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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기억과 트라우마

[야고부] 기억과 트라우마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육체적 충격은 마음의 상처 즉, 트라우마를 남긴다. 전문 용어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도 한다. PTSD 증상은 개인에 따라 충격을 겪은 즉시 시작될 수도 있고 수일, 수주, 수개월 또는 수년~수십 년이 지나서 나타날 수도 있다.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트라우마를 겪은 뇌는 기억을 다르게 처리한다고 한다. 어떤 것은 너무 과하게 기억하고, 어떤 것은 너무 적게 기억한다. 기억이 파편화된 나머지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 사건을 논리적으로, 순차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예컨대 성폭행 피해 여성이 범인의 냄새 같은 것은 수십 년이 지나도 생생히 기억하는 반면, 사건 후 누가 자신을 병원으로 데려갔는지 등과 같은 사항을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식이다.정의기억연대(정의연) 운영 난맥상을 폭로한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인신공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일본군과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친일파다' '대구스럽다' '치매에 걸렸다'는 등 왜곡과 비하, 혐오도 서슴지 않는다. 혹자는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겪은 과거에 대한 인터뷰 진술이 엇갈리거나 세부 내용에 다른 점이 있다며 '위안부로 끌려간 게 맞느냐'는 식의 의문까지 제기하고 있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성폭력 피해자의 진정성과 신뢰성은 진술과 증언의 '비일관성'에 있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문화비평가 슬라보예 지젝(71)은 이와 관련해 이렇게 지적했다. "강간당한 여성의 진술에 진정성이 있다고 우리가 판단하는 것은 그 진술이 현실적으로 믿기 어렵고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겪은 주체가 자신의 경험을 진술할 때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면이야말로 그 진술에 진정성이 깃들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나머지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몸과 마음이 짓밟히는 질곡을 겪었으면서도 평생을 죄지은 사람처럼 살아온 할머니들이다. 그들의 트라우마 기억이 조각나 있거나 변형돼 있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할머니들로서는 위안부 피해 실상을 세상에 증언하기 위해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고통일 수 있다.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야만적 2차 가해는 중단해야 한다.

2020-06-05 06:30:00

[야고부] 문 정권의 과거 지배

[야고부] 문 정권의 과거 지배

지금의 중국은 2차대전 승전국이 아니다.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다. 공산당은 국민당과 국공 합작으로 항일전쟁에 나섰으나 전투를 최대한 피하면서 전력을 보전했다. 국민당의 무능·부패와 함께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이길 수 있었던 발판이다. 이게 알려지면 공산당의 정통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중국이 '과거 세탁'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참가한 가운데 대대적으로 개최한 '항일전쟁 승전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승전 70주년 기념식'은 좋은 예다. 공산당이 항일전쟁을 이끌었다는 소리다. 중공이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단 한 번도 '항일전쟁승리기념일'을 경축하지 않았다. 장(蔣)에 대한 찬양이 되기 때문이다. 1995년부터 중공은 일변했다. 그해 9월 3일 처음으로 '한일전쟁승리기념일'과 '반파시즘전쟁승리기념일'을 합쳐 치렀다. 1987년 천안문 학살로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이 의심받자 이를 막기 위해 장쩌민(江澤民)이 기획한 '애국주의 교육'의 일환이었다.과거 세탁은 푸틴의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푸틴은 처음 집권했을 때는 스탈린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2007년부터 스탈린 시대를 미화하고 오점은 지워 나갔다. 스탈린을 치켜세워 자신의 권위주의 통치를 방어하기 위함이었다.대표적인 사례가 강제노동수용소 중 유일하게 남은 '페름 36 수용소'의 변모다. 이 수용소는 1995년 박물관으로 개조돼 스탈린의 잔혹함을 생생히 알려줬다. 하지만 푸틴이 재집권한 2012년 지방정부에 몰수된 뒤 폭압 통치의 증거는 제거되고 '17세기부터 존재했으며 소련은 단순히 교정 시설로 활용한' 시설이 됐다.문재인 정권도 과거 세탁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낸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로 치켜세웠다. 이어 여당은 전직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실을 말끔히 지우려 하고, 급기야 그 대표는 "잘못된 현대사에서 왜곡된 것을 하나씩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 현대사 전체에 대한 지배의 선포나 진배없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고 했다. 이 정권의 과거 지배 기도를 접하면서 그 탁견(卓見)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2020-06-04 06:30:00

[야고부] 대구니 ‘대구스럽지!’

[야고부] 대구니 ‘대구스럽지!’

"이 사람을 반드시 보고자 한다."조선의 정조 임금이 대구에 사는 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벼슬 자리도 주려 했다. 정조가 만나려 했던 사람은 최흥원이다. 굳이 왜 멀리 팔공산 자락 대구에 사는 그를 보려 했을까. 정조가 밝힌 이유는 간단했다.그의 행실이다. 그는 오늘날의 기금(基金)과 같은 선공고(先公庫)와 휼빈고(恤貧庫)를 만들었다. 이름처럼 '공적인 일에 먼저 쓰는 곳간'인 선공고는 흉년과 풍년에 이자를 달리하여 받은 수익을 떼내 마을 주민 세금으로 썼다. 또 휼빈고를 통해서는 땅을 나눠 주며 생계를 잇게 했다.오랫동안 당파의 부패한 집권 세력이 유난히 차별하고 멀리했던 남쪽의 외진 남인(南人) 고을인 대구의 한 선비가, 나라도 못 하는 일을 몸소 하니 어찌 고맙고 기쁘지 않았겠는가. 물론 최흥원의 마을 공동체 배려는 앞선 세종 시절 나라 안보에 필요하다는 말에 오늘날 달성공원 땅까지 바치고도 대신 대구 백성의 세금 부담을 덜게 해 달라고 했던 서침 같은 사람의 정신과도 통한다.대구에서는 이처럼 나라와 이웃을 헤아린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1907년 나랏빚을 갚자고 술 담배를 끊었던 대구 남자들, 비녀와 반지까지 내놓았던 대구 여인들, 일제 압박 속에 마을 공동체의 대동(大同) 사회 건설을 위해 뭉쳤던 대구의 청년 지사들의 행적 등 숱하다. 특히 이런 흐름은 경제난에도 지금껏 이어진 대구 기부 문화와도 이어져 다른 곳보다 돋보인다.이런 대구를 이를 때 어울리는 말이 '대구스럽다'이다. 그런데 요즘 여성인권활동가의 삶을 사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두고 온라인에 떠도는 말이 너무 험악하고 도를 넘고 있다. 게다가 대구를 끌어들여 허접한 말과 글로 할머니와 대구를 함께 겨냥하며 조롱한다. 그러나 대구의 역사적 배경과 할머니의 힘들었던 옛 삶을 떠올린다면 함부로 내뱉을 말은 결코 아니다.대구와 할머니를 폄훼하고 싶은 새가슴의 사람이라도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국회의원이 과연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돌아보고 비록 가상 공간이긴 하지만 말과 글을 쓰레기 버리듯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정녕 그러고 싶다면 대구에 한번 들러 '대구스럽다'는 말뜻부터 새기고 나서 그리하길 바란다.

