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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김병준의 꿈

"처음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솜씨가 대단하고 인간관계도 좋지요. 유머 감각까지 갖췄습니다."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본 사람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김 위원장은 정치인이라면 갖춰야 할 덕목을 두루 겸비한 인물로 보인다. 교수 출신답지 않은 유연함과 폭넓은 안목까지 갖고 있기에 미래가 기대되는 정치인이었다. 경북 고령 출생으로 대구상고영남대를 졸업한 지역 출신에, 고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대단한 것도 강점이었다.그가 지난 7월 한국당 비대위원장에 영입되자, 김병준의 미래를 그리는 이들이 하나둘 생겼다. 본인이 '대망론'을 입에 담은 적은 없다. 그렇지만, 그의 지인들은 그가 대권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일했고, 박근혜 정부 막판에 국무총리로 지명받았으니 꿈꿀 자격은 충분했다.며칠 전만 해도 대권 쟁취는 몰라도, 도전에 나설 가능성은 없지 않았다. 지난달 초 전원책 변호사를 조직강화특별위원에 전격 영입할 때만 해도 호시절이었다. 별다른 역할을 못 한다고 비판받던 와중에 전 변호사 영입을 통해 단번에 여론을 바꿨으니 승부사 기질까지 있는 듯했다.지난 9일 전 변호사를 조강특위 위원에서 해촉하면서 김병준의 이미지도 함께 무너졌다. 한국당의 인적 쇄신이 물 건너간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위기관리 능력은 낙제점을 받았고, 지도력마저 치명상을 입었다. 이런 상태에서 내년 2월 비대위원장 임기가 끝날 때까지 무엇을 할 수 있을까.그가 올 초 인터넷 신문에 34년 전 교수 생활을 시작할 때를 회고하며 쓴 기고다. "이문열의 소설 '필론의 돼지'가 생각났다. 현자(賢者) 필론을 태운 배가 큰 폭풍우를 만났다. 모두 우왕좌왕, 아수라장이 되었건만 바닥에 누운 돼지 한 마리는 세상 모른 채 자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필론, 그는 돼지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그가 34년 전에는 정권의 폭압에 의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욕심과 실책에 의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2018-11-14 05:0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고시원의 명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이곳에서 산다, 한때는 야망을 품고 이곳에 왔고, 한때는 갈 데가 없어 이곳에 왔으나…가족들을 잊기 위해 산다, 가족들을 잊지 못해 산다….'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차창룡 시인은 '고시원에서'란 시(詩)에서 크고 작은 이산의 아픔과 고독의 등짐을 진 채 이웃과 단절된 삶을 이어가는 고시원 사람들을 이렇게 그렸다.고시원은 한때 청운의 꿈을 보듬었던 희망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소외된 사람들이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맨몸 하나 겨우 눕히는 최후의 공간이 되었다. 방 한 칸 제대로 구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외로움과 서러움을 삭이는 쓸쓸한 주거용 둥지가 되었다.고시원은 1970, 80년대 고등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생겨났다. 1990년대에는 50개 이상의 독방을 갖춘 대형 고시원까지 성업을 하며 대학 문화의 한 기형(畸形)을 형성했다. 저렴한 방값과 효율적인 학습 환경 때문이었다. 그런 고시원이 다양한 인간 군상의 마지막 보금자리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전남일 가톨릭대 교수는 우리나라 주거 공간의 변화를 서술한 '집'이라는 책에서 한 칸짜리 집의 원형은 구한말 도시 빈민층의 움막집이라고 밝혔다.그것이 일제강점기 주인집 행랑채와 한국전쟁 때의 변두리 판잣집, 1960년대 달동네와 옥탑방, 산업화시대의 반지하 셋방과 쪽방촌으로 나타났다가, 오늘날 고시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빈곤층의 주거 공간에 안전시설이 확충되었을리가 없다. 서울 도심 고시원을 덮친 불길이 또 고단한 목숨들을 앗아간 연유이다. 정부의 대응도 딜레마이다. 규제를 하자니 방값이 오르고, 묵인하려니 사고가 걱정이다.고시원은 화려한 도시의 뒤안길에 드리운 짙은 그늘이다. 밑바닥 삶들이 매일매일 쓰디쓴 시험을 치르는 곳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가 박민규는 단편 '갑을 고시원 체류기'에서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도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절망의 공간을 익명으로 떠돌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비극을 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2018-11-13 05:0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듣기 시험이라도

"복지관 선생님 전화가 왔다. '김정○ 어머니세요?' '뭐라고요? 김장했어요.' 내 이름을 묻는 말에 김장했다고 대답했네. 3호선을 타러 올라가는데 '급정거 시 위험하니 손잡이를 잡아주세요' 하는 방송에 '급정거 시'가 '김정○ 씨'인 줄 알고 깜짝 놀라 돌아봤네. '김장'도 '급정거'도 아닌 내 이름은 김정○."대구 수성구청이 달마다 펴내는 소식지 '명품 수성'의 11월 호에 소개된 김 할머니의 글이다. 뒤늦게 배운 글을 바탕으로 지난 10월 9일 열린 '한글사랑 성인문해 한마당'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힌 작품이다. 개성이 듬뿍 담긴 글씨체에다 또박또박 바르게 쓴 글은 읽을수록 가슴에 와닿는다.사람은 나이 먹음으로써 청력도 떨어지는, 어쩔 수 없는 신체의 이 두 현상의 동행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세월도 나이도 막을 수 없다. 신체 역시 나이로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다. 제대로 듣지 못해 겪는 실수도 피할 수 없다. 결코 나무랄 일도, 흠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례와는 사뭇 다른 일들이 버젓하다.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고 그 소리를 멋대로 해석해 엉뚱한 짓을 저지르는 청력 상실의 시절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논란이 된 경제정책에 대한 청와대 결정이나 사립유치원 비리 이후 유치원 진영의 대응이 그렇다.청와대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듣고 싶은 소리만 지금까지 고르는 듯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뒤늦게 9일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함께 바꾸기로 한 결정은 국민의 소리를 듣는 청력이 그나마 일부 남은 결과이겠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다.비리가 드러난 사립유치원들의 폐원 대응은 제대로 된 유치원 운영을 바라는 정부나 국민의 소리를 듣지 못한 탓이다. 이들은 나이와 상관 없이 청력을 잃은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나랏돈 지원받아 비리없이 제대로 잘 운영되는 유치원, 왜 안 된다는 것일까. 그들에게 듣기 시험이라도 치를 때인가 보다.

