄과 구분 없이 '구공탄'으로 불렸다. 구공탄은 화력은 약하지만 연소 시간이 더 길어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서민 가정용으로 흔히 쓰였다. 업소나 공장, 부잣집은 화력이 더 센 32공탄, 49공탄을 썼다. 기름보일러나 가스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시절, 서민 일상에서 구공탄은 지울 수 없는 추억의 한 단면이다.서민 연료인 연탄의 지위를 위협한 것은 가스다. 1970년대 정유사들이 LPG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고 1972년부터 도시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하면서다. 이후 대도시를 중심으로 도시가스 배관망과 LPG 연료 체계가 갖춰지면서 연탄산업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사용 편의나 공해 등을 감안할 때 가스의 대중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그렇다고 연탄의 명맥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다. 외환 위기 등을 겪으며 도시가스의 혜택에서 소외된 저소득층과 화훼 농가 등 비닐하우스 보온 연료로 다시 각광받았다. 정부의 보조금 지급으로 저렴한 가격 때문에 한때 연탄 소비량이 급격히 늘기도 했다.그런데 최근 3년 새 연탄 가격이 무려 50.8%나 올라 저소득층의 한숨이 깊다는 소식이다. 2016년부터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 축소에다 환경 규제 강화로 연탄 가격이 개당 900원을 넘어 '금탄'이 되자 청와대 앞 시위에다 국민청원까지 오르는 상황이다.'사흘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라는 '삼한사미'(三寒四微) 용어가 말해주듯 화석연료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석탄 사용을 줄여나가는 게 맞다. 정부가 저소득층 에너지 복지를 위해 도시가스 확대나 대체 연료 보급 등 정책 보완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화력발전과 연탄과의 절연이 미세먼지 해결의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가정용 연료 체제의 완전한 전환은 시급한 과제다.

2019-01-24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토목공사와 대통령병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지난해 봄 어떤 분이 블로그에 고려말 길재의 시조를 올렸다. 서울 청계천을 산책하다가 물소리 들으면서 풍취에 젖어 쓴 글이라고 했다. '생태 하천은 유유히 흐르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감옥에 가고 없다'는 뜻이다.청계천이라면 자연스레 이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이 전 대통령은 청계천 복원 공약을 앞세워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됐고, 그 업적으로 청와대로 직행했다. 현대건설 회장을 지낸 MB로서는 그리 어려운 공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2003년 7월 시작해 2005년 완공됐는데, 생태 하천 5.8㎞ 공사비로 3천600억원이 들었다. 누군가 계산해보니 1m당 6천만원이 들었다고 하니, 웬만한 지방정부는 감당하기 힘든 '돈질'이었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인공 하천 하나로 대통령 꿈을 이룬 선례 때문인지 후임 서울시장들은 너도나도 토목공사에 열중했다.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서울의 면모를 바꾸겠다며 '디자인 서울' '한강 르네상스' 등의 대단위 프로젝트로 조 단위의 예산을 투자했다. 2011년 시장직을 건 무상급식 찬반 투표에 실패해 사퇴했지만, 재임 5년간 각종 토목공사로 세월을 보냈다.며칠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촛불 혁명의 성지'라는 이유로 광화문광장을 현재보다 3.7배 넓히겠다고 발표했다. 2009년 오세훈 전 시장 이후 10년 만에 광화문광장을 확장하는 공사이고, 예산은 1천40억원이다. 완공 시기가 2021년이라고 하니 2022년 3월에 예정된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공사다. 또다시 토목공사를 앞세워 대통령에 도전하는 사례가 될 것 같다.광화문광장에 자리한 서울시 청사에서 청와대를 바라보고 있으면 대권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하니 그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소통령'이라 불리는 서울시장은 괜찮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마구 파헤치고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예산 부족으로 작은 공사 하나 벌이기 힘든 지방에서 보면 '돈질'로 보일 수밖에 없다. 지역민으로선 '이류 국민'의 비애를 곱씹게 하는 뉴스다.

2019-01-23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예천(醴泉) 소회

봉황은 신화,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 속 동물이다. 봉황은 합성된 단어로 수컷이 봉(鳳), 암컷이 황(凰)이다. 성군이 출현하거나 세상이 태평성대일 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연유로 대한민국 대통령 휘장에 봉황이 쓰이고 있다. 한 송이 무궁화와 그 좌우에 한 마리씩 봉황이 장식돼 있다. 우리 대통령들 가운데 성군으로 추앙받거나 태평성대를 열었다는 칭송을 받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봉황 휘장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든다.'장자'(莊子) 소요유 편에 따르면 봉황은 벽오동 나무가 아니면 깃들어서 쉬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예천(醴泉)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예천은 중국에서 태평할 때 단물이 솟는 샘을 일컫는다. 경북 예천군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예천군은 소백준령으로 둘러싸여 있고 낙동강과 내성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명당에 자리한 충효의 고장이다.상서로운 봉황이 마신다는 예천에서 지명을 따온 예천군이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예천군의원들이 해외 연수 중 가이드 폭행 등 대형 사고를 친 탓이다. 예천군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에 큰 상처가 났다. 다른 지역에서 예천 농산물 불매 운동이 언급되는가 하면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유치에 차질을 빚는 등 사태가 확산하는 양상이다.외유 추태 문제를 다루기 위한 예천군의회 임시회에서 군민들의 성난 민심이 표출됐다. '예천군의회가 예천을 죽이고 있다' '군의원 전원 사퇴하고 구속 수사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이 난무했다. "너희가 인간이냐" "너희 때문에 예천 농산물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등 격한 항의도 쏟아졌다. 이 와중에 예천군의회가 1인당 100만원가량 항공료를 부풀려 신고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지금껏 예천군의원들은 진정성 있는 반성 대신 변명과 거짓말로 사태를 더 키웠다. 어느 누구 하나 앞장서 사태를 수습하거나 책임지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예천군민 전체가 피해를 보고 있는 지경이다. 의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고장이 더 상처를 입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의원들이 진정으로 참회하고 결단을 내리는 게 예천군의 명예를 지키는 최선의 길이다.

2019-01-22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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