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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문 정권의 몰염치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계획경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1991년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붕괴는 이를 입증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이에크는 이를 인간 지식의 한계 문제로 설명한다. 그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완벽히 알거나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미국 투자분석가 나심 탈레브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의미로 '블랙 스완'이라고 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부실화되고 이것이 대형 투자은행의 도산과 세계적 금융 공황으로 '발전'할 줄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지식의 한계가 인간의 숙명이라면 '계획'은 무용할 수밖에 없다. 계획이 작동하려면 맞는 예측을 해야 하고 그런 예측을 하려면 인간 사회에 산재한 모든 지식을 가져야 하는데 이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획경제는 이런 사실의 부인이다. 하이에크는 이를 '지식의 오만'이라고 했다.그러면 진정한 지식의 습득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경제 활동 참여자들이 경쟁하면서 가격이나 시장 상황에 대한 지식을 교정하거나 강화하는 '발견적 절차' 또는 '자생적 질서'에 의해 이뤄지며, 이는 '시장'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주장이다. 바꿔 말하면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정부는 시장과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 전체보다 절대로 똑똑할 수 없다는 것이다.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 민간의 우한 코로나 대응 '혁신'은 하이에크가 틀리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꼬박 하루 걸리던 검사를 6시간으로 단축시킨 진단 키트의 개발과 대량생산, 접촉 없이 진단하는 드라이브 스루, 동선 공개 등은 모두 민간에서 나왔다.외신은 이런 노력에 찬사를 보내지만,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 일색이다. 한 예로 미국 타임지는 지난 13일 한국이 확산세를 늦추긴 했지만, 초기 대응 실패와 감염 폭발로 정치적 반발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이 정권은 "한국식 방역이 세계 표준" 운운하며 자화자찬에 열을 올린다. 민간의 공을 정권의 공으로 '슬쩍'하는 몰염치다.

2020-03-27 20:37:48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黨의 나라, 房의 사회

우리나라 정당 이름의 내력은 점입가경이다. 시장 골목의 간판보다 재미있다. '자유' '민주' '공화' '통일' '국민' '평화' '민중'이란 용어는 이제 고전이 되었고, '나라' '누리' '우리' '미래'라는 명칭에다 '신' '새' '열린' '더불어' '대안' '비례' 등 온갖 수식어까지 난무한다. 속된 말로 장사를 제대로 못하니 애꿎은 간판만 자꾸 바꿔 다는 것이다. 4월 총선을 앞둔 요즈음은 더 가관이다.한마디로 자고 나면 창당이요 너도나도 정당이다. 선관위에 등록된 정당 수가 50개에 이르고, 창당준비위원회도 30개가 넘는다. '가자환경당' '국가혁명배당금당' '기본소득당' '사이버모바일국민정책당' '자유의새벽당' '결혼미래당' '조국수호당' '억울한당'…. 범여권이 우격다짐으로 통과시킨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해괴한 선거법이 낳은 귀결이다. 오죽하면 민주당원들마저 일부 정당들을 일러 '듣보잡 정당' '비례잡탕당'이라 흥분했겠는가.당(黨)이 이 모양이니 방(房)도 덩달았다. 긴 세월 온돌방 문화를 보듬고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방'이란 사회적인 교유의 장이면서도 무언가 내밀한 뉘앙스를 지닌다.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고려시대 무신정권 시절 득세한 '중방' '도방' '정방' 등은 독재 권력의 음험한 심장부였다. 우리 현대 사회의 음양을 가장 적나라하게 대변해온 가요방과 모텔방도 그랬다. 정당이 병들수록 방들도 어두워진다.최근에 가장 악명을 떨친 방은 '박사방'이다. 유명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일명 '박사' 조주빈이 운영했던 방이다. 그는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며 성폭력 예방 대책에 대한 기사를 썼다. 졸업 후에는 봉사활동까지 하며 선량한 청년 행세를 했다. 그 뻔뻔하고 가증스러운 행각이 네티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여기서 유사한 기시감(데자뷰)을 느끼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정권의 실세와 무리 중에서도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당이 일그러지면 국가가 혼란의 늪에 빠지고 사회 저변에 음습한 방들이 횡행하기 마련이다.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정치가이자 충절시인이었던 굴원(屈原)에게 한 어부가 건넨 충고처럼 '창랑에 물이 흐리니 발이나 씻으며'(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살아야 하는 세월인가.

2020-03-27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북인 흔든 세 남인

4월 총선을 앞두고 대구경북이 들썩였고 여진이 계속이다. 바로 이웃 동네 경남 출신의 김형오(고성), 공병호(통영), 홍준표(창녕)라는 세 남인(南人)의 여파다. 김형오는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으로, 공병호는 통합당 위성 정당인 미래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으로, 홍준표는 대구 수성을 출마 후보자로서 그랬다.김과 공, 두 위원장은 총선 출마 후보를 결정 짓는 책임자로서 대구경북 민심을 무시한 논란 등으로 결국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이들은 출마자 불만은 물론, 지역 민심을 분노케 한 책임도 한몫해 불명예 퇴진했다. 또 대구경북을 득표 거수기쯤 여긴 오만함으로 유권자에 심한 자괴감을 준 점은 오십보백보이다.정치인 홍준표는 김 위원장에 의해 고향인 경남에서 출마가 막히자 방향을 틀어 자신이 졸업한 중(영남중)·고교(영남고)를 배경으로 대구 진출을 선언했다. 그것도 대구 수성을에서 무소속 선거전에 돌입, 미래통합당 이인선 후보나 대구 유권자 심기를 흔들고 있다. 특히 두 위원장과 달리 그의 이야기는 진행형이다.이번처럼 특정의 이웃 경남 사람으로 대구경북이 요동을 친 적은 드물다. 경상도가 조선의 8도(道)로서 가장 큰 고을이 된 이래, 때로 경상 좌도(左道)와 우도(右道)로, 또는 남도(南道)와 북도(北道)로, 이제 경상남북도에 대구, 울산, 부산으로 나뉜 채 제 울타리에서 각자 영역을 경계로 삶을 꾸렸으니 말이다.물론 담장을 넘어 하나로 뭉친 적은 여러 차례였다. 임란 같은 국난과 조선 말기 암흑기 시절, 일본에 맞서 의병·독립 전쟁을 벌일 때 의열단 등 경상도 남북은 밀착 상대였고 지기(知己)였다. 임시정부도 경상도 대표를 뽑았고, 굳이 남과 북을 나눌 필요조차 없었다. 두 지역은 서로 통하는 연고였다. 그 삶의 출발 뿌리가 하나였던 결과였다.이런 좋은 인연의 땅이지만 위천공단, 영남권 신공항 건설 등으로 시·도 지자체 사이에 어긋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선거를 두고 이번 두 인물(위원장)처럼 이웃 동네에 자괴감과 수모를 주는 일은 없었다. 변하는 세상이라지만 이번 세 남인으로 겪는 대구경북의 경험은 왠지 착잡하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대구와의 친연성(親緣性)을 외치는 홍 후보를 내치지 않는 대구 사람이 돋보이는 요즘이다.