2018-11-10 05:0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양심적 병역거부의 비양심

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입은 인적 손실은 엄청났다. 18세에서 27세의 프랑스 남성 4분의 1이 사망했다. 이런 끔찍한 경험 때문에 독일이 전쟁 준비에 들어가고 있음에도 프랑스에서는 '어쨌든 전쟁은 안 된다'는 맹목적 평화주의가 지배했다. 이를 주도한 인물 중 하나가 프랑스 교사 노동조합 지도자 조르주 라피에르였다.그는 1차 대전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당시 교과서를 '호전적 교과서'라고 낙인찍고 퇴출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프랑스에도 그에게도 평화는 오지 않았다. 프랑스는 단 6주 만에 나치 독일에 무너졌고, 라피에르는 나치에 저항하는 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돼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맹목적 평화주의는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옥스퍼드 대학의 토론클럽인 '옥스퍼드 유니온'이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국왕을 위해 싸우기를 거부한다'고 선언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이런 평화주의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소설가 H. G. 웰스, 문예비평가 킹슬리 마틴 등 지식인들이 주도했다. 그들의 논리는 어처구니없었다. 영국이 군사력을 줄이면 어떤 나라에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다른 나라도 영국과 전쟁을 할 동기를 갖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2차 대전은 이런 순진한 희망을 산산조각 냈다.내가 무기를 내려놓으면 평화를 얻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라는 사실은 인류 역사가 잘 말해준다. 이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무기를 잡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윤리적 무임승차자이다. 전쟁이 없어지지 않는 한(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들의 양심은 그들을 대신해 총을 잡는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양심도 진정으로 '양심적'이지 않은 것 같다.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 거부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뒤 인터넷에 '여호와의 증인' 가입 문의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접하면서 옥스퍼드 유니언의 선언에 "참으로 한심하고 치졸하고 수치스러운 고백이며…불온하고 역겨운 시대의 징후"라고 한 처칠의 개탄(慨歎)이 생각난다.

2018-11-09 05:0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재벌과 조폭

'재벌과 조직폭력배가 닮은 점은?'10여 년 전 유행한 유머다. '정치권력과 은밀한 뒷거래를 좋아한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교묘하게 털어간다. 사회에 공헌하는 척한다.' 다른 버전도 있다. '세력 확장을 좋아한다. 돈과 폭력성을 함께 갖고 있다. 당한 손해는 반드시 되갚아준다. 치사한 짓을 예사로 한다.'이제는 재벌의 이미지가 좀 달라졌을까? 올 초 한 인터넷 언론사가 재벌 이미지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더니 국민 10명 중 7명이 부정적인 시각이었다. 응답자들은 재벌 이미지로 '정경유착' '부정부패' '노동자 착취' 등을 많이 꼽았다. 한국인이 부정적인 재벌관을 갖게 된 것은 재벌의 자업자득이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횡포는 말할 것도 없고, 대표적인 재벌인 삼성의 행태를 보면 그 후진성에 놀라게 된다.이건희 회장은 2006년과 2008년 '삼성 X파일 사건'과 '삼성 특검' 과정에서 8천억원 사재 출연과 사회공헌을 약속했다. 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사재 출연 논란 자체가 어디론가 실종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2년 전 국회 청문회에서 "부친이 사재 출연 방법과 계획을 세우다가 와병에 들었다"고 답했다. 전후 맥락을 볼 때 애초에 약속을 지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옳다.며칠 전 논설위원들이 회의 때 대구 자동차 부품업체의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다가 재벌 이야기로 이어졌다. 누군가 "재벌은 부품업체, 하청업체가 망하든 말든 뜯어먹는 데에만 골몰한다. 여전히 조폭 같다"고 했다. 다른 논설위원이 농담조로 그 말을 받았다. "둘을 비교하는 건 조폭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조폭은 약간의 의리도 남아 있고, 자기 영역을 지킨다."최근 정부와 여당이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가 이익을 나누는 '협력이익 공유제'를 법제화하기로 했다. 대기업에게 이익을 내놓을 것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도, 이를 수긍하는 국민이 많다고 하니 참으로 슬퍼진다. 조폭 취급받는 재벌에게 경제를 떠맡기고 있는 국민이 불쌍해 보인다.

