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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두 회고록

대구 출신 언론인으로 박정희 정권의 탄압 때문에 1973년 미국에 망명한 문명자의 회고록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1999년 국내에서 출간한 회고록으로 1986년 2월, 부정선거에 맞서 마르코스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필리핀 시민혁명의 현장 기록이다.'값진 물건을 급히 챙겨 탈출하느라 대통령궁은 엉망진창이었다. 한 방에는 알맹이를 미처 꺼내지도 못한 보석 상자가 수북했다. 최고급 향수, 밍크코트가 그득한 옷방과 이멜다의 노래를 녹음한 순금 음반이 나뒹구는 것을 보고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문명자는 1970년대 같은 망명객 신분이던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 부부와 인연을 맺었다. 1983년 위험을 무릅쓰고 귀국한 야당 지도자 아키노가 공항에서 암살되자 부인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 후보로서 시민혁명을 완수했다. 당시 코라손 아키노와 함께 대통령 관저인 말라카낭궁에 일착으로 들어가 직접 목격한 것을 회고록에 담은 것이다.그런데 이후 반전은 놀랍다. '3천 켤레의 구두를 남기고 하와이로 도망간 이멜다는 당당하게 다시 돌아왔고, 아키노의 딸과 이멜다의 아들이 결혼하면서 사돈이 됐다. 하원의원이 된 이멜다가 의사당을 누비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대목에 이르면 이런 희극이 또 있을까 싶다.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두 차례나 재판 출석을 거부한 그가 단골 골프장에서 종종 목격됐다는 폭로 때문이다. 또 건강 때문에 사람을 못 알아본다는 해명에 체납 지방세 징수팀이 가택수색도 못 하고 발길을 돌린 일이나 "남편은 한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이순자 씨의 발언도 공분을 샀다.'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는 전직 대통령의 '알츠하이머 골프' 논란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다. '알아들어도 2, 3분 지나면 까먹어서 기억을 못하고 이빨도 하루 열 번 넘게 닦는 상태'라는 변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국민이 과연 있을까.

2019-01-19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황교안의 도전

검사라고 하면 얼핏 떠오르는 이미지가 냉철, 단호함이다. 범죄자를 조사하고 공소를 유지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차갑고 예리한 인상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검사 대부분이 그런 인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만 해도 냉철함보다는 자부심이 지나쳐 거만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검사라는 특권에 도취한 이들이 많아 권위 의식과 자존심도 대단했다. 요즘은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상당히 퇴색됐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은 것 같다. 검찰 조직 특유의 보수성과 폐쇄성 때문이다.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고 하니 예전 검사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황 전 총리는 전형적인 공안검사 출신이다. 이 때문인지 그의 인상은 단정·냉정하고 침착해 보인다. 사석에서도 말수가 적고 실수를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TV에서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고 웃지 않으니 아직까지 검사 티를 벗어던지지 못한 듯하다.그의 색깔은 보수 우익이다. 검사 시절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펴냈고, 법무부 장관 시절 애국심·애국가를 강조한 것을 보면 극우 성향에 가깝다. 초임 검사 시절 야간 신학대학을 다녔을 정도로 열성적인 기독교인인 것을 감안하면 그의 이념과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흥미로운 대목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징집 면제자'라는 점이다. 애국심과 국가 중심의 이념을 가진 정치인이 '담마진'(두드러기 비슷한 피부병)이라는 질병으로 1980년 신체검사를 받고는 바로 민방위대원이 됐다. 그 뒤 자연스럽게 완치됐는지 '담마진'의 재발 소식은 없다.황 전 총리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공안부 검사, 박근혜 정권 마지막 총리, 징집 면제자, 기독교인, 보수 우익 등이다. 그가 시대정신, 국민감정과 어울리는 인물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당은 황 전 총리 입당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제 '비박' '반박'이 아니라 '친황'이 대세라고 하니, 단숨에 '보수의 선두주자'로 부상했음을 알 수 있다. 대권 도전에 나선 황 전 총리가 성공할 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한국당의 개혁은 실패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2019-01-18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국민의 뜻?

좌파에게 민중(또는 대중)의 뜻은 복종해야 마땅한 지고(至高)의 가치다. 이런 가치관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루소의 '일반의지'다. 일반의지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한 공동체의 의지를 말한다. 이를 따라야 함은 부정할 수 없지만 골치 아픈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무엇을 일반의지로 볼 것인지 판단은 누가 하느냐는 것이다.이에 대한 루소의 대답은 민중이 아니라 '엘리트'였다. 그는 대중을 '어리석고 소심한 병약자'에 빗댔다. 루소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콩도르세도 이와 비슷한 경멸을 드러냈다. 노동계급을 역사 발전의 주체로 규정한 마르크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노동자 계급은 혁명적이 아니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했다.이런 생각은 레닌의 '전위(前衛)정당론'에서 더 분명하게 반복된다. 그는 "노동계급 내부에서 진정한 혁명적 계급 의식은 절대로 자동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며 선택받은 소수의 직업 혁명가 집단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사실들이 말해주는 바는 좌파들에게 민중이란 좌파의 비전을 수행할 수 있을 때만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관련 공론조사에서 '원전 축소' 의견이 과반을 겨우 넘긴 53.2%로 나왔는데도 "탈원전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원자력학회 여론조사에서 70%가 찬성하고 서명운동 한 달 만에 24만 명이 동참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는 "에너지 정책의 흐름이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며 거부했다. 문 대통령에게 어느 쪽이 진정한 국민의 뜻일까?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2014년 발언은 그 해답의 실마리가 될 듯하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국회의 정상적 운영을 거부하며 장외투쟁을 병행하는 데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국회의원이었던 노 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 정서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국민 여론을 무조건 따를 필요가 없다. 히틀러를 탄생시킨 것도 독일 국민이고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을 통과시킨 것도 우리나라 국민이었다. 그들이 옳은 선택을 한 것이냐?"