2020-03-26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깜짝 놀랐제”

김영삼(YS) 대통령이 취임 후 보름도 안 돼 하나회 출신 군부 실세인 육군참모총장·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하나회 숙청의 신호탄이었다. 다음 날 청와대 수석회의를 주재한 YS는 "깜짝 놀랐제"라며 득의양양했다. 이 말이 씨가 됐는지 몰라도 YS 임기 내내 국민이 깜짝 놀랄 일들이 꼬리를 물고 터졌다. 육·해·공에서 또 지하에서 계속 사고가 나 '사고공화국'이란 말까지 생겼다.YS와 부산·경남 동향인 문재인 대통령도 집권 후 국민에게 깜짝 놀랄 일들을 많이 안겨줬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남북 정상 이벤트는 국민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애초 목표한 북한 비핵화는 물 건너가고, 북한의 대남 위협은 수위가 치솟은 것이 국민에겐 더 놀라운 일이다. 일본과의 경제 전쟁, 한·미 동맹 균열 등 대외적으로도 놀랄 일들이 많았다. 조국 사태, 울산시장 선거 공작 의혹과 이를 수사하는 검찰에 대한 정권의 겁박도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탈원전,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한 폐해들도 빼놓을 수 없다.국민을 더 놀라게 한 것은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의 행태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뻔뻔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전·전전 정권과 야당, 심지어 국민에게 책임을 돌리고 얼토당토않은 자화자찬에 엉뚱한 트집을 잡아 되치기를 하는 등 온갖 술수를 부리고 있다. '질투는 나의 힘'에 빗댄다면 '뻔뻔함은 정권의 힘'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코로나 사태와 그에 따른 경제난, 총선 등과 관련한 정권의 언행에 국민은 계속 경악하고 있다. 역대 최악의 전염병 그 자체도 놀라운 일이지만 툭하면 자랑을 늘어놓는 데 국민은 더 놀라고 있다. 유례없는 주가 폭락도 공포스럽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든 제1야당에 험한 말을 퍼부은 더불어민주당이 똑같은 짓을 자행한 데 대해 국민은 경악했다. 범죄 혐의자들에게 공천을 주고 부동산 투기를 한 사람을 비례대표 후보로 내세운 것 또한 놀랄 일이다.YS는 임기 말 IMF 외환위기로 국민에게 놀라움을 넘어 고통을 안겨줬다.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경제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 처지에서는 문 대통령이 놀랄 일을 제발 그만했으면 하는 심정이다. 영화 '친구'에 나온 장동건의 대사처럼. "고마해라, 마이 뭇다 아이가."

2020-03-24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청춘을 돌려다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만은,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하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판소리 단가 '사철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세월의 덧없음과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다. 사철가는 영화 '서편제'에서 소리꾼 유봉이 눈먼 딸 송화를 데리고 가는 장면에 등장하면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계절이 오고 가듯이 사람의 일생 또한 청춘이 저물어 늙기 마련이니 한 번 주어진 삶을 즐거이 보내자는 내용이다. '백발가'(白髮歌) '편시춘'(片時春) 등도 유사한 내용과 짜임새의 단가이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의 애원이란다. 못다한 그 사랑이 태산 같은데, 가는 세월 잡을 수는 없지 않느냐.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냐.'가수 나훈아와 현철이 불러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노래 '청춘을 돌려다오'는 가버린 청춘에 대한 애틋함이 사뭇 절절하다. 월견초(달맞이꽃)란 별명을 가졌던 작사가 서정권이 서른 여덟의 나이로 훌쩍 생을 마감한 것도 그렇고, 대구에서 성장한 가수 신세영이 곡을 붙였다는 것도 노래에 정감을 더한다. 신세영은 6·25 전쟁기 불멸의 히트곡인 '전선야곡'을 불렀던 예인이다. 전선야곡 또한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참혹한 전쟁터로 내몰린 청춘의 사모곡이었다.중등 교과서에도 소개되었던 명수필 '청춘예찬'의 작가 민태원은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청춘의 피는 끓는다'며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라고 썼다. 그런데 그 청춘이란 게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게 문제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가버린 청춘을 노래하며 무상감을 달래는 것이다.미증유의 전염병 대란 속에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신천지예수교회에 대해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가 '청춘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신천지의 거짓 교리에 속아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헌금을 강요당했다'며 '빼앗긴 청춘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이 전대미문의 법적 논란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예사롭지 않다. 종교적 교리와 사회적 법리의 간극 속에 잃어버린 청춘의 회한이 눈물겨울 따름이다.