2020-06-03 06:30:00

[야고부] 노벨상금 유감(遺憾)

[야고부] 노벨상금 유감(遺憾)

노벨상 상금 액수는 크다. 현재 900만스웨덴크로네(약 10억9천200만원)이다. 이를 공익적 용도로 쓴 경우는 물론 극히 개인적인 용도로 쓴 경우도 있다.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아인슈타인이 그랬다. 상금을 이혼 위자료로 준 것이다. 그는 여성 편력이 심했다. 1903년 밀레바 마리치와 결혼했으나 얼마 뒤부터 훗날 두 번째 부인이 되는 엘자 레벤탈과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참다못한 밀레바는 1919년 이혼하면서 "노벨상을 받을 경우 전처에게 상금을 위자료로 준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의 노벨상 수상을 확신했다고 한다.'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활용해 합리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경제 행동을 한다'는 '합리적 기대 가설'의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가정은 뒤로하고 연구에만 전념했다. 이에 그의 부인은 '7년 내에 노벨상을 받으면 상금의 절반을 위자료로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이혼했고, 딱 7년 뒤인 1995년 루카스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러자 세간에서는 '합리적 기대 가설'을 전처가 '증명'했다는 농담이 회자됐다. 전처는 노벨상금을 이혼 위자료로 요구하면서 "당신같이 가정을 돌보지 않고 연구만 하는 사람은 언젠가 꼭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당시 루카스의 학자적 명성과 업적에 비춰 '합리적 기대'였다는 것이다.1953년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처칠 영국 총리도 상금을 개인적 용도, 빚 청산에 썼다. 처칠은 1929년 미국 증시에 투자했다가 대공황으로 '쪽박'을 찼다. 이후 평생을 돈에 쪼들리다 노벨문학상을 받고서야 돈 걱정에서 벗어났다고 한다.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가 남긴 유산을 놓고 배다른 형제끼리 볼썽사나운 다툼을 벌이고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DJ의 노벨평화상 상금이다. 11억원 중 현재 8억원가량 남아 있는데 삼남 홍걸 씨가 '김대중기념사업회에 전액 기부한다'는 이희호 여사의 유언에 따른 약속을 어기고 인출해 갔다는 것이다. 상금을 2001년 아태재단에 기탁했다가 2003년 재단이 연세대로 넘겨지면서 슬그머니 찾아온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DJ는 "국민에게, 민족에게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사정을 보면 정말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2020-06-02 06:30:00

[야고부] ‘트인낭’ 트럼프

[야고부] ‘트인낭’ 트럼프

'트인낭'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이 말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감독 알렉스 퍼거슨이 한 말에서 비롯됐다. 퍼거슨은 2011년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 인생에서는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 차라리 독서를 하기 바란다."퍼거슨의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 표현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웨인 루니 선수에게 한 조언이었다. 루니가 트위터에서 어떤 팔로워와 논쟁을 벌이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10초 안에 널 때려 눕혀 주마. 이 계집애 같은 놈아"라는 글을 올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구단 감독으로서, 인생 선배로서 한 충고였다.유명 인사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글을 올렸다가 극단적 악플에 시달리거나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SNS가 일상생활 수단이 된 요즘, 언행에 얼마나 신중을 기해야 하는지 일깨워 주는 경구가 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쓴 편지다."이 편지가 사통오달한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펴 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받지 않을 만한 편지인가를 생각해야 한다."정약용은 의도치 않았겠지만 이 편지는 생각의 숙성 과정을 생략하고 SNS에 글을 너무 쉽게 올리는 현대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예언적 경구다. 편지를 보여주고픈 열혈 트위터 한 명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이 숨진 데 분노한 시위가 격렬해지자 트럼프는 트위터에 글을 썼다. "이들(흑인) 폭력배가 플로이드의 기억에 대한 명예를 떨어뜨리고 있다."트럼프의 이 글에 트위터사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경고 딱지'를 붙였다. 사유는 '폭력 미화'다. 역시나 트럼프는 참지 못하고 분노의 트윗으로 대응했다. 소셜미디어 회사에 대한 면책권을 박탈해야 한다며 행정명령권까지 들먹이면서 트위터사를 압박했다. 명색이 세계 최강대국 대통령의 트윗질이 점입가경이다. 신분이 신분인 만큼 그의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를 넘어 '인류의 낭비'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2020-06-01 06:30:00