2019-01-17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쓰레기 대란

과거 농경시대에는 쓰레기가 없었다. 낡은 옷이 해지면 몇 번이고 기워서 입다가 종내에는 걸레로 활용했다. 음식물 찌꺼기는 소죽 끓이는 데 사용했고 어쩌다 나오는 생선 뼈다귀마저 멍멍이들이 처리했다. 뒷간 분뇨나 마구간에서 나오는 소똥 거름마저 발효시켜서 퇴비로 사용했다. 집을 짓는 자재는 물론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 모두가 천연재료였으니 산업폐기물이 생성될 까닭도 없었다.쓰레기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부산물이다. 자본주의적 인간의 지칠 줄 모르는 탐욕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부추기며 엄청난 쓰레기 발생을 부채질해왔다. 그렇게 자연환경을 무차별로 파괴해온 인류의 횡포가 초래한 업보는 막중하다. 쓰레기 대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촌 곳곳에서 대재앙의 경고음이 들려오고 있다. 인류 또한 이제야 대자연의 신음을 감지하기 시작했다.매일 100t 안팎의 쓰레기가 발생했던 필리핀 보카라이는 관광지 폐쇄로 한동안 휴식기를 가지면서 하루 관광객 수도 절반 이하로 줄였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은 한 해에 2만 명의 관광객만 받는다. 자국민들의 평온한 삶과 환경보호를 위해서다. 갈라파고스제도에는 자연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해야 들어갈 수 있다.세계의 여러 나라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쓰레기 감소와 처리 대책에 골몰하고 있다. 중국이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자 동남아가 밀려드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 환경부가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불법 수출된 쓰레기를 국내로 다시 가져와 처리하는 한편 히말라야 산악 지역의 폐기물 관리 용역사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쓰레기 불법 수출국의 오명을 쓰레기 처리 선진국의 이미지로 상쇄하려는 모양이다.경북 의성에서 7만t이 넘는 쓰레기 더미에 한 달 이상 화재가 계속되고 있어 주민들이 매연과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내부에서 폭발하는 불길을 잡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지 가늠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무분별하게 양산한 쓰레기의 반격과 자연의 분노가 이제 우리 주변까지 다가온 느낌이다.

2019-01-16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나비를 부르지 못할망정

"여보, 우리 집 마당에 나비를 불러들이겠소!" "아니, 당신이 무슨 요술쟁이요. 글쎄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지…."2016년 가을, 칠곡 왜관의 정재우 한의사는 아내에게 약속했다. 농약 사용과 환경 변화로 농촌의 나비와 곤충도 사라지는 판인데, 느닷없이 자기 집 마당에 나비를 불러들이겠다는 남편의 생뚱맞은 약속과 장담에 아내의 미덥지 못한 반응은 마땅히 그럴 만했다.그리고 2017년 여름에 이어 2018년 같은 즈음, 그의 마당에는 '꼬리명주나비' 무리들이 훨훨 날아다니는 동화가 이어졌다. 남편은 약속을 지켰고, 아내에게 한 장담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보기 드문 꼬리명주나비는 그렇게 칠곡의 매원마을 손님이 되었다.사실 정재우 한의사는 꼼꼼했다. 무엇보다 귀한 존재의 나비를 모시는(?) 준비부터 철저했다. 꼬리명주나비가 먹이로 하는 식물 즉 식초(食草) 공부에 나섰다. 이어 오랜 발품 끝에 군위 부계 한밤마을 울타리 여기저기에서 자라던 '쥐방울덩굴'이 그 식초임을 알고 구해 집 담장에 심었다.그의 정성에 쥐방울덩굴은 담장 아래 움을 텄고 어느 순간, 잎에는 무슨 알들로 소복했다. 곧 애벌레가 되더니 마침내 검은 갈색 무늬에 노란띠를 두른 꼬리명주나비들이 마당과 담장을 넘나들며 춤쳤다. 1년 넘는 그의 간절한 나비 초청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그의 논리는 분명했다. 먼저 나비를 부를 터부터 닦고 나비가 머물 뭇 조건을 갖추는 일이었다. 그랬더니 쥐방울덩굴은 특유의 내뿜는 냄새로 나비를 불렀고, 어디선가 찾아온 나비는 여러 판단 끝에 알을 낳고 애벌레는 식초로 배를 불리며 새 삶터로 삼은 셈이다.아내와 한 약속을 지키고 자신이 뿌리내린 삶터까지 가꾸고자 하는 그의 행동을 떠올린 것은 최근 대구은행장 사태가 생각나서다. DGB금융지주 회장과 대구은행장의 분리에 대한 대구시민과의 약속조차 하루아침에 팽개치고 되레 지역사회에 갈등만 일으키는, 꿍꿍이를 알 수 없는 두 인물의 행태가 그렇다. 대구은행을 찾는 나비를 길러도 아쉬울 터인데 그러기는커녕 내쫓을 그런 모습이 그저 씁쓸할 뿐이다.