2020-03-23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정녕 또 종 되려는가

'말에서 개·돼지까지.'조선부터 오늘까지 힘없는 백성은 동물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 지금도 그러함을 역사는 보여준다. 조선에서는 '종' 즉 노비(奴婢)를 사고팔았다. 그 값이 말보다 쌌다. 이런 종이 많을 때는 인구의 반을 넘었으니 조선은 종의 나라였다. 값싸고 쓰임은 많으니 종은 중요 재산 목록으로 대대로 상속됐다.동물보다 못한 대접을 받은 백성이라 암흑기 시절, 두 차례 일본 박람회에 전시돼 일본인 눈요깃감으로 전락한 수모도 겪었다. 한국인이 구경거리로 나오자 일본인들이 나들이로 박람회장에 들렀음을 옛 기록은 전한다. 안에서조차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 백성인지라 나라 밖 일본 민족인들 오죽했을까.또 노비는 임란과 오랑캐 침입의 국난에는 의병 깃발 아래 동원되고 자발적 참여로 목숨을 바쳤다. 물론 난 후 벼슬자리와 공신(功臣) 같은 선물과 영화는 주로 주인 차지였다. 종은 잊혔다. 이런 노비를 경주 최제우는 동학으로 사람답게 대접했고, 동학혁명은 종 제도를 없애는 기틀도 놓았다.이후 1919년 임시정부는 이런 조선과는 다른 나라를 세울 틀을 짜며 종도, 주인도 없는 백성(民)만이 주인 되고 함께 사는 공화(共和) 민주주의 국가를 꿈꿨다. 그런 이상 국가를 세우려고 옛 종과 그 주인이 한마음 한 몸으로 일제에 맞서 피를 흘렸고 마침내 광복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 역사가 올해로 101년이다.무릇 악습은 도지는 법. 가진 자와 관료는 국민을 개·돼지로, 총선 밑 일부 정파는 주인을 섬길 '머슴선발대회'를 열며 되레 군림한다. 특히 대구경북에서 그렇다. 대구경북을 옛 종이나 장기판 졸(卒)처럼 여긴다. 한때 막대기만 꽂아도 그들 후보를 마구 뽑은 짝사랑 탓의 업보이니 자업자득이리라.이제 그런 오만한 머슴선발대회를 꾸린 책임자가 물러났지만 그렇다고 대구경북을 호구로 보며 등골 빼려는 생각마저 바뀔까. 옛 작태를 보면 분명 아니다. 오롯이 애정을 쏟은 정파에게 존중받지 못하는데 다른 무리의 관심과 배려는 언감생심이다. 그런데도 대구경북이여, 4월 총선에서 정녕 또다시 종 노릇을 자초하려는가.

2020-03-20 19:22:45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대통령의 허풍

제국주의 일본은 중일전쟁(1937년)을 3개월, 길어도 6개월 안으로 끝낼 것으로 자신했다. 1931년 만주사변 때 확인한 중국군의 형편 없는 전투력은 그렇게 자신할 만했다. 하지만 중국군이 광활한 영토를 이용한 지구전(持久戰)으로 맞서면서 8년간이나 중국에 묶여버렸다. 이길 전망은 사라졌지만 군부는 국민에게 '이기고 있다'고 허풍을 떨었다.그 대상은 히로히토(裕仁) 일왕도 예외가 아니었다. 개전(開戰)을 3개월 앞두고 히로히토가 스기야마 하지메(杉山元) 육군 참모총장에게 "전쟁을 끝내는 데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3개월"이란 허풍이었다. 이에 히로히토는 "중일전쟁은 1개월이면 정리할 수 있다고 했는데 4년이 된 지금까지 질질 끌고 있다"고 했다. 스기야마가 "중국이 넓어서 그렇다"고 변명하자 히로히토는 "태평양은 더 넓은데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이러니 국민에게 허풍 떠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1941년 진주만 기습 이후 1943년까지 일본군은 태평양 전역(戰域)을 그럭저럭 꾸려갔다. 하지만 점령 중인 필리핀이나 마리아나 제도(諸島) 등에 대한 방위 준비는 전혀 못했다. 이후 미군의 반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은 당연했다.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겼는지 졌는지 애매하게 얼버무리거나 패배를 승리로 둔갑시켰다. 당시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는 특히 심했다. 1944년 6월 절대방위선(絶對防衛線)인 사이판에 대한 미군의 공격을 앞두고 "적이 상륙한다면 그거야 말로 예상한 것이다"라고 했다. 미군을 사이판으로 끌어들여 격멸하겠다는 허풍이었다.문재인 정권의 코로나 대응은 이와 똑같은 허풍의 연속이었다. 그 대열의 맨 앞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 "머지않아 종식된다" "전면 입국 금지의 극단적 선택 없이도 바이러스를 막고 있다"며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는 듯이 말했다.이런 허풍에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타임은 지난 13일 한국과 일본이 "초기의 느린 대처와 확진자 폭발적 증가로 비판받았다"면서 "한국 대통령은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최악의 상황은 끝났다'고 선언했다"고 지적했다. 속된 말로 옮기면 '왜 그리 입방정을 떠느냐'쯤 되겠다. 당사자도 아닌데 기자의 얼굴이 화끈거린다.