[야고부] 금호강 아리랑

[야고부] 금호강 아리랑

조선의 문인 서거정이 고향의 풍경과 감성을 담아 쓴 칠언절구 '대구십영'(大丘十詠)은 금호강과 관련된 내용 3수를 포함하고 있다. 달 밝은 복현 나루터에서 뱃놀이를 즐기던 '금호범주'(琴湖泛舟), 팔달교 부근에 있던 주막에서 서울로 떠나는 사람과 이별을 노래한 '노원송객'(櫓院送客), 오봉산에서 금호강 물결 너머 노을을 바라보며 가을의 서정을 노래한 '침산만조'(砧山晩照)가 그것이다.600년 전 서거정이 바라보던 금호강의 풍경은 오랜 세월의 간극 속에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300리 물길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함 없이 또 다른 정경을 연출하고 있다. 동촌유원지를 품은 구룡산 절벽 위에 서 있는 아양루는 금호강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이다.금호강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아양기찻길은 사람의 행로와 자연의 물길이 만나는 곳이다. 북구 노곡동에 위치한 외딴 섬 하중도는 유채꽃과 코스모스가 철 따라 흐드러지는 시민의 휴식 공간이 되었다. 희귀 동식물의 보금자리인 달성습지를 지나 사문진에 이른 금호강은 숱한 이별과 만남의 서정을 남긴 채 대하무성(大河無聲)의 큰 흐름 속으로 합류한다.그렇다. 포항 죽장에서 발원한 금호강은 달성 화원에서 낙동강 본류로 흘러들며 유장한 발걸음의 보폭을 더 넓힌다. 금호강은 그 나름의 색깔을 지닌 채 대구를 감싸고 흐른다. 이뿐만 아니다. 영천 금호와 경산 하양 들녘에 젖줄을 형성하며 능금꽃을 피웠고, 포도밭·대추밭·묘목단지·연근단지를 일구고 있다. 습지의 다양한 야생 동식물에도 삶의 터전을 제공하고 있다.금호강변 야경이 화려한 빛으로 물들며 대구의 색다른 이미지가 투영될 전망이다. '밤이 아름다운 대구 만들기' 프로젝트에 따른 것이다. 갈대가 흐느끼던 소리의 강변에 이제는 빛의 향연까지 어우러질 모양이다. 삶의 무늬는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겠지만, 무상한 강물에 기댄 사람의 행로는 늘 나그네일 수밖에 없다. 지난날 서거정의 심사도 그랬을 것이다.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2020-05-29 19:24:35

[야고부] 남의 돈, 쌈짓돈

[야고부] 남의 돈, 쌈짓돈

숭고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겠다며 시민사회운동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 길은 춥고 배고프며 외롭다. 처음에는 관심을 가져주는 이도 드물다. 그래도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다. 이슈가 생겼을 때마다 성명서를 만들어 발표하고 시위 활동도 벌인다.시간이 흐르면서 사회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언론사 취재 및 칼럼 요청과 토론회 섭외가 들어온다. 매스컴을 타면서 정부 부처나 지자체 공무원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무슨 위원회를 만들면 시민사회단체 자격 '위원님'으로 정중히 모셔간다. 성금, 기부금, 정부·지자체 지원금도 받게 된다.고생 끝에 빛이 드는 시기이지만 활동가로서는 유혹이 시작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소집단 내 권력 탐닉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러브콜'이 들어올 정도면 비상 경고등이 켜지는 것과 마찬가지다.많은 시민활동가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비정부기구(NGO)를 만들어 희생적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초심을 잃고 그릇된 길을 가는 활동가도 없다고 할 수 없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이런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로 진상이 파악되겠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과 집행부의 도덕성은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었다.세상은 투명한 쪽으로 바뀌고 있는데 정의연의 운영 방식은 주먹구구식이었다. 정황상 사회적 가치 운동을 사유화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사태가 촉발됐지만 비슷한 지적은 이미 2004년에도 다른 피해 할머니 주장으로 제기됐었다. 경고가 있었지만 자정 능력이 없었고 이번에 둑이 터져버렸다.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남의 돈'이다. 특히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도우라고 시민들이 낸 돈이라면 10원일지라도 투명하게 써야 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운동의 가치가 이번 사태로 동력을 상실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썩은 부위가 있다면 도려내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 이참에 시민사회단체에서 소수 활동가의 전횡을 견제하고 회계 투명성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2020-05-29 06:30:00

[야고부] 대구의 닮은 두 어른

[야고부] 대구의 닮은 두 어른

"한·일 양국 학생들이 가깝게 지내며, 역사를 올바르게 공부해… 알도록 해야 한다."(이용수), "지난 아픔을 잊지 않고 두 나라 젊은이들의 앞날을 봐야지요."(우대현)올해 92세인 '여성 인권활동가' 이용수 할머니나 77세의 우대현 대구독립운동기념관건립 준비위원장은 서로 만난 적도 없지만 생각은 같다. 모두 일제강점기 피해자이다. 위안부로서, 독립운동가 아들로 결코 평범한 삶을 누리지 못했다. 고된 날들이었만 오히려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은 본받을 만하다.일제 만행을 세상에 드러내 다시는 몸서리치는 인권 유린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어느 누구도 쉽게 할 수 없었던 옛 상흔의 증언을 위해 멀고 가깝고를 가리지 않고 나라 안팎을 다니며 절규했기에 이 할머니를 이젠 당당히 '여성 인권활동가'라 불러도 충분할 만하다. 무엇보다 한·일 두 나라의 미래를 향해 제시한 걱정과 미래 세대를 위한 배려는 어떤 가르침보다 귀하고 받들 만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오랜 삶의 달관(達觀)에 이른 연륜과 깊은 사색과 고뇌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경책(警責)과 다름없다.특히 이미 돌아가셨거나 아직 할 일이 남아 삶에 대한 의지의 끈을 놓지 못하는 17명 생존 할머니를 위한다며 지난 30년 감쪽같이 속이고 추한 모습을 감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과 그를 둘러싼 한 무리의 그릇된 행위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또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 추진에 크고 작은 희생까지 감수한 우대현 위원장의 말과 행동도 인권활동가 할머니의 외침과 같은 맥락이다. 코로나19 회오리 속에 힘겹게 발품 팔며 대구 안팎의 300명 발기인을 모은 그의 바람은 앞날을 위해 옛날 아픔을 기억하도록 하는 일이다.아픈 역사를 잊지 않되, 한·일 두 나라 젊은이만큼은 앞세대와 달리 서로 배려하는 우정의 인연을 잇고, 우호 교류의 다리를 놓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공간 역할을 하는 시설을 지으려 나이를 잊고 뛰는 셈이다.이들 두 어른의 다르면서, 같은 길은 역사란 결국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한 디딤돌로 삼아야 하지, 소위 한밑천 잡거나 정치적인 이해타산을 노린 일탈이 되어선 결코 안 된다는 깨달음이다. 이런 두 어른의 속 깊은 뜻을 윤 당선인 같은 약은 속세 인물이 과연 알기나 할까.