2019-01-15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왕(王)실장'의 귀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만큼 극심한 영욕을 맛본 인물도 드물다. 1972년 검사 시절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한 이후 승승장구해 검찰총장·법무부장관, 3선 국회의원 등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것으로 마무리했으면 '대단한 인물'로 기억될 텐데, 2013년 박근혜 정부 제2대 비서실장에 취임한 것은 최악의 한 수였다. 만 74세로 역대 최고령 비서실장이었던 만큼 세간에는 '노욕'(老慾)으로 비쳤지만, 본인은 '마지막 봉사'라고 주장했다.그의 별명은 '왕실장' '기춘대원군'이었다. 박 전 대통령과의 친분과 충성심, 인맥 등을 활용해 당정청(黨政靑)을 한손에 장악한, 명실상부한 '정권 2인자'였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보좌를 제대로 못 한 '실세 비서실장'의 책임은 엄중했다. 그는 1년 8개월의 마지막 공직 생활로 인해 80세 노구를 이끌고 감옥에 드나드는 신세가 됐으니 '인생무상' '권력무상'을 절절히 곱씹을 만했다.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비서실장의 권력이 막강하고 중요하다. 모든 국정 현안이 비서실장에게 집중되고 이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통치 철학, 정권의 국정 방향까지 좌우할 수 있는 자리가 비서실장이다.미국은 1938년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비서실의 행동 규범을 제한하는 규범을 만들었다. 브라운로우(Brownlow)위원회가 만든 '백악관 운영 규범'에는 비서실장에 대해 '전면에 나서지 말 것' '명령이나 결정을 내리지 말 것' '공적인 발언을 삼갈 것'이라고 규정했다.〈문재철의 책 '권력'〉 한국과는 달리, 비서실장을 놓고 '왕실장'이니 '실세 실장'이니 하면서 비꼴 수 없는 구조다.8일 노영민 주중대사가 비서실장에 임명되자, 일부 언론은 그를 '실세 왕실장'이라고 지칭했다. '왕실장'이라는 말에 '실세'가 덧붙을 정도이니 엄청난 파워를 가진 비서실장임이 분명하다. '친문' 핵심인 데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기춘대원군'에 전혀 꿀리지 않는 위상이다. '실세 왕실장'이 문 대통령을 어떻게 보좌할지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다.

2019-01-14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뒷날의 조짐은?

'1호선 1단계로 경북기계공고~대구역 9㎞…착공을 하였는데…노태우 대통령을 모시고 1호선 기공식을 개최하였다…사고를 예상했는지는 몰라도…당일…한 업체에서 피우는 연막이 터지지 않았다.'1991년 12월 7일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경북기계공고 운동장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지하철 1호선 기공식이 열렸다. 당시 공구가 5개로 분할됐는데 연막점화 행사 때 공교롭게도 1곳의 연막이 불발(不發)이었다.이날 불상사(?)가 뒷날 불행의 조짐은 결코 아니겠지만 현장을 지켜본 누군가는 1995년 4월 28일 터진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참사의 전조쯤으로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앞에 소개한 퇴직 대구시 공직자의 기록을 보면 그렇다.이날 기공식 연막 불발의 기억처럼, 대구지하철은 조해녕 전 대구시장에게도 악몽이었다. 1995년 상인동 참사 당시, 시장 퇴임 후 시장 선거에 출마해 낙선했고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때는 현직 시장이었던 악연 탓이다.그러나 조 전 시장은 이런 기억하기 싫은 아픔에도 퇴임 이후 대구에 남았다. 퇴임 뒤 대구를 떠나거나 조용한 새 삶을 누리는 안일(安逸)과 달리 대구의 공동체를 위해 궂은일도 맡는 그런 기여의 모습이었다.그런데 최근 그는 전혀 다른 이야기에 휩싸였다. 바로 대구은행장 인사를 둘러싼 그의 부정적 소문과 역할이다. 풍부한 경험에 균형 감각을 갖춘 그답지 않게 특정 인연에 치우쳤다는 소식으로 안타깝게 하고 있다.게다가 그가 당초 DG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으로서, 지주 회장과 대구은행장의 분리 입장을 바꿔 지주 회장의 은행장 겸직을 말하니 소문은 악화되는 꼴이다. 비록 은행 개혁의 뜻이겠지만 특정 인맥 편향 시각은 더욱 퍼질 뿐이다.앞으로 조 의장의 대구은행 활동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일로 옛날을 한번 되돌아보면 어떨까 싶다. 이번 일이 자칫 또 다른 악몽의 어떤 조짐은 아닐지 말이다.

2019-01-12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문지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과 관리의 폭정을 규명한 저서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문졸(門卒)이란 잡역에 종사하던 하급 군관으로 관청의 아전과 하인 중에서도 가장 교화에 따르지 않는 자이다'(門卒者 古之所謂皁隷也 於官屬之中 最不率敎)라고 했다. 그런데도 혼권(閽權), 장권(杖權), 옥권(獄權), 저권(邸權), 포권(捕權)을 틀어쥐고 행패가 극심했다는 것이다.관문 통제에서부터 곤장의 경중과 죄인 관리, 세금 수령, 도둑 체포 등의 권한을 가진 문지기의 적폐를 수령된 자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으니 백성들의 고초가 오죽했을까. 2019년 새해 벽두에 '문지기'라는 말이 새삼 회자하고 있는 것은 '왕실장의 귀환'이란 형용사를 달고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노영민 전 주중대사의 권력 심층부 입성 때문이다.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 선 노 실장은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저는 사실 부족한 사람"이라며 "어떤 주제든, 누구든, 어떤 정책이든 가리지 않고 경청하겠다"고 몸을 낮췄다. 그러면서 "실장이 됐든, 수석이 됐든 비서일 뿐"이라며 "그것을 항상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단은 백범 김구 선생의 문지기론을 방불케 하는 의지의 표명이다.학생운동권 출신의 정치인인 그에게 '문지기'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2012년 대선 패배 후 '문지기'(문재인을 지키는 사람들)라는 친문 모임을 만들어 그 좌장을 맡으면서다. 그는 2017년 대선에서도 문 대통령의 중앙선대본부 공동 조직본부장을 맡았던 '원조 친문'이다. 대통령이 중요 정치 현안을 상의했던 가장 신임하는 인물이 궐문을 장악했으니 또 한 사람의 '왕실장'이 등장한 셈이다.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를 선거 전에 걸러내는 정당의 문지기(gate keeper) 기능이 약해질 때 위험한 권력자가 나온다"고 경고했다. 반대로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의 문지기 힘이 강해질 때 정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불과 몇 년 전 우리는 박근혜 정권의 왕실장과 문고리 3인방의 득세와 몰락을 적나라하게 지켜봤다.