2020-03-20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마스크와 문화 충돌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각국의 공중보건 체계의 허실 등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다. 정치·경제 상황과 사회 구조, 시민의식 등 드러난 문제점도 제각각이다. 특히 문화적 배경에 따른 규범과 관념의 차이도 지역별로 크다는 점에서 코로나 사태는 다양한 과제를 노출하고 있다.마스크 논란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논란의 중심은 일반 대중의 마스크 착용 효과를 둘러싼 동서 간 시각차다. 아시아에서 마스크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수단으로 인식해 거의 상식이다. 반면 북미나 유럽은 마스크를 은폐나 특정 부류라는 개념으로 본다. 상대 표정을 보고 소통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마스크 때문에 단절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마스크=환자'란 통념이 서로 충돌한다.급기야 마스크가 합리성과 윤리성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되면서 논란이 더욱 거세다. 마스크에 대한 아시아의 시각은 타인에 대한 배려 등 '집단' 의식에 기초한다. 마스크를 거부하는 서구인의 태도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이기적 행동이라는 비판이다. 반면 서구인은 의료진이 쓸 한정된 자원이 대중에게 쏠리면서 나타나는 부작용 등 윤리성이나 예방적 실효성, 대면의 어려움에 따른 불안감 등에 초점이 맞춰진다.미국 타임지가 최근 게재한 '아시아에서 장려되는 마스크가 미국에서는 왜 무시되는가' 제목의 기사도 마스크 착용에 대한 동서의 시각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기사에 언급됐듯 감염자나 유증상자만 마스크를 쓰는 게 타당하다는 서구인의 주장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부로부터의 바이러스 유입을 우려해 유럽과 북미 각국이 국경을 전면 차단하고 대중 집회를 모두 막는 것을 보면 이는 모순이다. 감염자만 마스크를 쓴다는 논리대로 감염자만 막으면 되는 데도 무차별 적용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마스크 부족이 초래할 의료 현장의 혼란을 막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수술 시 의료진이 환자에게 나쁜 영향을 줄 가능성 때문에 마스크를 쓰거나 반대로 환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쓰는 경우 등 여러 측면을 따져보면 서구인의 마스크 거부감은 비합리적이다. 마스크 문제는 고정된 규범이나 편견의 차원이 아닌 선택과 관점의 문제로 각자 판단에 맡기는 게 옳다.

2020-03-19 06:30:00

김해용 논설실장

[야고부] 가짜뉴스 바이러스

2009년 국내 한 방송사가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팀과 함께 흥미로운 실험을 벌였다. 방청객 100명을 스튜디오로 초대한 뒤 '어느 연예인이 자살했다'는 부정적 소문과 '어느 연예인이 아이를 입양했다'는 긍정적 소문을 슬며시 흘렸다. 실험 결과 나쁜 소문을 들은 방청객은 80%를 넘었지만, 좋은 소문을 들은 이는 10%대에 그쳤다.우리 속담에 '나쁜 일은 천 리 밖에 난다'는 말이 있다. 좋은 소문은 걸어가고 나쁜 소문은 날아간다고 했다. 나쁜 소식일수록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전파된다. 미국 MIT 경영대학원 시난 아랄 미 교수가 가짜 뉴스 전파 속도를 실증 분석한 결과도 곽 교수팀의 실험과 일맥상통했다. 그가 2013년 트위터 450만여 건을 분석해 보니 가짜 뉴스가 퍼져 나가는 속도는 진짜 뉴스보다 6배 빨랐다.사람이 나쁜 소식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은 본능이다. 수렵시대부터 인류는 생존을 위협하는 포식자와 위험 요소를 빨리 파악하게끔 진화해왔다. 불안한 상황일수록 사람들은 나쁜 소문에 더 민감히 반응한다. 곽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봐도 불안감이 높은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4배가량 소문에 귀를 더 기울인 것으로 나타났다.코로나19 사태 이후 지구촌에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들이 범람하고 있다. 가짜 뉴스는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방해하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 미국 TV 쇼의 한 진행자는 은(銀) 성분이 코로나19의 특효약이라고 속여 13만 명에게 제품을 팔았다. 이란에서는 코로나19를 예방한다는 거짓 정보를 믿고 공업용 알코올을 마신 36명이 숨졌다.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에서는 소 분뇨에 몸을 담그고 목욕하는 황당 예방법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사회가 불안할수록 허위 정보에 솔깃해지고 집단의식에 휩쓸리기 십상이다. 국내 한 교회에서는 예배 신도들에게 코로나19 예방 조치라며 분무기로 소금물을 입에 뿌렸다. 거짓 정보를 믿은 무지의 소치였고 결과는 집단 감염으로 이어졌다. 역사 이래 돌림병이 창궐하면 늘 가짜 뉴스가 횡행했다. 바이러스는 육체를 감염시키고 가짜 뉴스는 정신을 마비시킨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가짜 뉴스 바이러스, 두 감염병과 싸우고 있다.

2020-03-18 06:30:00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3차 전세기를 통해 귀국한 교민과 중국인 가족 등을 태운 버스가 지난 12일 오전 임시 생활 시설로 지정된 경기도 이천시 국방어학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야고부] 중국의 코로나 음모론

에이즈 바이러스(HIV)의 기원은 카메룬 사나강 근처에 사는 침팬지이다. 이들 침팬지는 HIV와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었는데 주민들이 침팬지를 사냥해 먹거나 사냥 과정에서 상처를 입어 이 바이러스가 인체에 들어갔으며 이후 돌연변이를 거쳐 HIV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 앨라배마대학 비트라이스 한 교수가 이끄는 국제연구팀이 2006년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내용으로, 현재까지 '정설'로 굳어져 있다.그전까지 HIV의 기원을 놓고 음모론이 난무했다. 그 대열의 선두는 소련으로, 1985년 소련의 한 잡지가 '에이즈를 퍼뜨린 장본인은 미국 워싱턴 근교의 유전공학연구소로, 미군을 생체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는 인도의 한 일간지 보도를 소개한 후 '미국 음모설'이 급속히 퍼져 나갔다.일본 소설가 다나카 요시키(田中芳樹)의 '베트남 전쟁 기원설'도 같은 계통이다. 베트남 전쟁 중 미국이 생물무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HIV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 말고도 흑인과 동성애자를 말살하려고 미국이 만들어냈다거나, 거대 다국적 제약기업이 치료제를 팔아먹으려고 만들어낸 것이라는 설, 실수로 SIV(유인원 면역 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된 침팬지 생체 조직을 이용해 만든 경구 소아마비 백신을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아프리카 콩고 주민 100만 명에게 나누어 줘 에이즈가 시작됐다는 설도 있다.에이즈는 HIV가 일으키는 병이 아니라 아프리카 풍토병으로 당근만 많이 먹어도 치료된다며 치료제 사용을 저지해 국민 33만 명이 추가로 사망하고 아기 3만5천 명이 태내(胎內) 감염되는 비극을 초래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타보 음베키 전 대통령의 절망적 미신도 빠질 수 없다.자오리첸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미군이 신종 코로나 감염증을 우한으로 가져왔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미군이 어떤 경로로 우한 코로나를 옮겼는지 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근거를 못 대면 이 역시 전염병이 돌 때마다 나오는 수많은 음모론의 하나로 그칠 것이다. 현재까지 우한 코로나의 발생지는 중국 그리고 우한이라는 게 세계 과학자의 공통된 견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국내 감염의 주범이 중국인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고 한다.