2020-05-28 06:30:00

[야고부] 文정권의 역사 뒤집기

[야고부] 文정권의 역사 뒤집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하는 일은 기록·사실을 조작하는 것이다. 지시를 받아 신문·공문서 등에 실린 경제 수치나 날씨 같은 팩트를 고쳐 쓰며 현재에 맞춰 과거를 수정한다. 그가 근무하는 기관 이름은 역설적이게도 '진실부'(Ministry of Truth)다. 독재정권이 현재에 맞춰 과거를 고치는 이유는 정권을 향한 비판이나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서다.'1984'에 등장한 일들이 2020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은 "친일파를 현충원에서 파묘(破墓)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했다. 파묘 대상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좌파 진영에선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을 기준으로 60여 명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이 문제라고 했던 터다. 이 논리대로라면 박 전 대통령도 파묘 대상이다. 조선 사화(士禍) 때의 '부관참시'를 목도할지도 모를 일이다.대법원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2년 형을 확정한 한명숙 전 총리의 판결도 여권은 뒤집겠다고 나섰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모든 정황이 한 전 총리가 검찰 강압 수사와 사법 농단의 피해자라고 가리킨다"고 불을 지폈다. 여권이 재조사 근거로 내세운 비망록은 그 내용이 허위로 판단돼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이 유죄 증거로 판단한 한 전 총리 동생 전세금에 쓰인 1억원 수표에 대해선 여권은 무시한다. 대법원 판결을 뒤집으려는 게 사법 농단 아닌가.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은 1987년 칼(KAL) 858기 폭파 사건을 두고 "진상 조사가 미진한 게 너무 많다. 조사 결과를 재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국정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모두 북한의 폭탄 테러로 결론을 내렸다. 좌파 정권에서 조사한 것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인가.정부·여당은 총선 압승을 무기로 역사 뒤집기에 광분 중이다. 보수 정권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조사로 '보수=적폐' 프레임을 계속 우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거돈·윤미향 사태로 수세에 몰린 국면 전환 노림수도 깔렸다. 박근혜 정권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논란을 일으켰다. 입맛대로 역사를 재단하려는 것은 어느 정권이나 도긴개긴이다.

2020-05-27 06:30:00

[야고부] 대가야 르네상스

[야고부] 대가야 르네상스

가야산 깊은 산골에서 성스러운 용모와 아름다운 성품을 지닌 산신 '정견모주'가 인간이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 주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어느 봄날 이를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가'가 오색 꽃구름 수레를 타고 가야산 중턱 가마바위에 내려앉았다. 산신과 하늘신 사이에 옥동자가 둘 태어났다. 형은 대가야의 시조인 '이진아시왕'이 되었고, 아우는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난생설화와 함께 전하는 대가야 건국의 천손강림신화이다. 가야의 역사와 문화는 1980년대부터 고분군 발굴과 함께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재조명이 본격화되었다. 2010년에는 드라마 '김수로왕'이 방영되고, 학계의 연구와 출판도 잇따랐다. 6C에 이르기까지 낙동강 일대에서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던 가야 연맹 왕국은 신라에 병합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그러나 동아시아 고대사의 미스터리를 간직한 가야는 '잃어버린 왕국'에서 강력한 '제4의 제국'으로 부상할 태세이다. 가야는 '철의 강국' '해상 교역 대국' '다문화 문명국'으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가야가 한반도 토착 세력과 북방 흉노족 그리고 남방 인도인 집단까지 결합한 연맹체였다면, 비록 영토는 넓지 않았지만 세계 문명을 가슴에 품은 '작은 거인'이었던 셈이다.가야는 유라시아 문명의 용광로였다.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등 가야 연맹체 500년의 생명력은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벼농사와 토기 제작 그리고 철기 문명과 가야금 등 가야 문명의 유산은 한반도 역사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에도 짙게 스며 있는 것이다. 가야사 연구 복원과 활용 사업의 법적 근거인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이는 '가야 문화권 조사·연구 및 발굴·복원'과 더불어 '영호남 상생 발전'의 기반 확충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령군에서는 지산동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통합과 애민의 상징인 가야금의 세계화, 대가야 궁성지와 관방 유적 발굴·정비 등이 순풍을 탈 것으로 보인다. 가야 문명의 부활은 지역 정체성 확립과 주민 대통합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다. 나아가 영호남 동반 성장과 국민 대통합에 이바지할 수 있는 그야말로 '대가야 르네상스를 기대한다.