2018-11-08 05:0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노(NO) 플라스틱

한 해 국내에서 쓰이는 '플라스틱 백'(비닐봉투)은 모두 211억 개다. 이를 인구수로 나누면 1인당 414개 꼴이다. 유럽연합의 평균 사용량 198개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일회용 비닐봉투 구경하기가 어렵다는 핀란드(4개)와는 무려 100배 차이다. 상대적으로 사용 빈도가 높다는 그리스(250개), 스페인(120개)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이쯤 되면 '비닐에 중독된 한국'이라 불릴 만도 하다. 일회용 종이컵도 만만찮다. 연간 230억 개를 쓴다.얼마 전 별 생각 없이 비닐봉투를 쓰던 습관에 제동이 걸렸다. 집 앞 제과점에서다. 비닐봉투값으로 50원을 내라고 한다. 신문에서 일회용품 줄이기 캠페인을 본 터라 빵값과 함께 계산했다. 그 이후로도 가끔 장바구니를 깜빡해 봉투값을 치르기는 했지만 이제 부직포 주머니를 챙기는 게 버릇이 됐다.우리 일상에서 비닐봉투만 골칫거리가 아니다. 세탁소 비닐이나 '뽁뽁이'로 불리는 에어캡, 우산용 비닐, 일회용 비닐장갑, 포장용 랩 등 각종 비닐 제품이 넘쳐 난다. 거의 재활용 없이 버려져 환경오염을 부르고 그 폐해가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점을 생각하면 변화가 필요하다. 호주나 미국, 케냐, 인도 등 비닐봉투 사용금지 사례에 비춰 정부가 이달부터 비닐봉투 무상 제공을 금지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그런데 아직 제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다. 무상으로 비닐봉투를 주다가 20원, 50원을 받으니 불만이 없을 수 없다. 종이봉투로 바꾸게 하거나 장바구니 사용을 유도하는 과정 없이 유상 봉투처럼 손쉬운 수단에 치중하다 보니 생긴 마찰이다. 정책 방향이 옳아도 과정이 미흡하면 자발적 호응의 폭은 제한된다.그렇지만 고작 20원짜리 비닐봉투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게 맞나 싶다. 1년에 단 하루 비닐봉투를 쓰지 않으면 6천700t의 이산화탄소가 줄고, 원유 95만ℓ를 아낄 수 있다. 플라스틱이 썩는데 100년이 걸리고, 비닐봉투 1장에 100만 개가 넘는 미세플라스틱 조각이 들어 있다. 비닐봉투나 플라스틱 컵, 빨대, 종이컵 등 우리 일상에서 멀리할 것이 아직 많다. 갈 길이 먼데도 사소한 일로 다툰다면 그 또한 우습다.

2018-11-07 05:0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국민이 걱정하는 정권

최근 신문에 나온 사진 두 장을 보며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했다. 하나는 미국을 방문한 박한기 합참의장에게 조셉 던퍼드 미 합참의장이 국방부 벽에 걸린 그림 '영원한 전우'에 대해 설명하는 사진이다. 이 그림은 6·25전쟁 최대 격전으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 장면을 담았다.미 제1해병사단 1만5천 명은 1950년 11월 함남 장진군에서 중공군 7개 사단 12만 명에 포위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미 해병 4천500명이 전사하고 7천500명이 부상했다. 덕분에 군인과 민간인 20만 명이 중공군을 피해 피란하는 흥남철수작전이 가능했다. 장진호 전투는 한·미동맹의 근간이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북한에 관한 한·미 간 의견 차이가 벌어지면서 양국의 70년 동맹 관계가 위험에 빠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핵을 폐기하려면 두 나라의 공조가 필수이지만 오히려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 한·미 공조가 잘 안 될 땐 북한에만 이득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미 간 마찰이 빚어지고 우리 정부가 북한에 경도됐다는 인식을 북한이 갖게 되면서 리선권의 '냉면 목구멍' '배 나온 사람'과 같은 막말이 쏟아지는 게 아닐까 싶다.다른 하나는 지난달 개통한 중국 강주아오 대교 사진이다. 총연장 55㎞에 이르는 세계 최장 해상다리 개통으로 광둥성 9개 도시와 홍콩·마카오를 연결하는 인구 6억 명, GDP 1조4천억달러의 거대 경제권이 탄생했다. 중국 경제 성장을 웅변하는 또 하나의 랜드마크를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다.한국을 배우려 중국이 안달하던 시절이 '있었다'. 철강, 조선, 반도체 등을 통해 단기간에 선진국 문턱에 도달한 우리를 부러워하던 게 중국이었다. 그때 우리는 정부와 기업, 노동자가 하나가 돼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뭉쳤다. 빵의 크기를 키워 모두 잘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것이 성장의 자양분이 됐다. 이제는 빵 나눠 먹기에만 혈안인 나라로 전락했다.정권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국민이 걱정하는 정권, 국민을 걱정하는 정권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정권을 이끄는 이들이 지금 정권은 어느 쪽인지 한 번쯤이라도 고민해보기 바란다.