2020-03-17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정권의 표독·집요함

"이 정권이 들어서서 지금까지 우리 국민에게 확실히 보여준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을 강화하고 사유화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못 할 것이 없다는 표독함과 집요함이다." 전국 377개 대학 전·현직 대학교수 6천여 명이 참여한 '사회 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이 발표한 성명서 일부다.코로나 대재앙에 이르기까지 문재인 정권 출범 후 국민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확실하게 체험했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더 재론하는 것은 입만 아프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정권의 표독함과 집요함이다.지난주에 나온 더불어민주당 관련 뉴스 3건은 정권의 표독함과 집요함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민주당은 요식 행위에 불과한 당원 투표를 거쳐 비례대표용 연합정당 참여를 결정했다. 이해찬 대표는 기획재정부가 재정 부족을 이유로 추가경정예산 대폭 확대를 주저하자 경제부총리 해임을 들먹였다. 조국 사태 당시 소신 발언을 했던 금태섭 의원은 경선에서 떨어진 반면 울산시장 선거 공작 의혹 관련자들은 금배지에 도전하게 됐다. 4월 총선 승리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못 할 것이 없다는 정권의 표독함과 집요함이 표출된 사건들이다.총선을 한 달 앞두고 정권이 더 표독해지고 집요해진 것은 위기의식 탓이다. 마스크 대란으로 국민을 약국·우체국 앞에 줄을 서게 만들고 주가 폭락 등 경제를 망친 정권을 향해 국민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정권 입장에서 보면 총선 승리를 노릴 호재(好材)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국민 사기극' '후안무치' 등 비난을 감수하면서 국회의원 몇 석 더 얻겠다고 비례대표용 연합정당 참여를 결정한 것도 정권이 위기를 절감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복심(腹心)인 양정철 원장이 이끄는 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이 "원내 1당이 돼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밝힐 정도다.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 '문빠'를 총동원해 정권은 총선에서 이기려고 표독·집요해지는데 미래통합당은 공천 헛발질만 하고 있다. 총선 다음 날인 4월 16일 이 나라가 어떤 아침을 맞을지 걱정이다.

2020-03-15 20:08:46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의료붕괴론

'팬데믹'으로 번진 코로나19 사태에서 '신천지' 문제는 우리의 가장 뜨거운 이슈다. 반면 정치적 판단으로 느닷없이 한국·중국에 입국 제한 카드를 꺼낸 일본은 초기 대응 실패와 오는 7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바이러스 감염 확산을 어떻게든 숨기려는 움직임이 가장 큰 논란거리다.아베 정권이 처음부터 부실 대응으로 일관한 것은 일본의 후진적인 방역 능력도 문제이지만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서다. 어차피 치료약도 없고 최소한의 PCR검사로 기존 독감 수준에서 적당히 넘기면 된다는 계산이다. 결국 현실 도피다.이런 논리를 뒷받침하는 것이 '의료붕괴론'이다. 한국과 이탈리아처럼 대규모 검사를 진행하다 의료 자원이 소진돼 의료붕괴 상황에 이르면 곤란하다는 것인데 정작 국제사회의 시각은 자칫 일본처럼 사태를 방치하다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데 초점이 있다.상황이 이런데도 아베 정권은 '의료붕괴=지옥'이라는 표현을 동원해가며 상황 관리에 급급하다. 일선 병원에는 검사를 자제하고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을 지키라는 안내문이 등장할 정도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그제 100만 명분의 진단키트 무상 제공 의사를 밝혔다가 '의료붕괴론'을 굳게 믿는 국민 여론에 2시간 만에 철회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일본 의료계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의료붕괴 주장이 100% 틀린 말은 아니다. 하루 1만 건이 넘는 PCR검사 능력을 가진 한국과 달리 일본은 법적·제도적 장치는 물론 인력과 장비 모든 면에서 준비가 안 된 상태다. 한국처럼 선별진료소 설치 등 긴급방역시스템이 전혀 마련되지 않아 대규모 검사는 애초 불가능하다. 결국 의도적인 조작과 은폐의 문제라기보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그동안 아베 정권과 일본 언론은 "한국의 PCR검사 능력은 뛰어나지만 엉터리"라며 계속 깎아내리는 대신 "일본은 능력이 있어도 하지 않는다"며 '정신 승리'에 빠져 있다. 손정의 회장의 제안을 비판하며 "일본인이 얼마나 총명한 국민인지 다시 깨닫게 됐다"와 같은 댓글이 넘쳐나는 이유다.