2020-05-26 06:30:00

[야고부] #덕분에 챌린지

[야고부] #덕분에 챌린지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 피로는 간 때문이야 ♬'2011년 크게 유행했던 CM송이다. 간 기능 개선 약품 광고인데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와 독특한 퍼포먼스로 큰 인기를 끌었고 많은 패러디도 낳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들을 때마다 마뜩잖았다. '간 때문'이라는 카피 때문이었다.'때문'은 '어떤 원인이나 까닭'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비숫한 말로는 '덕분'과 '탓'이 있다. '덕분'은 긍정적 맥락에서, '탓'은 '부정적 맥락'에서 쓰고 '때문'은 두 맥락에서 다 쓸 수 있다. 그러나 ' 간 때문이야'라는 문맥 속에서는 부정적 뉘앙스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간으로서는 이 카피가 못내 서운할 수 있겠다. 무심한 주인이 몸 속에 부어넣는 알코올, 니코틴, 스트레스를 해독하느라 그 고생을 하는데도 자기 탓을 하니 말이다. 피로감은 나쁜 물질 몸속에 그만 넣고 스트레스를 줄이라며 간이 주인에게 보내는 SOS가 아닌가.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다. 간 때문에 피로한 것이 아니라 간 덕분에 살아 있는 것이다.말은 바깥으로 표출된 마음이다. 부정적인 말 많이 하는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세상을 좋게 바꾸는 것의 시작은 좋은 생각과 말이다. '내 힘들다'를 거꾸로 쓰면 '다들 힘내'가 된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되고 '역경'도 뒤집으면 '경력'이 된다. '그러면 안 돼'도 '그러면 돼'로 바꿀 수 있다. 생각과 말을 바꿈으로써 훨씬 아름답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코로나19 팬데믹에서 눈길 끄는 캠페인이 있다. '덕분에 챌린지'다. 코로나19 방역에 헌신하는 대한민국 의료진을 격려하는 국민 참여형 캠페인이다. SNS 등에 '존경'과 '자부심'을 뜻하는 수어(手語) 동작 사진이나 영상을 올린 뒤 '#덕분에캠페인' '#덕분에챌린지' '#의료진덕분에'라는 해시태그를 붙인다. 그러고는 챌린지를 이어갈 참여자 3명을 지목하는데 이달 18일 현재 2만4천여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코로나19는 인간사회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고 혐오와 증오를 부추긴다. 이 최악의 바이러스와 맞서기 위해서 우리는 현대의학과 연대라는 두 방패를 동원해야 한다. '덕분에 챌린지' 같은 캠페인은 효과가 뛰어난 심리적 백신이라 불러도 될 듯하다.

2020-05-25 06:30:00

[야고부] 루스벨트와 문재인

[야고부] 루스벨트와 문재인

2012년 8월 MBC '100분 토론'에서 진행된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2차 TV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자신의 정치적 롤 모델을 밝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닌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선택했다. 문 후보는 "루스벨트는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고 미국의 대번영 시대를 만들어낸 분"이라며 "그 위기를 극복한 정책이 바로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였다"고 밝혔다.문재인 대통령이 심모원려(深謀遠慮)에서 한국판 뉴딜(New Deal)을 들고 나왔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문 대통령은 한 달 전 비상경제회의에서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로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추진할 기획단을 신속히 준비하라"고 부처에 지시했다. 취임 3주년 대국민 연설에서도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는 미래 선점 투자"라고 강조했다.루스벨트는 소수 정당에 불과했던 민주당의 장기 집권 문(門)을 연 인물이다. 유일무이하게 대통령을 네 번 연임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젠하워를 제외한 트루먼-케네디-존슨으로 이어지는 30년 넘는 민주당 장기 집권 토대를 놓았다. 한국판 뉴딜에 성공해 더불어민주당 장기 집권을 이루려는 문 대통령이 뉴딜, 루스벨트를 소환(?)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문 대통령이 루스벨트의 뉴딜과 함께 그의 리더십도 배웠으면 한다. 루스벨트를 '두려움에 맞선 불굴의 CEO'로 규정한 앨런 액슬로드는 루스벨트의 국가 위기 극복 원동력을 '통합'에서 찾았다. 루스벨트는 언제나 모든 사람을 하나로 모으려 했고 편을 가르려 하지 않았다. 국민 전체를 중시했고 어느 한쪽에 쏠리는 일을 경계했다. 그는 "우리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패배와 승리, 전쟁의 변화하는 운명도 함께 나눠야 한다"고 '노변정담'을 통해 역설했다.문 대통령은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했을 뿐 조국 사태로 상처를 입은 국민을 어루만지지 않았다. 탈원전 등 국익보다 지지층을 염두에 둔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 이 나라에 더 필요한 것은 뉴딜보다 국민 통합의 루스벨트 리더십이다.

2020-05-22 19:14:31

[야고부] 국회 지붕 꿀벌 뜻은?

[야고부] 국회 지붕 꿀벌 뜻은?

매일신문 |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하며 진리의 소리가 천지간에 진동하여도 그 메아리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 부처님께서는… 신종(神鐘)을 달아 진리의 소리를 듣게 하셨다."국보 성덕대왕신종 즉 '에밀레종'에는 1천 자가 넘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종을 만드는 과정에서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아 어린아이를 넣었다는 전설을 지닌 봉덕사 신종은 세계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 종으로도 널리 알려진, 신라 장인들의 혼이 녹아 있는 불후의 명작이다.4명의 장인(주물사)이 참여, 20년 세월에 걸쳐 만든 18.9t 무게의 신종은 771년 완성된 뒤 우여곡절을 겪었다. 처음 봉안된 봉덕사가 수해로 유실되면서 700년 넘게 땅속에 묻혔다 조선 세조 때 영묘사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다시 종각 소실로 방치되다 이후 하루 세 차례 시간의 흐름을 전하는 역할을 했다.그런데 이 신종에는 신라 사회의 양봉(養蜂) 역사가 깃들어 있다. 신종에 대한 연구 결과, 당시 종의 주조 방법은 납형법(蠟型法)이었다. 즉 꿀벌 집에서 추출한 밀랍(蜜蠟)을 사용했다. 벌통 1개에 연간 생산 밀랍을 1~2ℓ로 보면 20t 무게 신종 주조에는 약 4천~5천 개의 벌통이 쓰인 것으로 추정됐다.신라는 불교의 나라였다. 헤아릴 수 없는 사찰이 줄을 이었다. 사찰마다 크고 작은 종들이 주조됐을 법하다. 에밀레종만큼은 아니라도 밀랍이 쓰였을 가능성은 분명하다. 신라의 양봉 발달은 짐작할 만하다. 자연의 꿀벌 집만으로는 이런 대량의 밀랍 공급은 힘들 터이니 인공의 양봉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리라.부처님의 진리를 전하는 종을 만드는 데 귀하게 쓰였던 꿀벌의 집이 올 초 나라 한복판, 아수라장 같은 서울 여의도 국회 건물 옥상에 마련된 뒤 21일 처음 꿀을 따는 채밀(採蜜) 행사가 열렸다. 불자인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의 제안으로 설치된 벌통 12개에 꿀벌 100만 마리가 모은 꿀을 따는 행사였다.거둔 꿀은 청소근로자 등에게 주고 농업에 대한 관심을 높이며 도시 생태 복원에도 도움이 된다니 그 뜻이 가상하다. 이왕이면 부지런하고 서로 도우며 '왕벌'에게 충성하는 꿀벌과 그들의 집조차 진리를 전하는 종을 만드는 데 쓰인 것처럼 여의도 식구들도 왕인 국민을 위하는 꿀벌만큼만 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