2019-01-11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대통령의 책임회피

1917년 혁명 후 소련의 경제 혼란은 극심했다. 계급 청소로 기존 '부르주아 전문가'들이 쫓겨나면서 어중이떠중이들이 국영기업과 공장 관리자가 됐다. 생산량이 줄고 비용은 증가하는 등 경영이 극도의 비효율로 치닫는 것은 당연했다. 그 결과 사회주의에 대한 인민들의 불신은 커져만 갔다.이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스탈린이 꺼내 든 카드는 배신자들의 '사보타주'나 '손괴행위'였다. 소련의 붕괴를 바라는 내부 배신자들이 고의로 작업을 지연시키거나 산업시설을 파괴하는 방법으로 소련 경제를 마비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설명만이 정책 실패를 은폐하면서 경제 혼란의 원인을 꾸며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이런 시나리오에 따른 첫 공개재판이 1928년 '샤흐티 재판'이다. 1937~1938년 사이 3차례에 걸친 본격적인 숙청 재판에 앞서 열렸다고 해서 역사가들은 '예열(豫熱) 재판'이라고도 하는데 캅카스 북부 탄광 도시 샤흐티가 그 무대다. 당시 샤흐티 탄광에는 수십 명의 국내외 기술자들이 일하고 있었는데 석탄 생산량이 줄자 소련은 53명의 기술자를 기소해 5명을 총살하고 44명은 감옥으로 보냈다. 죄목은 기술자들이 혁명 이전의 광산 소유주들과 공모해 소련 경제의 사보타주를 기도했다는 것이었다.이로부터 2년 뒤에 열린 '산업당 재판'(Industrial Party)도 똑같은 시나리오에 의한 희생양 만들기다. 소련 검찰이 제기한 혐의는 소련 내에 당원이 2천 명에 이르는 '산업당'이란 지하 정당이 존재하며, 이들은 프랑스 정보기관의 지원을 받아 파리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반소 러시아인들과 함께 소련을 무너뜨리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당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문재인 대통령이 8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강조했다. 경제정책의 성과가 나왔는데도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한 지난해 말의 '언론 탓'의 연장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성과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성과 자체가 없다. 그 이유는 잘못된 정책이지 언론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가짜뉴스' 프레임은 정책 실패를 은폐하기 위한 저급한 책임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2019-01-10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개 발에 편자

1991년 1월, 3주가량 유럽의 지방자치 현장을 둘러본 적이 있다. 우리 지방자치 시대 개막을 앞두고 선진국 지방자치 실태 취재가 목적이었다. 1960년 12월, 3차 지방선거를 끝으로 맥이 끊긴 한국의 지방자치제가 31년 만에 지방선거(1991년 3월 26일 기초의원 선거) 실시로 부활을 앞두면서 국민들 관심과 우려가 자연스레 지방자치에 쏠린 때였다.당시 유럽 출장에서 받은 가장 강한 인상은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 각국의 지방자치 역사나 전통, 시스템이 아니었다. 바로 주민 대표이자 지방의회를 지탱해나가는 의원들이었다. 그들은 정치에 인이 박이고 정당 색이 강한, 특출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낮에는 생업을 꾸리고, 저녁에 시간을 쪼개 의회에 나와 지역 현안을 토론하고 처리한 보통사람들이었다.그들에게 수천만원의 의정비나 수당은 꿈에도 없는 일이었다. 고작 메모지와 필기구, 홍보 스티커가 보상의 전부였다. 지역을 위해 봉사한다는 자부심이 때로는 심야까지 의회 불을 밝혔고, 우리 동네를 바꿔나간다는 사명감이 건너뛴 저녁 식탁의 메뉴가 됐다. 그들은 약사나 제빵사, 편의점주, 대학생까지 거리에서 늘 마주치는 장삼이사였다. 유럽 지방자치의 힘은 이들의 상식과 교양, 이성과 합리가 작용하고 굳어진 결과다.지난 연말 미국·캐나다로 연수차 외유에 나선 예천군의회 사태가 뒤늦게 이슈가 되면서 연일 활자와 전파가 달아올랐다. 국민 혈세로 외유에 나선 것도 뒤가 켕기는 일인데 연일 술판을 벌이고 접대부 수소문에다 급기야 가이드 폭행 등 만행까지 벌였다니 이들의 추태에 국민 뒷목이 뻣뻣할 지경이다.이런 분노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으로 옮겨붙었다. '지방의원 해외연수 금지' '기초의원제 폐지' 등 관련 청원만 여러 건이다. 몇몇 몰지각한 의원들 탓에 전체 지방의원이 앉아서 욕을 먹는 꼴이다. 그렇지만 예천군의원들이 보여준 수준이 바로 한국 지방자치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미꾸라지가 흐린 물'에 혀를 차고 끝낼 문제는 아니다. 지금 지방의원 수준으로는 한국의 지방자치는 '개 발에 편자'다. 곪아 터지기 전에 서둘러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2019-01-09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청와대 권력