2020-03-13 19:09:09

김해용 논설실장

[야고부] 빵과 서커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때아닌 '기본소득'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미증유의 감염병으로 사회, 경제, 복지 등이 거의 멈춰서버린 대구경북 지역을 한정해 기본소득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기본소득제도는 재산·소득 유무, 노동 여부나 의사와 관계 없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정부가 최소 생활비를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역사상 최초의 기본소득제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서로마제국의 '빵과 서커스'(Bread and Circuses)다. 서로마는 시민권자 모두에게 한 달에 30㎏의 밀을 배급하고 검투·전차경주 경기 티켓, 공중목욕탕 입장권 등을 무상 제공했다. 배급받으려는 줄이 하도 길어서 몇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사실, '빵과 서커스'는 휴머니즘의 발로라기보다 선심성 정책에 가까웠다. 서로마 황제는 노예와의 일자리 경쟁에서 밀린 로마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킬까 두려워 이 정책을 썼다. 공짜로 주어지는 밀 덕분에 노동에서 해방된 로마인들은 목욕탕과 콜로세움을 오가며 시간을 죽였다.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국가 방위도 게르만 용병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국가 시스템은 활기를 잃어갔다. 결국 서로마는 200년 후에 멸망하고 만다.밀 30㎏의 당시 가격은 요즘 돈으로 50만원 정도다. 역사상 그 어떤 제국도 이만한 재정적 소요를 장기간 감당해낼 수 없다. 당시 세계 최강국 로마는 식민지 수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빵과 서커스'는 오늘날 기본소득제에 대한 비판론의 논거로 인용된다. 실제로, 전 세계 어디에도 기본소득제를 전격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기본소득제가 일자리 전쟁에서 로봇과 인공지능에 밀리는 21세기 인류를 구원할 묘책이 될지, 나라 재정만 거덜내는 망국의 지름길일지 속단하기 힘들다.다만, 지금 대구경북에 도입하자는 '재난형 기본소득제'는 특수 상황에서 일회성으로 시행하자는 점에서 기본소득과 궤를 달리한다. 대구경북으로서는 사정이 다급한데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재난형 기본소득 논의에 '기본소득'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오히려 소모적 논란만 부추길 공산이 크다. 재난형 기본소득제가 정쟁으로 변질되거나 말 부조로 끝나서는 안 된다.

2020-03-13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국민이 불쌍하다

"지구를 떠나거라" 등의 유행어를 낳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코미디언 김병조 씨가 설화(舌禍)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1987년 6월 여당인 민주정의당 전당대회 사회를 보면서 "민정당은 국민에게 정을 주는 당, 통일민주당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당"이라고 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주최 측에서 준 원고를 그대로 읽은 것이었지만 비난의 화살은 김 씨를 향했다. 한학자로 활동하는 김 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일성지화(一星之火)도 능소만경지신(能燒萬頃之薪)이라, 한 점의 불티도 능히 큰 숲을 태운다"고 했다.국민에게 고통(苦痛)을 주고 싶은 정당이나 정치인이 있을 리 만무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선한 얼굴로 취임사에서 언급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모든 국민이 행복한 나라였을 것이다. 코로나 대재앙 속에서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지금까지 국민에게 행복, 고통 중 무엇을 더 많이 줬나란 명제(命題)를 떠올렸다. 국민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행복'을 누리고 있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당하고 있나.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나름 노력하고 있고 일부 성과를 거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들을 보면 고통을 느끼는 국민이 갈수록 늘었고 그 강도가 세졌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로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인이 먼저 고통의 구렁텅이로 굴러떨어졌다. 탈원전으로 직장·미래를 잃어 고통을 당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조국 사태와 검찰 탄압으로 국민 대다수가 평등, 공정, 정의가 시궁창에 처박히는 현실에 고통을 겪었다.코로나 사태는 국민 고통지수를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신종 플루, 메르스 때도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마스크 하나 구하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하고, 경제 활동 마비로 생사기로에 처한 참담한 현실에 국민 고통은 하늘에 닿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인가"란 자괴감에 국민은 더욱 고통스럽다.국민을 더 극심한 고통으로 밀어 넣는 것은 정권의 뻔뻔함이다. 반성은 하지 않고 우기기·덮어씌우기·자랑하기 일색이다. 국민 고통은 외면한 채 총선 승리와 정권 연장에만 목을 맬 뿐이다. '국민이 불쌍하다'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2020-03-12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누굴 위한 공천(貢薦)인가

"수양대군(세조)은…역적이고…인면수심이다…박팽년 등 육신(六臣)의 가족을 모두 죽였다…박팽년 집의 유모가 유아를 숨겨…그 후손이 대구군 계동에 산다…내가 경상북도 관찰사 재임 때에 박팽년 후손 박해령(朴海齡)을 칠곡군수로 채용…옛 일을 추모 슬퍼하얏다."친일파 박중양의 일기 '술회' 속의 내용이다. 충신의 후손을 챙긴 일은 좋으나 박해령은 마침내 박중양처럼 친일파로 대구에 오점을 남겼다. 대구를 더럽힌 인물이 어디 이들 뿐이랴. 다만 그들은 한국을 '영원히, 완전히' 삼킬 일제의 도구였다.특히 일제는 한국인 재산 증식을 막았고, 교육 기회를 뺏고 말과 글도 앗았다. 대신 친일파, 밀정, 앞잡이를 길렀다. 한국인이 한국인을 견제, 감시, 누르는데 쓸 목적에서다. 결국 한국이 다시 못 일어나게 하는 데는 사람의 싹을 자름이 최고였다.이런 현상은 지금도 여전하다. 미래통합당의 4월 총선 밑 대구경북의 공천 결과도 그렇다. 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영남의 남쪽 사람을 앞세워 영남 북쪽 사람의 싹을 잘라 북쪽 앞날을 막고자 하니 말이다. 그러니 흔히 부정적 뜻의 접두사 '개'자를 붙여도 그럴 만하다.물론 이런 막장 공천 칼춤은 처음이 아니다. 앞선 사례도 있다. 권력자의 친위대, 박수부대, 거수용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내리꽂아 '작대기 선거' 소리도 나온 까닭이다. 특정 정파에 몰표였으니 경쟁력 갖춘 지도자도, 미래도 없었고 대구경북은 늘 주머니 속 공깃돌 신세였다.그런 속에 혜택을 누린 인물이 한둘인가. 그러나 그들 중 대구경북이 온갖 욕을 다 먹어도 "내 고향은 그런 곳이 아니다"며 온몸으로 나선 이 있었던가. 대구경북이 초토화되는 코로나19에도 공관위 주변만 맴돌았지 전국을 돌며 "밉더라도 내 고향을 도와달라"고 누가 그랬던가.이번 짓거리에 '공정 경쟁'을 외치며 이 정부와는 달라야 한다고 결기를 보인 적이 있는가. 그저 표정 관리이고, 운명을 남의 손아귀에 떠밀었으니 주는 대로 먹을 만하다. 마침 칼춤을 춘 위원장도 경상도 말로 '구캐'(진흙) 같은 데서 논 탓에 대구경북의 인물 생리를 잘 아니 말랑하게 볼 수밖에. 당 대표에게 조공처럼 바치는 공천(貢薦) 작태에도 몰표면 4년 뒤 공천 모습은 이미 본 셈이다.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가엾다.