2020-05-22 06:30:00

[야고부] 新중년 이혼

[야고부] 新중년 이혼

'누가 지금/ 문밖에서 울고 있는가/ 인적 뜸한 산 언덕 외로운 묘비처럼/ 누가 지금/ 쓸쓸히 돌아서서 울고 있는가// 그대 꿈은/ 처음 만난 남자와/ 오누이처럼 늙어 한 세상 동행하는 것/….' 장석주의 시 '애인'에서 남자는 문밖에서 울고 있는 여자에게 연민과 원망이 교차한다. 백년해로하려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엇갈린 인연에 대한 회한이다. 시린 가슴에 남은 추억만으로는 이제 와서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가수 박강성의 노래 '문밖에 있는 그대'는 좀 더 냉정하다. '마지막 눈길마저 외면하던 사람이/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오늘은 거기서 울지만/ 그렇게 버려둔 내 마음속에 어떻게 사랑이 남아요'라며 아픈 사랑을 이제는 잊자고 울먹인다. 시와 노래에서는 그래도 최소한의 낭만이라도 남아 있다. 현실은 훨씬 더 각박한 듯싶다. 오랜 세월의 동행이 차라리 무색하다.영국의 어느 노부부가 100세를 2년 앞두고 이혼을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숱한 세월의 부부 생활이 일락서산(日落西山) 직전에 파경을 맞은 것이다. 2000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열정적 키스를 선보였던 앨 고어 전 부통령 부부도 40년의 동행을 황혼이혼으로 마감했다. 올봄에는 가수 혜은이(65)가 30년 부부의 인연에 마침표를 찍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늦은 나이에 동반자의 약속을 저버리고 있다. 우리는 예로부터 결혼 60주년이 되는 회혼례(回婚禮)를 귀하게 여겼다. 그런데 100세 장수 시대를 맞은 오늘날 오히려 그게 더 어려워졌다. 역설이다. 이제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이란 말도 사라질 모양이다. 황혼이혼이 늘어나면서 젊은 시절 3, 4년 함께한 부부보다 30~40년 동행한 부부의 이혼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이다.대구여성가족재단이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50~64세 신중년 남녀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30%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혼을 고민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 280여 건에 불과했던 실제 이혼 건수도 1천340건으로 늘어났다. 월간 샘터에 소설 '가족'을 오랜 세월 연재했던 작가 최인호는 "가족이야말로 가장 성스러운 공동체"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이 또한 허사(虛辭)이던가.

2020-05-21 06:30:00

[야고부] 소는 누가 키우나?

[야고부] 소는 누가 키우나?

나라에서 모든 국민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돈을 준 적이 있었던가. 집권 세력이 입에 올린 태종·세종도 하지 못한 일이다.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아 든 국민으로서는 감읍(感泣)할 일이다. 대통령 지지율 60~70%가 웬 말인가. 90%를 넘어 100%에 육박하더라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또 한 번 이 땅의 백성에게 선사(?)했다.모든 일에는 양(陽)과 음(陰)이 같이 있는 법. 전 국민 대상 재난지원금 필요성이 없지 않지만 그늘도 도사리고 있다. 전체 예산 14조3천억원을 마련하느라 여기저기서 등골이 휠 지경이다. 적자 국채 발행으로 3조4천억원을 조달해야 한다. 나라 곳간에 돈이 부족해 불가피하게 적자 국채를 찍을 수밖에 없다. 미래 세대가 나중에 갚아야 할 국채는 올 들어 65조7천억원이나 늘어 753조5천억원에 달한다. 재난지원금에 지방비 2조1천억원이 포함됐는데 가뜩이나 재정이 열악한 지방으로서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국가가 빚을 지는 것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국민에게 나랏돈을 퍼주기 위해 빚을 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고 공장을 짓거나 도로를 놓는 등 생산적 활동을 위해 빚을 내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차관(借款)으로 일어선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나 기업, 은행 등이 외국 정부나 공적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려와 도로를 놓고 공장을 지어 철과 배,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나라다.재난지원금으로 말미암은 더 큰 그늘은 포퓰리즘(populism)의 지옥문을 열어젖혔다는 것이다. '공돈'이 주는 달콤한 맛을 본 국민은 코로나와 비슷한 재난이 닥칠 때는 물론 온갖 이유를 앞세워 나라에 돈을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현금 살포의 위력을 눈으로 확인한 정권은 빚을 내서라도 나랏돈 퍼주기에 더 열을 올릴 것이다. 국민과 정권 모두 '포퓰리즘의 노예'로 전락하는 첫발을 뗀 셈이다.나랏빚을 내 마련한 재난지원금으로 한우 파티를 하고, 명품 쇼핑을 하고, 성형수술을 하는 것은 비정상의 극치다. 재난지원금이 몰고 온 부작용, 앞으로 닥쳐올 더 큰 폐해를 걱정하며 이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소는 누가 키우나?"