헬기를 타고 가던 사단장이 아래를 내려보다 거수경례를 하는 병사를 봤다. 사단장 왈(曰). "충성심이 남다른 저 병사에게 포상 휴가를 줘라." 뜻밖의 휴가를 얻은 그 병사, 사실은 헬기 소리에 하늘을 올려보다 눈이 부셔서 눈썹 위에 손을 올린 것뿐이었다.정권이 바뀌었어도 '청와대 권력'이 세긴 센 모양이다. 2017년 9월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이 토요일 국방부 근처 카페에서 육군참모총장을 만났다. 육군 인사 선발 절차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다며 행정관이 육참총장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실무자급에 확인할 수 있는데도 나이가 30대 중반인 행정관이 예순을 바라보는 육군 최고 책임자를 불러낸 것이다. 청와대 권력을 보여주는 만남이다.만나게 된 과정도 문제이거니와 성격과 내용, 끝맺음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장성급 인사 절차가 진행되는 시기에 육참총장이 청와대 행정관과 사전에 만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두 사람은 인사 자료를 가지고 장성 진급 인사 범위와 대상에 대해 논의했다. 만남에 동행한 다른 청와대 행정관은 장군 진급 심사 대상자였고 같은 해 연말 진급했다. 육참총장을 불러내 만난 그 행정관은 만남 후 군 인사 파일을 분실해 의원면직됐다.청와대 해명은 더 가관이다. 행정관이 의욕적으로 일을 하는 과정에서 군 인사 전반에 대한 파악이 필요해 육참총장에게 의견을 청취한 것이라고 했다. 4급 행정관이든 인사수석이든 똑같이 대통령 지침을 받아 수행하는 비서라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장성 진급 대상자에 대한 검증은 해당 행정관의 고유 업무가 아니었다. 청와대 인사 검증은 인사수석실이 아닌 민정수석실에서 담당한다.특감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 적자 국채 발행 압박 의혹 등 청와대 권력의 어두운 면들이 속속 노출되고 있다. 청와대의 권력 독점 현상을 지적한 정치학자 박상훈은 저서 '청와대 정부'에서 청와대가 내각을 수직적으로 지휘하는 정부 운영 방식은 비(非)민주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 때가 보수판 청와대 정부라면 지금은 진보판 청와대 정부라고 규정했다. 인적 쇄신을 통해 청와대가 얼마나 달라질지 두고 볼 일이다.

2019-01-08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구미 한 초부의 꿈

'우리 구미도 전망이 좋은 지역에 탑을 세우고, 청백리 228명을 모시는 공원을 만든다면 좋은 교육용 관광상품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지난해 12월 연말이 저물 즈음, 필자에게 한 권의 책이 배달됐다. 이종원(83) 전 구미문화원 이사가 지난 2011년 12월에 엮은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라는 제목의 책이다. 스스로 '나무하는 늙은이'라며 '초부'(樵夫)라고 소개한 그는 243쪽에 이르는 책을 엮은 까닭으로 청백(淸白)과 청풍(淸風)을 앞세웠다.구미에 청백공원과 청백탑이 세워지면 기릴 인물 228인은 조선조 선산(구미) 등 전국 청백리 219명에 정약용 등을 더한 숫자라고 했다. 그가 사비로 책을 출판한 것은 "청백은 후대에 물려줄 훌륭한 문화유산"이라 판단해서다.동서양의 여러 나라를 둘러보고 책을 냈다는 그의 설명에 따르더라도 그가 굳이 청백을 주제로 한 책을 낸 배경이 선뜻 이해되지 않지만 그가 살았고, 앞으로도 살아갈 삶터인 구미에 대한 국가의 청렴도 평가를 살피면 나름 이해할 만도 하다.정부 발표 청렴도에서 지난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10년의 구미시 성적은 초라하다. 2009년 5단계 평가에서 세 번째인 보통 또는 3등급이 2015년까지였다. 특히 2012년 5등 꼴찌 성적이 2016년부터 반복, 내리 3년째 이어졌으니 말이다.그가 이런 비참한 뒷날의 결과까지 미리 알고 이를 경계하기 위해 책을 엮지는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구미시의 청렴도 평가 결과를 보면 그가 일찍부터 청렴과 청백의 강조와 관광 상품화를 주장한 일은 되돌아볼 초부의 꿈이자 안목이 아닐 수 없다.비록 내용과 편집에서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세월 지난 그렇고 그런 종이 묶음에 그칠 수도 있는 책을 애써 소개한 까닭은 한 초부의 고향 앞날을 아끼고 걱정하는 한 조각 마음 씀씀이만큼은 그대로 묻어둘 수 없어서다. 또한 자신이 발을 딛고 머무는 터에 그만한 고민을 하는 초부가 새해에는 넘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담아서다.