2020-03-11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대구 품격의 딜레마

전염병 공포가 뒤덮고 있는 대구는 황량하지만 혼란스럽지 않다. 아비규환을 예상하며 찾아온 외신 기자의 눈에 비친 대구는 절제된 모습이었다. 지레 겁을 먹고 들른 외지인의 시야에 들어온 대구는 동면하듯 조용히 숨 쉬는 도시였다. 눈에 띄는 일탈도 없고 타인에 대한 민폐도 없다. 일상이 정지된 듯, 휴업 상태인 듯하지만 모든 게 평소의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줄서기는 있어도 사재기는 없었다. 이기적인 불평과 불만보다는 이웃에 대한 배려와 위로가 많다. 전염병 대란 속에서도 의연한 대구를 들여다보고 바깥 사람들은 '대구의 품격'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구 사람들은 그런 평가에 관심도 없다. 그냥 하루하루 은인자중하며 살아갈 뿐이다. 옛 선비들은 경상도인의 이런 인품과 기개를 두고 태산교악(泰山喬嶽)이라 표현하기도 했다.대구는 일제의 경제 침탈에 맞서 국채보상운동의 첫 횃불을 들어올린 곳이다. 반세기에 걸친 항일투쟁에서 가장 격정적으로 저항하고 가장 오랫동안 항거하며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곳이 대구경북이다. 1950년대 고립무원의 분지에서 낙동강 전선을 온몸으로 사수하며, 전쟁이 헤집어 놓은 폐허의 언저리에서도 수많은 피란민들을 껴안았다. 전란의 여파와 가난의 질곡 속에서도 낭만과 인정을 저버리지 않았다. 2·28민주운동의 산실이요, 한국 경제 성장의 전진기지였다.그런 대구가 지금 홍역을 앓고 있다. 미증유의 전염병에 쓰러지고 악랄한 중상모략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 코로나' '대구 봉쇄' '대구 신천지' '대구 사태' '투표 업보' '미통당 손절' 등등 방역 실패보다 더 쓰라린 염장 지르기가 횡행하고 있다. 전염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대구경북 사람들에게 폄하와 왜곡, 비하와 모욕의 망언과 망발을 서슴지 않으며 상처 난 가슴을 다시 뒤집는 그들은 누구인가.울분을 드러낼 수도 없다. 속울음만 삼킬 수도 없다. 품격이란 단어에 갇혀 있자니 속에 천불이 난다. 품격이 흩트러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온갖 마타도어가 더 난무할 것이다. 총선을 앞둔 정치적인 선택마저 딜레마이다. 오만하고 무능한 정권이 초래한 전염병 대란과 정신적 환란을 스스로 위무하고 채찍질하며 유장하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

2020-03-10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영화 '코로나'

봉준호 감독에게는 유감이 없다는 것을 밝히면서 그의 영화들 제목을 따와 이 나라가 처한 상황을 요약하면 이렇게 되지 싶다. '기생충'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국민, '괴물'이 된 문재인 정권을 보며 '탄핵(살인)의 추억'을 떠올리다.외환 위기를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을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처럼 코로나 대재앙 역시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질지 모를 일이다. 전염병을 다룬 영화로 '컨테이젼' '감기'가 있지만 코로나 사태 와중에 영화보다 더 기가 막히고 참담한 일들이 벌어진 탓에 후일 영화 '코로나'가 개봉될 개연성이 높다.영화 '코로나'가 만들어지면 두 신(scene)은 꼭 들어갈 게 틀림없다. 하나는 대통령과 영부인이 청와대에서 짜파구리 오찬을 하며 파안대소하는 모습과 코로나로 환자가 사망하는 모습이 교차하는 장면이다. 다른 하나는 마스크를 구하려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의 행렬, 그 속에서 분통을 터뜨리는 목소리들을 담은 장면이다.코로나 대재앙을 불러온 지도자들의 어리석고 잘못된 판단, 책임 회피,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언행들도 영화에 담길 것이다.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아 재앙을 불러온 대통령, 국민에게 책임을 떠넘긴 장관, 특정지역 봉쇄를 들먹인 국회의원, 코로나로 절망에 빠진 지역의 자치단체장들을 공격한 '어용' 작가, "너희가 선거를 잘못해서 겪는 것"이라는 '문프' 지지 작가도 영화에 나올 것이다. 집단 감염 사태를 불러온 특정 종교와 그 수장도 빠질 수 없다.하지만 이들은 영화 '코로나'의 조연이나 단역에 불과할 뿐이다. 주인공은 따로 있다.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의사와 간호사, 혼신을 바쳐 일하는 질병관리본부 관계자, 물심양면으로 코로나 극복에 성원을 보낸 사람들, 자발적 자가 격리 등 예방 수칙을 지키며 확산을 막아낸 국민이 주인공이다. '컨테이젼'과 '감기' 두 영화는 치료제 발견을 통한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다. 지금 우리가 겪는 현실이 괴롭고 참담하지만 두 영화처럼 하루빨리 해피엔딩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0-03-06 20:07:38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저들보다 모진 그들