2020-05-19 19:08:35

[야고부] 대통령의 ‘대안적 사실’

[야고부] 대통령의 ‘대안적 사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미국의 범죄율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거짓말이었다. FBI(연방수사국) 표준 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범죄율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낮았다. 그러나 이런 객관적 사실은 그에게 소용없었다. 트럼프의 핵심 측근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도 마찬가지였다. 2016년 7월 27일 CNN방송 대담에서 앵커 앨리슨 캐머로타가 객관적 사실을 들이댔지만, 벽에 대고 소리치는 격이었다."… 깅리치: 장담하건대 일반적인 미국인이라면 범죄율이 낮아졌다고,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캐머로타: 하지만 사실이 그런 걸요. 더 안전해졌고 범죄율은 낮아졌습니다. 깅리치: 아뇨. 그건 당신의 의견일 뿐입니다. 캐머로타: 의견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국가기관인 FBI에서 내놓은 사실이라고요.""깅리치: 하지만 제 말도 사실입니다. 진보 진영에서 이론적으로 그럴 듯해 보이는 온갖 통계 자료를 제시하지만 인간 세상이 통계 자료 같지는 않다는 게 최신 관점이죠. 캐머로타: 아니, 잠깐만요. 지금 진보 진영에서 그럴싸한 통계 자료를 사용한다, 신비로운 숫자 놀음을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지적한 것은 FBI에서 제시한 자료입니다. 거기는 진보주의 기관이 아니에요, 범죄와 싸우는 기관이라고요."결말은 가관이었다. "깅리치: 맞아요. 제가 말한 것도 똑같이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위협을 크게 느끼고 있어요. 캐머로타: 느끼고 있다, 그렇죠. 느낌일 뿐 사실로 뒷받침되지는 않죠. 깅리치: 저는 사람들 감정을 따를 테니 그쪽은 이론가들 말이나 따르시죠."문재인 대통령이 17일 방영된 광주MBC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대통령들이 (5·18)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엔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기념사에서 이 전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은 지금과 같은 민주화 사회를 이루는 초석이 됐다"고 했고, 박 전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겠다"고 했다.문 대통령은 이를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내 편'의 '감정'을 따른 것일까, 아니면 자신만의 '대안적 사실'이 있는 걸까.

2020-05-18 20:01:12

[야고부] 언젠가 만날 그날까지

[야고부] 언젠가 만날 그날까지

'언젠가 만날 수 있는 그날까지.'지난 4일 자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 인터넷 기사로 뜬 보도 일부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강제징용 외교 갈등에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친 탓에 사실상 모든 교류가 중단된 한일(韓日) 두 나라의 험악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대학생들 사이에 인터넷을 통해 서로 주고받은 사연을 소개한 기사이다.2018년에는 무려 1천만 명에 이르렀던 양국 교류였다. 그러나 냉각된 교류는 코로나19로 그나마 이뤄지던 대학생 교류마저 끊어버렸다. 이에 지난달 20일부터 9일 동안 일본 공익재단법인인 '일한문화교류기금'은 서로의 나라에 갇힌 학생들에게 단절된 인연의 끈을 잇기 위해 온라인 교류 창구를 마련했다.소위 '집에서 일한(日韓) 교류'라는 이름으로 마련된 이번 사업에는 한국의 대구를 비롯해 일본의 도쿄, 후쿠오카, 나고야 등지에서 모두 118명이 참가했다. 온라인을 통해 서로의 답답함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털어놓고 고민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여기에는 서로 안부를 걱정하는 진한 배려도 배어났다.이 같은 '집에서…교류'의 사연이 대구의 일본 연구자 등에게 소개된 까닭은 코로나로 고향을 찾지 못하는 대구의 일본인 여성들이 망향(望鄕)의 정을 담아 만들어 공유한 '이코이(憩い)합창단'의 영상 소식이 일본에까지 알려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린 영상이 그들의 바람처럼 고국에도 전달된 셈이다.한일을 잇는 하늘, 땅, 바다의 길이 모두 닫힌 데 따른 단절의 힘든 현실은 대구 일본인 여성이나, 한일 두 나라 대학생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런 동병상련이었기에 '집에서…교류'를 통해 이어진 한일 대학생 교류 사례를 대구에도 전파해 합창 영상으로 고향 일본은 물론 대구경북 이웃과 나누며 코로나 극복에 나선 대구의 동포 여성들을 멀리서나마 응원하고 싶었을 것이다.코로나19가 일상을 삼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할 방역 지침으로 생활화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만은 코로나도 막을 수 없음은 물론, 갈등 속의 한일 두 나라 사이의 마음의 거리를 없애는 교류만큼은 바람직함을 확인한 두 사례이다. 마음이 가야 몸도 따르니, 한일의 행동 교류에 앞선 마음 교류 소식만으로도 다행스럽다.

2020-05-18 06:30:00

[야고부] ‘스승의 날’을 보내며

[야고부] ‘스승의 날’을 보내며

16세기 조선의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은 나이와 세대, 직위와 경륜, 그리고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는 학문적인 선후배 또는 사제 관계로 편지를 통한 학술 논쟁을 이어갔다. 우리 정신사에 길이 남을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辨)이다. 극진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권위에 주눅 들지 않았던 고봉의 패기와 학문이 원숙한 경지에 이른 퇴계의 개방적인 자세가 돋보이는 영혼의 교류였다.추사 김정희의 제자 이상적은 역관 가문이었다. 그러나 추사는 시와 글씨에도 능한 이상적을 예술의 후배로 학문의 제자로 삼아 인간적인 교류를 아끼지 않았다. 스승을 존경했던 이상적은 청나라를 오가며 구한 최신 서적과 예물을 들고 추사의 귀양지인 제주도를 찾았고, 제자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한 추사는 한 폭의 그림을 전했다.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이다.스승의 날을 맞아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찾아온 제자가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임이자 국회의원(재선)이다. 임 의원은 이 지사가 1978년 수학 교사로 첫 부임했던 상주 화령중 시절의 제자이다. 사제 간에 나란히 금배지를 단 경우도 드물거니와 선배 정치인이었던 이 지사를 늘 '의원님'이 아닌 '선생님'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다는 임 의원의 덕담도 흐뭇하다.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사제지간의 따뜻한 이야기는 각박한 세상에 온기 가득한 등불 같다. TV조선의 '미스터트롯'을 통해 성악가에서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트바로티 김호중의 인생 역전에도 한 사람의 스승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호중은 부모의 이혼으로 고단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형편이 어려워 좋아하는 음악 공부도 할 수가 없었다.방황하던 비행 청소년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며 해외 유학으로 인도해 준 사람은 바로 고교 시절 은사였다. 제자의 음악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헌신적으로 이끌어 준 결과가 또 한 사람의 특별한 스타를 탄생시킨 것이다. 누구나 가르칠 수가 있고, 누구나 배울 수 있는 넉넉한 시대이다. 그러나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드물고,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귀한 세태를 우리는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0-05-15 18:19:59

