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화가 모름, ‘회혼례도’첩 중 헌수

19세기, 비단에 채색, 33.5×45.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세기, 비단에 채색, 33.5×45.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다섯 장면으로 그린 결혼 60주년 기념의 '회혼례도(回婚禮圖)' 중 세 번째 그림인 '헌수(獻壽)'이다. 헌수는 부모님께 음식을 높이 쌓은 성대한 고임 상을 바치고 장남부터 차례로 가족과 친척, 하객들이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며 축수(祝壽)하는 의식이다. 헌수는 자손들이 부모의 장수를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의례이자 잔치인 회혼례의 목적인 부모님의 건강과 평안을 직접 기원 드리는 중요한 절차였다. 그래서 송시열, 이재 등 예학자들은 회혼례에서 혼례를 재현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속된 행위이며 실제로 유식지가(有識之家)에서는 헌수만 하는데 이것이 옳다고 했다.

혼례식을 마치고 중앙에 나란히 앉아 각자 큰 상을 받은 노부부 앞에 남녀유별의 당시 법도에 따라 오른쪽에는 남성 자손과 친지들이, 왼쪽에는 여성 자손과 친지들이 각자 독상을 앞에 두고 두 줄로 마주해 앉아 있다. 앞줄은 머리와 갓에 꽃을 꽂은 직계 자손인데 남자 쪽 9명은 생김새와 머리모양, 옷 색깔 등을 보면 아들이 5명, 손자 2명, 증손자 2명으로 추측된다. 노부부 옆에 상을 받기에는 아직 어린 아이 둘이 있어 증손자는 4명인 것 같다. 왼쪽 앞줄의 7명은 며느리와 딸일 것이다. 맏아들과 맏며느리가 헌수 자리로 나와 첫 번째로 잔을 올리는 장면을 그렸다. 대청 아래로 구경꾼들이 모여들고 있는 참이다.

'회혼례도'가 좀 낯선 것은 감상화가 아니라 궁중행사화를 모방해 그려진 기록을 위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원래 이러한 행사화, 기록화는 세자의 책봉이나 가례, 왕이나 대비, 왕대비의 생일 등 궁중에서 이루어지는 왕가의 의례에 참여한 관원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했던 그림이다. 사가(士家)에서 행사화를 남기는 일은 드물었다.

'헌수'의 기와지붕과 기둥, 벽과 마룻바닥, 병풍과 자리 등을 보면 자를 이용해 직선을 그리는 계화(界畵) 양식이고 농담으로 음영을 넣어 입체감을 주었다. 화원들이 궁궐 전각을 배경으로 각종 행사를 그림으로 기록했던 수법이다. 행사 장면을 정면에서 약간 비낀 위쪽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시로 잡아 건물과 인물이 한 눈에 들어오도록 시야를 극대화했고 평행사선 투시도법으로 건물을 그려 공간을 설정했다. 인물은 역원근법과 중요도에 따른 주대종소(主大從小)법을 혼합하면서 앞에서 바라보듯 그렸다. 도화서 화원들의 오랜 경험이 축적된 시(視) 방식이자 묘사법이었다. 인물을 그린 풍속화 솜씨도 뛰어나며 원색의 화사한 채색이 잔치 분위기를 잘 전해준다. 크지 않은 화첩그림이지만 대단한 세도가문이 아니었다면 도화서 출신 화가의 솜씨를 빌려 이런 위세품을 남기려는 발상과 실천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3대 수연(壽宴)으로 회갑연, 회혼연, 회방연(回榜宴)이 있었다. 회혼연은 적어도 75세 이상, 과거 합격의 방이 붙은 60주년인 회방연은 대략 90세는 되어야 가능했다. 만약 과거가 있다 하더라도 오늘날이라면 회혼연이 더 열기 어려운 잔치일 것 같다. 오월 가정의 달, 모든 부부께서 해로하시기를.....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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