2018-11-06 05:0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걸맞은 이름을 불러다오

'와불상(臥佛像)? 거인상(巨人像)?'구미 금오산에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명물이 있다. 특히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구미 쪽으로 가다 보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는, 산 정상부터 능선을 타고 아래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모습이다. 금오산 맞은편 낙동강 건너 구미공단에서 보면 더욱 인상적이다. 강변 동락공원이나 옛 LG의 한 건물 등 몇몇 장소는 사진을 찍기 좋은 곳으로, 구미에 들르는 손님들이 즐겨 찾곤 한다.그런데 이런 자랑할 만한 명물의 이름이 엇갈려 사람들이 헷갈리곤 한다. 옛날에는 '누운 부처 모습'이라는 뜻의 '와불상'으로 불렸으나 어느 순간부터 '거인상'이란 새 호칭이 나타나 대신했다. 이런 금오산 명물의 새 이름 등장과 관련, 불교색을 띤 이름에 대한 다른 종교(인)의 반감이나 옛 구미 지도자의 믿음에 대한 편견 등 여러 사연들이 나돌았으나 확인할 수 없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그런 까닭인지 올해 구미시의 담당 부서 업무보고에 나오는 표현도 '누운 부처'라는 말 대신 '거인 얼굴'의 금오산으로 되어 있다. 구미의 역사문화와 자연, 산업 등 자원을 관광에 활용하겠다는 사업 추진 내용에 나오는 문구다.그러나 우리의 오랜 역사와 문화, 생활 속에 밴 바탕에는 아무래도 부처(佛)의 불교색 영향이 큰 탓에 거인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낯선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구미시가 앞세우는 거인(상)이 어색한 까닭이다. 게다가 구미시는 그동안 200억원을 들여 도개면 도개리 등 일대에 옛날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것을 기려 '신라불교초전지'라는 성지를 만들어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지 않은가.그렇다면 금오산 '와불'의 모습이 '거인'의 모습보다는 낙동강 건너 신라불교초전지에 더욱 어울리는 짝인 셈이다. 와불과 초전지는 역사와 문화가 맞물린 한 쌍의 관광 자원이 되기에 더없이 훌륭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마침 지난달 30일 진보와 보수 진영을 두루 갖춘 구미시의회 의원들이 초전지를 찾아 구미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참에 종교와 정당, 이념을 떠나 금오산 명물에 걸맞은 이름을 불러주면 어떨지.

2018-11-05 05:0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김용의 무협세계

1986년 한국 출판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책이 등장했다. 고려원에서 내놓은 김용(金庸·진융)의 '영웅문'이다. 만화방·대여소에서 저급한 무협 소설을 빌려 읽던 독자들은 이 소설에 열광했다. 3부작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18권으로 묶어 출간했는데, 800만 부 이상 팔렸다. '영웅문'은 한국 출판사에서 갖다 붙인 이름이고, 원래는 '사조삼부곡'(射雕三部曲)으로 불린다.재미있는 얘기지만, 한국의 무협 작가들은 김용보다는 대만 작가 와룡생(臥龍生)에게서 더 큰 영향을 받았다. 무협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정파(正派)와 사파(邪派)' '9파1방' 구도를 만든 것은 와룡생이다.아직도 인터넷 무협 관련 게시판에는 '김용 작품 중 가장 무공이 센 주인공은 누구인가' 하는 논쟁이 벌어진다. '사조영웅전'에 나오는 화산논검(華山論劍)이 시발점이다. 당대 초고수 5명이 화산에서 7일 밤낮을 겨룬 끝에 천하오절(天下五絶)을 정했다. '사조삼부곡'의 각 주인공인 곽정, 양과, 장무기가 천하오절과 비교되고, '천룡팔부'의 소봉, '소호강호'의 동방불패 등도 유력 후보다.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수는 '천룡팔부'에 잠깐 등장하는 이름 없는 스님(無明僧)이다. 무명승은 초고수들을 모두 일격에 때려 눕혔으니 천하제일이라 할 만했다.김용에 대한 찬사는 수없이 많다. '칼과 검의 그림자가 번득이는 소용돌이에서도 인간성의 가장 순결한 애정을 표현하는 데 능하고, 웃고 떠들고 화내고 욕하는 것이 모두 문장이 됐다.' '뛰어난 역사 인식으로 칭기즈칸, 주원장 같은 역사적 인물을 무협 소설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이 독보적이었다.'지난달 30일 김용이 사망함에 따라 양우생, 고룡과 함께 무협 소설의 세 거두가 모두 사라졌다. 강호제현(江湖諸賢) 모두 아쉬워할 만한 대목이다. 소설가보다는 언론인으로 불리길 원했던 김용은 생전에 대협(大俠)으로 통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범했기 때문인데, 유명인이라면 배워둘 일이다.

2018-11-03 05:0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두 분, 잘하셨습니다

'경상도에서는 모든 혼례의 용구(用具)를 남보다 사치하기를 힘써서 가산을 허비하고 제도를 어기는 자가 있습니다.'(조선왕조실록, 성종 10년 5월 12일)'인륜의 큰일'로 보는 결혼에는 부담이 따랐다. 가진 부모나 그렇지 않은 부모 역시 한번(?)뿐인 결혼은 예사롭지 않았다. 자연히 사치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조정에서 임금(성종)과 신하(우승지 이경동)가 백성의 사치스러운 결혼 풍토를 두고 이런 걱정까지 했을까.신하가 '민가에서 다투어 사치와 화려함을 숭상해 이로 인해 혼기를 놓치는 사람도 또한 많다'고 거듭 지적하자, 성종은 '법을 맡은 사람이 스스로 법도를 따르면 법을 두려워하는 관리도 점차 사치스럽고 화려한 것을 고쳐서, 세월이 쌓이고 오래되면 저절로 규정을 따르게 될 것'이라 훈수했다.임금의 대책은 그럴 만했다.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가 검소한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사치를 한 탓에 백성들조차 그러했으니 관리들이 모범을 보이면 될 것이라는 왕의 해석을 보면 알 만하다. 말하자면 법으로 막는다고 법을 만들고 맡은 관리는 앞서지 않는데 백성들의 결혼 사치가 없어질 것인가라는 왕의 지적은 알맞다.혼례의 사치는 사라지지 않았다. 박정희 정부가 1969년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를 만들었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던 경험도 조선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최고의 결혼식'을 치르고자 하는 부모들의 입장은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터이다.이런 결혼 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일상화되고 있다. 2012년 여성가족부의 '작은 결혼식' 분위기 조성도 한몫이다. 2015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작은 결혼식'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서 '실속 있고, 소규모의, 당사자 주도' 결혼식에 80% 이상 동조한 까닭일 것이다.최근 두 사례도 이런 배경의 결과이리라. 한 퇴직 관리는 경북의 고향집 마당에서 두 집안 사람 50명씩 초청, 결혼식을 올렸다. 대구의 큰 기관의 책임자 역시 두 집안의 100명 이내 하객만 모셨다. 지금 두 사람은 '미처 알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다닌다. 두 분, 잘하셨습니다.

