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화섭의 아니면말고!] 음원사재기, 진실공방이 시작됐다

안녕하십니까, 이화섭의 '아니면 말고'입니다.

얼마 전 저는 SNS에 올라온 이런저런 게시물들을 훑어보던 중 굉장히 인상적인 게시물을 하나 보게 됐습니다. 바로 아이돌 그룹 빅스의 래퍼 '라비'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 게시물이었는데요, 바둑돌이 올려져 있는 바둑판을 배경으로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내 친구 아이돌인줄 알았는데 이세돌이었네"

이 영상을 보시는 분들은 저게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의아해하시겠지만, 아이돌 쪽을 쭉 지켜봐왔거나 대중음악 쪽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무릎을 탁 쳤을 게시물이었습니다.

이 게시물이 올라온 날은 엑소의 새 앨범이 나온 뒤였기 때문입니다. 엑소는 앨범이 나오자마자 각종 음원사이트 실시간 차트 10위권 안에 앨범 전 곡이 올라오는 소위 '차트 줄세우기'를 보여줬죠. 빅스의 라비와 엑소의 멤버 카이는 절친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내 친구가 아이돌이 아니라 이세돌이라고 했을까요? 이는 엑소의 앨범이 나오기 며칠 전인 11월 23일,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멤버 박경이 SNS에 올린 한 줄 글 때문이었습니다.

"바이브처럼, 송하예처럼, 임재현처럼, 전상근처럼, 장덕철처럼, 황인욱처럼 사재기 좀 하고 싶다" 이 한 마디에 가요계는 요동을 쳤죠. 박경이 SNS에 실명으로 언급한 가수들은 최근 음원사이트 실시간 차트 등에서 1위 내지는 상위권에 머물러 본 적이 있는 가수들입니다.

박경은 이들이 실시간 차트에서 높은 순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를 '음원 사재기'라고 보는 것이죠. 그러니까 라비가 올린 게시물의 의미는 기계로 만든 1위가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만든 1위니 엑소 너희들이 알파고를 이긴 이세돌이라는 의미인 겁니다.

시청자분들 중에는 '음원 사재기'라는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사재기를 하는 방법은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다수의 스마트폰을 확보한 '공장'같은 곳이 있을 것이고, 그 곳에서 '무슨무슨 노래를 실시간 차트에 올리자'라고 하면 그 노래가 발표되자마자 공장은 다수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해당 노래를 스트리밍하기 시작합니다.

24시간 내내 스트리밍을 돌리는 거죠. 그러면 당연히 실시간 차트에서 순위 상승이 일어납니다. 이 때 사람들은 '어, 새로운 노래가 들어왔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디 한 번 들어볼까' 하면서 그 노래를 듣습니다. 그렇게 기계의 힘으로 실시간 차트를 비롯한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다는 게 업계에서는 암암리에 알려져 있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이런 방식의 순위 조작이 처음 제기된 것이 바로 지난해 발표된 '닐로'라는 가수의 '지나오다'라는 노래였습니다. 너무 뜬금없이 실시간차트 1위를 기록한 노래가 이상했던 네티즌들이 사재기 의혹을 제기한 것이죠. 당시에는 해당 소속사에서 '바이럴 마케팅이 제대로 먹힌 것'이라고 해명하긴 했습니다.

사재기 의혹은 대개 '음원 강자'로 불리는 아이돌이나 다른 기성 가수를 밀어내고 무명 혹은 신인 가수의 노래가 실시간 순위를 치고 나올 때 제기됩니다.

예를 들어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이라는 노래의 경우 원래 노래는 2018년 9월에 발표됐는데 갑자기 올해 4월, 5월에 역주행, 그러니까 원래 발표된 노래가 차트에서 잊혀졌다가 다시 올라오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러다 5월 21일 멜론 차트 1위를 하죠. 그 때 차트에 있던 가수들이 박효신, 잔나비, 위너, 그리고 방탄소년단이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며 사재기 의혹을 제기했고, 이 노래 를 작곡한 2soo(이에스오오 )는 "조작하기 매우 어려운 노래방 차트에서 1위를 한 노래고 이 노래 관련 영상 조회수가 2천500만이 넘는데, 이런 노래가 멜론 차트 1위를 하는 게 이상한 일인가"라며 사재기 의혹을 해명했습니다. 그리고 "차라리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죠.

사실, 사재기 의혹은 의혹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물증이 없기 때문이죠. 검찰이나 경찰에 고발 혹은 인지를 통한 수사가 들어갔다고 해도 앞서 말씀드렸던 '공장'을 적발하지 못한다면 사재기의 실체를 밝히지 못합니다. 게다가 아이디 하나하나를 다 추적해야 하는데, 이 아이디가 사재기에 이용이 됐는지 안 됐는지 밝히는 것도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가요계는 지금 박경이 쏘아올린 작은 공에 의해 음원 사재기에 관한 진실공방이 시작됐습니다. 이 진실공방이 어떻게 해결이 될까요? 이번 진실공방으로 확실해진 건 우리나라에서 '히트곡'의 정의는 흐릿해져 버렸고, 더 이상 누구도 음원 사이트 차트 순위를 신뢰하지 않는 상황이 와 버렸다는 점입니다. 이화섭의 아니면 말고,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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