"마치 세상의 지옥인 듯하다."(1919년 9월 9일, 매일신보)이상하다. 또 너무나 닮은꼴이다. 괴질(怪疾)의 참혹함이. 100년의 간격을 두고 한국을 뒤덮은, 이름만 다른 두 전염병을 두고 펼쳐지는 모양새의 얄궂은 분위기도 그렇다. 1919년과 1920년에 걸쳐 4만1천220명의 환자 발생에 2만2천654명이 숨진 그때는 쥣(鼠)병 또는 호열자(虎列刺)로도 불린 콜레라였고, 2020년 지금은 환자와 희생자가 계속 생기는 코로나19라는 몹쓸 질병이다.무엇보다 책임 전가다. 1919년 콜레라는 동남아를 거친 중국 쪽, 이듬해는 일본에서 흘러들었다. 그러나 일제는 이를 막지 못한 채 한국인의 비위생적 생활과 습관 등을 탓했다. 게다가 일본인 위주인 상하수도 보급, 방역, 의료 혜택 등 식민정책(일본인 환자 436명, 사망 0명)으로 전염병에 취약한 환경에 노출된 한국인이 사실상 따르기 힘든 청결 유지, 의사 진단 등 대처를 주문했다.특히 일제는 1920년 급히 영화까지 제작, 위생적 생활을 외쳤으나 또 다른 책임 회피와 전가였다. 영화에서 깨끗한 집과 더러운 가정을 비교, 불결한 집의 전염병은 당연함을 보여주며 은연 중 인구 80%의 가난하고 못 배운 한국인의 비위생적 삶의 호열자 피해는 마땅하다는 논리였다. 한국인에게 열등감을 심어주기 딱 알맞은 영화였다. 당시 갓 창간한 동아일보가 비판할 만했다.오늘 나라 꼴을 보자. 제정신인가. 코로나19가 중국발(發)인 데도 대구경북이 진원지처럼 모는 기막힌 현실이. 나라의 전파·확산 방지 실패로 5일 현재 확진 6천88명, 사망 41명에 이르고 대구경북에서 가장 많은 피해자(확진 5천187명과 사망 40명) 발생에 관료, 유시민 전 장관, 홍익표 전 민주당 수석대변인, 공지영 작가 등이 '대구경북=코로나'로 때리기 나선 행태가 말이다.일제는 한국인을 탓했지만 최대 환자·사망자가 나온 황해도·전남도 등 어느 곳을 매도하지 않았다. 지금은 저들보다 더하니 무슨 까닭인가. 착한 국민 성원과 지원, 격려로 겨우 버티며 맞은 봄이지만 대구경북의 봄은 이미 뺏긴 셈이다. 이러니 그들이 중국 우한 코로나19 전염병보다 어찌 더 겁나고 두렵지 않겠는가. 나라 안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이리도 모질게 헤집는 그들은 누구인가. 슬프고도 참담한 봄이다.

2020-03-06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봄은 오는가

노자(老子)는 '대음희성'(大音希聲)이라고 했다.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봄이 오는 소리는 너무도 위대한데 자연에서 멀어진 우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봄의 소리는 정녕 시구나 노랫말에나 나오는 문학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인가. 그래도 가만히 귀 기울이면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법도 한데, 올봄은 그 같은 치기(稚氣)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이 판국에 무슨 봄 타령인가.가족이 보름째 칩거 생활 중이다. 인근 마트에 물건 사러 가는 것은 물론 아파트 엘리베이터 타는 것조차 두렵다.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못내 께끄름하다. 기침 소리라도 나면 호흡을 멈추고 저만치 비켜서야 한다. 친한 벗들과 막걸리 한잔 나눌 수 없고, 그럴 만한 대폿집도 모두 문을 닫아버렸다. 유학생인 아들은 방학을 맞아 일찌감치 북경(北京)을 잘 벗어났다고 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개학을 하더라도 중국에서 대구 출신을 받아줄지 걱정이 태산이다. 아예 재택근무에 돌입한 채 삼시 세 끼 음식해대느라 손에 물이 마를 겨를이 없는 아내의 남은 관심사는 오로지 마스크 구입이다. 비록 오후 한나절이지만, 마감을 위해 신문사를 오가며 콧바람을 쐬는 내가 어쩌면 집안에서 가장 요주의 인물이다. 드나들 때마다 마스크를 끼고 손을 씻지만 불안감은 숙지지 않는다.출퇴근길 바깥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인적이 드문 썰렁한 거리와 문 닫힌 가게들을 보면 가슴이 황량해진다. 창궐하는 전염병 바이러스와 나날이 늘어나는 확진자들, 방역 현장에서 감염이나 과로로 쓰러지는 의료진과 공무원들, 혹세무민으로 감염 확산을 부추겨온 종교집단, 시종일관 뒷북 정책과 영혼 없는 언행도 모자라 시민들 가슴에 생채기나 덧내는 집권 세력과 그 주변 무리들….이 황망한 시절에 산기슭마다 피어나는 화사한 꽃망울인들 눈에 들어오겠는가. 육십 평생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봄이다. 오늘은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대구 시민들은 아직도 겨울 속에 갇혀 있다. 이 어두운 터널에도 출구가 있을까. 마스크를 벗을 날이 올까. 다시 봄비가 내리고 서러운 풀빛이 짙어올 것이다. 오는 봄조차 빼앗겼는데 가는 봄은 또 얼마나 느꺼울지….

2020-03-05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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