2019-01-05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히든 피겨스

시어도어 멜피 감독이 2016년에 발표한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들은 소위 '마이너리티'로 취급받아온 흑인 여성들이다. 인간 존재를 피부색으로 나누고, 여성이라는 굴레에 편견까지 덧씌워 차가운 시선으로 보던 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감독은 앵글에 사실적으로 담아낸다.1960년대 초 미국 내에서도 흑인 차별이 가장 심했던 버지니아주에서 '흑인+여성'이라는 조합은 말 그대로 최악이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일하는 공간은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던 미국항공우주국(NASA)이라는 점은 단순히 차별과 편견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하기 힘든 대척점 그 자체다. 그럼에도 이들은 남다른 재능과 꿈을 갖고 '백인+남성' 구도를 조금씩 허물고 영화 제목처럼 '숨은 영웅들'의 실화 스토리를 완성한다.이처럼 이중 핸디캡을 보기 좋게 극복해낸 이들은 나사 최초의 흑인 여성 매니저이자 전산 전문가 도로시 본, '인간 컴퓨터'로 궤도 비행 성공에 기여한 수학자 캐서린 존슨,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항공엔지니어 메리 잭슨이다. 이들은 미·소 우주기술 경쟁에서 미국의 우위를 확보하는 데 크게 공헌한 숨은 공로자다.하지만 이들의 공적은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다. '흑인 여성'이라는 프레임 탓이다. 1958년 나사 출범 초기 고용된 흑인 여성들은 별도의 분리된 시설에서 근무할 정도로 극심한 차별을 받았다. 지금도 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가 어려운 이유다.미국 뉴욕주가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기념일을 제정한다는 소식이다. 뉴욕주 상·하원은 3월 1일을 '유관순의 날'로 정하는 결의안을 이달 중에 상정키로 했다. 지난해 '세계 여성의 날' 110주년을 맞아 뉴욕타임스가 세계 역사에서 주목할만한 여성 15명을 선정해 추모 부고(訃告)를 연재하면서 유관순의 삶을 재조명한 것이 계기다.삶의 형태는 다르지만 억압과 차별을 뚫고 치열하게 나아갔던 히든 피겨스, 숨은 영웅들의 귀환은 그래서 의미가 더 크다.

2019-01-04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남 탓'만 하는 문 정권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얘기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델포이 신탁(神託)을 받아보고 페르시아를 공격했다. 신탁은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로 출병(出兵)하면 대제국을 멸망케 할 것이다"였다. 그러나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에 패해 리디아는 페르시아의 속주로 전락하게 된다.이에 크로이소스는 신을 탓했다. 그러나 델포이 무녀(巫女)의 대답은 가혹했다. "신탁은 대제국을 멸망케 할 것이라고만 했을 뿐이다. 크로이소스가 신중하게 생각했다면 대제국이 페르시아인지 리디아인지 물었어야 했다. 신탁의 뜻도 모르고, 살펴보지도 않은 자신에게 죄를 돌리는 것이 옳다."이 이야기에 내포된 의미는 분명하다. 자신의 결정과 행동은 온전히 자기 책임이라는 것이다. 물론 델포이 무녀의 말은 '거짓 신탁'에 대한 교활한 변명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대제국'이 페르시아라고 제멋대로 해석하고 확신한 잘못은 온전히 크로이소스의 몫이다.히틀러가 독소전쟁에서 패한 책임도 마찬가지다. 히틀러는 당초 작전 개시일을 1941년 5월 15일로 잡았으나 6월 22일로 연기했다. 그리스를 침공한 무솔리니가 대패해 돕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을 끝낸다는 계획은 틀어졌다. 패배가 확실해지자 히틀러는 "이탈리아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었던 최선의 도움은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었다"며 무솔리니를 탓했다.하지만 패배는 예정돼 있었다. 서쪽의 미국과 영국, 동쪽의 소련과 동시에 전쟁을 할 능력이 독일에는 없었다. 무솔리니를 도울 일이 없어 예정대로 5월 15일 소련으로 쳐들어갔어도 독일의 패배는 불가피했다는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말 여당 지도부와 회동에서 경제 성과가 국민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며 '언론 탓'을 했다. 이에 앞서 7월에는 여당 원내대표가 고용난을 이명박박근혜 정부 탓으로 돌렸다. '남 탓'은 비겁한 책임 회피이자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는 고백이다. 크로이소스는 무녀의 말을 전해 듣고 잘못은 신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문재인 정권에 이런 '내 탓'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인 듯하다.

2019-01-03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새해 첫날의 '플랜B'