2018-11-02 05:0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도지사의 눈물

울음이 흔한 세상이다. 남자는 일생에 세 번 운다는 말이 있지만, 걸핏하면 우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특히 정치인의 눈물은 진실인지, 위선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언론인 조갑제의 글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한 장관의 장례식에 참석해 농담을 하고 있었다. 비디오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자, 클린턴은 갑자기 심각한 표정이 되더니 눈에는 금세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조갑제는 클린턴을 두고 "눈물을 흘려야 할 경우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라고 평했지만, 한국인이라면 '연예인 같은 정치인'이라고 눈살을 찌푸리기 십상이다.클린턴 전 대통령은 뻑 하면 눈물을 흘려 진정성이 의심되는 대표적 정치인이다. 1998년 르윈스키 스캔들 때 TV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성관계도 없었고, 거짓말을 권유한 적도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나중에 특검 수사를 통해 밝혀지지만, '눈물 호소'는 새빨간 거짓이었다. 클린턴의 행동은 '악어의 눈물'(crocodile tears·거짓 눈물)의 전형이다.고 노무현 대통령은 눈물로 성공한 경우다. 2002년 대선 TV 광고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눈물을 흘려 '50만 표 득표' 효과를 얻었고, 대선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1월 '고 신영복 선생 1주기 추모식'에서 홀로 눈물을 흘렸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당명을 신영복의 '더불어 숲'에서 따올 정도로 존경했다고 한다.이철우 경북지사가 지난달 26일 구미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39주기 추모식'에서 추도사 도중 세 차례나 눈물을 훔쳤다. 이 지사는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참석자들은 "이 지사의 진정성을 봤다" "박 전 대통령을 떠올리며 나라 걱정을 했다"고 호평했다. 일부에서는 "부모가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 "기독교 신자의 눈물이라니 어울리지 않다"고 비꼬았다.정치인의 눈물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지지자에게는 진심으로 읽혀지고, 반대자에게는 가식으로 보여진다. 정치인의 눈물을 보면 '눈물보다 빨리 마르는 것은 없다'는 서양 속담이 생각나곤 한다.

2018-11-01 05:0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새마을의 수난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시골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 귀에 익도록 들은 '새마을 노래'이다. 새마을 노래는 박진감 있는 장단이나 사실적인 노랫말처럼 우리 농촌의 많은 변화를 이루어냈다. 주거 환경과 주민 위생 개선은 물론 농로 개설과 농업 기계화 등 많은 인프라가 구축된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반세기에 이르는 세월 동안 풍파와 곡절 또한 적잖았다. 5공 비리 청문회에서 밝혀진 문제점으로 한동안 위축되었으나,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거듭났다. 새마을운동의 국제화도 그에 따른 한 양상이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새마을운동을 배우고 있다. 중국에서도 이를 모방한 '신농촌운동'을 추진하기도 했다.그 유산으로 최고급 열차의 이름이 새마을호가 되었고, 새마을금고 또한 그렇게 생겼을 것이다. 행정 조직과 대학 학과에도 새마을과가 신설되었다. 그런데 구미시가 '새마을과'를 폐지하는 개정 조례안 입법을 예고하고, 내년부터 모든 행사에 '새마을' 명칭을 빼기로 했다. 안전행정국 산하 '새마을과'를 '시민공동체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새마을운동을 일으킨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에서 '새마을'을 없애버리면 그 역사성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1960, 70년대에는 최고 등급의 열차였던 새마을호도 KTX 고속열차의 등장과 함께 위상을 잃었다. 최근에는 하필이면 새마을금고를 대상으로 한 강도 사건까지 끊이지 않고 있어 새마을이란 단어가 거듭 수난을 겪고 있다. 새마을은 변화와 발전을 수반하는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 지역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꿔 나가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 이름이 무슨 죄인가.새마을운동 또한 경제적 동기와 함께 정치적인 목적도 작용한 게 사실이다. 잘한 것은 계승하고 잘못한 것은 개선하면 되는 것이다. 반세기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새마을운동 관련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생명과 평화와 공경의 문화 및 운동을 지향하는 인류 공영의 가치이기도 하다. 이름을 지우는 게 능사일까.

