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지갑 열게 만드는 가격, "리퍼 상품 잘 팔리네"

제품 외관이나 포장에 흠집 있지만 사용에 문제 없는 가전·가구… 유통기한 임박 식품 90% 할인 판매 등
쉽게 사고 반품하는 시대, 리퍼 상품 쏟아지는 이유… 리퍼 시장 커지는 선순환 예상

사용에는 문제가 없는 작은 흠집이 있거나 포장이 손상된 리퍼비시 상품을 다루는 올랜드아울렛 대구점에서 고객이 리클라이너 소파를 체험하고 있다. 김윤기 기자 사용에는 문제가 없는 작은 흠집이 있거나 포장이 손상된 리퍼비시 상품을 다루는 올랜드아울렛 대구점에서 고객이 리클라이너 소파를 체험하고 있다. 김윤기 기자

불황에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녹이며 인기를 끄는 업종이 있다. 포장이나 제품에 흠집이 있거나 재포장된 상품 등을 정가보다 크게 낮춘 가격에 판매하는 리퍼비시(Refurbish) 매장이 그 주인공이다.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관련 업계 매출이 증가세인 가운데 전자상거래 확대로 인해 반품 등이 늘며 리퍼 시장 규모는 매년 커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덩치 키우는 리퍼비시 매장

대구 달성군 옥포읍에 있는 올랜드아울렛 대구점. 매장면적 약 2천300㎡의 이곳은 전국에서도 가장 큰 리퍼비시 매장 중 하나다. 초대형 매장에는 냉장고, 세탁기, TV 등 가전제품부터 침대, 식탁, 소파 등 가구에 이르기까지 가전·가구 전문매장을 그대로 옮겨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상품들을 전시판매한다.

가전·가구 전문매장과의 차이점은 바로 가격이다. 정가에서 최대 70% 안팎까지 할인한 가격에 판매한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팔 수 있는 것은 이들이 모두 리퍼비시 상품이기 때문이다.

리퍼비시 상품은 사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외관상 흠이 있는 제품을 재정비해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 물건들이다. 누군가 사용하던 것을 되파는 중고물품과는 다르지만 가격은 중고물품 이하인 경우도 있다.

냉장고나 통돌이 세탁기는 40% 내외 할인율로 입고 뒤 단시간 내 팔리는 인기품목이다. 유명 브랜드 식탁이나 소파 등도 최대 70%까지 할인판매해 인기가 많다. 이경 올랜드 아울렛 대구점 대표는 "지갑이 얇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부담없이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 많다. 리퍼비시숍의 존재를 모르는 분들도 있지만 기존 고객들은 재방문율이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이곳에서는 매월 셋째 일요일에 판촉행사 '천원의 행복'도 연다. 응모권을 장당 1천원에 구매한 뒤 원하는 제품에 붙이면 같은 상품을 고른 이들끼리 가위바위보 게임을 통해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 대표는 "매월 이벤트 비용에 수백만원이 들어가지만 고객 반응이 좋아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며 "입소문이 나면서 리퍼비시 시장 규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전국에 18개 직영점 및 가맹점을 운영하는 올랜드 아울렛의 연간 매출액은 2016년 471억원에서 2017년 595억원, 지난해 765억원으로 매년 20% 중반대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쉽게 사니 반품도 많아

넓은 매장을 채운 리퍼비시 상품은 주로 인터넷쇼핑이나 홈쇼핑 등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흘러 나온다. 직접 물건을 보고 사지 않는 온라인 쇼핑 특성상 실물을 보고 나서 마음이 바뀌는 사례가 잦은 탓이다.

매장전시 상품도 리퍼비시 상품으로 나온다. 엄밀한 의미에서 리퍼비시 상품은 아니지만 과다 생산으로 재고가 많이 쌓인 경우에도 제조업체가 리퍼비시 매장을 통해 재고를 소화하기도 한다. 이렇게 쏟아지는 리퍼비시 상품은 주로 법인 간 계약을 통해 리퍼비시 전문매장에 입고돼 바뀐 가격표를 달고 소비자들을 만나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 리퍼비시 상품은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다. 이사할 때마다 가전이나 가구에 흠집이 생기는 것을 고려하면 처음부터 가격을 깎아주는 리퍼비시 상품을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외부인 출입이 잦거나 가전·가구를 험하게 쓸 수밖에 없는 장소에도 안성맞춤이다. 반품 처리가 골칫덩이인 전자상거래 업체, 사용에 문제가 없는 제품을 버리긴 아까운 제조업체, 가성비 만점의 구매를 노리는 소비자, 리퍼 전문매장까지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온라인 리퍼비시 시장도 성장

주요 전자상거래 업체들도 리퍼비시 상품을 다루는 비중을 키워가는 등 온라인 리퍼비시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거래를 중개하는 방식 대신 상품을 직매입해 판매하는 비중이 큰 쿠팡도 반품 물건에 대한 처리 부담이 큰 편이다. 쿠팡은 자사 플랫폼 안에서 반품 상품을 리퍼비시 제품으로 재판매하기도 하는데 '리퍼', '재포장', '박스 훼손' 등 3종으로 나눈다. 검수를 거쳐 새 상품과 동일하다는 점을 확인하면 리퍼, 포장상자가 다소 훼손된 제품은 박스 훼손, 포장상자를 아예 교체하면 재포장에 해당한다. 판매가는 새 상품보다 5~15% 저렴하다.

티몬 리퍼데이 배너 이미지. 티몬 제공 티몬 리퍼데이 배너 이미지. 티몬 제공

티몬은 지난 4월부터 매달 24일을 '리퍼 데이'로 정하고 리퍼 데이에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제공하는 등 판촉행사를 벌이며 리퍼비시 상품을 집중적으로 판매한다. '떠리몰'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들을 저렴한 가격대에 파는 온라인 쇼핑몰로, 남아 있는 유통기한이 짧거나 상품성이 조금 떨어진 제품을 주로 다룬다. 일부 제품은 정상가 10% 내외에 팔기도 한다.

이 회사에 따르면 올해 초 1만명 수준이던 월 신규 회원 가입자는 6월 들어 2만명으로 2배 증가했다. 7월 기준 누적 가입자 수는 35만명가량이다. 파격적인 특가판매가 이슈가 될 때에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가기도 한다.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타임특가' 행사도 연다. 이 밖에도 '이유몰', '임박몰' 등이 온라인 리퍼비시 전문매장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자상거래 시장 비중이 매년 커지면서 리퍼비시 시장도 더 활성화될 것"이라며 "상품 종류가 더 다양해지고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선순환 구조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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