기해년 첫날 1월 1일을 관통한 키워드는 '플랜B'였다. 축구대표팀은 손흥민이 빠진 상황에 대비한 플랜B 전술을 점검하는 사우디와의 평가전에서 0대0으로 비겼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미국의 제재·압박이 계속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밝혔다. 플랜B에 대해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운을 뗀 것이다.59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하는 축구대표팀은 플랜B 전략을 모색했으나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손흥민이 키르기스스탄과의 아시안컵 2차전 이후 합류하는 까닭에 사우디전에서 대안을 찾으려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플랜B를 얼마나 숙달하느냐에 대표팀 우승이 달렸다.김정은 위원장이 발표한 신년사 대미(對美) 메시지는 2차 정상회담을 포함해 대화 의지를 피력하면서도 일방적 양보는 강요하지 말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는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 들고 제재 압박으로 나간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협상이 뜻대로 안 되면 플랜B로 갈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김 위원장이 언급한 새로운 길은 핵 프로그램 재개로 풀이된다. 북한이 새로운 길로의 진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사실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계속하는 조짐이 포착됐다고 했다. 미국 NBC는 북한이 이미 핵무기 양산에 들어갔고 2020년엔 1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지난해 11월 북한은 "관계 개선과 제재는 양립될 수 없는 상극"이라며 미국의 태도에 따라 핵무기 개발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바 있다. 김 위원장이 말한 새로운 길은 이 논평과 일맥상통한다. 미국이 찍어 누르면 북한이 미국 말을 듣고 수그리기보다 핵을 포기하지 않고 하루 세끼 먹고 버티는 쪽을 택할 것으로 보는 이가 많다.축구대표팀에게 플랜B를 안착시켜 꼭 우승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김 위원장이 플랜B로 갈 경우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19-01-02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북한의 성탄 예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유로 개인적 신앙심 이외에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고 역사학자들은 주장한다. 그 요지는 콘스탄티누스가 동로마의 기독교인들을 당시 한창 발흥하고 있던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의 대항 세력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특히 황제 권력의 강화에 이용 가치가 높다고 봤다는 것이다.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이단 박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카르타고의 도나투스파 탄압이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공인 후 황제는 하느님과 교회의 권위에 의해 임명되며 인간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웠다. 도나투스파는 교회 내에서의 이런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성스러운 것은 황제와 교회가 아니라 어떤 세속적 타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실한 믿음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새로 뽑힌 카르타고 주교 카에킬리아누스를 앞세워 이들을 무참히 박해했다.러시아 혁명 후 러시아정교회는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혁명 당시 교회는 4만6천457개, 수도원은 1천28개였으나 1939년에는 100개에서 1천 개 미만으로 격감했다. 이 과정에서 사제 80%가 처형되거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죽었다.1941년 6월에 터진 독소전쟁으로 이런 탄압이 끝나고 스탈린은 정교회 지원으로 돌아선다. 그 이유는 국민의 꺾이지 않는 신앙심이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1937년 인구조사다. 여기서 국민의 57%가 여전히 신앙인이라고 대답했다. 스탈린은 대독(對獨) 저항을 위해서는 국민 총동원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정교회가 해줄 것이라고 본 것이다.북한 민족화해협의회가 운영하는 사이트 '려명'이 26일 "조선반도의 평화 분위기가 사탄 무리들의 방해 책동으로 흐려지지 않도록 평화의 별이 걸음걸음 비춰주기를 기원하는 축복기도가 있었다"며 북한 내 교회에서 성탄절 예배가 진행됐음을 공개했다.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내보이기 위한 제스처다. 정치적 목적에 종교를 이용하는 불순한 의도를 여기서 다시 본다.

2018-12-2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옛 그 철길 걷는 날

'간도로 가는 유랑농민(流浪農民) 차림으로 3등 차에 올랐다. 겨우내 입고 나무하던 허름한 농민 옷 솜 속에 지폐를 펴서 넣고 전대에 넣어 허리에도 두르고…두루막에 수건을 머리에 동이고…괴나리봇짐에 보따리도 하나 들고 흡사 유랑농민 그대로 아무 환송하는 사람 없이 쓸쓸히 차에 올랐다.'100년 전인 1918년 2월, 옛 대구은행원 이종암은 대구 집을 떠나 왜관에서 숨어지내다 미리 마련한 군자금을 숨겨 허름한 옷차림으로 3등 열차에 몸을 실었다. 당시 일제의 극심한 농촌 침탈로 살길을 찾아 중국 간도로 떠나는 가난한 백성은 숱했고 일제도 이를 더욱 부추기던 즈음이라 엄한 감시도 잘 피했을 터이다.일제가 1905년 개통한 경부선 열차로 그가 100년 전, 서울 지나 경의선을 타고 국경 넘어 중국으로 망명했듯이 옛 철도엔 독립운동가들의 숱한 애환이 깃들게 됐다. 일제엔 한국 침탈과 자원 수탈의 수단으로, 또 중국 대륙 침략 군대와 물자를 옮기는 수송의 철길이었겠지만 항일 지사들은 되레 독립운동에 쓴 셈이다.그렇게 전국의 백성들은 살길과 광복을 위해 생사를 던져 국경 건너 남의 땅 중국 남쪽 상해로, 북경 밖 고비사막 지나 몽골로, 연해주와 극동을 거쳐 동토(凍土) 시베리아와 멀리 유럽까지 험난한 여정에 나섰다. 여운형과 서영해, 몽골의 은인(恩人) 의사(醫師) 이태준 같은 뭇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기록을 보면 더욱 그렇다.우리가 남북 강산의 통일을 애끊게 소원처럼 노래 부른 까닭도, 끊어진 남북 철도와 도로가 다시 잇기를 바라는 마음도 한결같다. 강산을 둘러싼 외세로 허리 잘린 역사도 통곡할 만한데 이제 우리끼리마저 갈래로 찢겨 다투며 날을 새는 판이니 오죽할까. 이제는 달라질 때도 됐지 않은가.마침 지난 26일 남북과 중국, 몽골, 러시아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북한 개성 판문역에서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열렸다. 곧 땅을 파는 착공의 속도전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미뤄졌지만 감회는 남다르다. 철도나 도로, 뭐든 뭍길을 잇는 날, 군자금을 숨긴 괴나리봇짐이나 전대도 없지만 옛 그 길을 마냥 걷고 싶어서다.