2018-10-31 05:0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존슨의 능금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능금'은 대구의 명물로 통했다. 도심 곳곳에 '능금의 고장, 대구'라는 표지판이 크게 눈에 띄었다. 작곡가 길옥윤이 1971년 발표한 '대구찬가' 첫머리에도 '능금꽃 향기로운~' 노랫말이 나오듯 대구 하면 능금을 먼저 떠올렸다.엄밀히 말하면 능금과 사과는 다르다. 능금은 야생 사과나무의 열매 즉 재래종 사과다. 열매가 작고 맛도 시고 떫다. 12세기 초 고려 의종 때 '계림유사'에 능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보인다. 17세기 신품종의 사과나무가 중국에서 들어왔다는 기록도 있다. 이런 능금과 100여 년 전 대구에 뿌리를 내린 서양 사과는 비록 내력은 다르지만 같은 존재다.대구 사과의 출발은 초대 동산병원장인 우드브리지 존슨이 1899년 미국에서 들여온 72그루의 사과나무다. 남산동 자택 정원에 처음 사과나무를 심었다. 이후 금호강과 가까운 칠성동 침산동 동촌 반야월 등지로 퍼졌다. 특히 1910년대부터 팔공산 자락 금호강 북쪽의 '동촌'(東村)에 과수원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불로천을 끼고 평광동과 도동, 불로동 등에 사과 벨트가 만들어졌다.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홍옥' 사과나무를 볼 수 있는 곳도 평광동이다. 1935년에 100여 그루를 심었는데 한 그루가 살아남아 80년이 넘도록 대구 사과의 맛을 전한다. 1960년대 대구는 전국 사과 재배 면적의 83%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구 사과의 명맥만 겨우 잇는 처지다.기후 변화가 대구 사과의 퇴조를 불렀다. 1980년대 이후 인구 증가와 도시 팽창 때문에 도심 외곽의 과수원이 하나둘 사라진 것도 대구 사과 쇠락의 원인이다. 현재 국내 사과 생산량은 15개 품종에 45만t이다. 반면 대구 사과는 224농가, 3천여t이 전부다. 이마저도 2030년쯤 대구가 재배 가능지에서 제외된다는 관측이다.다행한 것은 사과 재배 기술의 발전이다. 주 재배지가 경북과 강원, 충북 등지로 옮겨갔지만 이 땅에서 사과가 사라지지 않는 한 대구 사과의 명맥은 계속된다. 이 모두가 대구 사과의 흔적이어서다. 시민의 애정과 관심이 존재하는 한 대구는 사과의 본령이자 모태다.

2018-10-30 05:0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대통령의 시선

한국 경제가 추락하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연일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며 문재인 대통령 취임 때보다 더 떨어졌다. 기업 투자는 얼어붙었고 고용지표는 최악이다. 미국'중국 경제는 호황이라도 누린 뒤 정체하고 있지만 우리 경제는 침체를 헤매다 더 나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더 걱정되는 것은 위기를 돌파해야 할 정부의 철학'능력 부재다. 정부는 땜질식 처방만 남발하고 있다. 며칠 전 내놓은 고용대책이 대표적이다. 국민 세금으로 1~2개월짜리 단기 일자리만 쏟아냈다. 1천 명에 이르는 국립대 에너지 절약 도우미는 빈 강의실에 전등을 소등하는 게 일이다. 정부가 단기 일자리로 고용지표를 끌어올리려는 꼼수를 부린다는 비판이 쏟아진다.현장 목소리를 안 듣는 독불장군식 행태도 개선 기미가 없다. 최저임금 인상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이 총궐기 국민대회까지 열었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자영업자는 전국에 560만 명이나 되지만 동질성이 떨어져 조직화하기 어렵다. 조직화한 노동자나 교사처럼 자영업자들이 하나로 뭉쳐 정치적 입장을 표출한다면 정부가 이렇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경제가 어려워지는데도 문 대통령과 청와대 관심은 남북문제에 쏠려 있다. "경제 현안에 대한 대통령 보고 일정을 잡기가 힘들다. 대통령의 외교'안보 관련 보고 일정이 워낙 빡빡하게 잡혀 있어 빈틈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청와대 한 경제 참모 발언이 한 신문에 보도됐다. 대통령이 경제 현안에 쓰는 시간이 적다면 분명히 문제다.대통령이 어디를 바라보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국정의 힘이 거기로 결집해 해결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시선은 이제 경제로 향해야 할 때다. 그래야 경제 위기 돌파 첫 단추를 끼울 수 있다. 대통령이 경제부총리와 장관, 청와대 참모를 모아 매일 경제 현안을 점검하고 대책을 내놔야 한다. 남북 화해 못지않게 경제에 문 대통령이 올인해야 할 상황이다.

2018-10-27 05:0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아! 박정희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 출입 기자들에게 자주 한 말이다. 야당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같은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쏟아진 비난을 자신이 모두 감수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진보학자 누군가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고 했지만 박 대통령의 이 말은 국가 지도자가 지녀야 할 신념과 의지를 표출해 두고두고 회자할 만하다.영국 신문 더 타임스는 1951년 사설에서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기를 기대하느니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그런 모욕을 받던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모범 국가가 됐다.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경제 발전도 이뤄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렇게 단기간에 성취한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불가분의 관계다. 경제 발전이 민주주의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게 해결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요원하다는 사실을 많은 나라가 증명하고 있다.산업화=보수, 민주화=진보라는 등식이 어느 정도는 성립한다. 산업화를 일군 박 대통령은 보수의 근간이다.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이 박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신을 흠모하고 있다. 박정희란 존재는 풍비박산이 난 보수를 다시 일으키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 50년 집권론을 펴는 진보 진영에서는 박 대통령에 타격을 가해 보수를 궤멸시키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박 대통령 고향인 구미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이 예사롭지 않다. 민주당 소속 장세용 구미시장이 새마을과를 없애고 내년부터 행사에 새마을 명칭을 빼기로 했다. 박 대통령 추모식과 탄신제에 시장이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박 대통령 생가 옆에 건축 중인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 명칭에서도 박정희 이름을 뺀다고 한다.오늘은 박 대통령이 서거한 날이다. 고향이자 정성을 다해 키운 구미에서 자신의 흔적이 지워지는 것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박 대통령은 어떤 심경일까. 김재규가 쏜 총탄을 맞고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되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괜찮다"라고.

