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시와 함께] 몸성히 잘 있거라

몸성히 잘 있거라

권석창(1951~ )

 

 

자주 가던 소주 집

영수증 달라고 하면

메모지에 술갑 얼마라고 적어준다.

시옷 하나에 개의치 않고

소주처럼 맑게 살던 여자

술값도 싸게 받고 친절하다.

원래 이름이 김성희인데

건강하게 잘 살라고

몸성희라 불렀다.

그 몸성희가 어느 날

가게문을 닫고 사라져버렸다.

남자를 따라갔다고도 하고

천사가 되어 하늘로 갔다는

소문만 마을에 안개처럼 떠돌았다.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는지

몸 성히 잘 있는지

소주를 마실 때면 가끔

술값을 술갑이라 적던 성희 생각 난다.

성희야, 어디에 있더라도

몸 성히 잘 있거라.

 

 

'메모지에 술갑 얼마라고 적었다'는 말은 외상을 먹었다는 말. 그래 맞아, 우리 모두에게도 외상을 먹던 시절이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린 월급날, 밀린 외상값을 갚고 나면 다시 외상을 살아야하는 시절이 있었다. 외상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적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행위. 좌우지간 '카드'라는 게 생기고부터 그게 싹 없어져버렸다. 그 옛날 외상은 곧바로 갚지 못하면 우물쭈물 얼버무리면 됐지만 요새 카드는 얄짤없다, 연체다 뭐다 하면 곧바로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카드란 참말로 인간미 없는 물건 중에 하나다.

그나저나 이 시 속의 몸성희는 어떻게 됐냐고? 내가 수소문해서 알아봤는데 '천사가 되어 하늘로 갔다'는 말은 헛소문이다. 허수경의 시 「저무는 봄밤」에 나오는 봉천본동 그 여자애처럼, 하수도 치는 절름발이 늙다리 총각을 따라갔는데 지금은 초로의 여자가 되어 경상북도 저 위쪽 영주에 살고 있단다. 잘 살지도 못 살지도 않고 뭐 그저 고만고만,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도 받고 공공근로도 나가고 그렇게 살고 있단다. 믿거나말거나……. 우리들이 정말로 좋아했던, 우리들을 정말로 좋아하던 몸성희!

 

시인 유홍준: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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