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세상을 바꾼 변호인 리뷰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1933~ )는 미국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이다. 빌 클린턴 시대였던 1993년 미국 사상 두 번째로 여성 대법관으로 취임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녀의 대쪽 같은 삶은 지난해 벳시 웨스트와 줄리 코헨이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나는 반대한다'로 소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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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개봉된 '세상을 바꾼 변호인'(감독 미미 레더)은 차별적인 상황에서도 어렵게 로스쿨을 마친 그녀의 역경과 그녀 인생의 분수령이 된 '모리츠 사건'을 그린 극영화이다.

1950년대는 흑인 인종차별도 문제였지만, 여성 인권이 거의 무시되던 시대였다. 긴즈버그(펠리시티 존스)는 하버드 로스쿨에 전체 학생의 단 2%에 해당되는 9명의 여학생 중 한 명으로 입학한다. 여자 화장실도 없었고, 로스쿨은 남자의 무대였다. 학장마저 "왜 남자의 자리를 뺏으면서 입학했느냐?"고 힐난한다.

로스쿨에 함께 다니던 남편이 뉴욕 법률회사에 취직을 하면서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옮겨 오지만 로펌 어느 곳에서도 여자 변호사를 고용하려는 곳을 단 한 곳도 없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수석 졸업을 한 그녀는 결국 법대 교수가 된다. 그녀가 맡은 강의는 '법과 성차별'이었다.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당시 사회에 만연한 남녀차별에 대해 더 큰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1972년 우연히 남성 보육자와 관련된 한 사건을 접하게 된다. 바로 '모리츠 사건'이다. 모리츠는 독신으로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청년이다. 자신이 직장에 나갈 동안 간병인이 필요했느데 세금 공제가 안됐던 것이다. 이유는 '집에서 환자를 돌보는 것은 여성의 일'이라고 법에 명시 되어 있었기 때문. 그녀는 모리츠를 통해 남녀 차별은 비단 여성에게만 불평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남성의 역차별 사건이며 성차별의 근원을 무너뜨릴 수 있는, 50년 전쟁의 포문을 열 열쇠임을 직감한다. 모두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 패배가 확정된 재판이라 말렸지만, 긴즈버그는 남편과 딸의 지지에 힘입어 178건의 합법적 차별을 무너뜨릴 세기의 재판에 나선다.

'모리츠 사건'은 오랜 시간 지속된 남녀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남녀의 성차별은 명문화돼 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동의 없이 통장도 만들 수 없었던 시대였다.

키 155cm의 힘없고 내성적인, 그러나 진지하고 당찬 그녀의 행동은 미국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정의였다. 긴즈버그는 법정에서 일찍이 없었던 명연설을 한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었으면 법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성에 근거하여' 차별 받아서는 안됩니다."

5분 32초간 이어지는 이 연설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진정성 있고 설득력 있는 연설로 기억된다. 그녀가 법조인이 된 후 '나는 반대한다'와 함께 가장 많이 쓴 용어가 '성에 근거하여'(On the basis of sex)라는 말이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원제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세상을 바꾼, 법의 흐름을 바꾼 정의로운 변호인이 바로 긴즈버그다. 그는 여성과 남성의 패러다임을 넘는 위대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개봉 전 해프닝이 있었다. 홍보 이미지를 만들면서 그녀의 여성성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붉은 의상을 입은 이미지에는 '러블리한 날', 검은 정장을 입은 이미지에는 '포멀한 날', 비교적 편안한 의상을 입은 이미지에는 '꾸.안.꾸한 날'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꾸.안.꾸'는 '꾸민 듯 안 꾸민 듯'이라는 의미다.

남녀의 동등한 권리를 쟁취하려 애쓴 여성 변호사의 '위대함'은 찾아 볼 수 없는 문구다. 미국 포스터에는 '영웅적인'(heroic), 정의(justice), 운동가(activist)가 명기됐지만, 한국 포스터에는 '독보적인 스타일', '데일리룩' 등 영화의 내용과는 반대로 성차별적인 단어가 쓰였다. 비난 여론이 일자 수정을 했지만, 한국 사회가 가진 천박함의 극치를 보여준 사례다.

긴즈버그 역을 맡은 펠리시티 존스는 키 160cm의 작은 몸집에 말투까지 닮아 싱크로율 높은 연기를 보였다. 그녀는 직접 긴즈버그 대법관을 만났고, 녹음 파일을 들으면서 발음과 억양을 연구했다.

시나리오는 긴즈버그 대법관의 조카인 다니엘 스티플만이 썼다. 그는 2010년 삼촌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듣던 중 이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20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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