2018-10-26 05:0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2·28 뒷이야기

1960년 2월 27일 밤 경북고 이대우 학생의 집에는 10여 명의 학생들이 자정을 넘기도록 구수회의(鳩首會議)를 거듭했다. 하청일이 가져온 선언문 초안을 정서하면서 방안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마지막 남은 학생들은 비장한 결의를 주고받았다. "살아남으면 고향에 가자" "천당에서 만나자".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여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주도했던 건국 이후 최초의 민주화 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직접적인 발단은 2월 28일로 예정된 야당 부통령 후보의 수성천변 유세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대구의 8개 공립 고등학교에 일요일 등교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학생 대표들이 학교별 학급별 긴급회의를 열고 부당성을 지적하며 일요 등교 철회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격앙된 학생들에게 '무언가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교실마다 토론이 벌어지고 울분을 토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학생회 간부들에게 '결정을 하라'는 촉구가 거셌다.경북고·대구고·경북대사대부고 학생 대표가 모인 2·28 데모의 산실은 그렇게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관제 시위에 동원된 경험이 전부였을 뿐, 거리로 뛰쳐나가 데모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많은 학생들의 안위가 걸린 문제였고 교사들의 거취도 마음에 걸렸다. 당시 고등학생이면 지식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책임감이 지금과는 달랐다고 하나, 그래도 17, 18세 청소년들이었다.상대는 기세등등한 자유당 정권이었다. 얼마나 두려운 일이었을까. 그러나 학원을 정치 도구화 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다. 24일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와 매일신문이 주최한 민주화 좌담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학생 간부 몇몇이 선동을 하거나 유도를 해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저마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활화산처럼 분출한 것이라고 했다.시위 준비를 끝내고 친구의 방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28일 새벽을 맞이했던 대구의 까까머리 소년들. 그 어깨 위에 드리워진 역사의 무게감이 어떠했을까. 그 공포를 이기고 일어선 용기와 희생정신이 2·28 민주운동을 일으키며 4·19혁명의 횃불을 밝혔다.

2018-10-25 05:0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INF

1987년 11월 미국과 소련이 체결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termediate Range Nuclear Forces Treaty·INF)은 냉전시대 군비경쟁의 종식을 이끌어낸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사정거리 500~5천㎞의 중단거리 핵미사일과 발사대 및 보조 장비를 모두 폐기하기로 함으로써 냉전이 열전(熱戰)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대폭 낮췄기 때문이다.이 조약 체결의 원인 제공자는 소련이었다. 소련은 1975~1976년 동독과 체코 등에 사정거리 5천㎞의 신형 핵미사일 SS-20을 배치했다. 이로써 서유럽 전체가 소련의 핵 공격 사정권 내에 들게 됐다. 이는 1972년 5월 미국과 체결한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의 빈틈을 이용해 서방 진영에 한 방 먹인 것이었다. SALT는 중거리 핵미사일에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이에 대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대응은 협상으로 4년 안에 SS-20의 철수를 이끌어내되 안되면 동일한 규모와 수준의 핵미사일을 배치한다는, 이른바 '이중 결의'(Double Track Decision)였다. 이를 주도한 이가 중도좌파인 서독 사민당 소속 헬무트 슈미트 총리였다.그러나 협상은 성과가 없었다. 이에 따라 슈미트에 이어 총리가 된 기민당의 헬무트 콜은 슈미트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해 1983년 11월 최신예 미제 중거리 미사일 퍼싱-Ⅱ의 서독 배치를 결정했다. 이는 소련에 재앙이었다. 퍼싱-Ⅱ는 발사 7분 만에 모스크바에 도달하는데 당시 소련에는 이를 사전에 탐지할 경보체계도, 요격미사일도 없었다. 결국 소련은 협상 테이블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INF이다.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INF 탈퇴를 선언했다. 러시아가 INF를 위반해 유럽 전역을 위협하는 새로운 순항미사일을 배치하고, 중국이 조약체결국이 아니라는 점을 이용해 마음대로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의 선언이 실행에 옮겨지면 미국 러시아 중국의 군비경쟁 가속화는 물론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할 핑계를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의 INF 탈퇴가 북핵 문제 해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다.

2018-10-23 05:0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교황, 동토(凍土) 갈까

"신앙의 뿌리가 조선에 깊이 내린다면, 조선의 지정학적 위치로 거기서부터 복음의 빛이 북쪽 몽골과 조선 인근 여러 섬으로 전파될 것이다."로마 교황청의 교구에서 조선은 중국에 속할 만했고, 그래서 1831년 9월 9일 독립된 조선대목구 설치 때까지 북경교구 관할이었다. 이후 한국은 중국 만주와 요동, 일본까지 천주교 전파를 위해 오키나와 등 류큐(琉球) 열도마저 관할했다. 한국은 마치 복음 전파의 중심 같았다.이후 1911년 영호남과 제주도 관할 대구대목구가 생겨 한국은 서울대목구와 함께 2개였다. 서울대목구는 1920년 다시 원산대목구로 분리됐고, 1922년 원산대목구는 함경남북도와 '우리 땅'이나 마찬가지였던 중국 간도까지 맡았다. 원산대목구 면적이 20만5천㎢로 오늘날 남북한(22만㎢)에 버금간 까닭이다.이런 천주교 세월을 살피면 초대 조선대목구장 겸 류큐 열도 대목구장인 브뤼기에르 주교의 말처럼 '조선에 뿌리 깊이 내린 신앙'으로 '복음의 빛'이 '북쪽'의 '간도'까지 전파는 성공이었다. 불모지 한국에다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 미개척지 간도조차 신자로 넘쳤으니 말이다.물론 한국 천주교는 일제강점기와 북한 공산주의 정권 통치 때는 암흑기였다. 실제 1946년 이후 북한 천주교는 소멸이란 분석이다. 비록 1988년 6월 조선천주교인협회(1999년부터 조선카톨릭교협회) 결성 소식과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교황 평양 초청 이야기가 들렸지만 여전히 종교 동토(凍土)이다.이런 종교 동토인 북한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교황 초청 의사를 전달한 데 대한 답변을 통해서다.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좋겠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이는 세계인들에게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하다.중국 간도까지 맡았던 한국 천주교 역사를 되돌아보면 교황의 북한 방문은 새삼스럽지 않을 수 없다. 굳이 정치적인 함의는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남은 날들이 궁금하다.