2018-12-28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권력의 타락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영국 역사가 존 달버그-액튼이 19세기에 남긴 유명한 말이지만, 행동심리학자들은 이 명언을 입증하기 위해 숱하게 실험했다. 대처 켈트너 UC버클리 교수의 '쿠키 몬스터'(cookie monster)라는 실험이 흥미롭다.'실험 대상 3명을 한 조로 묶어 임의로 1명에게 리더의 자격을 부여하고, 과제를 할당한다. 작업 시작 30분 후에 갓 구운 쿠키 한 접시를 제공한다. 접시에 담긴 쿠키는 4개. 3명이 쿠키 1개씩 먹고, 남은 쿠키는 누가 먹을까?' 대부분 리더로 지목된 사람이 먹는다. 남들은 1개씩밖에 못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리더 자신은 거리낌 없이 2개를 가져간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리더들은 쩝쩝 소리를 내며 먹거나 부스러기를 흘리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켈트너 교수는 대학, 의회, 스포츠계 등을 상대로 다양한 실험을 한 결과, 지위가 올라갈수록 점차 나쁜 행동을 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했다. 권력을 얻기 전에는 으레 선한 행동, 관대함과 공정성, 나눔 등의 행태를 보이지만, 권력을 얻으면 무례하고 이기적이고 부도덕한 행동을 하기 쉽다는 결론이다. 권력자의 타락은 인간 본성에 기인한다는 의미일 것이다.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에 비슷한 사례가 있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항에서 24세 보안 근무자에게 '갑질' 논란을 벌인 것은 권력의 타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XX들이 똑바로 근무 안 서네"라고 겁박하는 것으로 부족한지, '이리저리 전화 걸고, 사진까지 찍은 것'을 보면 비열함의 극치다.그가 젊을 때도 이랬을까. 김 의원 블로그를 보면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과 함께 30여 년이 넘는 시간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달려왔다'고 쓰여 있다. 아마 학생운동, 재야운동 때에는 그런 비열함을 드러내지 않았고 두루 민중을 사랑했을 것이다.청와대가 전 감찰반원 김태우 수사관을 두고 '6급 주사' '미꾸라지'라고 지칭하는 걸 보면 권력이 서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권력 앞에선 진보나 수구 세력이 똑같다. '인간이 제대로 돼야…' 하는 옛말이 생각난다.

2018-12-27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불자동차' BMW

올해 92세인 KBS '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송해 씨가 자신의 건강 비결은 'BMW'라고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BMW를 자주 탄다. B는 버스고 M은 메트로(지하철)이고 W는 워킹이다. 그래서 BMW라고 하는 거다."BMW는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다. BMW는 원래 항공기 엔진 업체였다. 1916년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기에 쓰이며 선두 자리에 올랐다. 패전 이후엔 군수품이란 이유로 생산이 금지되기도 했다. BMW는 모터사이클로 재기했고, 1928년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다. BMW의 지난해 판매량은 자동차 246만3천500대, 바이크 16만4천 대로 역대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매출액은 120조원에 달했다.이런 BMW가 한국에서는 '불자동차'로 불리고 있다. 불자동차란 의미가 불을 끄는 소방차에서 불이 자주 일어나는 BMW를 일컫는 것으로 바뀌었다. 실제 올 상반기 등록 차량 1만 대당 화재 건수는 BMW가 1.5건으로 국산·수입차를 통틀어 1위다.BMW 화재 원인을 조사한 민관합동조사단이 차량에 엔진 설계 결함이 있었으며 회사 측은 이를 알고도 은폐 축소하면서 리콜을 지연시켜온 것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BMW 코리아를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형사고발하고 늑장 리콜에 대한 과징금 112억원을 부과하기로 했다.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화재 사고 원인이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에 대한 제작사의 설계 결함 때문이라고 밝힌 부분이다. BMW로서는 설계 결함은 치욕적이자 치명적이다. 설계 결함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경우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런 까닭에 BMW는 설계 결함은 아니라며 정면 반박했다. 양측 모두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어서 앞으로 첨예한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한 지인이 몇 해 전 장성한 자녀로부터 생일 선물로 BMW 자동차를 받았다고 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BMW가 불자동차란 불명예를 떨쳐버리지 않는 한 부모에게 BMW를 선물하는 자녀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송해 씨도 요즘엔 BMW를 탄다는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

2018-12-26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아우성의 나라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청마 유치환은 '깃발'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그렸다. 청마의 깃발은 소리가 없는 아우성이어서 더 울림이 크다. 청마는 간파했다. 인간은 이상향에 대한 간절한 동경을 품고 있지만, 갈 수 없는 근원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그것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역설한 것이다.그렇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은 이데아계와 감각계에 동시적으로 관여하는 중간자"라고 했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수학자인 파스칼도 유명한 명상록 '팡세'에서 "인간은 신과 동물의 중간자"라고 했다. 그래서 인간 사회에서는 아무리 좋은 이념과 제도를 내세워도 이상적인 공동체를 건설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를 보면 그렇다. 천사도 짐승도 아닌 내 스스로를 들여다봐도 그렇다.우리 국민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보다는 이상에 대한 맹목적인 열망에 기우는 경향이 짙다. 시위와 집회로 지새우는 어제와 오늘이 그 방증이다. 촛불 정권의 업보 때문인가, 문재인 정부 2년 차인 올해 들어 각종 집회와 시위가 그전보다 57%나 급증했다고 한다. 경찰청은 올 한 해 전국에서 열린 집회·시위가 6만7천 건을 넘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그중에서 약 10%가 민주노총의 집회라고 한다. 모든 분야에서 모든 욕구가 분출하고 있다. 시·공간도 가리지 않는다. 법과 질서의 개념은 도외시한 지 오래다. 각자의 목소리가 극과 극을 이루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방불케 한다.다양한 목소리가 화음을 이루는 민주정치가 아니라, 저마다의 악다구니가 소음으로 증폭되는 중우정치(衆愚政治)가 횡행하고 있다. 외국 언론은 한국을 '시위 공화국' '아우성의 나라'라고 비꼰다. 평범한 일상조차 보장받지 못하니 '이게 나라냐'는 자조적 통탄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차라리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목소리들이 예사롭지 않다. 도대체 얼마나 더 투쟁하고 얼마나 더 쟁취해야 직성이 풀릴까. 이러다가 '깃발'마저 부러질 판이다.

2018-12-25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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