[야고부] ‘친일 세력’이란 유령

[야고부] ‘친일 세력’이란 유령

러시아 혁명 10년 뒤인 1928년 캅카스 북부 샤흐티 탄광에서 석탄 채굴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자 소련 당국은 광산 기술자들을 '사보타주' 혐의로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일명 '샤흐티 재판'으로, 소련은 '제국주의 영국의 사보타주 사주(使嗾) 음모'를 날조해 5명을 총살하고 44명을 감옥으로 보냈다.이후 '외국 세력'은 스탈린이 숙청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불러낸 편리한 '유령'이 됐다. 스탈린의 숙청 희생자치고 이 유령에 당하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독일군의 전격전(電擊戰) 교리와 비슷한 종심작전(縱深作戰) 이론을 설계한 천재 군인 미하일 투하체프스키가 대표적인 예다. 나치 독일과 내통했다는 것이다. 이런 혐의를 뒤집어씌우려고 스탈린은 나치를 설득해 투하체프스키와 나치 장군들이 비밀리에 접촉하고 있었다는 허위 증거를 날조했다.스탈린의 충견(忠犬)으로, 내무인민위원장(NKVD)으로 있으면서 1937∼1938년의 '대숙청'을 집행했던 니콜라이 예조프와 그 수하(手下)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영국과 폴란드의 간첩이란 혐의를 뒤집어쓰고 말 그대로 죽도록 두들겨 맞은 뒤 총살됐다.이런 '유령 불러내기'는 김일성도 따라 했다. 6·25전쟁 휴전 직후, '조선의 랭보'로 불렸던 월북 작가로 낙동강 전선에도 종군했던 임화를 '미군 CIC(방첩대)와 결탁한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다. 1955년에는 박헌영을 '미 제국주의의 고용 간첩'이란 혐의를 씌워 저세상으로 보냈고, 1958년에는 김원봉을 '중국 국민당 장개석의 사주를 받은 국제 간첩'이란 죄목으로 숙청했다.'외국 세력'이란 유령과 비슷한 유령이 이 땅을 배회하고 있다. 바로 진보 진영이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 때마다 불러내는 '친일 세력'이다. 윤미향 4·15 총선 당선인은 '정의연'과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를 "친일 세력의 부당한 공격"이라고 했다. 이에 김두관 의원을 시작으로 여권 인사들이 '옳소'라는 '떼창'으로 추임새를 넣고, '문빠'들은 "정의연을 공격하면 토착 왜구"라고 악을 쓴다.지난해에는 조국이 1961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뒤집은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사람은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무시(無時)로 불러 젖히니 '친일 세력 유령'도 참 피곤할 것 같다.

2020-05-15 06:30:00

[야고부] 코로나 신풍속도

[야고부] 코로나 신풍속도

일본 최대의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조(山口組) 두목이 '싸움 금지와 외출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은밀한 장소에 모여 세력을 과시하고 다른 조직과의 대결이 일상인 야쿠자에 이 같은 비상조치는 존재의 부정이나 다름없다. 때로는 목숨을 건 유혈전도 불사하는 폭력 조직의 냉혈한들도 코로나에 맥없이 무너진 것이다. 야쿠자 조직의 최우선 목표가 '세력 확장'이 아닌 '건강 사수'로 바뀐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코로나는 동서양 문화에 대한 편견과 선진국에 대한 인식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과 대만 등이 코로나 방역과 차단에 비교적 선전한 사례를 남긴 데 반해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일본 등 일류 국가들이 바이러스의 침투에 지리멸렬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그렇다. 코로나19는 지구촌 인류의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 대표적인 양상이 마스크의 화려한 등장이다.그래서 우리는 지금 '민낯 실종'의 세상을 살고 있다. 코로나가 세계인의 얼굴을 가려 버렸다. 두 눈만 보고 누구인가를 판단해야 하는 '마스크 천국'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통령도 마스크를 쓰고 노숙자도 마스크를 쓴다. 지구촌이 하나의 거대한 가면무도회장이 된 듯하다. 복면강도라는 말도 무색해졌다. 환자와 닌자(忍者)가 따로 없다.남자는 애써 수염을 깎지 않아도 되고 여자는 굳이 성형수술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마스크가 일상화된다면 머잖아 값비싼 기능성 패션 마스크가 사람의 귀천을 가름하는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스크 시대의 종착역은 과연 어디일까. 코로나가 불러온 비대면·비접촉 문화 정착은 사회의 전반적인 풍속도와 직장 및 가정생활에도 일대 변화를 초래했다.코로나바이러스는 모든 학교와 종교시설의 기능마저 마비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코로나신(神)이 묵언수행이라도 명한 듯하다. 코로나는 인류에게 그동안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가를 깨닫게 했다. 자숙과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코로나 또한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의 교훈을 잊고 또 이기와 탐욕에 집착한다면 더 독한 바이러스가 등장할 것이다. 그때는 마스크가 아닌 방독면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

2020-05-13 18: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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