2018-10-20 05:0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기차역

'삶이 역이라면 좋겠다/ 사방팔방으로 가도 좋으니까/ 마음 헛짚어/ 역마살이 끼어/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어도/ 역은 항상 역으로 거기 그 자리/.../ 상처받은 가난한 마음의 행로여/ 내 마음의 행군이여/ 이 저녁 역으로 가는 길에/ 발자국을 남기고/ 역마살을 남기고.' 대구 출신 박해수 시인은 생전에 전국의 여러 기차역이 지닌 서정을 시(詩)로 남겼다. 시인에게 기차역은 그립고 간절한 날들의 출발점이자 마침표이기도 했다. 어지럽게 흩어진 철길이 저만치서 한길로 만나듯, 지척대는 삶의 끈들을 간곡하게 이어가는 여정이었다. 기차역은 지나온 우리 삶의 흔적이고 잊혀 가는 아련한 고향이기도 하다. 숱한 사연을 지닌 뭇사람들의 만남과 이별의 장소이면서, 일본 영화 '철도원'의 장면처럼 역무원들의 애환이 깃든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옛 기차역에는 그렇게 쉼표가 있었고 사람 냄새가 스며 있었다. 그래서 '죽도록 그리우면 기차를 타라'던 박해수 시인도,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던 정호승 시인도, '밤에 전라선을 타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던 안도현 시인도 속절없이 기차역을 서성거렸을 것이다.산업화시대의 숨 가쁜 호흡 속에 기차역은 고향을 떠나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의 동경과 상실을 함께 지켜보았다. 이제 첨단 지식정보화시대를 맞아 기차역은 속도와 효율만 숭배하는 이기(利己)의 첨병이 되었다. 충북 청주에 있는 KTX 오송역이 그 욕망에 휩쓸렸고, 구미김천역도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초 역사 명칭을 두고 마찰을 빚은 지 15년 만에 또 이웃 간에 싸움이 붙은 꼴이다.구미는 '국가산업단지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KTX 구미역 정차가 필요하다'는 주장이고, 김천은 '혁신도시의 입장은 물론 고속철도의 목적과 운영의 효율성을 도외시한 일방적인 행위'라며 반박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경북 유일의 집권 여당 출신 시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에다 야당 의원들의 지역이기주의가 맞물린 작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애꿎은 기차역이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휘둘리거나 막대한 예산을 또 낭비하는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18-10-19 05:0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DNA 여행

유럽 각국에서 무슬림 등 반이민 정서가 고조되자 몇 해 전 덴마크의 한 여행사가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렛츠 오픈 아워 월드'(Lets Open Our World)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외모를 가진 피실험자 67명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실험이다.DNA 검사를 통한 자기 정체성 확인이 프로젝트 취지였다. 혈통에 대한 확신, 순혈주의의 근거가 과연 타당한지 DNA로 확인하자는 것이다. 유튜브에 'DNA 여행'이라는 타이틀로 공개됐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무슬림 피가 흐르는 유대인 청년, 서아시아인 유전자를 물려받은 백인 여성, 영국·독일·아일랜드 등 다양한 유전자 조합을 가진 남성 등 67명 모두 혼혈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요즘 미국 정가에서는 인디언 혈통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의 입씨름이 한창이다. 차기 민주당 대선 후보이자 '트럼프 저격수'로 불리는 워런 의원이 그저께 '원주민 혈통 주장은 거짓'이라며 자신을 공격해온 트럼프에 정면 반박하는 DNA 분석 보고서를 공개했는데 원주민 선조의 유전자 증거가 드러난 것이다.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출신인 워런은 자신이 체로키와 델라웨어 부족의 후손이라고 말해왔다.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후보가 워런을 '포카혼타스'(17세기 원주민 추장의 딸)라며 조롱한 게 논쟁의 시작이다. 트럼프는 워런의 하버드대 입학과 교수 채용도 '소수민족 특혜'의 결과라며 걸고넘어졌다.과거 북미에는 말이 다른 300개가 넘는 원주민 부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원주민은 미국 인구 전체의 1%에도 못 미친다. 백인들이 원주민의 씨를 말린 탓이다. 미국 전체 땅의 3분의 1이 백인이 불법 취득한 것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는데 그들 대다수가 미국 전역 310곳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산다. 와이오밍(대평원), 텍사스·다코타(친구), 네브라스카(잔잔한 물결), 오클라호마(붉은 사람), 켄터키(미래의 땅), 미시시피(위대한 강) 등 지명에 희미한 흔적으로 남고 아무도 그들의 권리를 말하지 않는다. 워런 혈통을 둘러싼 트럼프의 그릇된 인식도 이들의 처지를 잘 말해준다.

2018-10-18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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